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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인 지난 2월 8일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에서 열린 합동망향제에서 실향민 가족이 북녘을 향해 절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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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남한에서 가정의 달입니다. 어린이날을 비롯해서 어버이 날 성년의 날 등 가족과 함께하는 풍성은 계절입니다. 한국의 대부분의 가정들은 가족 단위로 나들이에 나서지만 실향민들은 항상 죄인인 양 마음 아파하며 지금도 살고 있습니다. 더구나 멀리 해외에 나와 있는 실향민들은 더욱 고향 그리며 살고 있습니다.

목요대담 오늘은 실록의 계절 5월을 맞아 실향민들의 고향 그리는 이야기로 함께합니다.

먼저 워싱턴 인근에 사시는 올해 8순 되시는 심 모 씨는 17살에 엄마 곁을 떠나 엄마와 함께하지 못한 것을 마음 아파합니다.

심 모: 우리 어머니는 공부하라 공부하라 안 했는데도 저혼자 공부하니까? 참 기특하게 생각하곤 하셨는데 공부하겠다고 엄마품을 떠나온 17살 소녀가 지금 이렇게 이남에 나와서 그리고 미국에 오늘날까지 살았어요.

심 모 씨는 그래 어머니를 생각할 때마다 항상 목이 메인다고 말합니다.

: 제가 북한을 떠날 때 엄마를 떠나는 딸을 말리지 못해서 그냥 보내준 엄마가 너무 고맙기도 하고 나와서 공부도 제대로 못했지만 항상 감사하고 그래도 딸이 앞날을 위해서 남한으로 간다고 하니까 보내준 엄마가 나는 감사하고 오늘날까지 잘 살고 있고 가족들이 다 돌아가시고 그랬는데 저 혼자 남아 있는 것 같아요. 저는요. 이북 회령에서 태어났지만, 만주 용정에 가서 공부하고 그것이 제2의 고향이고요. 중국이 공산국가가 됐기 때문에 고향 회령으로 돌아왔는데 공부할 처지가 못돼서 그래 나 혼자 뛰쳐나온 것, 그것이 엄마에 대해서 제일 죄송한 거고 그래도 지금 잘 살고 있어서 감사하는 마음이고 그래요.

앞으로 통일 되면 고향에 가서 하고 픈 이야기 들려 줍니다.

심 모: 통일되면 고향에 가봐야지요. 그런데 이제는 다 돌아가시고 손자 소녀들이 있지만, 얼굴도 못 봤고, 그래 고향에 가면 모든 설명을 다하고 해야 될 것 같아요. 우리 집안에서는 혼자 오래 산 것 같아요.

멀리 미국에 살면서 어머니 생각하면서 살고 있다고 말합니다.

심 모: 어버이날에 한 번도 선물도 못 드린 것이 제일 가슴 아프고 그리고 또 어머니의 수의를 해 놓았지만 그걸 부치지 못해서요. 북한에는 그런 걸 보낼수가 없다고 해서요. 그래 지금도 제가 가지고 있어요. 내가 죽을 때 입고 가겠다고 그랬더니 사람들은 그렇게 한 번 이름 지어논 걸 딴 사람이 입고 가는 것 아니라고요. 그렇게 말하더라고요. 저는 그 수의를 입고 갈려고 그래요.

통일에 대한 소망도 말합니다.

심 모: 박 대통령도 말했지만, 통일이 대박이라고 그러셨는데 그런 날이 하루 속히 오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몇 년 내 올 것 같아요.

미국 남부에 사는 실향민 2세 최 모 씨는 통일되면 고향을 찾아 부모님께서 들려주신 고향의 향수를 맛보고 싶고, 그리고 부모님들이 일궈 놓으신 자산을 찾을 수 있을지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최 모 씨는 부모님께서 살아 계실 때 들려주신 고향 이야기 들려줍니다.

최 모: 어머니는 평양의 여러 가지 특색 있는 이야기, 아버지는 신의주 이야기해 주셨는데 부모님께서 젊었을 때 고향 산천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주시고 아버지 같은 경우는 형님과 625때 헤어지고 나서 남한에 내려오셔서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큰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말씀하셨고, 저희도 언젠가 통일이 되면 아버지를 모시고 갈 날이 오겠다는 막연하지만 기대는 있었지요. 아버지는 청소년기를 고향에서 보냈으니까요. 거기서 결혼하셨고요. 평양이나 신의주의 싱그러움이 나는 이야기를 많이 하셨어요. 추석 때가 되면 망향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셨는데 고향 산천의 경치를 잘 설명해 주셨는데요. 그리고 어머니를 만나게 될 때 신의주와 평양을 왔다 갔다 했는데 평양은 그 당시도 도시화 됐다고 봐야겠지요. 사실 평양은 기독교로 말하면 한국 기독교의 성지라고 할 정도로 활발했었잖아요. 이 두 가지를 말했던 것이 기억에 나지요.

2세로서 부모님 고향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는지 물어 봤습니다.

최 모: 그럼요. 기회만 되면 북한 고향에 가서 부모님이 말씀하셨던 그런 고향의 이야기가 생각나요. 평양에서 그렇게 멀리 떨어지지 않은 묘향산에 대해 이야기를 하셨어요. 이름 그대로 묘미가 있고, 산천이 수려한 묘향산도 가 보고 싶고, 가서 계곡물에 발을 담그면서 아버지가 말씀하시던 그런 산 이구나 하는 것을 기억으로 남기고 싶고, 신의주는 학생운동이 있었던 특별한 도시 아닙니까? 기회만 되면 꼭 가서 아버지가 들려 주신 고향을 돌아보고 싶습니다.

만일 통일되어 고향에 가면 가장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냐고 여쭤 봤습니다.

최 모: 모든 곳을 다 가보고 싶지만 처음에는 부모님들의 고향을 방문하고 싶어요. 이게 여담이지만, 그쪽에 부모님들이 지금은 다 없어졌겠지만 부모님들이 일궈 놓았던 것들(토지 집)을 살펴보고 싶고요. 또 그쪽에 계신 북한 동포들 직접 만나 뵙고 싶어요. 그래 통일이 된다면 고향 분들이 무엇이 필요한지 같이 한 번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습니다.

부모님들이 북한에서 일궈 놓으신 자산에 대해서도 들려줍니다.

최 모: 그거 많이 이야기 하셨어요. 부모님은 저희들에게 다 펼쳐 보이시지는 않았지만 남한에 내려와서 어려운 시절이 있었잖아요. 경제적으로 어려움 말입니다. 우리가 식구가 많은데 7남매였는데 어머니가 가끔 우리가 그 자리에만 있었으면 참 너희들이 이 고생 안 했을 건데, 그때 다 고생할 때지요. 그런 기억이 나요. 그래서 서류가 있어요. 서울에 계시는 큰 형님이 가지고 계시는 데 법적인 효력이 얼마만큼 있는지 모르지만 상당한 재력을 그대로 두고 내려오셨기 때문에 망향에 대한 설움도 있었겠지만, 재산에 대한 아쉬움도 있었다고 봐요. 통일되면 부모님 자산을 찾을 수 있을지 생각하고 싶지요.

북한 고향 분들에게 한마디 해 주시지요.

최 모: 고향 이야기만 들어도 찡하네요. 지구상에서 유일한 분단국가로서 오명을 벗는다는 데 앞서서 같은 민족의 같은 피를 나눈 민족으로서 정말 하루속히 통일이 이뤄져서 만나는 것뿐만 아니라 서로 결속이 되어서 한민족이 돼서 이 지구상에서 길이 빛나는 민족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목요대담 오늘은 실록의 계절 5월을 맞아 실향민들의 고향 그리는 이야기로 함께 했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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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주 이북 도민회 가족들이 오래곤주 케논 비치에서 가을 야유회를 가졌다.
사진-워싱턴주 이북 도민회 제공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 이북도민회는 지난 10월 9일 오레곤주 케논 비치로 가을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전은주 회장은 자유아시아방송과 회견에서 실향민 어르신들을 위로하는 행사로 대형버스를 대절해 총 50명의 회원들이 참가한 이날 행사에 우옥균 사무총장의 회원 소개와 경험담 말하기, 장기 자랑, 다 같이 노래 부르기 등으로 장거리 여행을 편안하게 이끌었으며, 임주홍 행사부장은 기타연주로 찬송가, 가곡, 동요 등으로 합창을 이끌었고, 동열모 고문은 하모니카 연주로 흥을 돋우는 등 실향민으로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시간도 가져 화목한 시간을 가졌다고 말했습니다.

전 회장은 특히 ‘항상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으로, 이북도민회를 위해 힘써 주시는 회원과 가족 여러분께 감사하다’는 환영 인사를 했으며, 일레인 권 이사장은 ‘도민회 행사나 여행 때마다 성심껏 행사 준비, 음식과 선물 등을 준비해 주시는 임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했습니다.

시애틀 이북도민회는 회원들의 친목을 위해 매년 봄과 가을에 정기 여행을 갖고 있으며, 지난봄 여행은 시애틀 북쪽 디셉션 패스 주립공원을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목요대담 오늘은 시애틀 이북 도민회 가을 야유회 소식 전은주 회장으로부터 알아봅니다.

먼저 이번 가을 야유회 행사를 소개해 주시지요.

: 10월 9일 다녀왔는데요. 관광버스 한 대를 빌렸는데 50명이 탈 수 있는 관광버스였고요. 장소는 오래곤 케논 비치에 시애틀에서 한 4시간 거리에 있습니다. 분위기가 너무 좋았고요. 출발하기 전에 (회원들 거의가 기독교인이시고 18명의 목회자가 속해 있는 단체) 기도로 출발하였고, 오늘 하루 효도 관광 잘 갔다 왔다고 말씀들 해 주셨는데, 준비한 음식부터 시작해서 차 안에서 우리 회 사무총장님 좋은 사회를 봐 주셨으며, 어떤 분은 나오셔서 전직 대통령의 성대묘사, 우리 행사 부장의 임종 씨는 기타 연주와 함께 노래해 주었는데 우리가 알아주는 시애틀 가수로서 우리를 즐겁해 해 주었고요. 그리고 그날 가신 분 중에서 92세 되신 동열모 어르신이 하모니카를 가져오셔서 정말 즐겁게 옛날 동요라든지, 노래를 하모니카 연주해 주셔서 또한 좋았습니다.

실향민 어르신들 이번 행사의 반응도 들려주세요.

: 이런 기회를 자주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씀들 해 주셨는데요. 그리고 고향 분들을 만나게 되고 화목한 분위기에서 대화도 하면서 가을 소풍처럼 직접 만든 음식도 가져오셨는데 정말 고향은 못 갔지만, 고향의 분위기를 맞았는데 바로 고향 분들을 만나고 정겨운 이야기를 나눴던 게 너무 좋았다고 이런 행사를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계속했으면 좋겠다고들 말씀들 하셨습니다.

시애틀 이북 도민회 회원들의 자랑입니다.

: 자랑이라면 정말 화합이 잘 되어요. 우리 모임에서도 화합하지만, 특히 시애틀 커뮤니티 여러 단체에서 주축 역할을 많이 하시거든요. 박남표 장군님은 연세가 많은 신데도 불구하고 지금 현역에서, 시애틀 한인회에서 봉사를 하고 계시고요. 그리고 음식을 참 잘 하셔요. 각 도마다 특징있는 음식을 잘 만드시고요. 재주들이 다방면으로 많으신데 노래 잘 하신분도 있고, 시애틀 한인사회에서도 열심히 봉사도 하고요.

실향민 2세들을 위한 활동 소식도 전해주시지요.

: 잊혀져 가는 반공정신을 상기 시키기 위해서 가끔씩 강연회도 하고요. 특별히 2세들이 참여를 잘 안하려고 하는데 저희들이 여러가지 프로그램을 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참여를 하려고 해요. 특히 찾아가서 같이 어울릴 수 있는 시간을 가지려고 해요. 그래 우리 실향민 어르신들의 정신을 전달을 하고 도민회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홍보를 하고 있고요. 그리고 될 수 있으면 많이 참여할 수 있도록 여러가지 면도 연구하면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년간 계획하는 행사도 소개해 주시지요.

: 저희는 1년에 봄 가을 소풍이 있고요. 여름에 야유회가 있습니다. 그때는 한 150명 정도 모이시거든요. 야유회에서는 여러가지 즐거운 게임도하고 있고요. 올해는 캐나다 뱅크버 이북 도민회 회원들이 참여를 하셨어요. 그래 다양한 게임과 통일과 관련한 노래와 함께 교류도 가졌습니다.

다른 지역 5 도민회와 교류도 갖는다고 들었습니다.

: 저희가 작년에 계획하기를 주변에 있는 이북 오도와 상호 교류 하자고 해, 그래 오래곤 주에 있는 이북도민회는 회원들이 한 70이 되시는데 활동을 거의 안 하시더라고요. 왜냐면 기존의 연령이 많으신 분들이 돌아가시면서 회원은 있는데 누가 이렇게 회를 관리하시는 분이 없으셔서 작년에 황 박사님을 만나 통합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뱅크버는 미국에서 가깝지 않아요. 차로 한 3시간 거리이니까 우리가 상호 교류하면 어떻겠냐고 논의했어요. 그곳 행사때 우리가 참여하고 우리 행사에 캐나다 분들이 오셔서 서로 교류하는 식으로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이번 행사를 통해 실향민들의 가장 큰 바람은 무엇입니까?

: 통일이고 고향을 정말 한 번 직접 가서 봤으면 하는 바람이지요.

시애틀 이북 도민회가 추구하는 목표나 행사 계획도 들려주시지요.

: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과 회원들의 친목을 위해서 첫째는 저희는 그런 모범적인 화합을 보여주고 또 나아가서는 북에 두고 오신 가족들을 정말 어떤 식으로 든 만날 수 있고 그들 실향민의 아픔을 같이 하면서 2세들을 좀 더 많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행사를 추진하려고 해요.

탈북자 돕기에 나선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 매달 월례회가 있어요. 매달 만나서 서로 어려웠던 일이나 무슨 돕는 일이나 논의하는데요. 지금 저희가 탈북자 가정을 돕고 있거든요. 매달은 아니지만, 성금을 도네이션을 받아서 어려운 상황들을 돕고 있습니다.

목요대담 오늘은 시애틀 이북 도민회 가을 야유회 소식 전은주 회장으로부터 알아봤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RFA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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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이현기 leeh@rfa.org

2012-08-29

사진-뉴잉글랜드 이북도민연합회 제공

김성혁회장이 매사추세츠 의과대학 나오미 신 양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미국 뉴잉글랜드 이북도민연합회 회원들은 지난 8월 초 그레그 스칼라튜 북한인권위원회 사무총장을 초청해 북한인권강연회를 갖고, 북한의 강제수용소가 해체되고 북한이 국제사회 일원으로 나오기를 바랐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 실향민의 시간 오늘은 뉴잉글랜드 이북도민연합회 김성혁 회장으로부터 뉴잉글랜드 이북도민연합회의 이모저모를 알아봅니다.

지난 8월 초 북한인권강연회를 가졌다면서요.

: 저희가 지난 8월 11일 MIT에서 대북인권강연회를 개최했습니다. 그 이유는 저희의 고향인 북한의 사태가 너무 급변하기 때문에 뭔가 북한에 대한 정보를 알아야 되겠고, 어떤 준비를 해야 되겠는가! 하는 그런 절박함이 있었기 때문에 그레그 스칼라튜 북한인권위원회 사무총장을 초청해서 북한의 상황과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서 저희가 강의를 듣고 서로 토론하는 그런 귀중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레그 스칼라튜 사무총장은 북한의 인권이 개선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그 이유는 과거에 소련이 스탈린 이후에 강제 수용소를 폐쇄하고 인권개선의 의지를 국제사회에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다음부터 소련이 외국의 협조를 받게 되고 개방이 시작돼서 현재 거의 자본주의 국가라고 할 수 있을 정도까지 되는 그런 기반을 다졌던 것을 우리가 너무나 생생하게 최근 역사 속에서 발견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 김정은이 미키마우스 등을 내세워서 개방적인 행동을 많이 취하고 있는데 그게 진실이든 아니든 우리가 가시적으로 원하는 것은 과거 소련과 같이 실제적인 개방을 위해서 현재 20만이 강제 수용소에서 고통당하고 있는데 그 사람들의 인권을 풀고 수용소를 폐쇄하는 조치가 이루어져야 정말 진정하게 북한이 국제사회에 나올 수 있고 개방이 되고 평화통일을 향한 구체적인 발걸음을 옮길 수 있다는 그런 중요한 강연내용이 있었고 거기에 우리가 동감하는 아주 귀중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뉴잉글랜드 이북도민연합회 회원들은 얼마나 되며 북한 어느 도 출신이 많습니까?

: 뉴잉글랜드 지역 하면 매사추세츠, 커네티컷, 메인, 버몬트, 뉴햄퓨셔, 로드 아일랜드 이 지역을 총괄하는 전체 지역을 뉴잉글랜드라고들 이야기합니다. 이 지역에 이북도민들의 회원 수는 대략 6,500여 명 정도 사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뉴잉글랜드이북도민연합회 회원으로는 평안도, 함경도, 황해도에 고향을 둔 분들이 주를 이루고 계시고요. 거기에 경기도 미수복지구라든가. 강원도 미수복지구에서 오신 분들로 회원을 이루고 있습니다.

뉴잉글랜드 이북도민연합회에는 젊은 연령층의 회원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 연령대를 보면 50대부터 80대까지 또 90대까지 생존해 계신 분도 계시고 아무래도 연세가 많은 분들이 주를 이루셨는데, 지난 20여 년 전부터 조금 상황이 바꿨습니다. 뉴잉글랜드 지역은 아시다시피 명문대학들이 많기 때문에 소위 기러기 엄마라든가 기러기 아빠 등을 중심으로 한 유학생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외형적으로는 호남이나 영남 사람 같았는데 많이 대화하다 보면 외조부나 외조모 또는 친할아버지 친할머니가 이북에서 오신 그런 경우가 유학생의 분포로 볼 때 굉장히 많은 것을 저희가 발견을 했습니다. 그래서 30-40대 연령층과 많은 10대 20대 청년들이 지금 이곳 뉴잉글랜드에 많이 증가했다는 것을 특징적으로 설명해 드릴 수 있겠습니다.

뉴잉글랜드 이북 도민연합회가 2명의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했다고요.

: 저희 이북 도민연합회가 많은 행사가 있지만, 그중에 대표적인 두 가지를 말씀드리면 저희 뉴잉글랜드 이북도민연합회 장학위원회의 장학금 수여와 2세 3세대를 위한 특별행사가 있습니다. 지난 2012년 새해를 맞아 저희가 2명의 장학생을 선정했는데 한 학생은 매사추세츠 대학에 재학 중인 평남 강서 출신 집안의 학생입니다. 강진영 군이 장학금을 받았고, 또한 매사추세츠 의과대학에 평북 북촌 출신이지요. 나오미 신양이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성적이 우수하고 평소에 주변에 모범적인 학생으로서 좋은 활동을 많이 했기 때문에 특히 연세가 많은 우리 실향민들을 위해서 봉사활동을 많이 했습니다. 이 장학금을 전달하면서 강경신 전 이북 도민연합회 회장께서는 이런 당부의 말을 하셨습니다. 실향민의 자립정신을 고취하고 학업에 정진해서 앞으로 평화통일 대한민국에서 국가 번영에 기여 할 것을 간곡히 부탁하셨습니다.

금년 모국 방문행사에는 몇 명의 회원이 참가했습니까?

: 두 번째 중요한 행사로 금년에 했던 프로그램은 이북 도민연합회 모국방문단 행사가 있었습니다. 이 행사의 취지는 해외에 계신 실향민들이 모국을 방문해서 모국의 발전과 남북 현실의 여러 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고, 또 앞으로 평화통일을 위한 중요한 인식을 서로 나눌 수 있는 귀중한 모임이기 때문에 대단히 의미 있게 이번 행사에 참가했습니다. 저희 이북 5도민회에서는 홍성도 팀장을 중심으로 9명의 대표단을 파견하고 지난 5월 14일부터 18일까지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현충원 참배를 시작으로 청와대 예방, 국정원 브리핑, 특히 천안함 등 안보현장을 답사하고 이북5도위원회가 주관하는 여러 세미나, 북한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세미나에 참석했고, 각 도별 환영 행사에 참여해서 대단히 유익하고 좋은 친교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특별히 분단의 현실을 모르는 2세 3세들이 참여해서 우리 모국 민족분열의 현실을 깨닫고 가슴 아파했으며, 평화 통일을 이뤄야 되겠다는 그런 의지를 젊은 세대들이 다시 한번 배울 수 있는 좋은 교육의 장이 되었습니다.

뉴잉글랜드 이북도민연합회 회원들의 자랑을 들려주세요.

: 우리 실향민들은 625전쟁에서 정말 피눈물 나게 아픔을 겪고 고향을 버리고 재산을 버리고 자유를 찾아서 남하한 그런 가족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남다른 강인한 뿌리 의식과 생존 능력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어느 곳에 가든지 열심히 생활하는 그런 공통된 생활능력을 갖고 계십니다. 과거 한국에서 보면 남대문이나 동대문시장에 실향민들이 많이 계셔서 생선장사 빈대떡 장사를 하시면서도 자녀 교육에 열심히 애를 쓰셨던 그런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곳 뉴잉글랜드지역에서도 많은 분들이 초기에 오셔서 갖은 고생을 다 하시면서 한 가지 목적은 그 자손의 교육에 집중했기 때문에 여기 하버드나 MIT, 터프스, 브라운 등에서 교육을 받게 했고, 또 그 학교에서 가르치고 세계 각지에 흩어져서 훌륭하게 자기 전공을 살려서 성공한 자녀 교육에 교육열을 자랑으로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 실향민의 시간 오늘은 뉴잉글랜드 이북도민연합회 김성혁 회장으로부터 뉴잉글랜드 이북도민연합회의 이모저모를 알아봤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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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7

사진-민명기 씨 제공

올해 해외 실향민 고국 방문 행사에 참가한 민명기 씨(워싱턴 이북도민연합회장, 왼쪽에서3번째)

사단법인 일천만 이산가족위원회 워싱턴 지 회는 한국에서 펼칠 통일 항아리 캠페인에 적극 참여키로 하고 워싱턴 일원에서 이 운동을 펼쳐나가기로 했습니다. 언제 통일이 될지 모르지만 갑작스럽게 찾아와 당황하기보다는 그날을 미리 준비해 나가는 마음으로 통일항아리 운동을 펼쳐나가기로 했습니다.

한국 통일부는 지난 6월 초 통일준비 필요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통일의지를 결집시키기 위해 '통일준비 캠페인 허브 사이트'(www.unijar.kr)를 개설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통일준비 재원 마련 사업인 일명 '통일 항아리'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과 국민들의 통일준비 응원하기, 유명 인사들의 응원 영상과 더불어 통일항아리 관련 행사 등을 소개한 바 있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 실향민의 시간 오늘은 일천만 이산가족위원회 워싱턴 지 회 민명기 지 회장으로부터 워싱턴 지 회 활동의 이모저모를 알아봅니다.

지난 6월 초 일천만 이산가족위원회 워싱턴 지 회는 총회를 갖고 통일부가 추진 중인 통일 항아리 운동에 적극 참여키로 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요.

: 사단법인 일천만 이산가족위원회 워싱턴 지 회는 지난 6월 8일 총회와 함께 통일항아리운동 활성화를 위한 행사도 했습니다. 이날 박선영 전 의원이 탈북자 문제에 대한 활동을 소개했고 북한의 고위직 탈북자 최 모씨의 최근 북한에 대한 실정에 대한 강연회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일천만 이산가족위원회는 주무 관청이 통일부여서 현재 통일부가 통일항아리캠페인을 전개하고 있기 때문에 또한 통일은 어느 날 갑자기 올 것에 대비해서 준비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취지 하에서 이날 행사에서 이 운동을 전개하기로 방침을 세웠습니다.

이날 행사에 박선영 전 의원이 참가해 탈북자 강제 송환 저지에 동참을 당부했다면서요.

: 박선영 전 의원은 물망초라는 사단법인을 설립해서 고난 받고 어려움을 겪는 탈북자들을 위해 일하고 있고, 탈북자 강제 송환저지를 위해 일하는데 저희 일천만 이산가족위원회 워싱턴 지 회도 동 참해 주기를 바랬습니다.

민명기 일천만 이산가족위원회 워싱턴 지 회장은 메릴랜드 주가 5월 10일을 이산가족의 날로 선포한 것에 감사한다면서 워싱턴 일원의 실향민들은 9월에 이북 도민의 날 행사도 갖고 있다고 설명해 줍니다.

: 메릴랜드 주가 몇 년 전에 5월 10일을 이산가족의 날로 선포했는데요. 감사하게 생각하고요. 매년 저희들은 9월에 이북도민의 날 행사를 개최합니다. 올해는 9월 15일 토요일 메릴랜드 소재 캐더락 공원에서 갖게 됩니다.

일천만 이산가족위원회는 미국에 몇 개 지 회가 있으며 어떤 일을 가장 중시하고 있습니까?

: 미국에는 4개 지 회가 있습니다. 로스앤젤레스, 뉴욕, 시카고, 워싱턴 지 회가 있는데 이 지 회는 이산가족들을 위해서 이산가족 상봉 추진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워싱턴 지 회에서는 작년에 미국적십자사 본부 워싱톤 DC에 있는데요. 적십자사 관계자들을 만나서 이산가족 상봉을 조속히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가를 논의했고, 국무부의 대북 인권특사인 로버트 킹 대사를 두 번이나 만났지요. 로버트 킹 대사에게 재미 이산가족들의 가족상봉의 절심함을 전했는데 이제 나이가 80이상으로 시간이 없으니 조속히 만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소망을 전했어요. 킹 대사는 북한이 현재 문을 열고 있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미 북 관계가 정상화되면 적극 추진하겠다는 말한바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4개 지 회는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통일항아리 운동을 전개해 나가기로 했다면서요.

: 당연히 해야지요. 전 국민운동으로 전개 했으면 좋겠어요. 처음부터 많은 기금을 모은다는 것 보다는 소규모로 운동을 전개해서 점차적으로 확대하는 운동으로 전개해 나갈 것입니다.

지난 5월에 이산가족들이 한국을 방문해 북한 땅을 직접 가보지 못하지만, 남한 땅에서나마 이산의 아픔을 달래셨는데 워싱턴 실향민들의 한국 방문 소식도 전해 주시지요.

: 매년 해외에 있는 실향민들을 초청하는 행사인데요. 주관은 한국의 이북5도위원회가 주관해 개최하고 있습니다. 올해 18번째 고국방문 행사를 치렀는데 이제는 세계에 사는 실향민들 독일,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등에서도 참가해 286명이 한국 방문을 했습니다. 워싱턴에서는 함경도민회, 평안도민회, 황해도민회에서 20명이 5월 14일부터 5월 18일까지 행사에 참가했어요. 한국 행사는 전쟁 기념관 방문과 산업시찰 행사 등이 있었는데 이렇게 해외 실향민들을 초대해 행사 갖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해외에서 벌써 20년 30년 동안 한국 방문을 못했었는데 이렇게 초청되어 방문한 것에 큰 의미가 있다고 보고 한국 발전상을 실제 체험으로 보고 돌아와 민간 외교관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는 그런 계기가 됐다는 것에도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자유아시아방송 실향민의 시간, 오늘은 일천만 이산가족위원회 워싱턴 지 회 민명기 지 회장으로부터 워싱턴 지 회 활동을 알아봤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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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싱톤 동포들이 한 공원에서 남한에 자유 수호를 위해 궐기 대회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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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서부 지역에 사는 실향민들은 북한의 최근 실상을 보면서 참 안타깝다고 이야기합니다. 자국 국민은 굶겨가면서 미사일 발사가 웬 말이냐고 반문하고, 북한에 있는 내 부모 형제자매가 굶어 죽어 가는데 미사일 발사가 웬일이냐며 강한 분노를 나타냈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 실향민의 시간, 오늘은 북한 로켓 발사와 북한 당국의 남한 협박에 대한 LA 지역 실향민들의 반응을 들어봅니다.

실향민 김 모 씨는 북한이 너무나 무모한 전쟁놀이에 빠진 정책을 펼쳐 가슴 아프다고 말합니다. 그런 미사일 발사에 쓰는 비용을 국민을 위해 써야 하지 않느냐고 질책합니다.

김 모: 당연히 하는 정책이 솔직히 하나도 맘에 드는 게 하나도 없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미사일 발사라든가 강성대국을 건설한다 등 지금 국민을 굶겨 죽여가면서 1년 치 식량을 하늘에 날려 버리는 그런 거 정책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북한동포를 생각해보며 국민을 다 죽여가면서 1년 치 양식을 날려버리는 그런 잘못된 정책을 하는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실향민 김 모 씨는 고향에 동생을 둔 사람으로서 북한이 하는 정책에 한없이 불만만이 나온다고 이야기합니다.

김 모: 북한에서 하는 정책이 정책입니까? 불만을 터뜨리려면 한이 없고 미국에서 바라보는 우리 실향민들은 더군다나 더 아주 기가 막힌다고요. 북한에 동생이 셋이나 있는데 그들이 굶어 죽었는지 살았는지를 알기 위해 ( 미국 적십자에 )신청한 거예요.

실향민 김 모 씨에게 고향 가고 싶으냐는 질문에 고향 가고 싶지 않은 사람 있겠느냐고 반문합니다.

김 모: 고향에 대해서 솔직히 가고 싶은 생각 고향에 있는 사람들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지 뭐가 있겠어요.

실향민이며, 자유대한 지키기 국민운동본부 미 서부지부 김봉건 회장은 현실의 북한을 보면서 북한주민은 굶겨 죽이면서 로켓이나 핵실험에 몰두하는 북한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어 북한 로켓 발사 반대 궐기대회를 펼친다고 말합니다.

김봉건: 지금 북한의 실정을 볼 때 그야말로 북한에 고향을 둔 한 사람으로서 참으로 가슴 아픕니다. 어쩌면 그렇게 인민을 굶겨 죽이면서까지 핵실험을 한다. 로켓을 발사한다. 해서 이렇게 자꾸 불씨를 일으키느냐! 전쟁을 이렇게 좋아하느냐! 민족을 학살하기를 좋아하느냐! 이러한 북한의 김정은이의 3대 세습에서 조금도 변화 없는 민족을 멸시하고 인권을 무시하는 그런 상황에 대해서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지요. 그래서 우리 LA에서는 4월 27일 오후 2시 라디오 코리아 광장에 30여 개 단체가 모여서 북한은 로켓 발사를 더 이상 하지 마라! 핵실험을 더 이상 하지 마라! 만일 그러한 징후가 있다면 한미 양국은 공조해서 북한의 핵 시설을 정밀 조준 타격해서 분쇄해야 된다. 이런 입장을 밝히는 겁니다. 참으로 지금 북한의 이런 상황에 대해선 아주 가슴 아프고

김봉건 회장은 제발 북한이 국제사회의 말썽꾸러기가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한 민족이 자꾸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 한방에 날리겠다는 이런 협박을 하는데, 정말 남한과의 통일할 수 있는 기반 조성은 못할망정 전쟁 준비에 몰두하는 북한에 대해서 참으로 황당하고 제발 이런 일을 안 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실향민 장 모 씨는 북한이 최근 장거리 미사일을 쏘았지만 실패해 그 분풀이를 남한에 하지 않나 싶어 더욱 가슴 아프다고 말합니다.

장 모: 지금 상황을 보면 말할 수 없이 가슴이 아프지요. 저희가 수십 년 동안 북한 가족을 그리워하는 마당에 생사도 확인되지 않은 입장입니다. 북한에 대해서 명심해야 될 것은 늘 하던 상투적인 일로다가 막된 말로 언제나 하곤 하는데 근래 들어 심각한 생각이 듭니다.

실향민 장 씨는 죽기 전에 북한 고향을 밟아보고 싶고 가족과 상봉이라도 했으면 하는 마음이지만 그동안 북한의 행실로 봐서는 이산가족 상봉에 신뢰가 가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장 모: 저희는 실향민의 입장에서 언제나 가족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그 기대하나 하고 있습니다. 통일까지는 기다리지 못하더라도 죽기 전에 가족이라도 꼭 한 번 만나기를 원하는 데 북한은 그런 면에서 조금도 협조하는 기색이 없습니다. 그동안 몇 번 형식적으로는 상봉이 있었습니다만, 일반 실향민에 대해서 크게 피부에 와 닿지 않는 그런 입장에 있고 진심으로 실향민의 상봉을 원한다면 어떤 이념이나 정치를 떠나서 순수한 인간적인 면에서 성사시킬 수 있게 성의를 보여서 저희들은 언제나 준비가 되어 미국이나 한국에서는 모든 것을 개방해 가지고 있는데 북한에선 그런 마음이나 성의가 없는 것 같아요. 형식상 그때그때 쇼 같은 행사를 해 왔는데 저희들은 너무 거기에 매달리고 속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희로서는 큰 기대를 안 하고 있습니다. 왜냐면 그 동안 북한의 모든 행실로 봐서 제 입장에서는 신뢰를 못합니다.

장 모 씨는 국제사회의 도움으로 한반도 통일이 돼서 어느 날 가족 상봉의 기회가 올 것도 기대해 본다고 이야기합니다.

장 모: 마! 되면 되고 안 되면 안 되고 죽기 전에 만날 수 있으면 다행이고 그렇지 않으면 가족도 못 보고 가는 거 아니냐! 반신반의하는 이런 대다수의 실향민의 공통된 마음 가짐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참 기대 이외로 어느 날 가족상봉이 된다면 얼마나 반갑고 좋겠습니까? 막연하나마 그런 기대는 갖고 있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 실향민의 시간, 오늘은 북한 로켓 발사와 남한 협박에 대한 LA 지역 실향민들의 반응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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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28

RFA PHOTO/ 이현기

김동명 함경북도 도지사가 축사를 하고 있다.

워싱턴 함경도민회 창립 30주년 기념행사가 총회와 함께 지난 3월 3일 북 버지니아 애난데일에 있는 팔레스 식당에서 열렸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 실향민의 시간, 오늘은 워싱턴지구 함경도민회 창립 30주년 행사 소식으로 함께합니다.

함경도민회 유지일 회원이 함경도민회의 약사를 소개합니다.

유지일: 우리 함경도민회는 1982년 5월 18일 박오솔 고문 사무실에서 8명의 회원이 모여 실향의 애환을 달래기 위해 친목단체로 함경향우회를 창립했습니다. 그 당시 창립하신 분은 박오솔 고문, 김갑석 고문, 염창용 감사. 장송 전 향우회장은 이 자리에 참석하셨고 정은택 전 향우회장은 양로원에 계시고 몇몇 회원들은 연락이 안 됩니다. 함경향우회는 연 2회 5월은 야유회와 총회를 9월에 망향 제를 지냅니다.

유지일 씨는 그동안 장학 사업을 벌여 5년 동안 24명에게 장학금을 지급했다고 설명합니다.

유지일: 함경도민회 2세와 3세에게 조국에 대한 정체성과 애향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함경도민회 장학사업을 시작하여 함경도민회 날 행사에서 2명에서 5명씩 장학금을 수여하였으며 5년 동안 24명에게 1만 2천 달러를 지급했습니다.

워싱턴 함경도민회 회원은 700여 명에 이릅니다.

유지일: 2012년 2월 함경도민회는 2005년 4월에 50가구였으나 현재 약 220가구로 도민회원이 약 700명이 등록되어 있으며 오늘 함경도민회 창립 30주년을 맞게 되었습니다.

손경준 회장은 30년 동안 함께 해준 회원들에게 감사했습니다.

손경준: 함경도민회가 창립된 지 30주년이라는 뜻깊은 날을 맞이하여 기쁘고 서울에서 함경북도 김동명 도지사님 일행과 내 외빈 여러분이 오셔서 축하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특히나 함경도민이라는 고향을 애착심을 갖고 도민회에 참석해 주시고 30년 동안 활동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도민 회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손경준 회장은 30년 전에 함경도민회를 창립한 분들에게 회원들 모두 일어나서 감사의 박수를 보내자고 했습니다.

이날 행사에 한국에서 김동명 함경북도 도지사가 참가해 30년 역사의 워싱턴지역 함경도민회 회원들 활동에 감사한다고 말했습니다.

김 지사는 2012년은 세계 지도자가 전면 교체될 예정이어서 한반도 안팎에서 안보와 정치, 경제분야 등 전반에 걸쳐 상당한 격변이 예상된다며 특히 북한의 대남 국지 도발을 일을 킬 가능성도 있어 철저한 경계와 함께 주한미군 주둔의 중요성도 강조했습니다.

김동명: 미국의 고마움, 미국은 우리나라의 자유와 평화를 지켜준 나라가 아니겠습니까? 625 전쟁 시에는 참전해 주지 않았습니까? 또 우리나라가 60여 년 동안 고생을 많이 해서 경제 12권의 나라가 됐습니다. 이것 또한 미국의 후원이 없었으면 12권의 경제 강국이 못 됐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워싱턴 DC를 방문하자마자 한국전쟁에서 싸우다 전사한 장병의 명복을 빌기 위해서 제일 먼저 알링턴 국립묘지와 625 참전기념비를 찾아갔습니다.

김 지사는 워싱턴지역 함경도민들은 특별히 한반도에 평화통일을 이루는 그날까지 힘을 합해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습니다.

김동명: 625전쟁 시에 대한민국을 지켜준 미국과의 우호관계를 잘 유지해 나가야 만이 대한민국이 더 발전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군 출신이기 때문에 안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굳건한 안보를 바탕으로 경제가 발전되기 위해 해외 이북 도민들의 많은 협력을 바랍니다.

황덕호 함경남도지사는 서신 축사에서 김정일 사망으로 조국통일에 대한 우리 이북 도민들의 기대가 한층 높아지고 있다면서 우리가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북한정권은 우리의 상식이 통하지 않는 비정상적인 정권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김갑연 신임 회장은 취임사에서 “앞으로 도민회의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며 “이를 위해 젊은 2, 3세대들이 도민회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나가겠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날 행사에서 한창욱, 박현순, 안경희, 김성범 씨는 유공 도민 표창장을, 김갑석, 염창용 고문은 도민회 창립유공자 공로 탑을 각각 받았습니다.

그리고 도민회 회원 자녀인 김광선, 김형준, 김시연, 권유라 양 등 4명에게는 각각 장학금 500달러의 장학금을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이밖에 박충기 메릴랜드 고등교육위원에게는 감사패가, 서재홍 수도권 메릴랜드 한인회장과 송주섭 랜돌프 데이케어 센터 한인담당관에게는 감사장을 각각 수여했습니다.

이날 행사에서는 실향민인 이경주 시인의 ‘망향의 탑파’ 제목의 시 낭독 순서도 있었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 실향민의 시간, 오늘은 워싱턴지구 함경도민회 창립 30주년 행사 소식을 전해 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RFA 이현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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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9

사진-재미남가주이북도민총연합회 제공

최창준 회장이 실향민 전산화 작업의 자료를 설명하고 있다.

재미 남가주 이북 도민 총 연합회는 최근 중국 공안이 붙잡은 30여 명 탈북자의 강제 북송에 반대하는 청원운동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재미 남가주 이북 도민 총 연합회 회원들은 북한이 고향이기 때문에 북한 고향 사람들의 처참한 인권 상황을 국제사회에 알려 참 자유를 얻을 때까지 탈북자들과 북한동포들 도울 것을 굳게 다짐하고 있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 실향민의 시간, 오늘은 재미 남가주 이북 도민 총 연합회 활동을 알아봅니다.

재미 남가주 이북 도민 총 연합회는 언제 창립이 되었습니까?

김봉건 전 회장: 1990년 1월 20일 창립됐습니다. 창립 동기는 많은 한인이 미국에 와 사는데 가장 많은 도가 호남 사람들이고, 다음에 북한에 고향을 둔 우리였습니다. 그래서 이분들을 결집해야겠다. 결집하는 이유는 우리가 통일을 염원하는데 통일의 가장 선구자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우리 이북도민들이 아니냐는 생각을 했고, 또 한가지는 우리가 미국에 살면서 모국의 무언가 기여할 수 있는 교민의 생활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목표가 있었고, LA 한인사회에도 많은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이북 5도민회를 구성하게 됐지요.

초창기에 이북 도민회를 이끌었던 분들은 얼마나 생존해 계신지요.

김봉건 전 회장: 초창기 5도민회를 이끄신 분은 함경남북도 출신으로는 강기봉 씨하고 이종규 박사가, 평안북도 출신으로는 박영창 씨, 이관옥 씨, 김봉건 씨, 평안남도 출신으로는 안균 씨, 김기덕 씨, 황해도는 안민식 씨, 고재복 씨 등이 활동했습니다. 그런데 사실상 초창기 멤버들은 거의 고인이 됐고 유일하게 제가 남아 있지요.

그동안 재미 남가주 이북 도민 총 연합회가 추구한 주요 활동을 소개해 주시지요.

김봉건 전 회장: 우리는 실향민으로서 이북에 가족을 둔 사람으로서 이북에 있는 내 가족 내 형제들이 편안히 살 수 있는 방법, 또 거기서 살기 어려우면 탈출해서 중국에 넘어오면 중국에 넘어온 우리 가족이 무사히 남한으로 들어오는 방법을 찾아 주는 역할을 해야겠다. 그래서 남한에 가서 건의하기를 탈북한 우리 난민들, 우리 가족들이 중국으로 넘어오면 중국에 수용소라도 만들어서 그분들이 편안히 있다가 제3국으로 또는 남한으로 들어올 수 있는 이런 일을 위한 역할을 할 것을 다짐했습니다.

탈북자 강제 북송 중단을 요청하고 계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김봉건 전 회장: 탈북자들이 중국 공안에 체포되어 강제로 북송 당하고 있어요. 북송 당하면 그 사람들은 강제 노동 수용소에 들어가던가 아니면 처형되기 때문에 이런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 유엔과 미국과 한국정부에도 강제북송중단을 위한 청원을 해 왔습니다.

김봉건 전 회장은 재미 남가주 이북 도민 총 연합회와 LA 친북 단체간에 대결양상을 보일 때가 많고요. 김정일 생일에 갖는 사진전을 하지 못하도록 했으며, 김정일 사망과 관련해 조문단을 파견한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절대 안 된다는 반대 시위도 가져 불발됐다고 전했습니다.

중국정부가 최근 30여 명의 탈북자를 강제 북송하려는 움직임 때문에 국제적인 강제북송 반대 청원 운동을 펼치는 진교륜 박사(전 부시 대통령 시절 평화봉사단 차관보)는 이북 도민회와 15개 단체가 함께 탈북자 강제북송 반대 청원운동을 펼치고 있다면서 우리의 같은 민족이 강제 북송되어 어려움에 처하면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

: 15개 단체가 서명한 항의 서한을 오바마 대통령에게 보내고 중국의 대통령에게도 보내게 됩니다. 그리고 LA 지역에서 최소한 5만 명의 청원 서명을 받아서 중국 정부에도 보내려고 합니다. 또한, 미국 연방 하원 상원에서 중국의 만행에 대해서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할 거고 국무성을 통해 중국 정부에 보내는 그런 운동도 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이 운동을 한번에 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 할 겁니다. 왜냐면 계속해서 탈북자는 늘어날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강제 북송되면 그들도 죽고 그의 가족도 죽게 되요. 그래서 이것이 남의 일이 아니고 우리의 일입니다. 우리 미국 동포 중에 50%가 북한에 친척이 있잖아요. 그래서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한편, 재미 남가주 이북도민 총 연합회 신임, 최창준 회장은 전 회장의 뜻을 이어 올해도 회원과 그 자녀를 대상으로 조국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고, 고국방문단 행사를 포함해 주요 사업으로 망향제도 추진한다고 밝혔습니다.

최창준 회장: 우리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소식지를 발간하는 것과, 골프대회를 통해 기금도 마련하며, 망향 제를 하면서 곁들여 야유회를 가질 겁니다. 그리고 탈북자들을 도울 길을 찾을 겁니다. 누구보다도 탈북자는 우리 고향사람이잖습니까 다른 분들과는 다르다고요. 지금 탈북자 강제 북송 반대하는 것도 다른 단체보다는 입장이 다르다고요. 우리는 한 고향 사람으로 생각하니까? 누구보다도 뼈 아파서 탈북자들을 돕는데 앞장설 것이고요. 그리고 남한의 풍선 보내기 운동에 동참하고, 실향민의 전산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실향민들의 의견 수렴을 해서 한국정부에 건의할 거고요. 매년 있는 행사지만 5월에 고국방문 행사에 참여하게 됩니다.

최창준 회장은 2세와 3세들을 위한 교육에도 힘쓰겠다고 말했습니다.

최창준 회장: 2세 3세에게 고향에 대해 교육도 하고 야유회 초대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 실향민의 시간, 오늘은 재미 남가 주 이북 도민 총 연합회 활동의 이모저모를 알아봤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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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28

RFA PHOTO/ 이현기

민명기 회장이 이북 도민의 날 행사에서 인사하고 있다.

일천만 이산가족위원회 워싱턴지회는 지난 21일 김정일 사후 변화가 예상되는 남북관계에서 이산가족들의 숙원을 풀 수 있는 대화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2012년에도 미국 적십자사나 미국 정부 차원의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 홍보와 함께 1.5세와 2세들이 적극적으로 동참하도록 할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 실향민의 시간 오늘은 일천만 이산가족위원회 워싱턴지회 민명기 회장으로부터 활동의 이모저모를 알아봅니다.

김정일 사망 이후 워싱턴 일원 실향민들의 상봉에 대한 낙관론과 비관론이 대두 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 저희 실향민 단체는 그동안 미국 국무부의 로버트 킹 북한인권특사를 만나서 이산가족 상봉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전달했고, 또 하나는 미국 적십자사 본사를 찾아 산토스 시니어 디렉터에게 이산가족상봉에 대해 우리의 입장을 전달했어요. 그리고 미국 시민권자로 이산가족상봉을 위해 35명이 접수 했는데 이분들의 명단을 미국 적십자가 본부에 전달했습니다. 그래서 지난 23일 제네바에서 국제적십자사가 북한 적십자사를 통해 이분들의 명단을 접수 시켰으며 작년에 북한의 김계관 외무성 제1 부상이 미국의 킹 특사를 만난 적도 있어 상당히 재미동포 이산가족상봉에 고무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런데 김정일이 사망하고 새로운 체제가 들어서서 남북관계나 이산가족 상봉 등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지 않냐는 노파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산가족들도 그런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워싱턴 일원 실향민들 김정일 사후를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 우리 실향민들은 그동안에 김일성 김정일로 이어지는 체제에서 실향민들은 사실 북한에서 소외당해서 많은 토지를 몰수당하고 사실 추방당한 실향민들이라고요. 그래서 북한에 대한 여러 가지 실정이나 사상을 잘 알고 해서 김정일 사망 이후에도 1세 권력자들이 지속되기 때문에 별다른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는데 한 가지는 1세 권력자들이 한 5년이 지나면 다 물러날 것이고 그래서 북한에도 개방돼서 민주화가 토착이 되면 한반도의 통일이 조속히 이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지난 21일 일천만 이산가족위원회 워싱턴 위원회가 김정일 사후 변화가 예상되는 남북관계 속에서 이산가족들의 숙원을 풀 수 있는 사업 계획들을 심층 논의했다고 들었습니다.

: 금년에도 주로 이산가족상봉과 관련해 홍보를 많이 했지만, 내년에도 홍보활동을 지속하려고 합니다. 이산가족이 어떤 사람인지에 관해서 홍보하고 이산가족을 생각할 적에 6.25전쟁으로 인해 헤어진 것만이 이산가족이 아니고 인류가 존재하는 한 이산가족은 존재할 수 있다. 왜냐면 천재지변이나 기타 여러 가지 문제로 항상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 1세들이 물러난다고 해도 2세 3세가 배턴을 받아서 이산가족에 대한 그런 사업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산가족에 대한 홍보에 주력하고 특히 내년에는 2세 3세들을 위해서 이산가족 상봉에 대한 세미나를 개최하려고 해요. 주제는 ‘625 전쟁으로 인한 이산가족들의 현실과 상봉에 대한 전망’주제로 대학생을 대상으로 가질 계획입니다.

1.5세, 2세들이 실향민 단체에서 적극 참여하도록 힘쓰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현재 일천만 이산가족위원회 임원을 보면 부회장도 1.5세고 사무총장도 2세고 그 외에도 많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년도에는 좀 더 활발하게 젊은 2세들을 많이 영입해서 사업해나갈 계획입니다.

워싱턴 포스트에 민명기 회장 기사를 읽었습니다. 6.25전쟁 발발 당시에 부모님과 남한으로 피난하셨다고 하는데 아버지께서 삼촌을 꼭 만날 수 있도록 하라고 하셨다는 데 그 이야기도 들려주시지요.

: 제가 어릴 적에 부모님 따라 월남했는데 우리 경우 북한에서 대주주의 속해서 어느 날 갑자기 정권이 바뀌면서 부모님의 자산을 몰 수 당했고 도저히 북한에서 살 수 없다 해서 탈출했는데 삼촌도 같은 동네에 살았는데 같이 월남하면 발각될 수 있기 때문에 나눠서 월남하자 해서 우리 가족만 밤에 탈출을 했어요. 우리 삼촌에게는 내일 어디로 와라 약속을 하고 서로 헤어졌는데 북한의 보안원들이 눈치를 채고 삼촌의 집을 포위하고 감금하다시피 해서 월남을 못했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항상 북한에 있는 동생 가족을 그리워하고 걱정을 했어요. 우리가 성장했을 때 삼촌과 상봉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라고 하셨지만 아직도 소식은 모르지만, 부모님의 유언은 꼭 삼촌을 만나라는 것이었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 실향민의 시간 오늘은 일천만 이산가족위원회 워싱턴지회 민명기 회장으로부터 활동의 이모저모를 알아봤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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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30

사진-워싱턴지구 평안도민회

사진은 김제호 회장이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는 모습.

북한 평안남도 출신 1.5세 김제호 씨는 부친과 함께 15여 년 전부터 워싱턴 평안도민회 모임에 참가하면서 1.5세로서 아버지가 가장 바라는 것은 무엇이며, 앞으로 2세들과 3세들을 잇는 다리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워싱턴 평안도민회 회장을 맡아 ‘조상을 아는 것이 우리의 의무인 만큼 앞으로 더욱 많은 한인 1.5세 2세 3세들이 남북 문제에 관심을 두고 뿌리를 찾기 위해 노력할 것’을 다짐했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 실향민의 시간 오늘은 워싱턴 평안도민회 김제호 회장으로부터 도민회 활동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1.5세 실향민으로서 언제부터 평안도민회에 참가하게 됐습니까?

: 1995년도부터 아버지가 평안도민회에 참가하실 때 제가 모시고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참가했지요.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그때부터 도민회에 나가기 시작하면서 활동했는데 당시는 1.5세, 2세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1.5세로서 워싱턴 평안도민회 회장으로 일하시게 됐는데, 1 세와 1.5세들의 교류와 함께 어떻게 단체를 이끌어 가실 계획입니까?

: 도민회는 실질적으로 1세들이 주축이 된 거지요. 1.5세 2세들은 고향에 대한 향수가 적어요. 왜냐면 저희는 북한에 있는 부모님의 고향을 직접 보지 못했기 때문에 고향에 대한 향수가 적은데 1세들은 고향에서 자랐기 때문에 고향을 그리는 마음으로 모여 옛날이야기도 나누는데요. 그렇지만 1세들이 영원히 이 세상에서 사는 것도 아니고 한 분씩 돌아가시는데(저희 아버지도 돌아가셨지마는.) 그렇지만 1세들이 돌아가시고 참여가 어려워지면 도민회가 없어져야 하느냐는 문제가 있어서 1.5세 2세들 몇 분이 1세와 협력하면서 이끌어가는 단체가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 해서 저희가 청년회를 조직했고, 청년회가 지금은 구심점 역할은 못 했지만 전임 장종철 회장 임기 때부터 차츰차츰 성장해 가면서 1.5세 2세들이 도민회를 이끌어가는 단체로 만들어 가는 계획으로 있습니다.

1세 실향민들을 옆에서 잘 지켜 보셨을 텐데요, 어떻게 생활을 해 오셨는지요?

: 1세들은 고향(북한)에서 이민 오다시피, 쫓겨나다시피 남쪽으로 내려왔고, 또 그분들이 다시 미국으로 온 겁니다. 그러니까 두 번을 고향을 떠났다고 봐야지요. 그래 여기 오셔서 열심히 일하시고, 평안도 사람이 생활력이 굉장히 강한 것 같아요. 어디 가서도 남에게 지지 않고 어느 곳에 가시든지 의식주를 해결하는 데는 가장 탁월한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1.5세인 저희도 자녀를 잘 교육해서 미국 주류사회에 내 보내는 그런 힘, 이것이 굉장한 자랑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1.5세, 2세들이 1세대 실향민 어르신들로부터 배울 점들이 많죠?

: 1세들이 이곳 미국에서 살아가는 기반을 잡아서 저희 1.5세들은 부모님에게 많이 의존하지요. 1세들이 여기 와서 기반을 잘 잡았기 때문에 저희 2세들이 잘 양육될 수 있었고, 또한 도민회 자체도 1세들이 기초를 잘 다졌기 때문에 2세들이 결실을 보는 과정이라고 봐야 하겠지요. 그러나 이제 1세들이 나이가 들어서 활동이 적은 편이지마는 2세들이 1세들에게 조언을 받아서 단체를 이끌어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1세 실향민들의 바람은 무엇입니까?

: 1세들의 바람은 단 한 가지예요. 자기 고향을 가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이 많지요. 이곳에도 1천만 이산가족 위원회도 있고 다른 실향민 단체도 있고 또 미국 적십자를 통해서도 가족 상봉 등의 행사도 추진하려고 하지마는 제 생각에는 1세 실향민 어르신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자기 고향을 방문했으면 좋겠어요. 가족 상봉이 아니라 고향 방문할 문호가 개방된다면 1세들이 자기의 고향을 방문하는 것. (가족상봉에는 여러 가지 복잡한 절차가 따르니까?) 단지 고향을 방문하는 것이라면 많은 실향민이 갈 것 같습니다. 관광을 통해서 고향방문을 추진한다면 북한에도 많은 도움이 되니까 우리가 어느 나라를 가듯이 비행기 표 사서라도 고향을 가는 것이 가장 큰 바람인 것 같아요. 그러나 지금 현재 여러 가지 정치적인 문제나 남북관계 북미관계가 복잡해져 있어서 어렵지만, 내년이나 그 후년에라도 단순한 고향방문이라는 것을 평안도민회 1세 회원들의 가장 큰 바람인 것 같아요.

1.5세, 2세 실향민들의 자랑은

: 첫째 우리 2세들은 1세들로부터 평안도 사람의 기질을 타고난 겁니다. 혼사를 하려면 가족 관계를 보듯이 부모의 기질을 다 타고 낳아요. 그래서 2세들이 미국에 정착할 때 어느 도민회 2세들보다도 생활력이 강합니다. 두 번째로 사업을 하는 데에도 굉장히 들 잘해요.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투철한 정신이 있지요. 물론 미국에 살면서 민주주의에 대해 자부심을 품지요. 특히 부모가 북한에서 월남하신 것은 민주주의를 위해서 민주주의를 사랑하기 때문에 월남하신 것으로 보고 있고요. 이런 것이 부모님에게 받은 유산인 것 같아요. 워싱턴 평안도민회 2세들은 모든 면에서 자랑스럽다고 생각합니다.

올해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이북 도민들의 권익 신장을 통한 국가사회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가 인정돼 부족한 제가 받았습니다.

앞으로 평안도민회 발전을 위한 계획은

: 애향사업입니다. 애향사업은 우리 2세들이 1세 2세 3세가 함께 가는 그런 사업을 추진하려고 하는데 물론 1세들의 협조가 있어야 하고 그 다음에 저희가 바른 방향으로 가야 하며 3세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거기 때문에 1세들은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될 건데 제일 중요한 게 3세들인데요. 3세들은 몰라요. 도민회라는 것도 모르고 왜 거기에 가느냐고 해요. 그래서 어려운 사항인데 그래도 2세대에서 도민회를 끝낼 수는 없잖습니까? 저희의 바람은 3세들을 위한 고국 방문 같은 프로그램이 있다면 좋겠어요. 저는 아버지는 돌아가셨지만, 저의 아들을 데리고 한 번 평안남도 고향을 방문하고 싶고 평안도민회도 이 지역의 다른 도민회와의 교류도 힘쓰려고 합니다.

자유아시아방송 실향민의 시간, 오늘은 워싱턴 평안도민회 김제호 회장으로부터 도민회 활동의 이모저모를 알아봤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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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26

사진-방국현 회장 제공

대 필라델피아 이북 5 도민연합회 방국현 회장

대 필라델피아 이북 5 도민 연합회가 지난 3월 6일 북한에 고향을 둔 실향민들과 한국 이북5도위원회 관계자 등 130여 명이 참석해 창립총회를 했습니다. 방국현 회장은 북한에서 남한으로 피난해 미국에 이민 와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5 도민 여러분을 진심으로 존경한다면서 회원 간의 화합과 단결로 결실을 이어가자고 창립총회에서 강조했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의 실향민의 시간 오늘은 대 필라델피아 이북 5도민 연합회 방국현 회장으로부터 필라 지역 실향민들 활동의 이모저모를 알아봅니다.

대 필라델피아 이북 5도민연합회는 언제 어떤 계기로 창단됐습니까?

: 10여 년 전에 북한에 고향을 둔 여러분이 서너 번 모임을 갖고, 서로 간 위로도 하고 함께 실향민의 정을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계속 모임을 갖지 못하고 이민생활을 하면서 뿔뿔이 헤어지고 그 중에는 세상을 뜨신 분도 있어요. 그러던 중에 미국 다른 지역에서는 이북5도민 연합회가 활동하는 것을 모르고 있었는데, 제 작년 뉴욕 이북5도민회가 모국 방문할 때에 현 대 필라델피아 5도민회 사무국장인 신계열 씨가 참석한 것을 계기로 필라 지역에도 이북5도민회 창설을 요청한 결과 본국 5도위원회에서 금년에 확장 계획을 세웠던 것 같아요. 그래서 금년 3월에 창립총회를 하게 됐습니다.

이번 창립총회 때 회원들은 얼마나 참석했습니까?

: 뉴욕 총영사관에서 주낙영 부 총영사가 참석했고, 한국에서는 한원택 함경남도 도지사가 참석했습니다. 이곳 필라 지역 단체장 등 실향민 130여 명이 참가해 창립총회를 가졌습니다.

대 필라델피아 이북 5도민연합회 가 이제 창립되고 시급히 할 일은 무엇입니까?

: 필라 지역에 사는 실향민들을 파악하기 위해 도별 회장 임명과 더불어 이사회를 활성화 했으며, 광복절 행사를 한인회와 공동으로 야유회를 개최하기도 했습니다. 이날 특히 필라델피아 노인회 협조를 얻어 실향민과 일반 노인들이 많이 야유회에서 참석해, 여흥 순서도 갖고 대 필라델피아 이북 5도민회 상징이 새겨진 티 셔츠도 만들어 나눠 드렸습니다.

대 필라델피아 이북 5도민연합회는 2-3세들에게 고향을 잘 가르쳐주는 역할도 한다고 들었습니다.

: 이민생활을 하다 보니까? 북한 고향 생각이 각별하지만, 같은 동향 인을 만난다는 게 쉽지 않았는데, 필라델피아 이북 5도민 연합회를 창설한다는 소식을 듣고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고 참여의사를 밝히고 있는데 아쉬운 것은 실향민 1세들은 이제 70 후반이나 80 중반이 되지 않았습니까? 이런 분들은 기동력이 떨어져서 참여하는 데 어려움도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2세 내지 3세로 이어질 수 있는 기틀을 만들어 주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고 우리가 남은 여생을 2세들에게 우리의 뿌리라고 할까! 향우회를 길러주는 그런 일을 해야 할 것 같아요.

11월에 연합회 회보도 발간한다고요?

: 아주 어렸을 때 제가 남한 했기 때문에 고향에 대한 기억이 저에게는 제한되어 있지요. 제가 평양에서 태어나서 8살 때 남하했으니까? 어머니 손잡고 다니던 것 외에는 별로 기억이 없습니다. 지금 여기 2세들의 생각이랄까! 우리 도민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은 자연 거리감을 가져요. 이것이 어떻게 보면 조금 안타깝고 또 거리감이라는 게 우리 아버지 어머니 고향이 북한이라는 걸 아는데 북한에 대한 것을 물으면 잘 모르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그래서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우리 2세들에게 우리 고향이 정확히 어디며 고향의 특수성이랄까! 특산물이랄까! 특징적인 것을 일러줘야 길이 오래 기억할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 대 필라델피아 이북 5도민 연합회에서는 회보를 계간지로 발간해서 이번에 창간호를 11월 하순경에 발행할 예정입니다.

델라웨어, 윌밍턴 지역의 실향민 회원들도 찾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 우리가 대 필라델피아 이북5도민연합회라고 이름을 부친 것은 큰 광의의 지역을 포함하는 것으로 델라웨어, 윌밍턴 등 지역에 사는 분들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곳에 현재 지부가 있어서 회원 등록도 받고 있습니다.

지난 5월 모국 방문 행사에 참여하셨다고요?

: 지난 5월에 아주 좋은 모국 방문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때 느꼈던 점이 타 도시에서는 2세들이 많이 왔습니다. 심지어는 한국어가 익숙지 못한 우리 3세들도 많이 와서 역사박물관도 갔었고, 민속촌도 갔었고, 한국의 생소한 것들을 보고 감탄하는 걸 볼 때 이것은 참 유용하고 필요하겠구나 해서 우리가 2-3세들을 위해 모임에서 의논을 하고 있습니다.

방국현 회장께서는 남북통일 후 북한 고향에서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무엇입니까?

: 그 동안 억압된 삶 속에서 살았던 모든 분들에게 새로운 자유를 만끽할 수 있도록 도와 드리는 것 그런 일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의 실향민의 시간 오늘은 대 필라델피아 이북 5도민 연합회 방국현 회장으로부터 필라 지역에 사는 실향민들 활동의 이모저모를 알아봤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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