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괌의 역사 - 괌 한인회

++ 괌의 역사 ++    괌 한인회 사이트에서 발췌

괌은 미국령으로 되기 오래 전부터 차로로 족이라는 원주민이 살고 있었고 1521년 마젤란의 세계일주 도중에 발견된 것을 계기로 서구세계에 알려졌으며 그로부터 약 40년 후 스페인의 탐험가인 래가스피가 괌의 스페인 영유를 선언 한 이래 약 333년 동안 스페인의 통치를 받았습니다.

당시 스페인으로부터 받은 영향은 현재도 차모로인의 생활이나 관습에 뿌리 깊게 남아 있습니다. 괌의 현재 인구는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약 15만 명 정도로 추정합니다.


  서구 접척 이전시기


차모로족의 기원에 대해서는 민족학자들도 만족스럽게 밝혀 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고고학적 증거는 차모로족이 인도 말레이인의 후손임을 나타냅니다.


차모로족은 언어적 문화적 유사성으로 볼 때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차모로족은 마리아나 군도에 정착해서 발달된 어업, 원예, 수렵사회로서 번영했습니다. 차모로족은 괌이라는 지역에 잘 맞는 고유한 집과 카누를 만드는 능숙한 어부이자 장인이었습니다. 그들은 또한 복잡한 직조기술과 도기를 만드는 데도 능숙했습니다. 괌은 철저한 모계 사회였습니다.


그것은 여성의 힘과 권위를 통해 유지되었으며 언어, 음악, , 관습 등 차모로 문화의 상당 부분이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스페인 정복시기 | 16세기


16세기 초 이후로 정복자, 상인, 탐험자들이 끝없이 파도처럼 괌에 밀어닥쳤습니다.

 

괌이 공식적으로 서구 사회와 처음 접촉한 것은 1521 3 6일입니다. 용감무쌍한 포르투갈 탐험가 페르디난도 마젤란은 스페인 왕을 위해 세계일주를 하던 중 세 척의 배를 손보기 위해 괌에 3일동안 머물렀습니다.


필요로 했던 신선한 과일, 채소와 물을 받고서 마젤란은 대신 신석기 사람들에겐 매우 귀중한 물품인 철을 주었습니다.


마젤란의 연대기를 썼던 안토니오 피가페타의 묘사에 따르면 차모로족의 초가집은 꼭대기에 라테라고 하는 단단한 산호 초석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지금도 1 고유한 라테의 흔적은 섬 전체의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라테는 말레이 군도에서만 발견되고 있습니다.


마젤란이 괌에 처음 발을 디딘 사람으로 알려져 있지만 괌과 다른 말레이 섬은 공식적으로는 1565년에 스페인 왕 미겔 로페즈 데 레가스피에 의해 점령되었습니다.


100년이 더 지난 1668년에 파드레 디에고 루이즈 드 산 빅토레즈 경이 인도하는 예수회가 카톨릭을 전파하고 무역을 하려는 목적으로 도착했습니다. 스페인인들은 차모로인들에게 서구 스타일의 옷 입는 것은 물론 옥수수 기르는 법, 새로 들여온 소 기르는 법, 가죽을 무두질 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카톨릭은 확고히 전파되었고 성당이 마을 활동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천주교가 세력을 넓혀 가면서 괌은 멕시코의 아카풀코에서 필리핀 마닐라까지 태평양을 교차하는 스페인 선박의 정박 항구가 되었습니다. 이 거대한 선박들은 중국의 실크와 향료와 바꿀 식민지에서 캔 값나가는 금, 은을 가득 싣고 있었습니다.


괌의 전략적 위치는 발전하는 스페인의 경제, 정치 체제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했습니다. 거의 250년 동안 멕시코와 필리핀을 오고 가는 갈레온 선박들이 차모로 문화를 변화 시켰습니다.


갈레온 시대는 멕시코 혁명 이후인 1815년에 끝났습니다. 아직도 괌의 수정같이 맑은 해변에서는 여러개의 난파선을 볼 수 있습니다.


  유럽의 다른 영향 | 18C


차모로족의 기원에 대해서는 민족학자들도 만족스럽게 밝혀 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고고학적 증거는 차모로족이 인도 말레이인의 후손임을 나타냅니다.

 

차모로족은 언어적 문화적 유사성으로 볼 때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차모로족은 마리아나 군도에 정착해서 발달된 어업, 원예, 수렵사회로서 번영했습니다. 차모로족은 괌이라는 지역에 잘 맞는 고유한 집과 카누를 만드는 능숙한 어부이자 장인이었습니다.


그들은 또한 복잡한 직조기술과 도기를 만드는 데도 능숙했습니다. 괌은 철저한 모계 사회였습니다.

 

그것은 여성의 힘과 권위를 통해 유지되었으며 언어, 음악, , 관습 등 차모로 문화의 상당 부분이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유럽의 팽창과 탐험시기에 스페인 외의 나라에서 온 방문자들이 괌의 역사에서 또 다른 역할을 하였습니다.


18세기 전반부에 영국 해적들이 스페인 선박들을 약탈했습니다. 스페인 선박 중 몇몇 무장 선박들은 식량을 얻기 위해 괌에 머물렀습니다.


우즈 라져는 일주일동안 섬에 머물며 통치자 쥬안 안토니오 피멘텔로부터 식량과 비축 품들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해적 죤 클리퍼톤은 집을 부수고 스페인 배를 불태우겠다고 협박했지만 스페인인에게 지고 말았습니다.


스페인 점령 마지막 세기 동안 괌은 많은 과학자, 항해사 및 러시아, 프랑스, 영국에서 온 고래잡이 배들을 맞이하였습니다.


1817년과 1828년 사이에 세명의 러시아, 프랑스 과학 탐사대가 괌을 방문해서 스페인 통치하의 괌에서의 일상 생활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제공했습니다.


  미국시대의 시작 | 19C


스페인이 333년 간 마리아나 군도와 괌을 통치했지만 1898 미국-스페인 전쟁 이후 괌은 미국에 할양되었습니다. 1년 뒤인 1899년에 미국은 2천만 달러에 공식적으로 괌과 다른 스페인령 영토를 사들였습니다. 미국 대통령 윌리엄 맥킨리는 괌을 해군의 행정관할에 두게 하는 행정명령을 내렸습니다. 해군의 행정관할 하에서 많은 농업과 공중 보건 및 위생, 교육, 토지 관리, 세금, 공무등에서 변화와 발전이 일어났습니다. 미 해군은 1941년까지 괌을 석탄공급과 통신기지로 사용했는데 1941년에 일본의 진주만 공습 직후 괌은 일본군에게로 넘어갔습니다.


  일본군의 점령 | 1941


1941년 12 10일 괌은 일본 남해 분견대의 지배하에 들어갔습니다.

31개월 동안 괌 주민들은 일본인의 생활방식을 따르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괌은 오미야 지마 또는 위대한 성지로 이름이 바뀌었고 일본의 대동아공영권에 편입되었습니다. 섬의 관할권은 1942년 결국 일본 해군으로 이관되었고 이 짧은 기간동안 종교 관습과 경제 활동의 일부는 허용되었습니다.


  미국시대의 재시작 | 1944.07.21


괌에서는 해방의 날로 알려져 있는 1944 7 21일 미군이 괌에 상륙했습니다.  3주간의 전쟁으로 수천의 차모로인, 미군, 일본군의 생명을 앗아간 다음 괌은 다시 미국의 통치에 들어갔습니다.


미군은 괌의 전략적 중요성을 인식하고 1945 9 2일 태평양에서 2차대전이 끝날 때까지 서태평양 작전지역으로 사용했습니다.


1946 5 30일 해군 정부가 다시 세워졌습니다. 3년 후인 1949, 미국 대통령 트루먼은 괌의 제한적 자치를 허용하고 괌이 미국에 합병되지 않은 영토임을 확인하는 조례를 발표했습니다. 조례에서는 미국이 새로 얻는 영토가 괌이라고 불리울 것임을 선언했습니다.


행정, 입법, 사법부의 3개의 부로 된 민간 정부가 세워졌고 괌 주민에겐 미국 시민권이 주어졌습니다. 1962년 해군은 괌 여행 제한을 해제했으며 이로써 괌 경제는 살아났습니다.


1967년 팬 아메리칸 에어라인이 일본으로부터 괌까지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괌 여행산업이 본격화되었고 괌의 경제는 다양해지고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군비의 증가 이외에도 관광과 관련된 건설, 소매, 금융산업은 지역 주민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데 커다란 역할을 했으며 다양한 분야에서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선택권을 부여해 주었습니다.  


괌의 풍부한 문화유산은 미래의 발전의 기초입니다. 격조 있는 고급 호텔들과 레스토랑, 면세점은 괌을 서태평양의 환상의 휴양지로 만들었습니다.


안토니오 비 원 팻 괌 인터내셔널 공항은 수 많은 비행기들로 넘쳐 납니다. 현재 정기 여객기가 이웃 마이크로네시아 섬인 나우루와 미국 뿐 아니라 일본, 한국, 대만, 홍콩, 인도네시아, 호주, 필리핀 같은 많은 아시아 태평양 국가들과 괌을 연결해 줍니다.


매년 괌은 여행자 숫자기록을 갱신합니다. 휴가를 즐기려는 방문객 인파가 괌의 아름다운 해변과 열대의 생활, 1년 내내 계속되는 따뜻한 날씨를 즐기러 몰려듭니다. 아시아와 태평양을 여행할 때 괌을 거치는 해외 여행자 또한 많습니다.


괌은 세계속에서 진보적이고 향상된 지역사회로 발전해 온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지난 10년 이상 관광사업은 번성해 왔으며, 괌의 민간 사업을 주도 하게 되었습니다. 1990 10 1, 괌은 한국과 한국인 국적의 여행객들이 15일간 비자 없이 괌을 여행할 수 있도록 양국 사이에 "비자 면제 협정" 을 체결한 이후 괌에는 한국인 관광객들이 연간 약 10 만명 정도 입국하고 있으며 이것은 괌 전체 방문객의 약10%를 차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