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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문화산책

통일문화산책(남북한에서의 역사 인물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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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한 인간을 평가하는 일은 시대와 사회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지요. 그래서 우리나라 역사적인 인물을 두고도 남북한에서 평가하는 관점은 다르기 마련이겠지요 통일문화산책 오늘도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남북한의 역사적인 인물 평가 관점에 관해 이야기 나눕니다.

임채욱 선생: 네, 그렇습니다. 남북한은 우리나라 역사상의 인물에 대한 평가도 달리하는 대상이 많지요. 물론 같은 면도 있고, 같다고 하더라도 미세하게 다른 면도 있지요.

오늘 이 시간에 그런 인물평가에 대한 같고 다른 부분을 찾아보도록 하지요.

임채욱 선생: 가장 먼저 단군을 볼까요. 한국에서는 단군을 보는 눈이 여러 가지죠. 단군은 실재하지 않았고 단군신화도 조작됐다는 관점, 단군의 실존여부와 관계없이 건국신화 주인공으로서 존중돼야 한다는 관점, 단군은 실재한 인물이란 관점, 마지막으로 단군은 천신, 하늘의 신이며 신앙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관점 등등이 있지요. 북한에선 단군이 우리 민족의 시조가 돼서 지금의 평양 땅에서 나라를 세웠다는 관점 하나뿐이죠. 이것도 1993년부터지요. 그전까지는 단군은 신화상의 인물 이였지요. 1950년대는 단군이 신화의 인물이고 1960년대는 단군이 하늘에 올라간 것이 아니라 아사달 산신이 됐으므로 땅위의 군주일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고(이상호, 이지린) 1970년대를 거쳐 1980년대 말이 되면 단군신화가 후세에 조작된 게 아니라 고조선 건국 때 생긴 신화로 역사사실을 반영한 것이라고 주장(강인숙)했지요. 이어 1990년대가 되면 단군을 고조선을 세운 인물로 등장시키지요. 이렇게 된 데는 학문적 엄밀성보다는 단군이 주는 민족적 상징을 외면하기 어려웠던데 있다고 봅니다.

다음은 누굴 볼 수 있습니까?

임채욱 선생: 역사인물에도 평가가 완전히 상반되는 인물도 있고 비슷하지만 약간은 다른 사람도 있겠지요. 최근세 인물일수록 다른 부분이 많지요. 특히 항일독립운동을 한 인물에 대한 평가 중에는 극명하게 갈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역사인물 광개토대왕, 대조영, 왕건, 김유신, 세종대왕, 이순신, 정약용을 보는 눈도 조금씩은 다릅니다. 최근세 인물의 다른 부분은 천천히 보기로 하고 우선 역사상의 인물을 순서대로 보기로 하지요. 먼저 광개토대왕을 볼까요? 그는 역사상 어느 왕보다 영웅적인 왕이었지요. 고구려 영토를 넓히는 데서 끝난 게 아니라 내치도 잘해서 나라는 부강하고 백성은 편안했다고 평가됩니다. 광개토대왕에 대해서는 북한에서는 더 크게 평가합니다. 대체로 이렇습니다. “광대토대왕은 봉건국왕이기는 하지만 유능한 정치가, 군사가로서 고구려의 국력을 강화하고 삼국통일정책을 적극 추진시켜 그 수행에 나서는 (초미의) 문제들을 적지 않게 해결하였으며 고구려 전성기의 시초를 열어놓았다.”(호경식, 삼국통일의 토대를 마련한 광개토왕, 천리마 2014. 1호)

다음은 누구입니까?

임채욱 선생: 세종대왕을 보기로 하지요. 세종대왕은 한국에서는 한국교과서에 빠지는 일이 없는 위대한 성군으로 나옵니다. 뭣보다 한글을 만들었다는 그 뜻을 상찬합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도 세종을 성군이 아니라는 비판도 있습니다. 15~17세기 조선시대에는 전체 인구의 3분의 1이 노비였는데 세종 때 아버지나 어머니 어느 한쪽이라도 노비면 태어나는 아이는 모두 노비가 되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노비가 와글와글 했다는 것이지요. 또 한글도 글자 모르는 백성을 위해서 만들었다기 보다 사실은 한자음을 표기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것을 지적합니다. (이영훈, 세종은 과연 성군인가) 북한에서는 세종대왕이 우선 <조선백과사전>에 수록돼 있지도 않습니다. 한글도 세종대왕이 만든 것이 아니라 여러 학자들이 만든 것일 뿐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세종 때 만들어진 여러 관측기구라든가 4군 6진을 개척한 것은 크게 평가하면서 조선조 왕들 중에서 가장 현명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도 세종대왕이 자기 눈병을 고칠 약수가 있는 마을과 도중 숙소와 점심을 들 곳 주위 민간 집들을 철거시켰다는 것이지요. 다른 병이 자기에게 옮길 수 있다고 미리 차단한 것인데 집을 철거당하는 백성들 고통을 외면했다고 비판합니다. 하지만 세종은 백성들이 자기 때문에 눈병이 옮기지 않도록 배려했다고 봐야지요. 세종대왕은 뭐라 해도 소통과 포용의 왕이었어요. 다음은 이순신장군입니다. 이순신이야 두 말하면 잔소리지요. 그 인물 됨이라든가 그 지략이라든가 뭣 하나 흠잡을 데가 있습니까? 왜군과의 마지막 전투에서 12척의 배로 133척을 막아낸 영웅 이여서 온 세상 바다의 장군들이 위대성을 읊조리게 하는 이순신입니다만 북한에서는 이순신의 지략과 애국심, 그리고 빛나는 전적을 인정하면서도 양반출신 장군이라서 양민들을 위한 전쟁수행이 아니라 왕을 위한 전쟁을 했다고 말하죠. 전쟁을 하는데 왕을 위한 것이다, 백성을 위한 것이다가 어디 있어요? 다 나라를 위한 것일 뿐이지요.

다음은 누굽니까?

임채욱 선생: 이번에는 역사상 인물이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고구려 사람을 한번 보지요. 명림답부(67~179)는 고구려 초기 국상입니다. 국상은 나라 일을 의논하는 회의에서 제일 높은 자리를 말합니다. 최고관직인 셈이지요. 그는 99세 때 쿠테타를 일으켜 왕을 죽이고 106세 때 쳐들어 온 중국 한나라 군을 전멸시킵니다. 대단한 사람이지요? 역사학자 박은식은 (이 분은 상해임시정부 대통령도 역임합니다만), 이 박은식은 명림답부를 아주 좋게 보고 <명림답부전>을 펴냈습니다. 명림답부에 대해서는 왕을 죽인 사람이지만 왕의 폭정을 바로잡기 위해 한 일이라고 남북한 역사학계 다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역사인물 평가에서 남북한에서 특이하게 다른 부분이 있습니까?

임채욱 선생: 한 인물의 평가는 능력, 심성, 태도로 되지요. 능력은 자질이나 업적으로 나타나고 심성은 인품으로 나타나지요. 또 태도는 업무자세로 평가되는데 남북한에서도 자질이나 업적평가는 비슷한 경우가 많습니다. 또 인품평가도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다만 업무자세라 할까, 이런 부분에선 달라집니다. 북한에서는 대체로 출신성분에 따라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다른 것으로 봅니다. 가령 양반가계 출신이면 계급적 제한성 때문에 하는 일도 민중이 바라는바 대로 못한다고 평가하는 편이지요. 가령 다산 정약용에 대한 평가가 그렇습니다. 정약용의 업적, 인품도 다 좋게 보면서도 그가 위하는 백성은 노예신분을 가진 인민들이 아니라 양반계층이라는 지적을 합니다. 구한말 애국선비 황현을 볼 때도 그랬습니다. 그의 애국정신을 평가하면서도 사회주의, 공산주의와 관련성이 없다고 폄하합니다.

무엇보다 봉건체제와 싸운 인물의 경우는 아주 좋은 방향으로 평가하지요. 홍길동이란 사람은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대개는 <홍길동전>소설을 통해 소설 속 인물로 아는데 북한에서는 실제 인물이라고 봅니다. 그가 일으킨 무장대가 활동을 아주 기막히게 잘했고 이때의 교훈이 소설로 됐다고 말하지요. 홍길동이 봉건통치 배를 공포에 떨게 했고 인민을 위한 투쟁을 했기 때문에 크게 평가 받는 것이지요.

전통시대 인물평가에서도 차이가 난다면 근세인물이나 민족항일기 인물, 특히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평가는 크게 차이가 나겠네요?

임채욱 선생: 그렇습니다. 안창호, 김구, 이승만 등 애국인사들에 대한 평가도 조금씩은 차이가 다 나지요. 가능하면 다음에는 근세인물이나 현대인물로 이 주제가 이어졌으면 합니다. 네, 그렇게 하지요.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