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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문화산책(축제와 축전)

통일문화산책 2018.04.30 16:11 Posted by 대풍
사진은 중국 중앙발레무용단의 발레무용극 '지젤'의 한 장면.
사진은 중국 중앙발레무용단의 발레무용극 '지젤'의 한 장면.
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지난겨울은 전 세계적으로 추웠다고 하지요? 그래서 봄이 더 반가운지 모르겠습니다만, 봄은 한반도에서도 바야흐로 무르익어 가고 있지요. 봄이면 시작되는 축제가 가지가지 수도 없이 세계 어느 곳에서나 벌어지고 있겠지요. 남북한에서도 남쪽은 축제란 이름으로 북쪽은 축전이란 이름으로 온갖 축제와 축전을 벌일 것이라 보고 오늘 이 시간에는 남북한의 축제와 축전에 대해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알아 보겠습니다.


임채욱 선생: 네, 지구 북반부에서는 지금 어느 곳이나 봄을 맞고 있습니다. 봄이면 열리는 봄잔치는 세계 어느 곳이나 같은 뜻으로 열립니다. 긴 겨울 끝에 찾아 온 봄은 생명의 환희를 느끼게 해서 봄을 노래하지 않을 수 없게 하지요. 월츠를 추고 싶은 계절이니 봄을 즐기는 잔치가 벌어지지 않을 수 없지요. 그런데 남쪽에서는 잔치를 대체로 축제라고 이름붙이고 북쪽에선 축전이라 표현합니다. 남쪽에서도 축전이라 이름 붙인 것도 없지 않지요. 만해 한용운을 기리는 행사는 올해가 스무 두 번째가 되는데 이 행사이름은 만해축전입니다. 이 외에도 축전이라 부르는 잔치도 많지요. 남쪽에선 축제라 하든 축전이라 하던 주관자가 결정할 일이지만 북한에선 당에서 정하고 간섭하니까 명칭은 언제나 축전이 되겠지요. 그러니까 한국에선 축제다, 축전이다, 잔치다, 또 페스티벌이다 하는 이름들이 다 붙지요. 축제는 단순히 즐기는 것뿐이 아니고 잔치에 굿을 바탕으로 하는 제사의식이 포함되기 때문에 축전보다 축제라고 하는 것입니다.


현대사회에서 축제의 성격은 어떻게 볼 수 있습니까?


임채욱 선생: 축제는 본래 제사라는 의례가 변형되고 발전돼서 만들어 진 것이라고 보지요. 한 마을이나 부족단위로 집단의 평안과 풍요, 또 다산을 위해 하늘에 지내던 제사가 지역공동체나 국가단위로 수렴된 것이 현대사회의 축제입니다. 현대사회의 축제는 온갖 형태로 벌어지는데 어떤 것은 마을 단위로, 어떤 것은 보다 큰 공동체단위로, 또 어떤 것은 국가단위로, 세계적인 단위로 이뤄지는데 대체로 올림픽대회라든가 월드컵대회 같은 것은 세계적인 단위로 진행되는 것이지요. 한국에서는 세계적인 축제인 올림픽대회, 월드컵대회, 세계육상대회 등 아주 큰 스포츠 축제를 다 치뤘지요.


스포츠 축제 외에도 세계적인 축제는 많지요?


임채욱 선생: 국제단체가 공인하는 축제가 아니더라도 널리 알려져서 관람객들이 세계 각국에서 오는 축제도 많지요. 가장 유명한 것이 브라질의 카니벌이지요. 온 나라가 술렁이고 세계 곳곳에서 손님이 찾아오는 그야말로 세계적인 축제이지요. 오스트리아에서 새해 열리는 음악축제라든가 3월 홍콩에서 열리는 미술축제도 유명하고 3월 일본 벚꽃축제라든가 4월 물을 뿌리는 방콕 송크란축제, 스페인의 투우 소를 풀어놓는 축제, 토마토 위에서 뒹구는 축제도 유명하지요.


그럼 남북한 축제와 축전이 열리는 현장으로 가볼까요? 먼저 한국의 축제문화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임채욱 선생: 한국에서는 일 년에 한 1,000여 건이나 되는 축제가 열린다고 합니다. 이 가운데는 국가단위로 열리는 것도 있고 지방자치단체에서 여는 것도 있고 민간단체가 여는 것도 있겠는데 전체적으로 행사 수가 1,000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백제문화제, 신라문화제, 전라예술제, 개천예술제, 행주대첩제 같은 것들이 종합축제로 대표적인데, 지방자치단체가 경쟁적으로 축제를 마련하다보니 비슷비슷한 것도 얼마나 많은지, 중복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지방자치단체에서 벌이는 축제 중에서도 세계적으로 알려진 것도 있지만 많은 수가 고만고만한 것들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한국의 축제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임채욱 선생: 축제도 계절로 보면 봄축제, 여름축제, 가을축제, 겨울축제가 있을 수 있고 내용으로 봐서 꽃축제, 단풍축제, 갈대축제, 물놀이축제, 눈축제, 얼음축제, 음식축제, 등축제, 도자기축제, 놀이축제 등등 다양하지요. 특히 그 지방 특산물을 내걸고 하는 축제들, 인삼축제, 고추축제, 멸치축제, 빙어축제, 과매기축제, 오징어축제 같은 것이 아주 많지요. 드물게는 충청남도 보령지방 머드축제처럼 그 지방에서만 가능한 것도 있지요. 꽃축제에도 산수유꽃축제, 매화축제, 진달래축제, 벗꽃축제 등 온갖 꽃축제가 다 있고 음식축제는 더 많습니다. 심지어는 헌책을 모아서 여는 헌책축제도 있습니다.


이쯤에서 북한의 축전을 한 번 봐주시지요.


임채욱 선생: 북한에서도 축전이라는 이름의 잔치는 있습니다. 축전은 “국가적 또는 국제적으로 진행하는 체육 문화 예술과 같은 다양한 내용으로 된 행사”(조선말 사전)라고 하는데, 국가적으로 치르는 대표적인 축전이 ‘아리랑 축전’ 같은 것이겠지요. 국제적인 축전도 있는데 가장 큰 것이 1989년에 열린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이겠지요. 88서울올림픽에 대항해서 열었기에 규모가 아주 컸고 예산도 많이 들어갔지요.

북한의 축전은 대체로 정치적 명절을 계기로 열리는 편인데 가장 알려진 것이 김일성 생일인 이른바 태양절을 전후해서 열리는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이 있고 김정일 생일인 이른바 광명성절을 전후해서 열리는 ‘2월의 봄 예술축전’이 있지요. 그런가하면 김일성화축전, 김정일화축전 같은 꽃 잔치도 있고 세계평화영화축전같은 영화축제도 있습니다. 최근에는 음식축제의 하나로 대동강맥주축전도 있었는데 재작년 1회대회였는데 작년에는 열리지 않았다는군요. 앞에서 말한 아리랑축전은 많은 관람객을 끌어들인 매스게임 축제라고 하겠습니다. 지금은 하지 않습니다만 그 규모 하나만은 대단했지요. 10만 명이 출연하는 무용과 집단체조로 이뤄진 공연으로 관람객으로 하여금 입이 벌어지게 한 것은 틀림없었지요.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그 기계 같은 동작들을 보노라면 사람이 저렇게 하려면 얼마만한 연습을 했을까를 생각하게 마련이지요.


끝으로 놀이축제와는 성격이 다릅니다만 앞에서 언급한 만해축전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지요. 세계적으로 뜻있는 축전으로 됐다고 알고 있습니다.


임채욱 선생: 먼저 만해를 생각해 봅니다. 만해 한용운은 승려인가하면 시인이고 시인인가 하면 독립운동가였던 분이지요. 불교의 현대화를 주장하고 민족주체성을 시적으로 형상화하고 항일민족투사들에게 독립정신을 심어주는 일을 했던 분입니다. 만해축전은 이런 만해 한용운의 불교사상, 문학사상, 독립사상을 구현하려는 뜻에서 시작된 축제로 한국정부의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을 하는 잔치입니다. 강원도 인제군 만해마을에서 추모행사, 예술행사, 지역대동행사, 학술세미나 등이 열리는데 가장 중심 되는 행사는 만해대상을 시상하는 것입니다. 대상수상자는 한국인뿐 아니라 만해정신을 구현하는 세계적인 인사들에 대해 시상하고 있지요. 작년 21회 대상은 실천대상 제인구달, 평화대상에 시리아에서 활동했던 하얀헬멧 대원들, 문예대상에 클레어 유 박사와 최동호 고려대 명예교수였습니다. 제인구달이 누굽니까? 84세가 되는 이 여성은 1년에 300일 이상을 여행하면서 침팬지 보호운동을 펼치고 이를 통해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삶을 모색하고 있지요. 올해 23회 만해대상은 어떤 분들에게 돌아갈까요?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북한 중앙식물원을 찾은 학생들이 식물 관찰 학습을 하는 모습.
북한 중앙식물원을 찾은 학생들이 식물 관찰 학습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한국에는 50개가 넘는 식물원, 수목원이 있습니다. 나라에서 관리하는 것보다 개인이나 민간단체에서 운영하는 식물원, 수목원이 더 많습니다.


동물들이 기지개를 켜고 식물들도 제 모습을 드러내는 계절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남북한의 식물원을 찾아봅니다.


임채욱 선생: 네, 꽃과 나비가 정다운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 모습을 보게 되는 계절입니다. 나비뿐 아니라 벌도 윙윙거리며 제 좋아하는 꽃을 찾아 움직이고 온갖 새들도 파릇파릇 돋아나는 나무 잎을 찾아 날아듭니다. 사람들은 식물원을 찾고 동물원을 찾습니다. 식물원에는 집이나 산야에서도 잘 보지 못하는 특별한 풀과 나무들도 많습니다. 도시에 있는 식물원은 공원과 더불어 도시의 허파 역할도 합니다.


보통 식물원이라 하지만 수목원이라고 하는 곳도 있고 화원이라고도 하고 또 생태원도 있는데 식물원의 포괄범위는 어떻게 됩니까?


임채욱 선생: 한마디로 풀이나 나무를 많이 심어두고 관리를 하면서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보여주는 곳이면 식물원이라 할 수 있는데 풀보다 나무만을 관리하는 곳은 수목원이라 합니다. 화원은 화훼 일반, 그러니까 꽃을 모으고 전시하는 공간이니까 식물원의 한 종류라고 할 수 있지요. 생태원은 식물뿐 아니라 동물도 관찰하는 동식물 전반의 생태를 연구하고 전시하는 곳이어서 개념상 좀 다르지만 역시 식물원의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 가지 덧붙일 것은 식물원 안에 수목원이 있기도 하지만 수목원 안에 꽃식물원, 관상식물원 하듯이 이름을 붙인 곳도 있습니다.


한국 식물원은 언제부터 있게 된 것입니까?


임채욱 선생: 우리나라에서 식물원이 처음 생긴 것은 1907년 경기도 수원에 농림학교가 생기면서 교육상 필요한 연습림을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1922년이 되면 임업시험장이란 이름으로 식물원다운 식물원이 생깁니다. 이것이 1967년에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수목원으로 발전돼서 현재 서울대학교에는 수원수목원과 관악수목원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수목원은 교육용이어서 일반 국민이 접근하기가 쉽지 않지요.


그럼 한국에서 일반국민이 접근 가능한 대표적인 식물원을 소개한다면?


임채욱 선생: 그야 경기도 과천시 서울대공원 안에 있는 식물원이지요. 공원 자체가 식물원이지만 특히 900여평에 가까운 온실 식물원이 있어서 이 안에 1,263종이 자라고 있지요. 열대식물, 아열대식물도 있고 동양란과 서양란도 실컷 볼 수 있는 곳입니다.


다른 식물원은 어떤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임채욱 선생: 현재 한국에서 식물원이라 이름 붙은 것은 부산 금강식물원, 가평 고산식물원, 아산 꽃식물원, 평강식물원, 자생식물원, 약용식물원 등등 많습니다.


수목원이란 이름으로 된 대표적인 것은 어디에 있습니까?


임채욱 선생: 경기도 포천시와 남양주시에 있는 국립수목원이지요. 흔히 광릉숲으로 알려져 있습니다만 이곳은 조선조 세조 때 이미 조성된 곳으로 560년 세월이 넘어서고 있습니다. 6.25전쟁을 겪으면서도 자연수림이 그대로 잘 보존돼 오는 곳이지요. 천연활엽수인 갈참나무, 졸참나무, 서어나무가 아주 많고 900여종의 식물이 자라고 보존돼 있는 곳입니다. 도시 한 가운데 있지는 않지만 서울 인근에 있어서 시민이 자주 찾는 곳입니다. 이곳은 무엇보다 천연기념물인 크낙새가 서식했던 곳이어서 매우 주목되는 곳이지요. 현재 유네스코 생물권보존지역으로 지정돼 있기도 합니다.


이번에는 북한의 식물원을 가보지요. 우선 모든 식물원은 일단 나라에서 운영하지 민간이 하는 것은 아닐 테지요.


임채욱 선생:네, 평양에 있는 중앙식물원이 대표적인 식물원이지요. 평양대성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데 문을 연 것은 1959년 4월입니다. 그러나 이보다 앞서 광복 후 김일성은 식물원이 인민의 행복을 가져오는 것 중 하나라고 보고 대성산에 터를 잡아줬다고 하지요. 뿐만 아니라 현지지도도 10여 차례, 교시를 내린 것만도 150여 차례가 된다니 관심과 배려를 많이 돌린 것이 되는군요. 김일성뿐 아니라 김정일도 식물원 관련 교시를 150차례나 했다고 하니 식물원이 중요한 곳은 틀림없군요.


중앙식물원에 대해서 좀 더 설명해 주시죠.


임채욱 선생: 북한에서 식물원은 과학문화교양기관으로 대접 받고 있습니다. 연구를 하고 식물지식을 보급하고 문화생활과 휴식을 할 수 있는 곳이어서 그렇습니다. 중앙식물원에는 식물분류구역과 수목분류구역, 약초를 키우는 약초원, 꽃을 피우는 화초원, 장미꽃만을 키우는 장미원, 식용열매나무만 따로 키우는 구역, 정원풍치림을 관리하는 곳이 있고 식물원 안에 식물연구소와 식물박물관이 있습니다. 그리고 식물원에는 김일성, 김정일이 외국으로부터 받은 식물들을 전시한 선물식물온실, 야외선물식물구가 있고 특히 김일성화와 김정일화를 기르는 온실이 아주 중시되고 있습니다. 지금 중앙식물원에서는 각종 차를 만들고 의약품, 향료제품도 만들고 있습니다. 중앙식물원은 분원도 가지고 있는데 삼지연식물원, 오가산식물원, 옹진식물원이 있습니다.


오가산은 어디 있는 산입니까?


임채욱 선생: 평안북도 후창군에 있는 산입니다. 지금 북한 행정구역상으로는 양강도 김형직군입니다. 김일성 아버지 이름으로 바뀐 것이죠. 오가산은 높이 1198m인데 망백정이란 정자가 예로부터 있습니다.


한국에는 나라에서 생태원을 세웠다죠?


임채욱 선생: 충청남도 서천에 세운 국립생태원입니다. 2013년 3월에 개원했는데 동식물을 포함한 지구의 모든 생태계를 연구하고 전시하며 교육하는 곳으로 출발했지요.

앞에서 말한 한국의 다른 식물원 중 특히 소개할 말한 곳은 어디입니까?

임채욱 선생: 한국에는 50개가 넘는 식물원, 수목원이 있습니다. 나라에서 관리하는 것보다 개인이나 민간단체에서 운영하는 식물원, 수목원이 더 많습니다. 이 가운데서 특징적인 것도 많고 이색적인 것도 많은데 먼저 평강식물원입니다. 포천에 있는 평강식물원(2006. 5개원)은 민간단체가 운영하면서도 식물원 기능을 발휘하는 곳입니다. 18만평이나 되는 넓은 부지에 암석원, 들꽃동산, 자생식물원, 습지원등을 조성해서 자연생태계를 복원하고 건강과 평안을 가져오려는 뜻을 펼치는 곳입니다. 보유식물이 무려 7천종이 넘습니다. 충청남도 태안에 있는 천리포수목원도 알릴만한 곳이지요. 사립수목원으로서는 한국에서 처음인 이곳은 1만4천종이 넘는 식물종을 가지고 있습니다. 2000년에는 아시아 최초로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을 인증받았습니다. 그밖에 경기도 용인에 있는 한택식물원, 오산에 있는 물향기식물원도 가볼만한 곳입니다. 또 세종시에는 국립중앙수목원이 기대 속에 세워지고 있습니다.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전남 강진군이 지난 2012년 다산 정약용 탄생 250주년 기념 특별전 개막에 앞서 언론에 공개한 친필저술, 문예(시문, 서화), 교유(학맥, 가계, 사우, 문인) 등 유물 150여 점 중 일부의 모습.
전남 강진군이 지난 2012년 다산 정약용 탄생 250주년 기념 특별전 개막에 앞서 언론에 공개한 친필저술, 문예(시문, 서화), 교유(학맥, 가계, 사우, 문인) 등 유물 150여 점 중 일부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목민심서는 지방행정 책임자가 마음에 새겨야 할 자세나 몸소 실천해야 할 일들, 말하자면 지침들을 적어 놓은 것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목민심서란 책이 나온 지 올해 200년이 된다지요? 이 책은 나라 녹(祿)을 먹는 공직자라면 꼭 읽어봐야 할 책으로 소개되는데, 통일문화산책 오늘도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목민심서 책에 관한 이야기 나눠 봅니다.


목민심서가 언제 나왔습니까?


임채욱 선생: 목민심서가 1818년에 나왔으니까 올해가 딱 200년이 되는군요. 목민심서를 지은 정약용은 이 책을 지은 이 해에 다행히 귀양살이가 풀려서 고향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이후에는 행복한 생활을 이어가게 됩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지은이가 귀양지에서 지은 것이군요. 그럼 이 책을 지은 정약용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 볼까요?


임채욱 선생: 정약용은 호를 여러 가지 썼는데 다산(茶山)이란 호가 가장 알려진 것입니다. 경기도 광주사람인데 그는 벼슬살이 하던 시절과 귀양살이 하던 어려운 시절, 그리고 귀양이 풀려서 고향에 돌아와서 편안한 여생을 마친 시절 셋으로 일생을 나눌 수 있습니다. 제1기 벼슬살이 시절은 스무 두 살 때 벼슬길에 들어서서 정조왕의 총애를 받으면서 암행어사, 곡산부사 등을 지냈고 서양학문도 접하면서 책도 짓고 수원성을 짓는데도 관여해서 설계도 합니다. 제2기는 정조임금이 죽자 감옥에 가고 유배를 가게 됩니다. 유배기간이 무려 18년입니다. 이 긴 기간에 책을 많이 짓습니다. 그리고 유배가 풀리고 고향으로 와서는 회갑도 맞고 유유자적하게 지낸 제3기가 됩니다. 정약용은 모두 500여권의 책을 썼는데 목민심서는 유배기간에 썼습니다.


목민심서는 어떤 내용이기에 공직자들이 읽어야 하는 책으로 꼽히는지요?


임채욱 선생: 목민심서의 목민은 백성을 키우고 다스린다는 것으로, 이런 직책을 가진 공직자를 목민관이라 하는데 오늘날로 치면 지방행정 책임을 지는 공직자라고 보겠습니다. 목민심서는 이런 지방행정 책임자가 마음에 새겨야 할 자세나 몸소 실천해야 할 일들, 말하자면 지침들을 적어 놓은 것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당시 지방 공직자들인 수령이 백성들로부터 거두어들이는 일에만 신경 쓰면서 백성을 먹여 살리는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아서 백성들이 어렵게 살고 있다면서, 고쳐야 할 항목을 72가지로 나눠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200년 전의 책이 오늘날에도 유용할 수 있는지 의문도 가는 게 사실입니다만.


임채욱 선생: 물론 지방행정관이 수행해야 하는 행정업무가 그때와 다르고 방식도 다르지만 국민을 위한다는 위민정신은 같은 것이지요. 무엇보다 정약용은 공직수칙을 관의 입장에서 보지 않고 민간의 입장에서 보면서 하나하나 언급하고 있는 것이 주목되는 것입니다.


그럼 이번에는 목민심서에 대한 북한의 평가는 어떤지를 한 번 볼까요?


임채욱 선생: 목민심서를 북한에서도 일정한 평가를 합니다만 한국에서와 같이 반드시 좋게 평가한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이 책 내용이 봉건체제를 허물어버리려는 목적으로 쓴 게 아니라 봉건체제를 지키기 위해 쓴 것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봉건양반의 입장에서 본 당시 사회경제 형편을 유교의 이른바 덕치사상에서 해답을 찾으려는 한계를 지니고 있는데다가 기울어가는 조선조 말기 봉건체제를 정비강화하려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한마디로 봉건지배계급의 이익을 위해 지어진 책으로 평가합니다. 그래서 이렇게도 말합니다.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본 폐습과 탐관오리들의 행패를 고치려고 하되 그것이 결국은 보다 교묘한 봉건적 통치방법을 갖도록 하려고 이 책을 썼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은이 정약용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합니까?


임채욱 선생: 비교적 좋게 언급하고 있습니다만 역시 한계를 갖지요. 정약용이 선진적인 사상과 과학기술 연구에 힘쓴 실학자로 자리매김하면서 과학기술분야 성과, 역사, 지리, 언어분야 연구업적을 좋게 평가하고 또 문학가로서의 면모도 평가하고 있지요.  하지만 정약용이 강조하는 백성은 노예신분을 가진 인민들이 아닌 양반계층을 뜻할 뿐이라는 지적도 놓치지 않고 합니다. 결국 정약용도 다른 실학자들이나 마찬가지로 근로인민들의 이익은 대변하지 못했다고 봅니다.


목민심서에 대해서는 외국에서도 알려졌다고 들었습니다만 우리가 목민심서에서 배울 수 있는 정신은 무엇이라고 봅니까?


임채욱 선생: 알려지기로는 북베트남 지도자였던 호지명, 호치민이라고 부릅니다만 그가 목민심서를 머리맡에 두고 늘 읽었다고 합니다. 한문으로 된 원본을 봤겠지요. 목민심서는 공직자의 자세와 마음가짐을 세 가지로 정리합니다. 첫째, 자기인격을 수양해서 청렴한 선비가 되는 것이고 둘째, 공적인 일을 받드는 정신에 따라 공무를 성실하게 수행하고 셋째, 불쌍하고 사회적으로 약자인 사람에게도 애정을 베푸는 것을 기본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특히 세 번째로 언급한 불쌍하고 약자인 사람에게도 애정을 베풀어라는 것도 넓게 봐서 노비라든가, 천민에게도 배려를 하라는 뜻에 다름 아닌 것입니다.


목민심서 200주년을 맞는 기념행사도 있는지요.


임채욱 선생: 정약용을 연구하는 다산연구소에서는 올해를 ‘다산의 해’로 삼아서 다산이 바라마지않았던 불공정에서 공정으로 불평등에서 공평으로 되는 깨끗한 나라가 되도록 국민들이 공직자들을 잘 감시하자고 합니다. 그런 정신적 바탕위에서 다채로운 행사가 준비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약용은 앞에서 500여권의 책을 썼다고 하는데 목민심서 외에도 눈 여겨 봐야 할 책이 있겠지요?


임채욱 선생: 다산 정약용의 많은 책 중에서도 흔히 1표 2서가 유명하다고 하지요. 1표는 경세유표란 책이고 2서는 목민심서와 흠흠신서라는 책입니다. 경세유표는 목민심서 보다 1년 앞서 쓴 책인데 국가제도를 바로 잡는 방법을 쓴 것이고 흠흠신서는 형벌을 공정하게 처리하는 방법에 대해 쓴 것이며 목민심서는 지금까지 말씀 드렸듯이 한 마디로 수령이 고을을 잘 다스리는 방법에 대해 쓴 것이지요. 목민심서에는 민본주의 사상이 녹아 들어 있습니다. 정약용은 말했습니다. 수령이 백성을 위해서 있지, 백성이 수령을 위해서 있지는 않다고 단언했습니다. 그런데도 북한의 평가처럼 교묘한 통치방법을 소유하도록 하기 위해 목민심서를 썼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못한 평가라고 봅니다.


목민심서가 북한에도 번역돼 있습니까?


임채욱 선생: 네, 1962년 과학원출판사에서 출판한 번역본이 있습니다.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북한 평양의 보통강변에서 14일 낚시대회가 열리고 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4일 보도했다.
북한 평양의 보통강변에서 14일 낚시대회가 열리고 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4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봄이 오면 얼어붙었던 강이나 호수에 물이 불어나고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은 낚시도구를 챙기기 바쁠 테지요. 통일문화산책 오늘 이 시간에는 남북한에서 낚시를 즐기는 것에 대해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이야기 나눕니다.


우선 북한에도 낚시하는 사람은 분명 있겠지요?


임채욱 선생: 네, 물론 북한에도 낚시꾼이 있고 남한에도 낚시꾼이 있지요. 청명도 지난 이 때는 평양 대동강이나 함흥 성천강이나 강계 독로강에도 낚시꾼들이 모여들고 있겠지요.


북한 근로자들이 시간을 잘 낼 수 있는지요? 낚시를 억제하는 것은 아니군요.


임채욱 선생: 사람 사는 세상에 낚시는 통치제도와 관계없이 행해지는 것이지요. 물론 시간을 못내는 근로자들도 많겠지만 상대적으로 시간을 낼 수 있는 근로자도 있고 은퇴자들도 있을 것입니다. 공식적으로는 낚시도 권장합니다. 김정일 선대통치자가 한 말도 있습니다. “근로자들이 쉬는 날과 퇴근 후에 강이나 호수에 나가 낚시질도 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근로자들이 쉬는 날과 퇴근 후에 강이나 호수에 나가 낚시질을 하게하면 그들의 문화휴식을 보장하는데도 좋고 자연의 풍치를 돋구는데도 좋습니다.” 이렇게 아주 긍정적으로 보니까 오락으로 낚시질을 하는 근로자는 분명 있지만 실제 낚시 인구 중에는 물고기를 팔기 위해 달려드는 생계형 낚시꾼도 많다는 게 탈북자 귀띔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낚시질, 북한에선 낚시질이라고 하는 모양입니다만 낚시질이 자연의 풍치를 북돋운다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임채욱 선생: 낚시하는 풍경이 좋은 경치에 어울려서 보기가 좋다는 것이지요. 북한에선 자연경치가 아무리 좋아도 사람이 없는 경치는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낚시터에 낚시질 하는 낚시꾼이 있으면 경치도 더 좋아 보인다는 말이지요. 이런 관점은 이른바 주체철학의 미학관과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주체철학의 미학관은 어떤 것인가요?


임채욱 선생: 한마디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사람이란 관점입니다. 북한 주체철학에서 말하는 미의식은 자연보다는 사회, 사회보다는 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자연풍경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사회적 성격과 관계가 없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고 사회생활에서 아름다운 행동이나 뜻있는 생산품이라도 사람의 사상의식과 관계되지 않으면 무의미하다는 것이지요. 오직 고상한 사상과 정신을 가진 사람만이 인간일 수 있기에 사람 이상 가는 아름다운 것은 세상에 없다는 것이 주체철학의 미학입니다.


북한에도 낚시하는 인구가 많다면 조직도 있고 낚시대회 같은 것도 있겠네요?


임채욱 선생: 네, 그렇지요. 북한에도 낚시협회가 있고 낚시대회도 엽니다. 낚시질경기라고 합니다.

이번에는 한국 낚시꾼을 볼까요? 한국에서는 낚시가 어떤 대접을 받습니까?

임채욱 선생: 낚시가 매우 성행하고 있지요. 낚시인구가 등산인구 보다 많아졌다고도 합니다. 한 통계는 낚시인구 700만 명이라고 합니다. 낚시만 전문으로 하는 TV 방송도 있고 유명 연예인들이 낚시를 하는 낚시 프로그램도 인기가 있습니다. 또 낚시를 스크린으로 즐기는 낚시펍이란 곳도 있어서 색다른 오락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낚시인구가 많아진 것은 낚시가 그전처럼 강이나 호수에 가서 대낚시만 하는 게 아니라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는 바다낚시가 유행하다보니 낚시인구가 늘어난 것입니다. 낚시인구 700만 명 중 바다낚시꾼만도 224만명 정도 된다고 하니 살만하다고 다양한 오락활동을 하는 거지요. 그리고 바다낚시에 이용되는 영업용 낚시 배만 4500척이라 합니다. 이들 배에서 낚시로 잡는 물고기가 11만 6000톤(조선일보 2017. 12. 7 A2면)이나 된답니다.


영업용 낚시배가 있다는 것은 어떤 것을 말합니까?


임채욱 선생: 낚시꾼들을 태워서 좋은 낚시터로 데려다 주는 영업행위를 한다는 것이지요. 고기잡이배는 본래 어민들이 타고 고기를 잡아서 소득을 올리게 돼 있는데 어민들이 어한기, 그러니까 겨울철이나 고기잡이를 안 하는 때에도 소득을 올려주려고 영업용 낚시배 운영을 허가했는데 그게 1996년부터입니다. 그런데 이런 영업용 낚시배가 조금 더 잘 잡히는 곳에 배를 대려고 속도경쟁도 하다보니 사고도 많이 난다는 것입니다. 올해 초에도 인천 영흥도 부근에서 낚시배가 전복되는 사고가 있었는데 이런 사고가 늘 일어나는 것이지요.


낚시펍은 어떤 곳입니까? 좀 더 자세한 설명을 해주시지요.


임채욱 선생: 바다나 강이 드러나는 큰 스크린을 앞에 두고 낚시대를 움직이는 것이지요. 스크린 골프, 스크린 야구처럼 스크린에서 낚시를 하는 즐거움을 가지는 것입니다. 한국에는 낚시카페라고 해서 수조(물통)에 든 물고기를 실제로 낚시로 낚는 곳도 있지만 요즘 새로운 개념의 낚시터가 된 곳이 이 낚시펍인데 여기서는 릴낚시대를 스크린 쪽으로 던져 물고기 무는 것을 느끼고 잡아채는 즐거움을 느낍니다. 마치 낚시하면서 느끼는 짜릿한 손맛 그대로입니다. 펍이란 영국에서 간단히 술 마시는 곳 아닙니까, 이처럼 맥주도 한잔 하면서 스크린을 통해 바다에서 낚시하는 손맛도 보는 곳이지요.


낚시는 인류역사와 같이 하는 것이겠지만, 생계를 유지하는 수단으로 하는 어로행위로서의 낚시와 취미나 오락으로 하는 낚시는 다른 것이지요.


임채욱 선생: 그렇습니다. 낚시는 인류역사 이래의 행위인데 우리나라에도 1982년 강원도 양양군 손양면 오산리 호숫가에서 돌로 만든 낚시바늘이 발견된 일이 있습니다. 아마도 신석기 시대, 지금부터 한 4,5000년 전에 사용되던 것으로 추정되는 것이었는데 이때부터 낚시를 한 것을 알 수 있지요. 낚시에 관한 문헌상 최초기록은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신라 석탈해왕이 낚시로 고기를 잡아 어머니께 공양했다는 것이 있습니다. 생계를 위해 어로행위를 하는 방법의 하나로 낚시를 하는 것과 취미도락으로 하는 낚시는 다르겠는데 낚시라고 하면 후자를 말하는 면이 크지요. 취미도락으로 하는 낚시에 대해서는 자연을 벗 삼아 풍류를 즐긴 우리 선조들의 많은 그림과 시문을 접할 수 있습니다. 유명한 윤선도, 이퇴계, 이율곡, 박인로 같은 이들은 시문을 남겼고 이명욱, 장승업 같은 이들은 그림을 남겼습니다. 또 17세기에 살았던 남구만은 낚시에 대한 이론을 담은 책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고기를 낚는 즐거움에만 빠진 것이 아니라 낚시를 통해서 자연을 관조하고 명상의 시간을 가져서 정신적 건강을 얻었을 것입니다. 낚시인들은 이런 정신을 마땅히 배워야 하겠습니다.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서울 종로구에서 십여 개의 점집들이 나란히 진을 치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서울 종로구에서 십여 개의 점집들이 나란히 진을 치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일반주민들뿐 아니라 당 간부나 지위가 높은 사람들도 점집을 찾으며 심지어 김정일이나 김경희 같은 사람도 점치는 무속인을 곁에 두고 있다고도 합니다.


새해도 세 달이 훌쩍 지났습니다. 하지만 음력으로는 2월 중순을 지나고 있지요. 그래 예전에는 새해를 맞으면 운세를 점치는 무속행위가 많았는데, 이런 것을 억제하는 북한에서 근래에 와서는 점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고 보도되고 있습니다. 통일문화산책 오늘은 남북한에서 운세를 보는 사람들에 대해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이야기 나눕니다.


북한에서 점치는 행위가 성행할까요?


임채욱 선생: 작년 12월 북한에서는 당 세포위원장대회가 열렸습니다. 세포위원장은 그 전에 당 세포라고 하던 것을 바꾼 것입니다. 평양에서 열린 이 대회(12. 19~26)에서 당면과업들을 토의하고 학습했는데 이를 통해 밑으로부터의 충성을 유도한 것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여러 가지 과업 중에서 ‘비사회주의적 현상’에 대한 투쟁도 포함돼 있습니다. 적대세력들이 불건전하고 이색적인 사상독소들을 퍼트리고 있다는 것도 있습니다. 이에 따라 점치는 행위도 단속하라는 지시가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북한에서도 점치는 사람들이 꽤 있다는 말이겠지요.


북한에서는 점치는 행위가 당연히 처벌대상이 되겠지요


임채욱 선생: 그렇지요. 점을 치는 것을 미신으로 보고 철저히 단속해왔지요. 김정일도 “미신행위를 하는 현상과 타협해서는 안 됩니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막아왔지요. 그렇지만 90년대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기를 거치면서 점을 보는 사람이 늘어났다고 합니다. 아마도 체제를 못 믿을 만큼 불안감이 컸기 때문이겠지요. 일반주민들뿐 아니라 당 간부나 지위가 높은 사람들도 점집을 찾으며 심지어 김정일이나 김경희 같은 사람도 점치는 무속인을 곁에 두고 있다고도 합니다.


북한에서는 점치는 무속행위를 어떻게 봐옵니까?


임채욱 선생: 무속행위는 종교나 미신이나 마찬가지라고 보고 사람들에게 해독을 끼친다고 말합니다. 종교나 미신에 젖게 되면 사람이 제정신을 잃고 되고 허황한 것을 믿는 머저리가 된다고 말하죠. 이 머저리들은 당 정책을 따를 수도 없고 적들에 이용돼서 민족을 반역하고 반국가 행위를 하게 된다고 봅니다.


무속행위야 미신으로 볼 수 있지만 종교도 무속행위처럼 본다면 종교를 미신으로 보는 것 아닙니까?


임채욱 선생: 그렇습니다. 종교에 대해서 과학적 지식이 낮았던 사람들이 자기운명을 신에게 맡긴 것이 종교이고 나라가 있은 뒤에도 착취계급이 근로자들을 억압하는 수단으로 종교적 인생관을 퍼트렸다고 봅니다. 종교적 인생관은 사람을 무능력한 인간으로 만드는 그런 해독성을 지녔다고 보기 때문에 미신이나 마찬가지로 보는 것이 됩니다.


앞에서 북한의 지도층사람들도 무속인을 곁에 두고 있다는데 근거가 있습니까?


임채욱 선생: 김정일이 뇌출혈로 쓰러진 뒤 길흉의 운명을 점치는 일이 잦아졌다고 하지요. 김정은 경우는 점술가 말에 따라 사주팔자 중에서 가장 나쁜 태어난 시간을 바꾸려고 북한 표준시간까지 바꿨다고 합니다. 김정은이 30분만 늦게 태어났다면 아주 좋았을 것이라는 사주풀이에 근거해서 북한 표준시간을 한국과 같은 시간에서 30분 늦춰버린 것입니다. 명분은 광복 70년이 되도록 일본 표준시를 사용하는 것을 벗어나도록 했다는 것이지요. 이것이 사실이라면 3년 전 2015년 8월에 표준시간을 바꾸면서 평양시간이라고 한 것도 다 지도자 한 사람을 위해 일으킨 웃음거리가 되겠군요. 이러니까 북한에서도 사주나 명리학 같은 것도 있고 심지어 점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할 수 있지요. 지금 북한에선 인민보안성 사람들이 점집을 찾아 점치는 사람들을 단속하러 갔다가 그 자리에서 자기 점을 치는 일도 있다는 것이 탈북자들의 말 아닙니까. 점만 치는 것이 아니라 집에서 굿도 한다고 하는군요.


점을 치는 일, 사주를 보는 일, 굿을 하는 일 등을 뭉뚱거려서 무속이라고 합니까? 그 개념을 한 번 말해주시죠.


임채욱 선생: 점을 치는 일, 사주를 보는 일은 역술 또는 역학이라고 하고 굿을 하는 일등은 무속이라고 합니다. 점을 치고 사주를 보는 것은 본래 역술이론을 바탕으로 한다면 무속은 무당이란 중매자를 통해 굿을 하거나 무슨 제사를 지내면서 신과 교류하려고 하는 행위라고 하겠지요. 둘 다 종교에 비해서는 미신이라고 보는 면도 있습니다. 그러나 무속이 민간에서 많이 행해지는 신앙형태인데 비해 역술은 주역에서 나온 이론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또 땅의 좋고 나쁨을 따지는 풍수도 있습니다.


이번에는 한국에서 점치는 일이라든가 사주 보는 일 등 역술행위라든가, 굿하는 무속행위 또 풍수를 대하는 현상을 한 번 보지요. 한국에서도 이런 행위들이 성행한다고 들었습니다.


임채욱 선생: 네, 한국에는 역술이나 무속을 막는 일도 없고 단속하지 않으니 하나의 직업처럼 행사하지요. 심지어 역술인이나 무속인, 또 풍수가라고 하는 사람들이 버젓이 방송에까지 출연하고 신문에도 오늘의 운세란이 있어서 누구나 오늘의 운세가 어떤지 보기도 하죠. 무식한 사람이나 늙은이만 그런 것이 아니라 한 해 운수를 점쳐 보는 젊은이도 많아서 무슨 문화적 경향이랄까 현상이라고까지 말할 정도가 되지요. 또 한국대통령들 올해 운세가 어떤지도 사이버상에서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지금 대학에서도 사주, 관상, 풍수를 가르치는 학과가 버젓이 설치되고 있고 이런 것을 가르치는 학원도 많습니다. 무엇보다 사주를 봐주고 점을 치고 관상을 봐주는 사람들을 무속인, 또는 역술인이라고 하는데 이들이 100만명을 넘을 것이라고 합니다.(조선일보2017. 11. 25. B3면) 이 숫치에 풍수인들이 들어 간 것인지 모르겠습니다만 풍수가도 많습니다.


이런 행위들에 대한 현대적인 의미를 한 번 더 짚어주시죠.


임채욱 선생: 역술의 원리가 되는 주역은 동양의 여러 민족이 수천 년 간 믿어 온 학술사상이고 공자도 심취한 이론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주역에 바탕한 태극으로 국기로 만들었고 지금 한국은 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주역을 새로 해석한 정역을 현대와 미래를 전망할 수 있는 원리를 제시하고 있다고 합니다. 앞으로 역술은 이런 원리에 입각해서 발전할 것입니다. 무속행위는 과거 우리 민간신앙의 바탕이므로 민속학이론으로 정리되고 있지요. 다만 나라 다스리는 일에 무슨 무당이 종교인으로 가장해서 나타나는 어리석은 일은 남에서나 북에서나 없어야겠지요. 풍수학은 현대지리학 개념과 관련지우면서 무슨 무덤 발복을 비는 차원을 넘어서 도시건설이라든가, 주택단지 건설에 좋은 방향제시도 가능하지 않을까 봅니다.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봄꽃이 만발한 평양의 모습.
봄꽃이 만발한 평양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지금 한반도에도 봄이 왔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봄을 맞는 남북한의 풍경을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살펴 보겠습니다.


임채욱 선생: 네, 영국시인 쉘리의 ‘겨울이 오면 봄도 멀지 않으리’라는 싯귀대로 유난히 추웠던 겨울이 가고 봄은 정녕 오긴 오는가 싶더니 봄은 이미 와서 무르익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시에도 이런 싯귀가 있지요? 봄을 찾아서 하루 종일 돌아다니다가 집에 돌아 왔더니 봄은 매화나무 가지 끝에 매달려 있더란 것이지요. 봄을 가장 먼저 알리는 매화꽃이 피려는 풍경을 전하는 말이지요.


봄은 봄이지만 구체적으로 본다면 어떤 계절이 됩니까?


임채욱 선생: 봄은 첫째 일 년 사계절 중 첫 번째 계절이지요. 기상학적으로는 양력 3월에서 5월까지, 음력 1월에서 3월까지를 말하는데, 천문학적 으로는 춘분(3월 21일)에서 하지(6월 21일)까지가 봄이지요. 또 절기상으로는 입춘(2월 4일)에서 입하(5월 5~6일)까지가 봄이라고 하지요. 봄은 또한 초봄, 봄, 늦봄으로도 나누는데 서울에서는 지금 초봄이 끝나가는 시기로 제일 낮은 기온이 0도 이상이고 평균기온이 5도에서 10도가 됩니다. 봄이 되면 시베리아 고기압이 약해지고 서북계절풍도 약해집니다. 그러나 이동성 고기압과 저기압이 나타나서 변덕스런 날씨가 되면서 꽃샘추위도 찾아오지요. 꽃샘추위는 조선시대 정철(鄭澈)이 지은 가사 <속미인곡>에서 춘한고열(春寒苦熱)이라 해서 봄추위와 여름 더위를 말할 정도로 싸늘하지요. 하지만 봄추위는 오래 가지는 못하지요.


무엇보다 봄이라면 꽃이 피고 개구리가 눈을 뜨는 생물 계절로써 중요하지요?


임채욱 선생: 우리가 사는 한반도가 좁은 땅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봄을 알리는 꽃소식은 시차가 있기 마련이어서 사람들은 봄을 확인하려고 굳이 남쪽을 향해 꽃소식이 있는지를 성급하게 물어도 봅니다. 올해는 매우 추워서 꽃소식도 작년보다 일주일 늦었지요. 이달 초에 남녘에서 산수유 꽃이 피더니 매화도 질세라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냈고 중순을 넘어서면서 남녘으로부터 개나리, 진달래 소식이 전해지더니 드디어 지금은 중부지방까지 온통 개나리, 진달래, 목련이 자태를 뽐내려 하고 있고 좀 있으면 벚꽃도 만발할 테지요.


봄을 알리는 풍경으로 꽃 말고도 제비가 있죠? 요즘은 이 제비가 잘 안 보인다고 하지요?


임채욱 선생: 네, 봄의 전령이라 할 제비가 음력 3월 3일, 삼짇날 돌아온다고 하지요. 삼짇날이 올해는 4월 중순인데 대체로 남해안에 이날 전후해서 보이고 북으로 갈수록 늦어져서 평안북도나 함경남도는 4월 하순이 돼야 보이고 함경북도는 5월 상순이 돼야 보입니다. 하지만 한국에선 제비 보기가 어렵다고 하지요. 제비는 사람 사는 집에 자기 집을 짓는데 한국의 주거환경이 바뀌어서 아파트가 들어서니 제비가 제 집을 지을 환경이 안 돼는 거죠. 그러니 오지 못하는데 아쉬운 이야기입니다.


봄을 맞는 남북한 풍경이야 뭐 다를 것이 없겠지만 그래도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차이는 있을 수 있을까요?


임채욱 선생: 자연으로서의 봄을 맞는 것이야 어찌 다르겠습니까만 아무래도 남쪽에서 벚꽃이 만발할 시점에 북한에는 그들 말로 민족 최대의 기념일이라는 것이 있으니까 좀 다르긴 하겠군요. 봄의 상징인 꽃을 보는 눈도 다를 수도 있다고 봅니다.


하나의 꽃을 보는 기호란 것도 달라질 수 있을까요? 꽃에 대한 기호가 특별히 달라진 점도 있나요?


임채욱 선생: 한국에서는 벚꽃을 많이 심었고 벗 꽃 봄놀이도 하고 축제도 여는데, 북한에선 벚꽃에 대해선 남쪽만큼 좋은 시선을 보내지는 않지요. 대신 북한에서는 진달래꽃을 몹시 올려 세우고 있지요. 진달래는 무슨 상징 꽃처럼 치켜세워지고 있지요.


진달래꽃에 대한 선호는 어떻게 나타납니까?


임채욱 선생: 심미성이란 관점에서 남북한 주민은 차이가 없다고 봅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벚꽃이 일본사람들이 좋아하는 꽃이란 걸 알지만 그 원류가 제주도 왕벗꽃이란 것을 알아서인지 그렇게 거부감을 갖지는 않는 것 같은데 북한에선 벚꽃을 싫어하는 것이 확실해 보입니다. 반대로 진달래꽃에 대해서는 아주 높게 봅니다. 그것은 김일성수령의 이른바 항일혁명 때 일과 연관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 일이란 일본군을 공격하려고 조국 땅에 들어설 때 김정숙이 진달래 한 송이를 꺽어 줬는데, 이 꽃 향기에 조선의 진달래는 볼수록 아름답다고 말하고 대원들 가슴속에 조국애를 심어줬다는 것입니다. 이때부터 진달래는 조국애를 상징하는 것이 되는 데, 그 뒤 김일성은 북한지방 통치자가 됐을 때도 도시녹화사업을 하면서 진달래를 많이 심을 것을 강조했지요. 그러다보니 많은 시인들이 진달래를 노래하게 되고 1962년에는 김정일도 <진달래>란 노래가사를 씁니다. 이러니까 남쪽 한국사람 들에게는 진달래가 북한 국화라고 까지 오해했지요. 사실 국화 반열에 오를 정도로 사랑받고 상찬 받은 것은 틀림없지요. 1964년 목란이란 꽃이 김일성 수령 눈에 띄지 않았다면 진달래가 북한 국화 자격을 얻었을지도 모르지요.


목란꽃은 또 어떤 꽃입니까?


임채욱 선생: 산목련과 같은 꽃인데 함박꽃 종류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김일성이 1964년 5월 어느날 황해도 정방산에 있는 별장에서 이 꽃을 보더니 어릴 때 본 것이라면서 항일활동을 하는 동안에도 이 꽃을 늘 떠올렸다고 말합니다. 그 몇 년 뒤 중앙식물원을 방문한 자리에서도 또 이 꽃에 대해 언급하니 이날 이후 북한 전 주민은 이꽃에 대한 학습을 하게 되지요. 그러다가 1991년 4월 이 꽃은 북한의 국화로 결정됐지요. 북한에는 통치자가 좋아해서 사랑받는 이런 목란과 진달래꽃 외에도 김일성화라든가 김정일화란 것도 있지요. 이 중에서 김정일화에 대해서 북한에서는 김정일화가 세상에 태어난 것은 전 인류의 기쁨이고 자랑이라고 까지 떠들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특별히 사랑받은 꽃이 없습니까?


임채욱 선생: 하나의 꽃이 역사적 중요한 사실이나 문학적인 언급대상이 되더라도 심미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꽃은 심미적 관점에서 선호되는 것이니까 한국에서는 무궁화가 국화로 돼 있어도 심미적으로 별로 선호하지 않는 면도 있지요. 그래도 당국이 강제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요. 한국 사람들이 선호하는 봄꽃에는 진달래나 벚꽃이 들어가고 매화나 개나리, 목련꽃도 포함되겠지요. 매화는 우리 선조들이 제일 좋아했던 꽃이지요.


전에 언젠가 북한에서는 매화를 매우 싫어한다는 말씀을 하셨는데요,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지요?


임채욱 선생: 아 그건 북한 사람 모두가 싫어한다는 게 아니지요. 이인모라는 사람, 김영삼대통령 때 북송시킨 장기수인데 그 사람이 북한으로 가서 쓴 <진달래 마음>이란 시에서 진달래 꽃을 높이 칭찬하다가 매화를 두고는 “세상 천하 꽃들 중에서 먼저 피여 뽐내려고 눈도 미쳐 녹기 전에 성급하게 피여나는 리기적인 매화처럼...”하는 구절이 있어서 지적한 것이었지요. 그는 자기수기에서 진달래와 개나리는 자기 충성을 뒷받침하는데 매화는 남 먼저 피는 것이 밉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글쎄, 무슨 말인지 모르지만 매화꽃은 옛날 선비들이 좋아했다니까 괜히 미워진 거였든가 진달래꽃을 드러내려고 하다보니 그렇게 표현된 것인지도 모르지요. 매화는 아시다시피 퇴계선생이 눈을 감기 전에 “매화에 물줘라”고 말할 정도로 사랑받은 꽃이지요. <가곡원류>란 책, 우리 선조들이 지은 노래가사집 입니다만 유명한 책이지요. 이 책에는 우리 조상들이 좋아하던 꽃이 복숭아꽃이 1위이고 2위가 매화꽃, 3위가 국화꽃, 4위가 배꽃으로 나옵니다. 이런 꽃들에 얽힌 설화를 말하자면 봄밤이 짧을 것 같습니다.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11일 강원도 평창 바이애슬론센터에서 열린 2018평창패럴림픽 크로스컨트리 남자 15km 좌식경기에 출전한 북한 마유철(오른쪽)과 김정현이 경기를 마치고 환호하는 관중석을 향해 답하고 있다.
11일 강원도 평창 바이애슬론센터에서 열린 2018평창패럴림픽 크로스컨트리 남자 15km 좌식경기에 출전한 북한 마유철(오른쪽)과 김정현이 경기를 마치고 환호하는 관중석을 향해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북한은 장애인을 드러내지 않으려 해왔지요. 아시다시피 평양에는 장애인이 얼쩡거리지도 못하게 해왔습니다. 한마디로 장애인 같은 것은 없다는 것이지요.

성공적으로 끝난 평창 동계올림픽에 이어 같은 곳에서 동계 패럴림픽 대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북한에서도 선수는 몇 명 안 되지만 참가한 패럴림픽에 대해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이야기 나눠봅니다.

먼저 패럴림픽이란 말을 짚어봐 주시겠어요?

임채욱 선생: 패럴림픽은 장애인올림픽입니다. (북한에서는 장애자올림픽이라 합니다.) 마비를 뜻하는 패러리시스((Paralysis)와 올림픽이 합해진 말이지만 지금은 같은 방향을 뜻하는 평행(Parallel)과 올림픽의 합성어로 봅니다. 왜냐하면 처음처럼 하반신 마비장애인만 참가하는 경기대회가 아니라 지금은 다른 부분 장애인도 참가하며, 또 올림픽대회가 열리는 곳에서 올림픽대회와 나란히 열린다고 해서입니다.

잘 모르는 분들도 많을 것 같은데 패럴림픽의 역사를 말해주시죠.

임채욱 선생: 제2차 세계대전이 1945년에 끝나지요? 전쟁에서 다친 사람이 많을 것 아니겠습니까? 영국에서 이들 전쟁부상자, 전상자들을 치료하고 재활하려고 스포츠를 활용하려 한데서 장애인경기가 시작됐다고 합니다. 처음에 척수장애인, 그러니까 하반신마비 자들만 경기를 했는데 1952년부터는 국제대회로 규모가 커졌고 1960년부터는 여름올림픽이 열리는 곳에서 열기로 해서 1960년 7월 로마에서 제1회장애인올림픽대회가 열렸습니다. 그 뒤 1972년부터는 척수장애자 외에 다른 장애인도 참가하는 경기로 확대됐습니다. 한편 동계패럴림픽, 겨울 장애인올림픽은 1976년 스웨덴 오른휠즈비크에서 처음 열립니다. 이후 겨울철 올림픽이 열리는 곳에서 평행으로 열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패럴림픽입니다.

남북한의 패럴림픽, 다시 말해서 여름 패럴림픽, 겨울패럴림픽 참가는 어떻습니까?

임채욱 선생: 한국은 여름 패럴림픽은 1968년 이스라엘에서 제3회대회가 열릴 때 처음 참가했고 겨울 패럴림픽 참가는 1992년 프랑스 알베르빌 대회 때부터 참가해서 이번 평창대회까지 8번째 참가합니다. 한편 북한은 6년 전 영국 런던 하계 패럴림픽에 첫 참가를 했고 이번 평창대회에 겨울 패럴림픽 첫 참가를 했습니다.

북한의 패럴림픽대회 참가는 좀 늦었네요?

임채욱 선생: 이랬을 것 같습니다. 북한은 장애인을 드러내지 않으려 해왔지요. 아시다시피 평양에는 장애인이 얼쩡거리지도 못하게 해왔습니다. 한마디로 장애인 같은 것은 없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사람 사는 세상에 장애인이 없을 수 있습니까? 그러다가 몇 년 전부터 장애인 존재를 인정하는 조직을 만드는데 이름해서 ‘조선 장애인 보호 연맹’입니다. 작년에는 장애인 보호 사업에서 성과가 컸다는 보도도 몇 번 나왔는데요, 장애자 생산작업반에 필요한 설비들을 잘 보장해 줬다는 내용과 장애자들이 필요한 도구들, 밀차, 지팡이, 안경 등이나 다른 보조도구들도 잘 챙겨줬다는 보도였습니다. 또 손 말 심의위원회에서는 3600개의 어휘를 손짓으로 알도록 하고 가르치는 일도 했다는 보도였습니다. 여기에서 손 말은 한국에서 수화(手話)라고 하는 것을 말합니다. 또 맹 학생을 위한 교과서 발행을 하고 장애자열람실을 늘리기도 했습니다. 장애자관련 국제기구들과도 교류를 늘리고 국제장애인의 날(12월 3일)에는 기념행사나 토론회도 열었습니다. 토론회 주제가 <모두를 위한 지속가능하고 활력있는 사회를 향하여>였는데 이를 보면 북한도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이제는 바르게 하는 것 같습니다.

한국의 장애인 정책은 어떻습니까? 간단히 말한다면?

임채욱 선생: 나라에서 실시하는 복지정책은 본래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것 아닙니까? 한국에서도 1961년 <군사원호보상법>으로부터 시작해서 온갖 사회보장정책, 복지정책을 실시해 옵니다만 어디 만족스런 답이 있습니까. 장애인복지정책도 전체 사회보장정책 범위 내에서 실시되고 있지만 아직은 미비한 부분도 많지요. 장애인 편의시설, 의료시설 등 확대할 부분도 많습니다.

그럼 패럴림픽으로 다시 화제를 돌려서 이번 평창패럴림픽 규모를 설명해주시죠.

임채욱 선생: 네, 지난 9일부터 모레 18일까지 열흘간 평창, 정선, 강릉에서 열리는 동계패럴림픽에서는 49개 나라에서 570명의 선수가 참가해서 6개 종목을 다투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는 북한선수 몇 사람도 포함돼 있습니다. 경기종목 6개는 스키종목에서 알파인스키와 크로스칸트리스키 2종류이고 아이스하키경기, 바이에슬른, 스노보드 그리고 휠체어를 타고 하는 컬링경기, 이렇게 6종목이였습니다.

북한의 참가는 이번에도 주목됐습니까?

물론이지요. 이번에도 와일드카드 형식으로 참가가 가능했는데요, 스키 선수 2명을 포함해서 여섯 사람입니다. 북한은 선수 여섯 사람을 포함해서 선수단 24명이 참가했습니다.

이번 팰럴림픽의 성과라고 한다면 뭣이라고 하겠습니까?

임채욱 선생: 평화올림픽, 문화올림픽, 환경올림픽, 경제올림픽, 정보통신올림픽을 내세우면서 ‘하나 된 열정’을 향해 평창동계올림픽의 감동을 이어갔지요. 이 중에서 가장 큰 성과라면 한국의 뛰어난 정보기술과 전자기술로 무장한 정보통신기술(ICT)이 돋보인 올림픽이라고 하겠습니다. 지난번 동계올림픽 개막식 때 관중석 전체를 하나의 커다란 스크린으로 만들고 하늘에는 드론이 뜨고 무인자동차가 달리고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을 체험할 수 있었던 대회였던 것처럼 이번 패럴림픽도 스포츠 축제지만 다른 면에서는 한국의 첨단기술이 전통과 융합된 모습을 선보인 대단한 잔치판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또 있습니다. 88서울올림픽이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룬 자부심을 내세운 대한민국의 국격을 올린 올림픽이였다면 이번 평창동계올림픽은 자유주의와 개인주의를 발산하려는 젊은 층의 탈 국가주의적, 탈 민족적 성향을 확인한 올림픽이였듯이 패럴림픽도 그 연장선상에서 육체의 장애를 극복하려는 정신적 한계를 확인하는 젊은이들의 도전무대였습니다.

황연대성취상이 있지요? 아직 대회가 끝나지 않아서 수상자를 알 수 없습니다만 가장 훌륭한 선수에게 주는 상으로 알고 있습니다.

임채욱 선생: 네, 장애인올림픽에서는 대회가 끝난 뒤 가장 훌륭한 선수(MVP)를 뽑아서 황연대 성취상을 줍니다. 이 상은 한국의 장애인 여의사 황연대를 기리는 상입니다. 황연대는 소아마비 장애인으로 신체적 결함을 극복하고 여의사가 되고 교수가 돼서 다른 사람의 모범이 되고 훌륭한 일을 합니다. 그래서 국제장애인체육위원회(IPC)에서는 패럴림픽에서 가장 훌륭한 남녀 선수에게 이 상을 주고 있는데 황연대 씨가 직접 시상을 합니다.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강원도 강릉시 관동하키센터에서 열린 여자 아이스하키 조별예선 2차전 남북 단일팀 대 스웨덴 경기에서 북측 응원단이 열띤 응원을 벌이고 있다.
강원도 강릉시 관동하키센터에서 열린 여자 아이스하키 조별예선 2차전 남북 단일팀 대 스웨덴 경기에서 북측 응원단이 열띤 응원을 벌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우리는 하나다’라는 노래를 부르고 이 말을 새긴 구호판을 흔들었습니다. 이것은 정치적인 메시지를 담은 구호라고 봐야합니다.


미국 ABC방송 지미 킴멜 쇼에서 평창올림픽 북한응원단의 응원모습을 흉내 낸 프로그램이 방송됐습니다. 사회자는 북한응원단에 대해 목숨이 달린 것처럼 열심히 응원했다면서 스튜디오 방청객들에게 한 번 따라 해보자고 북한응원단 화면을 보여주면서 그대로 해보기를 유도했습니다.


임채욱 선생: 네. 저도 ABC방송의 그 화면을 봤습니다. 여성 200여명인 북한응원단이 박수를 치면서 상체를 옆으로 움직이고 앞으로도 움직이는 모양인데 일사불란한 모습이고 스튜디오 안 방청객들이 사회자 말대로 북한응원단이 하듯이 상체를 움직이는 동작을 하더군요. 그러나 그 흉내는 약간 야유조로 보여 졌지요.


한국관중은 이런 응원을 어떻게 봤을까요?


임채욱 선생: 한국 관중들은 경기를 보기보다 북한응원단에 관심을 더 보이기도 했겠지요. 응원 레퍼터리 보다 열렬하게 응원하는 것이 인상적이라고 봤지요. 한데 너무나 일사불란하고 기계적인 느낌도 들어서 섬뜩하다는 평도 있지요. 그런데 이번에도 ‘우리는 하나다’라는 노래를 부르고 이 말을 새긴 구호판을 흔들었습니다. 이것은 정치적인 메시지를 담은 구호라고 봐야합니다.


우리는 하나다’란 게 어떤 맥락에서 나온 것입니까?


임채욱 선생:  2002년 가을 부산에서 열린 아시아경기대회에 북한이 참가했을 때 응원단(288명)이 부른 노래가 <우리는 하나>였지요. 물론 구호로도 외쳐졌지요. 북한응원단이 “우리는....”하면 남쪽 일부 관중들이 “하나다”라고 호응도 했지요. 다음 해 대구에서 열린 유니버시아드 대회(응원단원303명)에도 마찬가지 현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2005년 인천에서 열린 아시아 육상선수권대회에서도 북한응원단(124명)은 같은 레퍼터리로 응원했습니다. 인천에서 열린 아시아경기대회(2014. 9)에는 응원단이 못왔죠. 그러니까 이번이 네 번째인데 <우리는 하나>는 아주 중요한 곡목 중 하나지요.


<우리는 하나다>란 구호에는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임채욱 선생: 일부 호응과 화답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15, 6년 전과는 다른 반응이 나왔다고 합니다. 지금 한국의 20, 30대는 민족보다는 국가가 먼저라는 인식이 강해서 우리를 위협하는 북한에 대해서 엄격하게 대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넓게 퍼져있습니다. 그러니 나이 든 사람보다 젊은 사람 중에서 북한응원단에 무덤덤해 하는 사람도 많지요.


<우리는 하나> 라는 노래 어떤 부분이 정치적인 성격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임채욱 선생: 네. 가사는 이렇습니다. 1절.

하나 민족도 하나 하나 피줄도 하나

하나 이땅도 하나 하나 둘이되면 못살 하나

긴긴세월 눈물로 아픈상처 씻으며

통일의 환희가 파도쳐 설레이네

하나 우리는 하나 태양조선 우리는 하나

2절.

하나 언어도 하나 하나 문화도 하나

하나 역사도 하나 하나 둘이되면 못살 하나

백두에서 한라까지 분단장벽 허물며

통일의 열풍이 강산에 차넘치네

하나 우리는 하나 태양조선 우리는 하나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가사에는 다 하나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뿐인 것으로 보이는 군요.


임채욱 선생: 그렇지요. 민족도 하나, 핏줄도 하나, 이 땅도 하나, 언어도 하나, 문화도 하나, 역사도 하나 틀린말 아니지요. 그러니 <우리는 하나>가사야 좋지요. 하지만 이 가사에서 ‘태양조선 우리는 하나’라는 말은 김씨왕조의 조선을 말합니다. 이번에 응원단과 별도로 온 북한 예술공연단(삼지연관현악단)이 노래가사 중에서 ‘태양조선’이란 부분을 빼고 우리민족이라고 했다니까 그들 스스로 남쪽에서 오해할 정치적인 성격이 있다고 본 거지요. <우리는 하나> 이 노래는 2002년에 나온 것인데 이 노래를 두고 북한 음악계가 거둔 2002년 3대 성과 중 하나로 평가합니다. <우리는 하나>외에도 1990년대 초에 나온 <조선은 하나다>라는 노래도 있는데, 이 노래 역시 대남관계 행사 때 마다 불리던 것입니다. 이런 노래들 가사를 앞세우면서 북한은 입만 열면 ‘우리민족끼리’를 외치고 민족공조를 강조합니다. 이런 게 정치적 성격 아니겠습니까? 하도 강조하다보니 남쪽 종교계 인사들까지 민족공조를 표현하는 판입니다. 말 못해서 죽은 귀신이 한스럽지 않는 한 이런 말 속에 들어 숨어있는 의도까지 눈 감을 수 있겠습니까?


이번에 북한은 동계올림픽이 성과적으로 개최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했지요.


임채욱 선생: 북한은 대남관계에서 언제나 이중적이었습니다. 이번에도 성과적으로 개최되기를 바란다면서도 자기들 아니면 평창올림픽이 역대 최악의 인기없는 대회로 기록될 수 있는데 구원의 손길을 보냈다고 말합니다. 그러는 한편 자기들 뜻대로 안되면 잔치상이 제사상이 될수도 있다고 위협적인 말도 했습니다. 북한이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데는 남쪽에서 북한 참가를 목매게 기다린다는 신호를 보냈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하나’라는 말에는 민족의 동질성 아니면 동일성을 말하는데 남북한에서 보는 민족관 개념에서는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요?


임채욱 선생:  1990년대 들어서면서 김일성은 스타린 식 민족개념을 버린다고 했습니다. 자기는 공산주의자이지만 민족주의자 이기도 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말이 그러했지 실제 민족을 보는 눈도 한국의 민족관과 같아졌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박승덕이란 북한 철학자가 있었는데 남쪽학자들에게 말하길 자기들의 민족관을 의심하지 말아달라고 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민족을 보는 눈에는 관점뿐 아니라 민족심리라는 것이 있습니다. 민족심리는 기질이나 감정, 정서도 같아야 한 민족이지 핏줄이 같고 말이 같고 역사가 같아도 지금 느끼는 심리가 서로 다르면 같은 민족이라 하기도 곤란합니다. 북한에서 김일성을 수령으로 모시고 혁명을 하는 자부심을 민족심리라고 내세운다면 그게 어떻게 용납되겠습니까?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하나>라는 노래는 노래가사만 본다면 통일지향적 이기고 호소성은 높지만 그것이 응원구호로 외쳐진다면 엄격하게 말해서 정치적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결국 정치적 구호가 스포츠 시합에서 외쳐지는 것이 되지요. 남쪽의 어떤 사람은 북한응원단원들의 미모와 미소를 못 잊어 <우리는 하나>를 외치겠지만 우리는 아직 하나가 되려면 민족심리부터 통일돼야 합니다.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사진은 평양시내의 공원에서 열린 탈놀이.
사진은 평양시내의 공원에서 열린 탈놀이.
사진-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북한에서는 한국에서 가위 바위 보라고 하는 것을 돌 가위 보라고 합니다. 바위를 돌로 바꾸고 순서도 바꿨습니다.


설 명절에서 정월 대보름에 이르는 기간이 우리 전통풍속 행사나 민속놀이가 가장 많이 행해지는 시기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민속놀이에 대해서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알아봅니다.


먼저 전통풍속 행사 중에서 민속놀이는 요즘도 많이들 행해지는지, 남북한은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 설명해 주시지요.


임채욱 선생: 전통풍속행사는 세시풍속(歲時風俗)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시풍속은 계절에 따라 이뤄지는 민속을 말하지요. 설이나 추석, 단오가 되면 그 때에 맞는 행사나 놀이를 매해 반복해서 하는 것이 세시풍속입니다. 제사를 지낸다든가 놀이판을 벌이는 것도 세시풍속을 따르는 것이지요. 음력 정월에 세시풍속이 가장 많지요. 그 중에서도 정월 대보름날 하루에 행해지는 것만 50여종으로 일 년 전체의 4분의 1이 됩니다.


음력 정월에 세시풍속이 많은 이유는 뭣 때문이겠습니까?


임채욱 선생: 아마도 달 때문이겠지요. 매일 같은 모양의 태양과는 달리 달은 커졌다가 작아졌다가 없어지기도 하니 이런 변화가 이야기꺼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지요. 하지만 남쪽이나 북쪽이나 지금은 세시풍속이 옛날 모습 그대로 행해지기 보다는 변형된 형태로 행해지기도 합니다. 민속놀이도 세시풍속의 하나로 행해지는데 이것도 도시화가 많이 된 남쪽에선 드물게 행해지고 북쪽에서는 아직은 정책적으로 강조돼서 남쪽보다는 많이 행해지고 있습니다.


음력정월에 행해지는 민속놀이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임채욱 선생: 윷놀이, 연날리기, 팽이치기, 제기차기, 널뛰기, 바둑, 장기 같은 것을 보는데 어른들은 윷놀이, 바둑, 장기를 하고 여자들은 널뛰기, 아이들은 연날리기, 제기차기, 팽이치기를 많이 하지요. 이런 것들은 남북한 다 같은데 윷놀이 경우 북한에서는 당조직이나 행정기관에서 주관하는 큰 시합도 열립니다. 큰 모판을 만들고 사람이 한 동, 두 동 하듯이 말이 되기도 하지요. 어린이 경우는 연날리기를 많이 하고 팽이치기도 합니다. 그런데 북한에선 연날리기를 연띄우기라 하고 계절상 단오 때 많이 타는 그네타기는 북한에선 그네뛰기로 말합니다. 줄다리기는 밧 줄당기기라고 합니다. 약간씩 다르지요. 가장 특이하게 다른 것이 가위 바위 보입니다.


가위 바위 보가 남북한에서 다르게 불립니까?


임채욱 선생: 북한에서는 한국에서 가위 바위 보라고 하는 것을 돌 가위 보라고 합니다. 바위를 돌로 바꾸고 순서도 바꿨습니다. 돌 가위 보는 공기놀이, 망차기, 팔씨름 등과 함께 민속놀이로 보는데 줄여서 돌가위 보라고도 합니다. 차례를 정하거나 승부를 가릴 때 이용한다고 풀이하고 있습니다.


언제부터 돌 가위 보라고 하는지요?


임채욱 선생: 광복당시엔 분명히 남쪽과 같이 가위 바위 보라고 했지요. 7, 80대 월남자들은 다 가위 바위 보라고 하지 지금처럼은 쓰지 않습니다. 1960년대 문화어운동을 벌이면서 이렇게 바꾼 것으로 보입니다. 하나 덧붙일 것은 돌 가위 보 순서는 일본이나 중국과 같다는 것입니다. 일본은 잔 켄 보, 중국은 젠다오 스터우 부 이렇게 말하지요.


화제를 바꿔서 가위 바위 보 유래를 들어봤으면 합니다.


임채욱 선생: 중국과 인도 유래설, 그리고 이집트유래설이 있지요. 중국 설도 두 가지인데 하나는 동물유래설이고 다른 한 가지는 술자리 손 싸움에서 시작된 어른들 놀이설입니다. 동물유래설은 뱀과 민달팽이과 연체동물인 괄태충, 그리고 개구리가 있을 때 뱀은 괄태충을 무서워하고 괄태충은 개구리를 겁내고 개구리는 뱀을 무서워하는 데서 한 동물만 절대적인 강자가 되지 않고 동물마다 강하면서도 약한 면을 가진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요. 또 술자리 손 싸움은 여흥으로 하던 어른들 놀이가 어린이놀이로 됐다는 것입니다. 이런 유래를 가지고 중국에서 17세기에 프랑스로 전해지고 세계에 퍼졌다고 합니다. 한편 인도유래설도 있습니다. 쥐(가위)와 호랑이(바위), 코끼리(보) 관계를 가지고 만들었다는 것이지요. 마지막으로 이집트유래설인데 이집트 파라오들 놀이로 만들어졌다는 것인데 정확하지 않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는 일제 때 들어왔고 아동문학가 윤석중이 가위바위보로 명명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가위바위보 놀이는 우리 민속놀이라고 보기도 역사가 너무 짧지 않나싶군요.


그럼 가위바위보 놀이는 우리 민속놀이가 아니라고 봐도 될까요?


임채욱 선생: 가위바위보가 세계 어느 곳에서도 있는 놀이라고 해서 우리 민속이 아닐 수는 없지

요. 연날리기는 전 세상 어느 곳에 다 있지만 우리 민속놀이가 되는 것처럼 들어 온지 얼마 안 되고 온 세상에 다 있는 놀이라고 해서 우리 민속놀이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겠습니다.


가위 바위 보는 어느 것도 절대강자가 될 수 없다는 가르침을 주는데 이것이 품고 있는 뜻을 좀 더 풀이해보면 어떨까요?


임채욱 선생: 이어령박사가 가위바위보를 소재로 해서 쓴 책이 있습니다. <가위 바위 보 문명론>이란 책인데요, 주먹과 보자기만 있는 이항대립 논리로는, 이건 서구식 게임논리인데요, 이런 것으로는 중국이 과거 내세우던 중화주의나 일본이 주장한 대동아주의가 오늘날에도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중국과 일본이 패권을 다투는 각축장이 되지 않을 수 없다고 보고 이를 극복하는 것이 한반도 역할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즉 대국주의를 지향하는 중국의 보자기와 경제대국을 지향하는 일본의 주먹사이에 위치한 한반도는 가위가 돼서 주먹(바위)에는 지더라고 보자기를 이기고 보자기는 주먹을 이기는 상생의 순환고리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세 나라가 새로운 문명을 만들어 나가야 된다는 주장입니다. 한반도라는 가위가 절단돼서 그 역할을 충분히 하지 못하면 중화(中華)를 부르짖는 중국과 대동아공영을 내세우는 일본이 동전던지기 같은 서구식 사상으로 결판을 내려 할 것으로 보지요. 그래서 한반도의 통일은 동북아시아의 발전조화를 위해서도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이라는 것이죠.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9일 강원도 평창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북한 응원단이 인공기를 흔들며 응원을 하고 있다. 뒤로는 태극기가 보인다.
9일 강원도 평창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북한 응원단이 인공기를 흔들며 응원을 하고 있다. 뒤로는 태극기가 보인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남북한은 유엔에 가입한 개별국가가 틀림없지만 서로는 한반도의 유일합법성과 정통성을 주장하면서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는 면을 보이게 되지요.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에서 남북한은 한반도기를 들고 입장했습니다. 이를 보는 많은 남쪽 사람들 중에는 착잡한 심정을 가진 사람도 있고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표시한 사람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개별 경기에서는 태극기는 휘날렸고 북한의 인공기도 게양됐습니다. 오늘은 남북한 국기가 가진 상징에 대해서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깃발의 주된 상징문양을 볼까요?


임채욱 선생: 태극과 오각별이라고 하겠습니다. 대한민국의 태극기는 태극문양이 가운데 있고 사방에 괘가 있는 국기입니다. 이런 국기는 문장기라고 하지요. 북한 국기는 가운데 붉은 색깔을 넓게 잡고 그 아래 위에 흰색 줄과 푸른색 줄을 그린 바탕에 깃대달린 쪽으로 흰 동그라미를 그려 넣고 그 안에 오각형별이 들어있는 문양입니다. 그래서 남홍색 오각별기라고 하지요.


태극문양과 오각별 문양이 가진 의미를 좀 자세하게 설명해 주시지요.


임채욱 선생: 태극문양 뿐 아니라 태극기 전체를 말하자면 이렇습니다. 먼저 태극기의 바탕인 흰색은 영토를 뜻합니다. 가운데 태극은 국민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4괘는 정부를 뜻합니다. 흰 바탕색은 평화를 사랑하는 우리 국민의 마음을 나타냅니다. 4괘는 하늘과 땅, 불과 물을 뜻합니다. 태극은 빨강색의 양과 파랑색의 음이 서로 대립하는게 아니라 서로 포옹하고 조화하면서 끝없이 순환하는 의미를 가집니다. 이러니 문학자 게오르기는 세상의 가장 철학적인 국기라고 했고 물리학자 닐스 보어는 태극이 자기의 양자역학 이론을 나타내는 문양이라고 그의 예복에 태극문양을 넣었다고 하지요.


북한 홍람오각별기 문양 설명도 해주시지요.


임채욱 선생: 흰색줄은 광명발전을 말하고 빨강색은 끓는 피를 상징하고 파랑색은 화평을 도모하고 원안에 있는 오각별은 민족의 진로와 역사적 방향을 제시한다고 합니다.


태극기는 우리가 다 알다시피 조선조 말에 제정됐는데 북한 인공기는 언제 만들어 졌습니까?


임채욱 선생: 광복되던 다음 다음해인 1947년 11월 중순에 작업이 시작됩니다. 북조선인민회의란 데서 헌법제정위원회를 만들면서 그 안에 한 무리의 미술가들을 소속시키면서 이른바 국장과 국기를 도안하도록 맡깁니다. 그렇지만 이들이 붉은 색, 파란색, 흰색 줄만 그려두고 원안에 그려 넣을 것을 몇 달이 지나도록 마무리 못하고 있을 때 김일성이 그 안에 별을 넣을 것을 지시합니다. 그것도 오각별입니다. 별은 별인데, 오각별을 강조하는 것은 뉴지랜드나 오스트랄리아처럼 육각형 별이 아니라 소련 국기의 오각별과 같다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미술가들이 도안을 잘하지 못하고 헤맬 때 김일성 지시로 완성됐다고 해서 북한에서는 이 깃발을 김일성이 만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완성된 깃발이 1948년 2월 헌법초안을 심의하면서 통과시키게 됩니다. 그리고 9월 8일 정식으로 채택하고 다음날 북한정권 창립일부터 공식적으로 사용됐습니다.


구체적으로 참여한 미술가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는 밝혀지고 있습니까?


임채욱 선생: 누구라고 밝혀진 것이 없습니다. 애국가 경우는 작사, 작곡자가 누구라고 밝히고 있는 것과는 달리 여러 미술가들과 도안사 들이 참여했고 결과적으로 김일성이 크게 관여한 것이니 딱히 누구라고 할 수도 없겠네요. 알려지기로는 주동적으로 이끈 사람은 신해균(1913~ ? )이라고 하는데 이 사람은 상해임시정부 내무총장, 법무총장 등을 맡았던 해공 신익희의 조카라고 합니다. 또 한 사람 김주경이란 미술가도 도안 과정을 증언하고 있어서 참여자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인공기에 대해서는 구소련 당국이 만들어 줬다는 설도 나왔지요. 북한도 깃발에 태극무늬를 넣으려했으나 소련당국이 모스크바 디자인제작소를 시켜서 만들어버렸다는 설이지요.


북한에서는 인공기 제정 이후에는 태극문양을 쓰지 않겠네요?


임채욱 선생: 그렇습니다. 공식적으로는 그런 문양을 쓰다가는 안 되겠지요. 인공기를 채택할 때도 반대가 많았어요. 정재용이란 대의원은 태극기를 사용해야 정통성을 살린다면서 반대하기도 했으나 그 때 헌법제정위원장이던 김두봉이 태극기의 태극은 주역에서 온 것으로 그것은 비과학적인 것이라는 등 몇가지 이유를 들면서 입을 막아버렸습니다.

그러나 인공기를 만들어 두고도 1948년 5월까지는 태극기를 사용했습니다.


태극기 문양인 태극에 대해서는 어떻게 봅니기까?


임채욱 선생: 태극에 대한 이론적인 설명은 지금도 하고 있지요. 태극이 기(氣)를 말하는 것이라고 유물론적 해석을 하지요. 그러면서도 태극문양을 이용도 하지요. 중국에 있는 북한식당을 보면 대문에 태극문양을 넣고 청사초롱도 달았는데 한국 여행객을 끌기 위해서지요.


국기는 한 나라 상징이기 때문에 서로가 존중해 줘야하는데 남북한 관계에서는 그것이 어렵지요?


임채욱 선생: 그렇지요. 남북한은 유엔에 가입한 개별국가가 틀림없지만 서로는 한반도의 유일합법성과 정통성을 주장하면서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는 면을 보이게 되지요. 그래서 상대방 국기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그것이 행동으로 나타난 사례가 많지요.


그런 사례를 한 번 볼까요?


임채욱 선생: 지금이야 국제행사에서 상대방 국기를 게양하는 것을 받아들이지만 2000년대 이전에는 어려웠지요. 쌀을 싣고 간 한국선박 ‘씨 아펙스’호 태극기를 내리게 하는가 하면 2000년에 들어와서도 서울에 공연차 온 평양학생소년예술단이 서울 선화예술학교에 가서 교실에 걸린 태극기를 떼 내라고 요구했고 이를 받아들인 사례도 있지요. 이보다 앞서 평양하늘에 태극기가 날리는 것을 막으려고 한 북한의 탁구회담 제의도 말해볼게요. 1979년 4월 제35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가 평양에서 열리게 되어 있는데, 두 달도 안 남은 때 북한은 남북한 단일팀 구성을 제의했지요. 명분이 그럴 듯하니 남쪽에선 거절하지 못하고 응했는데 네 차례 열린 회담에서 국기는 한반도 지도에 고려라고 쓰고 뒷면에는 고려탁구단이라 하자고 제안해서 결국 회담은 결렬됐지요. 이것은 당초부터 단일팀 구성이 목적이 아니라 회담결렬을 빌미로 한국의 참가를 저지하는데 있었고 북한은 결국 성공해서 평양하늘에 태극기가 날리는 것을 막았지요.


최근에는 북한도 국제행사에 태극기를 걸고 했지요?


임채욱 선생: 처음으로 평양하늘에 태극기가 걸린 것은 5년 전 9월 세계역도대회에서였지요. 국제관례상 게양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작년에도 여자축구대회에서 태극기가 걸리고 애국가가 연주됐지요. 하지만 한국에서는 2002년 9월 부산아시안대회 때 이미 인공기가 걸리고 인공기로 응원도 펼쳤지요.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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