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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코엑스몰 내 개장한 '별마당도서관'에서 한 시민이 윤동주 기념 전시품을 살펴보고 있다.
서울 강남구 코엑스몰 내 개장한 '별마당도서관'에서 한 시민이 윤동주 기념 전시품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북한 문학잡지 ‘조선문학’이나 ‘청년문학’에서도 올해 윤동주 기사는 안보였습니다. )

올해는 윤동주 시인 탄생 100주년으로 미국 워싱턴에서도 워싱턴 윤동주 문학회 주최로 기념행사가 지난 11월 11일 열리는 등 전 세계에서도 윤동주 시인을 기리는 행사가 열리기도 했습니다. 남한 연합뉴스도 지난 11월 2일 한국 조폐공사가 윤동주 시인 탄생 100주년을 맞아 기념메달을 출시했다고 보도 한 바 있습니다. 올해 1년 윤동주시인을 기리는 행사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통일문화산책 오늘은 윤동주 시인 탄생 100년 행사들과 함께 다시 한 번 윤동주가 간 길을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되새겨보려고 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윤동주 시인 기리는 행사가 많았는데 북한에서도 행사가 있었습니까?

임채욱 선생: 한국, 중국, 일본에서 별의 시인 윤동주를 기리고 추모하는 온갖 행사가 많았지요. 한데 북한에서의 행사는 알 수가 없습니다. 알려진 것이 없습니다. 북한 문학잡지 ‘조선문학’이나 ‘청년문학’에서도 올해 윤동주 기사는 안보였습니다.

그럼 한국에서 열린 행사부터 소개 좀 해주시지요.

임채욱 선생: 저도 모든 자료는 갖고 있지 못합니다. 한국에서는 시인협회, 문인협회가 1월에 세미나를 열었고 한국작가회의에서는 4월 뮨동주 문학의 밤을 열었습니다. 시인의 모교인 연세대에서는 2월에 교정에 있는 윤동주 시비 앞에서 추모행사를 열었고 연중 6차례에 걸쳐서 <윤동주와 나>란 제목으로 시인, 소설가, 영화감독, 연극연출가 등등이 강연을 했고 5월에는 금호아트홀에서 기념음악회를 열었습니다. 기념음악회는 4월 부산시립합창단의 연주회, 6월 광양시립합창단의 기념연주회, 그리고 여러 교회 단위의 공연 등으로 1년 내내 이어졌습니다.

중국에서는 어떤 행사가 있었나요?

임채욱 선생: 윤동주시인이 자란 중국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에서는 2월 추모행사가 열렸습니다. 시인의 묘소에서 열린 이 행사는 용정 윤동주 연구회주최로 용정과 연길시 시민 200여명이 참가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모든 참가자들이 윤동주 시인의 <서시>를 집체적으로 낭송했습니다. 3월에는 연길에 있는 연변대학에서 “100년의 기억, 윤동주를 읽다”라는 제목으로 특강이 있었고 4월 연변박물관에서 열린 ‘조선족 전통문화 한마당’에서도 윤동주를 기리는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프로그램들은 기본적으로 별 하나에 아름다움과 별 하나에 따뜻함과 별 하나에 우주와 별 하나에 우리들 조선족 자신을 담아내려고 했다고 합니다. 또 연변자치주 현지에서는 윤동주 자취를 찾아 생가와 묘소를 찾는 답사행사도 조직돼서 많은 조선족 동포들이 시인을 추모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다음 일본에서는 어떤 행사가 있었나요?

임채욱 선생: 먼저 서울시인협회가 일본 도쿄에서 <윤동주 시인이 그리운 밤>이란 주제로 한국에서 온 시인들 40여명과 현지 동포, 그리고 윤동주 시를 사랑하는 일본인들이 모인 가운데 강연과 시 낭송으로 윤동주시인을 기렸습니다. 또 11월에 서울예술단은 <윤동주, 달을 쏘다>라는 창작가무극을 도쿄 릿교대 캠퍼스에서 공연했습니다. 10월 교또시 우지시 우지강변에선 윤동주시비가 세워졌습니다. 이곳은 동주시인이 귀국을 앞두고 찾은 곳이기도 해서 뜻있는 장소인데, 시비를 세운 한국과 일본 참가자들은 이날 아리랑을 함께 부르고 시인의 <새로운 길>을 함께 낭송했습니다.

새로운 길을 낭송해보시겠습니까?

<새로운 길>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건너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올 한해 한국과 중국, 일본에서 윤동주 관련행사가 많이 열렸는데요, 다 연관이 있는 곳이지요. 그런 곳의 하나가 평양이기도 한데 북한에서는 관련 행사가 없었군요.

임채욱 선생: 아시다시피 윤동주시인은 만주땅, 지금은 중국 동북3성 중 하나인 길림성 연변자치주 용정땅 명동촌에서 태어나서 그 곳에서 소학교와 중학교를 다니다가 평양에 와서 숭실중학교를 다닙니다. 이 때 문학활동을 하게 되지요. 숭실중학이 문을 닫게 돼서 다시 용정으로 돌아가서 광명학원 중학부에 편입했다가 졸업합니다. 그리고 서울에 와서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서 릿교대학 영문과에 들어갑니다. 같은 해 도시샤대학 영문과로 다시 옮깁니다. 1943년 7월 귀향하려고 하기 직전에 항일운동 혐의를 받고 일본경찰에 검거됩니다. 2년형을 선고받고 후꾸오까형무소에 수감돼 있던 중 광복되던 해 2월에 생을 마칩니다. 28살의 젊은 나이였습니다. 그러니까 평양도 그가 활동했던 곳이지요.

작품에 대해서도 간단히 말씀해 주시지요.

임채욱 선생: 윤동주 시인은 정확히 말하면 정식 등단한 일도 없고 생전에 자기 시집을 낸 일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의 주옥같은 시들을 모아 온 친구가 있었고 가족이 있었습니다. 약 110편에 이르는 그의 유고들은 다행히 살아남아서 오늘날 순수하게 살아가고자 한 그의 의지를 이들 작품들을 통해 읽게 합니다.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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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7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러시아 혁명 100주년 기념 시위에서 공산당 지지자들이 레닌의 초상화를 들고 행진하고 있다.
지난 11월 7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러시아 혁명 100주년 기념 시위에서 공산당 지지자들이 레닌의 초상화를 들고 행진하고 있다.
ASSOCIATED PRESS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북한은 2009년 헌법에서 공산주의를 빼고 김일성 주의를 내세웠지요. 그러면서도 주체사회주의를 지향한다고 하고 있어서 유사 공산주의국가라고 해야 될 것 같습니다

 

12월도 중순으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올해도 한 달이 채 안 남았는데, 2017년 올해는 러시아 혁명 10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임채욱 선생: 네, 그렇습니다. 올해는 러시아에서 황제를 쫓아내고 공산주의 체제를 세운지 100년이 되는 해가 되죠. 전 세계적으로 번지던 러시아혁명의 물결은 지금 사라지고 그 혁명이 추구하던 사회주의, 공산주의 세력도 약화됐지요. 하지만 남북한에는 지금도 그 여파가 영향을 끼치고 있지요.

 

그런 뜻에서 오늘은 러시아혁명이 남북한에 가져온 영향과 향방을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짚어 보겠습니다. 먼저 혁명의 성격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죠.

 

임채욱 선생: 러시아혁명이 왜 주목되느냐 하면 그게 바로 공산주의 세상을 만들려는 혁명이기 때문이지요. 아시다시피 러시아혁명은 두 단계로 진행되죠. 먼저 100년 전 2월, 왕정을 끝내게 한 2월혁명이 일어났고 그 뒤 10월에 다시 볼쉐비키에 의한 혁명이 일어나서 마르크스 레닌주의 체제가 세상에 나타난 것이지요. 2월혁명은 국민의 생존에 필요한 식량조차 해결 못하면서도 가혹한 통치를 한 전제군주 때문에 일어났다면 10월혁명은 마르크스 사상에 따라 노동자 계급의 해방과 프롤레타리아 독재정권을 세우려는 급진파 공산주의자들이 정권을 탈취한 것이지요. 두 혁명 다 마르크스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일으키고 이끌었지만 2월혁명은 상대적으로 온건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정권을 잡았다면 10월혁명은 급진적이고 과격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정권을 잡은 것이지요. 여기에서 2월이나 10월은 그 때 러시아가 사용한 율리시스 달력으로 친 것이고 오늘날 그레고리우스 달력으로는 3월과 11월이지요.

 

한 때 도도하게 흐르던 러시아 혁명의 물결은 소련이 망하면서 세력이 약화됐지만 아직 공산주의를 추구하는 나라도 남아 있지요?

 

임채욱 선생: 지금 전 세계에 공산주의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는 4나라입니다. 중국, 베트남, 라오스, 그리고 쿠바입니다. 이 4나라는 헌법에 일당독재체제인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실시한다고 밝히고 또 제도상으로도 공산주의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나라들은 경제체제는 시장경제를 추구하더라도 정치체제는 일당독재를 그대로 지키고 있지요. 그리고 한 때 공산주의를 했던 나라들은 동유럽 여러 나라들을 비롯해서 열 손가락으로 헤아릴 정도는 되지요.

 

북한은 공산주의국가가 아닙니까?

 

임채욱 선생: 북한은 2009년 헌법에서 공산주의를 빼고 김일성 주의를 내세웠지요. 그러면서도 주체사회주의를 지향한다고 하고 있으니 유사 공산주의국가라고 해야 될 것 같습니다.

 

소련이 망하는 것을 보고 러시아혁명도 그렇게 허망하게 끝나는데 남북한에는 아직 그 그림자가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임채욱 선생: 마르크스 레닌주의에 따른 혁명은 한 나라의 혁명으로 끝나지 않는데 문제가 있었지요. 국제공산당 조직을 통해 다른 나라에 수출을 했지요. 1921년경 중국에 공산주의 사상에 따른 공산당이 들어서고 한반도에도 1925년이면 공산주의자들이 공산주의 운동조직을 만들고 그게 일제로부터 벗어난 뒤 분단으로 이어지는 정치세력으로 되는 것입니다.

 

올해 남북한에도 큰일들이 있었지요? 어떤 이는 혁명이 났다고까지 말하더군요.

 

임채욱 선생: 한국에서는 대통령이 탄핵되고 새 정권이 들어서는 마치 혁명적인 일이 일어났지요. 혁명이 아니라 혁명적이라고 한 것은 이런 정치행위가 체제의 변혁이 아니란 데 있지요. 대통령이 역사상 처음으로 탄핵돼서 대통령 자리에서 내려오고 새로 선거를 통해 대통령을 뽑는 행사가 있어도 혁명은 아니지요. 어떤 사람들은 이른바 촛불데모로 인해 정권이 바뀌었으니까 촛불혁명이 일어난 것이라고 하지만 혁명은 아니지요. 북한에선 올해 미사일을 쏘고 핵실험을 했지만 정치적으로는 특별한 변화는 없었습니다. 다만 지난 10월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7기 2차)에서 중앙위원들을 대대적으로 교체하면서 통치자 한 사람의 권력을 더 공고하게 했다는 것이 눈에 띕니다. 그리고 여전히 혁명을 수행해야 하는 ‘계속 혁명론’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계속 혁명론은 무엇인지 설명을 좀 해주십시오.

 

임채욱 선생: 마르크스나 레닌이 말하는 공산주의는 사회주의 단계를 거쳐서 오는 것입니다. 사회주의도 여러 단계의 혁명과업을 거쳐야만 달성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사회주의를 달성한 다음, 공산주의 사회가 완전히 될 때까지도 끊임없이 혁명을 계속해야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북한에서는 이것을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완전히 실현하는 것으로 보고 이것이 실현될 때까지 주체사상으로 무장해서 혁명을 계속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1958년에는 이를 강조하려고 ‘계속 혁신’, ‘계속 전진’ 같은 구호를 만들기도 했지요.

 

계속 혁명이니 하면서 북한주민들은 혁명으로 날이 새고 밤이 가는 생활을 언제까지 이어가야 하나요?

 

임채욱 선생: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고 하니까 언젠가는 그 끝이 보이겠지요. 러시아는 공산주의 정권이 망한 후에도 매년 10월혁명 기념일인 11월 7일 기념 군사퍼레이드를 실시해 왔는데 2005년부터는 이를 폐지해버렸습니다. 실제로 올해 11월 7일 군인 5000여명이 모스크바에서 퍼레이드를 했지만 이것은 혁명기념일과 관계가 없어요. 독일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날을 기리는 퍼레이드였습니다. 이를 보면 뭔가 집히는 게 있습니다.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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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철을 맞아 김치 담그는 평양여성들.
김장철을 맞아 김치 담그는 평양여성들.
사진-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북한에서도 김장을 겨울 절반식량이라고 보는 것은 남쪽이나 같지요. 한데 지금은 그 전처럼 배추나 무를 배급 받지 못하니 각 가정마다 김장을 준비하는 게 힘 든다고 합니다.

늦가을에서 겨울로 들어섰습니다. 지금 김장철이지요? 아니 김장도 다 끝나가고 있겠군요. 통일문화산책 오늘도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남북한에서의 ‘김장’에 대해 이야기 나눠 봅니다.

이미 김장을 마친 가정도 있겠지만 지금 한창 김장철이겠지요.

임채욱 선생: 예로부터 늦가을에 김장을 담그는 일은 어느 집에서나 큰 행사였지요. 온 가족이 달려들어 치르던 일이어서 하나의 김장문화라고 까지 할 수 있지요. 그래서 2013년에는 김치를 담그고 나누는 문화라는 뜻에서 유네스코가 인정하는 인류무형유산으로 채택됐지요. 한국이 제출해서 인정된 세계인류무형유산 19개 중 하나지요.

네. 김장은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이 겨울철을 나기 위해 준비하면서 김장이 반 식량이라고 까지 할 정도로 중시되던 식생활문화의 한 단면인데 요즘은 그렇게 까지 중요한 식품으로 치지 않는 경향이 있지요?

임채욱 선생: 워낙 좋은 먹거리가 많이 나오니까 겨울철에 꼭 김장김치 아니더라도 먹을 게 많지요. 또 겨울철에도 신선한 채소를 구할 수 있으니 김장을 꼭 해야 하는가 하지요. 하지만 아직은 남북한 다 김장을 중요한 일로 치고 있고 김치축제도 열고 있지요.

김치축제는 어떤 것이 있었나요?

임채욱 선생: 서울에서는 11월 초 사흘간 서울광장(서울시청)에서 제4회 서울김장문화제가 열렸는데요, 이 행사는 앞에서 말했듯이 김장문화가 유네스코 무형문화제로 채택된 것을 기념해서 서울시가 그 이듬해 2014년부터 연 것입니다. 서울 25개 각 자치구와 기업과 사회단체, 그리고 외국인들이 참가했는데 5000명이 김치를 담그는 장관을 연출하기도 했지요. 이렇게 만들어 진 김치는 각 자치구에 사는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눠 줬다고 합니다. 나눔의 문화를 실천한 것이지요. 김치를 담그는 한편에선 노래와 춤이 있었고 신명 속에 김치를 이용한 온갖 음식도 선보이고 소금과 양념 장터도 서곤했지요. 남도도시 광주시에서도 17일부터 사흘간 세계 김치축제를 열었습니다. 여기에는 우리나라 김치뿐 아니라 세계 각 나라의 김치도 선보이고 담그는 법도 서로서로 공유했다고 합니다. 그 밖에도 많지요.

북한에서도 김장은 큰 행사일터인데 어떤 모습인지요?

임채욱 선생: 북한에서도 김장을 겨울 절반식량이라고 보는 것은 남쪽이나 같지요. 한데 지금은 그 전처럼 배추나 무를 배급 받지 못하니 각 가정마다 김장을 준비하는 게 힘 든다고 합니다. 하지만 김장철이 되면 북한 매스컴에서도 김장하는 모습을 소개하고 김치 담그는 법을 알려 주기도 합니다. 일찍이 선대 통치자 김일성이 “김치는 조선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부식물의 하나”라고 까지 말했으니 지역마다 나름대로 김장거리를 준비하는 것이 큰 일거리지요.

그런데 요즘은 가정에서 김장을 담그는 것보다 김치생산공장에서 만든 것을 사먹는 가정도 많지요?

임채욱 선생: 그 점은 남북한이 다 같은 것 같습니다. 북한에서도 김치공장이 있어서 김치를 생산합니다. 여성들의 무거운 가정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공업적 방법으로 김치를 만들게 했는데 아파트생활에 편리하고 식생활을 위생문화적으로 조직할 수 있어서 좋다고 합니다. 그러나 농촌지역이나 도시 일부 가정에서는 여전히 집에서 김장을 직접 담근다고 합니다. 김일성은 1960년대 언젠가 과학원 함흥분원을 찾았을 때 김치를 1층 땅에 묻어두었다가 아파트 높은 층까지 올려가는 일이 힘드니 아파트 안에서 김치를 저장할 방법을 찾아보라 했는데도 과학자들이 아직 해결 못하고 있다면서 꾸중을 한 일도 있습니다. 아마도 남쪽에서 만들어 낸 김치냉장고 같은 것을 기대했겠지요. 공장김치에 대해서는 김정일도 관심을 두고 1980년대 중반 어느 날 공장김치 맛을 한 번 보자고 해서 급히 가져온 김치를 맛본 일도 있지요. 이 자리에서 그는 고추는 맛을 돋울 만큼만 넣어야지 너무 많이 넣으면 위를 자극해서 건강에 안 좋다는 말까지 합니다.

김장김치 자체는 남북한에서 차이가 나지 않겠지요?

임채욱 선생: 대체로 그런 것 같습니다. 북한에서 김장김치는 통배추 김치, 동치미, 보쌈김치, 깍두기, 갓김치, 짠지 등인데 이건 남쪽에도 그대로 다 있는 것이지요. 다만 양념은 북한이나 남한이나 지역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겠지요. 겨울김치라고 할 김장김치 외에도 북한에서는 봄김치, 여름김치, 가을 김치 등을 나누는데 봄김치로는 풋김치, 나박김치, 들나물김치, 참나물 김치 등이 있다고 하고 여름김치로는 오이김치, 오이소박이, 파김치를 말합니다. 또 가을김치로는 무통김치, 보쌈김치, 깍두기를 말합니다. 남쪽과 차이 나는 게 없습니다. 우리나라 김치는 오래 전부터 있어 온 민족의 식품이고 김치를 담그고 나누는 김장문화가 유네스코무형문화재가 되는 것은 당연한 것 같군요. 기록대로라면 김치는 고려시대부터 있어 온 식품이고 김장은 집집마다 서로 도와가며 품앗이하는 좋은 풍속을 낳은 문화입니다. 현대생활에 좀 맞지 않은 부분은 있지만 서로 돕고 나눈다는 의미에서는 좋은 전통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김장은 여전히 우리의 늦가을이나 초 겨울철 중요행사로 계속 자리매김 되리라고 봅니다.

여기서 잠시 김장철을 맞은 북한주민들 배추와 무값이 올라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는 소식인데요. 북한 내부소식을 김지은 기자가 보도로 듣겠습니다.

북한에서 11월은 한해의 반년식량을 마련하는 김장철로 주민들의 생계대책에 아주 중요한 시기입니다. 알곡농사도 형편이 안좋은데다 배추와 무 농사도 예년에 없이 흉작이어서 남새가격이 계속 뛰어오르는 상황이라고 현지소식통들은 밝혔습니다.

함경북도의 한 소식통은 11월 5일 “김장철을 맞아 배추와 무값이 하루가 다르게 오르면서 주민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면서 “한창 김장을 담글 때인데 남새물량이 부족하여 올해는 김장을 못하는 세대들이 많을 것”이라고 자유아시아방송에 전했습니다.

소식통은 “청진시 청암구역 직하협동농장은 남새농사를 기본으로 하는 국영농장”이라며 “작년에 당중앙(김정은)에서 평양시 만경대구역 장천남새협동농장을 방문하면서 각 도에 본보기 농장을 만들도록 지시해 직하협동농장도 새롭게 단장했다”고 언급했습니다.

소식통은 또 “직하협동농장은 인근의 수성천과 그 지류인 직하천 사이에 형성된 넓은 밭 면적으로 하여 청진시에서 남새농사의 최적지로 꼽힌다”며 “하지만 올해는 남새농사가 예년에 없는 흉년이라 남새공급량이 크게 부족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소식통은 이어서 “직하협동농장은 본보기 농장이라 도당과 도인민위원회 산하 무역국에서 수년간 중국산 비료와 농약, 필요한 농사설비까지 보장했기에 그나마 수확량을 늘릴 수 있었다”고 덧붙였습니다.

소식통은 그러면서 “올해는 중국산 비료와 농약 수입이 전면 차단되면서 가을 남새농사가 흉년이 들었다”면서 “농장현지에서 배추는 kg당 우리(북한)돈 600원, 무는 400원에 팔리고 있지만 남새물량이 턱없이 부족해 실제로 구입할 수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와 관련 함경북도의 또 다른 소식통은 7일 “김장철이 한창인데 대폭 올라버린 배추와 무값은 아예 내릴 줄을 모른다”면서 “특히 도당의 지시로 남새농장에서 주변 군부대에 남새필지를 분배해 줘 주민들은 남새부족에 시달리고 있다”고 자유아시아방송에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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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조전중앙텔레비전이 2004년 12월 27일 복권형 인민생활공채 1등 5천원 추첨결과를 방송한 장면.
사진은 조전중앙텔레비전이 2004년 12월 27일 복권형 인민생활공채 1등 5천원 추첨결과를 방송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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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남쪽에서 복권이 시작된 것은 다음 해에 런던에서 열릴 올림픽 참가 선수를 후원하려고 올림픽후원금이란 이름으로 발행된 것이고 북한에서는 6.25전쟁 중에 조국보위복권이란 이름으로 발행됐습니다.

한국인들은 좋은 꿈을 꾸고 나면 다음 날 ‘복권 사야지’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정말 꿈과 복권 당첨은 관계가 있을까? 꿈에 의지해 복권을 산 당첨자 122명을 조사했더니 돌아가신 부모님이나 조부모님을 꿈에서 보았다는 사람이 24명, 돼지꿈을 꾸었다는 당첨자가 21명에 달했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구더기나 대변, 불, 동물과 관련된 꿈을 꾸었다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통일문화산책 오늘 이 시간에는 남북한에서 복권이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어떻게 기능하는가 하는 것을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이야기 나눕니다.

임채욱 선생: 네, 복권은 매번 기대를 어긋나게 하지만 혹시 행운을 가져다 줄까 하고 또 사게 되는 물건이죠. 복권을 대하는 문화가 남북한에서 다를까요?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복권은 언제부터 시작됐을까요?

임채욱 선생: 일제시대를 제외하고 광복 후 복권은 남쪽에서 먼저 나옵니다. 1947년 12월인데,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 전이지요. 북쪽에선 6.25 전쟁 중에 처음 시작됩니다. 남쪽에서 복권이 시작된 것은 다음 해에 런던에서 열릴 올림픽 참가 선수를 후원하려고 올림픽후원금이란 이름으로 발행된 것이고 지역도 서울에서만 판매됐습니다. 북한에서는 6.25전쟁 중에 조국보위복권이란 이름으로 발행됐습니다.

남북한에서 복권발행은 그 뒤 어떤 모습으로 이어져 옵니까?

임채욱 선생: 한국에서는 1949년 10월부터 다음 해 6월까지 이재민구호자금을 만들 목적으로 복권이 발행되다가 전쟁으로 중단되었지만, 한창 전쟁 중이던 1951년 7월 임시수도인 부산에서 애국복권이 나옵니다. 이 복권은 인기가 있었지요. 추첨식도 있었지만 당첨을 바로 알 수 있는 개봉식도 있었고 1등은 액면가 1만 배가 되니 너도 나도 이걸 사려고 덤벼들었다고 합니다. 부산시청 앞과 국제시장 등 열 곳에서 판매가 시작되자 사람들이 모여들어 북새통을 이뤘고 경찰관이 동원돼서 질서를 잡았다고 합니다. 이 애국복권은 산업부흥자금 마련을 목적으로 판매됐고 1957년까지 이어졌다고 합니다. 그 뒤 1963년부터는 주택복권이 나오고 그 뒤 올림픽복권, 문예복권, 스포츠복권이 나오다가 지금은 연금복권, 로또복권 외에도 온갖 복권이 다 나오고 있지요.

그럼 북한 복권 발행을 말씀해주시죠.

임채욱 선생: 북한도 조국보위복권 발행 이후에도 여러 형태의 복권이 발행돼오는데 1990년대에는 인민복권이 나왔고 최근에는 500원, 한국돈 5000원 정도 되는 체육복권이 인기 있다고 합니다. 인민복권은 1991년 11월 인민들 문화정서생활을 흥성하게 하고 사회주의 건설에 보탬을 주려고 발행한다고 밝혔고 최근 인기 있는 체육복권은 당첨자가 텔레비전이나 선풍기를 가져갑니다. 북한도 복권발행 목적은 경제발전과 인민생활 향상입니다. 추첨도 평양인민문화궁전 같은 큰 건물에서 텔레비전으로 중계방송도 하는 가운데 합니다. 또 북한에서는 복권은 아니지만 인민생활공채라는 복권 비슷한 추첨제 저금도 있습니다. 이것은 2003년 3월부터 그해 11월까지 발행됐는데, 당첨되면 당첨금을 돌려주고 안된 경우는 몇 년 뒤 상환하는 형태입니다.

남북한 복권의 성격이 다른 면이 있습니까?

임채욱 선생: 없지요. 발행목적이나 방법에서 차이가 나는 것도 아니지요. 차이가 나는 부분이라면 북한에서는 은행 등 국가기관에서만 발행한다고 못을 박고 있습니다. 또 북한에선 상금 대신에 상품을 주로 준다는 것은 다르다고나 할까요? 북한에서는 자본주의 사회 복권은 근로자들을 착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자본가 치부수단으로 발행된다고 말하지만 결국 같은 목적이지요.

복권으로 인한 부작용도 있겠지요?

임채욱 선생: 물론 없다고 할 수 없지요. 복권 때문에 일어나는 가족 간의 갈등이나 다툼이 많지요. 복권당첨은 행운이지만 이 행운은 행운으로 끝나지 않고 불행을 가져 온 사례가 많지요. 작년에 한국 경상남도 양산에서는 로또복권에 당첨된 아들이 자기 혼자만 당첨금 다 쓴다고 처벌해달라는 피켓을 든 부모도 있었습니다. 북한에서는 페레톤이란 규정 때문에 그런 사실이 보도될 수 없어서 알기 어렵지만 사람 사는 동네 이런 일에는 다 비슷할 것 아닐까요?

복권의 역사는 어떻게 됩니까?

임채욱 선생: 세계최초 복권은 이탈리아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1930년 피렌체 지방에서 피렌체복권을 발행했다는데요, 당첨금을 현금으로 지급하는 지금의 복권형태로서는 이게 처음이라는 것이지요. 이런 형태가 아니고는 구약성서에도 제비 뽑기에 의한 재산분배 기록이 나오고 로마시대 네로황제나 아우그수투스황제가 재산이나 노예를 나눠주기 위해 복표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지요. 우리나라에서도 통이나 상자 속에 계원의 이름이나 번호를 적은 알을 넣은 뒤 통을 돌려 당첨을 결정하는 산통계도 있었다고 하지요. 일제말기 그러니까 광복되기 한 달 전인 1945년 7월에 일제가 군수산업 자금을 조달하려는 목적으로 복권을 발행했으나 시행도 못했지요.

복권은 세계 각 나라가 다 발행합니까?

임채욱 선생: 세계 100여 개 이상 나라들이 복권을 발행하는데 각국 복권발행기관들의 모임도 있지요. 국제복권협회(AILE)라는 단체인데 2년마다 총회를 여는데 한국은 1980년에 정회원으로 가입해서 복권 관련 각종 정보도 교환하고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잠시 대북 매체 NK 뉴스를 인용 자유아시아방송이 북한 복권과 관련해 보도한 내용입니다. ‘북한에서도 평양에서도 복권 인기’ 제목 인데요.

북한 평양 시내 한복판에서 복권 판매소 두 곳이 생겨 인기를 끌고 있다고 대북 매체 NK뉴스가 2016년 11월 평양을 방문한 소식통을 인용해 3월 보도했습니다.

이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 정부가 운영하는 ‘체육추첨’ 판매소와 평양시 형제산 지점 서포시장 저금소의 ‘즉시지불추첨’ 판매소 두 곳이 최근 영업을 시작하면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체육추첨’ 판매소에 붙은 홍보문을 살펴보면, 5개 번호를 한 번에 맞춘 1등은 컴퓨터를, 여러 번 시도 끝에 5개 번호를 맞춘 2등은 태블릿 PC, 즉 판형 컴퓨터를 받습니다.

이 밖에 번호 4개를 맞춘 3등 두 명은 전자제품이 우승상품으로 수여되며 나머지 번호 2개를 맞춘 1천200명과 번호 1개를 맞춘 3,000명은 각종 상품을 받게 됩니다.

소식통이 사진을 찍은 또 다른 ‘즉시지불추첨’ 판매소의 안내문은 해상도가 낮아 자세한 내용을 알 수는 없지만, 즉석에서 우승 여부를 알 수 있는 윷놀이, 묘나무 추첨, 그림, 카드 등 5가지 복권이 판매되고 있습니다.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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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 안창호 선생이 미국에 세운 최초의 한인촌 '파차파 캠프'의 사적지 현판식이 지난 3월 23일 캘리포니아 주 리버사이드 시에서 진행됐다. 사진은 파차파 캠프 구성원들의 기념사진.
도산 안창호 선생이 미국에 세운 최초의 한인촌 '파차파 캠프'의 사적지 현판식이 지난 3월 23일 캘리포니아 주 리버사이드 시에서 진행됐다. 사진은 파차파 캠프 구성원들의 기념사진.
사진-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통일문화산책 오늘은 애국 계몽운동, 애국 문화운동, 즉 우리 민족의 역사를 보는 남북한의 관점이 차이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를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이야기 나누겠습니다.

임채욱 선생: 오늘날 남북분단에 영향을 준 100년 전 우리 선조들이 한 일을 두고 한국에서는 어떻게 평가하고 북한에서는 어떻게 평가하는가 하는 문제이지요. 서로 같은 시각일 수도 있고 다른 시각일수도 있지요. 관점의 차이가 있다면 그게 통일문화를 형성하는데 어떤 영향을 줄까 하는 것을 살펴보려는 것입니다.

 

애국계몽운동과 애국문화운동은 유사한 운동 같기도 한데 같은 내용인가요?

 

임채욱 선생: 맞습니다. 같은 내용입니다. 표현상 남쪽에서는 애국계몽운동으로 말하고 북쪽에선 애국문화운동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표현상 차이는 있어도 내용은 같다는 것이군요. 그럼 두 운동에 대해 설명해 주시지요.

 

임채욱 선생: 먼저 이 운동이 있었던 시기를 말씀 드리죠. 여러분, 1905년에 우리나라에서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이때는 우리나라가 대한제국이란 이름으로 고종이 황제라고 칭하던 시기입니다. 이보다 앞서 1895년에 못된 일본 놈들이 우리 고종의 왕비인 민비를 시해한 사건이 있었죠? 이에 겁을 먹은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에 피신을 하지요. 한 나라의 왕이 남의 나라 공사관에 피신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하지만 어쩝니까? 나라 힘이 없으니 그리 되는 것 아닙니까? 고종은 무려 1년이나 러시아 공사관에 있다가 우리 왕궁으로 돌아옵니다. 그게 1897년 2월입니다. 이 때 그 때까지 서로 다투던 개화파와 수구파가 힘을 합쳐서 우리가 청나라 압박에서 벗어나려면 우리도 황제의 나라가 돼야겠다고 나라이름도 제국으로 바꾸고 왕도 황제로 부르기로 결정합니다. 이래서 성립된 나라가 대한제국이고 이때가 1897년 10월입니다. 대한제국을 세우기까지는 개화파나 수구파가 협조가 됐는데 정작 나라를 제국으로 만든 뒤 의견이 갈라집니다. 개화파는 민권을 늘리고 황제권한을 줄이는 방향으로 입헌군주제를 만들자고 하고 수구파는 러시아와 친하게 지내면서 전제군주제를 하자고 주장합니다. 입헌군주제를 하게 되면 오늘날 국회와 같은 기구가 생기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어떻게 진행됩니까?

 

임채욱 선생: 개화파는 독립협회를 중심으로 입헌군주제를 주장하는 운동을 펴는데 수구파가 생각하기를 그렇게 되면 자기들은 정권에서 쫓겨나게 된다고 보고 고종에게 거짓으로 개화파가 고종을 물러나게 하는 공화제를 수립하려 한다는 보고를 합니다. 이에 자기를 물러나게 하는데 가만히 있을 고종이 아니었죠. 개화파를 모두 잡아들이고 수구파를 중심으로 한 전제군주 정부를 만듭니다. 이렇게 해서 개화파의 뜻은 사라지고 1905년 러시아와 전쟁을 해서 이긴 일본은 노골적으로 우리 대한제국에 치안권을 내놓아라, 보호조약을 체결하자, 하다가 1910년 8월 드디어 외교권도 빼앗아 버리지요. 이게 우리나라가 일본에 식민지가 되는 과정이었지요. 그러니까 일본이 러시아에게 전쟁에서 이긴 1905년부터 나라가 완전히 빼앗긴 1910년 사이에 우리나라 지식인들이 가만있었겠습니까? 개화파 지식인들은 개화를 하고 나라를 스스로 강하게 하자는 자강운동을 벌였지요. 개화파뿐 아니라 수구파 지식인 중에서도 들고 나섰지요. 이런 운동을 두고 한국에서는 애국계몽운동이라 하고 북한에서는 애국문화운동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네. 이제 두 표현의 개념을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 설명내용도 같습니까, 아니면 다릅니까?

 

임채욱 선생: 네. 뭐라고 할까요. 대동소이라고 할까, 전반적으로 같은데 세부적인 부분은 다르다고 할지, 남쪽에선 이 운동이 어디까지나 진보적인 지식인 위주로 추진됐다고 한다면 북쪽에선 지식인들이 인민들의 반일투쟁에 고무돼서 나섰다고 말하지요.

 

그럼 남북한에서 설명하는 내용을 구체적으로 말해주시죠.

 

임채욱 선생: 애국계몽운동이나 애국문화운동은 다 국권회복운동의 일환으로 일어난 것입니다. 일제에 의해 국권이 빼앗기고 나서, 나라가 힘이 없고 개개인이 실력이 모자라서 이렇게 됐으니 이제부터는 힘을 기르고 실력을 양성하자는 자각이 일어났지요. 그래서 애국계몽운동이나 애국문화운동은 일반적인 계몽운동이나 문화운동이 아니라 1905년에서 1910년 사이에 일어난 것을 말합니다. 일반적인 계몽운동이나 문화운동은 1905년 이전에도 있었고 1910년 이후에도 있었지요. 이런 운동은 목표가 국권회복입니다. 빼앗기고 있고 빼앗긴 나라를 다시 찾는 데는 이런 계몽운동이나 문화운동만 한다고 됩니까? 직접 총을 들고 일제강도와 싸우는 의병활동도 국권회복운동이지요. 그러니까 국권회복운동이란 넓은 의미에서 보면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서 보탬이 되는 계몽운동과 문화활동을 한 것을 말하지요.

 

어떤 형태로 진행됐는지요?

 

임채욱 선생: 크게는 교육을 통해 실력을 기르자는 신교육운동, 언론을 통해 계몽을 하자는 언론운동, 민족산업을 장려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산업진흥운동, 신문화 내지 신문학을 내세우는 신문화운동, 우리 역사를 다시 고쳐 읽고 쓰자는 국학운동, 민족종교를 찾자는 민족종교운동 등으로 전개했지요. 하나하나는 설명이 길어집니다만 이 모든 운동은 자체적인 의미도 있지만 어떤 경우 국권회복을 무력 활동 형태로 전개하는데 도움 되는 방향으로 이뤄졌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 운동의 주체는 지식인이라고 하셨는데 어떤 단체, 어떤 사람들이었는지요?

 

임채욱 선생: 앞에서 지식인이라고 말했는데 지식인 중에서도 개화를 꿈꿨던 사람들, 우리 스스로 힘을 길러야겠다는 자강파 지식인들이 단체를 통해서도 하고 애국적인 지식인들이 개별적으로도 하고 했지요. 대표적으로 독립협회가 있고 신민회가 있고 대한자강회, 서우학회, 기호흥학회, 관동학회, 교남교우회 등 아주 많은 단체들이 있습니다. 독립협회는 잘 알 것을 보고 신민회를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1907년 안창호가 발기해서 만든 신민회란 단체는 비밀단체로 운영됐는데 회원이 800명입니다. 800명 지식인이 움직였다는 것이지요.

 

활동형태는 구체적으로 어떠했는지요?

 

임채욱 선생: 신교육 운동은 무엇보다 학교를 많이 설립하려 했지요. 사립학교설립운동을 벌여서 1907년에서 1909년 4월 사이에 우리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세운 학교가 3000여개 됐다니 얼마나 대단한 열의입니까. 언론운동은 대한매일신보, 황성신문, 만세보 등을 창간해서 민중들의 계몽에 앞장섰지요. 일제는 신문을 검열하고 탄압했지만 이를 무릅쓰고 일제침략을 규탄하고 국권회복을 목표로 언론활동을 전개했지요. 당시 대한매일신보는 의병운동도 지원하는 활동을 펼쳤지요. 산업진흥운동은 민족산업을 키우기 위한 운동으로 우선 나라 빚을 갚자는 운동도 벌이고 담배를 끊자는 운동형태로 전개됐습니다.

다음 신문화 운동은 독립과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소설과 노래를 만들고 보급시키는 운동을 벌였고 국학운동은 우리글을 알고 우리 역사를 옳게 알자는 운동형태로, 주시경은 국어운동을 했고 신채호는 역사를 새롭게 해석하는 노력을 기우렸습니다. 다 빛나는 애국 활동 이였지요. 또 민족종교운동도 일어났는데 단군을 국조로 하는 신흥종교를 이끈 나철은 민족의식을 고취하는데 큰 역할을 한 것이지요. 이 정도로 하고 자세한 것은 다음 기회에 또 말씀 드리지요.

 

애국계몽운동이나 애국문화운동이 성공을 했다면 그 때 이미 독립이라는 좋은 결실이 있었을 텐데, 그런 것은 없었던 아닙니까. 이 운동의 의의라고 할까, 결과를 말해주시지요.

 

임채욱 선생: 이 운동이 당장 독립운동을 펼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다만 무력항쟁을 하는 의병이나 독립군을 결과적으로 도와서 국권회복에 보탬이 되려 한 것이니까 그 목적은 이뤄낸 것이라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이 운동을 통한 자각과 실력이 있었기에 1919년 3월 전국적으로 일어난 3.1만세운동으로 이어진 것이지요.

 

한국에서 말하는 애국계몽운동과 북한에서 말하는 애국문화운동에서 결정적으로 차이 나는 부분은 있습니까?

 

임채욱 선생: 사실에 관한 서술에는 차이가 없는 거나 마찬가집니다. 하지만 평가에서는 한국에서 보다는 부분적으로 부정적인 면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긍정적으로 평가를 합니다. 이 운동이 부르죠아 민족주의에 기초하고 있었기 때문에 제한성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봉건주의 사상을 바꾸는 것도 못했고 일제에게 무력으로 덤벼드는 무력투쟁에 합류를 못한 운동으로 평가한다는 것 외에는 전반적으로는 같습니다. 이런 견해차이 정도라면 앞으로 통일문화를 형성 하는 데서는 아주 긍정적일 수 있습니다.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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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송파구 롯데호텔월드에서 열린 '제11회 세계한인의 날 기념식 및 2017 세계한인회장대회 개회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에게 남창규.오공태 세계한인회장들이 지장을 찍어 만든 평화의 월계관 액자를 전달하고 있다.
서울 송파구 롯데호텔월드에서 열린 '제11회 세계한인의 날 기념식 및 2017 세계한인회장대회 개회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에게 남창규.오공태 세계한인회장들이 지장을 찍어 만든 평화의 월계관 액자를 전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세계 180여개나라에 우리 동포들이 산다고 했지만 중국, 미국, 일본, 러시아 순으로 많이 분포돼 있습니다.

 

세계한인의 날이 있습니다. 전 세계에 흩어져 사는 우리 해외동포들이 자리를 함께 하는 행사 입니다. 통일문화산책 오늘은 세계한인의 날을 보내면서 해외동포(Korean Diaspora)를 보는 남북한의 시선 제목으로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이야기 나눕니다.

 

먼저 올해 세계 한인의 날은 언제 열렸습니까?

 

임채욱 선생: 네. 지난 9월 말에 서울에서 있었지요. 세계한인의 날 행사인데 대통령도 참석한 행사였지요. 올해가 11회째니까 10년 전부터 행사를 해오고 있지요.

 

대통령이 참석했다면 비중이 있는 행사군요. 어떤 성격의 행사인지요?

 

임채욱 선생: 전 세계에 거주하는 재외동포들을 위한 행사로 한마디로 동포들의 권익을 지켜주고 동포들의 유대감을 높이려는 데 목적이 있지요. 재외동포재단이 주최한 행사인데 우리 동포들이 각기 거주하는 나라에서 모범적인 시민이 되고 그러면서도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고 서로 도와서 서로서로 발전하는 계기를 만들려는 것이지요.

 

이번에 많은 해외동포들이 참석했겠군요.

 

임채욱 선생: 한국 국적이 아닌 동포들이 대상인데 이번에 80여개 나라에 거주하는 한인대표 400여명이 참가했습니다. 현재 전 세계에 사는 한국동포는 740여만 명이라고 합니다. 대개 180여개 나라에 흩어져 있지요. 이 수치는 대략 남북한 인구의 10%입니다. 이 비율은 매우 높은 것입니다. 유태인 빼고는 제일 높습니다. 유태인은 특별한 경우라고 본다면 인구 대비 해외동포가 많은 것은 한민족이 가장 높습니다. 중국의 해외거주자, 즉 화교라는 사람들도 3500만 명이지만 모국의 인구 대비로는 2%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탈리아가 한국인 다음으로 비율이 높아서 8%가량이 되고 영국이 6%, 러시아가 2%가 되는 것으로 통계가 나옵니다.

 

높은 비율이군요. 이것이 바로 디아스포라인데,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습니까?

 

임채욱 선생: 유태인이야 2천년에 걸쳐서 이뤄진 민족이산, 디아스포라지만 우리민족은 짧은 기간에 세계에서 가장 디아스포라 비율이 높은 것이지요. 나라가 일본에 망하면서 시베리아로, 만주로 떠나갔고 분단과 전쟁 때문에 또 세계 각지로 흩어져 간 것이지요.

 

민족 디아스포라 분포는 어떻게 됩니까?

 

임채욱 선생: 세계 180여개나라에 우리 동포들이 산다고 했지만 중국, 미국, 일본, 러시아 순으로 많이 분포돼 있습니다. 중국 250여만 명, 미국 200여만 명, 일본 90여만 명, 러시아 50여만 명 쯤 됩니다. 아무래도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세 나라에 많이 모여 있지요. 미국은 분단 이후 집중적으로 많이 갔지요. 그런데 미국이나 다른 나라 이주는 자발적이지만 중국 동북3성 거주 조선인이나 일본에 사는 동포, 러시아,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은 식민지 당국의 수탈과 강제징용과 같은 정치적 탄압 때문에 간 것이지요.

 

한국정부는 재외동포재단을 통해 해외에 사는 한민족들 귄익을 옹호하고 도와주려고 하는데 북한에서는 해외동포들을 어떻게 봅니까?

 

임채욱 선생: 북한헌법에는 조선국적을 가졌던 조선인민이나 그 자녀들로 국적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은 모두 북한 공민으로 인정한다고 돼 있습니다.(사회주의헌법 제62조) 하지만 현실적으로 북한은 그 능력의 한계 때문에 해외동포들의 권익옹호라든가 정체성 확립과 같은 문제에는 눈을 돌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본에 있는 재일조총련에 속한 동포들에게는 교육비도 보내고 한다지만 그 액수보다 웃도는 돈을 모아서 북한으로 보내고 있지요. 동포들을 돌볼 능력이 없습니다.

 

북한에는 해외동포를 위한 정책은 없다고 봐야 하겠군요.

 

임채욱 선생: 북한에서도 해외동포위원회라는 조직이 있어서 해외동포들 문제를 처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조직이 하는 일은 해외동포들의 정체성 확립이라든가 권익 옹호 같은 문제들 보다 전반적으로 북한을 지지하는 동포들을 중심으로 한 통일전선 형성에 관심을 더 두고 이런 일에 더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보다 해외동포들에 대한 연구자료나 통계자료도 축적된 것이 거의 없습니다. 해외동포들이 민족이산의 결과로 온 역사의 산물이란 것을 외면합니다. 특히 시베리아 지역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된 고려인 동포들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있는 듯합니다.

 

이들 해외동포들, 특히 중앙아시아 동포들도 한반도 통일에 자산으로 쓰일 수 있다고 전에 이야기 한 바 있지요?

 

임채욱 선생: 네, 그렇게 말씀 드린 것으로 기억합니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탈 민족주의 사조가 있습니다. 민족은 상상의 공동체에 불과하다느니, 민족주의는 정치적으로 필요해서 만들어 진 이념이라고도 합니다. 하지만 어느 학자의 말대로 동아시아 3국, 그러니까 한국, 일본, 중국은 오래 동안 종족단위와 정치단위가 일치되는 역사적 국가를 만들어 온 것이 돼서 민족의식이 없어질 수 없는 사례가 되고 있습니다. 거기에다가 우리의 민족이산은 식민지와 분단에 의해서 온 것이기 때문에 한을 안고 있고, 이들 이주민의 후예들은 다른 어느 민족보다 문화적 유사성을 가지고 있어서 문화적 정서와 유대감이 매우 큽니다. 여기에다가 자기가 사는 나라의 문화에 적응하는 능력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한반도 통일에 좋은 자산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이들 해외동포들을 돕는 정책도 추진 돼야 하지 않을까요?

 

임채욱 선생: 한국에는 중국 조선족 동포들이나 중앙아시아 고려인 후예들을 돕는 정책이 시행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계도 있습니다. 고려인 경우 3대까지만 동포로 인정되고 그 자식인 4대가 되면 동포로서의 혜택이 제한되거나 퇴거해야 합니다. 그래서 고려인 3세로 부모를 따라 한국에 들어온 미성년자가 성년이 되면 한국을 떠나야 합니다. 그래서 할아버지 나라에서 쫓겨난다고 합니다. 현재 한국에는 고려인 4세만 1,000여명이 살고 있습니다. 이들은 “한국에서 살고 싶어요”라면서 탄원서를 올리고 합니다. 이런 동포들도 끌어안아야 합니다. 하루빨리 법을 고치서라도 동포4세도 외국인이 아니라 우리 동포라는 넓은 품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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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기록기록유산에 등재된 북한의 '무예도보통지'
유네스코 세계기록기록유산에 등재된 북한의 '무예도보통지'
사진-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한국에서는 3가지가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됐고 북한에서는 1가지가 지정됐습니다.

10월 31일 유네스코에서 남북한 문화유산 중 몇 가지를 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는 반가운 소식입니다. 통일문화산책 오늘은 남북한이 유네스코에 등재한 문화유산에 대해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알아봅니다.

임채욱 선생: 네, 반가운 소식이지요. 이번에 한국에서는 3가지가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됐고 북한에서는 1가지가 지정됐습니다. 한국의 3가지는 조선왕조 어보와 어책, 어보는 왕의 도장이고 어책은 왕의 책인데, 이것 한 가지와 국채보상기록물, 그리고 조선통신사 기록물 이렇게 3가지입니다. 조선통신사기록물은 일본과 공동으로 추진해서 성공한 것입니다. 북한의 한 가지는 ‘무예도보통지’라는 조선시대 책입니다.

한 가지씩 설명을 좀 해주시지요.

임채욱 선생: 먼저 조선왕조 어보와 어책인데, 조선왕조 초기인 1411년부터 망한 후인 1928년 사이에 만들어 진 왕의 도장과 책 338점이 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됐습니다. 도장은 금과 은, 옥으로 만들었는데 왕이나 왕후의 덕을 기리는 칭호를 올리거나 새로 왕비를 데려오거나 세자로 정할 때 이를 기념해서 만든 것이고, 책도 세자나 세자빈 지위를 내리거나 할 때 내린 왕의 글인데 대체로 대나무나 옥에 교훈적인 내용을 적어 준 것입니다. 다음 국채보상기록물은 우리나라가 일본에 나라를 빼앗길 위기 때 뜻있는 인사들이 일본에 진 빚을 갚자는 국민운동을 벌이는데 국채보상기록물은 그에 관한 기록물입니다. 이 운동은 대구에서 시작돼서 전국적으로 퍼지는데, 1907년부터 1910년까지 남자는 술과 담배를 끊고 여자는 반지나 비녀를 내놓았던 운동으로 전국민의 25%가 자발적으로 참여합니다. 이번에 등재된 기록물은 이 운동에 관한 사실을 기록한 정부기록물, 언론보도물, 개인수기 등 모두 2472건입니다. 국채보상운동은 중국(1909), 멕시코(1938), 베트남(1945)에서 일어난 국채보상운동의 선구적 역할을 한 것입니다.

조선통신사 기록물은 일본과 공동으로 추진됐다고 했지요?

임채욱 선생: 조선통신사는 통신사(通信使)라 부르면서 조선시대에 일본에 파견하던 외교사절을 말합니다. 조선이 세워지던 1400년대 초부터 1811년까지 400년간 파견됐지만 이번에 등재된 것은 임진왜란 이후 12번에 걸쳐서 보낸 것을 주로 한 것으로 보입니다. 통신사는 한 번에 수백 명 씩 사절단을 보냈는데 이때의 기록이 글로 그림으로 많이 남아있지요. 우리나라에도 있고 일본에도 있는데 이번에 두 나라에 있는 외교기록물, 여행기록, 서로 교환한 글들과 그림들이 들어갔습니다. 한일양국은 이번 등재를 공존과 평화를 가져 온 이 통신사 기록물이 나라 사이의 갈등을 푸는 좋은 사례가 된다고 강조했고 유네스코도 이것을 인정한 것이라고 봅니다.

북한이 올린 무예도보통지는 어떤 책인가요?

임채욱 선생: 조선조 정조 때 24가지 무예와 무술에 대한 설명을 담은 책입니다. 실학자들인 박제가, 이덕무, 백동수 같은 분들이 편찬한 것인데 이 책에 담긴 내용들은 일본이나 중국 무술책에도 소개된다니 아주 좋은 내용이 많이 실린 것으로 봐야겠지요. 구체적으로 보면 창이나 칼쓰는 법, 권법이나 곤봉 사용 법, 말 위에서 펼치는 무술 등이 그림으로 설명돼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이 책의 가치를 아주 좋게 평가해 온 모양이지요?

임채욱 선생: 북한에서는 이 책을 두고 “리조 봉건통치배들이 그 반인민적인 계급지배 도구인 봉건군대의 훈련을 목적으로 만든 책으로서 그 형식과 내용에서 계급적, 시대적 제약성을 가지고 있다”고 펑가합니다. 그럼에도 이번에 이 책을 등재시키려고 한 것은 이 책에 실린 무예가 고조선, 고려를 통해 조선으로 이어졌고 이를 원형으로 지금 북한 태권도가 만들어졌다고 말합니다. 이것을 보면 봉건시대 책이지만 현재 북한과 연결된다는 것을 강조하려고 한 것이지요.

한국에서는 이 책이 전해져 오지 않습니까?

임채욱 선생: 그렇지 않습니다. 한국에서는 규장각에도 있고 장서각에도 있고 국립도서관에도 소장돼 있습니다. 북한에도 이 책이 있었던 것은 다행스런 일인데, 이런 민족공동의 유산은 남북한이 공동으로 등재를 신청하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만 그럴 때가 오겠지요.

유네스코에 등재된 남북한 기록문화유산은 전체적으로 얼마나 됩니까?

임채욱 선생: 한국이 등재시킨 것이 13건에서 이번 3건을 보태서 16건이 되고 북한은 이번 무예도보통지 1건이 전부입니다.

이미 등재된 13건을 다시 한 번 정리해 주시지요.

임채욱 선생: 1997년 조선왕조실록과 훈민정음 해례본 2건 등재를 시작으로 직지심체요절(2001), 승정원일기(2001), 고려대장경판(2007), 조선왕조 의궤(2007), 동의보감(2009), 광주민주화운동기록(2011), 일성록(2011), 새마을운동 기록물(2013), 난중일기(2013), 유교책판(2015), KBS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기록물(2015)이 차례, 차례로 등재돼 왔습니다. 이번 3건을 합해서 16건이 되는 것은 아시아에서는 제일 높은 숫자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만큼 우리선조들의 기록정신이 훌륭했다는 것이지요.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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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인 9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한글문화 큰잔치에서 한 어린이가 한글과컴퓨터그룹 부스에 마련된 목판 인쇄 체험을 하고 있다.
한글날인 9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한글문화 큰잔치에서 한 어린이가 한글과컴퓨터그룹 부스에 마련된 목판 인쇄 체험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한국에선 한글을 다 만들어서 세상에 알린 것을 기준으로 날을 정한 것이고 북한에선 한글을 다 만든 날을 기준으로 한 것이지요.

한글날이 든 10월이 갑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남쪽에선 한글이라고 하고 북쪽에선 훈민정음이라고 하는 우리나라 글자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기로 합니다. 먼저 한국에선 10월9일을 한글날이라고 기념하는데, 북한에서는 이날 기념을 하지 않는다고 한국 한 단체는 북한도 한글날 기념을 하라고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통일문화산책 오늘도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한글과 훈민정음 주제로 이야기 나눕니다.

임채욱 선생: 아마도 그 단체는 북한에서도 한글기념일을 따로 기념한다는 것을 모르거나 알지만 이왕이면 10월 9일을 한글날로 기념하자는 뜻이 아닐까 싶군요,

그럼 북한은 따로 기념하는 한글 기념일이 있습니까?

임채욱 선생: 네, 있지요 1월 15일이 북한에서 기념하는 한글기념일입니다. 명칭도 한글기념일이 아니라 훈민정음 창제기념일입니다. 올해 1월15일이 훈민정음 창제 573주년이었습니다. 이번 한글날 571돐 기념일과 차이가 나지요?

왜 차이가 납니까?

임채욱 선생: 네. 한국에선 한글을 다 만들어서 세상에 알린 것을 기준으로 날을 정한 것이고 북한에선 한글을 다 만든 날을 기준으로 한 것이지요. 세종대왕이 한글을 다 만든 다음 세상에 알린 날은 세종 28년 음력 9월 29일입니다. 이날을 양력으로 환산한 것이 10월 9일이 된 것입니다. 이 결정은 대한민국 시대에 와서 한 것이 아니라 1940년대 아직 우리나라가 일제 통치를 받고 있던 때에 우리 한글학자들이 결정한 것입니다. 북한에서 훈민정음 창제일을 1월 15일로 한 것은 1949년부터인데 세종 25년 12월을 환산한 것으로 보이는데 특별한 근거는 제시하지 않고 있지요. 추측하기는 그 전 해 1948년 1월 15일 조선어무연구회란 단체에서 ‘조선어 신철자법’을 발표한 일과 연관되거나 북한공산주의자들이 그들 최초 출판물이라고 하는 [새날]이란 잡지가 1928년 1월 15일에 발간된 것과 관련된 것일 수 있다는 정도지요.

한글과 훈민정음은 왜 다른 명칭으로 불립니까?

임채욱 선생: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 때 훈민정음이라고 했지요.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으로 한 것이지요. 이 때 소리는 글자를 뜻한다고 봐도 됩니다. 우리가 한글이라고 부르게 되 유래는 1926년 조선어연구회란 단체를 중심으로 훈민정음을 반포한지 480주년이 된다고 기념행사를 하면서 이 날을 가갸날로 정하기로 했고 그 2년 뒤 기념행사를 하면서 다시 한글날로 고쳐 부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광복 되던 이듬해 1946년 10월 9일 서울 덕수궁에서 한글반포 500돐 행사를 크게 엽니다. 북한에서도 한글이란 명칭을 전혀 쓰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조선어학회 회원들 중 대부분이 남아서 활동하는 남쪽과 달리하려고 훈민정음이라고 부르기로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 오히려 북한에선 세종대왕 뜻대로 부른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임채욱 선생: 그건 이렇게 봐야 합니다. 북한에선 한글을 세종대왕이 창제했다고 강조하지 않습니다. 한글이란 우리나라 문자는 인민들 힘으로 만들어졌고 다만 세종대왕 때 만들어졌다고만 가르치고 있습니다. 물론 성삼문 같은 신하가 앞장서서 훈민정음을 만들지만 인민들 지혜를 잘 받아들였기 때문에 이 글자가 완성될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백성들이 스승이란 것을 강조하지요. 결국 명칭만 훈민정음이라 한 것이지 세종대왕의 깊은 뜻을 살리려고 훈민정음이라고 한 것은 아니란 말이죠.

한국에서는 이번에 정부에서 주관하는 한글날 기념행사를 하면서 행사내용도 우리말로 바꾼 표현으로 했다고 하지요?

임채욱 선생: 네. 이번에는 전과는 달리 표현했지요. 가령 식을 시작한다는 개회사를 여는 말, 애국가 제창을 애국가 다 함께 부르기, 경축사를 축하말씀, 폐회를 닫는 말로 표현했지요. 한글날은 우리 글자를 기념하는 날인데, 왜 굳이 이 날 우리말을 찾아 쓰는 캠페인 같은 표현을 쓰느냐 하면 우리 글자를 기념하는 날에는 우리말도 다듬자는 뜻이 있다고 본 거겠지요. 글자 따로, 말 따로가 아니라 문자생활을 바르게 하려면 말에 대한 것도 함께 가야 된다는 것으로 보면 되겠습니다.

한글이니 훈민정음이니 하는 것이나 기념일이 다른 것은 나중에 다 통일문화가 형성된다면 해결될 일이겠지요. 이번에는 한글의 우수성을 다시 한 번 새겨 볼까 합니다. 우리보다 외국 학자들이 더 한글 우수성을 말하지요?

임채욱 선생: 일본학자 중에 7년 전 <한글의 탄생>이란 책을 쓴(2010년) 노마 히데키란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세계 문자 중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고 그 글자 하나, 하나 발음을 이렇게 해야 한다고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글자는 한글 외에는 없다고 단정을 하고 있습니다. 이 발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왕과 신하가 토론을 하고 결정한 사례가 없다는 것 아닙니까. 그렇다고 한글이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글자라고 주장하기는 어렵지만 글자형태가 발성과 관계돼서 만들어 진 것은 상당히 과학적이라 고 평가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배우기가 아주 편하다는 장점은 어디에 내놓아도 제일이라는 것입니다. 또 인쇄가 쉬워서 타이프라이트나 컴퓨터 자판 처리가 아주 편리하다는 것입니다.

컴퓨터 자판 말이 나왔는데, 남북한 통일자판 논의도 있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임채욱 선생: 남북한이 교류를 좀 하던 2000년대 초에 서로 다른 컴퓨터 자판을 통일해보자는 논의는 당연히 나올 문제지요. 당시에는 컴퓨터 자판뿐이 아니라 산업 전반에 걸친 산업표준화 문제를 논의했지요. 하지만 대부분이 논의에 끝났지만 컴퓨터 자판만은 좋은 결과를 봤다는군요.

그 내용은 어떤 것입니까?

임채욱 선생: 한국정보관리협회를 이끄는 조석환 회장이란 분이 북한 민족화해협의회와 협의해서 ‘한겨례 통일표준글자판’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북한과 직접 대화를 할 수 없을 때는 중국에 있는 조선족 언어정보처리학회를 중간다리로 해서 협의했다는 군요. 이 통일글자판 배열에서 자음은 북쪽 글자판을 응용했고 모음은 남쪽의 글자판을 응용해서 개발하고 운영체계도 남북한이 달라서 남한이 쓰는 마이크로 소프트 체계와 북한이 주로 쓰는 리눅스 체계 둘 다 쓸 수 있는 겸용체계를 만들어 냈다고 합니다.

참 큰일 했습니다만, 그게 남북한 당국 승인 하에 실제로 사용되는 날이 통일문화가 이뤄지는 날이겠지요?

임채욱 선생: 그렇습니다. 통일에 대비해서 이렇게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고 이런 것들이 언젠가는 다 통일의 디딤돌이 되겠지요.

한글을 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만 끝으로 우리글자뿐 아니라 우리말과 관련된 남북한 연구도 있어야겠지요?

임채욱 선생: 물론입니다. 이번에 한글날 기념식 주제를 ‘마음을 그려내는 빛 한글’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한글이 어떤 형상도 표현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말뿐 아니라 세계 어떤 말도 표현이 가능하고 한글 제정 당시 정인지가 말했듯이 바람소리, 닭 우는 소리, 학 울음소리, 개 짖는 소리도 표현할 수 있지요. 이런 좋은 글자로 우리말도 남북한 통일을 이룰 수 있게 표현해주고 앞으로 우리가 말을 하면 그것을 음성인식 해서 정확한 문장으로 바꾸는 기술도 남북한이 힘을 합쳐 이뤄내는 때가 오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끝으로 한글은 현재 해외에 사는 우리 동포 700여만 명을 이어주는 연결고리 역할을 할 것입니다.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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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어르신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어르신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한국은 현재 65세 이상 인구비율을 따져서 고령사회가 됐다는 보도가 있습니다. 그리고 노인의 기대수명도 82세를 넘기고 있다고 하는데 통일문화산책 오늘도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남북한 노인들 주제로 이야기 나눠봅니다.

임채욱 선생: 한국은 지난 8월 말로써 65세 이상 인구가 725만 명을 넘어서서 전체인구의 14%를 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고령사회로 됐다고 합니다. 기대수명도 82세가 됐고요. 유엔은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인구에서 7% 이상이면 고령화 사회로 규정하고 14% 이상이면 고령사회, 20% 이상이면 초 고령 사회로 분류합니다. 이 기준에 따라 한국은 고령화 사회를 넘어 고령사회로 들어간 것이지요.

북한의 노인 기대수명은 어떤지요? 먼저 북한도 고령사회가 돼 가고 있습니까?

임채욱 선생: 북한에서 노인 기대수명은 72세라고 합니다. 기대수명은 생존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는 수명이니까 주관적 기대가 아니고 객관적 기대 수치가 됩니다. 북한은 고령사회는 아니지만 고령화 사회입니다. 2014년 65세 이상 노인이 전체인구의 8.5%가 돼서 유엔이 정한대로 고령화 사회가 됐습니다.

한국이 고령사회가 되고 기대수명도 높아졌지만 노인들이 행복감을 느끼는지, 북한 노인은 또 어떤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임채욱 선생: 한국에서 올해 추석 휴가는 열흘이나 됐지요. 이 긴 추석 연휴 동안 어떤 사람에겐 기쁨을 가득 줬겠지만 또 어떤 사람들에겐 오히려 쓸쓸한 시간, 고적한 시간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특히 혼자 사는 노인들, 독거노인이라고 하는 노인들은 긴 시간 혼자서 다른 때 보다 더 외로웠을 것 같습니다. 이런 노인 가운데는 혼자 있다가 숨진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독거노인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독거노인들은 텔레비전이 자식이고 친구라고 할 수밖에 없지요.

남북한 노인들의 문제, 결국 복지문제겠습니다만 이 문제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지요.

임채욱 선생: 노인 문제는 독거노인 문제, 노인 빈곤 문제, 노인질환 문제, 노인학대 문제가 중심입니다. 이 문제들은 한국에서나 북한에서나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공통적으로 일어나는 문제이지요. 이 가운데서 노인질환 문제는 제도적으로도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이지요. 나이가 들면서 병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고 국가가 해결하려 한다 해도 개개인을 다 아프지 않게 할 수는 없는 자연추세에 따른 일이지요.

독거노인 문제를 한 번 볼까요?

임채욱 선생: 한국에서 통계로 나와 있는 독거노인은 133만 명이라고 합니다. 이 숫자는 노인 네 사람 중 한 사람은 혼자 산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혼자 산다는 것이 혼자서 밥도 해 먹고 건강하게 산다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라, 그저 혼자 산다는 거여서 아픈 사람이 많다는 겁니다. 대개가 나이에서 오는 병을 가지고 있고 고독감에서 오는 우울증을 가지고 있죠. 우울증은 혼자 사는 노인이 자녀와 함께 사는 노인보다 더 많다는 것입니다. 이런 노인을 위해 돌봄 서비스가 있습니다. 나라에서 생활 관리사를 두고 일정한 기간에 방문해서 필요한 서비스도 해주지만 이것도 아직은 미약하답니다. ‘노인 돌봄 기본서비스’를 받는 노인은 전체 독거노인의 18%밖에 안 됩니다.

노인 빈곤 문제는 어떻습니까?

임채욱 선생: 노인 빈곤 문제도 큰 문젭니다. 한 자료는 한국 노인 빈곤율은 48.8%로 OECD 국가들 평균의 4배에 가깝다고 합니다. 가난이야 나라도 구제 못 한다고 하지만 그래도 각 나라는 복지정책으로 가난으로부터 탈출하도록 돕고 있지요. 한국에서도 보험형태로 돕는 제도적 장치는 있지만,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지요.

북한에서 독거노인 문제나 빈곤 문제 어떻습니까?

임채욱 선생: 북한에서도 표면적으로는 노인문제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10월 1일은 국제노인의 날인데 이날을 앞두고 북한에서는 매년 기념토론회도 열어 노화실태나 노인존경문제 등을 토론합니다. 또 연로자 보호법을 제정(2007. 4)하고 연로자 방조연맹이란 단체도 조직해서 활동합니다. 사회적으로도 노인간호를 강조하고 노인건강관리나 노인심리 문제에도 관심을 돌리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노인을 존대하는 문제에도 눈을 돌리고 있습니다. 독거노인에 대해서는 양로원 시설이 잘돼 있어서 혼자 사는 노인 자체가 없다고 말합니다. 빈곤도 있을 수 없다고 하지요. 노인건강을 위한 조치로서는 가정과 노인단체, 양로원, 노인봉사기관이 연계를 잘해서 노인의 합병증을 미리 예방하고 노여움을 잘 타는 심리특성을 헤아려서 간호를 잘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나라가 노인을 돌보는 제도가 잘 돼 있다고 하지만 실제 독거노인이나 빈곤문제가 왜없겠습니까.

한국보다 나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노인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한다고 보겠네요? 노인문제 현상을 좀 더 말해준다면?

임채욱 선생: 통계라고는 내 놓지 않는 북한에서 노인문제를 잘 알기는 어렵지만 탈북자들 말을 들으면 독거노인이나 노인빈곤 문제가 북한당국이 말하는 것처럼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우선 나라가 가난한데 노인에게 차례질(돌아갈) 자원이 풍부할 수 없을 것이고 또 노인대우는 청소년 보다 우선 시키지도 않습니다. 양로원이 있다지만 공훈을 세운 순서에 따라 들어갈 수 있으니 다 만족스럽게 들어가지도 못하지요. 거기에다가 노인들에게 늙었지만 뒷방신세로만 있지 말고 정치사회적 문제에도 나서기를 요구하는 면도 있습니다. 노인에 대해서는 “노인들이 비록 늙었으나 혁명과 건설을 통해 단련된 세대”라고 규정을 합니다. 그래서 늙었지만, 사회정치적 생명을 빛내려고 계속 투쟁하라고 말합니다. 그러다 보니 노부모들에게도 수령을 위해 죽음도 마다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 달라고 요구하면서 실제로 자폭 정신을 실제로 보여주기를 강요하는 일도 있다는 군요.

노인문제는 남북한 다 같이 정책적인 배려가 좀 더 있어야 할 것 같군요.

임채욱 선생: 그렇습니다. 정말 어디에도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지만 복지가 제도적으로 완비돼 있어야 하지요. 또 복지도 좋지만 노인의 보람을 앗아가는 일은 없어야겠습니다. 노인이 보호를 받는 사람만 되지 말고 사회에 봉사하는 사람이 되도록 하는 정책적 배려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유엔이 정한 새로운 생애주기는 17세까지를 미성년으로 보고 18세에서 65세까지를 청년으로 보고 66세에서 79세까지를 중년으로 보며 80세에서 99세까지를 비로소 노년으로 잡지요. 100세 이상은 장수노인이라 합니다. 이에 따르면 한국의 기대수명 82세는 초년노인에 불과합니다. 더 즐길 수 있는 나이지요. 이를 뒷받침하는 배려가 정말 필요하겠습니다. 가수 이애란의 노래 <백세인생>을 들어봅니다. “80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아직은 쓸 만해서 못 간다고 전해라, 90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알아서 갈 테니 재촉 말라 전해라, 백 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좋은 날 좋은 시에 간다고 전해라” 장수인생이 그냥 장수인생이 아니라 남북한에서 다 복지사회 안에서 이뤄지는 장수인생이 됐으면 좋겠군요. 장수복지인생 말입니다.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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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평양 금수산태양궁전광장에서 청년전위들의 결의대회가 열리고 있다.
지난 8월 평양 금수산태양궁전광장에서 청년전위들의 결의대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지난 추석 명절 때 한국에서는 200여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해외로 여행을 떠났다고 하지요? 외국인들은 요즘 한국에 들어가는 것을 꺼린다고도 하는데 어떻습니까?

임채욱 선생: 글쎄요. 국제정세나 군사문제로 볼 때 지금 한반도는 불안하게 보이겠지요. 사람들 중에는 서울과 평양 어느 쪽이 지도상에서 사라지느냐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요. 국제정세나 군사력을 둘러싼 판단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풍수지리상 어디가 더 좋을까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도 있겠지요. 하기야 지금 북한 핵실험 때문에 백두산이 폭발돼서 평양이나 서울이 다 없어질 수 있다고 하는 판입니다.

통일문화산책 오늘도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서울과 평양의 풍수지리에 대해 알아봅니다.

임채욱 선생: 풍수지리라고 하지만 그것도 그 범위가 매우 넓습니다. 자기가 사는 집이나 조상의 묘 자리가 어떻다느니 하는 것도 있고 마을의 모양이 어떻다는 것도 있고 나아가서는 한 나라의 도읍지가 어떻다느니 하는 것도 있는데 서울과 평양을 풍수적으로 본다면 이것은 도읍풍수설에 해당되는 거지요.

도읍풍수설에 대해서 설명 좀 해주시지요.

임채욱 선생: 풍수에는 집터가 어떻다, 무덤이 어떻다, 마을 터가 어떻다, 도읍 터가 어떻다, 또 나라 터가 어떻다 하는 것들이 다 들어갑니다. 이 가운데 나라의 도읍터에 대한 풍수지리적 해석이 도읍풍수라고 보면 되지요. 도읍풍수는 국도풍수(國都風水)라고도 하는데 한 나라의 국도, 즉 수도가 풍수지리적으로 어떠어떠하다 하는 것이지요. 서울과 평양 풍수지리를 보는 것은 바로 도읍풍수 또는 국도풍수를 보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른바 나라의 수도인 도읍터 풍수가 어떻다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조선왕조가 한양에 도읍을 정할 때 풍수설을 적용한 것이 바로 도읍풍수라고 보면 되지요.

풍수설이란 것이 미신이라고도 하는데 조선조에서 도읍을 정하면서 풍수설에 따라 정했다지요? 도대체 풍수설은 어떤 것입니까?

임채욱 선생: 풍수설을 미신으로 보면 미신이고 이론적 관점에서 하나의 학문이라고 보면 학문인데 한국에서는 학문적 접근을 하는 사람들도 많지요. 지리학에서 자연지리학 분야의 지형, 기후, 풍토, 산천에 대한 연구 분야와도 상통하는 것 같지만 풍수설은 사람의 운명이 이런 지형, 기후, 풍토, 산천에 영향을 받는다고 보는 것이 다르다고나 할까요? 현대지리학이나 풍수설이 땅에 대한 이치를 찾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풍수설은 산 사람이나 죽은 사람이 땅의 영향을 받아 운명이 결정된다고 하지요. 그래서 비과학적이라고 하는데 풍수설을 믿은 사람들은 과학적 설명이 안 된다고 해서 풍수적 사실자체가 없어지진 않는다고 보지요. 그래서 풍수설을 풍수론, 풍수사상이라고까지 말하죠.

북한에서는 풍수설을 어떻게 봅니까?

임채욱 선생: 공식적으로야 당연히 배격하지요. 이렇게 지적하죠. 풍수설은 봉건시기에도 각성된 사람들이 무시했던 유치, 허황한 미신잡설이라고 말하지요.

그럼 북한에는 풍수적인 사고를 해선 안 되는 건 물론 어떤 행위도 탄압받겠지요?

임채욱 선생: 그렇지요. 하지만 평양에 대한 풍수적인 해석에는 관심을 갖는 사례가 있어요. 한 해외동포 입을 통해 평양 풍수론을 언급한 기사가 북한 잡지에 실렸는데 이건 평양이 서울보다 더 좋은 도시라는 것을 내세우려는 의도 때문으로 보입니다.

그 기사를 소개해 보시죠

임채욱 선생: 평양 금수산을 자랑하려는 의도라고 보겠는데요, 먼저 금수산 이야기부터 해야겠네요. 금수산이라면 짐작하겠지만 선대통치자 두 사람이 안치된 주석궁이 있는 곳이지요. 금수산은 대동강 오른쪽에 있는 산으로 평양 중구역과 모란봉구역, 대성구역에 걸쳐있습니다. 높이는 가장 높은 봉우리가 최승대로 95m정도이고 주봉은 모란봉입니다. 비단실로 수놓은 것처럼 아름답다고 금수산인데 평양의 진산이라고 봅니다. 자 기사에 실린 이야기를 해봅시다. 평양에서 태어난 한 사람이 전란 때문에 이리저리 떠밀려 북아메리카, 아마도 미국을 말하는 듯한데, 여하튼 북아메리카라에 있다가 늙어서 평양에 옵니다. 이 늙은이는 풍수지리를 학문적으로 연구해온 사람으로 온 세계를 다니면서 풍수와 문명발생을 연구했고 드디어 한반도를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먼저 서울에 와서 삼각산에 올라 사흘 동안 서울시내를 내려다봤는데 고층건물이 빼곡히 들어서고 현란한 불빛이 명멸하지만 그에게 서울은 한갓 폐허로밖에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서울의 지맥은 쇠하고 이지러져서 내일은 없다고 보고 평양 금수산을 보러왔다는 것입니다. 그는 대성산 장수봉에서 금수산을 보고는 금수산이 풍수상 1등진혈인 금거북 형국이란 것을 알았고 이곳이 바로 ‘민족의 진혈’이란 것을 확인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단군이 도읍을 정하고 고구려가 이곳으로 천도해 온 것도 우연이 아니라고 했다는군요.

평양을 자랑하려고 금수산의 풍수지리적 해석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것이군요.

임채욱 선생: 아니지요. 풍수적으로 어떠하니 그게 맞다는 식으로 말하지는 못하지요. 그래서 그 학자로 하여금 형국이 금거북이더라도 그게 빛을 내는 것은 대동강에 서해갑문을 만들어 대동강 흐름을 막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는 그의 입을 통해 결국 자기는 지맥이나 산수가 뛰어난 인물을 낳는다고 봐왔는데, 금수산에서 보니 위인이 풍수지맥을 사람에게 이롭게 바꾼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하게 합니다. 풍수설로는 그런지 몰라도 결국 김일성 부자가 풍수를 좌우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럼 풍수설에서는 서울과 평양을 어떻게 봐오고 있는가요?

임채욱 선생: 국도풍수를 말하는 한 학자는 말하길 중국 북경도 풍수설에 따라 터를 잡았고 수도로 정해졌다고 합니다. 중국사람은 북경이 하늘의 천제가 사는 자미원(紫微垣)과 같은 곳이라고 말하지만 서울의 풍수가 북경보다 나은 길지로 서울이 바로 자미원이라고 주장합니다. 평양에 대해서는 일찍부터 한 나라의 도읍지로는 땅심이 모자란다고 보는 풍수적 판단이 많다고 합니다. 평양은 임시수도나 부수도급이라는 주장도 있고 오행설로 보면 금기운이 강해서 김씨가 지배한다는 설도 있다고 합니다. 이런 풍수상 이치를 알아서인지 북한에선 유난히도 서울보다 나은 평양을 내세우고 평양대세설까지 주장하고 있습니다.

평양대세설은 무엇입니까?

임채욱 선생: 북한이 평양을 한반도에서 가장 으뜸가는 ‘민족의 성지’라고 내세우는 근거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 평양부근에서 사람이 생겨나서 살았고 만달사람, 용곡사람 등 구석기 시대에도 평양 인근에는 구석기 문화가 생겨났고 신석기 문화도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평양은 단군이 태어나서 나라를 세운 곳이어서 우리민족의 첫걸음이 시작된 곳이고 세 번째는 평양을 중심으로 해서 우리민족이 형성됐고 조선족 여러 갈래 사람들이 하나로 단일성이 이뤄졌다고 합니다. 이런 주장은 평양 강동에서 단군릉을 찾아내서 크게 수축하고부터 나오기 시작합니다. 이러 주장의 연장선에서 오르는 평양, 내리는 서울이라고도 말합니다. 결국 이는 무엇을 말합니까. 서울에 대한 열등심리를 나타내는 것일 뿐일 것입니다.

집터나 마을 터, 도읍터 풍수를 말하면서 나라 터가 있다고도 했는데 그건 뭔가요?

임채욱 선생: 네. 한 나라의 위치나 지형을 두고 말하는 풍수로 국역풍수(國域風水)라고 합니다. 가령 우리 한반도는 곤륜산으로부터 온 맥이 백두산에 이르고 이 맥이 백두대간을 통해 지리산까지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어떤 풍수가는 곤륜산으로부터 이어온 맥이 백두산에 이른 다음 평양을 거쳐 개경에 이르고 다시 한양으로 옮겨왔다고 합니다.

끝으로 풍수설이 현대에도 유효한 면이 있다고 봅니까?

임채욱 선생: 그건 답하기 어렵군요. 하지만 최근 보도에 따르면 미얀마 통치자는 한 여성 점술가 말을 듣고 수도를 양곤에서 네피도란 곳으로 옮겼다고 합니다. 이 점술가, 아마도 풍수가이기도 한 이 사람이 사망하면서 수도를 옮긴 비밀이야기도 알려진 모양인데 한나라 수도를 옮길 정도로 풍수설도 위력이 있는 나라도 있군요. 그건 그렇고 풍수설이 지형과 지세가 인간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이야 받아들이지만 길흉화복이나 운명에 영향을 준다면 이건 미신이 아닐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과학이 아닌 풍수설에 기대서라도 백두산 화산폭발 같은 것을 미리 알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기도 하지요.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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