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풍 :: '통일문화산책' 카테고리의 글 목록

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평양 신흥단고기집에서 판매하고 있는 단고기장(보신탕)과 개고기로 만든 수육을 평양주민들이 먹고 있는 모습.
평양 신흥단고기집에서 판매하고 있는 단고기장(보신탕)과 개고기로 만든 수육을 평양주민들이 먹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오늘은 말복이지요? 초복, 중복 지나고 말복이니까 여름더위 다 지난듯하지만 아직은 아닙니다. 통일문화산책 오늘도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복날의 특별한 풍경이 있는지 알아봅니다.

 

먼저 복날의 의미를 좀 말씀해주시죠.

 

임채욱 선생: 복은 초복, 중복, 말복 해서 삼복이라 하는데 여름철 가장 더울 때를 나타냅니다. 그래서 삼복더위라고 합니다만 이때 복은 한자로는 엎드릴 복(伏)자를 씁니다. 쇠도 더운 불기운에 눌려서 꼼짝 못하고 엎드린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엎드릴 복자를 쓴 것입니다. 여기서 쇠가 왜 나오느냐 하면 초복이 하지가 지나고 세 번 째 맞는 경일(庚日)이고, 중복은 그로부터 또 열흘 지난 경일이고 말복은 입추가 지난 후 첫 번째 경일이기 때문에 경자와 관계되기 때문입니다. 이 경(庚)자는 우리가 갑, 을, 병, 정, 무, 기, 경, 신, 임, 계라고 하는 10간(干)에서 따온 것이고요, 이때 경은 쇠를 뜻하는 글자지요. 쇠는 모든 물질에 이기는 것이지만 불에는 지지요. 그래서 쇠 경자가 든 날이지만 불더위한테는 꼼짝 못한다고 엎드릴 복자를 쓰게 된 것입니다. 또 이런 설도 있습니다. 삼복더위에는 개구리도 견디기 어려워 습한 땅에 배를 붙이고 엎드려 있다고 엎드릴 복자를 쓴다는 것이지요.

 

그럼 복날의 풍경이랄까, 세시풍속이 있는지 알아보지요.

 

임채욱 선생: 복은 24절기와 관계되는 날자가 아닙니다. 24절기는 양력기준으로 입춘이다, 입하다, 입추다 하는 것인데 복은 음력 기준으로 더울 때를 나타내려고 만들어 낸 것이라서 태양 기준인 24절기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다만 기준 점을 하지 지나서 열흘, 입추 지나서 첫 번 째 경일로 정하였으니 가장 무더울 때를 비교적 정확하게 맞추고 있지요. 복날은 절기를 맞듯이 특별한 놀이풍속이나 행사는 없지만 모래찜질을 한다든가, 산간계곡에 들어가서 발을 씻는 탁족을 많이 했다는 기록은 있지요. 다만 더위 때문에 생겨난 것이므로 이 날 따라 먹는 음식이 있지요. 주로 몸을 북돋우는 보신음식인데, 예로부터 개를 잡아서 끓이는 개장국, 닭에 인삼을 넣어서 백숙으로 만든 계삼탕을 많이 해먹었지요. 드물게는 팥죽을 쒀먹기도 했습니다. 팥죽을 먹으면 더위를 피하고 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속설도 있습니다. 옛 시에 “무더위에 먹는 죽이 부자 집 제호탕 보다야 못하겠지만 그래도 더위 씻는 방책이라 하겠네” 라고도 읊었습니다. 제호탕은 매실, 사인, 백단향 등을 넣은 청량음료를 말하지요. 오늘날에도 이런 음식은 남북한에서 다 먹고 있다고 봐야겠지요. 물론 이때 많이 나는 제철 과일인 수박, 참외도 복날 빠지지 않고 찾아 먹었지요.

 

실제로 남북한에서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습니까?

 

임채욱 선생: 북한달력에는 복날이 표시 안 된 것이 많습니다. 표시된 것도 달력 하단에 복날 표시를 하고 있습니다. 예로부터 전통적으로 북한지방에서 먹었던 삼복음식은 가장 보편적인 것이 개고기나 소고기를 푹무르게 끓인 고기국입니다. 이런 보신탕 외에도 미역국에 호박과 고추장을 넣고 끓이거나 미역국에 밀가루를 넣어 수제비국을 만들어 먹었다고 합니다. 이열치열하는 지혜를 엿볼 수 있지요. 평양지방에는 냉국이나 시원하게 콩국을 만들어 먹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북한에서 먹는 삼복음식은 이보다 아주 종류가 많습니다. ‘민족명절료리’라는 자료를 보면 이런 것들입니다. 토끼고기탕, 단고기국, 소고기 매운탕, 소고기불고기, 삼계탕, 햇닭찜, 햇닭고기죽, 뱀장어탕, 뱀장어구이, 오복탕, 상추쌈, 갓잎쌈, 콩잎쌈, 피마주잎쌈, 파국, 풋고추산적, 세치네장, 섭조개탕, 어죽, 팥죽, 오이깍두기, 벼락김치, 녹두묵물. 단고기국은 남쪽에서 말하는 개장국이지요. 개고기를 단고기라고 하는 것은 씹으면 씹을수록 단맛이 난다고 단고기라고 하지요. 벼락김치는 겉절이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전통적으로 먹어왔던 것에서 오늘날 먹는 음식을 추가한 것이겠지요. 탈북자 말에 의하면 북한에서도 복날 음식을 찾아 먹는 집은 있지만 극소수이고 가족단위로 복날외식을 하는 경우도 도시에선 더러 볼 수 있지만 지방에는 거의 없다고 합니다. 다만 직장단위로 복달임을 하는 풍경은 많이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복날은 어떤지 한 번 보지요.

 

임채욱 선생: 1960년대까지는 복날 기사가 신문에 나기도 했지만 이젠 복날 기사는 없지요. 특별한 풍경을 볼 수 없다는 것이겠지요. 요즘 보면 집에서 삼복음식을 절식으로 해먹기보다 외식으로 때우지요. 아마 빠지는 집이 없이 외식을 즐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음식점에서 개고기, 즉 구탕이나 삶은 개고기 요리, 닭고기 삼계탕을 보신탕으로 먹습니다. 복날을 전후해서는 닭이 동나고 개가 많이 잡힌다는 통계가 있지요. 비록 10 여 년 전보다는 개고기 수요가 좀 줄어들고 있다는 현상은 있습니다만 여전히 삼복더위 절식을 찾아먹고 있다고 해도 될 것 같습니다. 결국 삼복음식으로 북한에선 개고기, 남한에선 닭고기를 선호한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북한에선 개고기를 얼마나 높이 치는지 “오뉴월 단고기 국물은 발등에 떨어져도 약이 된다”라고 합니다.

 

복날은 절식을 찾아 먹는 것 외에는 특별한 풍속이 없다고 알면 되겠네요.

 

임채욱 선생: 지방에 따라 복날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도 있습니다. 가령 “복날 비가 오면 보은 큰 애기가 운다”는 말이 있습니다. 충청북도 보은은 대추가 많이 나는 고장인데, 대추나무는 복날마다 꽃이 핀다고 합니다. 그러니 복날에는 비가 오지 않아야 하는데 비가 오면 보은 처녀는 시집 갈 혼수준비가 어려워진다는 것이지요. 앞에서 복날 발을 씻는 탁족을 한다고 했는데 복날에는 목욕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복날 목욕을 하면 몸이 여윈다고 하지요. 그래서 더워도 발 씻는 것으로 끝낸다고도 합니다. 혹시 모르고 초복 날 목욕을 했으면 중복, 말복날도 목욕을 해야 하는 것으로 돼 있습니다.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부산 중구가 제72주년 광복절을 기념해 광복로를 태극기 거리로 꾸몄다. 중구는 다음 달 1일까지 태극기 1천여기를 광복로 일대에 전시할 예정이다.
부산 중구가 제72주년 광복절을 기념해 광복로를 태극기 거리로 꾸몄다. 중구는 다음 달 1일까지 태극기 1천여기를 광복로 일대에 전시할 예정이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8월입니다. 8월은 우리 민족이 잊을 수 없는 광복의 달이고 해방의 달입니다. 광복도 있고 해방도 있는 것이 아니라 1945년 8월 15일 이 날을 광복의 날이라고도 하고 해방의 날이라고도 하지요. 통일문화산책 오늘도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남북한에서의 ‘광복, 해방의 달’의 의미 그리고 남한과 북한의 시대적 변천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광복과 해방 사이에 차이가 있을까요?

 

임채욱 선생: 의미상 차이가 있지요. 광복은 빼앗긴 주권을 도로 찾았다는 의미가 있다면 해방은 외세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났다고 하는 의미가 강하지요. 그래서 광복(Independence)에는 우리민족이 항거를 하고 투쟁을 했다는 것이 숨어있는데, 해방(Liberation)에는 외세의 힘으로 풀려나고 벗어났다는 의미가 느껴지는 편이지요.

 

그럼 어느 것을 쓰는 것이 맞는 것인지요?

 

임채욱 선생: 주권의 회복이란 뜻에서 보면 38선을 경계로 미국과 소련이 3년간 군정을 편 다음 새 정권을 세운 날이 진정한 광복의 날이겠지요. 하지만 우리 민족은 상해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줄기차게 독립항쟁을 해왔기에 그것이 1945년 8월 광복을 가져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해방의 의미보다는 광복의 의미가 더 크지요. 따라서 광복의 날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8월 15일을 남쪽에서는 광복절이라 하고 북쪽에서는 해방기념일이라고 하잖습니까?

 

임채욱 선생: 상해임정, 다시 말해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 대부분은 수도가 있던 남쪽으로 옵니다. 임정요인들이 풍찬노숙 하면서 자나 깨나 바란 것이 광복이었지요. 광복을 외치면서 광복군을 조직해서 훈련하고 광복이란 이름의 단체들을 지원합니다. 그래서 남쪽에서는 광복이란 개념이 풍미합니다. 그런데 이때도 좌익계열 사람들은 해방이란 이름을 선호해서 해방신문, 해방일보 등 해방이란 이름의 단체를 많이 만듭니다. 마찬가지로 북쪽에서도 해방이란 이름의 기념일, 단체를 선호합니다. 그런데 북한에서도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해방기념일이라고도 하고 조국광복의 날이라고도 합니다.

 

기념일 명칭문제는 이쯤 해두고 이번에는 그날 광복으로부터 올해가 72년 되는 해니까 많은 날들이 흘렀습니다. 삶의 외형도 많이 변하고 의식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한 번 일별해보면 어떨까요?

 

임채욱 선생: 그러지요. 하나의 사람집단은 민족을 이뤄서 강역을 차지하고 역사를 만들어갑니다. 그런 바탕 안에서 자연을 이용해서 산업을 일으키고 의식주생활을 영위합니다. 또한 그 민족구성원들은 나라를 만들고 사회를 형성하면서 민족문화를 창조합니다. 남북한의 우리민족도 광복되던 날로부터 70년이 넘게 이렇게 살아오고 있습니다. 물론 그 중간에 동족상잔의 전쟁도 했습니다.

 

네. 민족, 강역, 역사 순으로 그 변화해온 모습을 한 번 훑어보도록 하지요.

 

임채욱 선생: 광복이후 38선 남쪽에서는 민족을 찾는 사람들이 민주주의 나라를 세운다고 했고 물론 이를 방해하는 좌익활동가들이 있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지요. 북쪽에서는 계급이 민족보다 더 우선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사회주의, 공산주의 나라를 만들려고 했지요. 그래서 이 땅에는 민족론자와 계급론자가 대립하는 양상을 띄었지요. 계급론자들은 프로레타리아 계급이 지배하는 사회, 나중에는 나라도 없어지는 그런 사회를 꿈꾸는 사람들이었지요. 그걸 북쪽과 남쪽에서 다 실현하려고 날뛰었지요. 그런데 지금은 놀랍게도 남쪽보다 북쪽에서 민족을 더 찾는 것처럼 보입니다. 김일성 때문입니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임채욱 선생: 김일성은 1991년 8월 어느 날 느닷없이 자기는 공산주의자인 동시에 민족주의자이고 국제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왜 그런 말을 해야 했을까요? 아시다시피 1990년 대 초부터 동부유럽이 해체되면서 소련이 무너지고 사회주의 권 전체의 좌절이 시작됩니다. 이때부터 북한은 재빨리 ‘우리식 사회주의’를 내세우면서 ‘조선민족제일주의’를 강조합니다. 그렇지만 아들 김정일 선대통치자는 공산주의자들은 민족주의자가 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약간 상치되는데 김정일 말이 진심일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 북한이 보는 민족은 어떤 것입니까?

 

임채욱 선생: 남쪽에 사는 동포는 피는 같지만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부르죠아 민족이고 북쪽 사람은 공산주의를 지향하는 프로레타리아 민족이라고 보지요. 이렇게 다른 성격의 민족을 하나로 만들려고, 즉 부르죠아 민족을 프로레타리아 민족으로 만드는 것이 ‘남조선혁명’이지요.

 

남쪽에서는 민족에 대한 관점이 어떻습니까?

 

임채욱 선생: 남쪽에선 좌파활동가들이 북한의 민족강조 주장에 호응해서 외세배격을 외치는데, 오히려 우파진영에서는 탈 민족주의 경향도 나타내고 있습니다. 개인의 행복이 민족문제보다 더 중요하다고 보는 사람도 있지요. 하지만 다른 나라와 달리 단일민족 전통이 강한 우리나라에서는 결코 민족을 떠나서는 어떤 정책도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결국 민족을 찾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군요

 

임채욱 선생: 여기에서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북한동포들은 분명 혈통을 같이하는 민족인데도 ‘주체적 민족’을 강조하니까 같은 민족이 아닌 것처럼 되지요. 그래서 남북한 동포들은 서로를 같은 민족이라고 하지 말고 통일될 때까지는 정치적 개념인 민족보다 인류학적 개념인 동족이라고만 하면 어떨까 싶군요.

 

이번에는 우리 민족의 삶의 터전인 강역(疆域)에 대한 인식을 말씀해주시죠.

 

임채욱 선생: 영토의식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남쪽 대한민국 헌법에는 한반도 전체와 그 부속 섬들을 영토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지역은 백두산민족 또는 김일성민족의 김씨 집안이 다스리고 있어서 대한민국의 주권이 미치지 못하지요. 그 바람에 백두산 천지가 반으로 쪼개지고 백두산 봉우리들이 나눠지는데도 남쪽에서는 모르는 일이 될 수밖에 없었지요. 그뿐이 아니지요. 역사적으로 우리 선조들의 강역이였던 백두산 너머 만주 땅을 향한 아쉬움과 상실감도 있지요. 그래서 이런 시를 읊게 합니다.

백두산 너머 일만의 터전을 잃고/ 오늘도 지도 조각만 들여다보면/

통분한 생각, 가슴속에 불이 붙는데/ 줄어든 북한 땅마저 어둠 속에 던져두고/

겯고 틀고 헐떡이며 살아야 하나! (이은상)

 

백두산과 독도 지키기가 우리 강역에 대한 영토의식을 상징적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럼 이번에는 분단의 역사를 둔 관점을 말씀해주시죠.

 

임채욱 선생: 남쪽의 대통령이 북한이 핵을 폐기하면 대동강의 기적을 이루도록 돕겠다고 했습니다. 거짓말은 아닙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정말 대동강을 끼고 있는 평양은 대동강의 기적을 이루고 나아가서 허균이가 지은 소설 <홍길동 전>에서 꿈꾸는 대동사회(大同社會)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을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대동사회는 어떤 것입니까? 그리고 북한은 대동강의 기적을 이룰 수 있습니까?

 

임채욱 선생: 대동사회는 공자가 말했다고 하죠. 능력 있는 사람은 언제나 쓰임이 있고 젊은이들이 일을 할 수 있고 노인은 자기 생을 편안하게 끝낼 수 있으며, 병자나 불쌍한 사람은 부양되는 세상이 바로 대동사회라는 거죠. 허균은 그의 소설에서 대동사회가 실현되는 율도국을 그리고 있지요. 허균의 소설뿐이 아니고 동양사회에선 이런 유토피아를 그린 글들이 많이 나타났지요. 그런데 북한이 대동사회를 만든다면 아주 좋은 일이지요. 그러자면 조건이 있습니다. 김씨 왕조에서 벗어나서 민주주의 국가가 돼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북한은 말은 사회주의 국가라면서도 김일성과 김정일의 사상과 영도를 구현한 나라가 됐다고 하지요. 헌법도 명칭만 사회주의 헌법이지 실제 김일성-김정일 헌법이라 봐야 하지요. 혁명과 건설을 한다면서 혁명전적지와 사적지만 110개를 조성하고 혁명박물관, 혁명사적관 88개가 만들어 졌고 혁명사적 기념비는 수 천 개도 더 되게 만들어 진 역사를 쓰고 있습니다.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평양시에 있는 고산동 고분.
평양시에 있는 고산동 고분.
사진-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경주는 고분을 포함해서 경주지역 역사지구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게 2000년입니다. 물론 경주 불국사와 석굴암은 1995년에 이미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됐지요.

통일문화산책 오늘 이 시간에는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남북한에 있는 유네스코 문화유산 중 경주와 평양의 고분을 찾아보고 그 의의를 음미해 보겠습니다.

먼저 유네스코에 등재된 남북한 문화유산은 지난번 이 시간에 한 번 훑어봤습니다만 다시 한번 간단하게 숫자만 말씀해 주시죠.

임채욱 선생: 네. 유네스코 문화유산은 유형별로 등재됩니다. 크게 세계문화유산이 있고 무형문화유산이 있고 기록유산이 있습니다. 이 3개 유형별로 우리나라는 한국이 문화유산 11건, 무형문화유산 19건, 기록유산 13건이며, 북한은 문화유산 2건, 무형문화유산 2건입니다. 이 셋 외에 자연유산이 있는데 한국은 제주도 화산섬과 용암동굴이 등재됐고, 또 경북 청송 지역은 세계 지질 공원으로 등재됐습니다. 한국은 기록유산만큼은 다른 나라에 안 지지요. 우리 선조들이 남긴 기록물이 워낙 대단했으니까요.

경주고분, 평양고분은 언제 지정됐습니까?

임채욱 선생: 경주는 고분을 포함해서 경주지역 역사지구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게 2000년입니다. 물론 경주 불국사와 석굴암은 1995년에 이미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됐지요. 경주 역사지구는 또 크게 5개 지구로 나눠지는데 오늘 이야기하는 경주고분은 그 가운데 대능원지구로 이름 붙여진 신라고분 150여기를 말합니다. 평양고분은 2004년에 등재되는데 평양을 비롯해 주변에 널린 고구려시대 무덤 63기를 말합니다.

그럼 경주 대능원지구 고분을 한 번 볼까요?

임채욱 선생: 대능원지구에는 신라의 왕들과 왕비, 귀족들 무덤이 황남리, 노동리, 노서리에 걸쳐 있는데 모두 150여기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 무덤들에서 무덤 주인이 알려진 것도 있고 무덤주인공이 알려지지 않은 무슨 총(塚)이 있지요. 아시다시피 이름이 알려지지 않는 무덤은 무슨 총이라고 하지요. 총들 중 황남대총, 천마총 들은 너무나 유명한 무덤들이지요. 황남대총은 두 개 큰 무덤이 남북으로 맞붙은 쌍무덤인데, 크기가 어마어마해서 남북길이 120m, 동서길이 80m가 되지요. 이 무덤 안에서 금관과 금목걸이 등 귀중한 유물이 많이 발굴됐지요. 황남대총에 많이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천마총은 천마도란 그림이 나와서 천마총이란 이름이 붙여진 무덤이지요. 이 무덤에서도 금관이 나왔지만 천마를 그린 말다래가 나와서 그게 눈을 끌었지요. 말다래는 말을 탄 사람 옷에 흙이 튀지 않도록 늘어뜨린 물건이지요. 대개 헝겊이나 가죽으로 만드는데 이 천마도가 그려진 말다래는 자작나무 껍질로 만들어진 것으로 판명됐습니다.

경주 고분 설명만 해도 시간이 모자라겠군요. 그럼 평양 고분도 말씀해 주세요.

임채욱 선생: 유네스코에 등재된 평양지역과 그 인근에 위치한 고분은 63기입니다. 4세기에서 7세기 사이에 만들어진 무덤들인데 이 가운데 우리가 잘 자랑하는 벽화무덤들 16기도 있습니다. 이 63기는 평양에 49기가 집중돼 있고 대동군, 남포시, 황해남도 안악군에도 분포돼 있습니다. 평양에 많이 있다고 해서 평양고분이라 했지만 사실은 고구려 고분들이지요. 무덤이란 무덤 모두를 다하면 수 만기가 있겠지만 유네스코 문화유산이 된다는 것은 보존할 가치가 있다는 것이지요. 이 고분들 가운데 벽화가 그려진 무덤이 더욱 중요하지요. 고구려 사람들도 처음에는 무덤을 돌로 덮어 묻어버렸는데 점차 땅 밑에 돌로 만든 방을 만들고 흙무더기를 쌓아 올린 형태로 만들었지요. 이걸 석실 봉토분이라고 하는데 벽화는 이 돌방 안 천장이나 벽에서 발견됩니다. 벽화그림 내용은 생활상을 담은 것이 있고 생활상에 보태서 장식무늬나 사신도 그림, 즉 청룡, 백호, 주작, 현무를 그린 벽화가 있고 또 연꽃을 비롯해서 하늘의 별들과 불교적 색채를 나타내는 벽화들이 있습니다. 고구려 사람들은 무덤을 영혼의 안식처라고 믿고 이처럼 무덤 안을 지상의 집처럼 잘 꾸몄습니다.

많은 고분벽화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어떤 것입니까?

임채욱 선생: 평양에서 조금 떨어진 남포시 강서구역이란 곳 덕흥리에 있는 덕흥리 고분에는 무덤 주인공이 그려져 있고 관직이름과 아랫사람이 보고를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당시 고구려 사회상을 볼 수 있는 아주 중요한 벽화이지요. 또 안악에 있는 안악3호분은 여자들이 음식을 만들고 사냥에서 잡은 고기가 걸려있는 벽화로 유명하지요. 씨름하는 장면이 그려진 씨름무덤(각저총), 춤추는 장면이 그러진 춤무덤(무용총), 거북이 그림이 있는 거북무덤(귀갑총)이 있고 용강대총, 쌍영총, 감신총 등이 알려진 무덤이지요. 이 가운데 쌍영총은 무덤 안에 2개의 팔각기둥이 서 있어 무덤이름을 쌍영총이라 했는데, 이 무덤벽화는 인물도, 풍속도, 사신도가 그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수레도 보이고 갑옷 입은 무사, 즉 개마무사라고 하는 개마무사도 보이고 말 탄 무사도 보이고 북치는 사람, 창을 쥐고 춤추는 사람도 있고, 청룡과 백호도 보입니다. 천장에는 당초무늬, 봉황새, 구름으로 장식돼 있고 8각기둥에는 용무늬를 그려 넣었습니다.

경주고분이나 평양고분, 다시 말해서 신라고분과 고구려고분은 우리 조상들의 역사를 말해주는 실증적인 자료들입니다. 남북한은 이를 통해 역사를 알고 후세에도 이를 잘 전해 줄 의무가 있겠지요?

임채욱 선생: 당연하지요. 신라의 능들이나 고구려 고분들이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된 있는 이상 세계 사람들이 눈여겨보게 됩니다. 우리 후세뿐 아니라 세계 사람들을 위해서도 잘 보존하고 관리해야 합니다. 남북한이 힘을 합쳐서라도 이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중앙동물원의 하마를 보며 좋아하는 북한 청소년들.
중앙동물원의 하마를 보며 좋아하는 북한 청소년들.
사진-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북한의 자연박물관과 중앙동물원이 작년 7월 개관 이후 근로자와 청소년학생들, 해외동포들, 외국인들이 찾았으며, 파충관, 원숭이관, 맹수사, 코끼리사, 기린사 등이 인기를 모았다고 북한 매체들이 전한 바 있습니다.

통일문화산책 오늘은 작년 7월 평양에 자연박물관이 문을 연지 1년을 맞아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남북한의 자연사박물관을 찾아가 보겠습니다.

먼저 작년 북한 자연박물관 개관에 대해 알아보지요.

임채욱 선생: 네. 평양 대성산 기슭에 작년 7월 24일 개관한 자연박물관은 그 이웃에 함께 문을 연 중앙동물원과 함께 관람객이 첫 10일간만 해도 근 20여 만명에 가까웠다고 합니다. 아주 좋은 볼거리인 것 같습니다. 북한매체들은 과학교육 기지이고 대중교양의 보급기지라고 말합니다. 이 박물관 건설에는 통치자 김정은이 직접 발기하고 건설에 나서는 문제들을 풀어줬다고 합니다. 그게 무려 150차례나 된다는 것입니다. 이건 북한정권에서 세웠다는 것을 말하지요. 그런데 한국에선 국가가 세운 자연사박물관은 현재 없습니다. 국립 자연사박물관 건립 필요성은 오래전부터 제기돼 오지만 아직 실현을 못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공공성을 띈 자연사박물관이나 대학부설 박물관, 그리고 사설 박물관은 여기저기에 아주 많습니다.

남쪽에선 대체로 자연사박물관이라 부르고 북쪽에서는 자연박물관이라고 하는군요. 개념상 차이가 없을 테지요.

임채욱 선생: 그렇습니다. 대체로 자연사박물관이라고 하지만 세계 각국 자연사박물관 명칭 중에는 자연박물관이라 하는데도 있습니다.

그럼 자연사박물관은 어떤 것이고 어떤 기능과 역할을 하는지 먼저 말씀해주시죠.

임채욱 선생: 자연사란 용어는 로마시대에 이미 쓰였다고 합니다. 로마시대 자연사학자 폴리니우스라는 사람이 광물, 보석, 동물, 식물, 약리, 지형, 인류 등등을 다룬 <자연사>란 책을 내면서 자연사란 말을 이미 썼습니다. 그 뒤 자연사는 우주와 지구상의 자연을 종합적으로 다루는 학문이 됐지요. 따라서 자연사에는 지구과학, 환경학, 생물학, 고고인류학의 자료들이 포함되게 되지요. 그러니까 수학이나 물리학, 화학, 공학 같은 과학기술을 뺀 나머지 모두가 자연사 개념에 들어간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포괄범위가 넓지요. 천문, 해양, 지질, 동물, 식물에 해당하는 것은 모두 자연사에 포함되지요. 한마디로 우주와 지구상의 자연을 종합적으로 다루는 것이 자연사라고 하겠습니다. 자연사박물관은 자연을 연구하고 자연자료를 수집해서 전시하고 이를 통해 일반국민에게 교육을 시키는 기능을 주로 하지만 한마디로 학교 교육에서 하기 어려운 역할을 맡고 있는 부분이 있지요. 수집된 자연자원을 보존하고 보전해서 후세에 전달하는 역할이 아주 큰 것이지요.

평양 자연박물관을 소개해 주시지요.

임채욱 선생: 연건축면적이 3만 5.000평방미터에 달하는 크기라니까 아주 크지요. 우주관, 고생대관, 중생대관, 신생대관, 동물관, 식물관 등으로 구성돼 있는데, 각 전시관에는 각종 표본들과 자료들이 전시돼 있고 대형전광판을 비롯해서 검색 컴퓨터가 설치돼 있습니다. 중앙홀은 4층까지 관통돼 있는데 화산폭발로 용암들이 흐르는 것을 배경으로 공룡과 익룡 모형이 결려 있습니다. 우주관에는 우주 형성과 관련된 천문자료들과 생명기원을 가르쳐주는 자료들로 꾸며져 있습니다. 고생대관, 중생대관, 신생대관 등 고생물관에는 생물들이 나타나고 진화해온 과정을 모형과 도판을 통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밖에 공룡공원, 화석체험실, 신생대 원시림, 빙하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또 동물관은 동물별로 구분해서 진화와 인간생활과의 관계를 설명하는 전시물로 채워져 있고 식물관에는 식물과 우리생활 관계를 보여주는 전시물이 가득합니다.

그럼 다음으로 남쪽에 있는 자연사박물관을 한 번 볼까요?

임채욱 선생: 앞에서도 잠깐 말했지만 한국은 OECD 국가 중 자연사박물관이 없는 유일한 국가라고 합니다. 1990년대 초부터 국립자연사박물관 건립추진위원회가 설립돼서 심포지엄도 열고 자료도 수집하면서 활동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빨리 추진이 되지 않고 지지부진한 상태입니다. 올해 국립중앙과학관에 그나마 자연사관이 개관돼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민간에서 하는 자연사박물관은 여러 군데가 있습니다. 공공기관에서 설립한 것도 있고 개인이 설립한 사립박물관도 많습니다. 또 대학에서 부설로 설립한 곳도 7군데가 넘습니다. 모두 다하면 20곳이 넘지요.

구체적인 내용을 설명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임채욱 선생: 수도권에 가장 많은데 7곳이 됩니다. 이 가운데 서대문자연사박물관은 지방자치단에서 설립한 것으로 지구환경관, 생명진화관, 공룡공원 등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2003년 7월 문을 연 이래 수도권의 많은 학생, 직장인들이 찾는 곳이 되었습니다. 수도권에 있는 자연사박물관 중에는 이화여대 자연사박물관도 눈 여겨 볼 곳입니다. 1969년 한국에서 제일 먼저 생긴 자연사박물관이니까요. 전시물은 광물, 암석, 동물, 식물 표본이 있고 생태교육을 위한 자료들이 있습니다. 영남지역에는 고성에 공룡 위주의 자연사박물관과 부산에 있는 해양자연사박물관이 눈에 띄는 곳입니다. 호남지역에는 목포에 해양자원 위주로 전시된 자연사박물관이 유명하지요. 2004년 9월 공립으로는 두 번 째 개관했지요. 호서지역, 충청지역에는 대전에 지질박물관이 그럴 듯 합니다. 관동지방에는 금강산자연사박물관이 특이하고 태백고생대자연사박물관은 석탄 생성과 관련된 박물관입니다. 제주도에는 제주도 민속을 위주로 한 생활과 관련된 민속자연사박물관이 찾는 곳이 되고 있지요.

남북한에서 자연사박물관은 외국에 비해 역사가 짧지요? 하지만 특색 있는 전시로 남북한은 서로 협조하고 교류할 가능성은 없을까요?

임채욱 선생: 네. 남북한 자연사박물관은 세계 기준으로 보면 역사가 짧지요. 프랑스에서 1793년에 이미 국립자연사박물관이 생기고 미국에도 1846년에 생기고 일본만 해도 1871년에 자연사 박물관 문을 엽니다. 이런 앞선 나라들이 가진 운영경험을 배울 필요도 있고 또 남북한 간에도 서로 가르쳐주고 배우는 것이 필요하겠지요. 앞으로 남쪽에서 국립자연사박물관을 세울 때 북쪽의 경험을 배우는 것이 나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자면 남북한 박물관 간에 사람 교류가 먼저 이뤄져야 하겠지요.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평양 시민들이 장기를 두고 있다.
평양 시민들이 장기를 두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북한에선 장기를 두면서 ‘장군아’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장이야’, ‘포장이야’ 하든가 ‘장훈아’ ‘멍훈아’ 하지 ‘장군아’라든가 ‘장군 받아라’라고는 안 한다는 편이에요

 

한국의 한 장기 단체에서 남북 통일 장기 경기를 하자고 한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어떤 내용인지, 그리고 남북한 장기 두기는 어떤 광경을 보이는지를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한국의 대한 장기 협회 단체가 있지요.

 

임채욱 선생: 지난 5월 말 대한장기협회란 단체에서 남북통일장기경기 추진위원회란 조직을 만들어서 남북통일장기경기를 하겠다고 합니다. 추진위원회 김홍규 위원장(64)은 “장기를 통해 남북이 마주 앉게 되면 대화와 소통의 문이 자연스럽게 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장기는 전통적으로 남북한 모두에서 즐기는 민속게임이라서 남북이 공유하기에 딱 좋은 스포츠라는 것입니다.

이런 견해대로 남북 장기시합이 합의되면 어떤 물꼬를 틀 수 있다면 좋을텐데요?

임채욱 선생: 아마도 한국에서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민간교류가 활발하게 될 것을 내다보고 장기교류도 본격적으로 추진하려는 모양입니다. 이 단체는 9년 전인 2008년부터 이 경기를 추진했다고 하니까 오래 전부터 준비해 왔던 것 같습니다. 추진위원장 말로는 첫 대회를 내년 5월 10 일 쯤 평양에서 열기로 하고 경기 때 쓸 장기판과 장기알도 이미 만들어 뒀다고 합니다. 만일 성사가 된다면 장기판과 장기알도 만 세트를 북한에 기증 하겠다는군요. 과거 정주영회장이 소떼를 몰고 방북 했던 것처럼 장기판 1만 세트를 들고 가겠다는 것입니다.

 

그 참 장기판과 장기알도 만들어 뒀다니 어떤 것인지 궁금하군요.

 

임채욱 선생: 글쎄요. 장기판 재질은 어떤 것으로 만들었는지 밝혀지지 않았고 장기판 규격은 한국에서 쓰는 크기로 보입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장기 알 글자가 전통적인 한(漢)과 초(楚) 대신에 통(統)과 일(一)로 됐군요. 장기판 옆에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란 문구를 넣었어요. 장기판 가운데는 한반도 지도를 아로새겼고요. 문제는 북한은 장기판이 매우 커서 남쪽의 서너 배가 되고 차, 포, 상, 마, 졸, 같은 장기알도 한글로 쓰여 있지요. 그래도 시합은 다 합의하기 나름이니까 해결되겠지만 기증하는 장기판 1만 세트가 호응을 받으려면 북한에서 사용하는 크기로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도 싶군요.

 

장기판과 장기 알 모양이 다른데 장기 두는 방식도 다른 면이 있습니까?

 

임채욱 선생: 장기 두는 방식은 다를 것 없지요. 다만 북한에선 장기를 두면서 ‘장군아’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장이야’, ‘포장이야’ 하든가 ‘장훈아’ ‘멍훈아’ 하지 ‘장군아’라든가 ‘장군 받아라’라고는 안한다는 편이에요. 왜 그럴까요? ‘장군’ 할 때 ‘장군’이라고 불리는 것은 그들 통치자에게 호통을 치는 것이 되지요. 얼마나 큰 불경을 저지르는 것이 됩니까? 그래서 통일장기 처럼 ‘통’이나 ‘일’하고 외치는 것도 괜찮을 것 같군요.

 

장기는 보통 ‘장군아’하고 소리치는 재미로 하는데 ‘장훈아’ 하면 재미는 있을까요? 그런데 ‘장훈’이라 한다면 이 ‘장훈’은 어떤 뜻입니까?

 

임채욱 선생: 북한 사전에서 ‘장훈’은 ‘장기놀이에서 장군을 이르는 말’, ‘멍훈’은 ‘장기놀이에서 멍군을 이르는 말’로 돼 있습니다. 한자 표현으로는 어떤 글자인지 알려지지 않습니다.

 

남북한 장기인구라든가 현황은 어떤가요?

 

임채욱 선생: 김홍규 위원장 말로는 한국에서는 장기 동호인 수가 1000만 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바둑 인구가 900만 명이라는데 바둑 보다 많다는 것이지요. 그건 그렇고 북한에서는 장기가 장려되는 편이지요. 나라에서 육성하는 국기(國技)라고 까지 말할 정도지요. 북한에서는 인민체육대회에도 장기부문이 있습니다. 이 부문에서 3번이나 우승을 해서 선수권을 보유한 장기영웅이 있는데, 40대 중반으로 4살 때부터 장기를 뒀다고 합니다. 이 사람이 하는 말이 자기는 장기를 단순한 놀이로 생각하지 않아서 북과 남 그리고 해외동포가 참가하는 장기경기가 열린다면 좋겠다는 말도 합니다. 북한에는 또 군사장기라는 것도 있습니다.

 

군사장기는 어떤 것인지요?

 

임채욱 선생: 군사장기는 장기 알 명칭이 공병, 비행기, 포, 고사포, 탱크, 지뢰, 어뢰정, 구축함, 잠수함, 전투함, 수뢰, 군기 등 12개 말로 된 장기입니다. 그러니까 한편의 말이 12개죠. 이 알 들의 기능을 보면 공병은 지뢰를 잡고 비행기는 탱크를 잡고 전투함은 구축함을 잡으며 또 포는 탱크를 잡고 탱크는 고사포를 잡고 고사포는 비행기를 잡는 식으로 돼 있습니다. 알들 배치를 보면 장기판에는 바다와 육지가 있어서 군함과 수뢰는 바다 기슭의 놓고 싶은 곳에 두고 다른 것들은 육지의 아무 칸에나 두는데 장기알 글자가 안보이게 뒤집어 둡니다. 경기방법을 보면 자기진지에서는 직선으로 마음대로 가지만 적의 진지에서는 한 칸씩 밖에 못 움직입니다. 군함은 자기 해안에서만 마음대로 움직이나 바다를 건널 때는 가고 싶은 해안 한 곳에서만 닿을 수 있습니다. 비행기는 육지에서는 다른 장기알과 같이 움직이고 바다를 건널 때는 상대편 해안 한 곳에만 내려야 합니다. 지뢰와 수뢰는 한 번 놓으면 자리를 뜨지 못합니다. 승패결정, 즉 이기고 지는 것은 상대편 군기를 잡든가, 나머지 알들을 다 잡으면 이깁니다. 장기알을 덮어뒀기 때문에 이쪽에서 움직일 때도 상대방 말이 무엇인지를 짐작으로 잡으려고 덤빕니다.

 

장기나 바둑은 우리나라 사람이 오래 전부터 즐겨온 오락물이고 오늘날에는 스포츠로 발전됐습니다만, 한국에서는 바둑을 더 많이 두는 것 같고 북한에선 장기를 더 즐기는 것 같습니다. 어느 것이 더 좋은 오락이다, 이렇게 말하기는 어렵겠지요?

 

임채욱 선생: 그렇지요. 하지만 이런 이야기가 있잖습니까? 사돈 두 사람이 만나 이야기를 합니다.

“사돈 바둑 두십니까?” “아니 못 둡니다.” “사돈, 장기는 둬요?” “못둡니다” “사돈 그럼 꼰은 둘 줄 알아?” 이 대화를 잘 들어보시면 처음에는 아주 경어를 서 사돈에게 바둑 두느냐고 물었고 못 둔다니까 낮춤말로 장기 두느냐 물었고 장기도 못 둔다니까 아주 낮춤말로 꼰은 둘줄 아느냐고 조롱하듯이 말합니다. 이게 옛날 우리 선조들이 바둑, 장기, 꼰, 꼰은 표준어로는 ‘고누’지요. 이 세 가지 위계, 즉 높이가 이런 순서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다시 잘 생각해보면 고누는 모르지만 바둑이나 장기는 각기 다 좋은 점을 가졌지요. 바둑은 상대방과 협력하면서 자기 세력을 늘려가는 것이고 장기는 상대방을 잡아 없애는 것이어서 오늘날 민주주의 시대에는 바둑이 더 적합하다는 사람도 있지만 장기는 내 말이 죽으면서 다른 것을 살린다는 규칙대로 나라를 위해 희생하는 정신을 북돋을 수 있는 게임이라고 할 수 있지요. 또 바둑알은 모두 똑 같은 평등관계지만 장기 알은 차, 포. 마, 상이 다 자기 기능대로 움직이니까 이 사회에서 자기가 맡은 역할대로 살아가는 모습을 나타낸다고, 즉 사회 축도판 이라고도 좋게 말 할 수 있는 것이지요. 또 장기도 바둑처럼 두뇌운동이어서 두뇌발달에 아주 좋다는 연구결과도 있지요. 1986년 미국 피스버그 대학 교수 연구에 의하면 초등학교 학생 200명을 대상으로 장기로 테스트를 했더니 장기가 우뇌발달에 효과가 있어서 창의력과 직관적 사고, 예술 능력 향상에 좋았다는 결론이 났다고 해요. 아무튼 바둑이든, 장기든 심지어 고누이든 자기가 좋아하고 즐기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요. 남북한과 해외동포가 마주 앉아서 장기판을 둔 대국을 한다면 장군아! 라고 외치지 않고 통이야! 하던, 일이야! 하던 그게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경북 안동의 이육사(李陸史.1904∼1944.본명 이원록) 선생의 묘를 찾은 외동딸인 이옥비(李沃非) 여사.
경북 안동의 이육사(李陸史.1904∼1944.본명 이원록) 선생의 묘를 찾은 외동딸인 이옥비(李沃非) 여사.
사진-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7월입니다. 7월이면 떠오르는 시가 있지요?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육사의 시 <청포도>가 생각납니다. 이 시 귀 중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 온다고 했으니”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 청포를 입은 손님은 과연 누구일까요? 통일문화산책 오늘도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이육사 같은 애국시인을 시작으로 남북한 시인들이 쓰는 시 세계를 알아봅니다.

이육사 시인에 대한 이야기 들려주세요.

임채욱 선생: 이육사는 아시다시피 애국시인이지요. 지금 말씀하신 청포를 입은 손님은 우리 독립을 이끌 염원의 대상이 아닐까 싶군요. 이육사는 다른 작품 <광야>에서도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는 표현으로 독립운동을 이끌 어떤 영도자를 찾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게 합니다. 이육사 자신이 열 몇 번이나 감옥에 들락날락 했을 정도로 애국을 했던 독립운동가였지요. 육사란 이름도 죄수 번호에서 왔다는 것 아닙니까? 어디 육사뿐이겠습니까? 시인으로써 애국하던 분들은 얼마나 많았습니까?

애국시인을 둔 남북한 평가가 다른 경우도 있겠지요? 비단 애국시인뿐 아니더라도 민족항일 시기를 거친 시인을 보는 눈이 다를 것 아니겠습니까?

임채욱 선생: 네 그렇지요. 이육사 외에 이상화나 윤동주 같은 시인은 남한이나 북한이나 다 일제에게 저항한 애국시인으로 보고 있지요. 이상화 시인은 그의 작품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1926)에서 설령 봄이 오더라도 봄조차 빼앗기는 기막힌 식민현실을 묘사하면서 저항의식을 직정적으로 내 뱉었습니다. 남이나 북이나 이상화시인은 애국시인으로 평가됩니다. 윤동주시인도 지난 번 이 시간에 한 번 다룬 것처럼 남북한에서 다 애국시인으로 좋게 평가되고 있지요.

이번에는 이야기를 바꿔보겠습니다. 먼저 시란 어떤 것이고 시인은 남북한에서 어떻게 다를까를 한 번 생각해 볼까요?

임채욱 선생: 네. 시란 무엇일까요? 수많은 정의가 있겠지만 시를 대하는 태도에서 시가 뭣인가를 한 번 짚어보지요. 어떤 사람은 경영자의 외로움을 시가 달래주더라 했고 또 다른 사람은 삶이 아플 때 응급약처럼 쓰이더란 말도 했습니다. 또 누구는 인공지능이 세상을 지배할 시대에 인간성을 지킬 마지막 보루가 시가 된다고 단정도 합니다만, 이 말은 어떻습니까? “죽으려고 했다. 그때 한 편의 시가 나를 건졌다”라고 절절하게 외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걸 시의 효용성이란 말로 표현하면 너무 세속적이 되지요? 시를 쉽게 이해하기 위해 산문과 비교하는 것을 보겠습니다. 쌀로 밥을 짓는 것과 쌀로 술을 빚는 것을 생각할 때 쌀로 밥을 짓는 것은 산문, 즉 수필 같은 글을 쓰는 것이고 쌀로 술을 빚는 것은 시를 쓰는 일이라고 합니다. 쌀로 밥을 지을 때는 쌀의 변화가 물리적 변화이지만 쌀로 술을 빚는다는 것은 화학적 변화라는 것이지요. 말하자면 그 형체가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지요. 밥하기 보다 술 빚기가 어렵겠지요? 또 이렇게 비유하기도 합니다. 여기에서 질문 한 번 던져보겠습니다. 당신은 축구와 야구 중 어느 것을 더 좋아하나요? 축구? 야구? 네. 누군가 말했습니다. 축구는 시를 닮았고 야구는 소설을 닮았다고 합니다. 축구는 야구보다 의외성이 강해서 시적 함축이 나오고 야구는 타자가 홈, 즉 집으로 돌아오는 과정이 소설처럼 기승전결이 있다는 것입니다. 축구는 야구보다 더 본능에 가까운 광기를 느끼게 합니다. 시를 짓는 길에는 술도 한몫한다고 합니다. 술은 일상을 벗어나서 본능에 가까운 감각을 불러옵니다. 그래서 시를 짓는 작업에는 아폴로적인 사색보다 디오니소스적인 충동이 더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시인은 현실을 그대로 보지 않고 몽환 속에서 파악하려는 행위를 하지요.

남북한에서 시인이나 시 짓기가 다른 부분도 있습니까?

임채욱 선생: 이런 것은 있습니다. 가령 앞에서 나온 이상화시인 경우 남쪽에서는 그의 <나의 침실로>같은 낭만주의 시를 선호했다면 북쪽에선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같은 현실주의 작품을 평가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북한에선 남한에서 굉장히 좋아하는 백석 같은 시인은 작품이 언급도 되지 않습니다. 그의 서정시가 평가되지 못하고 있지요. 남한이나 북한에서 시에 대한 사념이나 관념이 다를 수야 없지요. 시 짓기도 시상을 가다듬고 거기에 맞는 언어를 선택해서 시적 표현을 하는 과정이야 세상 어느 곳 시인이더라도 같을 터이지요. 그런데 지어진 남북한 시가 다른 느낌을 주는 것은 왜일까요? 제 생각은 시상을 가다듬을 때 남쪽 시인들은 자기 혼자만 알 수 있는 개인적인 느낌과 사색도 시 소재로 선택하는데 비해 북한 시인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데 있을 것으로 봅니다. 북한에선 시상을 신비화해서 영감(靈感)에서 찾으려는 것을 못하게 하지요. 그러다보니 시어를 선택하는데도 달라지는 것이지요. 북한 문학이 근거하는 주체사실주의란 것이 디오니소스(Dionysus, 고대 그리스 신화의 술과 풍요의 신) 적인 창작태도를 거부하는 것이지요.

주체사실주의에 대해 설명해 주시죠.

임채욱 선생: 한마디로 말하면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에다가 ‘우리식’이 붙은 사실주의지요. 사회주의적 사실주의가 사회주의 국가의 보편적인 창작방식이라면 주체사실주의는 북한에서 등장한 창작방식으로 사회주의사실주의가 사람을 사회역사 발전의 주체로 나타내지 못한데 대해 주체사실주의는 사람을 세계의 지배자, 개조자로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이죠. 쉽게 말하면 이런 것이라 하겠습니다. 여기 사람이 밟아보지 못한 광대한 밀림이 있다고 합시다. 이 밀림이 아무리 신비스럽고 아름답더라도 사람이 보지 않는, 사람이 아름답다고 느끼지 않는 밀림 그 자체 만으로서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그 밀림을 봐야만 그게 의미를 갖는다는 것입니다. 꽃도 사람이 이름을 붙여 줘야만 꽃으로 살아난다는 것과 같은 말이지요. 사람이 없는 세상에 꽃들만 있어봐야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지요. 그런데 알고 보면 이 주체사실주의란 것은 1970년대까지 지켜왔던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에 따른 문학창작방식을 문패만 바꿔 단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남북한 시인들의 정신세계와 그에 따른 작품활동은 남북한 주민들이 동질성을 느끼게 하는데도 아주 중요한 다리(교량) 역할을 할 텐데요?

임채욱 선생: 일단은 다른 면모가 많이 보이지요. 한국에서 보면 시와 관련해서 한국에선 별별 희한한 일을 하는 사람도 있어요. 가령 어떤 시인은 세계명시를 한 자리에 모은 <서정시 동서고금 모두 하나> 6권을 발간합니다. 국내시인 177명과 해외시인 223명의 작품 650편을 한자리에 모았습니다. 중국 시인 두보와 독일 시인 하이네와 릴케, 그리고 헤세가 있고 한국시인 소월이 있으며 프랑스 시인 보드레르가 있지요. 이렇게 세계의 온갖 서정시 650편을 모아서 분석해보니까 소설이 사람살이의 차이를 보여주는 것과는 달리 서정시는 어느 시를 보더라도 사람의 속마음이 똑 같은 것을 알려준다고 단언합니다. 이런 작업을 혼자서 할 수 있는 곳이 한국입니다. 또 서울 지하철 역 15군데에 시항아리가 있습니다. 이 항아리 안에는 시를 인쇄한 두루마리를 둬서 누구나 끄집어내서 읽을 수 있게 하는 시인도 있습니다. 그뿐인가요. 세상에 쓸모없는 시는 없다는 신념으로 낙선작만 모아서 시집으로 출판해주는 사람도 있고 시를 잘못 인용하거나 틀리게 쓰여 진 시를 찾아서 고쳐주는 일만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행태에 비한다면 북한 시인들은 조직에 속해서 지정된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작업에 매진하겠지요. 무엇보다 북한 시인들은 사람들을 문화 정서적으로 교양하기도 하거니와 나아가서 정치사상적으로도 교양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그렇더라도 남북한 시인들은 남북한 주민들이 동질성을 갖도록 연결해 주는 교량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지요.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서울 중구 명동거리에 중국인 관광객이 걸어가고 있다.
서울 중구 명동거리에 중국인 관광객이 걸어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미국이 북한에 대해 여행금지국으로 지정하면 다른 나라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겠지요. 북한으로선 타격이 오지요.

 

스무 두 살 미국청년 웜비어 씨가 북한관광 갔다가 잡혀서 옥살이를 하고 끝내 죽는 바람에 앞으로 북한은 관광 기피국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통일문화산책 오늘은 북한관광 실태를 중심으로 한국 국민의 해외나들이에 대해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알아봅니다.

 

먼저 전 세계인이 주목한 북한에 여행 갔다 죽음으로 돌아온 미국 청년 웜비어 씨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 주시지요.

 

임채욱 선생: 네. 장래성이 있는 청년이 호기심으로 찾았던 곳에서 억류돼서 징역을 살다가 식물인간 상태로 자기나라로 돌아가서 바로 눈을 감았다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요. 이 일로 미국이 북한에 대해 여행금지국으로 지정하면 다른 나라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겠지요. 북한으로선 타격이 오지요. 안 그래도 북한은 지금 국제사회로부터 여러 면에서 제재를 받고 있는 상태인데, 여행금지국이 되면 관광산업조차 위축되는 거지요.

 

그동안은 왜 북한이 여행금지국으로 지정되지는 않고 있었을까요?

 

임채욱 선생: 여행이 위험한 이런 곳이 왜 여행금지국이 되지 않았나하면 미국국민에겐 그 자체가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어서 의회를 통과하기가 어려웠지요. 그런데도 미국사람이나 유럽사람 중에서 북한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곳으로 알려진 이곳이 어떤 모습일까 하는 흥미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지요. 세계의 오지라고 하는 티베트나 부탄보다 더 낯선 곳으로 다가올 수 있지요. 안전문제에서도 중국에 있는 여행사들 팸플릿에는 북한 여행이 안전하다고 강조되고 있으니 이걸 그대로 믿는 여행객도 없지 않을 겁니다.

 

북한의 관광자원은 어떻습니까?

 

임채욱 선생: 북한이 홍보하는 관광지는 평양을 비롯해서 개성지역, 신의주지역, 백두산지구, 묘향산지구, 묘향산지구, 원산 금강산지구, 청진 칠보산지구, 구월산지구, 나진-선봉지구 등인데, 이 곳 들의 자연경관과 여러 유물과 유적이 관광상품으로 나와 있어요. 유물 유적은 건축물, 성곽, 사찰, 고분, 탑과 비석 등으로 비교적 잘 보존돼 있지요. 부분적으로 인프라 시설이 문제가 있는 곳도 있습니다.

 

북한에서 특별히 관광정책이라고 할 것이 있습니까?

 

임채욱 선생: 북한에서 관광을 중시한 것은 1980년대부터입니다. 그 전에는 체제선전을 하기위해서 제한적인 여행객을 맞아들일 뿐이었지요. 관광에 대한 인식 자체가 약해서 외국인의 북한여행을 ‘자본주의 타락’으로 보기도 했고 체제위협 요소로까지 봤지요. 그러니까 북한주민의 외국여행은 개념자체가 없었던 것입니다. 대체로 1986년에 여행관리국을 국가관광총국으로 승격시키면서 관광을 산업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듬해 1987년에는 관광개방지역을 9개로 지정했고 1995년에는 아시아 태평양관광협회란 국제단체에 가입도 했지요. 관광은 사실 큰 투자 없이도 외화를 얻을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에 북한당국도 이제는 관광을 굴뚝 없는 산업으로 받아들이지요. 하지만 중국과 북한 국경지대를 방문하는 중국관광객을 빼면 연간 북한 방문 외국인은 수천 명대에 불과하다니 아직은 관광이 산업화되었다고 하기는 어렵군요.

 

그럼 이번에는 한국관광 실태를 한 번 보지요. 올해 들어 이른바 유커라는 중국 관광객이 확 줄었다고 하죠. 대신 일본, 동남아 관광객이 몰려온다지요.

 

임채욱 선생: 한국은 관광객이 찾아오기 좋도록 전자비자를 발급하고 있습니다. 5명이상 단체관광객이면 여행사를 통해 바로 온라인으로 비자를 발급해줍니다. 2016년 작년 한국을 찾은 관관객은 1600만 명을 넘었다고 합니다. 물론 한국인으로 해외에 여행한 사람은 더 많아서 2016년 해외여행자는 2200만 명을 넘었다고 합니다.

 

한국여행객 수치가 대단하군요.

 

임채욱 선생: 한국국민은 뭔가 나라 안에서 채워지지 않은 것을 해외에서 채워 넣으려는 듯 너도 나도 여행을 떠나다 보니 작년 2200만 명이 넘는 수치는 1989년 해외자유여행이 시작된 이래 가장 많은 수치라고 합니다. 세계의 수많은 도시, 놀웨이 오슬로, 스페인 마드리드, 체코 프라하, 라오스 비엔티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페루 쿠스코 등 세계 어느 곳 한국인의 발길이 없는 곳이 없지요. 어디에도 한국인이 너무 많아서 좀 안 만났으면 좋겠다는 말이 나올 지경이지요. 어느 나라로 많이 갔을까요? 일본이 제일 많았습니다. 다음이 미국입니다. 도시로는 오사카가 제일이고 다음이 도쿄였습니다. 한국 사람들이야 해외나들이를 너무 많이 해서 탈이고 북한사람들이야 너무 못해서 문제지요. 여행자유화가 돼 있지 않은 북한에선 핵심계층이나 해외에 나갈 수 있다고 할 때, 공직을 포함해서 북한주민의 핵심층 6만 명과 그 가족 24만 명 쯤 포함해서 30만 명 정도는 해외여행이 가능한 범위에 들기는 하겠군요.

 

내년 2018년에는 미국에서 민간 관광객 두 사람이 우주선을 타고 달나라를 간다고 하지요? 대단합니다.

 

임채욱 선생: 네. 이제 민간인도 우주를 관광하는 시대가 드디어 열리게 됐습니다. 이들 두 사람은 일주일 예정으로 달 관광에 나서는데 달에 내리지는 않고 달 주위를 돌기만 한다고 합니다. 한 사람당 수백만 달러가 들것이라고 하니 보통사람들이야 엄두도 못 낼 일이지요. 돈 있고 시간 많은 사람들이 엄두를 내면서 도전해보는 것이지요. 정말 미국이니까 가능한 일이기도 하겠군요. 달에는 미국항공우주국, 즉 NASA에서 실시한 아폴로 계획으로 다녀온 훈련된 우주인이 있었지요. 1972년까지 18명이 다녀왔습니다. 그러나 민간인이 관광목적으로 간다는 것은 굉장한 일이지요. 이런 보도를 보면서 북한 주민들이 해외나들이라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날이 하루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정녕 나무에서 물고기를 찾는 일일까요?

 

BRIDGE

 

남북이 분단된 지 어언 70년 남북은 그동안 이념과 체제를 달리하며 각기 다른 길을 걸어왔습니다. 남한은 서양으로부터 다양한 물질문화를 받아들여 식생활에도 큰 변화가 있었으나, 북한은 서양 문화에 인색했던 관계로 아직도 민족 고유 음식과 전통 음식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탈북 여성들이 전해줍니다.

 

오늘은 북한에서 오랜 전통으로 자랑하는 감찰떡을 소개해 드립니다.

준비물은 찹쌀 1킬로 그람, 감 500그람, 흰팥 100그람, 소금 3그람입니다.

 

이제 만들어 볼까요.

감은 물렁한 것으로 준비하여 껍질을 벗기고 거즈에 넣고 쪄서 즙을 만듭니다. 흰팥은 물을 충분히 붓고 밥을 짓듯이 해 뜸을 들인 다음 방망이로 으깨어 고물을 만듭니다. 찹쌀은 물에 불렸다가 시루에 안쳐 찐 다음 뜸을 들일 때 감즙을 넣습니다. 찹쌀이 잘 익으면 소금을 넣고 풀기 나게 쳐서 감빛이 나도록 떡을 만든 다음 적당한 크기로 썰어 흰팥고물을 묻혀 냅니다.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사진은 북한이 주도하는 국제태권도연맹(ITF) 시범단 모습.
사진은 북한이 주도하는 국제태권도연맹(ITF) 시범단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태권도 세계대회는 바로 내일 24일부터 이달 30일까지 전라북도 무주에서 열립니다. 이번 대회에는 특히 북한 태권도 선수들이 주축이 된 시범단도 참가한다고 합니다.

 

얼마 전 한국 여러 경기장에서 열렸던 20세 이하 세계청소년축구대회가 끝났는데 곧이어 태권도 세계대회가 열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남북한의 태권도 대회’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민족이 창안한 태권도가 온 세계에 널리 퍼지고 올림픽종목으로도 됐으니 대단한 일이지요.

 

임채욱 선생: 세계청소년축구대회는 U-20 월드컵코리어란 이름으로 열렸는데 영국이 우승했지요. 영국은 우리가 알다시피 축구를 만들어 낸 종가라고 하지요. 하지만 세계를 제패한 것은 1966년 월드컵대회 이후 이번이 처음이지요. 참 1966년 월드컵대회에는 북한도 참가해서 8강까지 갔지요. 그때 박두익이란 북한선수는 동양의 진주라고 불릴 정도로 공을 잘 찼지요. 이번 축구대회에서 한국팀도 1983년 멕시코대회에서 달성한 4강을 다시 한번 기대했는데 16강전에서 탈락해버렸어요. 태권도 세계대회는 바로 내일 24일부터 이달 30일까지 전라북도 무주에서 열립니다. 이번 대회에는 특히 북한 태권도 선수들이 주축이 된 시범단도 참가한다고 합니다.

 

북한 시범단이 참가한다니 아주 뜻있는 일이군요. 참가 규모는 어떤지요?

 

임채욱 선생: 이 시범단은 북한선수만이 아니라 체코, 불가리아, 오스트리아, 영국, 미국 등의 선수들로 이뤄졌다고 해요. 시범단은 국제태권도연맹에 속한 선수들로 선수 22명 정도, 그밖에 관계자들 해서 시범단 전체는 33명 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아시다시피 태권도는 전 세계에 한국이 중심이 된 세계태권도연맹(WTF)가 있고 북한이 중심이 된 국제태권도연맹(ITF)가 있지요. 두 단체는 세계 태권도계를 양분하면서 경쟁관계에 있지만 3년 전 상대방 경기에도 출전하고 시범단 경기도 교환하자고 약속했지요. 이번에 무주에 오는 것도 이런 약속에 따라 오는 것입니다.

 

두 단체에 대해서 잠시 소개를 해주시지요.

 

임채욱 선생: 먼저 세계태권도연맹은 1973년에 서울에서 창설됐는데 한국의 김운용, 국제올림픽위원회 IOC부총재도 역임했지요? 이 사람이 주도해서 세계단체로 출발해서 현재 가입회원수는 206개 나라에 이르고 있지요. 태권도는 세계태권도연맹의 노력으로 2000년 시드니올림픽대회부터 정식종목이 됐지요. 다음 국제태권도연맹을 알아볼까요? 국제태권도연맹은 세계태권도연맹보다 먼저 태어났어요. 1966년 9월 서울에서 9개 나라 태권도 대표들로 출발했는데요, 이를 주도한 최홍희(군인· 외교관)가 1972년 이후 한국정부와 정치적 갈등을 겪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캐나다로 망명하면서 이 단체도 캐나다 토론토로 본부를 옮기게 됩니다. 이후 그는 북한을 자주 찾아가서 김일성의 환대를 받으면서 북한 태권도 발전에 기여하게 됩니다. 이런 연유로 국제태권도연맹에서는 북한이 종주국처럼 됩니다.

 

그럼 세계태권도연맹에서 하는 태권도와 국제태권도연맹에서 하는 태권도는 동작이나 자세, 경기규칙 등 모두가 다른 면도 많을 것 아니겠습니까? 쉽게 말해서 서울식 태권도와 평양식 태권도라 할 때 다른 부분도 많을 텐데 이런 점을 좀 말해주시죠.

 

임채욱 선생: 태권도는 기본동작으로부터 품세, 겨루기, 단련, 호신술 등으로 이뤄집니다. 기본동작은 주먹과 손날을 이용한 막기, 지르기, 찌르기, 치기 같은 기술이 있지요. 품세는 상대방 공격을 가상해서 공격과 방어동작을 하는 것인데 종류가 급수에 따라 다 다르지요. 겨루기는 품세를 실제로 응용해서 시합을 하는 것이고 단련은 벽돌을 깬다든가 하는 파괴력을 기르는 것입니다. 호신술은 접근전에서 상대방을 제압하고 역공을 하는 기술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런 내용들이 우리가 말하는 두 단체들이 조금씩 다 다르지요. 물론 같으면서 다르고 다르면서 같은 부분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다르다고 봐야겠지요. 복장만 해도 둘 다 흰색을 바탕으로 하지만 디자인에서 다르고 체급 구분도 다르지요. 특히 품세는 많이 다른 것으로 나타납니다. 시합의 경우 경기규칙은 물론 다른 부분이 많지요. 서울식 태권도는 3분 3회전 시합이고(이번에는 2분3회전) 평양식은 2분 2회전입니다. 체급은 서울식은 8개 체급이고 평양식은 5체급입니다.

 

남북한은 서울식세계대회나 평양식 국제대회에서 늘 좋은 성적을 거둬 왔겠지요?

 

임채욱 선생: 초기에는 그랬는데 이젠 각 나라 선수들 기량이 많이 오르고 비슷해져서 한국만 해도 지난 22번의 대회 때 열리기 까지 메달 수로는 1위를 해왔지만 정상을 빼앗긴 대회도 있을 정도로 다른 나라의 추격이 무섭습니다. 한국 다음으로 태권도 강국은 이란이고 그 다음이 스페인입니다. 이번에 안방에서 열리는 이번 대회에서 태권도 종주국 명예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지요. 북한도 평양식 국제대회에서 늘 앞서고 있다고 합니다.

 

이번에 서울식 태권도 세계대회가 열리는 무주에는 큰 태권도 경기장이 들어섰다고 알고 있습니다.

 

임채욱 선생: 네. 태권도원이라고 하는데 3년 전에 문을 열었어요. 여러 시설 중에서 태권도 경기를 할 수 있는 전용경기장은 4500석 규모에 6개 경기를 동시에 할 수 있는 크기로 돼 있어요. 이번에 170개 국가에서 2000명가량의 선수단이 오고 관람객도 몇 만 명이 될 것이라 합니다. 최대 규모로 열립니다.

 

북한에도 국제시합을 할 수 있는 태권도 경기장이 있겠지요? 소개해 주시죠.

 

임채욱 선생: 네. 태권도전당이란 이름의 경기장이 있습니다. 평양 만경대구역에 1992년 9월에 문을 연 태권도전당은 연견평18000m2인데 잘 꾸며져 있지요. 현판은 김일성 선대통치자가 직접 쓴 것이고 건물모양은 우리나라 전통식이 보태져 있습니다. 이번 9월에 이곳에서도 국제태권도연맹 경기가 열립니다. 무주에서 열리는 대회처럼 국제대회죠.

이번 무주 세계태권도연맹대회에 국제태권도연맹 시범단이 왔듯이 평양에서 열리는 국제태권도연맹대회에도 한국선수들이 주축이 된 세계태권도연맹 시범단이 참가할 가능성은 있나요?

임채욱 선생: 아직은 알려진 게 없습니다. 아마 그럴 가망은 있을 것 아니겠습니까? 남북한이 직접 대화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국제적인 선수단을 조직해서 왕래한다는 것은 나쁘지 않습니다. 알려지기로는 한국에서 새 정권이 들어선 가운데 2030년쯤 한국, 북한, 일본, 중국 네 나라가 함께 주최하는 월드컵대회를 열면 동북아시아에 좋을 것 아니겠느냐 하는 의견도 있는 모양입니다. 현재 월드컵대회는 내년 2018년 모스크바, 2022년 중동 카타르 대회가 결정돼 있고 2026년, 2030년 대회도 곧 결정될 것입니다.

 

서울식 태권도와 평양식 태권도가 하나로 통합되는 일은 예상할 수 있습니까?

 

임채욱 선생: 글쎄요. 그런 일이 성사된다면 바로 남북통일이 이뤄지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닐까요? 하지만 남북한이 세계 태권도 두 단체를 주도해 왔다지만 앞으로는 다른나라 선수들의 기량이 높아지고 이에 따라 발언권도 높아지면 우리 맘대로 못하지요. 하지만 지금도 룰에 따라 운영되지만요. 하지만 남북한 태권도 인들이 의견을 내서 시도해 볼 수 있는 일이지요. 무엇보다 통합 자체가 필요한 일인지 가치판단을 잘해봐야지요. 통합 후의 경기규정 바꾸는 것이야 상호존중의 정신으로 처리하면 되겠지요. 어떻든 그런 논의가 시작되는 날이라도 오면 좋겠군요.

 

태권도가 하나로 통합되고 통일의 디딤돌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임채욱 선생: 태권도는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져서 오늘날 세계화된 국제공인스포츠입니다. 우리나라 전통무예 수박이나 태껸에서 발전된 것이지만 온 세계 사람이 사랑하는 스포츠가 됐는데 이게 서울식이니 평양식이니 하고 갈라져 있다는 것은 좋지는 않지요. 남북한 태권도 인들이 나서면 좋겠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국제태권도연맹을 북한이 주도한다지만 앞에서 말했듯이 사실 서울에서 창설됐고 현재 본부는 캐나다 토론토에서 오스트리아 비엔나로 옮겨가 있지요. 이런 면에서 한국에서도 이 단체지부를 운영하는 태권도인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국제태권도연맹 식을 굳이 평양식이라고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말할 것입니다.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클라이밍 여제 김자인이 지난달 20일 555m 높이로 국내 최고층 건물인 서울 송파구 잠실 롯데월드타워를 맨손으로 오르고 있다.
클라이밍 여제 김자인이 지난달 20일 555m 높이로 국내 최고층 건물인 서울 송파구 잠실 롯데월드타워를 맨손으로 오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김일성 생일을 앞두고 평양에 불러들인 외신기자들에게 빅 이벤트가 있다면서 새벽에 일어나자 말자 집결시켰다는데 알고 보니 김정은이 참석한 여명거리 준공식을 하는 것이었지요.

서울에 롯데월드타워가 생기고 평양에 여명거리가 생겨서 서울시민과 평양시민들 볼거리가 많아졌습니다. 통일문화산책 오늘은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한국 롯데월드타워와 북한 여명 거리에 대해 이야기 나눠봅니다.

먼저 롯데타워 이야기부터 시작하지요.

임채욱 선생: 네. 서울 잠실에 있는 롯데타워는 세계에서 5번째로 높다고 합니다. 123층인데 높이가 555m랍니다. 4월 3일 개장을 앞두고 전날 밤에 불꽃놀이를 했는데 무려 3만 발을 11분간이나 쏘아 올렸다고 합니다. 직접 본 사람들은 대단한 눈 호강을 했다고 합니다. 그뿐이 아니고 이 빌딩을 유명하게 한 일이 또 있었지요. 5월 20일에는 세계에서 여자로서 빌딩 오르기 기록을 가진 김자인 선수가 이 롯데월드타워를 2시간 29만에 맨손으로 올랐지요. 이로써 김자인 선수는 세계여성등반가 중 가장 높은 건물을 오른 기록을 다시 세운 것입니다. 대단한 여자선수입니다.

평양에 들어선 여명거리, 이건 평양 뉴타운이라고 하던데요, 이 건물은 빨리 짓는 데서 대단한 속도전을 냈다고 알고 있습니다.

임채욱 선생: 네. 굉장한 속도전입니다. 연면적 172만m2나 되는 초고층 빌딩을 이번 김일성 생일에 맞춰 완공했다고 합니다. 작년 연말까지 완공하려고 서둘렀지만 잘 안돼서 조금 늦어진 모양이지요. 70층이나 되는 살림집, 즉 아파트들인데 대성구역 용남산 부근 모습을 바꿔났다고 합니다. 북한에서 이 건물 준공을 얼마나 중시했는가 하면 올 들어 김정은이 2번이나 건설현장을 방문해서 4월 15일까지 어떤 일이 있어도 완공시키라고 했고 공사관계자나 노동자들은 ‘기적적인 속도’를 내면서 달라붙어서 통치자의 명령을 완수했다고 합니다. 만리마 속도를 낸 것이지요. 그래서 선전하기를 “수소탄 백발, 천 발 쏜 것보다 더 위력한 승리”가 이룩됐다고 합니다. 천리마속도도 어지러운데 만리마 라니 믿을 수 있는 일인지요?

네. 준공식을 앞두고 평양으로 외신기자들을 불러들여서 바로 이 여명 거리 준공식이란 것이 알려졌지요.

임채욱 선생: 김일성 생일을 앞두고 평양에 불러들인 외신기자들에게 빅 이벤트가 있다면서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집결시켰다는데 알고 보니 김정은이 참석한 여명 거리 준공식을 하는 것이었지요. 외신기자들은 혹시 북한이 신형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장면을 보여줄까 하고 추측도 했던 모양입니다. 북한은 이 여명 거리 고층 살림집 준공을 대북제재가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리려고 애쓰는 모양새였지요.

여명 거리가 들어선 이곳 용남산은 김일성 대학과 가까운 곳이지요?

임채욱 선생: 그렇지요. 용남산 기슭에 김일성 대학이 들어서 있고 이번에 새로 지어진 아파트에도 김일성 대학 교원들이 우선적으로 입주를 시작했지요. 교수들, 연구들이 입주하는데 학생들도 좋다고 선생님들에게 꽃목걸이도 걸어주고 꽃다발도 주면서 축하해 주고 있다고 보도합니다. 그리고 매일같이 여명 거리 건설자들에게 감사문을 전달하는 모임이 열리고 또 토론과 결의문을 채택하는 행사도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괴롭다고 말하지 못하고 희한하고 눈이 휘둥그레하게 하는 아파트 풍경에 감격하는 모습만 보이고 있지요.

서울과 평양의 도시모습은 많이 다르지요? 특징적인 것이 있습니까?

임채욱 선생: 이걸 특징적인 것이라고 해야 하나? 서울은 다리가 많은 도시라면 평양은 동상과 탑이 많은 도시라고 할 수는 있겠네요. 서울은 한강을 가로지른 다리가 많지요. 몇 개입니까? 무려 31개네요. 대교라 이름 붙은 것이 27개, 철교라고 된 것이 4개군요. 평양에는 탑이 많은데 대표적인 것이 3개입니다. 주체사상탑, 영생탑, 당 창건 기념탑이지요. 먼저 김일성 광장 건너편에 있는 주체사상탑은 높이가 170m니까 아주 높지요. 영생탑도 있는데 김일성의 영생을 기원해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 대원수님의 만수무강을 삼가 축원합니다”라는 문구가 새겨진 탑이었다가 김일성 죽은 뒤에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로 바뀌었습니다. 당 창건 기념탑은 대동강변 문수거리에 있는데 당 창건 50주년이 되던 1995년에 세워진 것으로 이것도 상당히 높군요. 기단 높이가 20m인데 그 위에 50m 높이 망치, 낫, 붓을 형상해놓았지요. 아시다시피 망치는 노동자를 상징하고 낫은 농민을, 붓은 지식인을 상징하는 것이지요. 또 보통강구역에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탑이 서 있지요. 6.25전쟁에 승리했다고 탑까지 세워 주장하고 있는 것이지요. 또 있지요. 대동강 가운데 있는 쑥섬에 통일 전선탑이 서있는데 이건 1948년 남북한 정치인들의 연석회의를 기념한 것이지요. 마지막으로 통일거리 입구에 있는 조국통일 3대헌장 기념탑도 상징성을 강조해서 세운 탑입니다.

서울과 평양을 문화도시라는 면에서 비교해볼 수 있을는지요?

임채욱 선생: 글쎄요. 문화시설 숫자란 면에서는 서울이 앞서겠지만 도시가 가진 고유한 자기 정체성이 있고 공공성이 높고 문화가 삶에 스며진 도시라는 기준을 갖고 대한다면 어느 쪽이 어떻다느니 말하기 어려운 면이 있지요. 서울은 4대문 안이 옛처럼 보존되지 못한 것 때문에 동양의 고전적 도시가 가진 엄격성이 없어져 버렸지요. 6.25전쟁 후 한강 북쪽의 옛 서울 도심은 그대로 두고 한강 이남을 그때부터 개발하면서 엣도심을 역사의 지역으로 남겨둬야 했는데 그걸 못했지요. 그래서 늦었지만 역사와 자연이 함깨 숨쉬는 도시로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보겠습니다. 평양도 6.25때 거의 다 파괴돼서 완전히 새로 건설하다시피 했는데, 인민 대학습당, 인민문화궁전, 평양학생소년궁전 등 큰 건물들을 많이 지으면서 도시 면모를 잘 가꿨지요. 그래서 북한 선전매체는 평양은 도시 안에 공원이 있는 것이 아니라 공원 안에 도시가 있다고 말하기도 하지요. 김일성은 평양을 서울과 대등한 것으로 만들려는 야심에서 출발해서 더 낫게 건설하려고 애썼지요. 그러다보니 과학원 건물배치, 봉화갑문 수문위치까지 관여했다고 하지요.

평양에도 100층짜리 건물이 있지요?

임채욱 선생: 아, 류경호텔을 말 하시는군요. 1980년대 말에 착공돼서 옳게 완공되지도 못한 체 서 있는 건물이지요. 105층이라고 하는데 높이가 323m이고 밑변이 160m가 되는 피라미드형 건물이긴 한데, 지금 보통강 구역에 흉물처럼 서 있지요. 이번에 서울에 랜드마크로 선 롯데 월드타워는 건물 자체도 그렇거니와 무엇보다 5층에 타워 건립벽(Wall of Fame)이라 해서 건물공사 관련 글들과 이 건물을 만든 근로자 8820명의 이름이 빽빽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이 조형물은 이 건물건설에 참여한 모든 근로자들을 영웅으로 칭하면서 그들 가족과 자손들도 명예와 자부심을 갖도록 표현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노동의 가치와 명예를 존중하는 조치이지요. 이게 롯데월드타워가 진짜 랜드마크가 돼야 하는 이유이겠지요.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2016년 북한 개성에서 고려 시대의 왕릉 2개가 새로 발굴됐다.
2016년 북한 개성에서 고려 시대의 왕릉 2개가 새로 발굴됐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보도에 따르면 올해 한국 문화재 당국은 한국 내 유명한 불교사찰들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고 합니다. 작년에는 한국 내에 있는 서원들을 등재시키려고 하다가 안됐는데, 올해는 어떻게 될련지, 통일문화산책 오늘도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이미 돼있는 경주와 개성의 유적, 유물을 한 번 살펴 보겠습니다.

 

남북한에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신청하려는 움직임이 있습니까?

 

임채욱 선생: 네. 한국문화재 당국은 전라남도에 있는 송광사라든가 몇 군데 사찰들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신청하려고 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북한에선 어떤 움직임을 보이는지 알려지지 않습니다만 남북한의 세계문화유산에 대해서는 개괄적으로 살펴본바 있으나 경주와 개성으로 좁혀서 살펴보는 것은 좋은 일이지요.

 

그럼 경주부터 이야기 해볼까요?

 

임채욱 선생: 그러지요. 경주에 있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은 아주 많습니다. 한국이 처음으로 유네스코 문화유산을 등재시킬 때, 그게 1995년인데 이 때 경주에 있는 불국사와 석굴암이 결정됐고 2000년에 또 경주역사지구 전체가 문화유산으로 결정됐어요. 불국사는 너무나도 유명해서 한국 사람이면 다 아는 절 이지만 잠깐 설명을 해보면 신라 때 지어진 절이고 대웅전을 비롯해서 극락전, 미륵전 같은 건물들이 많은 큰 절이면서 건물들이 아주 걸작입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이 대웅전에 이르는 백운교, 청운교라는 계단인데 화강암으로 멋지게 다듬어 진 예술품이지요. 또 대웅전 앞에 있는 두 개의 탑, 석가탑과 다보탑도 그 조형미가 아주 기막힌 예술작품으로 평가 되고 있습니다. 불국사와 함께 지정된 석굴암은 토함산에 있는데, 본존불상과 여러 부처 조각들이 종교성 뿐 아니라 예술성에서도 탁월하지요. 가히 종교예술 작품으로 세계에 자랑하고도 남을 조상들의 유물이라 하겠습니다.

 

하나하나 자세하게 설명하려면 끝이 없겠군요. 그럼 다음으로 경주역사지구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시지요.

 

임채욱 선생: 경주역사지구도 유물, 유적이 아주 많기 때문에 하나하나 언급하기는 어렵고 개괄적으로 설명하지요. 우선 5개 지구로 나뉘는데, 월성지구, 황룡사지구, 남산지구, 대릉원지구, 산성지구, 이렇게 됩니다. 월성지구는 신라시대 궁궐이 있던 곳을 중심으로 한 곳입니다.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유물은 첨성대입니다. 언젠가 한 번 첨성대를 말한 일도 있습니다만 두말할 필요가 없는 우리나라 국보이지요. 7세기 전반에 세워졌는데 오늘날까지 남아있으니 얼마나 대단합니까? 작년 9월 추석을 전후해서 경주에 지진이 있었지만 첨성대는 아무런 피해가 없었다니 얼마나 다행스러웠습니까?

 

월성지구 다음은 어딥니까?

 

임채욱 선생: 월성지구 다른 것은 생락하고 다음으로 황룡사지구로 가볼까요? 황룡사라는 절을 먼저 말해야겠지요. 이 절은 지금 없지만 고려시대 몽골군에 의해 불타지만 않았다면 세계 사람들이 다 놀랄 눈으로 볼 절이지요. 그 규모가 얼마나 컸을까요? 절터가 2만여 평이고 없어졌지만 어마어마한 양의 황금으로 만든 불상이 있었고 경주박물관에 있는 성덕대왕신종, 이른바 에밀레 종이라고 하는 종보다 4배가 큰 종이 있었다고 합니다. 대단한 크기이죠. 무엇보다 목조로 된 9층탑이 있었는데 높이가 80m가 되는 큰 탑이었지요. 1976년부터 이 절터를 발굴하고 조사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나온 유물만 4만점이 넘습니다.

 

북한 것도 다뤄야 하니까 아무래도 경주역사지구에서 아직 설명 못한 곳은 생략하거나 다음으로 미루고 개성지구를 다뤄야겠네요?

 

임채욱 선생: 아 그렇군요. 경주이야기만 하다가 개성이야기는 못할 번하네요. 북한 개성지구는 2013년에 지정되는데 고려 궁궐터인 만월대, 남대문, 고려시대 성균관, 숭양서원, 표충사라는 절과 선죽교 그리고 고려시대 왕릉이 포함되고 있습니다. 먼저 만월대. 여러분, <황성옛터>라는 노래 아시지요? “황성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라는 가사로 불리는 이 노래는 고려 궁성터인 만월대의 달 밝은 밤에 망한 나라의 역사는 무상함을 노래한 것인데요, 이애리수라는 가수가 극장에서 이 노래를 부르면 모든 관객들이 따라 부르며 눈물을 흘렸다고 하지요. 이에 일본경찰이 못 부르게 고함치면서 막아섰다는 노래지요. 이 노래가 표현하는 무대가 만월대인데 송악산 남쪽 구릉지에 위치하고 있지요. 넓이가 37만m2로 서기 939년에 세워졌는데 1361년에 홍건적이 침입해서 불타버렸지요. 그 후 복구되지 않은 체 지금까지 내려오는데 이 궁궐터를 2007년부터 남북한 학자들이 공동으로 발굴을 하고 있지요. 다음 개성 남대문은 개성 북안동에 있는데 6. 25전쟁때 파괴됐지만 1954년에 복구했는데 북한 국보로 지정돼 있지요. 남대문 안에 걸려있는 연복사 종도 북한의 보물급으로 돼 있습니다.  다음 고려성균관을 볼까요? 고려성균관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최고교육기관이었지요. 건물들은 1만 제곱미터의 넓은 터에 서울에 있는 성균관처럼 대성전을 중심으로 200여 칸이 유교 건축형식대로 지어져 있습니다. 현재는 고려박물관이란 이름으로 9000여점의 유물을 가지고 있는 고려시대 전문박물관으로 돼 있습니다.

 

숭양서원, 선죽교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시지요.

 

임채욱 선생: 선죽교는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줄이 있으랴”라는 시조를 지은 포은 정몽주가 죽은 다리라서 너무나 유명하지요. 2000년대 들어서서 남쪽 사람들도 많이 찾은 곳 중 하나지요. 숭양서원에 대해 말씀드리지요. 숭양서원은 자남산 동남쪽에 있는데 정몽주를 비롯해서 서경덕, 김육 등의 유명한 유학자들을 제사지내고 있지요. 앞쪽에는 교육시설을 두고 뒤쪽에는 제사를 지내는 사당을 배치한 전형적인 서원건물이지요. 건물은 임진왜란 이전에 지어진 것이어서 북한 국보로 지정돼 있습니다.

 

고려왕릉들도 말씀해주세요.

 

임채욱 선생: 세계문화유산으로 된 개성지구 내에 있는 고려시대 왕릉들은 송악산과 만수산 일대에 있는 20여기인데, 고려를 세운 왕건의 무덤, 31대 공민왕의 무덤, 그리고 왕릉으로 추측되는 무덤들이 북한당국에 의해 보존급 무덤으로 관리되고 있지요. 영통사를 설명 안 드렸는데 마지막으로 한마디 하면 개성 동북쪽 오관산 남쪽 기슭에 있는 절이지요. 고려 왕실의 사찰이지만 오랫동안 폐허로 있다가 북한당국과 남한 천태종 불교종단이 덤벼들어 2000년대 초에 전각 29개를 복원한 남북 교류의 상징과도 같은 절이지요. 이 절 복원에 불교 스님을 비롯한 불교관계자 외에도 남한 일군 307명이 개성을 드나들었고 기와 46만장, 단청재료, 조경용 묘목, 창틀 등 온갖 건축자재가 개성으로 넘어갔지요. 2005년 10월 남북한 불교도들이 낙성식을 한 의미있는 사찰이지요. 수박 겉핥기 같지만 경주와 개성의 세계문화유산을 훑어 봤는데 경주 부분은 다음기회가 되면 좀 더 하지요. 어떻든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알면 알수록 사랑하게 될 것이니까 남북한 어디에 있던 우리의 문화재를 애호하게 되기를 바라는 뜻에서 말씀드렸습니다.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Today's KORUS House English class is an article about Chuseok, one of Korea's biggest traditional.....

“북, 외국인에게도 전기고문·물고문”

탈북인 마영애 씨가 뉴욕 북한유엔대표부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 마영애 K081617FE-HK.mp3 00:00/00:00 미국에서 탈북인으로 인권운동을 펼치고 있는 마영애 씨는 ‘미국 대학생으로 북한 관광 갔다..

탈북인 마영애 씨, 미국서 보는 북한의 현실

마영애 씨(오른쪽에서 세번째)가 뉴욕에서 북한 5차 핵실험을 규탄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 마영애 씨 00:00/00:00 탈북인으로 미국에서 북한인권운동을 펼치고 있는 마영애 씨는 북한이라는 나라는 너무 비참하고 ..

통일문화산책(남북한 복날 풍경)

평양 신흥단고기집에서 판매하고 있는 단고기장(보신탕)과 개고기로 만든 수육을 평양주민들이 먹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00:00/00:00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

통일문화산책(광복의 달 8월, 해방의 달 8월)

부산 중구가 제72주년 광복절을 기념해 광복로를 태극기 거리로 꾸몄다. 중구는 다음 달 1일까지 태극기 1천여기를 광복로 일대에 전시할 예정이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00:00/00:00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

2015년 시애틀 탈북자 통일 선교 대회 특집 1부:나는 보았네
뉴저지 정성호 원로목사의 신간
뉴저지 정성호 원로목사의 신간
뉴저지 정성호 원로목사의 신간
세계평화를 위한 중대한 제언-뉴욕 서병선-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