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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이밍 여제 김자인이 지난달 20일 555m 높이로 국내 최고층 건물인 서울 송파구 잠실 롯데월드타워를 맨손으로 오르고 있다.
클라이밍 여제 김자인이 지난달 20일 555m 높이로 국내 최고층 건물인 서울 송파구 잠실 롯데월드타워를 맨손으로 오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김일성 생일을 앞두고 평양에 불러들인 외신기자들에게 빅 이벤트가 있다면서 새벽에 일어나자 말자 집결시켰다는데 알고 보니 김정은이 참석한 여명거리 준공식을 하는 것이었지요.

서울에 롯데월드타워가 생기고 평양에 여명거리가 생겨서 서울시민과 평양시민들 볼거리가 많아졌습니다. 통일문화산책 오늘은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한국 롯데월드타워와 북한 여명 거리에 대해 이야기 나눠봅니다.

먼저 롯데타워 이야기부터 시작하지요.

임채욱 선생: 네. 서울 잠실에 있는 롯데타워는 세계에서 5번째로 높다고 합니다. 123층인데 높이가 555m랍니다. 4월 3일 개장을 앞두고 전날 밤에 불꽃놀이를 했는데 무려 3만 발을 11분간이나 쏘아 올렸다고 합니다. 직접 본 사람들은 대단한 눈 호강을 했다고 합니다. 그뿐이 아니고 이 빌딩을 유명하게 한 일이 또 있었지요. 5월 20일에는 세계에서 여자로서 빌딩 오르기 기록을 가진 김자인 선수가 이 롯데월드타워를 2시간 29만에 맨손으로 올랐지요. 이로써 김자인 선수는 세계여성등반가 중 가장 높은 건물을 오른 기록을 다시 세운 것입니다. 대단한 여자선수입니다.

평양에 들어선 여명거리, 이건 평양 뉴타운이라고 하던데요, 이 건물은 빨리 짓는 데서 대단한 속도전을 냈다고 알고 있습니다.

임채욱 선생: 네. 굉장한 속도전입니다. 연면적 172만m2나 되는 초고층 빌딩을 이번 김일성 생일에 맞춰 완공했다고 합니다. 작년 연말까지 완공하려고 서둘렀지만 잘 안돼서 조금 늦어진 모양이지요. 70층이나 되는 살림집, 즉 아파트들인데 대성구역 용남산 부근 모습을 바꿔났다고 합니다. 북한에서 이 건물 준공을 얼마나 중시했는가 하면 올 들어 김정은이 2번이나 건설현장을 방문해서 4월 15일까지 어떤 일이 있어도 완공시키라고 했고 공사관계자나 노동자들은 ‘기적적인 속도’를 내면서 달라붙어서 통치자의 명령을 완수했다고 합니다. 만리마 속도를 낸 것이지요. 그래서 선전하기를 “수소탄 백발, 천 발 쏜 것보다 더 위력한 승리”가 이룩됐다고 합니다. 천리마속도도 어지러운데 만리마 라니 믿을 수 있는 일인지요?

네. 준공식을 앞두고 평양으로 외신기자들을 불러들여서 바로 이 여명 거리 준공식이란 것이 알려졌지요.

임채욱 선생: 김일성 생일을 앞두고 평양에 불러들인 외신기자들에게 빅 이벤트가 있다면서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집결시켰다는데 알고 보니 김정은이 참석한 여명 거리 준공식을 하는 것이었지요. 외신기자들은 혹시 북한이 신형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장면을 보여줄까 하고 추측도 했던 모양입니다. 북한은 이 여명 거리 고층 살림집 준공을 대북제재가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리려고 애쓰는 모양새였지요.

여명 거리가 들어선 이곳 용남산은 김일성 대학과 가까운 곳이지요?

임채욱 선생: 그렇지요. 용남산 기슭에 김일성 대학이 들어서 있고 이번에 새로 지어진 아파트에도 김일성 대학 교원들이 우선적으로 입주를 시작했지요. 교수들, 연구들이 입주하는데 학생들도 좋다고 선생님들에게 꽃목걸이도 걸어주고 꽃다발도 주면서 축하해 주고 있다고 보도합니다. 그리고 매일같이 여명 거리 건설자들에게 감사문을 전달하는 모임이 열리고 또 토론과 결의문을 채택하는 행사도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괴롭다고 말하지 못하고 희한하고 눈이 휘둥그레하게 하는 아파트 풍경에 감격하는 모습만 보이고 있지요.

서울과 평양의 도시모습은 많이 다르지요? 특징적인 것이 있습니까?

임채욱 선생: 이걸 특징적인 것이라고 해야 하나? 서울은 다리가 많은 도시라면 평양은 동상과 탑이 많은 도시라고 할 수는 있겠네요. 서울은 한강을 가로지른 다리가 많지요. 몇 개입니까? 무려 31개네요. 대교라 이름 붙은 것이 27개, 철교라고 된 것이 4개군요. 평양에는 탑이 많은데 대표적인 것이 3개입니다. 주체사상탑, 영생탑, 당 창건 기념탑이지요. 먼저 김일성 광장 건너편에 있는 주체사상탑은 높이가 170m니까 아주 높지요. 영생탑도 있는데 김일성의 영생을 기원해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 대원수님의 만수무강을 삼가 축원합니다”라는 문구가 새겨진 탑이었다가 김일성 죽은 뒤에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로 바뀌었습니다. 당 창건 기념탑은 대동강변 문수거리에 있는데 당 창건 50주년이 되던 1995년에 세워진 것으로 이것도 상당히 높군요. 기단 높이가 20m인데 그 위에 50m 높이 망치, 낫, 붓을 형상해놓았지요. 아시다시피 망치는 노동자를 상징하고 낫은 농민을, 붓은 지식인을 상징하는 것이지요. 또 보통강구역에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탑이 서 있지요. 6.25전쟁에 승리했다고 탑까지 세워 주장하고 있는 것이지요. 또 있지요. 대동강 가운데 있는 쑥섬에 통일 전선탑이 서있는데 이건 1948년 남북한 정치인들의 연석회의를 기념한 것이지요. 마지막으로 통일거리 입구에 있는 조국통일 3대헌장 기념탑도 상징성을 강조해서 세운 탑입니다.

서울과 평양을 문화도시라는 면에서 비교해볼 수 있을는지요?

임채욱 선생: 글쎄요. 문화시설 숫자란 면에서는 서울이 앞서겠지만 도시가 가진 고유한 자기 정체성이 있고 공공성이 높고 문화가 삶에 스며진 도시라는 기준을 갖고 대한다면 어느 쪽이 어떻다느니 말하기 어려운 면이 있지요. 서울은 4대문 안이 옛처럼 보존되지 못한 것 때문에 동양의 고전적 도시가 가진 엄격성이 없어져 버렸지요. 6.25전쟁 후 한강 북쪽의 옛 서울 도심은 그대로 두고 한강 이남을 그때부터 개발하면서 엣도심을 역사의 지역으로 남겨둬야 했는데 그걸 못했지요. 그래서 늦었지만 역사와 자연이 함깨 숨쉬는 도시로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보겠습니다. 평양도 6.25때 거의 다 파괴돼서 완전히 새로 건설하다시피 했는데, 인민 대학습당, 인민문화궁전, 평양학생소년궁전 등 큰 건물들을 많이 지으면서 도시 면모를 잘 가꿨지요. 그래서 북한 선전매체는 평양은 도시 안에 공원이 있는 것이 아니라 공원 안에 도시가 있다고 말하기도 하지요. 김일성은 평양을 서울과 대등한 것으로 만들려는 야심에서 출발해서 더 낫게 건설하려고 애썼지요. 그러다보니 과학원 건물배치, 봉화갑문 수문위치까지 관여했다고 하지요.

평양에도 100층짜리 건물이 있지요?

임채욱 선생: 아, 류경호텔을 말 하시는군요. 1980년대 말에 착공돼서 옳게 완공되지도 못한 체 서 있는 건물이지요. 105층이라고 하는데 높이가 323m이고 밑변이 160m가 되는 피라미드형 건물이긴 한데, 지금 보통강 구역에 흉물처럼 서 있지요. 이번에 서울에 랜드마크로 선 롯데 월드타워는 건물 자체도 그렇거니와 무엇보다 5층에 타워 건립벽(Wall of Fame)이라 해서 건물공사 관련 글들과 이 건물을 만든 근로자 8820명의 이름이 빽빽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이 조형물은 이 건물건설에 참여한 모든 근로자들을 영웅으로 칭하면서 그들 가족과 자손들도 명예와 자부심을 갖도록 표현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노동의 가치와 명예를 존중하는 조치이지요. 이게 롯데월드타워가 진짜 랜드마크가 돼야 하는 이유이겠지요.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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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북한 개성에서 고려 시대의 왕릉 2개가 새로 발굴됐다.
2016년 북한 개성에서 고려 시대의 왕릉 2개가 새로 발굴됐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보도에 따르면 올해 한국 문화재 당국은 한국 내 유명한 불교사찰들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고 합니다. 작년에는 한국 내에 있는 서원들을 등재시키려고 하다가 안됐는데, 올해는 어떻게 될련지, 통일문화산책 오늘도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이미 돼있는 경주와 개성의 유적, 유물을 한 번 살펴 보겠습니다.

 

남북한에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신청하려는 움직임이 있습니까?

 

임채욱 선생: 네. 한국문화재 당국은 전라남도에 있는 송광사라든가 몇 군데 사찰들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신청하려고 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북한에선 어떤 움직임을 보이는지 알려지지 않습니다만 남북한의 세계문화유산에 대해서는 개괄적으로 살펴본바 있으나 경주와 개성으로 좁혀서 살펴보는 것은 좋은 일이지요.

 

그럼 경주부터 이야기 해볼까요?

 

임채욱 선생: 그러지요. 경주에 있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은 아주 많습니다. 한국이 처음으로 유네스코 문화유산을 등재시킬 때, 그게 1995년인데 이 때 경주에 있는 불국사와 석굴암이 결정됐고 2000년에 또 경주역사지구 전체가 문화유산으로 결정됐어요. 불국사는 너무나도 유명해서 한국 사람이면 다 아는 절 이지만 잠깐 설명을 해보면 신라 때 지어진 절이고 대웅전을 비롯해서 극락전, 미륵전 같은 건물들이 많은 큰 절이면서 건물들이 아주 걸작입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이 대웅전에 이르는 백운교, 청운교라는 계단인데 화강암으로 멋지게 다듬어 진 예술품이지요. 또 대웅전 앞에 있는 두 개의 탑, 석가탑과 다보탑도 그 조형미가 아주 기막힌 예술작품으로 평가 되고 있습니다. 불국사와 함께 지정된 석굴암은 토함산에 있는데, 본존불상과 여러 부처 조각들이 종교성 뿐 아니라 예술성에서도 탁월하지요. 가히 종교예술 작품으로 세계에 자랑하고도 남을 조상들의 유물이라 하겠습니다.

 

하나하나 자세하게 설명하려면 끝이 없겠군요. 그럼 다음으로 경주역사지구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시지요.

 

임채욱 선생: 경주역사지구도 유물, 유적이 아주 많기 때문에 하나하나 언급하기는 어렵고 개괄적으로 설명하지요. 우선 5개 지구로 나뉘는데, 월성지구, 황룡사지구, 남산지구, 대릉원지구, 산성지구, 이렇게 됩니다. 월성지구는 신라시대 궁궐이 있던 곳을 중심으로 한 곳입니다.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유물은 첨성대입니다. 언젠가 한 번 첨성대를 말한 일도 있습니다만 두말할 필요가 없는 우리나라 국보이지요. 7세기 전반에 세워졌는데 오늘날까지 남아있으니 얼마나 대단합니까? 작년 9월 추석을 전후해서 경주에 지진이 있었지만 첨성대는 아무런 피해가 없었다니 얼마나 다행스러웠습니까?

 

월성지구 다음은 어딥니까?

 

임채욱 선생: 월성지구 다른 것은 생락하고 다음으로 황룡사지구로 가볼까요? 황룡사라는 절을 먼저 말해야겠지요. 이 절은 지금 없지만 고려시대 몽골군에 의해 불타지만 않았다면 세계 사람들이 다 놀랄 눈으로 볼 절이지요. 그 규모가 얼마나 컸을까요? 절터가 2만여 평이고 없어졌지만 어마어마한 양의 황금으로 만든 불상이 있었고 경주박물관에 있는 성덕대왕신종, 이른바 에밀레 종이라고 하는 종보다 4배가 큰 종이 있었다고 합니다. 대단한 크기이죠. 무엇보다 목조로 된 9층탑이 있었는데 높이가 80m가 되는 큰 탑이었지요. 1976년부터 이 절터를 발굴하고 조사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나온 유물만 4만점이 넘습니다.

 

북한 것도 다뤄야 하니까 아무래도 경주역사지구에서 아직 설명 못한 곳은 생략하거나 다음으로 미루고 개성지구를 다뤄야겠네요?

 

임채욱 선생: 아 그렇군요. 경주이야기만 하다가 개성이야기는 못할 번하네요. 북한 개성지구는 2013년에 지정되는데 고려 궁궐터인 만월대, 남대문, 고려시대 성균관, 숭양서원, 표충사라는 절과 선죽교 그리고 고려시대 왕릉이 포함되고 있습니다. 먼저 만월대. 여러분, <황성옛터>라는 노래 아시지요? “황성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라는 가사로 불리는 이 노래는 고려 궁성터인 만월대의 달 밝은 밤에 망한 나라의 역사는 무상함을 노래한 것인데요, 이애리수라는 가수가 극장에서 이 노래를 부르면 모든 관객들이 따라 부르며 눈물을 흘렸다고 하지요. 이에 일본경찰이 못 부르게 고함치면서 막아섰다는 노래지요. 이 노래가 표현하는 무대가 만월대인데 송악산 남쪽 구릉지에 위치하고 있지요. 넓이가 37만m2로 서기 939년에 세워졌는데 1361년에 홍건적이 침입해서 불타버렸지요. 그 후 복구되지 않은 체 지금까지 내려오는데 이 궁궐터를 2007년부터 남북한 학자들이 공동으로 발굴을 하고 있지요. 다음 개성 남대문은 개성 북안동에 있는데 6. 25전쟁때 파괴됐지만 1954년에 복구했는데 북한 국보로 지정돼 있지요. 남대문 안에 걸려있는 연복사 종도 북한의 보물급으로 돼 있습니다.  다음 고려성균관을 볼까요? 고려성균관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최고교육기관이었지요. 건물들은 1만 제곱미터의 넓은 터에 서울에 있는 성균관처럼 대성전을 중심으로 200여 칸이 유교 건축형식대로 지어져 있습니다. 현재는 고려박물관이란 이름으로 9000여점의 유물을 가지고 있는 고려시대 전문박물관으로 돼 있습니다.

 

숭양서원, 선죽교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시지요.

 

임채욱 선생: 선죽교는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줄이 있으랴”라는 시조를 지은 포은 정몽주가 죽은 다리라서 너무나 유명하지요. 2000년대 들어서서 남쪽 사람들도 많이 찾은 곳 중 하나지요. 숭양서원에 대해 말씀드리지요. 숭양서원은 자남산 동남쪽에 있는데 정몽주를 비롯해서 서경덕, 김육 등의 유명한 유학자들을 제사지내고 있지요. 앞쪽에는 교육시설을 두고 뒤쪽에는 제사를 지내는 사당을 배치한 전형적인 서원건물이지요. 건물은 임진왜란 이전에 지어진 것이어서 북한 국보로 지정돼 있습니다.

 

고려왕릉들도 말씀해주세요.

 

임채욱 선생: 세계문화유산으로 된 개성지구 내에 있는 고려시대 왕릉들은 송악산과 만수산 일대에 있는 20여기인데, 고려를 세운 왕건의 무덤, 31대 공민왕의 무덤, 그리고 왕릉으로 추측되는 무덤들이 북한당국에 의해 보존급 무덤으로 관리되고 있지요. 영통사를 설명 안 드렸는데 마지막으로 한마디 하면 개성 동북쪽 오관산 남쪽 기슭에 있는 절이지요. 고려 왕실의 사찰이지만 오랫동안 폐허로 있다가 북한당국과 남한 천태종 불교종단이 덤벼들어 2000년대 초에 전각 29개를 복원한 남북 교류의 상징과도 같은 절이지요. 이 절 복원에 불교 스님을 비롯한 불교관계자 외에도 남한 일군 307명이 개성을 드나들었고 기와 46만장, 단청재료, 조경용 묘목, 창틀 등 온갖 건축자재가 개성으로 넘어갔지요. 2005년 10월 남북한 불교도들이 낙성식을 한 의미있는 사찰이지요. 수박 겉핥기 같지만 경주와 개성의 세계문화유산을 훑어 봤는데 경주 부분은 다음기회가 되면 좀 더 하지요. 어떻든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알면 알수록 사랑하게 될 것이니까 남북한 어디에 있던 우리의 문화재를 애호하게 되기를 바라는 뜻에서 말씀드렸습니다.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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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오를 맞아 평양 모란봉에서 민족씨름경기가 열리고 모습.
단오를 맞아 평양 모란봉에서 민족씨름경기가 열리고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단오에는 여자들은 창포물에 머리를 감고 그네를 타는 게 알려진 풍속이고 남자들은 씨름을 하는 것이 가장 흔했던 풍속이지요.

한국 고유의 명절 단오를 맞았습니다. 단오는 우리민족의 아주 중요한 민속명절인데, 단오 때는 씨름을 많이 한다고 하지요. 백과사전 위키백과에 씨름은 한국 고유의 운동으로, 두 사람이 샅바나 바지 허리춤을 잡고 힘과 슬기를 겨루어 상대방을 넘어뜨리는 경기입니다. 씨름은 이미 고대시대부터 이어져 온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통일문화산책 오늘도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씨름에 대한 이야기 나눠봅니다.

단오 때는 씨름을 했다고 하지요.

임채욱 선생: 그렇습니다. 음력 5월 초닷새 단오는 수릿날이라고도 하지요. 일 년 중 양기가 왕성한 날이고 여름이 시작되는 계절로 들어서는 날이지요. 예로부터 단오행사는 우리나라 남쪽지방보다 북쪽지방에서 더 크게 쇠는데 북한도 한때 단오 날이 휴무일 이였기도 했습니다. 단오에는 여자들은 창포물에 머리를 감고 그네를 타는 게 알려진 풍속이고 남자들은 씨름을 하는 것이 가장 흔했던 풍속이지요. 하지만 지금 남북한에는 주민들끼리 이런 놀이를 하기보다는 조직적으로 행해지고 있지요. 그네타기는 지금 북쪽에서 더 성한 편이고 씨름은 남쪽이나 북쪽이나 다 단오에 대회를 열고 있습니다.

씨름이 그네타기와 함께 단오의 대표적인 민속인데 씨름의 역사는 길지요?

임채욱 선생: 고구려를 세운 주몽이 부족의 족장으로 있을 때 씨름경기를 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오래됐지요. 고구려고분벽화에도 씨름장면이 나오고 신라 화랑도 무예로써 씨름을 연마했다고 합니다. 고려 때도 어떤 왕은 씨름경기에 직접 친히 구경했다고 하고 조선조에서는 씨름이 대중화돼서 누구나, 어디서나 하는 놀이가 됐지요. 조선시대 씨름경기는 김홍도의 유명한 그림으로도 나타나듯이 수 십 명에서 수 백 명이 모이는 씨름경기도 있었습니다. 일본강점기 시대에도 씨름은 왕성했습니다. 1927년 9월에 서울 휘문 고등 보통학교 운동장에서 제1회 전조선씨름대회를 연 것을 비롯해서 일제탄압으로 중지된 1941년까지 여러 종류의 전국적 규모의 씨름대회가 있었습니다.

남북한의 단오 씨름경기를 소개해 주시지요.

임채욱 선생: 한국에서 올해 단오장사 씨름대회는 단오 전날부터 내일 6월 3일까지 충청북도 보은에서 열리고 있는데, 이런 경기대회가 설날, 추석에도 열립니다. 북한에서는 전 지역 단위 씨름대회가 단오 때가 아니고 9월에 열립니다. 단오에는 지역마다 나름대로 씨름경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럼 전국단위 씨름경기를 소개해 주시죠.

임채욱 선생: 한국에서 전국적인 규모로 벌어지는 씨름경기는 전국장사씨름대회, 천하장사 씨름대회, 전국씨름선수권대회 같은 것이 있는데 가장 유명한 것이 천하장사씨름대회죠. 천하장사 씨름대회는 아마추어 경기가 아니라 직업 씨름선수들이 겨루는 대회이기도 한데 체급별로 태백장사, 금강장사, 한라장사, 백두장사를 뽑지요. 백두장사가 천하장사가 되지요. 그밖에도 곳곳에서 자기고장 특산물을 알리려는 씨름대회도 열리는데 가령 상주 곶감 배 씨름대회, 나주 배 대항 씨름대회 같은 것이 있습니다.

북한에서 열리는 대회도 소개해 주시지요.

임채욱 선생: 북한에서는 대황소상 전국민족씨름경기라는 대회가 있습니다. 대체로 추석을 앞둔 9월에 열리는데, 올해 9월에 열린다면 14차대회가 됩니다. 경기장소는 평양 능라도에 있는 민족씨름경기장입니다. 평양을 비롯해서 직할시와 각도에서 나온 100여 명 선수들은 각 단체 5명이 체급별로 겨뤄 우승팀을 결정하는 단체전과 개인별로 우승자를 뽑는 개인전이 있습니다. 개인전을 북한에선 비교씨름경기라고 합니다. 비교씨름경기 우승자는 1톤이 넘는 황소 한 마리와 금으로 만든 소방울을 상품으로 받습니다. 비교씨름경기에는 참가한 단체에서 한 사람씩 참가해서 승자전의 방식으로 우승자를 결정합니다.

남북한 씨름 경기규칙은 같지 않겠지요?

임채욱 선생: 샅바를 매는 방식부터 다릅니다. 경기장이 한국은 모래판인데 북한에선 매트입니다. 또 선수복장도 한국에선 상체를 드러내는데 북한에선 상의를 입습니다.

그럼 남북한 씨름경기 교류를 한다고 가정할 때도 규칙문제가 제기되겠네요?

임채욱 선생: 그건 큰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모래판에서 시합하던 선수와 매트에서 시합하던 선수가 적응 하는 게 서로 다르겠지요. 하지만 남북한 씨름단체 관계자들이 협상하기에 따라 샅바 잡는 방식이나 시합장, 그리고 복장이나 체급 결정 같은 문제는 어느 한 쪽 방식만 고집할 게 아니라 양보하면서 합의하면 되겠지요. 합의사항에 따라 훈련을 하면 될 수도 있는 문제지요.

북한에도 씨름관계 단체가 있을 것이니 남북한 씨름경기 한 판 열면 좋겠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임채욱 선생: 북한 씨름단체는 조선씨름협회인데, 현재 내각 부총리 겸 농업상인 사람이 위원장이지요.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남북한 씨름관계자들이 만나서 의논하면 안 될 것도 없지요. 씨름은 체력, 기술, 투지 세 가지 조건으로 다투는 경기이지만 무엇보다 씨름이 전통경기이고 시합은 하되 다른 격투기처럼 때리는 게 아니고 넘기기만 하는 것이라서 무난하지 않을까 싶군요. 무엇보다 상체를 벗고 겨룬다면 서로 땀 냄새를 맡을 수 있고 이를 통해 같은 동포라고 느끼면 좋은 일 아니겠어요?

씨름은 다른 나라에도 있지요? 한국은 다른 나라와 씨름교류도 많았겠지요?

임채욱 선생: 터키와 씨름을 교류한 일이 있고 몽골과도 씨름선수들이 내왕했지요. 북한과 한국이 씨름 규칙이 다른 것은 그래도 다른 나라 규칙보다는 가까운 편이지요. 러시아 삼바, 중국의 우슈가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되도록 노력하듯이 앞으로 씨름도 남북한이 힘을 합한다면 갈 길은 멉니다만 세계적인 운동 종목으로 등장할 수도 있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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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북한에도 혁명을 이룬 세대와 이를 받아서 이어가는 세대는 연령적으로도 다르고 의식 면에서도 다른 것은 틀림없지요.

한국에서 새 대통령이 선출 됐습니다. 이번 선거에는 지역별 차이보다 세대별 차이가 더 크게 투표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통일문화산책 오늘은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선거에서 남북한의 세대문제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눕니다.

 

이번 남한 대통령 선거에서 세대별 지지율이 어떠했는지 설명해 주시지요.

 

임채욱 선생: 네. 그렇습니다. 새 대통령은 지역적으로는 영남지방을 제외하고는 골고루 전체 1위를 했지만 세대별로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새 대통령에 대해서 20대, 30대, 40대는 압도적으로 지지를 했지만 60대 이상에서는 거의 지지를 받지 못했지요.

이런 현상은 다른 민주국가 선거에서 나타나는 현상과는 좀 다른 것 아닙니까?

임채욱 선생: 미국경우는 인종 별로 정치성향 차이는 보이지만 세대 간 차이는 그렇게 크지 않습니다. 일본도 연령대별로 투표율에선 차이가 나지만 정치성향으로 세대 간 차이가 나는 현상은 없습니다.

 

세대별 이런 차이가 완화될 가능성은 있습니까?

 

임채욱 선생: 한국에서 세대별로 정치성향이 이렇게 달라진 것은 전쟁을 겪고 어려운 시기를 거친 세대와 그런 것을 모르고 자라난 세대 간의 세상을 보는 시각 차이가 그대로 나타난 것인데, 정책적으로 잘 조화시키면 완화될 수 있는 문젭니다. 정책적으로 조화시킨다는 것은 다른 게 아니라 보수와 진보정책이 수렴이 되도록 접근시킨다는 것이지요. 경제정책, 사회보장정책, 국방외교정책 등등의 모든 문제에서 어느 한쪽만의 선호대로 하지 않고 양쪽이 어느 정도 만족하는 선까지 접근시킨다는 것이지요. 쉽지는 않지요.

 

세대란 본래 어떤 의미를 가집니까?

 

임채욱 선생: 세대란 말은 본래 세(世)와 대(代)가 합해진 말인데 세는 사람의 한평생을 말하고 대는 잇는다는 뜻을 가졌지요. 그래서 세대는 앞서간 선대와 뒤를 따르는 후대가 이어져 있다는 연속성이 중요하지요. 과거 전통사회에서는 이런 연속성이 잘 지켜져 왔지만 오늘날과 같은 산업시대에는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모습이어서 세대 간 연속성이 한결같지는 않게 되지요. 그러다 보니 청년세대는 청년세대만이 갖는 특징이 있어서 청년문화를 이루고 노년세대는 노년의 특성을 따라 다른 모습의 문화를 갖게 되는 것이지요. 물론 사고방식에서도 달라지지 않을 수 없지요.

 

그럼 이번에는 북한입니다. 북한에선 세대별로 충돌할 문제가 없습니까?

 

임채욱 선생: 북한에도 혁명을 이룬 세대와 이를 받아서 이어가는 세대는 연령적으로도 다르고 의식 면에서도 다른 것은 틀림없지요. 다만 혁명을 한 세대가 이룬 성과와 전통들을 새 세대들은 무조건 이어받아야 하는 것으로 가르쳐 왔으니 세대문제는 기본적으로는 없다고 보지요. 하지만 아시다시피 북한에도 당국이 금지하고 단속하는 남한음악을 듣고 영화를 본다거나 하는 일이 나타나고 혁명의식이 약화되는 현상도 보여서 당국은 사상교양사업을 끊임없이 심화시키려고 하지요. 북한에선 세대를 단순히 연령집단으로만 보지 않고 이른바 ‘혁명과 건설’을 위해서 투쟁하는 하나의 사회적 집단으로 보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북한에서 보는 세대문제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입니까?

 

임채욱 선생: 북한에서 세대문제를 날카롭게 본 것은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인데, 소련을 위시해서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이 자본주의 국가로 바뀌면서 나타난 현상들이 북한에도 침투될까 봐! 몹시 우려했지요. 이런 나라들을 사회주의가 좌절된 나라들이라 하면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자본주의가 복귀된 나라들에서는 적지 않은 새 세대들, 청년들이 사상 정신적으로 병들고 부르죠아 반동사상에 물 젖어 사회주의를 반대하는데 앞장섰다. 이것은 혁명의 전 세대가 후대들에게 사상 정신적 재부를 똑똑히 물려주도록 하지 못한 것과 관련 되여 있다.” 그래서 북한에선 세대 사이 계승에서 생산수단이나 생산경험, 노동조직, 생산물과 같은 물질생활영역보다 ‘혁명전통’이라는 사상적 푯대를 잘 물려주는 정신사상영역에서의 옳은 계승을 더 중요하다고 역설하고 있지요.

 

그런데도 나타나는 북한의 세대문제는 전망이 어떻습니까?

 

임채욱 선생: 북한에서 혁명은 한 세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세대와 세대를 이어 완성되어 나가는 장기적인 투쟁으로 보기 때문에 세대문제는 혁명의 운명과도 관련되는 중요한 문제로 보지요. 이 문제에 대해 선대통치자 김정일이 한 말이 있습니다. “우리 혁명의 1세대, 2세대 청년들이 조국을 광복하고 해방된 조국 땅 우에 인민대중 중심의 가장 우월한 우리 식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데서 위훈을 떨친 세대라면 혁명의 3세대, 4세대 청년들은 그것을 튼튼히 고수하고 빛내어 나가는 세대입니다.”(김정일 선집 12권 p5) 이렇게 혁명을 잇는 세대를 의미 있게 규정하면서 청년세대들에게 “오늘을 위한 오늘에 살지 말고 내일을 위한 오늘에 살도록 하자”라고 강조하지만 혁명선배를 존중하는 정신도 약해지고 우리 식 사회주의 제도에도 회의를 갖게 되는 경향이 나타나는 모양입니다. 이렇게 되면 북한에도 세대 간 충돌이 나타날 수 있지요.

통일문화적 관점에서 남북한 후계세대가 가져야 할 자세는 어떤 것일까요?

임채욱 선생: 통일 문화적인 관점에서 남북한 세대문제를 본다면 우선 이념에 앞서 민족을 찾아야 하겠지요. 그리고 앞선 세대가 서로 다른 이념으로 이룩한 문화 중에서도 서로 배워서 이익이 되는 것은 배워서 자기 문화를 풍부하게 하려는 자세가 중요하겠지요. 또한 전통사회의 우리민족문화 속에서도 세대갈등을 해결할 가능성은 없을까 하고 찾아보려는 노력도 중요할 것입니다.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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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8일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 AFC여자축구아시안컵 예선 경기에서 남한과 북한 선수들이 볼을 다투고 있다.
지난 4월 8일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 AFC여자축구아시안컵 예선 경기에서 남한과 북한 선수들이 볼을 다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광복 후 서울에서는 단순한 수준의 간판광고가 생겨났지만 1960년대 말이 되면 네온사인 광고 간판이 등장하고 1970년대가 되면 고속도로를 따라서 옥외 간판광고가 줄을 섰지요.

백과사전 위키 백과에 간판(看板)은 홍보, 광고 등을 위해 나무, 플라스틱, 금속 등 어느 정도 내구성을 재질로 한 일반적으로 판상의 물체이고 주로 야외에서 사용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남북한 광고세계를 말하면서 김일성 경기장에도 광고용 간판이 있다고 했는데 오늘도 남북한 간판문화에 대해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이야기 나눕니다.

먼저 간판도 문화인지부터 말씀해주시죠.

임채욱 선생: 네. 4월 초 김일성 경기장에서 벌어진 남북한 여자축구시합 장면을 보면 경기장 광고 간판이 보였지요. 음식점 이름도 보이고 기업체 이름도 보였습니다. 간판은 광고행위 중 가장 오래된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남북한 간판문화를 살펴보는 것은 의미가 있지요. 간판이 문화라는 것은 단순한 그림이나 디자인에서부터 상상력을 동원해야 하는 창의적인 표현까지 나타나기 때문에 문화인 것이죠. 물론 여기에는 제작기술까지 최신의 것이기 때문이죠.

광고와 간판은 같이 가는 것 같습니다만 간판 자체로서도 기능이 뚜렷한 것 아닐까요?

임채욱 선생: 그렇지요. 간판도 정보제공이란 점에서는 광고와 같지만 광고가 정보제공을 통해 상품판매나 서비스 이용을 목적으로 한다면 간판은 단순히 정보제공 자체가 목적이라 할 수 있지요. 빨간색 등이 어떤 때는 단순한 신호가 되지만 어떨 때는 뜻을 가진 상징으로 되는 것에 비유할 수 있을는지요.

간판은 어떻게 보면 단순히 알리기만 하는 표지가 아니라 종합작품이라고 해도 되겠군요?

임채욱 선생: 그렇지요. 간판은 종합예술이라 할 정도로 예술적 감각과 과학기술이 결합되는 것이지요. 과학기술의 발달은 간판을 온갖 재질과 색채로 만들어내게 됐지요. 재질만 해도 나무에서 시작해서 알미늄채널, 아크릴, 대리석, 철골, 주물까지 온갖 것이 사용되고 디자인은 햇빛에 따라 색상이 바뀌기도 하고 또 어떤 것은 바람에 따라 색상이 바뀌는 수준까지 왔지요. 간판미술과 제작기술이 결합된 최신 전자간판은 가히 신기할 정도이지요. 간판은 한마디로 단순한 표지판에서 각종 마크, 로고, 캐릭터 형태로 표현되는 종합작품이지요.

우리나라 간판의 역사는 어떻습니까?

임채욱 선생: 기록을 보면 고려 때 지금의 광화문에서 서울시청 부근까지 양쪽으로 긴 행랑으로 이어진 일반 백성들 거주지였는데 거주지를 구분하기 위해서 거주지 이름들을 현판에 새겨 뒀다고 합니다. 가령 흥선(興善), 영통(永通), 광통(廣通), 자양(資養), 행손(行遜) 같은 이름들이 보였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에는 일본에 통신사로 다녀온 사람의 건의로 종로통에서 광교통으로 이어지는 거리에는 물건에 따라 그 이름을 적은 현판을 달았다고도 합니다. 일제가 통치하던 1920년대가 되면 간판은 상당히 퍼지는데 가령 1927년이 되면 유명인사 두 사람이 서울의 각 상점 간판을 둔 품평회를 열고도 있습니다. 이때가 되면 이미 간판이 미관을 해치지 않아야 한다는 관념에서 간판 규제도 실시됐지요.

한국에서 간판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납니까?

임채욱 선생: 광복 후 서울에서는 단순한 수준의 간판광고가 생겨났지만 1960년대 말이 되면 네온사인 광고간판이 등장하고 1970년대가 되면 고속도로를 따라서 옥외간판 광고가 줄을 섰지요. 간판이 도시미관을 해친다는 것은 늘상 느끼는 것이지만 간판이 도시미관을 아름답게 꾸미기도 하기에 서울시에서는 5월에 좋은 간판 공모전을 열고 파주시 같은 곳에서는 5월 한 달을 간판문화학교를 열어서 더욱 아름다운 간판 만들기 캠페인도 벌이지요.

이번에는 북한의 간판을 한 번 볼까요?

임채욱 선생: 간판은 정보를 제공한다지만 단순하면서도 알아보기 쉬우면 그 기능을 다한 것이 되지요. 북한에선 바로 이런 점을 두고 간판을 간단하게, 무엇보다 고유한 우리말로 쓰도록 권장하지요. 그래서 간판은 ‘군밤’, ‘군고구마’, ‘얼음과자’ ‘찬 단물’이라고 쓰여져 있기도 하고 ‘학생옷상점’ , ‘녀자옷상점’, ‘신발상점’쓴 것도 보입니다. 또 ‘고기국집’, ‘생선국집’, ‘만두국집’, ‘순대국집’, ‘내포국집’, ‘갈비국집’도 보입니다.

북한은 이런 간판들을 두고 인민들의 구미에 맞게 흔히 쓰는 생활적인 말로 쉽게 쓰여있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친근하게 안겨오고 사람들을 흐뭇하게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아가서 우리말을 적극 살려 쓰려는 인민의 높은 언어생활수준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자랑합니다. 물론 간판제작 기술도 있어서 알미늄 채널을 사용한 것도 있지만 아직은 단순한 재질이 사용되고 있지요.

간판을 둔 학술적 연구도 있겠지요?

임채욱 선생: 물론이지요. 간판학이란 학문이 생겨날 정도로 간판에 대한 연구도 깊어지고 있지요. 가령 간판이 시인이나 소설가에게 어떤 영감을 주었을까, 간판과 관련된 그림이나 영화는 어떤 것이 있을까, 간판이 나타내는 시대상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낼 수 있을까를 연구할 수도 있지요. 간판은 본래 알림의 기능을 하는 것이지만 이런 기능이 확장되어서 간판은 외관이나 학벌, 또는 경력 등 남 앞에 내세울만한 것이란 의미도 가지고 있지요. 그래서 간판이 좋다니, 간판 때문에 출세했다느니 하고 있기도 하지요. 이런 인문학적 연구도 해볼 수 있지요.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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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인 강릉단오제의 주신인 국사성황신을 인간 세계로 모시는 대관령 국사성황 모시기 행사가 10일 대관령 일원에서 열렸다.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인 강릉단오제의 주신인 국사성황신을 인간 세계로 모시는 대관령 국사성황 모시기 행사가 10일 대관령 일원에서 열렸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한국이 등재한 문화유산 내용을 유형별로 말하면 세계유산이 12건, 무형문화유산이 19건, 기록유산이 13건입니다. 이는 세계 200개가 넘는 나라 전체로 보면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닙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올린 한국의 문화유산은 아주 많은 편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북한도 뒤늦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 하려는 노력을 한다고 하는데 그 현황은 어떤지, 오늘은 남북한의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대해서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살펴 보겠습니다.

임채욱 선생: 유네스코, 즉 유엔교육과학위원회가 전 세계 문화유산을 목록으로 만드는 사업을 한 이래 한국은 아주 많은 유산을 올리고 있습니다. 기록유산 같은 것은 13개로 아시아에서 가장 많이 올렸고 세계적으로도 4번째입니다. 기록유산뿐 아니고 다른 부문도 많은 편입니다.

문화유산을 여러 부문으로 나눠서 등재하는 모양인데 그 내용을 좀 말씀해 주시죠.

임채욱 선생: 크게 세 부문으로 나눠 심사를 하고 등록시킵니다. 세계유산, 인류무형문화유산, 기록유산이지요. 세계유산은 성격에 따라 다시 문화유산, 자연유산, 복합유산으로 분류됩니다. 한마디로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인류문화를 포괄한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다만 인류의 보편적인 성격을 가져야 하지요. 유네스코가 이 사업을 시작한 것은 1972년부터인데, 이집트 나일강에 댐을 건설하면서 고대 이집트 유적과 유물이 물에 잠기게 되면서 이것들의 보존운동 일어났지요. 이후 없어질 위험에 처한 유물과 유적을 인류가 공동으로 보존하자는 뜻으로 목록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 문화유산을 등록하게 된 계기가 됐지요. 처음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던 나라들도 지금은 서로 다투어서 등재를 많이 시키려고 하게 됐어요. 왜냐하면 지정된 다음 관광자원으로 활용이 가능하기 때문이지요. 관광수입에 아주 좋은 일이지요.

그럼 한국과 북한이 등재한 유산내용을 소개해 주시죠.

임채욱 선생: 한국이 등재한 문화유산 내용을 유형별로 말하면 세계유산이 12건, 무형문화유산이 19건, 기록유산이 13건입니다. 이는 세계 200개가 넘는 나라 전체로 보면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닙니다. 문화유산 심사는 대체로 매년 6월에 하는데 올해 한국은 무엇을 올렸는지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만 작년에는 서원을 올려서 심사에서 탈락했어요. 헛발질을 한 것이지요. 한편 북한은 세계유산 2건, 인류무형유산 2건이 전부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어떤, 어떤 것이 있습니까?

임채욱 선생: 네. 세계유산이 12건이라고 했죠? 이 12건 중 11건이 문화유산이고 1건이 자연유산입니다. 자연유산 1건은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이고 문화유산 11건은 1995년부터 2015년까지 등재된 것인데,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보관한 장경판전, 조선조 왕들을 제사 지내는 종묘, 경주에 있는 석굴암과 불국사, 창덕궁, 수원화성, 고창, 화순, 강화에 있는 우리나라 고인돌 유적, 경주역사지구, 조선조 왕릉들, 안동에 있는 하회마을과 경주에 있는 양동마을, 그리고 남한산성과 백제역사유적지구입니다.

인류무형유산이 19건이나 된다는데 소개해 주시죠.

임채욱 선생: 네. 19건은 2001년부터 작년 2016년까지 지정된 것인데요. 종묘제례, 판소리, 강릉단오제, 처용무, 강강술래, 제주 칠머리당 영등굿, 남사당놀이, 영산재, 한국의 전통목조건축, 매사냥, 가곡과 국악관현악 반주곡, 택견, 줄타기, 한산 모시짜기, 아리랑, 김장문화, 농악, 줄다리기, 제주해녀문화입니다. 기록문화유산 13건도 계속 소개하지요. 1997년부터 2015년까지 등재된 것입니다. 조선왕조실록과 훈민정음 해례본이 가장 먼저 됐고 이어서 직지심체요절, 승정원일기, 고려대장경판(팔만대장경을 말하지요), 조선시대 의궤, 동의보감 등이 이어집니다. 계속해서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록, 일성록, 새마을운동 기록물,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 유교책판들, KBS 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기록물이 있습니다.

그럼 이번에는 북한의 문화유산을 소개해 주시지요.

임채욱 선생: 북한은 간단합니다. 2004년에 고구려 고분군이 등재되고 2013년에 개성역사유적지구가 등재되었습니다. 고구려 고분군은 모두 63기인데 평양과 그 주변지역에 있는 것들입니다. 북한은 이들을 등재시키려고 1998년 7월에 세계유산협약에 가입했지요. 고구려 고분군이나 개성역사유적지구 등재에는 한국도 협력을 했지요. 2003년 고구려 고분군을 신청했다가 보류된 뒤 2004년 다시 신청할 때 한국대표는 각국대표를 상대로 활동하면서 동족애를 과시했다고 합니다. 그 뒤 개성역사지구도 2007년에 등재신청을 했으나 보류판정을 받았는데 지적된 문제점을 보완하는 과정에서 한국학자들도 도움을 주려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북한은 개성역사지구 등재에서는 프랑스와 협력해서 드디어 2013년 6월에 등재결정을 이끌어 냈다고 합니다. 개성역사지구 등재를 앞두고 북한학자들과 한국학자들이 공동으로 진행하던 고려 왕궁 만월대 공동발굴사업은 안타깝게도 중단상태가 되었어요. 인류무형유산 2건은 아리랑민요(2014)와 김치 담그기 풍습(2015)입니다.

남북한은 동일한 유산을 경쟁적으로 등재하려 할 수도 있겠군요.

임채욱 선생: 그렇지요. 가령 작년에 북한이 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고 한 ‘무예도보통지’ 같은 책은 남북한 다 같이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 먼저 하려고 할 수도 있지요. 이런 문제를 생각하면 남북이 공동으로 우리 땅의 문화유산들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시대가 오기를 바라게 되지요.

오늘 이 시간에는 남북한의 유네스코 문화유산을 목록만 나열한 셈이 됐는데 다음 기회에 하나하나 소개하는 기회가 있었으면 합니다.

임채욱 선생: 그거 좋지요. 우리 문화유산을 애호한다는 면에서 알면 알수록 사랑하게 되기 때문에 한 가지씩, 한 가지씩 소개하면 좋지요.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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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대성산 유원지에서 열린 국제아동절 기념 행사 모습.
북한 대성산 유원지에서 열린 국제아동절 기념 행사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한국에서는 1957년에 ‘어린이 헌장’을 선포하고 1970년부터는 공휴일로 지정돼 하루를 마음껏 즐기는 어린이날이 되고 있지요.

 

백과사전 위키백과에 어린이날(Children's Day)은 여러 나라에서 기념일로 정해져 있는 날로, 이날에는 특별히 부모들이 어린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거나, 어린이가 평소에 가지고 싶어했던 물건 등을 선물해주기도 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어린이날이 5월 5일이지만, 북한은 6월 1일 그리고 나라와 종교·문화권 등에 따라 기념일이 각각 다르다고 합니다. 통일문화산책 오늘도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남북한 어린이날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남북한 어린이날이 다르지요.

 

임채욱 선생: 네, 푸른 5월에는 어린이를 위한 날이 있습니다. 그런데 북한에는 어린이날이란 표현은 없고 어린이와 관계되는 날은 6월 1일과 6월 6일이 있습니다.

 

어린이날 표현이 없는 것은 어떤 연유가 있는가요?

 

임채욱 선생: 6월 1일은 국제아동절로 그전 공산권에서 기념하던 것을 그대로 따르고 있고 6월 6일은 조선소년단 창설기념일로 소년단 어린이들의 기념일이지요. 소년단 어린이 나이가 만 7살부터 14살까지니까 한국에서 초등학교 6학년 나이까지에 해당되는 어린이들이지요.

 

국제아동절을 설명하신다면?

 

임채욱 선생: 북한에서 1950년부터 기념했으니까 올해 6월 1일이 67주년 기념일이 됩니다. 국제아동절은 1949년 9월 모스크바에서 공산권 여성단체인 국제민주여성연맹이 6월 1일로 정한 것인데 이 6월 1일은 나치스 독일군이 1942년 6월 체코슬로바키아 수도 프라하에서 수많은 어린이를 학살했다는 사실에 근거해서 이 어린이들을 추모하자는 뜻으로 결정된 것이라고 합니다.

 

북한의 조선소년단 창설일은 어린이날이라고 보기가 좀 어렵지 않나요?

 

임채욱 선생: 북한에서 어린이 범위를 몇 살까지라고 정한 건 없지만 6월 1일 아동절에는 유치원이나 애육원, 애육원은 어린 고아를 맡아 키우는 곳입니다만 유치원과 애육원 어린이만을 대상으로 하는 편이어서 6살에서 만 14살까지의 어린이에겐 기념일이 없는 셈이지요. 그래서 소년단 창설일이 어린이날을 대신한다고 볼 수도 있는 거지요.

 

그럼 소년단 창설일에 큰 행사를 합니까?

 

임채욱 선생: 소년단에 입단하는 어린이에게는 아주 뜻있는 날이 되지요. 입단식 행사는 꽤 중시되는 것인데 붉은 넥타이를 매주고 소년단 뺏지를 달아주면서 혁명을 이을 후비대가 될 것을 강조하는 날이기에 소년단 입단 당사자에겐 이를 뜻있게 받아들이는 날이 되지요.

 

북한에서 유치원이나 애육원 어린이를 위한 국제아동절 행사는 어떻습니까?

 

임채욱 선생: 비교적 성대하게 열어왔지요. 김정은도 매년 애육원을 방문해서 어린이 사랑을 보여주는데 올해도 그렇게 하겠지요.

 

국제아동절이나 소년단 창설 기념일을 한국의 어린이날과 비교하기에는 범주상의 문제가 약간 있겠습니다만, 기왕 말이 나왔으니 한국 어린이날도 설명해 주시지요.

 

임채욱 선생: 어린이날 5월 5일은 처음에는 5월 1일이었어요. 일본이 우리나라를 지배하던 그 시절 일본대학에서 아동예술과 아동심리학을 공부한 방정환(1899~1931)선생은 1922년 5월 1일 여러 동지들과 ‘어린이날’을 제정합니다. 그는 이듬해 1923년 3월에는 <어린이>라는 아동잡지를 창간하고 5월 1일에는 어린이날 기념식을 엽니다. 이 기념식에는 서울시내 소학교 학생 1천여 명이 모였고 기념식 후 200명 소년들은 서울을 4구역으로 나눠서 행진도 했습니다. 행진하는 도중에는 ‘어른에게 전하는 부탁’ 전단과 ‘어린이에게 전하는 부탁’ 전단을 나눠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언제부터 5월 5일로 된 것이지요?

 

임채욱 선생: 5월 1일은 마침 만국노동자들의 축제일인 메이데이였지요. 그러다보니 좌익활동가들이 이날을 소년운동의 날로만 보지 않고 계급해방운동의 뜻도 겸하는 날로 보게 됩니다. 당초 방정환선생도 어린이를 종래의 윤리적 압박과 경제적 압박으로부터 해방을 목표로 했지만 계급해방과 같은 인식은 없었는데 좌익은 무산소년운동을 내세우면서 대립을 벌여갔지요, 이렇게 되다 보니 1927년 5월 1일에는 어린이날 기념행사도 따로따로 열렸지요. 이에 서로 비판을 하다가 1928년 다시 함께 기념행사를 열었지요. 이때는 전국에서 어린이 50만명이 참가했다는 기록을 남기지요. 하지만 1년도 안돼서 또다시 분열하게 됩니다. 무산소년운동을 주장하는 좌익이 소년운동단체를 장악해서 방정환선생이 이끄는 단체인사들을 쫓아내버립니다. 이처럼 좌파와 우파의 주도권 쟁탈 여파로 어린이날 기념행사는 두 쪽으로 쪼개졌고 그 뒤 다시 합해졌다가 하면서 행사만은 1937년까지 이어졌지요. 1937년 이후부터 광복되던 1945년까지는 일본제국주의에 의해 중단된 것은 당연하고요.

 

그럼 5월 5일은 광복 후에 바꿔진 것이겠네요?

 

임채욱 선생: 그렇지요. 광복 후 어린이날 부활을 말씀 드리기 전에 한 가지 언급할 것은 우리나라 어린이날을 제정하는데 주동이 된 소파 방정환선생은 1931년에 별세를 합니다. 그는 아동교육가였고 아동문학가였으며 아동인권운동가이고 독립운동가였지요. 그가 좌우익의 어린이날을 둔 상징쟁탈전을 보면서 눈을 감았는데 눈을 감는 그 순간에도 소년사랑을 실천했다고 하지요. 광복 후 어린이날 부활을 논의하던 소년운동권은 1946년부터 5월의 첫 일요일인 5일을 어린이날로 바꾸었지요. 이에 대해서는 5월 1일 메이데이를 피해서 정했다고도 보기도 하는데, 5일이 마침 마르크스 생일이어서 좌익에서도 묵인한 것 아니겠느냐는 추론도 있을 수 있지요. 어떻든 1946년 5월 5일 광복 후 첫 어린이날은 서울 종로에 있는 휘문중학교 교정에서 열렸는데 이날 국민의례가 어떠했는지는 알려지지 않는데, 남녀 4명의 어린이가 ‘800만 소년-소녀의 선서문’을 낭독했다고 합니다. 그 내용은 “다시는 집도 말도 빼앗기지 않고 새날 새 조선의 주인으로써 열심히 배우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날 여운형 같은 정치인이 축사도 했다는 것입니다.

 

그 뒤 어린이날은 계속 이어져 오는 거군요.

 

임채욱 선생: 한국에서는 1957년에 ‘어린이 헌장’을 선포하고 1970년부터는 공휴일로 지정돼 하루를 마음껏 즐기는 어린이날이 되고 있지요. 그리고 5월 1일부터 7일까지를 아예 어린이주간으로 정해서 온갖 기념행사를 하고 있지요.

 

다른 나라도 어린이날이 있다고 아는데요?

 

임채욱 선생: 네. 있는 나라도 있고 없는 나라도 있네요. 미국, 영국, 프랑스는 어린이날이 없다고 하네요. 캐나다는 있고 동북아시아는 대체로 있고 옛 공산권은 6월 1일 국제아동절을 그전처럼 지키고 있다고 합니다. 홍콩이나 대만은 중화민국정부가 1931년에 제정한 4월 4일을 그대로 지키고 있는데 홍콩은 중국영향으로 6월 1일로 바뀌고 있다는 것입니다. 일본은 좀 특이한데 남자어린이는 5월 5일로 공휴일인데 여자어린이는 3월 3일로 법정공휴일이 아니라고 하는군요.

 

남북한의 어린이날과 국제아동절 행사를 비교한다면 어떻습니까?

 

임채욱 선생: 한국에서 어린이날은 어린이 단체 등 민간부문이 주가 돼서 나름대로 성대하게 준비한다면 북한은 당국의 지도 밑에 민주여성동맹이란 부녀단체가 아주 조직적으로 행사를 실시하고 있지요. 행사내용을 사회주의 보육체계가 우수하다는데 두다 보니 한국 어린이는 썩고 병든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들어 가고 있다고 비난하는 것도 매년 빠지지 않지요. 무엇보다 북한에서 국제아동절이나 소년단창설기념일은 공휴일이 아니란 점은 ‘세상에 부끄럼 없어요’라는 구호를 무색하게도 하지요.

“오월은 푸르고나 우리들은 자란다 오늘은 어린이 날 우리들 세상” 어린이날 노래의 한 구절처럼 ‘어린이 날 우리들 세상’이 남북한에서 같아지는 날이 언제 오려나요? 이날이 남북한 (1천만) 어린이가 진정 행복해지는 어린이날이 되겠지요.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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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이현기 leeh@rfa.org
2017-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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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단장한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 전시관.
새단장한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 전시관.
사진-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상해 임정은 독립되는 우리나라가 자유주의에 입각한 민주정부를 세우려는 목표를 가지고 활동했기 때문에 공산주의 이념과 맞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4월은 아시다시피 상해임시정부가 세워진 달입니다. 북한은 상해임시정부를 평가하지 않는다는 점은 이미 살펴보기도 했습니다만 통일문화산책 오늘도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임시정부를 비롯해서 애국독립운동단체를 보는 남북한의 관점을 검토해볼까 합니다.

임채욱 선생: 네. 말씀하다시피 4월은 3.1독립운동 이후 상해에서 임시정부가 세워진 달입니다. 전에도 한 번 말씀했다시피 북한은 상해임시정부를 하나의 망명집단으로만 봅니다. 정부라고 차려놓고는 애국 동포들로부터 독립자금이나 걷어 들이면서 파벌싸움이나 한 집단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임시정부는 국민, 영토, 주권이란 국가성립의 3대 요건에서 먼 거리에 있긴 했지만, 조직을 가지고 우리나라 독립운동을 주도하면서 직접 광복군을 설립해서 적과 싸우기도 하고 국제무대에 외교적 노력도 기울린 엄연한 사실을 외면하는 것이지요.

 

북한은 임시정부에 대해서 왜 그런 평가를 하게 되는지요?

 

임채욱 선생: 상해임정은 독립되는 우리나라가 자유주의에 입각한 민주정부를 세우려는 목표를 가지고 활동했기 때문에 공산주의 이념과 맞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그럼 북한에서는 독립운동을 한 단체로 어떤 단체가 중심이였다고 보는지요?

 

임채욱 선생: 아마도 김일성이 세웠다는 조국광복회 같은 것을 독립운동단체 중심으로 보겠지요. 조국광복회는 1936년 5월 조직됐는데 이른바 민족통일전선으로 조직됐다는 것입니다. 민족통일전선은 민족 안에 있는 각 당, 각파, 각계각층을 다 묶어 하나로 통일시킨 정치조직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지향하는 정권은 사회주의, 공산주의 건설을 목표로 하는 것입니다. 조국광복회는 바로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지향하는 민족통일전선에 입각한 단체지요.

 

조국광복회가 실제 독립운동에 기여한 부분은 있습니까?

 

임채욱 선생: 조국광복회는 김일성이 조직했다는 것 외에도 한원빈이란 독립운동가가 만주 땅 장백현에서 세운 항일비밀결사도 있습니다. 북한 문헌에 따르면 북한이 내세우는 조국광복회는 만주 통화성에 있는 동강이란 곳에서 창설됐다는데, 김일성이 10대 강령을 만들고 <3.1월간>이란 기관지도 간행하면서 우리나라 전체로 지부를 만들어 나갔다고 합니다. 하지만 구성원 대부분은 김일성이 지휘했다는 조선인민혁명군 지휘관과 병사들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조국광복회에 대해서는 김일성이 만든 게 아니고 중국 공산당원이 창설을 주도했고 조선사람 오성륜이 실제로 참여한 것으로 정식이름이 재만한인조국광복회라고 합니다. 역사의 진실은 밝혀지겠지요.

 

그럼 결국 독립투쟁도 민족진영이나 공산진영이 따로 따로 한 것이군요.

 

임채욱 선생: 대체로 그렇다고 봐야지요. 물론 신간회처럼 민족진영과 공산진영이 함께 한 경우도 있고 광복직전 임시정부 산하 광복군에 공산진영 쪽 군사력이 들어 온 일도 있었지요.

 

그에 대한 설명을 좀 해주시죠.

 

임채욱 선생: 지금 말씀드린 신간회는 우리나라 최초의 좌우합작 독립운동단체라고 하겠습니다. 1927년 2월에 창립됐는데 발기인 중에는 언론인, 종교인, 교육자, 조선공산당 간부 등이 있었지요. 회장은 창립총회에서 당시 명망가였던 월남 이상재를 선출했고 전 국민의 열띤 호응 속에 2년 만에 149개 지회가 전국에서 생겨나고 회원은 4만 명에 이르게 됩니다. 따라서 좌우를 아우른 민족 최대 항일독립운동 단체로 평가됐지요. 순회강연이나 야학을 통해 우리 국민들에게 조선사람 착취 반대, 일본사람의 조선 이민 반대, 조선사람 중심의 교육실시 등 우리 민족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조금이라도 높이려는 운동을 펼쳤습니다. 일본 식민당국은 신간회의 영향력이 커지자 전국적 단위의 대규모 집회를 못 열게 하고 간부들을 체포하고 등 탄압하기 시작했지요. 그런데 창립 3년이 돼 가던 시점부터 공산주의 계열 사람들은 노동자, 농민이 중심 되는 새로운 단체를 만들어야 한다면서 신간회 해체를 주장합니다. 그리고 1년 몇 개월이 더 지난 뒤가 되는 1931년 5월 그러니까 창립 된 지 딱 4년이 되던 때 해체되고 맙니다. 국제공산주의 지도부가 신간회를 민족개량주의 단체로 보면서 좌우합작이 잘 안 된다고 판단한 것이지요. 한마디로 공산당 뜻대로 안되니까 없애버리자는 것이었지요.

 

군사분야 좌우합작도 있었다고요?

 

임채욱 선생: 좌우합작이란 개념보다 임시정부 군사조직인 광복군 안에 김원봉의 조선 의용군이 들어온 것이지요. 광복군은 중국 땅 중경에서 1940년 9월에 설립되는데 공식명칭은 한국광복군이었습니다. 임시정부는 수립 때부터 <군사조직법>을 제정했고 중국군 군관학교에 우리나라 청년들을 입교시켜서 군인으로 양성시켜 왔으며 이런 인력으로 지청천 장군을 사령관으로 하는 3개 지대가 구성됩니다. 일본이 진주만 공격으로 미국과의 전쟁이 벌어지자 임시정부는 바로 (1941년 12월 10일) 대일선전포고를 합니다. 이때 사회주의 계열 김원봉이 이끌던 조선의용군 200여 명도 광복군으로 편입합니다. 김원봉은 의열단 활동을 하던 강성활동가로 만주와 상해 남경을 무대로 활동하면서 국내 총독부 고관이나 군부지휘관, 악질 친일파를 처단하기도 했지요. 그런 그가 민족진영과 힘을 합치기로 하고 광복군에 들어온 것입니다. 광복군은 대일 첩보전을 중심으로 일본 포로 심문, 선전활동을 하는 외에도 미국 첩보부대 OSS로부터 특수공작훈련을 받고 국내 진공 작전을 추진하려고 했습니다. 일본이 조금만 늦게 항복했으면 광복군의 국내진공이 실제로 수행됐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애석한 일이라고 봅니다.

 

우리는 민족항일기 수많은 독립운동 단체들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임채욱 선생: 우리가 광복을 맞이하기까지 실로 온갖 어려움을 겼으면서도 꺽이지 않고 일제와 싸운 애국선열들이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바람과 이슬을 무릅쓰고 한데서 먹고 자는 풍찬 노숙도 마다하지 않았던 독립투사들의 고초를 잊을 수 없습니다. 일본제국주의를 반대하고 독립투쟁을 하면서 민족해방운동에 참가하는 데는 각자 나름대로 덤벼들었습니다. 힘 있는 사람은 힘으로 하고, 지식이 있는 사람은 지식으로 하고, 돈 있는 사람은 돈으로 했지요. 어떤 사람들은 처음에 의병투쟁을 하다가 나중에는 항일무장투쟁을 했고,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덜 깨여서 남의 나라 식민지가 됐다는 자각에서 애국 문화계몽을 벌였고, 또 어떤 사람들은 독립운동 자금을 대면서 소극적인 항일투쟁도 했지요. 뜻있는 의사나 열사만 독립투쟁을 한 것이 아니라 농민, 노동자도 소작쟁의나 파업을 통해 항일을 하고 청년학생도 동맹휴학을 통해 반일활동을 했습니다. 민족해방운동은 이처럼 여러 형태로 진행됐는데 물론 그 구심점에 상해 임시정부가 있었다고 보는 것이 한국의 견해이고, 이를 무시하는 것이 북한의 견해이지요. 수많은 독립운동단체 가운데는 그야말로 동포들을 오히려 괴롭히는 단체도 있었고 진정으로 민족독립을 위한 일편단심 활동을 한 단체도 있었다고 봅니다. 언젠가는 그 활동상의 명암과 진실의 옥석이 정확히 가려질 것입니다.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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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축구 대표팀 장슬기(19번)가 7일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 남북한 여자축구 아시안컵 예선전에서 동점골을 성공시킨 뒤 환호하고 있다.
여자축구 대표팀 장슬기(19번)가 7일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 남북한 여자축구 아시안컵 예선전에서 동점골을 성공시킨 뒤 환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남북한이 분단 후 최초로 맞붙은 운동시합이 배구였습니다. 물론 광복 이듬해 3월 경평 축구시합이 있었고, 농구대회라든가 경평 아이스하키 시합이 있었지만 이것은 정권수립 전에 있었던 대회죠.

 

남북한 여자 축구팀이 최근 평양에서 여자 축구 아시안 컵 예선전 경기를 펼쳤습니다. 지난 7일 평양 김일성 경기장에서 열린 여자 아시안 컵 예선 B조 조별예선에서 남북은 공방전 끝에 1대 1로 비겼습니다. 평양에서 한국여자 축구팀이 북한과 1 : 1로 비긴 것을 두고 한국에선 기적을 이뤘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여자축구에선 북한이 강하고, 그동안 시합성적도 북한이 월등하다고 하는데 통일문화산책 오늘도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여자축구를 비롯해서 남북한 간 스포츠시합에 대한 이야기로 함께 합니다.

 

먼저 남북한 간의 펼친 축구 시합을 알아볼까요.

 

임채욱 선생: 사실 여자축구는 그동안 한국이 북한과 시합해서 1승 2무 14패로, 지는 게 훨씬 많았지요. 한 예로 1990년 9월 베이징 아시안 게임 뒤 평양에 가서 통일축구라는 이름으로 친선경기를 했는데, 그때는 7대 0으로 질 정도로 수준 차가 있었지요. 그런데 이번에는 비겼으니까 대단한 것이지요. 그것도 5만 명이 넘는 북한 관중이 천둥 같은 소리를 내면서 일방적으로 응원하는 가운데 치러진 시합인 만큼 그 투지가 대단한 것이죠. 북한 관중은 조직적으로 응원전을 펼쳤는데 대부분이 회색 옷을 입고 황금색 나팔을 불면서 함성을 지르고 고함치듯 외쳤다고 합니다. 이런 응원 가운데서 투혼을 발휘했으니 한국의 한 신문에서는 “남자선수도 좀 배워라”라고 했습니다. 한국 남자 축구팀은 지금 월드컵 최종예선전에서 아슬아슬할 정도로 불안한 위치에 있지요. 그래서 그간 남북한 스포츠시합에서 보이던 남남북녀 현상도 깨트려 졌다고 합니다. 참, 한국 여자축구팀이 평양에서 시합하던 하루 전날 북한 여자아이스하키팀은 한국 강릉에서 한국팀과 시합을 했지요. 아이스하키도 북한 팀이 강해서 10년 전에는 한국팀이 큰 점수 차로 졌는데 이번에는 3:0으로 이겼지요. 북에서 오고 남에서 가 경기를 펼쳤습니다.

 

남북한 스포츠 시합에서 남남북녀 현상이란 무엇인가요?

 

임채욱 선생: 먼저 우리나라 전통적인 속설을 소개해 보지요. 우리나라에서는 남자는 남쪽 남자가 잘나고 여자는 북쪽 여자가 잘났다는 말이 있지요. 이것은 하나의 속설이지 진리는 아니지요. 하지만 사람들은 흥미 삼아 남남북녀(南男北女)현상을 말하는데, 이때 잘났다는 것은 인물이 잘 생겼다든가 하는 뜻 외에도 능력이 뛰어났다든가 하는 면도 포함하죠. 이 말의 근거나 출처는 학자들도 잘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요즘 같으면 빅 데이터가 누가 이런 말을 처음으로 했는지도 찾아 줄 텐데요. 문제는 실제 그러냐 하는 건데 이것도 해석에 따라 다르지요. 여자의 미모를 두고 말한다면 예로부터 강계미인, 회령미인, 함흥미인 하듯이 북쪽지방에서 미인이 많았다는 것은 맞겠지만 지금이야 남쪽에도 화장발 잘 받는 미인이 많으니까 그 말도 시대적 한정이 있는 것이지요. 남자 경우 나라를 다스리는 정치가나 군인, 그리고 학자나 예술가를 말할 때 그야 조선조나 고려 때도 남쪽 출신이 다 차지했던 것은 맞는 말이 되지요. 하지만 이는 정치적, 사회적 조건이 남쪽 출신에게 유리하게 됐다는 것일 뿐이지요. 그럼 을지문덕, 연개소문, 온달장군, 정지상, 이성계 같은 북쪽 출신 남자들은 어떻게 봐야 합니까? 그리고 선덕여왕, 기황후, 허난설헌, 신사임당, 황진이 같은 여자들은 다 남쪽 출신인데 어떻게 해석돼야 합니까? 그러니까 남남북녀는 진리가 아니라 약간의 타당성을 가진 속설이라고 단정하면 되지요. 시대적으로 한정성을 갖는 것이라 봐야 합니다.

 

그럼 스포츠면에서 남남북녀는 어떻게 됩니까?

 

임채욱 선생: 이것도 딱 들어맞는다는 게 아니라 대개 이런 편이었다고 하는 말이지요. 남북한이 분단 후 최초로 맞붙은 운동시합이 배구였습니다. 물론 광복 이듬해 3월 경평축구시합이 있었고 농구대회라든가 경평 아이스하키 시합이 있었지만 이것은 정권수립 전에 있었던 대회죠. 그리고 동계올림픽 빙상경기나 국제탁구대회에서 시합한 경우도 있었지만 두 팀이 단체전으로 맞붙은 것은 배구였습니다. 이 시합은 1964년에 열리는 도쿄올림픽대회 출전권을 얻는 경기였는데 1963년 12월 인도 뉴델리에서 남북한 남녀팀이 맞붙었지요. 결과에서 남자는 한국팀이 이기고 여자는 북한팀이 이겼습니다. 배구시합은 그 뒤 뮌헨올림픽경기 예선 때도 프랑스 상디에라는 도시에서 붙었는데 남자는 한국이 이기고 여자는 북한이 이겼습니다. 이때부터 스포츠에서도 남남북녀라는 인식이 어느 정도 심어진 것이지요. 특히 축구시합에서 남자는 남쪽이 많이 이기는 편이고 여자는 북한이 이기는 편이여서 더 굳어졌다고 보겠습니다.

 

현재 남북한 스포츠 수준은 어떤지, 남남북녀 현상은 여전한지요?

 

임채욱 선생: 종목에 따라 차이는 있습니다만 한국은 스포츠 수준이 세계적이지요. 작년에 열린 브라질 올림픽에서 한국은 8위였고 북한은 32위였지요. 북한은 참가선수가 31명밖에 안 되는데도 그런 성적을 거둔 것은 선수 204명을 참가시킨 한국에 비하면 잘 한 것이지요. 올해 2월에 있었던 삿보로 동계아시안 게임에서는 한국이 2위 북한이 5위를 했습니다. 북한은 과거 겨울스포츠를 잘했고 지금도 많이 장려하고 있는데도 이번에 성적이 나빠서 동메달 1개를 땄지요. 그래도 5위를 한 것은 겨울스포츠에 동남아 나라들이 거의 하지 않는 것 때문이지요. 스포츠 시합에서 남녀를 통털어 북한은 1970년대까지는 한국에 밀리지 않았다고 보겠는데 1980년대부터 아주 부진합니다. 그리고 남남북녀 현상은 딱 부러지게 나타나는 게 없습니다.

 

북한에서 열리는 국제대회도 있지요?

 

임채욱 선생: 많지요. 가장 큰 대회라고 할 수 있는 것이 1979년 4월인가 평양에서 열린 국제탁구대회인데 이 대회에 한국은 참가를 못 했습니다. 이 대회가 있기 두 달도 남지 않을 때 북한은 돌연히 남북한 단일팀을 만들어 출전하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남북한 대표가 판문점에서 만나서 4차례나 회의를 했지만 결렬되고 말았습니다. 이건 결국 평양에 태극기가 오르고 애국가가 울리는 것을 막자는 의도 때문이었지요. 이번에 평양 김일성 경기장에서 시합에 앞서 태극기가 올라가고 애국가가 울린 것은 의미가 크죠. 북한에서는 올해 이미 열린 여자 아시안 컵 축구대회 외에 4월에 만경대상 국제 마라톤 대회를 열고, 9월에 세계태권도 선수권대회, 10월에는 세계청년 유도대회가 열릴 예정입니다.

 

이번 평양축구시합에서 한국응원단은 못 갔고 응원도 일방적이라 했는데 강릉 아이스하키 시합 때는 북한응원을 하는 관중도 있었다고 하지요.

 

임채욱 선생: 네. 많은 관중들이 한반도기를 들고 동포의 정으로 북한 아이스하키 선수들을 응원했다지요. 응원가도 부르고 아리랑도 부르면서 상당히 조직적으로 했다는데 이번 평양 축구시합 때 북한이 그렇게 하기 어려운 점이 있지요. 친선경기가 아니라 경기성적에 따라 한 팀만이 아시안게임 본선에 나갈 수 있으니까 응원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재일본 조선인연합회 기관지인 조선신보는 북한체육관계자 말을 인용해서 남쪽 응원단도 받아들일 수 있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그것을 어렵게 하는 조건이 많았지요. 끝으로 한마디 하면, 요즘 북한에선 여자들이 장마당에 나가서 생활비를 벌고 있기에 북한을 흔들고 있는 것은 여자라는 말도 한답니다. 생활력이 억척같고 북한 변화를 남자들보다 앞서서 이끈다는데 가정에서는 아주 순종적이라고 하지요. 이런 건 다른 의미의 남남북녀인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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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박정환 9단이 지난달 23일 일본 오사카 일본기원 관서총본부에서 열린 월드바둑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박정환 9단은 중국·일본 정상의 기사와 인공지능(AI) 딥젠고까지 누르고 세계대회 타이틀을 따냈다.
한국의 박정환 9단이 지난달 23일 일본 오사카 일본기원 관서총본부에서 열린 월드바둑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박정환 9단은 중국·일본 정상의 기사와 인공지능(AI) 딥젠고까지 누르고 세계대회 타이틀을 따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1989년에 조선 바둑협회가 세워지고 2년 뒤에는 평양 바둑원이 설립되면서 바둑을 두는 인구도 늘어나서 지금은 한 3만 명 가량이 된다고 합니다.

지난달 3월에는 컴퓨터 바둑대회도 열리고, 인공지능 바둑과 인간바둑이 함께 시합도 했습니다. 그래서 통일문화산책 오늘은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이들 바둑대회 이야기와 아울러 남북한 바둑 이야기로 함께 합니다.

임채욱 선생: 인류 최초로 사람과 인공지능 바둑 알파고가 대결한 것이 작년 3월 말, 1년이 넘었군요. 그 감동이 아직 약간은 남아있는 가운데 지난달 일본에서는 인간과 인공지능이 함께 출전한 시합이 열렸습니다. 작년에 인공지능 바둑인 알파고가 한국의 이세돌 9단을 이겨서 파문이 일기도 했는데, 이번에는 알파고 같은 인공지능 바둑을 한국, 일본, 중국이 다 만들어서 출전했고 또 이들 인공지능 바둑과 사람이 시합도 했지요.

한국, 일본, 중국이 다 인공지능 바둑을 만들었다고요?

임채욱 선생: 일본 도쿄에서 열린(3. 18~19) 세계 컴퓨터 바둑대회에서 한국, 일본, 중국이 다 인공지능바둑을 출전시켰지요. 한국은 ‘돌바람’이란 인공지능 바둑을 출전시켰고, 일본은 ‘딥젠고(DeepZenGo)’를 출전시키고, 중국은 ‘줴이(絶藝)’라는 이름의 인공지능바둑을 내났어요. 결과는 중국 줴이가 1위, 일본 딥젠고가 2위였으며, 한국 돌바람은 8강전에서 탈락했다고 합니다. 중국 줴이가 제일 나았고, 한국 ‘돌바람’이 제일 끝이었지요.

사람과 인공지능바둑 시합은 어떻게 된 것입니까?

임채욱 선생: 인공지능끼리의 바둑대회가 끝난 뒤 3월 21일부터는 ‘월드바둑챔피언십’이란 이름으로 일본 오사카에서 인공지능바둑과 사람이 함께 출전한 대회가 열렸습니다. 이제 말한 컴퓨터바둑대회에 나왔던 일본 딥젠고가 여기에 출전했는데 사람은 일본의 이야마 9단, 중국의 미위팅 9단, 한국의 박정환 9단이였습니다. 이 대회에서 한국 박정환 9단은 일본 이야마 9단, 인공지능 딥젠고 그리고 중국 미위팅 9단에게도 이겨서 우승을 차지했어요. 2위는 중국 미위팅, 3위는 딥젠고, 4위는 일본 이야마 9단이었습니다. 하나 특기할 것은 3위를 한 딥젠고도 사람처럼 상금을 받았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번에 사람 1위인 중국 기사 커제와 인공지능 1위인 알파고는 참가하지 않았다는 아쉬움이 있는 대회였답니다.

그럼 앞으로는 인공지능과 사람이 시합하는 바둑대회도 자주 볼 수 있겠네요. 앞으로 바둑의 미래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임채욱 선생: 그럴 것 같습니다. 인공지능바둑은 원래 사람을 돕기 위해 생겨난 것인데, 인공지능 바둑은 판 전체를 보면서 효율을 중시해서 사람을 이기고 있는데, 앞으로 사람이 인공지능바둑을 이길 수 있을런지는 아직 알 수 없다고 하고 있지요.

남북한 바둑을 한 번 보지요. 북한에서도 인공지능 바둑을 개발한 일이 있다고 들었는데요.

임채욱 선생: 네. 북한은 ‘은별’이라는 이름의 바둑프로그램을 1997년에 개발했는데 이것으로 이듬해 세계컴퓨터바둑대회에서 우승을 했습니다. 이후 여러 차례 우승을 했습니다. 은별 외에도 다른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국제대회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바둑을 뒤늦게 시작한 것치고는 발전 속도가 아주 빠르다고 하겠습니다.

북한의 바둑계 현황은 어떻습니까?

임채욱 선생: 아시다시피 북한은 장기는 장려해도 바둑은 장려하지 않았지요. 바둑은 양반들이 한가롭게 하던 놀이라는 인식이 있어서 기피되던 오락이었지요. 그러다가 1989년에 조선바둑협회가 세워지고, 2년 뒤에는 평양바둑원이 설립되면서 바둑을 두는 인구도 늘어나서 지금은 한 3만명 가량이 된다고 합니다. 1993년 이후부터 시도별 지방에도 바둑협회가 조직되고 1995년부터는 전문기사에 해당하는 ‘완전선수제’가 실시되고 있습니다. 아마추어 바둑은 바둑애호가경기라는 이름으로 대회가 열리는데 한 번에 200 여 명씩 참가합니다. 선수들 기량도 있어서 국제바둑대회에 입상도 하는데 1992년 국제아마튜어바둑대회에서는 7살된 어린선수가 입선까지 했다고 떠들썩했지요. 어린이에 대한 바둑교육도 영재교육 차원에서 적극 권장되고 있는데 어릴 때 중국으로 유학을 보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각 지역에 있는 학생소년궁전 같은 곳에서는 바둑소조가 있어서 바둑을 둘 기회를 제공하고 있지요. 앞으로 그 발전모습이 드러나겠지요.

한국의 바둑인구는 몇 백 만 명이 됩니까?

임채욱 선생: 천만 명에 가까운 한 900만명은 된다고도 하고 10급 이상되는 사람만 640만명이라고도 합니다. 유단자는 14만명 가량 된다니 바둑인구가 적은 것이 아니지요. 한 통계에 따르면 세계바둑인구가 4200여만명이라 합니다. 중국이 2500만명을 차지하고 한국, 일본, 대만 순으로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국은 바둑인구가 자꾸 줄어들어서 ‘바둑진흥법’ 같은 것을 만들어서 국회에 내놓은 상태이기도 합니다. 바둑계를 대표하는 국회의원도 있습니다만 바둑이 중국과 일본에 밀리고 있는 상태입니다.

남북한이 바둑경기를 겨뤄 본 일도 있습니까? 바둑교류는 쉽게 될 것도 같은데요?

임채욱 선생: 2000년대 들어와서 평양에서 열린 국제무도대회에서 대국한 일도 있고 한국 서중휘 프로는 2005년 북한의 7단인 조대원 기사와 겨뤘던 일도 있습니다. 2005년 한국 바둑계에선 북한에 바둑지원을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성사가 안됐습니다. 앞으로 체육교류차원에서 바둑교류가 이뤄지도록 노력해야겠지요.

앞으로 남북한의 바둑은 어떻게 발전할 것 같습니까?

임채욱 선생: 인공지능 바둑인 중국 줴이, 일본의 딥젠고에 못 미쳤지만 한국의 돌바람도 2015년에는 국제대회에서 우승한 기록도 있습니다. 이번에 성적이 나쁜 건 경기침체에 따라 기업의 지원을 충분하게 받지 못했던 것에 연유할 것입니다. 북한도 ‘은별’, ‘은바둑’ 이후 특별히 두각을 보이지 않는데 당적인 지원이 있어야 할 것 같군요. 바둑은 장기와 달리 평등한 관계를 지향하는 게임입니다. 장기알은 지위와 역할, 그리고 가는 길이 정해져 있지만 바둑돌은 평등한 관계 속에서 공동체의 집을 짓는 것이라서 민주적 논리가 적용되는 게임이라 하겠습니다. 북한도 바둑을 통해서 민주사회로 나가는 평등한 공동체 의식을 기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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