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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문화산책

통일문화산책(민족항일기 시인들의 새해 발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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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북한에서 작가, 예술인들은 ‘당의 영원한 동행자’로 ‘당과 운명을 같이하는 혁명가’여야 합니다.

연말연시에는 세계 어느 곳이나 행사가 많습니다. 한 해를 보내는 음악회도 있고 새해를 맞는 축하음악회도 있습니다. 작년 연말 뉴욕 타임스퀘어 광장에서 있었던 송년음악회에서 한국의 방탄소년단은 150만명의 뉴욕시민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습니다. 새해에 비엔나에서 열리는 신년음악회가 또 전 세계에 울려 퍼졌지요. 뿐만 아니라 시인들의 새해를 축하 낭송회도 있습니다. 오늘은 2020년을 기리는 뜻에서 민족항일기 시인들 이야기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합니다.

임채욱 선생: 네, 좋은 말씀입니다. 새해 벽두에 왜 시를 말하는가 시인들을 불러내는가 하겠지만 사람이 말로써 할 수 있는 최고의 작품은 문학이고 문학 중에서는 시가 꽃이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말로써 이뤄진 갈등의 시간이 가고 새해에는 시적인 언어로 좋은 상상과 공감을 이끌어 낸다면 세상은 한 층 좋은 그림으로 다가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올해는 시인 이상이 태어난 110년이 되는 해라서 남북한 시단에선 그를 조명하는 작품이나 행사도 있겠군요?

임채욱 선생: 그럴 겁니다. 한국에서는 작년부터 이상 관련 연구서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상문학은 대체로 자연과의 관계보다 도시공간에서 활동하면서도 사회현실로부터 소외된 지식인으로 자리매김 되는 편입니다.(권영민 이상작품해설) 뭣보다 이상은 난해한 시를 쓴 시인입니다. 그의 시를 이해한다는 것은 큰 숙제를 하는 게 될 것입니다. 누구는 말하길 이상은 우리나라 ‘문학의 영원한 수수께끼’(박해현)라고 하더군요. 그는 우리말을 여러 형태로 실험도 해보는 시를 짓기도 했지요. 우리말에서 기능어, 조직어, 구성어, 사색어가 한글로 어떻게 표현되는가를 찾으려는 시도였다고 하지요. 시인 이상에 대한 수수께끼를 풀기위해서도 그를 조명하는 여러 행사가 열릴 것입니다.

북한에서도 이상에 대한 기념행사가 있을지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임채욱 선생: 북한에서는 있기 어려울 것입니다. 왜냐하면 시인 이상을 좋은 방향으로 평가하지를 않습니다. 그의 작품세계를 두고 시나 소설 할 것 없이 “생활의 진실을 떠나 정상적인 사고의 한계를 벗어난 기형적인 것으로 특징지워진다”고 말합니다. 한마디로 퇴폐적인 부르죠아 문학조류를 받아들이고 유포시키는데 영향을 미친 시인으로 평가되고 있지요. 방금 생활의 진실을 떠났다고 말했는데 북한 문학은 사실주의를 추구하기 때문에 이상 시인처럼 초현실주의적인 자의식이 묻어나는 작품세계를 받아들일 수 없지요. 사실주의란 것은 현실생활을 진실하게 반영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는 것 아닙니까.

한 시인에 대한 남북한 평가가 달라도 많이 다를 수 있군요. 북한에서 보는 시인은 어떤 사람입니까?

임채욱 선생: 북한에서 작가, 예술인들은 ‘당의 영원한 동행자’로 ‘당과 운명을 같이하는 혁명가’여야 합니다. 시인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야 합니다. 선대통치자 김정일이 한 말이 있습니다. “시인은 시대의 가수, 시대의 나팔수가 되어야 한다. 가슴에는 시대를 안고 몸부림치며 시대의 숨결과 호흡을 같이하기 위하여 아글타글 애쓰는 사람이라야 참다운 시인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정신세계를 기본적으로 가진 바탕위에 현실에 대한 정서적 체험을 서정적 묘사로 잘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당이 바라는 좋은 시인이 되는 것이지요. 쉽게 말해서 정서적 체험이나 예술적 기량이 필요한 것은 시인의 기본 조건이지만 정치적 안목도 가져야 하는 것으로 규정된다 하겠습니다.

이상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근대시기나 현대시인들에 대한 평가도 당연하게 다르겠군요.

임채욱 선생: 물론 다른 시인도 있고 그렇지 않는 시인도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이상화(1901~1943)나 이육사(1904~1944) 같은 시인들에 평가를 볼까요? 둘 다 남북한에서 애국시인이라고 보는데 북한에서는 이상화가 초기에 쓴 <나의 침실로>같은 시에 대해서는 현실도피적인 시라고 비판합니다. 이상화 시에 대한 평가는 1925년 프로레타리아 문학단체에 가담한 뒤에 쓴 작품들만 평가하지요. 한국에서는 <나의 침실로>를 생명의 강렬한 욕망을 나타낸 낭만주의적인 작품이라고 평가하는데 말입니다. 한국에서는 평가의 다양성을 볼 수 있다는 거지요. 이상화 시인의 다른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는 현실참여적인 성격을 드러낸 시라서 남북한에서 다 애국적인 형상으로 읽히고 있습니다.

이육사에 대한 남북한의 평가도 어떻게 다른지 한 번 볼까요?

임채욱 선생: 시인 이육사는 항일 애국단체인 의열단에 가입하고 활동한 이력이 생생합니다. 그의 시는 <청포도>에서 보이는 고향을 잃은 비애감이나 유명한 시 <광야>에서 보이는 초인의 의지와 조국광복을 염원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몇 년 전 한국에서는 국사학을 연구하는 학자(도진순 교수)가 육사의 시를 새롭게 분석하는 책을 냈습니다. 시 <청포도>에서 청포도는 푸른색 포도가 아니라 풋포도라고 봤으며, 또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청포(靑袍)를 입고 찾아 온다고 했으니”라는 구절에서 청포를 지금까지 푸른 도포라고 봐왔는데 여기서의 청포는 중국에 망명한 우리 독립운동가들이 주로 입었던 좀 비천한 옷이었다는 것입니다. 이육사의 대표시 <광야>에서도 광야를 만주나 요동반도의 넓은 들판을 가리킨 것이라는 해석대신에 고향의 푸른 들판이 척박한 땅으로 바뀐 것을 상징했다고 봅니다. 한편 이육사에 대한 평가는 북한에서도 좋습니다. 그의 시작품에는 식민지 청년으로서의 민족적 울분과 항거가 구현돼 있다고 합니다. 한국과도 다르지 않습니다. 근대, 현대의 다른 시인들을 평가하는 것과는 다른 면이 있습니다.

북한에서 문학작품을 평가할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관점은 어떤 것입니까?

임채욱 선생: 생활에 대한 정서적 체험이 현실성이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현실과 동떨어진 관념은 자리할 수가 없습니다. 주체사실주의를 작품의 기본으로 하니까 “예술에서는 아름다운 자연도 인간과 생활을 뜻 깊게 보여주는데 작용할 때에만 의의 있는 것으로 된다”(김정일)고 보지요. 다시 말해서 “자연에 인간이 파묻히게 하거나 자연의 매력에 사로잡혀 인간을 잊어버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북한문단이 통일문학을 지향한다는 관점에서 바뀌어야 한다면 어떤 부분을 강조하고 싶습니까?

임채욱 선생: 한국에서는 월북했던 시인이라도 월북 이전 작품은 다 살리는데 어떤 시인의 작품은 북한에서 지은 시작품까지 실리고 있기도 합니다. 이용악(1914~1971)의 시가 그렇습니다. 먼저 그의 시 <그리움>을 읊어봅니다.

‘눈이 오는가/북쪽엔/함박눈 펑펑 쏟아지는가/험한 벼랑 굽이굽이/세월처럼 돌아 간 백무선/ 길고 긴 철길 우에/ (중략) 잉크병 얼어드는 이러한 밤에/ 어쩌자고 잠을 깨여/내내 그리운/그리운 그곳/북쪽엔/눈이 오는가/함박눈 펑펑 쏟아지는가 해방되던 해 겨울 서울에서 지은 시입니다. 이런 시를 짓던 그가 북쪽에 가서 지은 시귀는 ‘원쑤의 가슴팍에 땅크를 굴리자’ ‘당중앙을 사수하라’ ‘오직 수령의 두리에 뭉쳐’같은 시를 썼습니다. 이런 시를 쓰면서도 그의 영혼은 편안했을까요? 그러나 이런 시도 한국에서는 출판되고 있습니다. 북한도 이런 포용성과 탄력성을 가지기를 희망해 봅니다.

민족항일기의 우리 시인들은 힘 모아서 조국광복을 합창했습니다. 이들 중에는 남쪽에는 이름이 있는데 북쪽에는 이름조차 없는 시인도 많습니다. 모두가 그러했듯이 오늘날 남북한 시인들도 그때의 정신을 이어받아 통일염원을 합창했으면 합니다.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