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젠하우워 미 대통령 당선자와 이승만 한국 대통령 / 통한의 휴전 / 인원 장비의 전후 점검과 사단의 이동
내가 아이젠 하우워 미 대통령 당선자를 만나게 된 것은 1952년 12월 초로 알고 있으며 그 장소는 전선 미군 부대 사령부에서였다. 나는 그가 신경질적이라는 인상 을 받았다. 대통령 당선자로서 한국 휴전을 위한 공약 실천을 판단키 위한 방문이 었다. 후일 이승만 대통령은 한국의 통일 가능성을 보장 받지 못 하거나 북의 재침 방지의 보장 없는 휴전에는 반대한 것으로 안다. 휴전 직전 이승만 대통령을 납득 시키지 못한 미국은 이 대통령에 의해 거제도에 위치한 반공포료 27,000명을 미국과 상의 없이 석방 조치함으로 한미간의 긴장이 있었다. 급기야 Robertson 미 국무차관 보와 육군 참모총장인 Collins 대장이 한국에 급파되었다. 나는 Collins 대장을 위한 미 3사단 연병장에서의 열병식에도 참석하며 그후 동 사단 사령부 에서의 9군단 예하 사단장Briefing에도 참석해 간단한 영어 전황 보고를 한 기억이 있다. 당시 미 3사단 대대장으로 있던 아이젠하워 대통령 당선자의 아들의 신변 보호를 위해 그를 사단 정보 참모로 보직 전환을 시켰다는 말을 들었고 아이젠하우워 소령과 나는 1954년 미 참모지휘대학에서 동기생으로 공부하게 되었다. 나는 또 휘전 직전 이 대통령의 특사 신태영 원용덕 장군의 방문을 받고 한미간 휴전 문제에 대한 대립으 로 고문단의 경계를 의식했던 기억이 있다. 불행중 다행으로 한미간의 타협이 이루 어저 한국 군의 근대화와 경제 원조 및 후일 한미 동맹의 체결로 휴전이 성립 되게 되 었다.
통한의 휴전
드디어 1953년 7월27일 휴전이 성립되었다. 내가 군단장으로부터 받은 휴전 지시 는 7월 27일 정오 12시를 기해 사격을 포함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중지하라는 명령 이었다. 한국정부의 일시적인 휴전 반대 정책은미 군단에 소속된 한국 사단장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었다. 통일 되지 못하며 남침과 막대한 군과 민의 인명과 재산 피해를 초래케한 북의 남침을 응징 못하였으나 부하들의 희생을 막을 수 있는 기회 이기도 해 착잡한 심경을 표현키 어려웠다. 나는 군단 명령 중 사격중지 명령을 오전 11시로 단겨 수정해 내렸다. 이제는 유사시를 위해 비축할 필요가 없는 탄약이니 전부 사용해 적을 응징하는 포격을 가하도록 하였다. 적으로부터의 반응은 별로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해서 휴전날은 지나갔으며 휴전 수일 후 방탕 죳기 를 입고 맥마산정에 올라가 보았다. 아군 진지 전방에서 나려다 보이는 골짜기를 관측해 보았으나 아무것도 보이지 아니하였다. 휴전 후의 사단은 관급되는 세멘트와 목재를 이용해 휴전선 2KM 남방 비 무장 지대 후방 능선 을 따라3선의 진지를 구축 하는 일이었다. 이를 위한 진지 시찰이 따랐다.
인원 장비의 전후 점검과 사단의 이동
진지를 구축하는 동안 내가 신경을 쓴 일은 사단의 인원과 장비를 점검 하는 일이었 다. 전쟁중에는 정확한 인원과 장비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차량 장비및 보급품들이 암시장에 나돈다는 말도 있었다. 휴전과 더불어 인원 장비와 보급품의 손실을 위장시킬 수 있는 길은 없다고 생각했다. 모처럼의 정직한 사단으로 출발할 수 있는 기회라 생각했다. 손실의 정직한 보고를 위해서는 손실의 원인이 추궁되거나 처벌 이 가해지지 아니한다는 것이 중요했다. 육군 본부에 가서 군수 관계자들과 상의를 해 보았다. 당시의 군수국장은 백선진 준장으로 숙의한 끝에 오히려 격려를 받게 되었다. 군사 고문단과 의논을 해 보았다. 그들은 무조건적 손실 인정은 어렵다는 태도이었다. 나는 모처럼의 한국 군의 정직을 위한 시도를 군사 고문단이 반대한다 는 보고를 상부에 제출하겠다 협박을 했다. 2주간의 시간 여유를 요구하여 왔다. 2 주후 고문단은 동의를 해 주었다. 고문 단장과 상의를 해본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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