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희 씨가 6.25 동란때 찍은 사진.
사진제공-강석희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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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발발 69년을 맞아 참전용사인 뉴욕 동포 강석희 씨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며, 자신은 1951년에 중공군과 백병전 때 수류탄 파편을 맞았으며 지금도 온몸에 박혀 있어 고통스럽다고 자유아시아방송과 회견에서 밝혔습니다. 젊은 후세들에게 나라를 튼튼히 자유의 나라로 잘 지켜주기를 당부하기도 했습니다.
강석희 씨는 한국 전쟁 당시 전투수행 중 부상당해 전역했으며, 그는 625 전쟁 혼란기에 서울 유엔방송의 라디오 방송요원으로 활동했는가 하면, 1970년 미국 뉴욕에 이민와 미국 ABC 방송에 근무하면서 월남전, 북한이 저지른 버마 아웅 산 폭파사건 같은 굵직굵직한 뉴스를 담당했습니다. 그리고 1988년에는 미국 NBC 방송에 채용되어 1988년 하계 서울 올림픽의 마라톤과 체조경기를 전 세계 수십억 시청자에게 전하기도 한 자랑스러운 한국인 이기도 합니다.
목요대담 오늘은 뉴욕 동포 강석희 씨가 겪은 6.25 이야기로 함께합니다.
금년이 6.25전쟁 발발 69년이 됩니다. 강석희 선생께서 겪으신 6.25 동족상잔의 비극 회고해 주시지요.
: 한국전쟁은 한국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사건으로 기록되는 동란인데, 김일성이 전쟁을 일으켜서 수백만의 사상자를 내고 온 나라를 그냥 잿더미로 만든 동족상잔의 비극 사건이 일어난 지 벌써 69년이에요. 그래 우리 주변의 노인네들이 다 90인데. 거진, 넘었거나……근데, 저로서는 68년 전인데 1951년에 중공군과 백병전했는데 그냥 총탄과 포탄이 비 오듯 쏟아지는 아수라장 속에서 적이 던진 수류탄 파편에 맞아 상반신이 다 쇳조각이 박혔어요. 그러고 눈 하나가 실명이 됐다고요. 그리니까 지금 68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마는 지금도 내 몸에는 쇳조각이 박혀서 몸이 쑤시고 아프게 하므로 매년 6.25가 되면 더 쑤시고 그런 상처가 되살아나지요. 특히 그때 동네 친구들, 아주 얌전한 양반집 도령님 같은 친구들이 같이 전쟁에 나가서 돌아오지 못했어요. 그래서 친한 친구들 생각도 나고요.
미국에서는 참전용사들 환대하는 모습이 참 아름답고, 최근에 한국전쟁 참전자의 장례식장에 수천 명 주민들이 참가했다고요.
: 얼마 전 미국 텔레비전에서 방송됐는데, 미국 오하이오 주에서 지난달이지요. 작은 도시에서 90세 노인의 성대한 장례식이 있었습니다. 이 노인은 다른 주에 딸 하나만 둔 외로운 사람이었는데, 장례식을 치르는 회사에서 이 사람이 한국전쟁에 참전한 영웅이라는 것을 알고서 그 작은 도시 사람들에게 장례식에 참석해 달라고 했더니 놀랍게도 장례식장에 수천 명이 모였어요. 그리고 재향군인들, 학생들, 악대까지 동원되어서 아주 성대하게 장례를 치렀습니다. 미국인들은 자기 나라를 위해서 전쟁에 참전하고 목숨을 잃은 사람들에게는 경의를 표하고 참 극진히 추모하면서 대접을 하는 걸 보면 참 우리 대한민국의 현실을 볼 때 과연 이 우리 참전 노인들을 어떻게 대접하고 있나 참 어떤 때는 서글픈 생각도 나요.
6.25전쟁에 참가한 노병으로서 철저한 국가 안보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 이제 너무 안보가 해이해져 엊그제 신문보도를 보니까 삼척에 북한 배 하나가 왔는데 언제 도착했는지도 모르고, 그렇게 다 대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으니 그 69년 전에 생각이 다시 나서, 그때도 대문을 활짝 열어나 가지고 그냥 준비도 하나도 안 하고 일선에 있는 장병을 여름 논에 모 심으러 보내 버리고 다 떠나서 수모(비극)를 당했지 않아요. 그것이 재현될까 봐 걱정이 많습니다. 지금 뭐 우리는 얼마 우리는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또 다시 6.25 같은 전쟁이 날까 걱정된다고 이야기해 줍니다.
: 요즘 한국의 정치 현실을 보면 적이 앞에 있는데도 서로 싸우고 쥐어뜯곤 하는데, 저 북한에서는 김정은 한 사람 잘살기 위해서, 집단의 김 씨 왕조의 욕심 때문에 우리가 비극인데, 그걸 직시하지 않고, 우리가 무슨 민족 화합을 하자고 하는데, 민족화합은 아무 문제가 없는 거에요. 단지 하나 김정은이가 문제지, 근데 현 정권이 어려운 시기에 현실을 직시하고 국가안보를 지키지 않으면 그동안에 애써 세워놓은 국가 기반을 송두리째 빼앗기고 나중에는 또다시 6.25때 집이 80% 불타버리고 거지꼴이 됐잖아요. 그러니까 다시 도로 그렇게 될까 봐 걱정이 태산 갔습니다.
지금도 한국 산야에는 12만 3천여 명의 젊은이들이 꽃도 피워보지 못하고 묻혀 있다며 안보에 더욱 힘써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 현 정권이 너무나 안보를 무시하고 (북한에 )퍼주기를 해서 사람들이 마약에 중독된 양 국가안보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모른다고요. 왜냐면 우리가 그때에 안보가 뭔지도 모르고 있다가 하루아침에 인민군들이 처내려 오니까 그 앞에서 다 포로가 되지 않으면 인민군에 징용 나가고 반 이상이 죽는 거니까 지금 현재도 한국 산야에는 12만 3천여 명이 6.25때 꽃도 피워보지 못하고 젊은 나이에 묻혀 있는 청년들이 있다는 걸을 잊지 마세요. 이것은 전쟁의 비극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지금 젊은 청년들, 그리고 안이한 생각에 빠진 사람들 경각심 가져야 해요. 자칫 잘못하다가는 6.25가 재 발발하면 큰일이라고요.
: 전세계 한국민에게 주는 충언입니다.
: 철저한 국가관이 있어야 해요. 나라가 없으면 나도 없다는 걸을 알아야 한다고요. 우리가 그 때에 자유가 얼마나 소중하다는 것, 나라가 있어야 하고, 자유가 있어야 하고, 그리고 자유가 있는 가운데 내 생명이 이어진다는 것, 그러니까 정의, 사회 정의를 위해서 아주 용감하게, 너무 비겁하게 나만 잘 사려는 그런 생각을 하지 말고 굳건한 국가관을 가지고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는 것, 자유가 없으면은 그거는.. 그야말로 김 씨 왕조 독재 아래 있는 북한 동포들을 해방해야 해요. 나만 잘살겠다는 것보다는 동포를 생각하는 그런 인간적 양심도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자유 민주주의를 지킵시다
목요대담 오늘은 뉴욕 동포 강석희 씨가 겪은 6.25 전쟁의 이야기로 함께 했습니다. 지금까지 인터뷰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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