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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제비 출신 탈북 청년을 만나다

워싱턴-이현기 leeh@rfa.org
2017-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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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현학교 학생들과 브니엘고등학교 학생들이 파주시 도라전망대에서 개성시를 바라보고 있다.
장대현학교 학생들과 브니엘고등학교 학생들이 파주시 도라전망대에서 개성시를 바라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꽃제비 출신 심 모 군, 올해18살로 남한에서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입니다. 심 군은 탈북한 어머니를 찾으러 2015년에 중국으로 탈북해 2016년에 한국으로 왔고 한국에서 어머니를 찾았으며, 인터넷 등을 접하며 미국이란 나라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어 잠시 방문하게 됐다고 자유아시아방송과 회견에서 밝혔습니다. 심 군은 열심히 공부해 외교관이 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습니다.

목요대담 오늘은 꽃제비 출신 탈북자 심 모 군은 만나봅니다.

이렇게 미국에서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북한에서 몇 살까지 살았나요.

: 16살까지 살았어요.

북한에서 16살까지 살았다고 했는데 북한에서 살 때 이야기해줘요.

: 저는 북한에서 살 때 아빠가 돌아가시고, 엄마는 제가 어릴 때 탈북하셨고, 할머니랑 둘이서 살았는데 대개 어렵게 지냈어요.

어렵게 살았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

: 경제적으로 매우 곤란했고, 학교에서 내라는 것도 제대로 못 냈고, 먹고 싶은 것도 못 먹고 또 내가 하고 싶은 것도 못하고, 정말 여러 가지 경제적으로나 내가 하고 싶은, 자유라고 말하면 좋은지 모르지만 억압을 받으며 살아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북한 어느 지역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되는데요. 그 지역에서 태어나서 엄마 아빠와 살다가 다른 지역에 가 본 적이 있나요?

: 다른 지역에 가 본 적이 없습니다. 북한에서 다른 곳에 가려면 증명서가 있어야 되기 때문에 증명서 발급부터 여러 가지 절차가 많아서 다른 곳에 가려면 힘들거든요. 그래서 다른 곳에 가본 적이 없습니다.

북한에서 어렵다 어렵다 말했는데 먹는 것에 관해 이야기 해줘요.

: 먹는 것은 홀로 계시던 할머니가 어렵게 어렵게 번 돈으로 생활하며 살았어요. 지금도 그때의 할머니 모습이 가슴 아픈 모습으로 남는 것 같습니다.

할머니가 어렵게 일했다고 했는데 어떤 일을 하셨나요.

: 그러니까 단묵, 먹는 음식을 만들어서 시장에 나가 팔아 돈을 벌었는데 번 돈이 너무 적어서, 할머니 혼자 하시는 거니까? 수입이 대개 적고 나이가 많으시니까? 힘들어하셨습니다.

북한에서 친구들과 함께했던 이야기 해줘요.

: 친구들은 너무 친절하고 좋았지요. 또 때로는 제가 밥을 못 먹고 다닐 때가 있으면 친구가 자기 집으로 가서 먹자! 라고 말 하기도 하고, 친구들 대개 좋았어요. 좋은 친구들이었어요.

남한에 와 북한의 친구들 보고 싶고 안부도 전하고 싶을 텐데 한마디 해 줄래요.

: 친구들아! 내가 남한에 왔는데, 내가 북한에서 생각하던 남한이 아니고 너무 경쟁이 치열하고 힘든데 남한은 내가 잘하면 잘하는 것만큼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나라고, 너무나 가능성이 있어서 좋은 것 같아. 친구들아 사랑해! 보고 싶어.

남한에 와 느낀 이야기가 있다면

: 제가 온 지는 한 8개월 정도밖에 안 됐고요. 제가 와서 느낀 점은 북한에서 내가 생각했던 그런 천국 같은 한국이 아니다 그런 걸 느꼈어요. 경쟁이 치열하고 어딜 가나 내가 열심히 하고 무언가 하려면, 하려고 하면 살 수 있는 곳이다. 내가 남보다 우월하면 성공할 수 있다. 그런 가능성이 있는 나라라고 느꼈습니다.

지금은 고등학교 학생인데 앞으로 남한에서 잘 성장하기 위해 어떤 다짐이 있는지

: 한국에서 잘 살려면 일단은 공부를 잘해야 되고, 공부를 잘하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공부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합니다.

혹시 북한에 계신 할머니 지금도 살아 계실 텐데.

: 할머니는 제가 없어졌을 당시에는 저를 많이 찾고 괴로워하셨겠죠. 아이를 잃어버렸다고 그런데 저는 한국에 와서 열심히 생활하고 있어요.

남한에 와 공부하기 힘드나요.

: 공부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요. 북한에서 배웠던 공부랑 한국에서 배우는 것이 달라서요.

북한에서는 어떤 과목을 공부했고 남한에서는 어떤 과목을 공부 하나요. 공부의 차이점 이야기해 주세요.

: 북한에서 공부하는 것은 남한서 공부하는 것은 비슷한데 영어 과목이 다르고요. 그리고 국어가 아주 달라요. 그래서 북한에서는 영국식 영어를 가르쳐주고. 한국에서는 미국식 영어를 가르쳐 주니까 많이 차이점이 나거든요. 그래서 영어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국어가 다르니까 제가 이해를 못 하는 것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것 같습니다.

미국에 이렇게 오게 됐는데 미국에서 느낀 점이 있다면

: 미국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강대국이구나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북한에서 미국이란 나라를 어떻게 배웠나요.

: 북한에서는 미국이라는 나라를 미 제국주의라고 하면서 한 하늘에 이고 살 수 없는 철천지원수라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실지 미국에 와서 보니까 어때요.

: 자유가 한국보다 더 많은 것 같고요. 대신 또 자유가 많은 것에 비해서 개인이 책임져야 할 부분들이 많고 한국보다 더 법이 엄한 법치국가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 고등학교 졸업하고 더 큰 꿈을 키워나가기 위해 어떤 과목 전공을 하고 싶은지

: 대학에 간다면 국가와 국가 사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외교관이나 아니면 범죄자들을 잡아내고 재판을 하는 검사나 판사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북한에 있을 때 엄마와 헤어져 사는 동안 참 외로웠겠는데 엄마 보고 싶었던 이야기도 해 주세요.

: 제가 북한에 있을 때 어렵고 힘들 때면 엄마 생각이 나고 또 엄마가 보고 싶어서 눈물도 많이 흘렸어요. 탈북하고 엄마를 만나니까 너무너무 기뻤고요. 어릴 때 누리지 못한 엄마 사랑을 받고 있어서 행복한 것 같아요.

북한에 지금도 어려움에 처한 친구나 이웃들에게 한마디 할래요.

: 북한에 있는 나와 같은 친구들은 착하고 똑똑하고 큰일을 할 수 있는 인재들입니다. 그러니까 한반도 조선에서 통일을 기다리고, 아직 통일은 안 됐지만, 통일될 날을 기다리며 열심히 살고 더 공부를 열심히 해서 통일된 한국에서 쓸모 있는 미래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목요대담 오늘은 꽃제비 출신 탈북자 심 모 군을 만나 봤습니다. 지금까지 인터뷰에 RFA 이현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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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문경제개발구 안에 있는 조선공업원(북한공단)에서 일하는 북한 여성 근로자들이 점심식사를 마치고 일터로 돌아가고 있다.
도문경제개발구 안에 있는 조선공업원(북한공단)에서 일하는 북한 여성 근로자들이 점심식사를 마치고 일터로 돌아가고 있다.
사진-(사)코리아선진화연대 제공

 

동남아 일원에서 노동자로 일하다 몇 해 전 남한으로 망명한 심 모 씨는 북한 해외 노동자는 해외에서도 철통같은 감시로 탈출하기가 어렵다고 자유아시아방송과 회견에서 밝혔습니다. 특히 해외 노동자는 북한과 달리 1년 12달 쉬는 날이 거의 없고, 하루 12시간의 노예와 같이 일하지만 받는 돈은 1달에 10여 달러 그러나 그것마저도 이것저것 제하면 1년에 1만여 달러 정도 받는다면서 국제사회가 나서서 북한인민들 노예 생활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 목요대담 오늘도 동남아 일원서 일하다 탈북한 심 모 씨의 증언 함께 듣습니다

 

임금은 미국 돈인 달러로 받습니까? 아니면 북한 돈으로 받습니까?

 

: 말레이시아 경우 말레이시아 화폐인 링깃으로 줘요. 북한으로 들어갈 때 달러로 교환해 주거든요. 링깃으로는 북한에서 쓸 수가 없으니까 달러로 환산해 주는 거지요. 3년 일했다면 회사에서 관리해 주다가 3년 치를 관리자들이 계산해 주는 거지요.

 

북한의 해외 노동자로서 쉬는 날은 정해져 있습니까? 그리고 북한 노동자에게 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해 주시지요.

 

: 정확히 언제 쉰다는 것은 없어요. 일하는 나라에서 쉬라는 날짜에 맞춰야 하거든요. 우리가 쉬겠다고 하면 안 되니까요. 북한 큰 명절에도 못 쉬어요. 외국 회사에서는 북한 명절과 관계가 없으니까 회사에서는 공사 기일을 빨리 마치려면 끝날 때까지 일해야 되니까 쉬는 날이 거의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전 세계 북한 노동자에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우리 노동자들이 각성해서 정신 차리고 북한 정부와 싸우든지, 대화 투쟁을 해서 돈을 많이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해외 노동자들 감시도 받습니까?

 

: 탈출하기는 힘든 조건이에요. 감시를 너무 잘하기 때문에 예를 들어 한 직장에 30명이면 직장장이 있고 이외 두세 명이 더 감시하고 있거든요. 직장장 자체도 감시하고요. 그리고 매주 토요일마다 체크하고 생활 총화를 하기 때문에 빠져나오기 참 어려워요. 나가서 일하는 경우 몇 명 이 조가 되어 나가 일을 하지만, 그중에 한 명이 감시를 하거든요. 그래 서로 사람들이 마음에 맞아야 되는데 마음이 맞기가 힘들어요. 왜 서로 의심을 하잖아요. 이 사람에게 말했다가 위에 가서 말하지 않을까 그래 서로 서로 감시를 하다 보니까 탈출할 생각을 할 수가 없게 되어 있는 거에요. 감시라는 게 북한에서 왜 만들었는지 이젠 알 것 같아요. 서로서로 감시하게 해서 못나가게, 서로 의심하며 믿지 못하니까 자기 속을 털어 놀 수 없잖아요. 안타깝습니다. 철창 없는 감옥과 같지요.

 

심 씨가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입니까?

 

: 앞으로 국제사회에 북한 근로자들의 참혹한 상황을 알리고 북한의 잘못된 것을 바꿀 수 있도록 노력을 하겠습니다.

 

UN 등 국제사회가 할 일이 있다면은요.

 

: 북한 해외노동자들 인권개선에 위해 고용하는 나라가 나서기는 어려울 것 같고요. 미국,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북한 해외노동자들 문제에 대해 이슈화 시키고 한쪽으로는 고용하는 나라에서 북한 인권 개선에 힘쓰도록 촉구하면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북한 해외 여성 노동자들은 어떻게 생활하고 있습니까?

 

: 정말 불쌍합니다. 여성 근로자라고 하면 식당에서 일 많이 하잖아요. 식당 아니면 간호사, 쿠웨이트 쪽에 나가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식당으로 나갑니다. 식당 경우 손님이 많으면 돈이 되지만, 손님이 없으면 돈 못 버는 날이 많잖아요. 그런데다 여자들은 젊은 20대 인데 그들도 외국에 나간다고 조사해서 성분이 좋은 사람 내 보내는데, 이 사람들 돈 벌려고 나와 보니까 자기 생각대로 안 되어요. 특히 여자들은 여성들로서의 생활이 있잖아요. 그런데 그것도 감시해요. 못 하게끔 말이에요. 저녁에 일이 끝나고는 다 태워서 숙소까지 데려가고 데려가서는 저녁에 모여 앉아서 총화를 하고 여자들도 어려워요.

 

해외에서 현지 나라의 방송을 들으시고 어떤 것을 느끼십니까?

 

: 중요한 거는 이게 거짓말이로구나! 또 북한식으로 생각하면 말이 안되는구나! 하는 것을 많이 느끼지요. 진실인 줄 알면서도 그러나 북한에 가족이 있잖아요. 사람이 모성애가 있어서요. 알면서도 바뀌지 않는 것이 바로 모성애 인 것 같아요. 북한은 그걸 이용하는 거지요. 너희들 북한에 부모 있지, 대사도 자식을 나두고 나가도록 하잖아요. 그 혈연관계를 이용하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는 거지요.

 

김정남 암살 사건 소식을 들으시고 어떤 생각 하셨어요.

 

: 제 생각에는 정말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고요. 그것도 공항에서 당했다고 하니까. 참 불쌍하구나! 김정은이 얼마나 무서웠으면 저렇게 죽일까, 생각하기조차 부끄럽습니다. 어떻게 저렇게 형을 죽일까 그것도 일반 사람이 아닌 형을 죽일까 자기가 얼마나 두려우면 죽일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정말 이건 말이 안 되는 데 그런 생각이 듭니다.

 

혹 노동 현장에서 고문하는 경우도 있습니까? 아파서 병원에 가는 것은요.

 

: 일과 관련해서는 고문당하는 경우는 없고요. 일하다 사고당하면 돈이 없어서 싸구려 병원에 가서 치료받는 일은 종 종 있습니다. 외국에서 고문은 할 수가 없기 때문에요. 중요한 것은 사람들 일 시키는 게 중요하지 고문시켜 일 안 시키면 돈이 적어지니까, 사고 났을 때 최대한 빨리 나아서 일하게끔 하는 것이 중요하잖아요.

 

노동자 선발은 어떻게 합니까?

 

: 각 도에서 오는 게 아니고 평양시에 있는 사람이 주로 나갑니다. 모든 기관들이 평양시에 있기 때문에요.

 

노동자로 있다 귀국하면 잘 사는 편입니까?

 

: 북한의 삶보다는 나아지지요. 그래도 돈을 좀 벌어서 들어가니까? 그래 사람들이 다 북한 내에 있어서는 그만큼의 돈도 못 버니까? 고생은 하지만 조금 삶이 나아지기 때문에 많이 나오려고 하지요.

 

자유아시아방송 목요대담 오늘도 동남아 일원서 일하다 탈북한 심 모 씨의 증언 함께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인터뷰와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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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봉제공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북한 노동자들.
몽골의 봉제공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북한 노동자들.
사진-북한인권정보센터 이승주 연구원 제공

 

동남아 일원에서 근로자로 일하다 몇 해 전 남한으로 망명한 심 모 씨는 북한 해외 노동자는 지옥과도 같은 감시와 통제 속에 삶의 질은 전 세계인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 속에 살고 있다고 자유아시아방송과 회견에서 밝혔습니다. 심 씨는 외국 나가서도 당 일꾼으로 생활총화에 참가해야 하고, 보위지도원 등 2중 삼중의 통제 속에 하루에 12시간 이상의 일해야 하는 참혹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증언했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 목요대담 오늘도 동남아 일원서 일하다 탈북한 심 모 씨의 증언 함께 듣겠습니다

 

지난 시간에 북한 해외노동자들 어렵게 생활하고 있다고 증언했는데 하루 보통 몇 시간 일 합니까?

 

: 최소한 12시간 이상은 일하거든요. 쉬는 날은 별로 없어요. 쉬는 날이 있다면, 북한에서 큰 명절이 있지만, 현지 나라에서는 저희 명절이 아니잖아요. 우리는 외국의 조건에 따라야 하거든요. 그런 북한명절에도 일 나가려면 나가고 저녁에 일 끝나고 들어와서는 대충 술이나 한잔 마시고 자는 식으로 생활을 하거든요.

 

귀국할 때 돈은 어느 정도 모아 가지고 갑니까?

 

: 생활을 잘 못 하면 도중에 1년 채우고 나가는 사람, 2년 채우고 나가는 사람, 사고 나서 나가는 사람, 이런 사람은 돈은 1달 100달러면 1200달러 정도, 어떤 사람은 그 정도도 못 받아 갑니다. 위에서 매달 실적을 따져서, 북한은 연대적 책임이 있잖아요. 혼자 못하면 전체 책임으로 연등분해서 여러 사람이 책임을 가하기 때문에 그나마도 떼 내는 돈이 있어요. 그러다 보니까 1년에 1100달러 2년 있다 가는 사람은 그나마도 돈 가지고 가는 사람은 다행인데, 러시아 등 어떤 지역 경우는 돈을 주지 않고 돈표라는 걸 주거든요. 돈표라는 것은 북한 외화 상점에 가서 물건으로 교환하는 표인데 그것도 제대로 바꾸지 못하는 상황이어서 참으로 어려운 상황입니다.

 

해외 노동자 생활 얼마나 하셨고, 해외에서 힘들었던 때가 있으셨을 텐데 몇 가지 예를 들어 주세요.

 

: 저는 한 10년 가까이 일을 했는데요. 정말 고통스런 일이 많아요. 우선 첫째는 북한 정부에서는 나가서 조선 민족의 존엄을 높이라고 하지만, 조선민족의 존엄을 높이려면 돈이 있어야 하는데 돈이 없어 일어난 일이 많아요. 현지의 슈퍼마켓에 가서 물건을 사는 데 어떤 사람은 도적질하다 경찰에 끌려가고, 돈이 없다 보니까? 사람은 견물생심이라고 눈에 보이는 것은 좋아 보이니까 돈이 없으니까 물건 훔치다 경찰에 끌려가면, 윗사람이 와서 해결하는 어쩔 수 없으니까요. 그런 일이 벌어져도 상부에 보고를 안 해요. 왜 그것은 자기들 망신이니까 세부적으로 따지면 일반사람들 정말 어렵게 사는데 간부들은 알면서도 무시하거든요. 또 북한 당국에 알려지게 되면 현지 간부들도 오래 못 가니까 그래 어떠하든 막아보려고 하지만, 그러다 보면 일반 서민들은 그 상황에서 먹고 살아야 하니까 도적질한다든지, 술 먹고 깽판 부린다든지, 정말 있을 수 없는 일들이 현장에서 많이 벌어지거든요. 중요한 것은 현장에 감독하는 간부들이 나쁜 사람들이지요.

 

해외 노동자로 일하면서 일하는 지역 도심 거리를 자유롭게 나가 본 적이 있는 지요.

 

: 나가도 혼자서 못 나가고 최소한 2명 이상 나가는데 거의 집단적으로 내 보내거든요. 집단적으로 나가서 구경도 하고, 그런데 차림세 보면 정말 초라하지요. 외국인들이 보면 북한사람이란 걸 알거든요. 옷차림도 보니까 거지처럼 보이고, 신사다운 행동이 없잖아요. 일하는 사람들은요. 신사답게 행동을 못해요. 나가면 좀 거칠지 않아요. 그러다 보니까 어떤 사람은 물건을 채서 도망치는 사람도 있고, 정말 이루 말할 수 없는 데 이건 북한당국이 알아야 돼요. 북한당국도 문제지만, 현지에서 통제하는 간부들도 북한 상부에서 요구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그래 총체적으로 북한당국이 문제인 거에요.

 

해외 노동자들 고통스럽게 사는 데에 대해 북한당국자들에게 주고 싶은 말은요.

 

: 아마 당국은 이런 내용들을 알면서도 모르는 체 할 것 같아요. 당국은 돈만 받으면 되니까 그래서 정말 인간이 아니다. 어떻게 돈을 위해서 자기 나라 사람들을 희생 시키고 이런 일을 하는지 인간성이 없다고 생각하고요. 두 번째로는 말로만 인간미 있게 대하라고 하지만, 하부 말단의 간부들도 스트레스를 받아요. 저 위로부터 욕을 먹으니까 또 아래로 연쇄 반응이 일어나니까 이거 참 어려운 상황이에요. 그래서 저는 북한 당국이 해외근로자들에게 충분한 보상도 해주고 그런 시스템으로 포상금도 주곤 해야 하는데, 그런 걸 안 하기 때문에 정말 어떻게 말하면 무례한 집단이지요. 돈을 위해서는 자기 나라 사람을 희생 시키는 그런 집단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해외에 나갈 때 봉급에 대한 계약 조건이 있습니까?

 

: 정확히 말하면 계약을 할 때 직종별로 틀리지 않아요. General worker(일반 노동자) 하고 덤프트럭 기사, 드라어버 등 특수직이 나라마다 기준이 틀리거든요. 말레이시아 같은 경우 기술이 있는 사람 경우1500에서 2000 달러 주고, 일반 노동자는 한 500-600달러로 급여가 다 다른데, 다 주는 게 아니고 기술직 경우 한 달에 120에서 140달러, 책임자가 200달러, 그 밑에 있는 당비서, 보위지도원 190달러 등 월급 책정이 되어 있어요. 당비서나 지배인은 일 안 하잖아요. 일도 안 하면서 그 돈 가져가거든요. 그 사람들은 그 돈으로 충분하지만 노동자에게서 돈을 착취해 갖고, 돈도 그 사람들이 관리하잖아요. 외국 회사와 북한 회사가 계약하니까 외국 회사에서는 돈을 개인에게 못 주도록 되어 있거든요. 남한은 그러하지 않는데 북한은 개인에게 직접 돈을 안주고 회사끼리 거래하니까 외국 회사는 얼마 받는지 모르지요. 북한 회사에서는 뗄 것 다 떼지요. 90% 정도 떼서 50%는 국가에 바치고, 나머지 40%는 유지비도 하고 외국에 살려면, 저희들 집에 살면 렌트비 유지비 생활비로 쓰는 거예요. 실지 돈은 노동자들이 다 벌어서 첫째는 국가가 떼어먹고, 또 관리자가 떼어먹고 이런 시스템이다 보니까 북한 노동자들은 노예나 같은 심정이지요.

 

자유아시아방송 목요대담 오늘은 동남아 일원서 일하다 탈북한 심 모 씨의 증언 함께 들었습니다. 다음 시간에 계속됩니다. 지금까지 인터뷰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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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벌이를 위해 러시아 연해주로 몰려든 북한 건설노동자들이 블라디보스토크 중심 레닌 거리의 한 상가 건물 보수 공사장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돈벌이를 위해 러시아 연해주로 몰려든 북한 건설노동자들이 블라디보스토크 중심 레닌 거리의 한 상가 건물 보수 공사장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동남아 일원에서 근로자로 일하다 몇 해 전 남한으로 망명한 심 모씨는 북한 해외 노동자는 지옥과도 같은 감시와 통제 속에 삶의 질은 전 세계인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 속에 살고 있다고 자유아시아방송과 회견에서 밝혔습니다. 심 씨는 외국 나가서도 당 일꾼으로 생활총화에 참가해야 하고, 보위지도원 등 2중 삼중의 통제 속에 하루에 12시간 이상의 일해야 하는 참혹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증언했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 목요대담 오늘은 동남아 일원서 일하다 탈북한 심 모 씨의 증언 함께 듣겠습니다.

 

북한의 해외 근로자들은 세계 어느 나라에 나가 있습니까?

 

: 북한 해외 근로자는 러시아, 중국, 방글라데시, 말레이시아, 쿠웨이트, 베트남, 인도네시아, 유럽에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북한에서 해외 근로자를 파견하는데 어떤 자격 조건이나 심사가 있습니까?

 

: 당연히 제한이 있지요. 나가기 전에 신원조회를 하지요. 6개월에서 8개월 정도 신분 확인을 하는 거에요. 이 사람이 어디서 태어났으며, 할아버지가 뭘 하고, 고조할아버지 뭘 했고 등 북한의 간부 과에서 개인 신원조회를 해요. 가기 전에 신원조회를 해서 성분이 나쁘면 그 사람은 제외해 버리고, 또 그 가족 중에 미 해명된 사람이 있으면 또 제외 해 버립니다.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이 사람은 해외에 보내도 좋겠다는 결론을 간부 과에서 평가를 해요. 나갈 사람에 대한 보증이지요. 간부 과에서 신원확인을 해서 외국에 나가도 정말 변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간부 과에서 증명해서 중앙당에 올리거든요. 그러면 중앙당에서 그 자료를 가지고 마지막 각 나라별로 나가는 데, 실례를 들면 말레이시아를 나간다 하면 발령장을 발부해 줘요. 중앙당에서 발령이 떨어지면 외무성에서 여권이 나오거든요. 여권을 가지고 또 외무 성가서 교육을 받아요. 각 나라에 대한 풍습이라든가, 그 나라는 어떤 나라이기 때문에 뭘 조심해야 한다. 이런 구체적인 것을 외무성에서 교육을 받고 마지막으로 보위부에서 교육을 받아요.  중요한 것은 보위부에서 교육을 받는 것은 나가서 우리가 사회주의 조국의 존엄을 철저히 지키고, 나가서 절대 정치적으로 말려들지 말고 나가서 우리 사회주의 조국의 위엄과 존엄을 보여줘야 한다는 교육을 해요. 교육을 받고 나서 외국에 나가는 거지요.

 

대체로 해외 파견 노동자들이 전 세계에 어느 정도 나가 있고 가장 많이 나가 있는 나라는요?

 

: 제가 알기로 정확한 숫자는 아니지만, 전 세계에 2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일 많이 나간 나라가 쿠웨이트, 러시아, 방글라데시, 아프리카 등입니다.

 

주로 해외에 파견된 노동자들 어떤 일을 합니까?

 

: 거의 건설을 많이 합니다. 정확히 따지면, 집 짓는 것, 길 만드는 것인데 거의 다 집 짓는 일을 많이 합니다. 주택 건설을 많이 하므로 북한의 각 기관마다, 즉 보건성, 체육성, 무역성, 기관마다 외화벌이를 해야 되기 때문에 외화벌이 기관마다 기술 인력들을 뽑아서 일할 현장에 맞는 인력을 뽑아서 외국에 내 보는 거지요.

 

해외에 파견돼서 어떻게 생활하는지 궁금한데요. 남한의 경우는 상당히 자유스럽게 자기 개인의 생활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만,

 

: 참 진짜 제 생각에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정말 힘들게 사는 것 맞습니다. 중요한 것은요. 외국 나가서도 통제받아야 되고, 당 일꾼으로 생활 총화에 참가해야 되고, 보위지도원한테 통제받아야 돼, 정말 2중 삼중으로 통제 받으면서 일은 일대로 해야 하고, 정말 힘들게 살고 있습니다. 실례를 들면, 말레이시아 경우에는 정말 일반 노동자에게 한 달에 주는 돈이, 나라별로 조금씩 차이가 있겠지만, 100달러 안팎이거든요. (한 달 월급이요.)물론 100달러 안팎이고 또 그다음 일하는 방식은, 그룹별로 2-3명내지 더 이상 그룹을 지어서 내 보내지요. 내보내면서 너희들 한 달에 몇 천 달러 들여놔라! 편의를 봐 주겠다 이런 방식도 있는데, 이런 일을 못 하는 사람은 회사에서 관리하고 조금 기술 있는 사람은 혼자는 안되니까? 2-3명씩 짝 지어서 내 보내서 한 달에 회사에 얼마 낼지 계획을 세워줘요. 계획을 못 달성하면 불러들이고, 계획 실행한 사람은 내 보내고 그런 식으로 착취하지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거의 90% 다 바치고, 본인에게 돌아오는 것은 10%도 안 된다는 것이지요.

 

총 봉급의 10분의 1도 안 되게 받는데,  북한 노동자들 어떻게 사는지요.

 

: 정말 정말 외국 나가서도 어렵게 삽니다. 쉽게 말하면, 북한에서 나올 때는 조선사람의 위신과 존엄을 높이라고 하는데 실제 나가면 존엄과 위신을 높이려면 돈을 풍족하게 써야 하는데 돈은 쓰지 말라고 하고 존엄과 위신 높이라 이거 참 말이 안 되는 현실이지만, 아 정말 힘들게 사는 것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돈이 없다 보니까? 좋은 집도 못 들어가고, 나라별로 틀리지만, 혼자서 개인 생활을 못하게 하잖아요. 여러 명이 무리 지어 살게 만들고 정말 정말 힘들게 살고 있습니다. 여러 명이 무리 지어 살면서 돈은 벌면 벌수록 바치고, 그리고 나머지는 월급인데 거의 다 못 벌지 않아요. 힘든 일은 강요하면서, 돈은 다 빨아가고, 위에 있는 사람은 좋아요. 그들은 일 안 하고 감시만 잘하면 되니까 그래 정말 우리 해외근로자들 정말 어렵게 살기 때문에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어렵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구체적으로 식사는 어떻게 하고 잠은 어떻게 자는 등

 

: 쉬게 말하면은요. 잠자리는 허허벌판에 합판 하나 깔아 놓고, 나무 기둥 세워 놓고 지붕은 슬레이트를 올려놓고 비 떨어지면 빗소리 들으면서 여러 명이 한방에서 살고, 밥은 자체로 해 먹으니까. 남자들끼리 돈이 적으니까 여러 명이 돈을 모아서 한 달 치 식량을 사다가 냉장고도 별로 못 써요. 냉장고가 있긴 있지만, 여러 명이 한 달치 먹으려면 양이 많아서 어떤 것은 (냉장고에 넣지 못해 부패한 것) 버리기도 하고요. 그래 먹는 것은 대충 먹는데, 사람들이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작은 봉급에서 쪼개서 사다 보니까 먹는 것 정말 어렵고, 일은 소같이 일하고 돈은 또 늦게 받고 계획을 못 하면 삭감하고 정말 힘들게 살고 있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 목요대담, 오늘은 동남아 일원에서 일하다 탈북한 심 모 씨의 증언이었습니다. 다음 시간에 심 모 씨 증언 계속 이어집니다. 지금까지 인터뷰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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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이현기 leeh@rfa.org
2017-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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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지하교인들이 성경을 읽고 있다.
북한의 지하교인들이 성경을 읽고 있다.
사진-'서울 USA’ 비디오 캡쳐

 

최근 미국 워싱턴 DC에서 전 세계에서 기독교인 600여 명이 한자리에 모여 각자 자신들의 나라에서 어떻게 기독교인들이 핍박 받는지에 대한 증언을 했으며, 앞으로 어떻게 선교할 것인가에 대한 의견 수렴을 했다고 이 모임에 참석한 탈북자 출신 김충성 목사와 주경배 선교사가 자유아시아방송과 회견에서 밝혔습니다. 이들은 북한에서 간부들이 RFA, 자유아시아방송 등 자유의 소리를 통해 변화 돼 가고 있으며, 중동의 봄이 이제는 올 때가 됐다고 말했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 목요대담 오늘도 핍박 받는 기독교인 모임에 참가한 탈북자들 만나봅니다.

 

핍박 받는 기독인들 모임에 참석한 주경배 선교사와 김충성 목사는 북한 간부들이 외부 방송을 가장 많이 듣기 때문에 그들에게 국제사회가 어떻게 북한을 지켜보고 있는지를 확실하게 알려 줘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주경배: 자기가 다음에 옮겨 디딜 발을 보고 있습니다. 간부들이 RFA를 다 듣고 있습니다. 중동의 봄이 이제는 올 때가 됐습니다.

 

김충성: 북한의 고위층이 외부 소식을 가장 먼저 듣습니다. 그 고위층에게 맞춤방송을 해야, 당신의 선택이 자녀들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당신이 잘못된 선택을 하면 북한 인민들뿐만 아니라 당신 자녀들에게도 재앙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해주고, 국제사회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메시지를 확실하게 해 줘야 합니다.

 

외국 기자들 북한 지하의 성도들 어떤 기도를 하는지를 물었습니다.

 

김충성: 북한 성도들은 이런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예수 믿는 자를 핍박하는 것 때문에 북한 땅에서 데려 가실 목숨이 더 있다면 예수 먼저 믿은 우리를 데려 가십요. 대신에 예수, ‘예’ 자도 들어보지 못한, 하나님의 ‘하’자도 듣지 못한 우리 부모형제들, 북한인민들에게 기회를 주셔서 저들이 다 예수 믿고, 복음 듣고, 그리고 천국 갈 기회를 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나는 죽고 하나님의 그들을 찾아가서 사람들을 살리는 그런 기도를 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하는 기도가 어느 곳에 있든지 주 예수와 함께하면 그 어디나 하늘나라라고 했던 찬양처럼 우리가 살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김충성 목사는 이미 복음 안에서는 통일이 됐다고 말합니다.

 

김충성: 이미 복음 안에서 주신 통일입니다. 눈에 보이는 통일이 아니에요. 삼팔선이 열리고 자유 왕래하는 통일은 안 믿는 사람들이 원하는 통일입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은 이미 북한 안에도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 복음으로 하나된 이미 이루신 통일안에서, 북한 안에 있는 우리 지하교회 성도들을 잘 도와서 그들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사랑이 북한 전역으로 퍼져 나갈 수 있도록 그리고 그 땅에서 예수 군대가 일어설 수 있도록 협력해 주시고 함께 기도해 주십요. 라는 메시지도 전했습니다.

 

외국 기자들이 북한에서 어떻게 복음을 전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김충성: 북한에서 복음 전하다 죽습니다. 그래서 당신 삶으로 보여 주세요. 한 번 안아주고 당신 눈빛으로 그리고 당신이 섬기는 그 섬김으로 해 주시고, 지금 북한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기독교다. 왜냐면 기독교가 들어가게 되면 강반석의 일가부터 시작해 기독교인이었다는 게 들키니까 성경에 있는 것처럼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했고, 빛이 들어가면 어둠이 물러가는 데 예수그리스도가 들어가게 되면, 빛 되신 예수가 들어가게 되면 북한이, 김정은 정권이 무너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계속해서 기독교인들을 잡고 있다고 했고,

 

외국 기자들 평양 과기대에 대해서도 물었습니다.

 

김충성: 평양 과기대는 매 건물마다 다 김일성 김정일의 초상화가 붙어 있다. 건물을 놓고 봤을 때는 거기는 우상 섬기는 곳이다. 그런데 제가 평양 과기대 이야기 하다 울컥해 울었어요. 말을 못하고 있으니까 왜 우느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그래서 평양 과기대 학생들과 평양 과기대에서 헌신하고 있는 교수님들 때문에 울었다. 그분들이 크리스천들인데 예수 믿으라고 말을 못 한다. 학생들에게 그러나 그분들의 삶을 보고 학생들은 예수를 알고 하나님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 학생들이 입으로 예수그리스도를 시인은 못 하지만, 그 마음속에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다고 얘기를 했고, 그리고 또 한가지 평양 과기대는 여학생이 없습니다. 남학생들만 있습니다. 남학생들이 있으니까 평양 과기대에 이제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당신이 크리스천이라면 기도해 보십요.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분명히 환상을 보여 준다고 했어요. 기도하면 그곳에서 어떤 역사가 일어나는지 분명히 보여 준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북한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고,

 

주 선교사의 증언 내용 함께 들어봅니다.

 

주경배: 저 같은 경우는 북한을 떠났지만 그리고 인권은 찾았지만, 가족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힘들었는데 예수를 만나고 진짜 자유를 찾았고, 가족을 데려오기 전에는 너무 힘들어서 그 좋은 음식도 입에 들어가지 않았는데, 예수를 만나고 자유를 찾고 해방이 되고 그리고 그 사랑을 아니까 고향 형제들에게 이걸 전해야 되겠다는 사명이 생겨서 다시 일어서서 그 땅에 복을 전하는 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전하고 있는 가를 들려 줬어요. 탈북민들에게는 북한 사람들이 남이 아니고 정말 가슴 아프게 떼어 놓고 온 자기 자식이고, 형제고 부모거든요. 그래서 그 형제들에게 다 연결하고 있으니까 이제는 북한 선교를 위해서, 북한 하면 핵무기 김씨 일가 이런 것 먼저 생각하지 말고, 북한 내에서 역사하시는 예수님, 고통 같이 하는 예수님 바라보면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 탈북자들은 다 연결이 되어 있거든요. 그래 탈북자를 통해서 돕자! 막연하게 북한 정부에 가서 어떻게 하거나, 어떤 방법을 찾지 말고, 선교사들 평양까지 안 가도 탈북민들 통하면 검증 강화할 필요가 없거든요. 자기 가족이니까요. 탈북민들 통해서 도와라, 탈북민들이 한국에 와서 예수 만나 사명자가 되어서 고향에 사랑으로 돕는 것을 다 사명을 갖고 왔으니까 탈북민들 통해서 하고, 현재 3만여 명이 왔으니까 3만 명이 다 가족에게다 복음 전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 여기 함께 기도하는 분도 좋고 우리도 살고 북한 주민도 사는 길이라고 간증했습니다.

 

주 선교사의 북한 한 가정 품기 운동 이야기도 들어봅니다.

 

주경배: 탈북자 중에는 태영호 공사, 김 씨 가족인 강명도 씨 그리고 저 시골 농부의 딸까지 어부의 아들까지 다 왔거든요. 각계각층에서요. 지역에서도 다 왔거든요. 그래서 우리는 지금 어떤 방법으로 하느냐면, 우리 가족 중에 누가 어디가 아프냐 한 사람 한 사람 적어 봤습니다. 아들, 딸, 아버지, 어머니, 형제, 친척, 친구, 이웃들, 직장동료, 선생, 선배 다 적어 봤습니다. 저희 가족만해도 부부간의 240명 가족이 있더라고요. 그래 다 카드를 가명으로 해 만들었습니다. 지역만 써서 기도하는 분에게 이 사람을 위해 기도해달라고, 이 사람이 당 간부일수도 있고, 어느 수용소 소장이기도 하고, 국경의 군인이기도 하고, 농부이기도 하고, 그게 사실이거든요. 이제 막연하게 하지 않고 이 사람을 놓고 기도해 이 사람이 변해 구원되면, 북한이 변한다. 그래 한 사람씩 입양해서 하루에 한 번씩이라도 이름을 불러 달라고,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라면서 ‘한 가정 품기 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주 선교사는 탈북민들이 북한 사람들을 먹여 살리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주경배: 고향을 품고 도와야 해요. 한국에서 평양까지 돈 가는 게 빠르면 10분에 송금이 됩니다. 시장에 신용이 형성되었거든요. 그래 탈북민들이 북한사람들 먹여 살리고 있습니다. 그래 제일 아픈 것, 아픈 상처를 들어내서 고을 도울 때 진짜 치유가 일어난단 말입니다. 그래 탈북자를 먼저 세워서 돕는 자들이 탈북자를 통해 북한 안에 한 가정을 품고, 연결돼서 매 가정마다 통일의 끈이 이어지도록 돕는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목요대담 오늘은 핍박 받는 기독교인 모임에 참가한 탈북자들 만나보았습니다. 지금까지 인터뷰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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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 워싱턴 DC에서 전 세계에서 핍박 받는 기독교인 600여 명이 한자리에 모여 각자 자신들의 나라에서 어떻게 기독교 인들이 핍박 받는지에 대한 증언을 했으며, 앞으로 어떻게 선교 할 것인가에 대한 의견 수렴을 했다고 이 모임에 참석한 탈북자 출신 김충성 목사와 주경배 선교사가 자유아시아방송과 회견에서 밝혔습니다. 북한에선 기독교인이 많아 지고 널리 전파 될 때 북한체제가 무너질 것을 북한 당국자들이 알기 때문에 가장 악독하게 탄압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편 주경배 선교사는 북한에서 RFA자유아시아방송을 듣고 탈북을 결심했다고 증언했습니다.

목요대담 오늘은 핍박 받는 기독교인 모임에 참가한 탈북자들을 만나봅니다.

김충성 목사께서 이번 모임에 참석해 느낀 점이 있으면 소개해 주세요.

김충성: 제일 핍박 받는 나라의 국기를 무대 중앙에다 설치를 했다는데, 거기에 북한국기가 있어요. 인공기를 봤을 때는 저걸 왜 거기에 놓았는지 내려라! 하고픈 마음이었는데, 알고 봤더니 가장 핍박 받는 나라를 거기에 올렸고, 맨 처음으로 북한 탈북민이 스피치를 했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찬양 사역자가 오셨어요. Amazing grace(놀라운 은총)을 연주하는 데 카메라를 비추는데 바로 뒤 인공기가 인접해 있는 거에요. 인공기를 보는데 아! 하나님. 북한이 보이는 거에요. 그 찬양을 들으면서 북한이 보이는 거에요.

주경배 선교사께서도 이번 모임에서 느낀 점이 있다면은요.

주경배: 저는 일단은 북한을 위해서 전 세계인이 모여서 함께 기도하고 있다는 게 감사하고 항상 감사하는 거지요. 그런데 확 가슴 치는 것은 아! 이 소식을 그대로 전해야겠다. 북한사람들에게는 자기를 위해서, 김일성 외에, 자기네를 위해서 진심으로 위해주는 사람도 있고, 마음이 있다는 것, 큰 힘이거든요. 그래서 그걸 전할 수 있다니까 우리 탈북자들이 전하는 것 보다 진짜 입니다. RFA가 나팔수이니까 큰 힘이 되는 거에요.

주 선교사는 북한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을 들었다고요.

주경배: 제가 아마 90년말부터 2000년대 초 고난의 행군이 지나면서 본격적으로 듣기 시작했는데 2000년대 초 중반에는 매일 듣다시피 하고, 그런데 그때 첫 기억나는 게 오래돼서 잘 기억은 안 나지만, 탈북민들이 쓴 책을 다 낭독하는 프로그램, 제일 기억에 남는 건 장길수 소년이 쓴 ‘눈물로 그린 무지개’, 이건 기억이 잊혀지지 않거든요. 그 다음에 강철환이 쓴 ‘수용소의 노래’, 이영복이 쓴 ‘나는 경호원이었다.’ 다 프로그램마다 특성이 있더라고요. 그리고 북한에 대해서 엘리트 층에 대해서 말해 줘도 잘 납득이 안됐는데 이한영이 쓴 ‘대동강 로얄 패밀리’ 낭독을 빠짐없이 듣던 생각이 나고 RFA가 일단 잘 들립니다.

김 목사께서도 북한에서 자유아시아방송 들으셨다고요. 어떤 내용이었습니까?

김충성 목사: 저도 들었어요. 자유아시아방송 이라면서 무얼 들었느냐 면, 농장에 비료 받으러 평양에 올라갔어요. 드라마로 만드셨더라고요. 비료 받으러 평양에 올라갔는데 양강도에서 온 도당책임비서하고 황해도에서 올라온 누군가하고 싸우는 거에요. 아니 우리 양강도는 동무네보다 우린 ‘도’란 말이에요. 우린 도인데 우린 왜 비료를 안주고, ‘시’에 비료를 주느냐! 하면서 비료 받는데 술 몇 박스 갔다 주며 로비 하는 그런 드라마를 들었는데 그걸 RFA에서 들었어요.

주 선교사께서 북한에서 자유아시아방송이 잘 들렸는지 설명해 주시지요.

주 선교사: 저는 함경북도 최 북단 해령 시라고 거기 산골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거기서 잘 들렸습니다. 그리고 뭘 들었느냐면 이진서입니다. 하는 거 생각나고, 탈북자들의 소식을 아주 구체적으로, 현실적으로 RFA가 들려주고 있더라고요. 방송(대북방송)들이 여러 특성들이 있는데 RFA는 현실적으로 상황을 신속하게 잘 반영해 주더라고요. 제가 알건 데는 탈북자들이 북한에서 라디오를 듣는 설문을 해보면 제일 많이 듣는 게 RFA입니다. 제일 잘 들리는 건 극동방송, VOA, RFA, KBS 2 라디오가 제가 사는 지역에서 잘 들리는 순서인데 대체로 주위 사람들 보니까 RFA이 잘 듣더란 말입니다.

주 선교사께서 탈북을 결심하게 된 어떤 계기가 있었으면 들려주세요.

주 선교사: 소식을 신속하게 빨리 전해주고, 그 소식 때문에 탈북을 결심했는데 방향을 모를 때 RFA 들으면서 탈북자 상황실태, 방향, 가령 어느 공관을 뛰어 들어갔다는 등 탈북자들 탈출과정의 소식들 들으면서, 어느 쪽으로 가야겠구나! 어떻게 해야겠구나! 두리 하나 선교회 천기원 목사라는 것도 기억하고, 저는 못 만났는데 어쩌든 방송을 통해 들은 상황을 생각하고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방향을 잡았어요. 여기 오니까 아는 게 많고, 보는 게 많으니까? 하고 싶은 것 하지! 북한은 오히려 순수합니다. 아무리 세뇌됐다고 해도 오직 한가지만 알고 그러니까 북한에서 ‘무식을 광명’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오직 한길 밖에 모르니까 곁을 볼 것 없고 욕심나는 것 없이 김 씨 일가 밑에서 오직 살아야겠다. ‘자유와 인권을 위하여’라고 하는 사람은 한 둘이 되겠지요. 사실은 단순한 이유로 국경을 넘는데, 나도 진짜 살아야겠다는 본성에 충실했다고 봐야지요. 오다 나니까 이렇게 왔습니다.

주 선교사께서 방송사에 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요.

주 선교사: 방송사에 가면 권하는 게 그겁니다. 북한 동포를 위해 방송하는 거 우선 감사 드리는 데 그 보이지 않는 곳에 자유의 소식을 전해 줘 감사 드리는데, 자유세계에선 가수나 탤런트면 무리 지어 쫓아 다니는데, 북한, 진짜 반응이 없는 곳 향해서 이렇게 묵묵히 방송해 주시고 헌신해 주시니까? 참 감사하고 북한에서 들을 때는 저 어마어마하게 생각하고 워싱턴에 있다니까 다 간첩이고 반동소굴 이렇게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와 보니까 동내 누나, 엄마, 형님들, 아저씨들 같은 분들이 이렇게 편하게 계시니까? 진짜 감사하고 편안합니다.

두 분께서는 북한 주민들 어떻게 방송 듣는지 설명해 주세요.

주, 김: 방송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들이 들을 수 있는 기재, 그 다음에 1회성으로 하지 말고 그걸 저축해서 USB 등에 담아서, 그 시간에 놓치면 다시 들을 기회가 없거든요. 북한에서는 다시 듣기가 안됩니다. 우리는 방송을, 라디오를 들은 게 아니라 온 몸으로 먹었습니다. 그게 빛이거든요. 그러니까? 그 방송 시간 지나면 얼마나 아쉽습니까? 이제는 USB보내는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 USB에보내면 다시 들을 수 있으니까? 라디오나 USB를 같이 보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주 선교사가 북한에서 어떤 방법으로 라디오를 들었는지 들려주시지요.

주 선교사: 어떤 라디오로 들었느냐 면, 저는 중국산 신바우라고 카세트 식 녹음 장치가 있습니다. 그래 너무 커서 중형으로 바꿨거든요. 중고로요. 그래 부속 다 뜯어서, 라디오 가지고 있으면 단속하니까. 천정에다 숨겨 풀로 발라 놓고 밤에는 꺼내서 듣는데 신속하게 움직여야 합니다. 이불 안에 넣고, 잘 들리지 않으니까 안테나 선을 입에 넣기도 하고, 손에 잡으면 잘 들려, 기계가 우리에겐 중요하지 않지요. 그 소리가 중요하니까요. 온몸이 기계가 될 수 있어요.

북한에서 RFA라는 영어 약자를 아셨습니까?

주 선교사: 이북에 있을 때는 자유아시아방송으로 쉽게 들어오지요. RFA는 영어니까 잘 모르는데 자유아시아방송은 쉽게 알지요. 여기오니까 혀 꼬부라져서 RFA그러지 그 당시는 RFA라 하면 잘 들어오지 않고요.

목요대담 오늘은 워싱턴에서 핍박 받는 기독교인 모임에 참가한 탈북자들을 만나봤습니다. 지금까지 인터뷰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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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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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들과 미국 인권운동가들이 지난달 26일 주미 중국 대사관 앞에서 북송 된 탈북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탈북자들과 미국 인권운동가들이 지난달 26일 주미 중국 대사관 앞에서 북송 된 탈북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RFA PHOTO/이경하

 

북한에 자유를 촉구하는 제14차 북한자유주간 행사가 지난달 23일부터 28일까지 미국 워싱턴DC 일원에서 탈북자 20여명이 참가해 자신들이 겪은 북한의 심각한 인권상황을 증언했습니다. 북한자유주간 행사 중 자유아시아방송을 방문한 탈북인들은 북한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인민들이 들을 수 있는 방송과 삐라를 통해 북한주민들 개혁에 나서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목요대담 오늘은 북한자유주간에 자유아시아방송을 방문한 탈북인들 이야기로 함께 합니다.

 

탈북인 최 모 씨는 이번 북한자유주간 행사 중에 북한에 자유의 소식을 전하는 것이 중요해 자유아시아방송을 방문했다고 들려줍니다.

 

최 모: 김정은 정권이 저렇게 국제사회의 말도 안 듣고 대북제재에도 불구하고 계속 핵과 미사일을 만들어 내니까? 미국 정부에다 강력하게 북한에 무력을 사용하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더 좋은 게 북한에다 정보를 공유해야 북한 주민들, 하부에서 변화가 있어야 북한정권이 물러난다. 이런 걸 알려 주려고 왔었고 그중에 한가지가 북한에 대해서 이런 방송을 하고 있는 자유아시아방송을 그래서 행사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우리가 생각하고 방문했습니다.

 

또 다른 탈북인 최 모 씨는 북한에 라디오나 삐라를 통한 정보 유입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최 모: 저는 아직도 방송을 중요시합니다. 왜냐면 북한 주민들이 실질적으로 방송을 많이 듣고 있고, 삐라 등을 많이 봅니다. 저도 북한 00에서 장교로 생활하면서, 저는 방송은 많이 못 들었어요. 그런데 삐라는 많이 받았어요. 삐라를 많이 보면서 김정은의 실체를 알게 되었고, 김부자의 실체에 대해서도 알게 되거든요. 김정은이 3형제라는 것도 삐라를 보고 알았어요. 그걸 보면서 정보 유입이 얼마나 중요한 걸 알았거든요. 여기 와서 제가 방송에 들어간 것도 북한 주민들한테 계속 주입을 시키더라도 그동안 세뇌 교육을 너무 받다 보니까?  한 번에 무너지진 않아요. 하지만 계속 우리가 방송이나 삐라를 통해서 주입을 시킨다면 언젠가는 무너지겠다라는 생각을 해서 북한 형제자매들한테 빨리 알려 줘서 나와 같이 군 복무하던 군인들이 하루빨리 이제는 김정은에게 등을 돌리고, 총을 돌리라! 이걸 말해 주기 위해 방송에 다니고 있고, 행사에도 참가 했거든요. 앞으로도

저는 계속 북한 인권을 위해서 투쟁할 것입니다.

 

탈북 여성 심 모 씨는 미국에 와 북한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았고 앞으로 북한 여성들의 인권 회복에 앞장서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습니다.

 

심 모 : 제가 북한을 떠나 한국에 와 자유를 느껴 보고, 그다음에 북한에서 적대시하던 미국이란 나라에 와 미국이란 나라를 봤을 때 북한에서 상상을 못 했던 너무나도 큰 나라이고 아름다운 곳입니다. 북한 사람들은 항상 미국놈 나쁜 놈이라고 생각을 했고, 미국이란 나라는 우리 북한에다 전쟁을 일으킨 나라라고 생각을 했는데, 그것이 아니고 세계 각국 사람들 다 모여서 북한 인권을 위해 행사하는 것이 여기 미국에 있고, 미국의 중심지인 워싱턴에 와서 보니까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 북한을 위해서 기도를 하고, 또한 북한 인권을 위해서 노력을 하는 것을 보고 미국이란 나라에서 모든 게 이루어진다는 데 너무 큰 감동을 받았고요. 앞으로도 자유북한방송이나 그리고 우리 북한 사람들(탈북민)을 통해서 선도해서, 통일은 반드시 오기 마련이니까? 저희가 그 길을 열어 나가는데 앞장서도록 노력하고, 그리고 특히 저는 여성 인권을 위해서 활동하는 활동가여서 우리 북한 여성들이 지금 중국이나 아니면 북한에서 지금 이루어지고 반인륜적 인권사례를 세계에 알려서 하루빨리 우리 북한 여성들이 다 같이 행복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그날이 왔으면 좋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습니다.

 

탈북인 박 모 씨는 북한 인민들의 인권 개선을 위해 한몫을 하려고 미국에 왔다고 말합니다.

 

박 모: 단체장들 몇 명과 다른 분들도 왔는데 어 우리가 몇 명은 안 되지만 그래도 북한에 있는 2000만을 대표해서 거기서 겪었던 일,  거기서 배우고 중국을 거쳐오면서 느꼈던 인권에 대한 자유민주주의 대한 걸 미국에 와 전 세계에 알리고, 그것으로 인해서 북한국민들에게 자유 세계의 진정한 자유를 알리는데 한 몫 할 수 있다는 데에 자부하고 앞으로도 북한 국민을 위해서 인권 활동을 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겠다는 그런 각오를 가지고 있습니다.

 

대북 전단에 관한 이야기 자유북한운동연합 박상학 대표에게 들어 봅니다.

 

: 제가 서울로 떠나기 전 며칠 전에도 대북전단을 보냈습니다. 북한주민들은 요즘 좀 알고 싶어 하는 게 뭐냐면 수령의 맏아들이었던 김정남 암살에 대해서, 정말 우리 지도자라는 김정은이 자기 형은 그렇게 살해했느냐 많은 사람들이 의문시하고 주시하고 있습니다. 그런 걸 그 객관적인 그래서 사실 자료를 통해서 대북전단을 만들어서 이번에도 오기 직전에 한 30만장을 북한에 보냈거든요. 그래 대북전단은 이 순간에도 계속 북한 동포들에게 보내지고 있습니다.

 

탈북자 백 모 씨가 북한의 잘못된 행위를 국제사회가 그대로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 우리는 아주 오래전, 한 세기 전에 대학살, 유대인 대학을 기억하고 있어요. 그래서 유대인 대학살에 대해 사람들의 인식이 아직도 고양되어 있단 말이에요. 그런데 지금 일어나고 있는 대학살에 대해서는 너무도 관심이 없고, 외면하는 게 안타까운 심정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직도 학살이 진행되고 있는 그 땅이 너무 폐쇄적이기 때문에 지금은 옛날이 아니고, 21세기에 아직도 강제 낙태시키고 사람들을 마구 총살하고 가둬서 고문하는 이런 나라가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북한에 대해서 외면하고 위정자, 독재자들에 대해서 우리가 아직도 제대로 인식을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너무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진짜 평화를 사랑하고 자유를 사랑하는 국제인들이고, 세계의 사람들이고 또 그러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어떤 그런 게 있다면 북한에 더 관심을 가지고, 이라크를 들어가 대량 살상무기를 없애기 위해 했듯이 그리고 미국이 자유국가가 침공을 당했을 때 단호하게 대응 했듯이, 전 세계를 상대로 위협하는 북한에 대해서도 단호하게 대처를 해 줬으면 하는 그런 바람이 있습니다

 

탈북인 최 모 씨 2300만 북한 인민들의 자유를 찾아주기 위해 북한자유주간에 참가했다고 말합니다.

 

최 모: 저도 북한에서 왔지만 하루빨리 북한에 있는 2300만 인민들이 빨리 자유를 찾아 가지고 우리와 같은 똑 같은 자유를 함께 누렸으면 좋겠다는 이런 심정을 가지고 저는 이 행사에 참가했습니다.

 

탈북인 최 모 씨 미국에서 느낀 이야기도 들어 봅니다.

 

최 모: 미국에 와 보니까? 우린 북한에 있을 때 세뇌 교육을 받았다고 하니까? 미국은 철천지원수고 미국이란 나라는 사람을 막 침략하고, 죽이고 하는 나라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실지 제가 그런 교육을 받았던 제가 미국 와서 보니까? 정말 인도주의적이고 사람도 너무나도 편하고 좋고 한국하고 또 미국 봤을 때 미국분들이 양보라든가, 너그럽다든가, 이런 면에서 봤을 때는 더 우월하다고 봤습니다.

 

목요대담 오늘도 북한자유주간에 자유아시아방송을 방문한 탈북인들 이야기로 함께 했습니다. 지금까지 인터뷰에 RFA 이현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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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이현기 leeh@rfa.org
2017-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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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디시 소재한 중국 방송 CCTV 사무소 앞에서 탈북인들이 탈북자 북송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워싱턴 디시 소재한 중국 방송 CCTV 사무소 앞에서 탈북인들이 탈북자 북송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RFA PHOTO/ 이경하

 

지난달 23일부터 28일까지 워싱턴 디시 일원에서 제14차 북한자유주간 행사가 열렸습니다. 또한, 지난 27일에는 세계탈북자총회도 열렸는데 탈북자 대표들은 북한 김정은 정권의 핵과 미사일 도발을 규탄하고 열악한 인권 탄압 실태를 폭로하기도 했습니다. 자유북한운동연합의 박상학 대표는 김정은이 존재하는 한 북한 인민들이 계속 정치범 수용소로 보내지고 더 많은 사람들이 굶주림에 죽어갈 이라면서 말이 아니라 행동에 나서야 할 때라고 강조했습니다. 행사가 진행되는 지난 25일에 20명의 참가 탈북자들이 자유아시아방송을 방문해 북한의 인권상황에 대해 증언하고 북한 주민들을 위해 자유의 소리를 더 많이 보내 주기를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목요대담 오늘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을 방문한 탈북자들의 이야기로 함께 합니다.

 

먼저 박상학 대표께서 이번 행사에 탈북인들 몇 분이 참가하셨고, 어떤 분들이 참가했는지 설명해 주시지요.

 

박상학: 제14회 자유북한주간 행사에 탈북자 분들 20여 분이 참가했습니다. 이분들은 절대다수 가 서울에서 북한 인권 단체에서 리더로 일하시는 그런 분들입니다. 또 자유아시아방송에도 많은 정보를 제공하고, 또 서울에서 벌어지고 있는 그런 얘기들을 북한 주민들에게 전달해 주는 역할 하신 분들도 꽤 있습니다.

 

이번 행사에서 탈북자들이 한 일은?

 

박상학: 이번 행사에서는 우리 탈북자들의 목소리 즉 북한의 인권 문제가 언론의 조명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북한의 핵실험이라든가, 중-단거리 미사일 실험 때문에 국제 사회가 거기에 집중되다 보니까? 이번 14회 자유주간에 참가한 북한인권단체의 활동이 언론을 통해 잘 나가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목소리가 이 미국에서, 자유세계를 향해 우리 탈북자들 북한 김정은 3대 정권에 대해 자신들의 체험을 통한 비판을 국제사회에다 계속하려고 합니다.

 

이번 행사에 참여한 탈북인들 각오가 남 다를 것 같습니다.

 

박상학: 현재 오신 분들 중에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되었던 분들도 있고, 북한에서 노동 단련대 라든가 이런 강제북송 이라던가 이런 엄청난 인권유린을 겪은 실지 체험자들도 여러분 있기 때문에 이런 분들이 RFA라든가 미국 언론을 통해서 국제사회에 북한의 참혹한 인권 유린 상태를 계속 고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주민들에게 한마디 해 주시지요.

 

박상학: 지금부터 14년 전에 제 1차 북한자유주간 일주일 동안 행사를 했습니다. 3대 수령 독재로부터 겪는 북한인민들의 참혹한 인권 유린에 대해서 국제사회에 고발하고 또 미국 의회나 국민들에게 호소해서 이런 잔인한 독재, 살인을 특히 정치범 수용소 같은 현대사회의 가장 반인륜적인 그런 행위를 하는 김정은 정권을 (사실은 우리 탈북자들의 노력만으로는 안 되니까)국제 사회에 호소해서 김정은 정권을 붕괴시키자는 차원에서 시작된 운동이 북한자유주간입니다. 북한자유주간이 14회째지만, 우리 바람은 15회때는북한의 김정은 독재가 무너지기를 확실히 기대합니다.

 

북한민주화위원회 허광일 대표 자유아시아방송이 북한주민들에게 자유의식을 일깨워 주기를 바랐습니다.

 

허광일: 저는 2003년도에 황장엽 선생님을 모시고 자유아시아방송을 처음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한 5년 만에 이렇게 다시 방문하게 됐는데, 정말 자유아시아 방송이 북한에 자유의 소식을 전하는데 선봉에 서 가지고 북한 주민들을 계몽시킨 데 대해서 감사드리고 더더욱 14차 북한 자유주간 행사가 성과적으로 치러진 가운데 더더욱 자유아시아방송을 방문한 데 대해서 더없는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방송이 북한주민들이 자유의식을 깨우고 그들을 김정은 압제에서 해방하는데서 정말 선구자적인 역할을 해 주실 것을 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

 

허광일 대표가 북한주민들에게 주는 의견입니다.

 

허광일: 지금 북한주민들은 김 씨 3대세습의 마지막 독재자인 김정은이의 압제하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최악의 인권위기 상황과 국가 위기 상황을 맞이 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살아남는 길은 오직 압제자 김정은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고, 진정한 자유의 삶을 찾아야만이 그들에게 인권이 보장 될 수 있고,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북한에서 생활하고 계시는 우리 동포들, 우리 형제 자매들이 정말 오늘의 압제에서 당하기만 하지 말고 이젠 스스로 자신들의 머리를 깨우쳐 가지고 자유세계를 향해서 힘차게 전진하기를 바랍니다.

 

탈북인 백요셉 씨는 이번 행사에 참가는 바로 북한이 완전 자유의 나라가 되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백요셉: 일단 북한 자유를 위한 주간 행사이기에 상당히 고무적입니다. 그래서 북한은 어떻게 보면 상당히 소외되고 잊혀진 나라인데, 거기서 자란 사람들이 그 땅을 떠나왔지만, 탈북자들이 그 땅을 자유화하기 위해서 지금 이렇게 활동하고 있지만, 뭐랄까 탈북자들에겐 힘이 없어요. 저희에겐 힘이 없지만 그래서 미국이라는 거대한 자유국가를 믿고 왔잖아요. 그래서 저희 같은 경우에는 탈북자이고 미약 하지만 또 저희들 밖에는 또 이런 일을 앞장서서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앞으로도 우리가 힘이 닫는 데까지 나설 것입니다. 북한정권이 어디까지 우리 탈북자들을 위협하고 협박할 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오히려 우리에게는 큰 자랑이 되고, 또 큰 긍지가 되고 또한, 우리가 자유인으로서의 가치를 높여 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좀 더 북한 정권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북한이 완전히 자유화 될 때까지 꾸준히 활동하고 싶은 그런 생각이 듭니다.

 

탈북인 한 모 씨는 북한의 민주화를 위해 참가했다고 들려줍니다.

 

: 저희는 자유 주간 행사를 해마다 4월 마지막 주 하고, 5월 첫째 주에 진행 하고 있잖아요. 저는 해마다 참석을 했고요. 참석한 것이 이제 8년차 됩니다. 왜 제가 2015년도에도 여기 미국으로 자유주간행사에 참여 했었고요. 그때 와서 제가 느낀 점이 참 저희랑 정말 모든 게 다른 미국인들이 저희 북한 인권을 위해서 북한 민주화와 자유를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는 것을 보고 너무 감동 받았고요. 이번에 다시 방문 한 것도 그런 분들과 함께 열심히 한다면 독재국가는 빠른 시간 안에 무너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또 다시 미국에 방문 했고요.

 

탈북자 김 모 씨 북한자유주간 행사를 개최해 줘 고맙다고 했습니다.

 

: 우선은 당사자인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이렇게 북한자유주간을 만들어 주시고 또 그것도 14회 동안 지속적으로 노력을 해 주신 것에 대해 굉장히 감사하게 생각하고, 북한문제가 이제 전 세계적으로 더 많이 알려 지고, 공감이 이뤄져서 북한 문제가 하루 빨리 해결 됐으면 좋겠다 하는 바램입니다.

 

목요대담 오늘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을 방문한 탈북자들의 이야기로 함께 했습니다. 지금까지 인텨뷰에 RFA 이현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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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이현기 leeh@rfa.org
2017-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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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각 자유의 다리에서 국제 출판 관계자들이 자신의 언어로 번역된 반디의 ‘고발’ 소설집을 낭독하고 있다.
임진각 자유의 다리에서 국제 출판 관계자들이 자신의 언어로 번역된 반디의 ‘고발’ 소설집을 낭독하고 있다.
사진 제공: 행복한 통일로

북한 고발 소설집 반디의 ‘고발’을 출판한 국제출판인들을 한국 행복한 통일로 단체가 초청해 ‘북한 인권의 현실과 북한 문학의 미래’ 주제의 행사를 지난 3월 말 개최했습니다. 국제 출판인들의 자국 언어로 출판된 ‘고발’ 낭독 행사와 DMZ 방문 행사에 CNN 방송이 취재해 전 세계에 방영했다고 도희윤 대표가 자유아시아방송과 회견에서 밝혔습니다. 도 대표는 또한 국제출판인들과 남한 정착 탈북 작가와의 만남의 시간도 가져 앞으로 탈북 작가들의 해외 진출에도 큰 성과가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의 목요대담 오늘은 북한을 고발한 반디의 ‘고발’ 소설을 출판한 국제출판인들 한국 방문 소식을 “행복한 통일로” 도희윤 대표로부터 알아봅니다.

반디의 고발 소설 해외 출판인들 한국 방문 소식과 CNN방송이 취재해 전 세계에 방송했다고요.

도희윤: 지난 3월 29일부터 30일로 물론 전, 후 행사도 있었습니다. 국제 출판 관계자들과 인권활동가들을 대한민국 서울로 초청했습니다. 29일에는 세미나를 가졌고, 30일에는 판문점 제3땅굴 등 DMZ 지역을 탐방하는 행사를 가졌는데요. 미국의 CNN 방송이 이번 국제 출판 관계자들의 ‘판문점’을 방문 하는 것에 관심을 가졌고, 판문점 가는 길목인 임진각 자유의 다리 앞에서 글로벌 출판 관계자들과 조촐한 행사를 가졌습니다. (현재 20개국 18개 언어로 반디의 고발 소설집이 번역 출간 되는 중인데요.) 그날 참석했던 9개 나라의 출판관계자 그리고 또 3분의 인권활동가들이 각각 자기나라 언어로 출판된 반디 소설 ‘고발’ 내용을 읽는 행사를 가졌습니다. 각국 언어로 읽는 행사를 가질 때 CNN이 그 내용들을 다 담았고, 세계 최초로 북한에서 나온 반체제 소설 ‘고발’이라고 하는 책을 소개하는 귀한 인터뷰도 갖게 됐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여러 가지 질문을 받았습니다. 반디 고발 소설집이 나오게 된 여러 가지 경위 그리고 의미, 이런 행사를 가지게 됐던 어떤 나름대로의 목적, 또 앞으로 여러 가지 계획, 이런 차원에서 장시간 CNN과 인터뷰를 가졌고, 저는 특별히 CNN이 국제적인 언론사로서 북한 주민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담을 수 있도록 협조해 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했습니다.

특별히 반디 소설 ‘고발’을 출판한 국제출판인들을 초청한 큰 의미가 있다면 설명해 주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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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출판관계자들이 남북 분단의 상징 판문점을 방문했다. 사진 제공: 행복한 통일로

 

도희윤: 몇 가지 목적을 두고 이 행사를 추진 했습니다. 먼저 국제 출판 관계자들이 분단의 현장인 대한민국의 DMZ 지역을 직접 방문하고, 또한 자기들의 언어로 출간한 북한 반체제 소설 ‘고발’책들의 관련된 내용을 공유할 수 있는 시간들을 가졌습니다. 이것이 아주 중요한 목적의 하나였고요. 또 한가지 북한 문학, 특히 탈북인 문학에 대한 관심을 국제 출판 관계자들이 가져 달라는 차원에서 탈북 작가들과의 만남을 주선 했습니다. 탈북 작가들 사실 국제 출판 관계자들 만나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거든요. 우리 탈북작가들 대부분 북한에선 창의성 자체가 억눌린 사회에서 생활을 했기 때문에, 자신이 아무리 뛰어난 창의성을 갖고 있다 해도 그 체제에서는 자기 실력을 마음껏 발휘하지 못하다가, 이제 자유 대한민국으로 와서 늦었지만, 문학적 소양을 가지고 발전해 나가려고 하는 모습들이 나오고 있는데, 이 부분에 국제 출판인들이 좀 더 관심을 두십사 하는 차원이 큰 의미이고 또 뜻깊은 목적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10여 명의 국제 출판인들이 참가했다고요. 이번 진행된 행사 평가도 해 주시지요.

도희윤: 이번에 출판관계자들 9개 나라에서 10분이 오셨고, 인권활동가들은 3개국 세 분이 참석하셨는데, 세미나 내용도 좋았고, 또 탈북 작가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여러 가지 북한 인권과 문학을 접목했던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습니다. 각자 준비했던 그 내용도 너무 좋았고요. 그리고 문학과 인권의 접목이라는 차원의 아주 새로운 부분들을 발견하지 않았냐는 평가도 해 봅니다. 두 번째 날에 진행되었던 이 판문점 땅굴의 현장은 이 분단의 현장을 직접 눈으로 둘러보는 그런 시간을 가졌던 것은 국제 출발인들 차원에서 물론 인권 운동가들은 몇 번 왔던 분도 있고요. 국제 출판인들 같은 경우는 처음 오신 분들이 대부분 이었습니다. 정말 서울은 자유롭게 일상적으로 바쁘게 움직이는 그런 사회에 있다, 바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판문점, DMZ라고 하는 분단의 현장을 다녀와서는 아! 정말 이 남북한의 분단 상황, 북한이라는 삼엄한 나라에서 반디 선생이라는 분이 존재했고, 그분이 쓰신 원고지가 자유 세계로 와서 또한 자기 나라의 언어로 출판한 것에 대해 자랑스러워 했고요. 또한, 국제출판인들 뒤풀이 과정에서 ‘아주 좋았다’라는 자신들의 소감, 감상을 남기고 돌아가셨습니다.

국제출판인들을 만난 탈북작가들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도희윤: 우리 탈북민 작가분들도 너무 좋았다고 평가해 주셨어요. 그래서 이런 기회를 줘서 너무 감사 하다는 인사 많이 받았는데, 우리 탈북 작가들 직접 명암도 주고받고 또 저녁 식사 자리에서 대화도 나누면서 서로 많은 부분에 대한 교류의 가능성 확인하는 자리였습니다. 앞으로 탈북 작가들이 쓴 글들이 이 메일 등으로 보냄으로 인해서 지금은 반디의 고발을 출간한 직후지만. 앞으로는 탈북 작가들의 ‘문학적 자료도 충분히 자기들이 출판 내지는 활용할 수 있는 부문으로 삼겠다’라는 대화가 오고 갔기 때문에 탈북 작가들에게도 아주 소중한 시간이 됐습니다. 지금도 서로 연락을 취하는 분들도 계시고요. 앞으로 계획을 세우고 만날 분들도 있어서 저희는 나름대로 지원했던 입장에서 흡족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의 목요대담, 오늘은 북한을 고발한 반디의 ‘고발’ 소설을 출판한 국제출판인들 한국 방문 소식을 “행복한 통일로” 도희윤 대표로부터 알아보았습니다. 지금까지 인터뷰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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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이현기 leeh@rfa.org
2017-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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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기 북한선교학교가 열리고 있다.
제2기 북한선교학교가 열리고 있다.
사진 제공: 북한선교회

근세 세계 3대 교회 부흥운동은 영국 웨일즈의 부흥, 미국 뉴잉글랜드 지방의 대각성 운동과 평양 대 부흥 운동으로 특히 1907년 평양 대 부흥 운동은 전무후무한 성령의 강한 역사로 말미암아 대 회개운동이 평양에서부터 출발해서 한반도 전역으로 퍼져나간 운동이라고 워싱턴 북한 선교회 정인량 이사장이 자유아시아방송과 회견에서 밝혔습니다. 정 이사장은 워싱턴은 선교 전략적 가치 면에서 가장 탁월한 북한 선교전략의 거점이라며, 21세기를 살고 있는 북미지역 동포들과 교회 지도자들에게 맡겨진 책임은 매우 중요하다며 함께 북한교회 재건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 목요대담 오늘은 워싱턴 북한선교회의 북한의 무너진 교회 재건 사업에 관해 워싱턴 북한 선교회 정인량 이사장과 회견을 통해 알아봅니다.

워싱턴 북한선교회의 제2기 북한선교학교에서 ‘무너진 북한의 교회 재건’하기로 목표를 뒀다고요. 북한선교회의 창립부터 오늘에 이르는 주요활동은요.

정인량: 우리 워싱턴 북한선교회는 2016년 6월 24일에 설립, 이제 1주년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설립과 동시 14명의 탈북민을 초청해서 9박 10일 동안 워싱턴 인근 3 교회 북한선교집회를 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간에 탈북민들을 위한 선교 훈련 세미나 또한 그들이 미국을 방문했기 때문에 미국 문화 체험 관광을 통해 탈북민들과 좀 더 가까이 가는 그런 프로그램을 진행했고요. 그 결과 예수의 제자화 내지는 장차 통일 이후 북녘 동족 선교의 출발점을 놓았다고 자평하고 있습니다. 이후 워싱턴지역의 성도들을 대상으로 두 차례 북한선교학교를 열었고 2017년 10월경에 3차 북한선교학교를 열 계획입니다. 수료자중에 소명자는 탈북민선교를 할 수 있는 협력선교사로 파송할 계획입니다. 올 7월 초에는 한국의 유수한 북한선교학자들을 초청 북한선교심포지움과 세미나 및 선교집회를 열어 워싱턴지역뿐만 아니라 전 미주지역에 북한선교에 관심을 불러 일으킬 계획입니다. 금년 8월에는 통영에서 한국의 탈북민들과 미국의 탈북민 선교에 관심을 가지는 분들과 함께 모여 북한선교를 위한 전략회의를 가질 예정으로 있습니다.

무너진 북한의 교회는 대략 얼마나 되며 북한교회의 수난사에 대한 이야기 들려주세요.

정인량: 1883년 북한 황해도 장연군 소래에 세워진 소래교회가 한국의 최초의 교회입니다. 올해는 2017년이니까 134년이 됩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평양에 장대현 교회를 비롯해서 우후죽순처럼 북한에 교회가 세워졌고, 1950년 한국동란 발발 전까지 북한에는 약 3천 개의 교회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국교회의 특징은 선교사들이 들어와 세운 교회가 아닌 한국 사람들에 의해 자생적으로 세워진 교회이며 교회건축도 그렇고 선교사 파송도 그러하고 성경번역이나 반포도 한국인들의 손으로 이루어진 독특한 교회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북한과 북한교회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특징이 있지요. 공산화된 북한지역에는 현재 두 곳의 어용 교회가 있을 뿐 전혀 종교의 자유가 없고, 특히 기독교는 전무하며 아직도 선교와 전도의 불모지로, 어떤 선교학자는 북한을 미전도 종족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공산주의자들과 북한정권이 교회 말살과 그 핍박은 필설로 다 할 수 없고, 단시간에 수많은 순교자들의 피로 강수를 이루었던 것이 북한 교회의 현실인 것입니다.

1907년 평양 대 부흥 운동의 역사적 의의가 있다면은요.

정인량: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은요. 근세 세계 3대 부흥운동에 속합니다. 영국 웨일즈의 부흥, 미국 뉴잉글랜드 지방의 대각성운동과 평양대부흥운동입니다. 그런데 이 3 대 부흥운동중에 특히 평양대부흥은 전무후무한 성령의 강한 역사로 말미암아 대 회개운동이 평양에서부터 출발해서 한반도 전역으로 퍼져나간 운동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이 운동을 통해서 교회가 성결한 가운데 부흥을 촉발시켰던 것이지요. 그래서 북한으로부터 남한에 이르기까지 많은 교회들이 이 기간에 세워졌고, 특기할 점은 이것 역시 피선교국이었던 한국교회와 한국성도들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부흥운동을 통해서 참으로 재미있는 것은 외국에서 온 선교사들에까지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이후 한국교회는 사경회 중심의 부흥회가 계속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무너진 북한 교회 재건 사업에 대한 계획이 있으면 설명해 주시지요.

정인량: 1970년에서 1980년에 이르는 십 년 동안 한국교회는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대중전도집회 열기로 가득 찼습니다. 소위 mass evangelism 이란 것인데, 그래서 평양 대 부흥 이후에 한국교회는 미증유의 대 부흥을 맛보았던 것이지요. 평양 대 부흥에 이은 놀라운 축복이었습니다. 이후 한국교회는 경제부흥과 맞물려 세계 선교사상에 찾아 볼 수 없는 물량적 대부흥기를 맞았습니다. 세계 최대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순복음교가 다 한국에 몰려 있었고 그것도 강남이라는 좁은 지역에 종교 벨트를 형성하게 되었던 것이지요. 그때 북한교회 재건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북한에서 내려온 목회자들에 의해 시작되어서 남한의 일(1) 교회가 북한의 무너진 3천 개 교회를 한 교회씩 맡아 재건하자는 운동이 요원의 불길처럼 타올랐지만 곧 시들어졌습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제 생각으로는 지나친 개 교회 성장 전략으로 인한 연합운동이 결렬되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세계선교가 중요한 한국교회의 과제이고 사명이지만 그 중에서도 동족선교가 우선순위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워싱턴북한 선교회의 모토 중에 하나는 우리의 땅끝은 예루살렘이 아니라 북한이라는 것을 고취시키는 것입니다. 그 목표는 장차 통일 이후, 속한 시일 내에 북한교회가 재건되는데, 디아스포라 한인교회들 특별히 북미주에 산재해 있는 교회들이 연합해서 이 일을 촉구하고 한국교회 원래로 보존시키자는 데 우리의 목표가 있습니다.

무너진 북한 교회 재건과 워싱턴 동포들이 할 일은?

정인량: 물론이지요. 워싱턴은 사실 북한선교의 요람이 될 수 있습니다. 선교 전략적 가치 면에서 가장 탁월한 북한 선교전략의 거점이라고 저는 생각하는데요. 이는 사도 바울이 로마를 세계 선교의 중심지로 삼았던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 이유는 워싱턴은 오늘날의 로마와 같이 명실상부한 세계의 수도로서 정치 문화 경제 군사 특히 IT산업의 메카이며, 이로서 세계 모든 전략적 단체와 그 모임들이 이곳에서 이뤄지고 있지 않습니까? 특별히 NGO의 요람이기도 한 까닭입니다. 북한선교는 현재적으로는 북한 관련 NGO들과 긴밀한 협력이 요구되는 선교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중요한 지역에 21세기를 살고 있는 동포들과 지역교회들 특히 지도자들에게 맡겨진 책임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본국교회가 겪고 있는 쇠태기가 이 디아스포라 교회에 파급되는 것을 막는 것은 이런 북한선교에 대한 전향적인 사고의 변환과 이은 실질적으로 행동하는 신앙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입니다. 개 교회 성장프로그램에 올 인하면 그 결과는 뻔합니다. 동족선교가 북한교회재건과 직결된다는 것을 의식하고 이 문제에 대하여 함께 고민하고 실질적인 도움의 장이 펼쳐지기를 소원합니다. 그래서 저는 7월에 있을 워싱턴 북한 선교 심포지엄에서 이런 문제들이 심도 있게 다루어질 것이므로 워싱턴지역의 목회자들 평신도 지도자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기도를 부탁드리는 것이지요.

북한 주민들의 삶 속에 복음 선교와 복음 통일에 대한 중요성에 대해 들려주시지요.

정인량: 금번 제 2기 북한선교 학교에 강의를 맡아준 2분의 탈북민 강사들의 간증을 통해 북한의 실정이 얼마나 비참한 것인지 새삼 놀랍고 가슴 저미도록 아팠습니다. 이것은 실제이며 허구가 아닙니다. 따라서 자유를 향유하고 있는 우리들로서는 북한동포들에 대한 책임이 막중한 것이다. 만약 우리들이 서둘러 북한선교와 복음안에서 평화 통일을 대비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진노가 어떤 방법으로 임할련지 예측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탈북민을 실제로 돕는 교회들과 선교단체들이 적지 않고 그들의 전략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이런 운동들이 1970-1980년대의 북한재건운동처럼 또다시 사그러 들지 않도록 열심으로 기도하고 물심으로 돕고 또 협력하여서 어찌하든지 북한선교를 위해서 하나가 되는 그런 운동들이 이 미주에서 특별히 워싱턴에서 일어났으면 좋겠다 하는 것이 제 간절한 소망 중에 하나입니다.

자유아시아방송 목요대담 오늘은 워싱턴 북한선교회의 북한의 무너진 교회 재건 사업에 관해 워싱턴 북한 선교회 정인량 이사장과 회견을 통해 알아봤습니다.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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