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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문화산책

통일문화산책(말모이 (우리말 사전) 문화운동)

사진은 1945년 해방 직후 재간행한 '조선어 표준말 모음'.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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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일찍이 사투리에 대한 가치를 인정한 기사가 대한제국 시대에도 있었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지난 10월 9일 한글날을 기념하면서 말모이 문화운동이 벌어지고 있다는 보도를 봤습니다. 지난 3월말 이 시간에도 말모이 사전편찬을 다루었는데, 그때 말모이는 우리말 사전을 뜻한다고 했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말모이 문화운동이 어떤 성격이며 이런 운동전개가 남북한 언어생활에 어떻게 영향을 줄지를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이야기 나눕니다.

임채욱 선생: 네, 말모이 운동을 펼친다는 것은 새로운 말을 찾아내고 사투리도 문화적 자산으로 여기면서 순우리말이나 옛말을 함께 모으고 북한동포들이 쓰는 말까지 아우르는 일을 해보자 라는 운동이지요. 온갖 낱말이나 입말들이 우리말 곳간에 쌓이면 나중에 사전으로 편찬도 하고 그만큼 풍성한 언어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말을 늘리는 하나의 문화운동이기도 하지요.

사투리도 문화적 자산으로 여긴다는 것은 잘 이해가 안 되기도 하는데요. 사투리까지 살리려는 문화운동이군요.

임채욱 선생: 사투리는 표준말에 대비되는 말이라서 낮은말, 열등한 말이라는 관념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사투리를 잘 못 쓰면 불쾌감이나 분노를 자아내기도 합니다. 사투리가 아닌 표준말은 한 나라 언어의 기준이 되는 말이라서 지위가 높고 당당하지요. 표준말은 어느 나라에서나 대체로 정치, 문화 또는 교통중심지인 수도에 사는 사람들이 쓰는 말로 정하는데 이것은 수도라는 지역적 우위성을 이용해서 나라말의 영향을 온 나라에 쉽게 미치게 하려는 의도이지요. 수도에 사는 사람들이 쓰는 말이 표준말이 돼야 문화구심력을 강화할 수 있고 문화의 동질성을 높일 수 있지요. 말하자면 나라를 다스리는 수단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어떤 나라에서는 표준말을 쓰지 못하면 학교 선생이 될 수 없고 배우도 표준말을 써야 하고 백화점 점원도 표준말을 쓰도록 강요합니다.

그런데도 사투리를 살려 쓰려고 하는 운동이라서 이해가 잘 안 된다는 것이지요.

임채욱 선생: 사람들의 관념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지요. 표준어가 어휘나 어법, 발음, 억양 등에서 반드시 사투리보다 나은가? 좋다고 볼 것인가? 수도라는 지위 때문이지, 말 자체야 그것도 한 지방의 말이니까 사투리나 마찬가지라는 인식입니다. 과거와 달리 어느 나라나 지방과 수도가 차이가 줄어들고 수도만의 일극 중심지가 아닌 여러 도시가 다 함께 발전하는 다극중심의 시대로 바뀌고 있지요. 이러니 수도만의 세상이 아닙니다. 그러고 보면 설령 표준말을 머리의 언어라 하고 사투리를 몸통의 언어라고 해도 머리만 중요한 게 아니라 몸통도 함께 중요하다는 겁니다. 표준말이 아닌 사투리에도 좋은 낱말이 있을 수 있고 어법도 이상하지 않고 억양도 정겹다면 이걸 무시해야 하나라는 관념이 들게 된 것이지요.

사투리 사용을 부끄럽게 생각할 필요 없는 그런 세상도 오겠군요.

임채욱 선생: 일찍이 사투리에 대한 가치를 인정한 기사가 대한제국 시대에도 있었다고 합니다. 황성신문 기사(1900년 10월 9일 자)에 8도 사투리가 나름의 가치를 지닌다는 주장과 함께 각 지역 사투리를 묘사했습니다. 경기도는 새초롬하고 강원도는 순박하고 경상도는 씩씩하고 충청도는 정중하고 전라도는 맛깔스럽다. 황해도는 재치있고 평안도는 강인하며 함경도는 묵직한 인상을 준다는 것입니다.

말모이운동에서 옛말이나 순우리말, 또 사투리를 찾아낸다는 것은 좋은 의도라 보는데 북한말까지 아우른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지요?

임채욱 선생: 북한 동포들이 쓰는 말에는 본래 평안도나 함경도, 황해도 말들이 기본이지만 분단 후 새로 생긴 말들도 있습니다. 북한에서 표준어라 할 문화어가 1966년 5월 생기면서 평양말을 표준으로 하고 각 지방 사투리는 사용을 억제해 왔지만 그게 하나의 가락에 천만 가락을 맞추는 북한이라 해도 쉽게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북한 각 지방 사투리는 그대로 살아있기도 합니다. 정치용어 아닌 일상용어에도 같은 낱말인데도 안 통하는 말이 있을 것 아닙니까? 탈북 작가들이 예로서 꼽은 낱말 중에는 나그네가 남쪽에선 여행객을 말하는데 북한에선 남편을 뜻한다니 고개를 갸웃하게 하지요. 이런 게 한두 개 이겠습니까? 새로 생긴 말들도 있지요. 가령 ‘고구려 망신’이란 말이 있는데 고구려 지역의 후손으로 형편없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말은 분단 후 고구려가 백제나 신라보다 우월했다는 역사인식이 작용한 데서 나온 말이지요. 북한에서 언어는 민족문제와 연관되는 정치적 문제로 보니까 이해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런 언어도 배제하기보다는 일단 받아들여 두고 나중에 다시 골라내면 되는 것이지요.

남북한 언어가 다르단 것은 어휘만의 문제가 아니라 어법, 음운, 억양 등 다 해당되는 문제라서 통일 후 상당기간 소통문제가 있을 수 있겠군요.

임채욱 선생: 네, 그렇습니다. 어휘야 서로서로 들으면서 알아차릴 수 있지요. 나그네를 여행객으로 알던 남편으로 알던 눈치, 아니면 경험으로 알게 되지요. 지낙이 저녁이고 연탁이 연착이고 맥장구가 개구리인 것은 당장은 못 알아들어도 나중에 알게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법이 달라서 “왔스꼬마”가 “왔습니다”인지 “왔으까이”가 “왔습니까”인지 아는데 시간이 걸리고 음운이나 발음 때문에 알아듣기 어렵고 억양과 어조가 달라서도 알아듣기 힘든 경우도 있겠습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그게 뭣입니까?

임채욱 선생: 화법입니다. 이런 사례가 있다고 합니다. 탈북자에게 헤어지면서 “밥 한번 먹자”라고 하면 그 탈북자는 진짜 밥 먹는 약속이라 생각하고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지나치다가 부딪칠 때 “죄송합니다”라고 말해도 북한 사람들은 뭐 그런 것으로 죄송하다고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남쪽은 언어에서 예절을 찾는데 북쪽은 명시적인 그밖에도 북한 사람과 언어교제를 할라치면 남쪽 사람들의 외래어나 외국어 사용습관은 소통을 어렵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북한 언어와 관련해서는 이미 <겨레말 큰 사전>이란 것을 2005년부터 남북 공동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데 중복되는 일은 아닌지요?

임채욱 선생: 맞습니다. 다분히 중복되는 부분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겨레말 큰 사전>은 정치용어 같은 것이나 북한에만 있는 어휘는 수록 못 할 것입니다. 가령 북한의 유행어인 오장육기나 걱정위원장, 또는 육백공수 같은 말은 수록 않겠지만 말모이 문화운동을 통해서는 일단 이런 북한 말도 모아 두는 것이지요. 북한 유행어라 한 오장육기가 뭣인지는 아는 사람도 있지만 여기서 설명해보면 이불장, 양복장, 책장, 신발장, 찬장 등 5가지 가구와 TV수상기, 세탁기, 선풍기, 녹음기, 냉동기, 사진기이지요.

걱정위원장은 동네 다니면서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사람을 일컫고 육백공수는 농장에서 남보다 두 배 일하는 사람이 받는 점수라고 합니다.

남쪽에서는 북쪽 말도 민족의 말로 받아들이려고 미리 준비하는데 북쪽 사람들은 서울말로 대표되는 남쪽 말을 어떻게 대할까요?

임채욱 선생: 서울 표준말이 잘 먹고 잘 사는 부르죠아 놈들과 관료 통치 배들이나 좋아하는 말이라고 알아왔던 북한주민들에겐 처음엔 받아들이긴 어렵지요. 더욱이 서울말은 여자들이 남자에게 아양을 떨기 위하여 하는 코맹맹이 소리“라고 배워온 사람들인지라 거부감을 가지겠지요. 하지만 서울말의 세련미를 자주 접하게 되면 서울말은 평양말에 비해 비단결 같다는 인식을 하게 될 것입니다.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