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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명깊은설교

희망의 복음 시리즈(2)-와싱톤한인교회 김영봉목사

 '경제위기를 영적 기회로'주제의 희망의 복음 시리즈 설교가 11월 16일 12월 4일까지 4회 주일동안 와싱톤한인교회 김영봉목사가 특별설교가 마련됩니다.
온 세계가 대공황을 두려워하고 있는 지금, 이 위기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겠습니까? 지난 2003년 '바늘 귀를 통과한 부자'를 통해 현재의 금융 위기의 주범 중 하나인 미국제 '번영의 복음'의 실상을 파헤쳤던 김영봉목사가 이제 그 위기 가운데서 희망의 복음을 전합니다.

희망의 복음 시리즈
11월 16일, 그래도 희망을 있다.  11월 23일, 그래도 출구는 있다.
11월 30일, 그래도 방법은 있다.  12월 4일, 그래도 믿을 데가 있다.

와싱톤한인교회
주소:1219 Swinks Mill Road, McLean, Virginia 22102    Tel: (703)448-1131
http://www.kumcgw.org/
                                            

                                    희망의 복음 시리즈(2)
                                    "그래도 출구는 있다"
                                    (There Is an Exit, Yet)
                                    이사야 Isaiah 40:27-31

                                         
                                        (김 영봉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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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 Thanksgiving!
이렇게 인사를 주고받지만, 마음으로는 행복감을 별로 느끼지 못하는 분들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감사절을 지내기에 가장 어색한 시점에 살고 있습니다. 경기가 바닥을 쳤으려니 싶었는데, 들려오는 뉴스는 점입가경입니다. 미국 경제의 기둥이랄 수 있는 자동차 회사 Big Three(Ford, Chrysler, GM)가 도산 위기에 처하여 구제 금융을 간청하고 있으나, 쉽지 않을 전망입니다. 만일 미국의 자동차 산업이 이번에 파산하면 3백만 명의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게 되고, 이것은 미국 경제를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지게 할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지금의 실업률이 6.5%인데, 내년에는 7.5%까지 올라갈 전망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암울한 뉴스를 매일 듣고 사는 가운데 우리는 오늘 감사절 예배를 드리고 있고, 이번 주말에 감사절을 지킬 것입니다. 이번 감사절이 가장 마음 시린 경험이 될 분들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식탁을 차리며 자꾸만 솟아나는 눈물을 식구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애쓰는 주부들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마음속에는 깊은 시름과 근심을 가지고 있지만, 아내와 아이들 앞에서 의연한 모습을 보이느라 애쓰는 가장들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그토록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지는 않다 하더라도, 마음이 움츠러들어 감사절의 기분을 내기 어려운 것이 우리 모두의 심정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올 해 감사절은 건너뛰자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이럴 때일수록 감사의 마음이 더 필요하고, 감사의 표현이 더 절실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18세기에 살았던 스페인의 영성가 아빌라의 존(John of Avila)은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상황이 어려울 때 행하는 한 번의 감사 표시는 상황이 좋을 때 행하는 천 번의 감사 표시와 같은 가치를 가진다."(One act of thanksgiving when things go wrong with us is worth a thousand thanks when things are agreeable to our inclination). 진실이 그렇습니다. 우리의 경험이 그것을 말합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감사가 더욱 필요합니다. 감사는 우리의 상황을 변화시키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비유하자면, 감사는 온도조절기(thermostat)의 역할을 합니다. 흔히들, ‘온도계와 같은 믿음’(faith of thermometer)과 ‘온도조절장치와 같은 믿음’(faith of thermostat)에 대해 말합니다. 온도계와 같은 믿음은 상황의 변화에 따라서 믿음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런 믿음은 한 순간도 제 자리에 머물러 있지 못하고 계속 변화합니다. 반면, 온도조절장치는 온도가 내려가면 히터를 돌려서 올라가게 하고 기온이 올라가면 에어컨을 틀어서 낮추어 줍니다. 상황에 따라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이 아니라, 오르락내리락 하는 상황을 안정시켜 주는 것이 온도조절장치입니다. 진정으로 성숙한 믿음은 온도계와 같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온도조절장치처럼 되어야 합니다.

감사의 마음은 온도조절장치와 같습니다. 일이 잘 되고 있을 때 감사의 마음으로 가득한 사람은 겸손하게 행동합니다. 잘 되고 있는 이유가 자신에게 있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일이 잘 되어 기고만장하는 사람은 필경 넘어집니다. 자기가 잘 나서 그렇게 된 줄 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감사하는 사람은 결코 넘어지지 않습니다. 자기가 잘 나서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반면, 일이 잘 되지 않을 때 감사의 마음을 잃지 않으면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않습니다. 일이 잘 되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감사할 것이 있음을 알기 때문이며, 지금 일이 꼬이는 것 같아도 결국 하나님께서 인도하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2.

이렇게 생각하니, 이 때야말로 진실로 감사가 필요한 때임을 알겠습니다. 상황이 어려운 만큼 더욱 정성되고 진실하게 감사절을 지킬 필요가 있음을 알겠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감사가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억지로 하는 감사는 주변의 온도를 바꿀 수 없습니다. 마음에서 저절로 감사(gratitude)가 느껴져야 합니다. 그 감사는 지금 우리가 당하고 있는 이 암울한 상황에 짓눌리지 않게 만들어 줍니다. 진정한 감사야말로 이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 가장 중요한 영적 자산 중 하나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 안에 진실한 감사의 마음이 생겨나게 할 수 있을까요?

저는 지난 며칠 동안 우리 안에 감사의 마음이 일어나게 하고 그 마음이 늘 살아있도록 만드는 방법이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성경 말씀을 이리 저리 뒤져가며 기도하고 씨름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적어도 세 가지의 방법이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감사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우리 마음 안에 감사의 정이 일어나게 하고 그 정이 항상 출렁거리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3.

첫 번째 방법은 과거를 돌아보는 것입니다. 위기를 당면할수록 우리는 지금 당면한 문제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지금 당하고 있는 문제에 짓눌려 "이젠 꼼짝없이 죽었구나!"라고 절망하게 됩니다. 이럴 때, 우리는 눈을 돌려 우리의 지난날을 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잠시 과거를 돌아보며 추억을 회상하는 것도 마음에 휴식을 주는 일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과거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행하셨던 일을 되짚어 보는 일입니다. 과거에 저와 여러분은 적어도 몇 번 쯤은 "이젠 꼼짝 없이 죽었구나!"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어려움을 겪었을 것입니다. 그것을 돌아보며, 하나님께서 그 때 나를 어떻게 인도해 주셨는지를 회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같은 경험을 한두 가지만 회상해 보아도 우리는 지금 우리가 당하고 있는 것이 막다른 골목이 아니며, 이로 인해 내 인생이 끝나는 것도 아님을 알 것입니다. 정호승 시인의 시 ‘막다른 골목’에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막다른 골목에서 울다가
돌아 나온 사람들은 모르지
그곳이 막다른 골목이 아니었음을.

막다른 골목에서 주저앉아 울다가
결국 막다른 골목이 된 사람들도 모르지
당신이야말로 막다른 골목이 아니었음을.

그렇습니다. 과거에 어려운 일을 당하여 막다른 골목에 당도했다고, 출구는 없다고, 살 길은 없다고 생각했던 그 경험을 지금 와서 돌아보면 그 때 착각하고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 때 당도했던 곳은 막다른 골목이 아니었습니다. 그 때는 보지 못했지만 출구는 있었습니다. 살 길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내가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지금 내가 당하고 있는 것도 막다른 골목이 아님을 인정할 수 있습니다. 살 길이 없는 것 같지만, 어딘가 살 길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믿음의 눈으로 과거를 돌아보며, 어려움을 당할 그 당시 보이지 않았던 하나님이 엄연히 활동하고 계셨음을 인정하게 됩니다. 그 때는 몰랐지만 하나님께서 신비로운 손길을 사용하여 나를 구해내셨음을 인정할 수 있습니다. 고난 중에서는 하나님이 나와 너무도 밀착되어 있기에 그분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 진실임을 깨닫습니다. 그렇다면, 그 하나님이 지금도 살아계시고, 내가 그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다면, 하나님은 지금의 위기 상황 안에서도 역사하고 계시다는 것을 믿을 수 있습니다. 그 믿음으로 내가 처한 상황을 보면, 상황이 달라 보입니다. 마치 모두가 나를 에워싸고 사방으로 조여 오는 것 같았는데, 과거에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결국 하나님은 이 어려움에서 나를 구해 주실 것임을 믿을 수 있습니다. 그 믿음으로 걱정과 두려움을 내려놓고 그분을 의지할 수 있습니다.

4.

두 번째 방법은 눈을 돌려 위를 쳐다보는 것입니다. "위를 쳐다보라"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뜻입니다. 오늘 읽은 이사야 40장 31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을 소망하며 "독수리가 날개를 치며 솟아오르듯 올라가" 하나님의 시각에서 우리의 상황을 보아야 합니다. 어려움을 당하여 우리가 택할 수 있는 선택은 세 가지입니다. 하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죽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피할 길을 찾아 도피하는 것입니다. 나머지 하나는 날개를 사용하여 솟아오르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려움을 당하여 독수리처럼 날개를 치고 솟아오를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솟아오르지 못하면 상황을 제대로 보지 못합니다. 땅 위에서 볼 때는 도저히 넘지 못할 것 같아 보이던 장벽도 솟아올라 창공에서 내려다보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중국의 만리장성도 땅 위에 선 사람에게는 거대한 장애물이지만 창공에 솟아 내려 보면 길게 그어진 선에 불과합니다. 우리의 몸은 날지 못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영혼은 날개를 가지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우러러 보고 영혼의 날갯짓으로 하늘 높이 날아올라 그곳에서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문제를 보면, 바닥도 아니요 막다른 골목도 아니며 절벽도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날지 못하는 영혼은 어려운 상황 아래에서 좌절하고 낙심하고 포기합니다. 불평하고 저주합니다. 오늘 읽은 이사야의 예언 속에서 하나님은 어려움 속에 있는 유다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불평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불만을 토로하느냐?
어찌하여 "주님께서는 나의 사정을 모르시고,
하나님께서는 나의 정당한 권리를 지켜 주시지 않느냐?" 하느냐?(27절).

당시 유다 백성들이 당하던 어려움은 오늘 우리가 당하는 어려움에 비할 것이 못됩니다. 1930년대의 대공황 때 당한 어려움도 유다 백성이 당한 어려움에 비하면 그것은 오히려 태평성대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 있던 유다 백성이 이같이 불평하고 저주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좌절하고 있었던 이유는 믿음의 날개로 솟아오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솟아오르지 못하는 사람의 눈에는 아주 작은 장애물도 넘지 못할 산처럼 보이게 마련입니다.
이렇게 좌절하고 있던 유다 백성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다시 생각하고, 믿음의 날개로써 그분에게 날아오르라고 말입니다. 그분에게 소망을 두고, 그분이 계신 곳으로 날아오르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상황을 제대로 보게 되고, 두려움과 절망감을 극복할 수 있고, 그 어려움을 헤치고 나갈 수 있습니다. 이사야를 통해 유다 백성에게 들려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한 번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너는 듣지 못하였느냐?
주님은 영원하신 하나님이시다.
땅 끝까지 창조하신 분이시다.
그는 피곤을 느끼지 않으시며,
지칠 줄을 모르시며,
그 지혜가 무궁하신 분이시다.
피곤한 사람에게는 힘을 주시며,
기운을 잃은 사람에게 기력을 주시는 분이시다.
비록 젊은이들이 피곤하여 지치고,
장정들이 맥없이 비틀거려도,
오직 주님을 소망으로 삼는 사람은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를 치며 솟아오르듯 올라갈 것이요,
뛰어도 지치지 않으며,
걸어도 피곤하지 않을 것이다.

5.

돼지는 하늘을 볼 수 없다고 합니다. 돼지가 늘 땅을 파고 살다 보니 얼굴과 목이 땅을 파기에 적합하도록 발달되었고, 그 결과 뻗뻗해진 고개를 들 수 없어 하늘을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땅을 파기에 너무나도 잘 적응되어 하늘을 볼 수 없는 돼지! 혹시 우리의 영혼이 돼지와 같은 꼴이 되어 버린 것은 아닌지 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경제적인 번영은 우리로 하여금 땅에 있는 것들을 추구하도록 만들고, 그것만 있으면 충분히 행복할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땅엣 것들을 탐닉하느라 영적 체형이 하늘을 볼 수 없도록 뒤틀려 버릴 수 있습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의 미국의 번영이 이 나라에 사는 사람들로 하여금 돼지처럼 하늘을 바라볼 수 없도록 목을 굳게 만든 것은 아닌지 염려가 됩니다.

골로새서 3장에서 바울 사도가 이렇게 말씀하신 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그리스도와 함께 살려 주심을 받았으면,
위에 있는 것들을 추구하십시오.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십니다.
여러분은 땅에 있는 것들을 생각하지 말고,
위에 있는 것들을 생각하십시오(1-2절)..

이 경제 위기는 이런 점에서 우리에게 영적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그 동안 좇던 땅엣 것들이 우리를 절망시키는 이 때, 우리는 위를 쳐다보고, 위엣 것들을 추구하며, 위를 향해 날아오르는 기회로 삼을 수 있습니다. 기도로 비상하고, 찬양으로 비상하며, 영적 교제로 비상하고, 말씀 묵상으로 비상하고, 사랑의 섬김으로 비상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우리의 영혼에는 하나님을 향해 비상할 수 있는 날개가 있습니다.

영혼의 날개를 오래도록 사용하지 않으면 근육이 약해져서 날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어깨 근육도 그렇다고 합니다. 오래 사용하지 않으면 근육과 힘줄이 약해지고, 그것이 심해지면 어깨뼈가 탈골이 된다고 합니다. 날개는 더욱 그렇습니다. 경제적인 번영은 우리로 하여금 영혼의 날개를 사용하는 것을 망각하도록 만듭니다. 경제적으로 번영할 때는 이 땅엣 것들이 너무 좋아서 위로 솟아오르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렇게 영혼의 날갯짓을 잊고 사는 동안 근육이 약해집니다. 나중에 솟아오르기 위해 날갯짓을 해 보고는 절망합니다. 날갯짓으로 영혼이 솟아오르기는 커녕, 날갯짓 몇 번에 탈진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지금 하나님은 경제적인 어려움을 사용하여 우리의 날개 근육을 단련시키고 싶어 하실 것 같습니다. 이 경제 위기가 하나님이 만들어내신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 같은 일이 일어나도록 허용하시는 데는 뭔가 섭리가 있을 것입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적어도 믿는 우리 각자에게 하나님이 바라시는 일은 그동안 등한히 했던 영혼의 날갯짓을 다시 시작하도록 밀어내시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미 독수리가 새끼 독수리에게 날기 훈련을 시킬 때 어떻게 하는지 아실 것입니다. 바동대고 거부하는 새끼 독수리를 높은 낭떠러지로 데리고 올라가서 떨어뜨립니다. 그 훈련을 통해 새끼 독수리는 많은 고통을 받지만, 머지않아 그 새끼 독수리는 창공을 훨훨 날아다닐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당하는 어려움과 환난을 우리의 영혼의 날갯짓을 훈련시키려는 하나님의 손길로 받아들이면 좋겠습니다. 이 기간에 영적 생활에 더 많은 시간과 정성을 투자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우리의 영혼을 날게 만듭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기뻐할 수 있고 감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어려움을 감당하고 나면, 우리는 머지않아 이번에 당한 경제 위기가 나에게 영적 기회가 되었다고 고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잃어버린 물질과 줄어든 401K와는 비교할 수 없이 귀한 선물을 받고 감사할 것입니다.

6.

우리 안에 감사의 마음이 생기게 하고 그것이 늘 출렁이게 만들 수 있는 세 번째의 방법은 그 눈으로 미래를 보는 것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미래를 보아야 합니다. 다른 눈으로 미래를 보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미래를 보는 사람들은 그 누구도 진정한 희망을 말할 수 없습니다. 경제 이론으로 잘 무장된 사람의 미래 예측도, 혹은 사회 변동 이론에 해박한 학자의 미래 예측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한 예측을 하는 당사자들도 스스로 말합니다. "내 예측에 너무 기대지 말라"고 말입니다. 자신이 없는 겁니다.

자칭, 타칭 전문가들도 이렇게 말한다면, 과연 우리는 어떤 눈으로 미래를 보겠습니까? 믿음의 눈으로 보는 것만큼 안전하고 확실하며 정확한 것은 달리 없습니다. 과거에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셨던 분명한 증거들을 회상함으로,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 지금도 나의 삶과 이 세상의 역사를 다스리고 계시다는 믿음을 회복한 다음, 그 믿음의 눈으로 미래를 보는 겁니다. 지금 내가 당한 상황 속에 갇혀 있지 않고, 영혼의 날개를 활짝 펼치고 힘차게 퍼덕여 하나님께 높이 날아오르므로, 지금 내가 당한 상황이 막다른 골목도 아니요 출구 없는 감옥도 아님을 확인하고 난 다음, 그 눈으로 미래를 보는 겁니다. 그렇게 미래를 보면, 우리는 제대로 된 희망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볼 때, 지금의 이 경제 문제가 언제쯤 어떻게 풀릴 것인지를 예측할 수 있으리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렇게 혼란스러울 때면 그런 식으로 영적 은사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과거의 하나님의 역사를 돌아보아 믿음을 회복하고, 영혼의 날개로 솟아올라 소위 bird’s eye view로써 상황을 본 사람은 미래를 두고 희망을 말할 수 있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인류의 역사를 다스리고 계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 능력의 팔로써 과거에 그러셨던 것처럼 지금도 그리고 미래에도 그분을 의지하는 사람들을 구해내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그러셨듯이 지금도 그리고 미래에도 하나님은 남은 자들을 일으키시고 나라들을 일으키셔서 모든 일들을 바로 잡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성서에 나오는 믿음의 위인들은 믿음의 눈으로 미래를 내다보면서 지금 일어나지 않은 일들을 마치 이미 일어난 일처럼 말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전문적인 용어로 그 표현법을 ‘예언적 완료’(prophetic perfect)라고 부릅니다. 믿음의 눈으로 미래를 내다보면서 장차 하나님이 이루실 일들을 너무도 선명히 보았기에 그 모든 것이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말했던 것입니다. 말만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살았습니다. 지금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는데, 이미 그렇게 된 것처럼 믿고 살았습니다.

지금 여전히 바벨론의 포로로 살고 있지만, 믿음의 눈으로 장차 해방되어 고국으로 돌아갈 것을 보고, 몸은 포로로 살지만 영혼은 자유인으로 살았습니다. 지금 질병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지만, 믿음의 눈으로 완치될 미래를 보고, 하나님의 은총으로 이미 치료된 사람처럼 기쁨과 감사로 살았습니다. 나라가 망하고 폐허가 되었지만, 장차 하나님께서 나라를 다시 회복시킬 것을 내다보고, 이미 회복된 나라에 사는 것처럼 희망차게 살았습니다. 믿음 없는 사람들은 절망과 불평과 저주로 시간을 죽이고 있을 때,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미래를 앞당겨 살면서 희망을 말하고 감사 찬송을 부르며 사람들을 축복하며 살았습니다.

7.

이것이 우리 안에 감사의 마음이 저절로 일어나고 감사의 정이 항상 출렁이게 하는 세 가지 방법입니다. 지금 우리의 손에 쥐어진 것으로는 감사할 것이 하나도 없어 보이지만, 과거의 삶을 돌아보며 받은 복을 세어 보고, 영혼의 날개로 높이 비상하여 하나님의 눈으로 우리의 상황을 내려다보고, 그 믿음의 눈으로 미래를 내다보고, 하나님의 주실 미래를 확신하고 그것을 이미 얻은 사람처럼 살아갈 때, 우리 마음에는 그득한 감사의 정이 넘칠 것이고, 그 감사는 우리의 상황을 변화시키는 온도조절장치가 될 것입니다. 상황에 의해 짓눌리는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상황을 변화시키는 믿음의 능력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마음에 있는 감사를 한 번 재어 보십시다. 우리가 가진 감사의 분량은 과연 온도조절장치로서 작용하기에 충분합니까? 혹시, 그렇게 되기에 충분하지 못하다고 생각되신다면, 이번 감사절 기간 동안 하나님 앞에 잠시 머물러 앉는 시간을 마련해 보십시다. 그렇게 머물러 앉아, 지난 날 하나님께서 나에게 베풀어 주신 축복의 손길을 헤아려 보십시다. 기도로써, 예배로써, 찬양으로써, 말씀 묵상으로써, 영적 교제로써, 사랑의 섬김으로써 우리의 영혼의 날개를 힘차게 펄럭여 하나님께 높이 비상해 보십시다. 그 믿음의 눈으로 미래를 보십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마침내 구원해 주실 것이라는 사실을 믿으십시다. 그것이 먼 미래가 아니라 이미 일어난 일처럼 분명하게 믿으십시다. 그렇게 되면 우리 마음에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가득 넘칠 것이고, 그 감사로 인해 우리는 이 궁지를 돌파할 출구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어렵다 어렵다 해도, 아무리 모두가 "이젠 다 끝났다", "살 길이 없다"고 탄식한다 해도, 그래도 출구가 있습니다. 진정한 감사, 바로 그것이 출구입니다. 이 아름다운 감사의 계절에 하나님 앞에 잠잠히 머물러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 진정한 감사가 마음 가득 출렁이게 되기를, 그리고 그 출렁임이 오래 오래 지속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온 세상 만물을 창조하시고
세상 끝날 까지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주님,
저희의 눈을 밝혀 주시고,
저희의 눈길을 잡아 주소서.
과거의 삶을 돌아보며
받은 복을 세어 볼 수 있게 하시며,
영혼의 날개로 높이 비상하여
주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하시고,
그 믿음의 눈으로 미래를 보게 하소서.
믿음 안에서 진정한 미래의 희망을 보게 하시고,
그 희망을 믿는 자답게 살게 하소서.
우리 마음에 진정한 감사가 솟아나게 하시어
그 감사의 마음으로써
이 어둠을 헤치고 나가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