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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당 인근서 옥수수 먹고 있는 여인들.
장마당 인근서 옥수수 먹고 있는 여인들.
사진-9월 17일 자 갈렙선교회 제작 영상 캡쳐


탈북자 구출과 한국 정착에 앞장서는 갈렙선교회가 지난 9월 17일 자 ‘옥수수 맛 좋습니다.’제목의 유튜브 동영상과 9월 24일 자 ‘운동장에서 놀고 있는 학생들’ 이라는 제목의 유튜브 동영상을 공개했습니다. 갈렙선교회 김성은 목사는 ‘옥수수 맛 좋습니다’. 영상에서는 북한 여성들이 직접 생계에 나서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운동장에서 놀고 있는 학생들 영상에서는 북한 어린이들이 놀이 기구 없이 뛰어놀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됐다고 자유아시아방송과 회견에서 밝혔습니다. 김 목사는 장마당에서 나오는 여성 중 치마를 입고 있는 여성은 단 한 명도 없어 깜짝 놀랐다고 했습니다.


목요대담 오늘은 김성은 목사로부터 동영상 제작에서 본 북한 여성들과 북한 어린이들에 대한 이야기 나눕니다.


지난 9월 17일 자 ‘옥수수 맛 좋습니다.’ 영상 제목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 길가에 북한 아낙네들이 앉아서 옥수수 먹는 모습, 그보다도 길을 오고 가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보려고 동영상 제작했는데요. 첫 번째는 북한의 옥수수가 주식이다 보니까 그들이 먼 길을 갈 때는 옥수수를 삶아서나 구워서 길을 떠나기도 하고 또 옥수수가 북한의 주식이고 간식이기도 하며, 또 한국에서는 옥수수가 지금 가을철이라서 간식 거리잖아요. 그래서 옥수수 먹는 모습을 한 번 담아 보았고요.


영상에서 북한 여성들 어떤 면을 바라볼 수 있을까요.


: 중요한 것은 북한의 한 도시 길가에 앉아서 옥수수를 먹으면서 서로 오고 가는 사람들에 관해서 이야기 하는 모습을 담았는데요. 특이한 점은 북한의 다양한 사람들이 먹고사는 즉 생계를 위해서 오고 가는 모습들이 영상 속에 포착되고 있어요.

장마당에서 물건을 사 나오는 여인들 모습.
장마당에서 물건을 사 나오는 여인들 모습. 사진-9월 17일 자 갈렙선교회 영상 캡쳐

영상에서 특이한 점도 있었습니까?


: 자세히 보면 북한여성들이 치마를 입은 사람들이 단 한 사람도 없을 거에요. 저도 깜짝 놀랐어요. 아니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치마 입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지, 그래서 우리 탈북 가족들에게도 물어봤더니, 북한 여성들이 치마를 입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치마 입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그렇다면 북한 여성들 바지를 많이 입는 다니는데 치마를 입지 않는 이유가 있을까요.


: 왜냐면 김일성이 그전에 하늘을 떠받치는 거는 남녀 50대 50이다. 그래서 남자도 일하고 여자도 일해야 한다고 해서 여자들도 생계에 나서다 보니까 치마가 굉장히 불편한 거지요. 그래 일하기 위해서는 전부 다 바지를 입고 또 활동하기 편하고, 치마는 아무래도 농사를 짓고 옥수수밭에서 일할 때 굉장히 거추장스럽지요.


북한여성들 삶은 어떻게 비쳐 쳤습니까?


: 손수레를 끈다든지, 나무를 해서 온다든지, 농장 가서 일한다든지, 이런 여러 가지 일을 하기 위해서는 여자들에게도 바지가 필수여서, 뜻밖에 영상에 보면 다양한 계층, 젊은 여성들, 나이 든 사람 등, 많은 사람이 길을 오가는데 한결같이 바지만 입었어요. 그래서 북한에 많은 여성분이 생계에 동원되고 그런 모습들 영상 속에서 찾아보면 여성의 인권, 여성의 삶, 여성의 고달픔이 배어 나오기도 합니다.

장마당 인근서 보는 북한주민들 모습.
장마당 인근서 보는 북한주민들 모습. 사진-9월 17일 자 갈렙선교회 제작 영상 캡쳐

그 영상에 나오는 곳은 어느 장마당 인근인가요.


: 그 안쪽이 역전도 있고 장마당 언저리라서, 장마당의 물건들을 배달한다든지, 물건을 이고 나와 팔려고 가는 사람도 있는데, 대부분은 돌아가는 사람들이더라고요. 그래 거기 생계에 나선 북한여성들의 모습들을 보게 되고 다양한 물건이나 그리고 무엇보다도 영상에는 삶이 바빠서 그런지 사람들의 발걸음이 굉장히 빨라요. 그래 영상 본 사람들이 북한사람들이 저렇게 빨리 움직이느냐고! 그런데 우리 교회 탈북민들이 저렇게 빨리빨리 움직이지 않으면 먹고 살기 힘들다. 그래서 북한 여성들이 굉장히 고달프다. 그런 이야기를 해주더라고요.


영상에 나오는 지역은 북한의 어느 지역입니까?


: 북한의 중간지점, 내륙에서 찍어 온 것입니다.


영상 속에 나온 북한 주민 보시고 옛날보다는 조금 나아진 겁니까?


: 과거 고난의 행군보다는 좋아진 건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과거보다 좋아졌을 뿐이지 북한사람들이 요구하는 조건, 그들이 원하는 것에서는 굉장히 못 미치고요. 그리고 도로사정도 굉장히 안 좋은 것들을 볼 수 있어요. 또 다른 영상에서도 보면 비가 조금 오면 바닥이 진흙 창이어서 사는 게 참 힘든 상황을 볼 수 있지요. 그래서 과거보다 먹고 사는 게 조금 해결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직은 북한주민이 원하는 어느 정도 최소한 이 정도는 되어야지 정도에는 굉장히 못 미친다고 봅니다.


9월 24일 제작하신 ‘운동장에서 놀고 있는 학생들’ 영상 쭉 봤습니다. 이 영상도 중부의 한 지역인가요.


: 같은 동네에 있는 곳입니다. 학교에 들어가서 그 아이들이 놀고 있는 모습을 담았는데요. 저는 그걸 보면서 제 나이 55살인데 저 어렸을 때 시골학교의 모습이랄까요. 그때는 공 하나만 가져도 즐거웠던, 그런 추억이 있는, 굉장히 저희 어렸을 때, 아주 과거의 모습, 그런 어떤 모습들, 또 한편으로는 21세기에 남쪽은 굉장히 발전해서 생각도 못 하는 부분들이, 북한에는 아직도 우리의 어렸을 때 모습을 보게 되면서 북한 학생들이 굉장히 열악한 상황에서 공부하고 있구나, 이런 것들을 보게 됐지요.


그 영상에서 아이들이 놀 때 뛰어다니는 게 전부였던 같은데요.


: 다른 게 없잖아요. 한국에서는 컴퓨터로 게임을 한다든지, 아니면 하다못해 여러 가지 운동기구라든지, 농구공이라든지, 배드민턴이라든지, 아니면 탁구부가 있다든지 여러 가지로 나름대로 갖추었지만, 북한 아이들한테는 솔직히 축구공 하나도 매우 큰 사치이지 않아요. 그러다 보니까 남녀 어린이가 함께 뛴다든지 하는 것 외에는 할만한 놀이가 없는 것 같아서 참 안타깝다 생각합니다.


목요대담 오늘은 김성은 목사로부터 제작한 동영상에서 본 북한 여성들과 북한 어린이들에 대한 이야기로 함께 했습니다. 지금까지 인터뷰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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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새 학년을 맞아 전국 각 학교에서 개학식이 열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오른쪽)서울 옥수초등학교에서 겨울방학을 마치고 첫 등교를 한 학생들이 교실에서 손을 들어 보이고 있다.
(왼쪽)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새 학년을 맞아 전국 각 학교에서 개학식이 열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오른쪽)서울 옥수초등학교에서 겨울방학을 마치고 첫 등교를 한 학생들이 교실에서 손을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북한에서 37년 살면서 교육대를 졸업, 초등학교 교사를 했고, 한국에 와 각고의 노력 끝에 서울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하는 최영주 씨가 최근 교계의 초청으로 미국을 방문해 북한에서 적대국으로 교육받다가 직접 미국에 와 놀란 것은 넓은 땅 덩어리와 자유로움, 풍요로움에 놀랐다고 자유아시아방송과 회견에서 밝혔습니다. 최 씨는 북한의 공교육은 너무 제한적이고 교사들이 할 수 있는 분야가 국가에서 하라는 것만 해야되니까 개발이 없다며, 북한 교사들도 국외를 체험할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며 그래야 북한 아이들을 인재로 키울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목요대담 오늘 이 시간에는 북한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그리고 남한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하는 탈북자 최영주 씨가 미국에서 직접 보고 느낀 여러 가지 체험에 대한 증언을 들어봅니다.


미국 땅을 처음 밟아보고 느낀 점은 무엇인가요.


: 제가 북한에서는 계속 적대국으로 교육을 받다가, 미국에 오니까? 너무 놀랐어요. 첫 번째 놀란 것은 한국에서 미국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내려 다시 미국 보스턴으로 가게 됐거든요. 근데 샌프란시스코가 미국 공항이잖아요. 샌프란시스코에서 보스톤 가는데 비행기로 5시간을 가는 거에요. 그래서 제가 세상에, 제가 한국에 있을 때는 정말 제주도로 가는 것이 1시간이잖아요. 미국의 땅덩어리가 크다고 했지만, 어떻게 정말 서부에서 동부로 간다. 비행기로 5시간 6시간 간다면 얼마나 넓으냐에 놀랐고요. 그다음 두 번째 놀란 것은 자유로움이었어요. 제가 보스톤에서 도시 관광을 했는데, 거기 미국인들의 여유로움, 자유로움 이런 게 눈에 띄게 보였어요. 그래서 야! 정말 한국서 살다가 또 대국 큰 나라로 오니까 이렇게 모든 것이 자유롭구나 느꼈고, 식당에 가서 현지 음식을 체험할 기회가 있어 갔는데, 일단 양이 너무 많은 거에요. 양이 많을 뿐 아니라 모든 것이 큰 거에요. 미국인을 봤을 때 여성이고 남성이고 키도 크고 몸짓도 크고, 이런 걸 봤을 때 야 물질적인 풍요로움이 크구나! 를 느꼈고, 기념품을 사려고 shop에 들어갔었는데 쇼핑하려고요. 야 정말 온종일 돌아도 다 못 보는 그런 물질적인 풍요로움에 대해서 너무 감동을 하였어요.


명품 가방에 대한 욕구가 있었다고요.


: 제가 미국에 왔으니까 그래도 기념품을 사야지 라고 했는데, 아직도 내 안에는 제가 북한을 탈북해서 한국에서 15년 넘게 살았지만, 아직도 욕구 충족이 있었구나! 느낀 게 뭐냐 면 사실은 그 한국서 생활할 때는 모든 걸 절약하고 또 절약하고 북한 형제에게 보내주며 살던 내가, 명품 가방을 보니까 그 욕구를 참을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아직도 나한테는 어릴 적부터 물질적인 풍요로움을 느끼지 못하고 그 욕구가 이런데 와서 표현되는구나, 그런 것도 한 번 느낀 것 같습니다.


교사이시니까 남북한의 교육 방법에 대해 비교를 한다면


: 북한에는 이제 독재 체제 위에서 모든 교육이 지시되고 집행이 되는 거에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교육이 독재로 집행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학교마다 자체의 자율성이 있다는 거에요. 그다음에 북한에는 교육 내용이나 모든 범위 이런 것이 제한적이에요. 그런데 한국은 학교마다 자율성이 있는데다가 그 교육이 너무 다양해요. 그래서 예를 들어서 북한의 교육 방법 같은 것은 한정되어 있다 보면 한국의 교육 방법은 너무 다양해서 정말 오히려 학생들이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힘들지요. 남한의 학생들이요. 북한의 학생들은 교육의 기회를 갖지 못하는 대신에 좀 단순하고 경쟁이 없다 보니까 스트레스가 덜하지요. 그런데 한국의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경쟁 속에서 살아야 하고 내가 저 친구보다 더 잘하고 더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기심이 강하고 좀 이런 게 가장 차이점이 있는 것 같아요.


남북한 교육현장의 큰 차이점은


: 북한에는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에 대한 사상이 중심을 이루다 보니까 북한의 아이들 같은 경우는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국외가 어떻게 변하고 발전하는가를 배울 수가 없는 거에요. 그런데 한국에는 어릴 때부터 영어를 접하고, 그것도 자율성이고요. 영어를 배우고 싶으면 영어를 배우고, 일본어를 배우고 싶은 사람은 일본어를 배우고 유아시절에 베트남에서 가서 교육하는 가정들도 봤어요. 참 대한민국은 북한에 비교하면 정말 가능성이 얼마든지 무궁무진하구나 이런 생각을 했고, 북한의 아이들은 가능성이라든지, 선택권이 전혀 없는 거지요. 이런 차이점이 너무 많고, 북한 같은 경우는 아동들이 인권이라는 거를 생각지도 못해요. 근데 대한민국에는 학생들이 자기 인권을 위해서 선생한테 자기 인권을 요구하고 또 정책을 만들어 달라고 하고, 이런 자율성이라든지, 그런 것이 남한과 북한의 차이점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남북한의 학부모 역할이 다르다면서요.


: 남과 북을 비교했을 때 어머니들의 학부모 역할에 대해서 말하겠는데요. 북한의 엄마들은 학부모의 역할이 없어요. 근데 한국에는 부모의 역할이 교육의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초등학교에는 보호자 동의라는 게 꼭 들어가요. 학생들을 영화 보러 데려가거나, 다양한 문화 체험으로 국외에 데려가거나 수학여행을 할 때 무조건 보호자 동의가 있어요. 그런데 북한에는 부모 역할이 없으니까 보호자 동의라는 게 없거든요. 그런 부분에서 현저하게 남과 북이 학부모 역할은 다르다고 말할 수가 있고, 한국에는 부모가 어떤 교육을 받고 자녀교육의 영향을 미치는가에 따라서 그 자녀의 미래, 진료가 현저하게 다르지요. 그런데 북한에는 북한체제 특성상 부모 역할도 없지만, 자기 자녀에 대한 미래나 선택에 대해서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남북한 아이들에 관해 이야기해 주세요.


: 북한의 아이들이 앞으로 통일을 대비해서 남과 북의 청년들이 만났을 때 의사소통이 돼야 하잖아요. 그런데 지금 현시대의 또래의 관계에서 초등학교 학생들이 만났을 때 대화할 수 있는 소재가 없어요. 그러니까 한국의 아이들은 게임문화라든지, 역사에 대한 드라마를 보고 또 세계 여행도 해야, 할 이야기가 무궁무진한데 북한 아이들은 일단 체험을 못 하고, 세계가 발전하고 있는 소식을 들을 수가 없잖아요. 그래 그런 이야기 할 소재가 없다는 것에 너무 안타깝습니다. 바람이 있다면 정말 북한의 학생들이 중국이라도 관광이나 견학이라도 해서 아이들이 북한 체제를 위해서라도 세계를 볼 그런 기회가 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게 됩니다.


북한 교사들 해외 연수에 나서기를 바란다고요.


: 북한의 선생님들이 국외를 나와 볼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고, 그다음에 배운 지식을 학생들한테 가르쳐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실은 북한에서는 너무 제한적이고 교사들이 할 수 있는 게 국가에서 하라는 것만 딱 해야 되니까 개발이 없습니다. 그런데 남한에서는 교사가 자율적으로, 충분히 자기 수업 시간에 자율적으로 할 수 있어서, 그래 북한에 있는 선생님들도 빨리 국외에 체험할 기회를 많이 가져서 북한의 학생들을 바르게 성장시키고 북한을 변화할 수 있는 인재를 키울 수 있도록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목요대담, 오늘 이 시간에는 북한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그리고 남한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하는 탈북자 최영주 씨가 직접 미국에서 보고 느낀 여러 가지 체험에 대한 증언으로 함께했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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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4월 2일 새 학년을 맞아 전국 각 학교에서 개학식이 열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4월 2일 새 학년을 맞아 전국 각 학교에서 개학식이 열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연합뉴스

북한에서 37년 살면서 교육대를 졸업 초등학교 교사를 했고, 한국에 와 각고의 노력 끝에 서울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하고 있는 최영주 씨가 최근 워싱턴북한선교회 초청으로 미국 워싱턴에서 와 자신이 북한에서 그리고 남한의 교육 현장에서 직접 체험한 것들을 증언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최 씨는 북한에는 90년대 후반 경제난 때는 교사에게 주어지는 배급도 월급도 주지 않아 공교육이 무너지는 걸 체험 했으며 그 당시 학생들 가정 방문을 가보면 배가 고파 아이들이 일어나 인사도 할 수 없었으며, 꽃제비로 장마당에 가야만 제자를 볼 수 있는 참담한 체험도 했다고 증언했습니다.


목요대담 오늘 이시간에는 탈북자 최영주 씨가 초등학교 교사로서 직접 체험한 남한과 북한의 교육현장에 대한 증언을 듣습니다.


최영주 씨는 북한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있을 때, 1990년대 후반의 상황을 이렇게 증언합니다.


: 저는 북한에서 37년을 살다가 탈북을 한 최영주라고 합니다. 북한에 있을 때는 초등학교 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다 아시다시피 북한의 심한 경제난이 90년 후반부에 있었습니다. 그때 학생들에게 교과서를 줄 수 없었고 또 교사들한테 배급도 월급도 주지 않아서 정말 교육 현장에서 공 교육이 무너지는 그걸 실제 체험했었고, 또 학생들이 학교에 오지 않아서 가정방문을 가게 되면은 아이들이 일어나 인사할 수 없는 그런 상황, 또 엄마가 식량을 구입하기 위해서 장사를 나갔는데 들어오지 않아서 꽃제비로 장마당에 가야만 제자를 볼 수 있는 이런 삶의 현장을 체험하게 됐습니다.


최영주 씨는 먹고 살기 위해 탈북 하게 됐고, 이제는 남한에서 탈북 학생을 지도하는 교사가 됐다고 설명합니다.


: 정말 경제난 때문에 먹고 살아야겠구나! 생각하다 보니 탈북 하게 됐고, 또 미래에 대한 확신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리고 자유라는 게 무엇인지 모르고 살았습니다. 탈북해 이제는 한국에서 초등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 탈북 자녀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학생들이 학교 적응의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고, 또 반드시 배워야 되는 공교육에서 잘 따라 배우지 못하고 중도 탈락해서 대안 교육 시설에서 검정고시를 봐 학력을 받아야 되는 이런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그들을 학교 현장에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최영주 씨는 탈북할 때 자녀를 데리고 왔다면서, 자신은 북한에서 교사가 되기 위해 김일성과 김정일의 역사를 달달 외우고 전교 1등 할 정도로 공부했기 때문에 교단에 서게 됐지만, 하루는 아들이 집에 와 ‘삼국시대’가 뭐냐고 물었는데  몰라 당황했다고 말했습니다.


: 초등학교 5학년이 되는 아들을 데리고 왔는데 이렇게 남과 북이 교육의 차이가 있는지 몰랐어요. 자녀가 하루는 집에 와서 하는 이야기가 ‘엄마 삼국시대가 뭐지!’질문했어요. 그런데 저는 북한에서 교육대를 졸업하고 교사생활을 15년 넘게 했지만, 삼국시대가 뭔지 몰랐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70년대 교육을 받은 북한 교사로서 김일성과 김정일의 역사를 달달 외우고 정말 전교 1등을 할 정도로 공부했기 때문에 교단에 설 수가 있었지요. 그래서 삼국시대가 뭔지 역사 교과서를 봐도 이해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최 씨는 탈북 청소년들이 겪는 어려움에 대해 설명합니다.


: 탈북 청소년들이 겪는 어려움의 첫 번째는 교과의 차이, 영어의 차이, 학교에서의 문화적 차이, 또 제도적 차이가 많기도 많지만 부모 역할의 부재, 이것이 뭐냐 면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 오게 되면 북한에서 배우지 못했던 것에 대한 어려움, 또 수학이라든지, 국어의 차이가 상당합니다. 그러니까 아이들은 남한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좌절감을 겪게 되고 그 좌절감을 해소 하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북한에서 온 엄마들은 중국에서 겪은 고통이 한국에서도 계속되고 또 자녀에게도 대물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 우리 엄마들이 중국에서 겪은 고통이, 그 트라우마가 한국생활에서 연속이다 보니까 그 영향이 자녀들에게 이어집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자신이 겪고 있는 병명이 뭣인지도 모르고 불안과 고통, 한국에서 말하는 주의력 결핍 즉 심리적 불안에 대한 약을 먹어야만 불안이 안정이 되는 증상이더라고요. 그것이 탈북가정 자녀들에게 나타나는 것으로 사회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최 씨는 북한에 교과서나 참고서 각종 교육자료가 부족해 북한 학생들이 배울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합니다.


: 북한을 말씀 드린다면 남북한의 학교와 비교했을 때 북한교육이 남한과 차이가 많습니다. 학교에 가 보니까 남한에는 너무 교과서가 많고, 참고도서도 많고, 선택도 많고요. 그런데 북한에서는 선택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한국에는 비디오라든지, TV라든지, 오디오라든지 교육자료가 풍부해 본인만 열심히 하면 배울 기회와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러나 북한에는 전혀 그렇지 못 하거든요. TV도 없고, 교과서가 부족하고 학용품이 부족해서 아이들이 배울 기회를 놓치는 것이 북한의 교육 현실입니다.


최 씨는 기독교를 접했다는 이유로 어려움을 겪는 선배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 기독교를 놓고 말하면 북한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숨어서, 비밀리에, 몰래 기도를 할 수 밖에 없는 북한사회상의 특성이 있습니다. 제가 체험했던 것은 제가 너무도 좋아하고 사랑했던 선배가 약사였거든요. 중국에 한 전도사가 먹을 쌀과 옷을 지원하니까 중국에 나간 거지요. 북한에는 먹을 것이 없으니까 쌀을 주는 걸 받고, 또 거기 가야만 쌀을 받으니까 성경책을 접하게 된 겁니다. 그 성경책을 접하고 난 그 부모님은 하나님을 믿게 된 거지요. 그러니까 이미 북한에 해방 전부터 하나님을 믿던 가정이라 그 어머니가 성경책을 받으니까 나무 행복하고 몰래 몰래 믿다가 딸보고 그 성경책을 읽으라고 한 거에요. 딸은 엄마 시키는 데로 뭔지 모르고 성경책을 읽었는데, 그걸 자기 친구하고 이야기 했는데, 그 친구가 보위부에 신고한 거에요. 그래서 갑자기 공개재판을 하더니 그 가족들을 보위부에서 관리소로 보냈습니다. 그 당시 공개재판을 목격하면서 하나님이 그때는 뭔지도 몰랐어요. 그저 저는 미신을 믿는 것으로 알고 미신을 믿으면 저렇게 감옥에 가야 하나 했는데 그 정도로 북한에는 아직도 기독교를 믿으면, 배척해야 되고 관리소로 가야 되는 것이 북한 사회입니다.


워싱턴에 많은 기독교인들이 북한을 위해 기도하는 것에 감동 받았다면서 자신도 북한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 저도 하나님을 믿으면서 북한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또 북한을 위해 많은 기도도 하겠습니다.


목요대담 오늘 이시간에는 탈북자 최영주 씨가 초등학교 교사로서 직접 체험한 남한과 북한의 교육현장에 대한 증언 내용으로 함께 했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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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샘 학생들이 미국 국회의사당을 방문해 기념사진을 찍었다. (사진 중에는 가이드와 미국에서 공부하는 탈북학생도 참가)
큰샘 학생들이 미국 국회의사당을 방문해 기념사진을 찍었다. (사진 중에는 가이드와 미국에서 공부하는 탈북학생도 참가)
사진제공: 큰샘


큰샘 방과후 교실은 탈북학생들을 남한 학교에서 잘 적응하도록 지도하고 있습니다. 큰샘 학생과 지도교사가 지난 여름방학 중에 미국 체험학습을 했는데 8월 초 약 3주간 일정 마치고 돌아갔습니다. 이번 미국 체험학습에서 미국 의회와 의회도서관, 미술관 그리고 주미대한제국공사관 등을 방문한 바 있습니다.


목요대담 오늘은 큰샘 방과후 교실의 학생 2명과 교사 등을 만나 미국 체험 학습에 관한 이야기 나눕니다.


이번에 탈북여학생 2명이 참가했는데 한 참가 탈북 여학생은 자유아시아방송과 회견에서 참 미국은 크고 넓은 곳이었다며 앞으로 기회가 되면 미국서 공부하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습니다. 또한, 

다른 탈북 여학생인 김 모양 만나 봅니다. 미국 체험 학습 이야기 들려 줄래요.


김 모: 미국 의회도서관에 많은 책이 있는 것을 한국에 와서도 몰랐고 북한에서도 몰랐습니다. 그리고 한반도에 대한 많은 책이 있어서 놀랐어요. 또 다른 체험장에서도 저희가 모르는 새롭고 신기한, 인상 깊은 것들이 많아서 아주 재미있었어요. 그리고 가장 재밌고 인상 깊었던 게 승마장이었는데, 한국보다 미국이 규모가 크잖아요. 그래서 넓은 곳에서 탈 수 있어서 좋았고, 재미있게 놀았던 것 같은데, 주미대한제국공사관 방문 시 한국역사로 한국에서 잘 몰랐던 것들이 미국에서 자세히 기록되어 있어서 아주 인상 깊었고요. 한 미술관에 갔었는데 제가 미술에 관심이 많았는데 그 미술관에서 할머니들이나 다른 성인들이 유명한 작가의 그림을 따라 그리는 것도 신기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안 되는데 미국에서는 된다는 게 문화 차이로 크게 느껴졌고

탈북 학생 김 모양과의 대화 내용입니다.


앞으로 어떤 꿈을 갖고 계세요.

김 모: 저 심리 상담사가 되고 싶어요.


북한에서 몇 학년까지 다녔어요.

김 모; 초등학교 2학년까지 다녔어요.


초등학교 2학년까지 다니면서 학교생활에 대한 기억이 있어요.

김 모: 별로 어릴 적 이어서 기억이 안 나요.


미국 체험하고 가서 공부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도 했어요.

김 모: 미국이 선진국이고 큰 나라이니까? 영어를 배워서 좀 더 저의 꿈을 키워나갔으면 좋겠다는 좀 더 큰 꿈이 생겼어요.


이번 미국 체험에서 어떤 다짐도 했나요.

김 모: 그렇게 큰 것은 아닌데 세계의 많은 사람이 있으니까 치료할 사람도 많은 것 같아서요. 저도 영어 배워서 많은 사람의 마음 상처 치료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학교서 영어도 배우지요.

김 모: 네


한국에서 배운 영어 미국 와서 잘 통했어요.

김 모: 한국에서 배울 때랑 미국 와서 직접 배운 게 달라서 한국에서 배웠던 게 직접 말할 때 잘 안 되어서 직접 가서 배우는 게 실력이 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도 한국서 배운 영어가 도움됐어요.

김 모: 단어가 도움 됐어요.


권 선생도 이번 미국 체험에 함께 동행했는데요. 느낀 점은


권 선생: 미국에서 직접 보고 느낀 것은 또 다른 문화를 배우게 된 거에요. 미국에 대한 역사라든지 새로운 문화를 접하게 됐고요. 3주간 연수하면서 너무나 좋은 기회가 됐고, 특히 우리 학생들에게 좋은 프로그램이 된 것 같아요.


남과 북의 교육 현장 다 경험했는데 다른 점이 있나요.


권 선생: 북한에서는 저희가 할 수 있는 게 없잖아요. 볼 수도 없고 말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나라 다 보니까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자유롭게 내가 보고 듣고 느낀 거를 그대로 표현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가 있고, 또 미국 같은 경우는 한국보다 또 다른 문화를 경험하게 됐거든요. 저희가 미국을 봤을 때 진짜 대국이라는 느낌을 받은 게 한 사람 한 사람 보게 되면 서로 간에 이해심도 많고 배려해 주는 것이 참 좋았고요. 문화 자체가 한국보다 더 안전하게 발전됐다고 할까, 제 생각에는 정말 대국이라는 게 이런 나라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어요.


북한에서 교육을 받으실 때 미국을 어떤 나라라고 배웠어요.


권 선생: 북한에서는 미국을 미 제국주의라고 얘기하는 거지요. 썩고 병들고, 병든 자본주의 사회라고 배웠거든요. 그러나 실제 저희가 미국에 와서 보니까 그게 아니고 너무나 살기 좋은 나라지요. 어떻게 보면 사람들 인성이라든지 모든 면에서 좋은 나라라고 생각하거든요. 사실 저희 3주간이라는 게 길면 긴 시간인데 체험하면서 아주 짧은 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저희 뜻 깊은 날들을 보낸 것 같아요.


미국에 와 첫 인상은


권 선생: 도착한 순간 신선한 공기가 좋았어요. 체험장을 보면 나라가 크니까 자동차들 정체가 적어 좋고, 물가가 싸서 좋았어요. 의회 도서관에 갔을 때 보니까 100년 전에 지어졌던 건물이라고 하는데, 건물 자체가 잘 지어져 있고, 장서에서는 역사에 관한 책들이 많이 있고, 역사 박물관 경우는 역대 대통령들에 대한 기록이 잘 되어 있었고요. 또한, 미국에 대한 역사에 대해서 알게 됐고, 북한에서는 초가집도 보기가 힘든 시기에 미국에서는 대형 건물을 지었다는 자체에 감명받았어요.


남북한 교육현장을 직접 보시고 비교하면


권 선생: 학교 교육 자체가 (저희 때는) 김일성 김정일에 대한 교육이 우상화되었고, 그걸 무조건 따라야 한다고 했어요. 그 외 다른 과목도 공부했는데, 한국은 우상화라는 것은 없잖아요. 일단은 내가 필요한 과목들, 중요한 과목들을 우선으로 해야 하니까 거기에 맞춰 하는 게 너무 자연스럽고요. 또 아이들을 가르칠 때 편하지요. 북한에서는 모든 게 조심스럽지만, 남한에서는 편하게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고, 또 내 경험을 실제로 아이들에게 보여주면서 편한 마음으로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어서 너무 좋아요.


미국 체험 학습에 대한 회고


권 선생: 앞으로 좋은 기회가 생겨 우리 큰샘 아이들뿐만 아니라 더 많은 아이가 이런 체험으로 큰 꿈을 키우며, 한국뿐만 아니라 외국에 나가 공부하면서 이제 통일되어서 이 아이들이 체험한 것들 북한 친구들이나 아니면 학생들에게 잘 가르쳐 줄 기회가 다가올 것으로 확신합니다.


큰샘 박정오 대표는 앞으로 많은 학생이 미국 체험할 수 있도록 도움의 손길이 있기를 당부하기도 했습니다.


박정오: 통일을 대비해서 이런 많은 경험과 공부를 통해서 통일의 역군으로 키우고, 통일된 다음에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배움의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목요대담 오늘은 큰샘 방과후 교실의 학생 2명과 교사 등을 만나 미국 체험 학습에 대한 이야기로 함께 했습니다. 지금까지 인터뷰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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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렙선교회 제공
갈렙선교회 제공
Photo: RFA


갈렙선교회가 지난 8월 26일 ‘북한 약국에도 다 있다’ 제목의 동영상을 제작해 유튜브에 공유하고 있습니다. 7분 46초 분량의 영상에는 북한 약국에서 파는 약들 진통제, 파스, 소화제, 아스피린, 청심환 등 다양한 한약과 양약들이 진열되어 판매되고 있고 또 잡화상에는 고추장, 커피, 과자, 옷, 신발, 담배, 술, 음료수, 학용품, 전기용품 등이 진열되어 판매되고 있다고 갈렙선교회 김성은 목사가 자유아시아방송과 회견에서 밝혔습니다.


목요대담 오늘은 영상으로 제작한 북한의 약국과 잡화상에 대해 김성은 목사와 회견을 통해 알아봅니다.


지난 8월 26일 자 유튜브 동영상으로 북한 약국과 잡화상을 제작하셨는데 특별한 제작의 의미가 있을까요.

: 북한의 중부 도시 지역인데요. ‘북한 약국에 다 있다’는 제목으로 영상을 올렸고요. 당연히 북한에도 약국이 있지요. 그러나 왜 그런 내용으로 영상을 올리게 됐느냐면 고난의 행군 때는 북한이 약도 없을뿐더러 약을 사고 싶어도 돈이 없잖아요. 수술하려고 하면은 의사들이 고난의 행군 때 이후로는 물자가 부족하니까 수술 받는 사람에게 약을 구해오라! 그래서 탈북자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의사가 수술에 필요한 약이라든지 기구 등을 써 준대요. 그럼 장마당에 가 구매를 해야 하는데 과거에는 돈도 없고 약도 없고 해서 죽을 수 밖에 없는 그런 상황들이 많이 있었지요.


북한 내부 영상을 공개하시면서 생각나는 북한 주민 어떤 변화가 있었습니까?


: 저희 갈렙선교회가 북한 내부를 계속 모니터링 해서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있는데요. 북한의 요즘 변화라면 탈북민들이 과거에는 탈북했다. 북한으로 돌아갈 때는 쌀을 달라! 그 외 다른 것을 달라 이랬는데 요즘의 변화는 이제는 ‘돈’만 달라! 요즘은 북한에 돈이 없지 물건이 없지 않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요. 그 이유가 바로 요즘 장마당이라든지, 소위 매대, 즉 상점을 보면 영상에서 보는 것 같이 상당히 많은 물건이 대부분 중국 것이긴 하지만, 밀수로 북한에 들어와 있기 때문에 소위 그들이 말하는 돈이 없지, 물건이 없지 않다. 그래서 상점들이 생겨나면서 북한 어떤 시장경제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굉장히 빠르게 돌아가는 모습들을 볼 수 있겠습니다. 저희들이 교회에 탈북민들과 같이 보면서 무슨 약이냐 물어봤을 때 대부분 소화제, 우리가 놀랄 때 정로환이라든지, 아스피린이라든지, 간단한 구급약들이 눈에 띄게 많이 있었고, 또 한방 보약은 아니지만, 몸의 기력을 좋게 하는 그런 약들이 있었습니다.


궁금한 게 북한 약국에 약사가 있는지 또 어떤 약들이 판매되고 있습니까?

8월 26일 갈렙선교회가 제작한 동영상에서 캡쳐한 북한 잡화상 중 영어로 선명하게 풍선에 Happy Birthday 쓰여져 있다.
8월 26일 갈렙선교회가 제작한 동영상에서 캡쳐한 북한 잡화상 중 영어로 선명하게 풍선에 Happy Birthday 쓰여져 있다. 갈렙선교회 제공

: 약사가 있는 것은 아니고요. 간단한 상비약 정도니까요. 우리가 탈북민들에게 물어보면 북한에 이런 약들이 없다 보니까? 양귀비, 마약 원료지요. 그런 것들을 옛날에는 삶아서 먹고 배가 나았다. 수술할 때 고통을 못 참으니까 마약을 복용하게 하고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했던 게 북한의 실정이었어요. 그간에는요. 그런데 이제 많이 그런 부분도 점차 안정되고 상비약도 진열돼 있고,


한국에 와 있는 탈북자들에게 가족들이 약 보내달라고 요청한다고요.


: 중국에서 필요한 것들은 밀수해 가고 북한 시장 안에서 북한제 보다는 한국의 약품이라든지, 왜냐하면 중국 약품들을 불신해요. 북한 내부에 있는 사람들도요. 한국의 탈북자 가족을 통해서 무슨 약을 보내달라고 하든지, 한국 약의 내용은 모르지만, 예를 들어서 어디 치료에 좋은 약이 있다면 보내달라, 저희 갈렙선교회도 북한선교를 하다 보면 북한군인들이 필요한 약, 그러니까 파상풍 걸렸다든지, 아니면 관절염 또는 결핵약 등 필요한 약들을 중국제품 보다는 한국에서 보내주기를 선호하지요. 소위 없는 게 없이 다 있는 것 같아요. 음료수부터 시작해서 남성들이 피우는 담배, 구두 같은 거는 형용 색색의 남녀 구두 또 여러 가지 있는데 특이한 점은 이런 잡화상 안에서 LED 모니터 같은 것도 눈에 띄더라고요. 북한은 LED모니터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없거든요.


잡화상에서 판매되는 북한상품 전자 제품도 있었나요.


: 보니까 그런데 또 상표에는 북한상표가 그려져 있더라고요. 그런 걸 봐서는 주문자 방식으로 해서, 북한이 중국에서 갖고 들어와서 상품을 다시 포장해, 북한산으로 둔갑시켜서…..  두 가지인 것 같아요. 이제 북한도 기술력이 발달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부분도 있을 것 같고요. 또 이런 식으로 하면서 합법적으로 또 당 간부들이나 이런 사람들이 중국에서 수입해서 북한주민들에게 팔아서 이익을 취하는 이런 부분들로 볼 수 있겠습니다.


장마당과 잡화상을 어떻게 다른지요.


: 장마당은 주로 먹거리 위주로 이지요. 보면 콩나물부터 산나물, 돼지고기, 여러 가지가 있지만, 장마당에서 유통하기가 힘든 것들이 있잖아요. 예를 들어서 텔레비전이나 LED나 전기용품이라든지, 세탁기도 있고, 냉장고도 있었거든요. 이런 것들은 장마당에서 살 수 있는 것 아니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거기가 마치 미국 같으면 월마트 규모는 작지만, 북한으로 치면 그렇지요. 한국의 상점형식을 띤 그런 부분과 규모는 작지만 비슷하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탈북자들 북한에서 한국의 영화나 드라마를 봤다는 증언 해 줬다고요.

북한 잡화상 영상에서 캡쳐한 전자기기코너.
북한 잡화상 영상에서 캡쳐한 전자기기코너. 갈렙선교회 제공

: 저희 교회 탈북민들한테 텔레비전을 왜 그렇게 좋아하느냐! 미디어를 좋아하느냐! 물어보면 북한은 뭐 당에 대한 충성심의 영상이라든지 그런 드라마이지만, 한국 것은 다양성을 가지고 있잖아요. 고난의 행군 이후에 탈북자들이 중국에 갔다가 다시 들어간 사람들이 중국이 어떠하더라 또 중국은 한국을 얼마나 동경한다더라 그건 것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또 북한 안으로 많은 한국의 비디오들이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아까 잡화상에서 본 것처럼 그 안에 북한에서도 CD 기계, 중국에서 밀수해 간 전문기계들을 많이 팔게 되니까 당연히 CD 기계만 있어 볼 수 없잖아요. 그래 CD를 전문으로 파는 곳이 생겨나고, 많은 탈북민들이 거의 북한에서 한국 드라마를 다 봤다. 이런 게 제 이야기가 아니라 탈북민들의 증언을 통해서 알고 있는 거지요.


목요대담 오늘은 지난 8월 26일 동영상으로 제작한 북한의 약국과 잡화상에 대해 김성은 목사와 회견을 통해 알아봤습니다. 지금까지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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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내 지하교회 신자들이 희미한 손전등 아래서 성경을 읽고 있는 모습.
북한 내 지하교회 신자들이 희미한 손전등 아래서 성경을 읽고 있는 모습.
Photo courtesy of The Voice of the Martyrs

북한의 지하성도 존재가 북한 보위부의 생활총화 교육 현장에서 밝혀졌다고 전 북한기독교총연합회 초대 회장 임창호 목사가 자유아시아방송과 회견에서 밝혔습니다. 최근 한국에 도착한 한 탈북자가 북한에 있을 당시, 북한 보위부가 진행하는 생활총화에 참가 ‘북한의 많은 지역에 기독교인들의 이름과 장로 집사 직분까지 써가면서 설명해 줘 기독교인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며 ‘기독교를 믿는 것은 간첩죄에 해당하며 국가 반역죄에 속한다며 중국으로 월강했어도 절대로 선교사나 교회에 가서는 안 된다는 교육도 받았음’을 증언해 줬다고 임 목사가 전했습니다.


목요대담 오늘은 북한의 지하성도들 존재가 북한 보위부의 생활총화에서 밝혀졌다는 것에 대해 임창호 목사와 인터뷰를 통해 알아봅니다.


최근 한 탈북자 만나 북한에 있을 때 생활 총화 교육받았던 이야기 들으셨다고요.


: 중국을 통해서 들어온 탈북자로부터 이런 저런 얘기를 듣다가 북한 안의 지하 성도들 이야기, 다시 말해서 기독교를 믿다가 잡히든지, 아니면 북한당국이 어떻게 기독교인들 색출에 관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보위부원들이 정기적으로 교육을 한답니다. 매주 토요일이 되면은 전국 김일성 동지 혁명 역사 연구실(추정치로는 약 15만 개 정도 있다고 함, 우리 식으로 말하면 김일성 예배당이지요.)에서 전 국민을 대상으로 생활총화를 해요. 생활총화를 우리 식으로 말하면 일주일 동안 김일성의 말씀대로 얼마큼 잘 살았는지, 잘 못살았는지 반성도 하고 자기비판도 하고요.

생활총화 교육에서 중국에 있는 한인 교회에 가선 안 된다는 교육도 있었다면서요.

: 보위부 요원들이 교육을 하기도 하고요. 다양한 방법으로 교육하는데 교육 내용 가운데 북한에서 미신과 종교에 현혹되어 패가망신하는 경우가 많다. 패가망신한 경우 하나가 기독교를 믿고, 하나님이라고 하는 걸 믿는 이런 사람들이 있다고 하면서 이런 종교를 따라 하면 절대 안 되고 너희가 중국에 월경(불법으로 북한을 떠나 중국으로 갔다는 이야기)해서 먹을 것을 찾으러 간다든지, 친척을 만나러 간다든지 해도 교회는 절대로 가지 마라!


중국에 있는 교회 이름 등도 이야기했나요.


: 어디 가면 무슨 교회가 있고, 용정에 무슨 교회가 있는데 거기에 가면은 남조선의 간첩들이 숨어 있고, 선교사라는 이름으로 숨어 있어 여러 가지 정보도 캐내고 또 북한 안에서 간첩활동을 하는 그런 교육을 시킨다, 그러기 때문에 그러한 선교사를 만난다든지 교회 간 것이 발각되면 북한에선 간첩죄에 해당한답니다. 그러니까 반역죄로, 국가의 반역죄로 해당하니까 절대로 가지 마라,


북한의 지하성도가 살고 있다는 증언도 있었습니까?


: 예를 들어서 그런 걸 하다 걸린 사람들이 이러 이러한 사람들이 있다 하면서 뭐 황해도 사리원에 또는 해주에 함경도에 청진과 함흥에 평안도에 의주에 주민의 이름을 줄줄대고 그 지역에 옛날부터 이런 간첩질(간첩활동) 하든 사람들이 있었다. 종교와 미신 점쟁이에 현혹되어서 간접행위를 한 사람이 있었는데 이제 잡아서 나중에 알고 보니까 어느 지역엔 해방 전부터 이런 짓을 한 아무개 장로의 손자 아무개, 다음에 아무개 집사의 딸 아무개 이름 대면서 이야기 한대요. 그러니까 집사 장로 후손들을 점쟁이 후손, 미신의 후손이라고 이야기하고 간첩질을 하는 자들의 모형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지요. 그런 것을 북한정부가 잡아내 일망타진해 잡힌 적이 있는데..


북한지하성도들이 직접 신앙생활 하고 있는 것과 관련한 내용도 있나요.


: 그런 사람들이 최근에도 중국에 왔다 갔다 하면서 용정의 무슨 교회, 또 다른 교회에 가서 교육을 받고 간첩질을 해왔다. 말은 그렇게 하는데 우리식으로 말하면 뭐에요. 지하성도들이 중국에 가서 신앙교육을 받고 세례받고 거기서 다시 용기를 얻어 다시 들어와서 열심히 지금까지 북한 안에서 신앙생활을 해 왔다는 거지요. 이런 이야기를 보위부 교육을 받으면서 들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에요.


만나신 탈북인 한국에 온 지 얼마나 됐나요.


: 그분은 남한에 오신지 얼마 안 되는 분이에요. 북한에 3-4년 전에는 있었던 사람이니까 그때 당시 이분이 북한에서 들었던, 교육받았던 내용을 이야기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최소한도 2012년부터 2014년 전후로 해서도 북한에서는 지하 성도들이 색출 당하고 있었고 또 일망타진 됐다든지 또는 잡혀서 북한정부로부터 이렇게 잡혀 온 사람들이 교육 자료의 대상자였다는 것이지요.


보위부 요원들이 지하성도들의 활동에 대해 말한 것도 있는지요.


: 적어도 한 7-8년 전까지만 해도 아직 북한의 지하 셩도들이 여기저기 지역에서 활동했었는데 그분들이 이렇게 잡혔다는 것을 북한의 보위부나 정부기관의 요원들이 교육을 하는데 교육재료로 썼다고 볼 수 있고 이걸 다시 뒤집어서 말하면 북한정부가 북한 안에 지하 성도들이나 기독교인들이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자기들 스스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북한에는 지하성도들이 얼마나 있는지요.


: 강제 수용소에 예수 믿기 때문에, 기독교 종교와 관련돼서 수감된 자들이 4만 명 정도 된다는 이야기는 한 10여 전부터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들키지 않고 잡히지 않고 사는 사람들도 최소한 그 정도는 되지 않을까8만 명 이상은 북한의 지하 성도들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북한의 지하성도들에게 주는 이야기


: 제가 방금 말씀 드린 내용은 바로 북한에서 오신 분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아마 이 방송을 듣고 계시는 혹시나 북한 성도님이 계신다면 우리 한국과 전 세계가 여러분의 존재와 기도를 듣고 있고, 여러분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 주시고 조금만 더 참으시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강력한 역사 하심이 곧 있을 거라고 믿고 전 세계 모든 기독교인이 기도하고 있으니 조금만 인내해 주시면 주님께서 여러분의 기도에 응답하실 날이 곧 올 줄로 믿습니다. 힘내십요.


목요대담 오늘은 북한의 지하성도들 존재가 북한 보위부의 생활총화에서 밝혀졌다는 것에 대해 임창호 목사와 인터뷰를 통해 알아봤습니다. 지금까지 인터뷰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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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서울 송파구 서울놀이마당에서 열린 '사랑의 송편 빚기'행사에서 다문화 주부, 주민 등이 오색 송편을 빚고 있다.
지난 19일 서울 송파구 서울놀이마당에서 열린 '사랑의 송편 빚기'행사에서 다문화 주부, 주민 등이 오색 송편을 빚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화교가 우리나라에 살기 시작한 것은 130년이 넘습니다


지난 6월 미국 트럼프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만난 싱가포르는 화교국가라고 알고 있는데 실제는 다민족국가라지요? 한국은 다민족국가는 아니지만 이제 다문화사회라는 말이 낯설지 않을 정도로 여러 민족들이 들어와 사는 나라가 돼 간다고 봅니다. 하지만 북한에는 다문화사회 현상을 볼 수 없다고 알려집니다. 그래서 오늘은 남북한의 다문화사회에 대해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임채욱 선생: 그렇습니다. 싱가포르는 중국계 화교가 80%가까운 인구지만 말레이시아계 사람, 인도계 사람이 함께 사는 다민족국가입니다. 따라서 문화도 다문화국가로 볼 수 있지요. 말씀대로 한국사회는 지금 다문화사회가 돼 갑니다. 다민족국가라고 할 수는 없지만 외국인 거주자가 5%정도면 다문화사회라고 한다는데,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이 4%수준에 이르고 있다니까 얼마 안 있으면 5%수준이 되지 않을까 보입니다. 그러면 말 그대로 다문화사회가 되는 것이지요.


한국에 다문화사회가 돼 간 경위는 어떻습니까?


임채욱 선생: 한국에서 산업이 한참 팽창하던 1990년대 중반부터 노동자들 부족현상이 나타납니다. 이에 대처하려고 외국인 비숙련 노동자들을 불러들이는데 이들을 비롯해서 농촌을 중심으로 외국인 여성과의 결혼이 늘어나고 북한에서 탈북한 동포들이 들어오게 되면서 여러 문화가 섞이게 됩니다. 그전에 낯선 문화라면 그저 중국인 화교 정도만 있던데 비해서 아주 다양한 문화를 접촉하게 된 것입니다. 동남아 사람들 문화, 중국 조선족문화, 몽골족 문화, 저 중앙아시아 사람들 이스람 문화도 만날 수 있게 된 겁니다.


화교는 오래 전부터 남북한에 다 있는 존재가 아닙니까? 화교야 낯선 사람들이라고 볼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임채욱 선생: 그렇긴 합니다. 화교가 우리나라에 살기 시작한 것은 130년이 넘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1882년부터인데, 화교는 그 전보다는 줄어들었지만 지금 한국에 한 2만 5000명 정도, 북한에 1만 명 정도가 있다고 합니다. 한 때 8만 명이나 되던 때에 비해 많이 줄어든 것이지요.


8만명이나 됐습니까? 그런데 상대적으로 북한에 많은 편인 것 같은데 화교인구가 줄어든 것은 이유가 있습니까?


임채욱 선생:  1940년대 초반에는 8만 명에 이르기도 했다는 통계가 있지요. 북한에서는 김일성 통치시기에 화교가 대우를 받았습니다. 김일성이 만주 땅에서 활동할 때 도움을 준 사람 중에 중국 사람이 많았고 이들이 해방 후 북한에 들어와서 화교로 살았다고 합니다. 그전부터 있던 화교와 함께 화교로 살았지요. 지금 북한에서는 화교에 대해 표면적으로는 차별정책을 취하지는 않지만 별개의 존재로 보지 않고 북한공민들처럼 노동에도 동원되고 군대에도 가야 하지요. 10년씩이나 군대생활을 해야 하니 이를 피해서 중국으로 이주하는 경우가 늘어난 것이지요. 한국에서도 화교는 줄어들었는데 몇 가지 정책에 따라 화교 경제활동이 위축됐기 때문이라고 하지요. 1957년 무역법을 통해 화교상인의 대외무역을 막았고 1961년에는 화교가 신규로 토지를 사들이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1972년부터는 화교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듣건대 북한에서는 지금도 화교가 무역분야에는 활동을 많이 한다고 하더군요.


임채욱 선생: 북한에서는 화교를 오래 동안 제국주의자들로부터 박해와 천대를 받아온 존재로 보면서 중국의 독립과 번영, 부강발전을 바라고 도우려고 했던 사람들로 봤습니다. 그래서 앞에서 봤듯이 김일성 통치시기에는 화교가 우대됐고 그 후손 중에는 지금 북한 경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사례로 북한 바다 어업권을 가진 사람도 있고 이른바 돈주로 돈을 많이 가지고 장마당에서 힘을 쓰는 사람도 많다는 것이지요. 북한 장마당 돈주들 절반이 화교라는 말도 있습니다. 화교들이 직접 장사를 하지 않아도 북한 사람을 내세워 물건을 대주는데 일설에는 이들 화교자본이 북한 군수산업에도 손을 뻗치고 있다고 합니다.


북한에는 다문화라고 해도 화교들의 문화 외에는 특별한 것이 없겠군요.


임채욱 선생: 화교 외 외국인 거주자가 많지 않으니 다문화사회라고 할 것도 없지요. 화교도 북한공민으로 돼 있고 한국에서처럼 그들만의 중국풍을 띈 축제를 연다든가 하는 일도 없으니 화교문화다운 모습도 보기 어렵습니다. 한국에서는 지역별로 화교축제도 엽니다. 작년 대구에서는 큰 축제를 열어 즐겼고 인천이나 부산에서도 매년 화교축제가 열립니다.


한국에서는 다문화 모습을 늘 상 보고 접할 수 있으니 말 그대로 다문화사회가 돼 가는 것이군요.


임채욱 선생: 그렇습니다.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줄잡아 200만 명이라 합니다. 여러 나라에서 온 외국인들 중에는 한국국적을 얻은 사람도 있겠고 얻지 않은 불법이주자도 있지요. 이들은 나름대로 자기들 축제를 열고 그들만의 문화를 향유하고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한국사회의 이런 다문화현상을 비난하고 있지요. 순수단일 민족의 나라에 잡탕문화가 섞여 들어 얼치기 문화가 형성되고 있다고 욕을 합니다. 하지만 문화인류학에서는 순수혈통 보다 여러 다른 혈통사회가 우수한 인재를 낳을 수 있는 바탕이라는 설도 주장합니다. 우리 국민들은 단일 민족성을 중시하지만 그것은 듣기 좋은 말일뿐 세상에 완전한 단일혈통의 민족은 없습니다.


다문화사회에서 요청되는 바람직한 태도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임채욱 선생: 외국인 이주자도 공존을 하는 존재라고 본다면 이들에 대해서 인정과 관용의 태도를 취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우선 우리 국민으로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고 관용의 태도로 동화시키는 것이 필요하지요. 북한에 사는 화교 중에는 중국말을 못하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한국에 사는 화교들이 자기들 학교를 독자적으로 세워서 중국말을 가르치는데 비해 북한에 사는 화교들은 그게 잘 안 되는 겁니다. 북한에도 화교학교가 있긴 합니다만 중국어 과목은 중국사람이 가르치지만 나머지 다른 과목은 북한 교사가 우리말로 가르칩니다. 그러니 북한에 있는 화교 자녀들은 중국말을 아주 잘 하는 편이 못 되는 모양입니다. 독자성과 다양성을 인정해주는 것이 외국인 이주자에 대한 옳은 정책이 될 것입니다.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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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화랑마을 전시관.
사진은 화랑마을 전시관.
연합뉴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music

다음 달 10월, 경상북도 경주에서 화랑마을이 생긴다는 보도입니다. 경주라면 신라의 도읍지였고 화랑이라면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루는데도 역할을 한 청년들 아닙니까? 오늘은 화랑의 무리 화랑도(花郞徒)에 대해서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이야기 나눠보기로 하겠습니다.


임채욱 선생: 네, 저도 화랑마을이 문을 연다는 보도를 봤습니다. 지난 3월 경주시 송화산 일대에 만들어져서 7월부터 시범운영을 해오다가 10월에 정식으로 문을 여는 것이지요. 이 것은 경상북도 3대문화권사업의 하나라고 합니다.


그럼 그 규모도 크겠군요. 화랑마을 소개를 좀 더 해 주시죠.


임채욱 선생: 화랑의 문화를 보여주고 또 화랑들이 한 수련을 직접 체험도 하는 시설이 완비돼 있다고 합니다. 3대 문화사업은 지역에 따라 각기 신라문화, 가야문화 그리고 유교문화를 통해 배울 바를 본받아 새로운 것으로 거듭나게 하는 말하자면, 법고창신(法古創新)하는 문화사업인데, 화랑마을은 신라문화 사업의 한 축이지요. 화랑마을에는 화랑도에 대한 전시관이 있고 각종 수련시설이 있습니다. 신라의 꽃다운 청춘들이 늠름하게 무예를 연마하던 것을 체험하는 시설들이지요.


화랑의 문화라고 했는데 화랑에 대해서 말씀해주시죠.


임채욱 선생: 화랑은 신라에서 무예를 연마하는 청소년 단체 화랑도에서 우두머리를 일컫는 말이지요. 화랑도는 화랑과 낭도로 구성돼 있는데 화랑은 말 그대로 꽃처럼 아름다운 남자라는 것입니다. 꽃처럼 아름답다는 것은 외모가 아름답기도 하거니와 청년답게 씩씩하다는 것이지요. 이런 화랑 몇 사람을 지도자로 해서 그 밑에 15살에서 18살까지의 수백명, 또는 수천명의 낭도를 둔 것이 화랑도입니다. 화랑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사람은 국선이라고 칭하고 화랑도 전체를 이끌게 했습니다. 화랑도가 제도로 자리잡은 것은 진흥왕때(576년)입니다. 화랑도는 산천경개를 무술을 익히고 집에 들어오면 효도하고 밖에 나가면 믿음으로 벗을 사귀고 나라에 충성하는 무리로 자라게 됩니다. 나아가서 이들은 싸움에 임해서는 물러나지 않고 산 것을 함부로 죽이지 않는 이른바 세속5계라는 것을 지키려고 했기에 이런 정신이 바탕이 돼서 나중에 신라가 3국을 통일하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됩니다.


삼국통일에 큰 역할을 했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있는지요?


임채욱 선생: 삼국통일전쟁 시기에 신라와 백제가 싸운 황산벌 전투가 있습니다. 김유신이 이끄는 신라군사와 계백이 이끄는 백제군사가 황산벌, 지금의 충청남도 논산지역인 이곳에서 싸울 때 신라군에서 화랑출신인 관창이 혼자서, 그러니까 필마단기로 적진에 달려갔다가 사로잡히지요. 너무 어려서 백제장수가 돌려보냅니다만 다시 돌진해 오지요. 관창뿐 아니고 반굴이란 화랑도 그렇게 용감하게 싸웠다고 하지요. 계백장군은 “소년도 이러하거늘 장수들이야 어떻겠는가”했다고 합니다. 신라군은 화랑들의 용감성에 힘입어 승리를 얻습니다. 김유신을 도운 가장 가까운 참모(김흠순)도 화랑출신이고 그 아들이 반굴입니다. 산천경개를 벗 삼아 전국을 다니면서 무예를 익힌 무사집단의 승리이기도 합니다.


북한에서는 화랑도를 어떻게 봅니까?


임채욱 선생: 화랑도가 생긴 유래나 화랑의 정신에 대해서는 사실대로 긍정적으로 보지요. 2명 이상의 화랑이 청소년을 모아서 무술, 훈련, 경기 등을 집단적으로 하는데 이들 화랑도는 물욕을 버리고 약속과 신의를 숭상하며 왕과 부모를 잘 섬기는 것을 미덕으로 내세웠다고 말합니다. 바르게 본 것이지요. 그런데 이런 사상들은 예로부터 인민들 속에 전해오던 아름다운 도덕풍습인바, 신라통치배들은 이것을 봉건사회의 요구에 맞게 고쳐서 왕과 지배계급에 충실하도록 왜곡시켰다고 말합니다. 신라사회가 봉건사회라고 규정한 것이라든가 이미 있던 좋은 도덕윤리사상을 신라통치배들이 자기들 요구에 맞도록 꾸몄다고 하는 주장을 합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틀린 주장입니다. 신라에 의한 삼국통일을 긍정적으로 보지 않으려는 의도가 보이는 것이지요.


신라통치배라든가 고구려통치배라든가 하는 표현대로 봉건시대 통치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인 것 같은데요.


임채욱 선생: 예, 그렇습니다. 역사의 발전단계에서 고대노예 사회 다음 단계가 봉건사회인데 북한역사학계에서는 삼국시대를 봉건시대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한데 같은 봉건시대 나라인데도 신라통치자를 두고는 신라통치배란 표현도 하는데 고구려 통치자에 대해서는 고구려통치배란 말은 피하고 있습니다. 고구려 정통성 주장의 연장선에서 고구려 관련 표현에는 긍정적인 표현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럼 북한에서는 화랑마을 창설을 그렇게 긍정적으로 보지 않겠군요.


임채욱 선생: 당연히 그럴 겁니다. 화랑이 삼국통일전쟁에서 활약을 어떻게 했던 간에 신라가 삼국통일을 한 것을 좋게 평가하지 않지요. 신라에 의한 삼국통일은 불완전한 통일이었고 고려가 완전히 삼국통일을 이뤘다고 보지요. 신라는 당나라 힘을 빌려 고구려와 백제를 망하게 했지만 고구려 옛 땅은 차지하지 못했고 바로 그 고구려 땅에 20년 뒤 고구려 유민들이 발해를 세웠으니 완전한 통일을 한 게 아니라는 논리지요. 무엇보다 백제와 고구려가 망한 뒤 그 땅에 눌러앉으려는 당나라 군대를 물리치는데도 백제유민이나 고구려 유민들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다는 주장을 하지요. 결론적으로 말해서 신라의 삼국통일은 우리 국토의 남부지역의 통일에 불과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삼국통일에 화랑도의 역할이 있었다는 것도 크게 평가 안하지요.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고구려가 망할 때는 이미 압록강 북쪽 지역은 고구려통치권이 미치지 못했던 상태가 아닌가요?


임채욱 선생: 그렇습니다. 고구려사를 전공한 학자 중에는 고구려 장수왕 때 지금의 만주 땅 국내성에서 평양으로 수도를 옮기는데, 이게 크게 잘못됐다는 주장을 합니다. 이게 우리나라 영토를 줄인 결정적인 원인이지요. 그래서 신라가 삼국통일을 해도 만주 땅에 있던 옛 고구려 영토까지 할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신라의 삼국통일을 비판하지만 그것이 민족문화면에서는 아주 긍정적입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할 당시 세 나라는 사실상 말이나 문화에서 같은 민족이라고 하기에는 동일성이 아주 약했습니다. 이걸 하나로 융합시킨 것이 통일신라시대입니다. 고려가 통일을 시겼다고 하지만 신라에 의해 1차적으로 통일됐기 때문에 이 바탕에서 2차적으로 완결된 것이라고 봐야합니다.

신라에 의한 삼국통일을 긍정적으로 본다면 화랑도의 존재는 의미있게 평가될 수 있겠군요.

임채욱 선생: 그렇습니다. 백제나 고구려가 망할 당시 이 두 나라 결코 군사력이나 물자 생산에서 신라보다 허약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다만 정신력에서 신라보다 떨어졌다고 봅니다.

백제가 망하고 고구려가 망하기 전인 서기 668년 6월 신라장군 김유신은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 신라는 충성과 믿음 때문에 생존하고 있다. 백제는 오만 때문에 이미 망했고 고구려는 교만 때문에 위태롭다” 백제의 마지막 왕 의자왕은 신라를 공격해서 100여개의 성을 빼앗았지만 오만과 향락에 빠져 신라 공격에 대비하지 않았고 고구려는 연개소문이 안시성에서 당나라를 막아낸 뒤 교만에 빠져 독재를 하면서 나라를 구렁텅이로 빠트렸습니다. 그러나 신라는 약자였지만 20년 가까운 장기전에서 화랑도 정신의 충성과 믿음을 바탕으로 통합을 이뤄냈기 때문에 승리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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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영국, 중국, 미국 과학자로 구성된 국제공동연구진이 2016년 4월 백두산 천지 인근 60㎞ 안에 지진계를 설치해 지진파 자료를 분석하는 모습.
북한과 영국, 중국, 미국 과학자로 구성된 국제공동연구진이 2016년 4월 백두산 천지 인근 60㎞ 안에 지진계를 설치해 지진파 자료를 분석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국립환경과학원도 백두산 천지 물 20억 톤이 화산 폭발 때 어떻게 될까를 시물레이션 분석을 해봤다고 합니다

백두산이 활화산으로 폭발할 수도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지요? 그래서 남북한이 공동연구를 해보자는 의견이 전혀 비현실적이 않다는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통일문화산책 오늘 이 시간에는 백두산 폭발을 둔 공동연구에 대해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알아 보겠습니다.

임채욱 선생: 네, 우리민족의 성산인 백두산은 그 상징성만으로도 내세우고 싶은 산인데, 폭발할 수도 있다는 보도는 우리를 우울하게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과학적 근거에 따른 것이기에 냉철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주장은 작년(2017년) 9월 서울에서 세계적인 화산학자들이 모여 백두산 폭발문제를 다룬 학술회의에서 나온 것이라고 합니다. 물론 이전에도 간간이 그런 주장들이 나오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주장들이 나왔습니까?

임채욱 선생: 백두산은 2000년대 들어서 지진이 여러 차례 일어났습니다. 2002년에는 백두산 천지 밑 부분에서 한 달에 250여 차례 지진이 느껴지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지진이 백두산의 화산활동을 알리는 신호탄이라는 견해가 제기됐다는 것입니다. 이게 인공지진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도 있는데, 인공지진이라면 북한 핵실험과 관련이 있다는 주장이 힘을 받는 것이지요. 핵실험으로 발생한 인공지진이 지하에 있는 마그마를 자극해서 화산활동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까운 시기 안에 일어날 수 도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인공지진으로 화산분화가 일어난 일은 전례가 없다는 주장도 있다고 합니다.

백두산은 한 1000년 전에도 폭발한 일이 있었다면서요? 이 폭발로 발해가 멸망했다고 하는 학설도 있다지요?

임채욱 선생: <고려사>란 역사책 946년에 개성에서 ‘하늘의 북이 울렸다’란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일본 나라(奈良)의 한 절에서도 이 해 11월 ‘하얀 재가 눈처럼 떨어졌다’란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기록이 맞다는 연구가 서울 학술회의에서 확인됐다는 것입니다. 영국 캠브리지 대학교수인 클라이브 오펜하이머 박사가 2011년부터 5년간 백두산 현지에서 연구한 결과는 백두산 폭발이 946년 11월에 일어난 것을 알아냈다고 합니다. 그는 백두산에서 운 좋게도 찾아낸 지름 1m 크기의 낙엽송 나무화석을 탄소연대측정법으로 나이테를 분석했더니 이 연도가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발해가 망한 것은 이보다 앞선 926년이니까 20년 뒤 폭발과는 관계가 없다는 것이 증명된 것이라고 보겠습니다.

백두산 화산폭발에 대해 북한학자들의 관심과 연구는 어떻습니까?

임채욱 선생: 작년 8월에도 양강도 삼지연군에서 국가과학원 지질학연구소, 김일성종합대학, 김책공업종합대학, 평양건축종합대학들의 과학자, 기술자, 교수들이 모여 발표도 했습니다. 발표에서는 지진 발생과 백두산 화산 분출 가능성에 대한 과학적인 예측과 지진 및 화산 관측의 정보화 실현방안들이 발표됐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백두산 화산폭발에 대한 연구는 어떻습니까?

임채욱 선생: 여러 학자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것 같고, 국립환경과학원도 백두산 천지 물 20억 톤이 화산 폭발 때 어떻게 될까를 시물레이션 분석을 해봤다고 합니다. 그 결과는 만일 폭발이 일어나면 마그마가 물과 섞였다가 식으면서 어마어마한 양의 화산재가 된다고 내다봅니다. 용암가스와 화산재에 있는 입자가 혼합된 물질이 지상에서 8km 이상 올라간 후 북아메리카와 그린란드 상공까지 확산된다는 결과를 얻었다고 합니다. 무서운 일입니다.

백두산이라면 중국도 관심을 가질 텐 데, 중국 쪽 연구도 있겠지요?

임채욱 선생: 당연하지요. 중국 지질연구소는 1999년 화산관측소를 세우고 연구인력을 투입했는데, 백두산 지하에는 4개의 마그마 방이 있어서 이게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면 폭발위력이 커진다는 주장을 내놨다고 해요. 또 중국과학기술대학 지질연구소에서는 백두산 지하 마그마 지열이 땅으로 전달되고 있음을 확인했다는 보고를 했습니다.

남 북학자들의 공동연구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는 있습니까?

임채욱 선생: 북한은 2007년 이후 한국학자들에게 세 차례 정도 공동연구를 제의한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핵 실험 때문에 남북한 관계가 악화되는 바람에 추진이 될 수 없었습니다. 앞으로 남북한 관계가 악화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백두산 공동연구 기지를 만들고 남북한 학자 수백 명이 달라붙는 여러 분야 공동연구를 해 보면 좋겠군요. 화산폭발 문제뿐만 아니고 광물자원, 식물자원연구도 하고 천문연구도 하고 역사, 신화연구도 하는 큰 연구단지를 만들어 보면 좋겠군요.

백두산의 상징성을 고려하면 그 어떤 남북한 교류나 공동사업보다 백두산에 대한 공동사업이 우선될 수 있겠지요?

임채욱 선생: 그럴 가능성은 큽니다. 김정은 통치자는 중대한 결정을 앞두고 늘 백두산을 찾는다고 알려져 있지요. 그는 3년 전 4월에 비행사들과 백두산 혁명전적지 답사행군대원들과 함께 등정했습니다. 또 2014년 10월에도 등정했다고 하고 작년(2017년) 12월에도 올랐으니 세 번이나 백두산을 오른 셈인가요? 김정은은 백두산을 두고 “백두산을 가지고 있는 것은 조선민족의 자랑이고 우리 인민의 긍지입니다”라고 말한 것으로 끝나지 않고 백두산을 혁명전통 교양의 거점으로 잘 꾸리라 했습니다. 그러니 이른바 ‘혁명의 성산’이란 백두산에 대한 연구를 마다할 이유가 없지요.

북한에서는 ‘민족의 성산’이란 표현은 하지 않습니까?

임채욱 선생: 물론 합니다. 한국에서처럼 백두산이 단군과 관련된 곳으로 여기지는 않지만 고조선의 역사무대이고 우리 문화가 꽃 핀 무대로 보고 있지요. 하지만 백두산을 ‘김일성의 산인 동시에 김정일의 백두산’으로 규정하고, 백두산 8경에도 김정일 친필을 넣고 있으니까 남쪽 동포들은 그걸 받아들이기가 어렵지요. 그들 말대로 백두산이 ‘주체혁명의 발원지이고 승리의 상징이며 영원한 등대’(박사 권승안)이기에 언제나 ‘혁명의 성산’으로 새겨져 있는데 화산폭발 같은 과학분야 연구 외에 인문분야 연구는 갈등도 있을 수 있지요. 하지만 백두산은 민족의 성산이란 점을 굳이 외면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런 부분에서 연구의 공통영역도 분명 있을 수 있습니다.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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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8년 중국 선양(瀋陽)에서 열린 남북 첫 공동 문학잡지 '통일문학' 창간 기념행사에서 남과 북, 해외 문학인들이 행사를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지난 2008년 중국 선양(瀋陽)에서 열린 남북 첫 공동 문학잡지 '통일문학' 창간 기념행사에서 남과 북, 해외 문학인들이 행사를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북한문학에서는 서정시도 투쟁의 가치를 가져야 합니다. 시는 ‘시대를 선도하는 투쟁의 기치’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시의 서정성도 전투적 역할을 하기 위한 것이라고 규정합니다.


판문점선언 이후 남쪽 문화계에선 남북교류와 공동사업이 바로 닥칠 일처럼 기대가 높은 것 같더군요. 그래서 통일문화산책 오늘 이 시간에는 그런 기대와 문제점을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살펴 보겠습니다.


임채욱 선생: 한국 문화계에서는 기대가 높은 것 같습니다. 문학계는 올해가 월북 작가·예술인 해금 30주년을 맞아서, 그러니까 금지가 풀린 지 30년이지요, 그래서 기념학술대회도 열면서 남북한 문학교류 가능성을 점치기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무용계도 남북 춤 교류를 위한 세부 프로그램을 짜는 행사를 가졌고 미술계도 북한화가들 그림을 전시하면서 미술교류를 모색한다고 합니다. 공연예술분야는 이미 한 차례 교류가 있었는데 지속적인 교류행사를 준비 중이지요. 그 가운데는 

북한 교예단과 교환공연을 희망하고 있는 서커스 단체도 있지요.


문화예술 전반에 걸친 교류나 공동사업 추진동향에 앞서서 오늘은 문학분야에 국한해서 어떤 움직임이 있는지를 알아볼까요?


임채욱 선생: 문학단체들의 움직임도 구체화되고 있겠지요. 그 가운데서 문학전공자들은 올해가 납북되고 월북한 문인들 작품이 해금된 지 30년이 되는 해라서 이를 기리는 뜻에서 납북문인이나 월북문인들에 대한 연구성과를 나누고 이를 바탕으로 한 남북한 연구교류도 조심스럽게 짚어보는 분위기 입니다. 하지만 교류를 바라고 기대하는 가운데도 북한문학을 다시 살펴보고 우리 문학 현실을 검토하다 보면 여러 가지 명암도 드러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내용에 대해서 언급해 주시지요.


임채욱 선생: 첫째 북한문학은 당의 문학이란 인식을 하지요. 작가가 상상력을 자유롭게 구사하면서 창작을 한다 하더라도 그 내용은 당이 요구하는 방침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 어떤 작품도 검열과정 없이 발표되지는 않지요. 둘째 북한문학은 주체사실주의 창작방법에 의하지 않고는 생산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주체사실주의는 사람을 중심으로 해서 그린다는 것인데, 무슨 작품이고 사람이 중심이 안 되는 게 있느냐는 의문이 나지요? 하지만 북한문학에서는 김정일 주장대로 공산주의 세계에서 통용돼 오던 사회주의적 사실주의가 사람을 바르게 그리지 못해서 김정일 선대통치자가 사람의 역할을 잘 그려내는 주체사실주의를 창안했다고 말하지요. 주체사실주의에서는 사람이 세계의 지배자이고 개조자란 것을 명확하게 잘 그리게 됐다는 주장입니다. 그게 그건데 김정일 문패로 바꿔 단 것입니다.


그럼 북한문학이 의도했던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는 폐기된 것입니까?


임채욱 선생: 평가절하 되지요. 그러니까 우리나라에서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에 따라 된 소설들, 1920년대 후반기에서 1930년대에 걸친 작품들, 이를테면 조명희의 <낙동강>, 이기영의 <고향>, 한설야의 <황혼>, 강경애의 <인간문제>, 송영의 <일체 면회를 거절하라> 같은 작품은 평가절하 되지요. 뿐만 아니라 1970년대까지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에 입각해서 생산된 북한의 문학작품들도 다 평가절하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김일성, 김정일의 문예이론을 공식화하려는 것이지요.


또 다른 문제점이랄까, 교류에 장애가 되는 것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임채욱 선생: 문학작품의 주제설정이 제한적이란 면을 강조할 수 있지요. 소재는 어떤 것이 되더라도 주제가 되는 것은 정해져 있다는 것이지요. 수령을 숭배하는 주제가 아니라든가, 당 정책을 거스르는 행동을 세차게 비판하지 않는다든가, 6.25전쟁 때의 투쟁을 외면한다든가 하는 주제가 작품으로 될 수는 없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북한문학은 수령을 우상화하고, 당 정책에는 오류가 있을 수 없다는 무오류성, 노동현장의 치열한 모습, 혁명적 낙관주의, 다시 말해서 혁명에는 비극이 없다는 내용을 담은 작품만이 허용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면이 남북문학교류에 장애요소로 된다는 것이지요?


임채욱 선생: 그렇지요. 하지만 모든 일에는 명암이 있듯이 위급할 때 사람보다 수령의 초상화를 먼저 구한다는 것이 북한주민의 일반적인 행동방식인데, 최근 어떤 작품은 초상화 구한다고 주민의 희생이 있었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해낸 것도 있고(유봉동의 열여섯집, 2017) 바다에 빠진 대원을 구출하고 자기가 희생되는 비극도 묘사되고(서른두송이의 해당화, 2016), 또 민주주의에 대한 북한주민들의 열망을 약간 읽을 수 있는 작품도 보입니다. 이런 것은 교류의 밝은 면이라고 하겠지요. 하지만 아직은 어두운 면이 더 크게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무엇보다 북한문학에서는 아직도 6.25전쟁 때 이야기를 서사로 하는 작품이 많다는 것은 또 다른 부분의 어두운 면입니다.


문학교류가 이뤄지려면 문학인뿐 아니라 일반주민들도 상대방 작품을 읽어야 하는데 아직 이런 분위기는 아니지요?


임채욱 선생: 그렇다고 할 수 있지요. 북한 문학작품을 쉽게 접할 수 있는 환경조성은 되지 않고 있지요. 북한에서도 남한문학을 바로 보지 못하고 있지요. 그들 이데올로기적 관점으로 해석하다 보니 남한의 민중문학을 자의적으로 해석해서 민중문학이 마치 북한체제를 미화시킨다는 듯이 평가합니다. 가령 황지우 시인의 <꽃피는 삼천리 금수강산>이라는 작품을 <삼천리 금수강산>으로 제목을 바꾼 뒤 이 작품에서 남조선 인민들의 마음이 자주적이고 창조적인 생활이 꽃피는 북녘 땅으로 줄달음쳐 온다고 묘사했다는 식입니다. 그래서 남한의 민중문학은 주체사상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평가합니다.


필요에 따라 남한작품들을 왜곡되게 해석하고 또 소개도 하고 있군요.


임채욱 선생: 그렇지요. 필요에 따라 남한 작품들을 출판도 한 일이 있습니다. 1996년에 북한 문학

예술종합출판사는 한국 작가들 단편소설 10편을 묶어서 단행본으로 냈는데 그 제목을 <수난자의 목소리>로 했습니다. 실린 작품들은 민중문학 쪽 작품인데 <벌집사람들>(김하기), <달맞이 꽃>(김영현), <흰철쭉>(이청춘), <출행>(한문경), <아메리카 드림>(정도상) 등이 수록됐지요. 미국으로 유학 간 아내와 자식을 만나려고 미국대사관에 비자 신청을 하는 과정에서 겪는 굴욕이라든가, 다가구 주택에 사는 무명작가이야기, 운동권대학생, 여공, 노점상 등 하층민의 고달픈 삶을 그린 작품들입니다. 북한에서는 황석영의 <장길산>도 출판한 일이 있지만 이런 것은 다 예외 없이 “한국 사회의 부패상을 폭로하고 반동적인 사회에서 고민하고 몸부림치는 민중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고 선전하려는 의도로 출간한 것이지요. 아울러 원조자란 탈을 쓴 미 제국주의자를 욕하고 남한 하층민을 통한 체제우월성을 보이는데도 유리한 작품들이라고 본 것이지요.


이런 관점을 가진 북한문학을 어떻게 수용할 수 있을지 북한문학에 대한 연구가 필요한 시점인 것 같습니다.


임채욱 선생: 북한문학에서는 서정시도 투쟁의 가치를 가져야 합니다. 시는 ‘시대를 선도하는 투쟁의 기치’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시의 서정성도 전투적 역할을 하기 위한 것이라고 규정합니다. 소설도 당의 영도를 포기하면 ‘창작의 자유’를 부르짖으며 도전할 것이라고 쐐기를 박고 있는 북한 문단현실을 잘 헤아리면서 노동당의 조언자이고 동행자인 시인, 작가들을 만나야 되겠지요.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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