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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혜산 장마당 입구 간판.
북한 혜산 장마당 입구 간판.
사진-갈렙선교회 유튜브 동영상 캡쳐

 

탈북자 구출과 남한 정착에 힘쓰며 북한 내부 영상을 공개하는 갈렙선교회가 최근 유튜브에 ‘최근 혜산 장마당’제목의 동영상을 공개했습니다. 혜산 장마당은 북한의 중소 도시 규모이지만 중국산 텔레비전 DVD 등 여러 가전제품과 곡물 등이 많이 들어오는 것을 영상에서 볼 수 있으며, 돼지고기 단고기, 그리고 염소, 닭 등의 가축들도 판매되고 있다고 갈렙선교회 김성은 목사가 자유아시아 회견에서 밝혔습니다. 그리고 북한 주민들 사먹기에는 형편이 어려운 마른 낙지(한국에선 오징어)를 판매대에 많이 쌓아 둔 것도 특이 했다고 말했습니다.

목요대담 갈렙선교회가 공개한 ‘최근 혜산 장마당’ 제목의 유튜브 동영상 내용에 관해 김성은 목사와 인터뷰를 통해 알아봅니다 .

먼저 ‘최근 혜산 장마당’제목의 유튜브 동영상 올리셨는데 혜산 장마당 소개해 주시죠.

: 중국의 장백현과 마주 보고 있는 북한 양강도 혜산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북한은 두만강과 압록강을 통해서 800길로미터의 중국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어요. 그 중 대부분의 무역 거래는 북한 신의주와 중국의 단둥을 통해서 (외신들도 많이 알다시피)무역거래가 되고 있는데요. 그런데 800길로미터의 국경지대에서 실은 보이지 않게 (대부분 단둥이나 신의주에서 오고 가는 물자는 파악할 수 있지만) 밤마다 이뤄지는 밀무역은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어요. 그런데 중국과 밀수를 가장 많이 하는 곳이 양강도 혜산입니다. 그러니까 한국의 와 있는 탈북자들 대부분이 국경지대 사람들이 많이 와 있는데, 한국 내 탈북자 중에 거의 30% 이상이 양강도 혜산 주변의 사람들이 올 정도로 그리고 밀무역을 통한 정보가 오가고 있기 때문에 북한의 다른 도시보다는 이곳 혜산이라는 곳이 굉장히 활성화 되어 있는 곳이지요.

이 혜산 장마당에 규모는 얼마나 클까요.

: 다른 도시에 비해서 크다고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작은 규모는 아니고 중소도시의 규모인데, 다만 북한의 내륙 안에 없는 물품들이 국경지대이다 보니까, 중국과 접해 있다 보니까 (예를 들어서 북한의 내륙에서는 중국산 텔레비전을 사고 싶어도 시간이 걸리지만, 양강도에서는 바로 중국과 밀무역으로 5분이면 왔다 갔다 하는 거리거든요.) 그래 장마당 규모가 대단히 큰 규모는 아니지만, 남한으로 치면 신제품이 바로 바로 유입될 수 있는 그런 장마당이지요.

어떤 품목들을 혜산 장마당에서 볼 수 있을까요?

 

장마당에서 각종 육류가 판매되고 있다.
장마당에서 각종 육류가 판매되고 있다. 사진-갈렙선교회 유튜브 동영상 캡쳐

 

: 혜산에서 탈북한 탈북민들의 이야기 들어보면, 남한에선 오징어라고 하는데 북한은 낙지라고 하거든요. 이곳은 육지, 내륙이기 때문에 바다 물고기가 별로 없는데, 이곳 혜산 장마당엔 오징어를 팔려고 쌓아둔 것을 볼 수 있어요. 북한사람들 이런 오징어을 손쉽게 사먹기에는 아직까지는 형편이 아니거든요. 물론 먹는 사람도 있겠지만요. 여하튼 이곳에서 거래가 이뤄지고 중국으로 밀수출이 되며 또 그 대금들로 다시 중국산 텔레비전, DVD 등 여러 가전제품이나 또 곡물, 이런 것들이 많이 들어오는 것들을 볼 수 있고요. 두 번째는 유엔이 북한에 제재해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하지만, 북한내부는 장마당을 통해 굉장히 활성화가 되면서 영상을 보면 돼지고기라든지. 특히 북한은 개고기, 즉 단고기를 즐겨 먹는데 그런 것들 또한 염소, 닭, 돼지 이런 가축들도 판매하는 것을 보면서 활성화 되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진행자가 영상에서 옷 입는 걸 보니 봄철 정도 되지 않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혜산 장마당 나온 사람들의 모습이 상당히 세련되게 옷을 입고 있는데요.

: 혜산이라는 곳은 특히 이제 중국 물품이 우리 눈에 많이 보이기도 하지만 그쪽 동네에서 은어로 쓰는 이야기가 있는데 ‘아랫동네’ 남쪽이라고 말하지 않고 아랫동네라고 하는데 한국 물품이 해산 장마당에는 중국을 통해 많이 유입되기도 해요. 그래 북한사람들과 연계 될 때 한국의 화장품이라든지, 한국 의약품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요구하거든요. 그곳에 계신 분들이 DVD 통한 남한 문화를 접하다 보니까 남한 패션에 대한 감각이 다른 도시보다는 뛰어나고, 그런 것들을 수입해가고, 특히 제가 선교할 때 한국의 옷들(중고 옷이지요.) 혜산을 통해서 북한 내륙으로 많이 보냈고요. 그래 ‘한국 옷’을 좋은 브랜드로 혜산 장마당에서 판매하기도 해 패션 감각도 다른 북한내부보다는 뛰어난 분들이 많습니다.

영상 만드실 때 어떤 내용이 특징적이었는지 간략하게 소개해 주시지요.

 

장사하는 엄마 따라 나온 어린이- 캐릭터가 그려진 티셔츠에 인형을 들고 있다.
장사하는 엄마 따라 나온 어린이- 캐릭터가 그려진 티셔츠에 인형을 들고 있다. 사진-갈렙선교회 유튜브 동영상 캡쳐

 

: 제가 영상을 보면서 느낀 것은 실은 양강도 쪽이 북 중 국경을 맞대다 보니까 갈렙선교회가 여러 차례 혜산 장마당을 찍어 공개하긴 했는데, 최근의 변화라면 돼지고기 같은 것들이 과거보다는 굉장히 넘쳐나고 있고요. 영상 속에 보면 지금도 중국돈으로 거래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요. 그래서 북한경제가 북한화폐가 있지만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은데 북한 돈보다 중국 돈을 우선적으로 쓰고 있다. 과거에는 달러를 많이 썼는데, 달라가 좀 눈에 보이지 않아요. 중국 위안화가 보이는 모습이 특색이고, 그것이 바로 중국에 많이 의존된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또 그 안에 보면 자건거 보관소도 있고 그 시장 말고 밖에 나와서도 보면은 그전에 없던 캔 통조림이라고 하지요. 그런 것들, 여러 가지 생활에 필요한 부분들을 조잡스럽지만 많이 나아진 모습들을 볼 수 있었고, 여성들의 옷 차림이 굉장히 세련되어 있고 특히 장사하는 아주머니가 우산을 쓰고 장사를 하고 있는데 굉장히 패션 감각이 있는 옷을 입고 장사하는 모습도 보이고 해서 아무튼 혜산쪽은 다른 도시보다는 중국이나 외부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있는 모습들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목요대담 갈렙선교회가 공개한 ‘최근 혜산 장마당’ 제목의 유튜브 동영상 내용에 관해 김성은 목사와 인터뷰를 통해 알아 봤습니다 . 인터뷰에 RFA 이현기입니다.

RFA 방송 원문 보기

 

장마당에 나물 팔러 나온 소녀들
장마당에 나물 팔러 나온 소녀들
사진-갈렙선교회 동영상 캡쳐

 

탈북자 구출과 한국 정착에 앞장서는 갈렙선교회가 최근 만든 ‘갈렙션교회 소개 동영상’ 제목의 유튜브 동영상에서 공개재판과정과 장마당에서 중국산 물품을 많이 판매하는 것을 보여 주고 있으며, 1년 전에 구출한 탈북 고아들과 성인 탈북자가 함께 중국에서 메콩강을 건너 탈북한 경로를 따라 생생하게 재현해보는 ‘탈북루트탐사’의 영상을 담았다고 김성은 목사가 자유아시아방송과 회견에서 밝혔습니다.

 

목요대담 오늘은 갈렙선교회 김성은 목사와 최근 만든 유튜브 동영상 내용에 대한 인터뷰를 보내 드립니다.

 

그동안 갈렙선교회는 유튜브 동영상을 만드셨지요.

: 갈렙선교회가 북한 내부 사정이나, 탈북자들의 관련된 것들을 저희가 세상에 발표하고 알리곤 했는데요. 그 동안 탈북자 사역을 해 오면서 북한 실정이나 탈북자 실정을 알리기 위해서 YOUTUBE영상제작을 했습니다만, 특히 이번에는 북한에서 인권문제와 종교문제로 박해 받는 사람들을 다루기 위해 영상을 만든 것입니다.

 

이번 영상에는 공개재판 과정도 들었다고요.

 

: 우리가 영상으로 추구한 것은 첫 번째는 고아, 꽃제비들, 이런 문제들을 담아봤고요. 그리고 탈북자들이 탈출하다 중국에서 잡히면 강제 송환되어 북한에서 재판을 받고, 공개재판을 받기도 하고, 또 그들이 교화소나 수용소에 가서 어떻게 생활하는지 일부의 모습, 그리고 최근의 북한의 장마당 모습들 또 저희들이 구출해온 아이들이 한국에 와서 열심히 살고 있는 모습 등 여러 분야로 나눠서 제작을 해 봤습니다.

 

교화소 생활하는 장면 같은 것도 있나요.

 

북한의 최근 장마당 모습
북한의 최근 장마당 모습 사진-갈렙선교회 동영상 캡쳐

 

: 북한이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하지만, 장마당을 보면 활성화 된 것을 볼 수 있고요. 장마당에 중국의 물품들이 많이 있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휴대폰 등 여러 가지 중국 것들을 사용하는 것을 보면서 북한이 중국에 많이 의지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장마당 자체가 활성화 된 것이 첫 번째입니다. 또 중국에 나왔다가 강제 북송된 사람들 대상으로 인권문제를 다루려고 했었는데요. 중국에서 북한에 잡혀가면 공개 재판을 받고, 교화소나 수용소 같은 곳으로 가는 모습들 그 과정을 자세하게는 못 했지만, 교화소에서 생활하는 것과 그들이 작업장에서 일하는 모습 등도 담았습니다.

 

탈북자들 강제 북송되어 사는 것도 볼 수 있나요.

 

: 일단 중국에서 잡히면, 중국인 외국인 감옥소인, 도문 교도소, 탈북자 전용 교도소로 간다든지, 아니면 단둥서 신의주로 북송되고, 중국 해산을 통해서는 양강도로 가게 되는데요. 그들이 북한으로 가게 되면, 개인 구역으로 통보를 하고 그곳으로 가면 재판을 받는데 대부분 노동교화소로 가는 것 같아요. 첫 탈북이면 3년, 많게는 8년 그리고 두 번째로 잡혀왔을 때는 수용소로 가게 되는데 문제는 수용소나 교화소에 가서 배급이 안되다 보니까 소식 듣기로는 몇 년만 지나면 밖에서 도와주지 않으면 그들이 영양 실조로 죽을 수 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라는 것도 영상에 담았습니다.

 

탈북자들과 함께 탈북루트, 즉 탈출하는 길을 탐사 하셨다고요.

 

어린 학생들이 철길 보수공사에 동원돼 일하고 있다.
어린 학생들이 철길 보수공사에 동원돼 일하고 있다. 사진-갈렙선교회 동영상 캡쳐

 

: 11명이 동행 탈북 당시의 현장으로 가서 자신들이 함께 간 사람 중에는 탈북자도 있고, 탈북자의 자녀도 있고요. 탈북자 성인 그리고 탈북어린이들과 함께 자신들이 중국에서 탈출해서 동남아시아로 갈 때 밀림을 건너서 메콩강을 건너게 되는데, 과거에는 신분증이 없고, 여권이 없어서 잡히면 어떻게 될 지 모르는 긴박함 속에 왔던 그 길을 이제는 합법적인 신분으로 여권을 가지고 가면서 탈북 당시의 두려움은 없지만, 그래도 자신들이 탈북 했던 과정 과정을 보면서…… 이번에 너무 좋았던 게 탈북인 중에는 어른들도 있었는데 자기가 그 길을 넘어온 것을 생각하며 이제 한국에 가면 열심히 살겠다는 것, 신앙생활 잘 하겠다는 것, 이런 것들을 다짐하며 새로운 삶의 눈을 뜨게 됐다. 그리고 1년만에 우리 딸들(북한에서 구출한)이 같이 가게 됐는데 그 딸들도 그곳에 가서 그때는 너무 긴장해서 몰랐는데 이번에 이렇게 가면서 얼마나 하나님 은혜 감사하고 열심히 공부하고 통일 된 다음에 자기들이 어떠한 일을 해야 될지를 돌아보는 귀한 시간이 됐다고 감상문도 쓰고 그러면서 정말 좋았던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공개재판장에 어린이 모습도 담았다고요.

 

: 얼마 전에도 북한은 종교를 박해하지 않는다. 수용소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 마이클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북한에 갔을 때 수용소에 있는 사람들을 풀어주는 게 어떻겠느냐 했을 때 그런 게 존재하지 않는다는 기사를 접하게 됐는데요. 그래서 아직까지는 북한에 강제수용소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고요. 또 이번 영상을 보시면 알겠지만, 아직도 공개재판을 하고 있어요. 좀 공산주의 식이지요. 그리고 또 그 속에는 자세히 보면은 재판 받을 때 어린아이들까지 있어요. 공개재판 속에…뭐라고 할까요. 남한 같으면 미성년자가 재판 안에 들어가서 보고 이러는 거가 한국사회에서는 아직까지는 제가 보질 못했는데, 북한은 자발적으로 들어간 게 아니라 국가에서 아니면 기관에서 아이들까지도 재판장에 다 들어가게 해서 공개재판을 하면서 너희들이 조국을 배반하면 저렇게 처벌을 받는다. 이런 것들을 어려서부터 조기교육을 시키는 모습이 거기 영상에 있습니다. 해서 이런 모습들이 굉장히 충격이고 또 북한인권의 개선을 위해서 이런 부분들이 세상에 많은 사람이 알고 있어야 되지 않나! 왜 북한 인권에 대해서 거론해야 되나! 이런 부분들을 다루고 싶었습니다.

 

동영상 제작에 대한 이야기 해 주세요.

 

: 우리 갈렙 선교회는 유튜브에 1주일마다 매주 화요일에 갈렙선교회 영상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얼마 전에 북한에 홍수가 일어났던 장면들, 또 북한의 철도사정, 그리고 군대 식량사정, 내부에서 일어난 일들을 계속적으로 업 데이트 하고 있으니까요. 저희 갈렙선교회 검색하시고 유튜브 보시면 많은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목요대담 오늘은 갈렙선교회 김성은 목사와 최근 만든 유튜브 동영상에서 보인 북한의 모습과 관련한 인터뷰였습니다. 지금까지 인터뷰에 RFA 이현기입니다.

RFA 방송 원문보기

 

쌀을 담은 페트병에 성경책을 붙이고 있다.
쌀을 담은 페트병에 성경책을 붙이고 있다.
사진제공: 노체인

 

목요대담 오늘은 바다를 통해 북한에 쌀과 정보를 보내는 행사 소식 정광일 씨와 전화 회견 통해 알아봅니다.

 

이번 행사에서도 쌀과 USB를 보내셨다고요.

 

: 이번에 쌀 600킬로 하고 USB 300개를 보냈어요. 우리가 정기적으로 하는 것인데 매월 2차씩 물때를 맞춰서 그믐과 보름 때 물이 제일 많이 들어 왔다 빠지는 순간 즉 간조라고 하는데 썰물 때 강으로 띄워 보냅니다.

 

지금까지 몇 차 행사 했습니까?

 

: 2016년부터 시작해 이번이 3년에 걸쳐 61회 차입니다. 여러 가지 애로가 많지요. 쌀 후원이 안 되기도 해 우리 자비로 사 보내기도 하고요.

 

직접 북한동포들 쌀과 USB받았다는 소식도 전해 듣습니까?

 

: 내부 소식을 전해 들으면, 우리가 보내는 방향이 어부들이 사는 곳이거든요. 그리고 어부들이 배를 타고 나와서 가지고 가거든요. 3년 동안 하다 보니까 물 때를 그 사람들이 잘 알거든요. 그래 북한의 배급 날 기다리듯이 기다렸다가 쌀이 들어오는 물때를 맞춰 나가서 건져 가는 걸 우리가 체크를 하는 게 아니고요. 해양경찰들하고 해병대가 전방에 나가 지켜보고 있거든요. 그런데 북한 어부들이 나와서 가져가는 모습을 보고 저희에게 알려줍니다.

 

바다를 통해 보내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내용과 언제 보내는지 알려주세요.

 

: 쌀을 1.8리터짜리 페트병에 쌀을 삼 분의 이 (1.5키로)정도 넣고요. 거기다가 후원이 되면 구충약도 넣고 피부에 바르는 연고도 넣고요. USB는 기본으로 넣었어요. 보내는 방법은 물때를 맞춰서 매월 초순하고 보름, 한마디로 말하면 그믐하고 보름이요. 그때가 물이 제일 많이 들어왔다 빠지는 순간이거든요. 그리고 보내는 장소는 강화도에서 보내고 있는데 도착하는 곳은 해주 공진 등으로 흘러들어 갑니다. 대부분이 아마 황해도 해주 근방에 사는 지역 분들은 물때를 맞춰 온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그래 북한에서는 워낙 조심하다 보니까 그런 소문을 안 내고 기다린다고 해요.

 

주로 어떤 쌀이 페트병에 담깁니까?

 

: 일반적인 쌀도 보내고요. 후원 되는 쌀일 때 산지가 틀리거든요. 간척지 쌀도 있고, 경상도 쌀도 있고, 간혹가다 보면 현미도 있습니다. 아마 북한분들은 현미가 뭣인지도 잘 모르실 텐데 현미가 사실 한국에서도 일반 쌀보다 비싸지 않습니까 그리고 잡곡 쌀, 규리쌀도 보내고 있습니다. 후원이 되면 약을 많이 보내고 있지요.

 

약도 보내신다고 했는데 북한주민에게 요즘은 어떤 약을 보내고 있습니까

 

: 지금은 여름이니까 감기는 안 걸릴 것 같고요. 여름철에는 식중독이 많다 보니까 설사약이나 특히나 작년에 판문점으로 귀순한 군인 총상 수술 하면서 회충이 많이 나오지 않았습니까 그게 보도된 다음 구충약을 보내자고 해서 (북한에서는 구충치료가 잘 안 되고 있거든요.)회충약을 기부 받아서 보내는 데 한국서는 구충약이라고 하는데 북한에서는 회충약이라고 하는데요. 그래 북한식으로 회충약이라고 약병에 써서 북한에 보내고 있습니다.

 

USB에 어떤 내용을 담아 보내는지요.

 

: USB는 8기가짜리고요. 여러 가지 내용을 담아서 보내는데요. 요즘은 주요 내용으로 한국의 일상생활에 대한 것, 예전에는 드라마 위주로 많이 보냈는데 지금은 드라마 영화보다도 그냥 일상생활에 대한 것 말이에요. 최근에는 남한 예술단이 북한에 가서 공연을 한 바 있는데, 일반 주민은 그걸 볼 수가 없었어요. 보여도 안 주고 방영도 안 했어요. 그 풀 영상을 USB에 담아서 보냈고요. 그리고 외국인이 본 남북한을 비교한 영상이 있어서 그것도 보냈고, 우리가 자체적으로 제작한 영상, 김정남은 왜 암살되었는가? 라는 내용을 담아 보냈고요. 우리가 자체적으로 제작한 영상은 제가 직접 출연한 것도 있고, 탈북자들이 한국에 와서 그냥 살아가는 모습 그대로, 하루의 일상인 출근 해서 생활하는 것, 저는 그때 편의점을 할 때 찍은 건데, 편의점을 하면서 어떻고 일을 하고 있는지, 자본주의는 어떤 방식으로 장사하는지 등 말이지요. 그리고 제가 미국 대학교 방문하면서 재능 기부로 해달라고 부탁해서 대학생들의 일상 모습을 찍은 영상인데 예일대학, 앨라바마에 버밍햄 대학교, 하버드 대학, 와이오밍 주에 있는 고등학교 학생들이 찍어 보낸 영상이 있습니다. 그 영상을 제가 편집해서 자막을 씌워 보냈습니다. 왜냐하면, 북한 주민한테는 그게 아주 새로운 거지요. 지금 뭐 미국의 일반주민이 사는 모습, 그리고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한인 여자분이 미국의 시장을 소개해준 영상도 보냈고요. 미국의 초등학생이 아침에 잠에서 깨 이를 닦고 학교에 가고 돌아오는 하루 일과의 영상도 찍어 보냈고요. 그건 다 북한주민에게는 새로운 거에요.

 

북 중 국경에서도 USB를 보내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바다를 통해 보는 것도 같은 내용인가요.

 

: 페트병에 쌀 보낼 때 보내는 영상하고 국경을 통해 보내는 영상 내용이 틀립니다. 왜냐면 저희가 비밀리에 중국 국경 통해 보내는 건, 마이크로 SD에 보내는데 거기에 다는, 그 사람(북한주민)들이 요구하는 것을 담아 보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냥 무상으로 제공하지만, 그 사람들은 시장에서 팔아 확산시키거든요. 암시장에서 팔아 확산시키다 보니까 영리적 목적이 되는 거지요. 그러나 바다로 보내는 건 그런 영리적 목적이 아니고 그 사람들이 그냥 볼 수 있는 것, USB에다 심지어 음성으로 된 성경을 보내고 있습니다. 신약부터 구약 다 들어가 있는 거요. 음성으로 만든 거요. 찬송가까지 다 들어간 것 말입니다. 그러니까 음성으로 된 성경도 보내지만, 실지 소책자 성경책이 있습니다. 작게 만든 성경책을 페트병에 테이프를 붙여서 방수 팩에 넣어 보내는 것이지요.

 

최근의 북한주민 소식이 있으면 해 주세요.

 

: 미-북회담과 관련해 기대하고 있더라고요. 그래도 뭔가 변화가 있으라고 생각을 하는데 그들의 삶은 전혀 달라진 게 없어요. 아직도 굶어 죽는 사람도 있고 더 어려워졌으면 어려웠지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저도 전화 통화를 여러 번 하고 상황을 들어보면은요. 그런데 괜히 남한에서는 그 어떤 통일이 된 기분, 분위기만 떠있지, 실지 북한주민에게는 하나도 달라진 게 없습니다. 특히 북한 내부에서 외부정보 유입에 대해서 신경 쓰고 있거든요. 아시겠지만, 판문점 회담에서 첫째 조건이 외부정보 유입 차단 아닙니까? 대북방송, 대북전단 중단이지 않습니까 그걸 우려한다는 자체는 북한주민에게 확산이 되어서 정권 자체, 체제가 흔들리니까 그러는 거지요. 그래서 제일 신경을 쓰고 단속을 하지만, 그래도 정보에 대한 수요자가 엄청나게 많다는 거에요.

 

목요대담 오늘은 바다를 통해 북한에 쌀과 정보를 보내는 행사 소식 정광일 씨와 전화 회견 통해 알아봤습니다. 지금까지 인터뷰에 RFA 이현기입니다.

RFA 방송 원문보기

북한 작가 반디가 직접 북한 사회를 고발한 시집 '붉은 세월' 표지.
북한 작가 반디가 직접 북한 사회를 고발한 시집 '붉은 세월' 표지.
Photo: RFA

 

북한 작가 반디가 직접 북한 사회를 고발한 시집 '붉은 세월'이 1월 한국에서 발간되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현역 북한작가 반디는 ‘고발’을 통해 북한주민의 생활 자체가 공포요 노예의 삶임을 일깨워 줬으며, ‘붉은 세월’ 제목의 ‘시’라는 도구를 통해 북한인민의 현실적 고통을 뼈저리게 드러내고 있다고 피랍탈북인권연대 도희윤 대표가 자유아시아방송과 회견에서 밝혔습니다.

 

목요대담 오늘은 반디의 ‘붉은 세월’ 시집에 대해 도희윤 씨와 회견을 통해 알아봅니다.

 

빨간 색깔의 표지에 붉은 세월 제목인데 어떤 책인지 소개해 주시지요.

 

: 시집이 올해 첫 번째로 나와서 워싱턴에 가지고 왔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에도 한 권 드리는데요. 이 시집은 50편의 내용으로 만들어져 있고요. 그 모든 내용들이 정말 인권, 자유, 북한주민들이, 북한젊은이들이, 가져야 하는 꿈, 이런 부분들에 대한 간곡한 메시지가 담겨 있고요. 인권이라는 측면의 시를 낭독해 드리고 싶은데요. 제목이 ‘푸른 락엽’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낙엽은 푸르지 않지 않습니까. 낙엽은 푸르렀던 나뭇잎이 노래져서 떨어지는 것이 낙엽인데 푸른 락엽이라고 표현 했단 말이에요. 이것은 바로 북한에서 젊은 나이에 정치범 수용소에서 사형을 당하는 사형수의 이야기입니다.

푸른 락엽

‘젊은 정치범 사형수에게’

때아닌 서리바람 창밖에 모질더니

미루나무 담장가에 푸른 락엽 웬말이냐

시든가슴 부여안고 바람곁에 나딩구는

그 모습 애통쿠나 푸른 락엽 푸른 락엽

 

사나운 비바람을 눈물로 이겨가며

래일만을 믿고 산 고뇌의 네 한생

기다리던 황금가을 눈앞에 두고 가니

더더욱 애석쿠나 푸른 락엽 푸른 락엽

 

붉은 세원 칼바람에 속절없이 스러져간

인생의 푸른 락엽 이 땅에 얼마더냐

불우한 세월 혹에 젊은 꿈 지레 묻힌

못 잊어 애절스런 푸른 락엽 락엽

 

‘붉은 시집’이 발간되어 독자들에게 주는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 ‘시’라는 것은 감정을 압축해서 표현한 언어들이잖아요. 소설이라든지 이런 부분들은 나름대로 허구성이나 픽션, 논픽션 이런 개념들이 들어가 있는 거라면, 시는 자신의 감정들을 고스란히 압축해 반디 선생의 그 마음, 이 시를 쓸 때에 그 마음, 그 사회적 분위기를 정확하게 전달하고 있다 이렇게 볼 수가 있겠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50편으로 만들어져 있는 짧은 시집인데요. 처음부터 끝까지 이 내용을 읽어보게 되면 정말 북한에서 살고 있다라고 하는 주민들이 정말 그 삶이 노예다. 그러면 그 노예의 부분들을 어떻게 해방 시킬 거냐!. 그들은 그렇게 갈구하고 있는데 국제사회는 어떻게 뭔가를 그들의 손을 잡아 줘야 될 거냐! 이런 것을 깊이 있게 고민하는 그런 시간이 될 수 있을 겁니다. 그런 차원에서 이 시집은 국제사회의 크나큰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고, 이것이 한글로만 나와 있는데요. 영어로 번역 중입니다. 영어로 번역이 완료가 되면 전 세계의 언어로 반디의 ‘고발’ 소설처럼 20여개국이 넘는 나라에서 번역 작업이 이뤄지지 않을까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반디 선생의 고발 소설집은 몇 개국어로 번역이 됐습니까?

 

: 정말 1986년도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과 소련의 당시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의 공산당 서기장이 만나 정상회담,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 회담이 있었는데 처음으로 인권문제가 다뤄집니다. 그리고 소련이 급격하게 해체가 되는 길을 가게 되는데 아이슬란드를 마지막으로 28개국에서 계약을 마친 상태입니다.

 

반디 선생의 새로운 시집 발간과 관련해서 미국에 바라는 것이 있다 면은요.

 

: 저희들은 인권단체의 한 사람으로서 모든 회담의 주요 의제 중에 최고의 의제로 인권문제가 다뤄져야 된다라는 것이 저희들의 소망인데, 그것은 어쩌든 양국 협상 당사자들의 우선 순위가 분명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거기까지는 저희가 요구를 못한다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어떤 적성국가와의 관계정상화라는 차원에서 해결점을 만들어 나간다면 인권문제를 풀지 않고는 갈 수가 없습니다. 예전에도 미국과 북한이 마찬가지로 그런 경험이 있었지 않습니까? 아무리 정상간의 합의가 있었다 하더라도 의회 차원에서 이런 인권문제를 들어서 일이 진척되지 않았던 부분이 있듯이, 마찬가지로 온전히 미국과 북한 특히 세계평화라고 하는 부분으로 나아가려고 할 때는 북한 내부의 심각한 인권문제가 제기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 그 부분에 대한 책무를 미국 정부가 온전히 지고 있다. 그런 역사적 책무에 대한 책임감을 미국 정부가 가져줬으면 하는 그런 바람입니다.

 

반디 선생과 같이 북한 내에서 활동하는 반체제 작가들에게 한마디 해 주시지요.

 

: 북한에서는 이런 작품을 쓰거나 특히 반체제 성향의 글 자체를 쓴다는 것이 너무나 어려운 사회이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디 선생처럼, 자신의 목숨보다 더 귀한, 이 소설집의 원고를 밖으로 내 보내고 이것이 지금 세계의 널리 알려지고 있고, 이 알려지는 부분들이 다시 거꾸로 북한내부의 인권을 개선하는 데 정말 중요한 무기로 사용이 되고 있거든요. 그래서 아무리 억압된 체제라 할지라도 노예 해방이라고 하는 자신의 소명을 가진 북한 내부의 저항 작가들이 많은 글을 쓰셔서 보내 주신다면, 그것이 결국 자기 자신의 어떤 거름이 돼서 2,000만 노예 주민을 해방시키고 살리는 길이 될 수 있다는 그런 희망들을 굳건히 품으시기 바라며 저희가 함께 목숨을 걸고 노력하겠습니다.

 

탈북해서 남한에 와 작가로 활동하는 분들에게 반디 작가가 주는 의미는

 

: 한국에 와서 망명 작가센터 만든 게 있습니다. 구성원들과도 깊이 있게 상의도 하고 더 많은 탈북자 문학인들이 정말 마음껏 자신의 창작에 나래를 펼 수 있도록 함께 하고 있는데요. 반디 선생의 작품에 대해서도 아주 높게 평가합니다. 그리고 이 섬세한 부분들이 여성이 아니냐! 너무나 섬세하게 잘 표현됐던 부분들에 대해서 놀라움을 가졌고, 시집을 보면 굉장히 남자다운 시집입니다. 그래서 과연 이 반디 선생이 남자일까 여자일까 이런 궁금증을 가지고 같이 이야기도 나누고 있어서 정말 예비작가 탈북인 작가분들에게도 귀한 교제가 되고 있는 그런 상황입니다.

 

반디 선생의 시집은 언제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까?

 

: 소설집 같은 경우는 1990년 후반부터 2000년도 초반까지 이루어졌다고 보시면 되는데 시집 같은 경우는 2000년 중반까지 다루고 있어요. 거기에 보면 직접 자유아시아방송과 같은 방송을 듣고 그 방송내용에 대한 감상문을 적었던 시가 있습니다. 그런 걸로 봤을 때도 상당히 근접한 시기까지 이 작품을 쓰셨다. 확인할 수가 있고요. 또 마지막에 ‘꿈’이라는 작품을 보게 되면 정말로 근래의 닦아오고 있는 여러 가지 분위기와 견주어서 이 자유라고 하는 부분들이 곧 북한주민들에게 올 수 있다라는 희망의 메시지, 이런 것들을 불어넣어주고 있거든요. 그런 걸로 봤을 때는 남북 간의 상당히 교류되는 그런 시기의 부분에 대해서 고민하면서 쓰신 흔적이 있어서 그런 부분들을 시기적으로도 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인터뷰에 RFA 이현기입니다.

RFA 원문보기

 

사진은 조선중앙TV가 소개한 평양 신흥단고기집에서 판매하고 있는 단고기장(보신탕)과 개고기로 만든 수육.
사진은 조선중앙TV가 소개한 평양 신흥단고기집에서 판매하고 있는 단고기장(보신탕)과 개고기로 만든 수육.
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북한에서는 개고기가 아니라 단고기지요. 씹으면 씹을수록 단맛이 난다고 해서 단고기라고 부른답니다

 

한 여름 더위를 맞고 있습니다. 여름철 계절음식으로 보신탕이 있었는데 요즘 한국에서는 개고기 보신탕을 먹는 사람이 줄어들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의 식용개 농장은 2,800여곳이 넘고 78만여 마리가 사육중이고 개대신 닭을 많이 먹게 되는데 닭은 한국 내 소비는 연간 9억마리, 1인당 소비량은 18마리(2017 한국육계협회조사) 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통일문화산책 오늘은 한국의 복더위에 한민족과 관련한 식습관에 얽힌 이야기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이야기 나눕니다.

 

임채욱 선생: 마침 오늘이 중복 날입니다. 그 전에는 복날이면 한국에서도 개고기 수육이나 끓인 보신탕을 먹는 것을 하나의 식습관으로 했는데, 요즘은 그게 줄어들고 있다고 합니다. 지금 한국에서는 개고기 먹는 것을 아주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노골적으로 개고기 식용반대 캠페인을 벌이고도 있지요. 초복 날이던 지난 주 17일 서울에서는 개고기 먹는 것을 반대하는 집회가 열리기도 했습니다. 이 자리에는 지금 대통령이 키우고 있는 반려견도 등장해서 시위의 효과를 올린 모양입니다. 이 집회는 개를 ‘먹지 말고 안아주세요’를 모토로 내세우고 ‘개식용 반대’를 부르짖었답니다. 개고기를 즐겨 먹는 사람들은 내가 식용으로 키운 개를 먹지 반려견을 먹지는 않는다고 주장하지요. 하지만 ‘개식용 반대’ 집회를 연 단체들은 식용개와 반려견이 다르다는 생각부터 고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한국에서 개고기 먹는 습관이 약화돼 가는 큰 이유는 반려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이겠지요. 그밖에 다른 이유도 있을까요?

 

임채욱 선생: 아무래도 먹거리가 많아진 것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어요. 전에는 먹을거리가 부족할 때여서 개고기를 찾았겠지만 지금은 개고기 아니라도 먹을 것이 많은데 굳이 개고기를 찾을 이유가 없지요. 복날 개고기를 먹는 것은 딱히 정해진 것도 아니지요. 쇠고기나 닭도 먹을 수 있고 물고기도 먹을 수 있으면 되지요. 무엇보다 개를 애완견 수준에서 반려견 수준으로 아끼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개고기 식용을 계속 반대도 하고 또 식용견 위생상태가 의심되는 부분도 있어서 개고기 식용이 확 줄어진 것이라고 봅니다. 한국에는 식용개 농장이 2,862곳에 78만마리 개가 사육되고 있는데 비위생적인 먹이를 주고 또 항생제를 주고 있다고도 알려져서 개고기를 기피하게 되는 면도 있지요.

 

그렇지만 북한에서는 개고기 요리를 아주 좋은 음식으로 여긴다면서요?

 

임채욱 선생: 그렇지요. 북한에서는 개고기가 아니라 단고기지요. 씹으면 씹을수록 단맛이 난다고 해서 단고기라고 부른답니다. 이 단고기를 얼마나 높게 보는지 “오유월 단고기 국물은 발등에 떨어져도 약이 된다”라고 까지 말합니다. 단고기에 대해서는 북한 통치자들이 다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었지요. 선대통치자 김정일은 “단고기 료리는 우리 인민들이 좋아하는 전통적인 민족료리입니다.”라고까지 말했고, 기회 있을 때마다 단고기 집을 직접 찾아 지도를 했다고 하지요. 2010년 3월과 4월에도 평양단고기집을 찾아서 세심한 가르침을 줬습니다.

 

통치자가 요리하는 것도 지도한 모양이군요.

 

임채욱 선생: 그렇지요. 온갖 일에 관여 안 하는 게 없는 이른바 만기 친람형 이니까요. 김정일이 개고기 요리를 두고 말한 것은 이렇습니다. 단고기 요리는 연하고 순수하여 구수해야 한다, 단고기 장을 만드는 비결은 물을 어떻게 끓이는가, 국물을 어떻게 달게 하는가 하는 것인데, 국물을 달게 한다고 해서 맛내기나 사탕가루를 쳐서는 안 된다. 국물은 색깔이 보기 좋고 국물에 기름이 동동 떠있어야 하는데 국물이 쇠고기 국물과 같은 색이 나와야 제대로 된 것이다.

 

아주 자세하게 말했네요.

 

임채욱 선생: 그뿐입니까? 개고기로 만드는 위쌈과 순대 만드는 레시피도 일일이 말합니다. 위쌈에는 기장쌀이나 좁쌀을 넣는 것이 좋고 순대에는 반드시 피를 넣어야 좋다는 말도 하지요.

 

그렇다면 개고기요리를 위한 정책적 배려도 크겠군요.

 

임채욱 선생: 개고기를 공급 잘해야 단고기집을 잘 운영할 수 있다면서 ‘단고기 수매사업소’를 평안남도 평원군, 숙천군, 황해북도 은파군 같은 곳에 두고 있지요. 이곳에서 1차 가공을 해서 각지의 단고기 집에 개고기를 공급합니다. ‘고난의 행군시절’이라고 하는 1990년대 중반 그 어려운 시절에도 단고기 집에 흰쌀과 좁쌀을 공급하도록 특별조치도 취하고 전력공급도 보장했다고 하지요.

 

이런 개고기 선호에도 불구하고 북한에서도 반려견을 키우는 가정은 있겠지요?

 

임채욱 선생: 물론 북한에도 개를 애완용으로 키우는 집은 있습니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 당간부 등 상류층 가정에서 애완견 키우는 집이 더러더러 있었는데, 지금은 길에 데리고 나오는 사람도 보일 정도가 됩니다. 애완견으로 키우는 것이지 한국에서처럼 반려견 수준은 아직 안되지요. 애완견은 그저 사랑스럽게 귀엽게 여길 정도지만 반려견 정도 되면 가족처럼 생각한다는 것 아닙니까? 북한에선 애완견이란 말은 있지만 아직 반려견이란 말도 없습니다. 한국에서처럼 반려견이란 개념은 없지요. 그러니까 북한 탈북자들은 한국에서 개를 가족처럼 생각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하지요. 북한에서는 자기가 키우는 개도 정들기 전에 잡아 먹어버리는 편이랍니다.

 

북한에서는 한국에서 반려견 키우는 것도 비난대상으로 삼겠군요?

 

임채욱 선생: 그렇습니다. 북한에서는 한국의 반려견 키우는 행태를 여러 매체를 통해 비난하고 있어요. 개에게 옷을 입히고 있고 털을 깍아 주는 것도 못마땅해 하는데, 실제로는 여기서 끝납니까? 다이어트 시킨다고 돼지고기를 절대 먹이지 않고 소고기도 기름끼 빼고 먹인다든지, 비타민을 먹인다든지 하지요. 또 건강상태를 돌본다고 정기검진을 받는다든지, 하는 것까지는 있을 수 있다고 쳐도 짖는 것이 시끄럽다고 성대수술을 한다든지 하는 짓도 하지요. 반려견 한 마리 키우는 비용이 아기 하나 키우는 것만큼이나 들어간다고 합니다.

 

한쪽은 개고기 요리를 기피하는 경향이 늘어 가는데, 다른 한쪽은 여전히 개고기요리를 선호하고 있군요.

 

임채욱 선생: 북한에서는 개고기요리를 북한주민만 즐기는 것이 아니라 해외동포들이나 외국사람들도 맛있다는 찬사를 보낸다고 합니다. 세상에 소문난 유명요리가 됐다는 주장입니다. 프랑스 여배우 브리짓도 바르도가 개고기 먹는 한국인을 비난했을 때 남쪽의 한국사람들은 식용개(狗)를 먹는 것이지 애완견(犬)을 먹는 것이 아니라고 반발하고 항의했던 것이 얼마 아닌 것 같은데, 한국에서 식용개 먹는 식습관도 조금씩 바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 프랑스 그 배우는 한국이 아니라 북한으로 날아가야 할 것 같군요?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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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열린 남북통일농구경기 모습.
평양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열린 남북통일농구경기 모습.
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북한에서 붉은 색 선호는 이른바 항일유격대 대원들이 쓴 말에서부터 왔다고 보겠습니다.

 

월드컵축구경기는 끝났습니다. 우승팀 프랑스의 파랑색 유니폼, 뢰불레와 준우승을 한 크로아티아의 국기색 무늬 유니폼이 90분간 경기장을 누볐습니다. 그간 출전국 32개국은 각기 자기나라 색깔이나 무늬가 든 유니폼으로 관중의 시선을 끌려고 했습니다. 한국 팀은 전통적인 붉은 색 유니폼을 입었었지요. 그래서 통일문화산책 오늘은 색깔과 관련해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이야기 나눕니다.

 

임채욱 선생: 네, 붉은 색 경기복을 기본으로 했지요. 이번에 한국뿐 아니라 3위를 한 벨기에, 그리고 스위스, 덴마크, 스페인, 영국 등이 빨강색을 입었고 프랑스를 위시해서 일본 등 몇 나라는 파랑색을 입었습니다. 노랑색 상의를 입은 나라는 브라질, 스웨덴, 컬럼비아 등이고 드물게는 검은색에 가까운 유니폼도 있었고 독일은 검은색 하의에 흰색 상의가 주된 유니폼 이였지요. 흰색은 모든 팀이 다 준비한 색깔이지요. 이 밖에도 아랍국가들은 녹색을 선호했지요. 이번에 아주리라고 하는 이탈리아 팀 파랑색 유니폼이 안보였고 오렌지 색갈로 유명한 네덜란드 유니폼도 볼 수 없었지요. 만일 북한팀이 출전했더라면 붉은색과 남색, 그리고 흰색이 배합된 유니폼을 입었겠지요. 북한 깃발인 남홍색오각별기 문양색깔과 같지요.

 

색채는 이처럼 한 나라를 상징적으로 나타내기도 하는데, 남북한은 그전엔 색깔전쟁이랄 수 있을 정도로 붉은 색을 둔 심리적 경쟁도 했었지요?

 

임채욱 선생: 남북한 간에 색채전쟁이랄까 하는 것이 없을 수 없지요. 주로 붉은 색을 두고 벌어진 일이지요. 최근에만 해도 평양에서 열린 남북한 농구시합에서 북한팀은 붉은색 운동복을 입고 남한팀은 파랑색 운동복을 입었는데 아마 북한팀이 붉은 색을 양보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북한에선 붉은색을 유난히 선호하고 집착하는 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연유가 있을 것 같은데요?

 

임채욱 선생: 무엇보다 김일성 부자가 붉은 색을 매우 선호했지요. 선대통치자이던 김정일은 1960년대 초 자기 아버지가 제일 좋아하는 색은 붉은색이고, 꽃 중에도 붉은 꽃을 좋아하고, 깃발도 붉은 깃발을 좋아하는데, 자기도 붉은 색을 제일 좋아하고 깃발도 붉은 깃발을 좋아한다고 말했습니다. 붉은 색에는 김일성의 한 생이 어리어 있고 김정일의 혁명철학이 깃들어 있다고 주장 합니다. 그래서 주민들도 이를 닮아서 세상에서 붉은 색을 제일 좋아하게 됐다고 말합니다.

색깔이란 것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기호색이 있을 거고 선호하는 색이 다 다를 텐데 북한에서는

 

통치자가 좋아하는 붉은색을 주민들도 좋아한다는 것 아닙니까?

 

임채욱 선생: 북한에서 붉은 색 선호는 이른바 항일유격대 대원들이 쓴 말에서부터 왔다고 보겠습니다. 그 유격대원들이란 사람들은 붉은 동무, 붉은 마음, 붉은 바람, 붉은 기, 붉은 탄알 같은 말을 썼다는데, 이로부터 ‘붉은’ 형용사가 붙은 말들, 이를테면 붉은 사상, 붉은 수도, 붉은 예술가, 붉은 교육자 같은 용어가 일상적으로 쓰이게 된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김일성은 붉은기 운동을 벌였고 김정일은 붉은기 철학을 내세웁니다. 이러니 주민들이야 붉은 색에 관련된 것은 모두 선호하게 된 것이지요. 개인적인 기호야 물론 없다고 할 수 없겠지만 표면적으로는 붉은 색을 좋아하는 체라도 하는 것이지요. 가히 붉은 색으로 상징조작을 한 것이고 색채정치를 한다고 봐야죠. 색깔이 놀라운 힘을 가지고 사람의 감정과 행동, 건강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것을 정치에 활용하는 것입니다.

 

북한에서 붉은 색을 이용한 색채 정치는 어떤 모습이였습니까?

 

임채욱 선생: 대내적으로는 당연했고 대남면에서도 있었지요. 선대통치자 김일성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리승만은 우리를 빨갱이라고 부릅니다. (그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합시다.) 우리는 자신이 붉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검은 색도 아니며 흰색도 아닙니다.) 우리는 붉은 사람들입니다. 적들이 빨갱이이라고 몹시 무서워하면 할수록 우리의 모든 근로자들을 철두철미 붉게 만드는 것, 다시 말하면 공산주의 사상으로 무장시키는 것이 더욱 필요합니다.“(1958. 11. 20) 이 말대로 북한은 붉은 색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남쪽의 붉은색 혐오감을 북돋우는 심리전을 써왔지요.

 

이런 색채정치의 대상인데도 한국에서도 붉은 색은 매우 선호되고 있지 않습니까?

 

임채욱 선생: 그거야 자연색으로서의 빨강색을 선호하는 것이지요. 한국에서도 분단 후 오랜 세월동안 가져왔던 붉은 색에 대한 기피나 혐오감을 덜어내고 선호하는 색깔로 받아들이고 있지요. 물론 자연색으로서의 빨강색이야 다 좋아하지요. 자연색으로서의 빨강색은 밝은 색이고 다른 색보다 눈길을 많이 끄는 색채죠. 태양, 불, 생명, 사랑, 정열, 쾌활을 나타내는 색깔이지요. 동양에서는 힘과 권위의 상징이지요. 서양미술에선 빨강색을 숭고함을 표현한 화가(미국 바넷 뉴먼)도 있고 열정과 기쁨을 표현하는 색깔로 보는 화가(프랑스 앙리 마티스)도 있지요.

 

한국에서 붉은 색을 기피하고 혐오한 현상은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임채욱 선생: 붉은 색을 혐오했다기 보다 기피한 셈이지요. 광복 후 한때 홍백전이라고 해서 초등학교 운동회 때도 홍군과 백군이 편을 갈랐는데 언제부터인가 청군과 백군으로 갈라졌지요. 붉은 색을 피하려는 현상이었죠. 5공시절 어느 지방 교육감은 학교 교기 중에서 붉은 색 교기는 자극적인 색깔이라 안 좋다면서 바꾸라고 지시한 일도 있었습니다. 1990년대 말 어느 지역에선 빨강색 간판을 다 바꾸라고 한 일도 있습니다. 이유는 빨강색이 도시미관을 해친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이때 등장한 대학생 데모의 붉은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 어떤 정부부처에서는 친절한 공무원에겐 카드에 이름을 올려서 포상을 하는데 그 색깔이 녹색이였습니다. 그때 색채조사에서 실제로 한국사람 들이 선호한 색은 검은색이나 붉은색이였어요. 그러다가 붉은 색에 대한 기피를 벗어버리게 된 계기가 옵니다. 그 계기로 이른바 레드 콤플렉스도 극복하게 됩니다.

지금은 이런 혐오감이나 기피현상, 이를테면 레드콤플렉스에서 벗어났다고 봐야지요?

임채욱 선생: 2002년 월드컵축구를 개최하면서 그런 레드 콤플렉스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할까요? 물론 그전에도 한국축구팀은 아시아권에서도 빨강색 유니폼을 가장 선호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국축구팀은 대외적으로 붉은 악마, 태극전사로 불리는데 붉은 악마가 된 것은 빨강색 아래위 축구유니폼 때문입니다. 어떻든 한국축구팀이 붉은악마로 불린 후부터 빨강색 선호는 폭발적이 됩니다.

 

붉은악마로 불린 경위는 어떤 것이었습니까?

 

임채욱 선생: 그 유래는 1983년 멕시코 청소년 축구경기 때가 됩니다. 그때 한국팀이 4강에 올라가면서 빨강색 유니폼을 입고 맹렬하게 뛰는 한국팀을 한 외신기자가 붉은 악마(The Red Furies)로 묘사한 데서부터입니다. 그 이후부터 한국축구팀은 붉은 악마가 됐고 응원단도 붉은악마 응원단이 된 것입니다. 사실 그전까지는 이번 월드컵에서 3위를 한 벨기에 축구팀이 붉은악마로 불렸는데 지금은 코리아가 차지됐습니다.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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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오전 평양 고려호텔 앞에서 물안경을 써보는 학생과 그 모습을 바라보는 어린이의 모습 뒤로 북측 안내원의 모습이 보이고 있다.
5일 오전 평양 고려호텔 앞에서 물안경을 써보는 학생과 그 모습을 바라보는 어린이의 모습 뒤로 북측 안내원의 모습이 보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트럼프 미국대통령은 북한통치자 김정은에게 핵만 없애면 한국처럼 풍요롭도록 해주겠다는 말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렇게만 되면 북한 주민들도 삶의 질이 좋아지고 행복감이 높아지는 삶을 살게 되겠지요. 통일문화산책 오늘은 풍요롭게 사는 것 즉 남북한의 행복지수에 관해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이야기 나눕니다.

 

임채욱 선생: 풍요롭다고 행복하냐 하는 것은 별개 문제지만 일단 물질적 풍족은 필요조건이지요. 갈 길은 멀지만 다행스럽게 북한이 핵보다 행복을 찾는 걸음을 내디딘다면 남북한 주민은 어느 날엔가는 행복교류도 할 수 있겠지요.

 

행복도 교류할 수 있는지요? 그럼 오늘은 행복한 삶을 전망하면서 남북한 행복교류를 한 번 해보지요. 행복교류를 하려면 행복관 이랄까 행복 지수랄까 이런 것들이 우선 전제되는 것 아닐까요?

 

임채욱 선생: 그렇습니다. 행복은 주관적인 면과 객관적인 면이 다 있습니다만 주관적인 면은 행복관이 어떠냐, 행복감은 어느 정도냐 하는 것이겠지만 이를 객관적인 지표로 나타내면 행복지수로 나타납니다. 행복지수는 영국 런던정치대학 연구진이 개발한 이래 여러 학자들이 개발하고 있는데 소득이나 소비 등 객관적 자료와는 무관하게 주관적 행복을 나타내는 행복지표나 행복지수도 개발되고 있지요. 행복지수를 측정하는 몇 가지를 보면 소득, 건강(기대수명), 자유(선택의 자유), 관용(부패인식태도), 돌봄 등등입니다.

 

유엔에서는 매년 행복지수를 국가단위로 발표하고 있지요?

 

임채욱 선생: 네, 유엔에서는 행복지수를 국가단위로 수치화 하는데, 매년 유엔이 정한 ‘행복의 날’(3월 20일)에 발표하는 행복순위를 보면 올해 한국은 대상 156개국 중 57위였습니다. 북유럽나라들이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아프리카와 중동국가들이 대체로 낮은 순위를 차지하고 있지요. 아시아에선 대만이 26위로 높고 싱가포르가 34위입니다. 일본은 한국보다 3단계 높은 54위, 중국은 86위이고 북한은 조사대상에서 제외됐습니다.

 

행복지수같은 것과 관계없이 방글라데시나 저 히말리야 산맥에 있는 부탄 같은 작은 나라는 행복도가 제일 높다고 합니다. 행복관 문제가 아닐까 싶은데 북한주민은 어떤지요?

 

임채욱 선생: 그전에 남북한 이산가족 상봉 때 보면 북한에서 온 이산가족들은 한결같이 자신들은 행복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있었습니다. 이구동성으로 “장군님이 계시니까 행복하다”는 것이었지요. 물질적 만족보다 정신적 만족을 앞세우면서 행복은 하늘이 주는 것이 아니라 통치자가 준다는 식이지요. 마치 조선시대 어느 누구를 떠올리게 합니다.

 

조선시대 누구를 떠올리는데요?

 

임채욱 선생: 조선시대 한 문신(孟思誠)은 시(강호사시가)를 읆으면서 이 몸이 한가한 것도 임금은혜이고 서늘한 것도 임금은혜이고 춥지 않는 것도 임금 은혜 때문이라고 했지요. 자연 혜택에서 받는 행복감도 다 통치자 때문에 있다는 식이지요.

 

통치자가 행복을 가져 다 준다는 식의 행복관은 어떻게 나타납니까?

 

임채욱 선생: 개인의 행복도 수령이나 지도자로부터 온다고 가르치고 믿는 곳이 북한이지요. 잘 먹고 잘 입는 것만이 삶의 최고 목적이 아니고 삶의 최고목적은 수령이 가르쳐 준대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 이루는 것이 되지요. 앞에서 이산가족들 말처럼 개인의 삶도 통치자를 떠나서는 생각하기 어렵지요. 그럼 북한 수령은 행복에 대해서는 어떻게 말했는가? 김일성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행복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과 아름다운 생활은 오직 자기 손으로 창조하여야 합니다.”(1957. 8. 24.). 그래서 북한에서는 모든 생활이 행복한 생활로 되는 것이 아니라 자주적이고 창조적인 생활만이 행복한 생활이라고 하지요. 김일성도 “사람은 정치적 권리를 가지고 나라와 민족의 주인으로서 자주적이고 창조적인 생활을 누릴 때에만 참다운 삶의 보람과 행복을 느낄수 있습니다”(김일성저작집 29권)라고 말합니다. 이러니 북한에서는 행복이 단순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 안목이 없어서는 안 되는 것처럼 보이지요.

 

김일성이 행복을 찾으려면 자주적이고 창조적인 생활을 해야 한다고 했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대로 하지만은 안할 것 아닙니까? 일상생활에서 찾는 행복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납니까?

 

임채욱 선생:  ‘세상에 부럼없어라’는 구호처럼 북한주민은 행복을 입에 달고 삽니다. 하지만 북한 같은 곳에서는 사회가 요구하는 이상형의 인간과 현실적인 인간 사이에는 괴리가 있기 마련입니다. 현실적으로 보면 북한주민은 5장 6기만 갖춰져 있어도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찬장, 이불장, 양복장, 신발장, 책장이 5장이면 냉동기, 세탁기, 선풍기, 재봉기, 텔레비죤수상기, 사진기)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자기 자식이 장수하고 당원이 돼서 높은 지위를 차지해서 경제적 특혜를 받고 남이 못가는 김일성대학을 가서 귀하게 되기를 바라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런데도 말은 “수령의 명령을 관철하기 전에는 죽을 권리고 없다”라고 하는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7월부터 노동시간이 주간 52시간이 넘지 못하도록 하는 법이 발효된다면서요? 그럼 보다 많은 시간을 삶의 질 향상에 쏟을 수 있고 그렇게 되면 행복감도 높아지겠군요.

 

임채욱 선생: 그렇습니다. 7월부터 근로기준법이 바뀌어서 지금까지 주간 68시간 노동에서 52시간으로 바뀝니다. 그간에도 저녁이 있는 삶이니 하면서 행복타령을 했듯이 한국에서는 행복이란 말이 넘쳐납니다. 행복이 없다는 것의 반증인지 백화점 이름에도 잡지 이름에도 방송국 이름에도 있고 행복을 말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정치인들은 행복한 삶을 약속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으로 알지요. 워라벨이다, 욜로다, 소확행이다 하면서 행복타령을 많이 하고 있지요.

 

이런 말들은 어떤 내용들인지요?

 

임채욱 선생: 이런 말들은 행복의 다른 말이나 마찬가지라고 보겠습니다. 워라벨은 일과 삶의 균형 (Work & Life Balance)을 영어로 표현한 것인데 밖의 일과 가정의 일을 조화시켜서 행복한 삶을 살자는 것입니다.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는 ‘인생은 한 번 뿐이다’를 내세워 단 한번만 사는 인생, 현재를 즐겨라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또 소확행은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말합니다. 일본 어느 소설가가 쓴 말이라는데 작고 아늑하게 즐기지만 꽉찬 행복감을 확실하게 느끼는 것입니다. 그런데 소확행과 비슷한 행복찾기는 온 지구촌에서 열풍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집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조용히 삶을 즐기는 오캄(Au Calm), 덴마크에선 장작불 옆에서 코코아를 마시는 것처럼 편안하고 안락함을 찾는 휘게(Hygge), 또 스웨덴에서는 잠시 일을 멈추고 차와 과자를 즐기면서 자신만의 행복한 시간을 갖는 라곰(Lagom)이 소확행과 비슷한 행복찾기로 나서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젊은 층에서는 이런 행복 찾기 바람이 일고 있습니다.

앞에서 행복교류라고 했는데 물자교류나 예술공연교류 같은 것은 눈에 띄는 가시적인 교류이지만 행복 같은 것은 어떻게 교류할까요? 행복에 공식이 있는 것도 아닌 이상 서로가 행복을 보는 눈도

 

다른데 그게 교류가능 할까요?

 

임채욱 선생: 행복교류는 결국 행복에 대한 경험교류, 행복경험교류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행복한 경험을 주고받을 수 있겠지요. 물론 이쪽에서 행복이란 것을 저쪽에서는 행복이라고 받아들일 수 없을 수도 있겠고요, 하지만 행복교류는 행복을 담은 예술작품을 주고받는 것도 행복교류이겠지요. 아직 한국에서처럼 워라벨, 욜로, 소확행이 행복교류 항목으로 되기에는 시기상조이겠지만 그래도 행복 항목을 찾아보면 많지 않겠습니까? 남북이 행복교류를 하기 위해서는 각자 어느 정도 행복연습도 필요할거예요. 행복을 주제로 한 작품도 함께 만들어 가다보면 행복감도 닮아 가겠지요.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RFA 기사 원문 

 

북한의 박두익(왼쪽)이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이탈리아 경기에서 결승골을 성공시키고 있다.
북한의 박두익(왼쪽)이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이탈리아 경기에서 결승골을 성공시키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월드컵축구가 온 세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습니다. 16강전이 끝나고 8강전으로 들어갑니다만 흥미 있는 보도도 쏟아지는 가운데 한국과 북한과 관련된 것도 보입니다. 영국의 한 언론은 월드컵 88년 역사에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이변 10개 경기를 뽑았는데, 그 중 2위가 이번에 한국팀이 독일팀을 2대 0으로 이긴 것이였습니다. 또 1966년에 북한팀이 이탈리아를 이긴 것도 4위에 들어갔습니다.

 

임채욱 선생: 흥미있는 보도였습니다. 이 가운데 한국팀은 한 가지 더 있지요. 2002년 한국과 일본에서 열린 한일월드컵 때 16강전에서 한국이 이탈리아를 2대 1로 꺽은 것이 6위에 올라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10개 경기 가운데 남북한이 차지한 것이 3개고 그 중 2개 경우가 이탈리아와 관련되는군요.

 

이 10개 경기 중 1위가 4년전 월드컵 준결승전에서 독일이 브라질을 7대1로 꺽고 우승한 것입니다. 이런 독일을 이번에 한국이 꺽었으니 대단한 일이지요.

 

임채욱 선생: 이런 것을 두고 경천동지(驚天動地)라고 할 수 있지요. 하늘이 놀라고 땅이 움직일 정도로 큰 일이였지요. 현재 세계 1위인 독일이 한국에 무릎을 꿇은 것은 사람들의 눈을 의심케 하는 일이니 놀랄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국은 독일을 80년 만에 16강에 못 올라가게 만든 팀이 돼서

세계 축구역사에 새로운 기록을 남기게 된 것입니다.

 

그럼 북한이 1966년에 이탈리아를 이겨서 일으킨 충격도 설명 해주세요.

 

임채욱 선생: 북한은 그 때 구 소련과 칠레, 그리고 이탈리아와 한 조였는데, 소련에 3대 0으로 지고 칠레와는 1대 1호 비겼는데 세 번째 경기를 이탈리아와 치르게 됩니다. 이 시합에서 북한은 1대 0으로 이탈리아를 꺾어 버립니다. 이변이 일어난 것이지요. 이탈리아팀은 1934년과 1938년에 우승한 세계적인 강팀이였는데 북한에 졌으니 온 나라가 난리가 났지요. 그 때 이탈리아는 선수 한 명이 부상으로 나가서 10명으로 시합을 하게 돼서 힘들게 시합한 것이지요. 그때는 부상선수 교체제도가 없어서 부상을 입으면 대체를 하지 못했습니다. 골을 넣은 북한선수 박두익은 ‘아시아의 진주로 불렸지요.

 

그때 북한 성적은 어떠했습니까?

 

임채욱 선생:  1승1무 1패로 8강전에 나갔지요. 그때는 출전 국이 24개국이니까 조별로 2팀이 바로 8강전으로 나갔습니다. 8강전에서 북한은 포르트갈을 만났지요. 북한이 먼저 3골을 넣습니다. 야단났지요. 북한 중계방송 아나운서는 북조선만 해도 이런데 통일이 돼서 남조선 힘까지 보태지면 얼마나 좋겠느냐면서 흥분했지요. 그런데 유세비오란 걸출한 선수 때문에 단번에 경기가 뒤집혀버립니다. 3대 5로 북한은 패배를 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이 이탈리아를 이긴 것은 10대 사건으로 남았군요. 그 뒤 북한의 다른 월드컵 출전사를 말씀해 주십시오.

 

임채욱 선생: 북한은 어쩐 일인지 이 이후로는 아시아권에서만 좋은 성적을 내다가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 출전하게 됩니다. 영국 월드컵 이후 44년만이지요. 세계 최강 브라질에 1대 2로 패했지만 잘 싸웠고 포르투갈을 만났는데 0대 7로 지고 맙니다. 북한으로서는 44년전 영국에서 3대 5로 역전패한 상대라서 ‘또다시 1966년처럼, 조선아 이겨라’라는 구호를 내걸고 싸웠지만 크게 지고 조별 리그에서 탈락합니다. 이때 한국은 박지성을 앞세워 그리스를 이기고 16강전에 진출하지요.

 

북한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출전으로 월드컵에 2번 나가게 됩니다. 한국은 10번을 나갔다지요?

 

임채욱 선생: 한국은 1954년에 처음 월드컵에 나간 이후 1986년부터는 연속으로 9번을 나갔습니다. 그러니까 모두 10번을 나간 것이지요. 아시아에서는 제일 많이 나간 나라이지요. 성적은 2002년 한일월드컵 때 4강을 한 것이 가장 좋지요.

 

2002년 한일월드컵은 아주 오래 된 경기가 아니어서 기억을 다 합니다만 1954년 월드컵 경기 같은 것은 기록을 찾기 전에는 잘 알지 못하지요.

 

임채욱 선생: 네, 그렇습니다. 1954년이면 6.25전쟁이 끝난 다음 해가 되지요. 스위스 월드컵인데 요즘처럼 홈 앤 어웨이 방식이어서 아시아권에서 출전 신청한 일본과 한국이 왔다 갔다 해야 하지요. 그런데 반일감정이 깊었던 이승만대통령이 일본 팀이 한국땅을 밟을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하는 바람에 한국팀이 일본에 가서 2차례(54. 3) 시합을 합니다. 1차전 5대1, 2차전 1대1로 1승 1무승부로 한국은 출전권을 얻습니다. 그 때 선수들은 일본에 지면 현해탄에 몸을 던지겠다는 각오였다는데, 다행히 몸을 던지지 않아도 됐던 겁니다.

 

본 경기 참가는 어떻게 됐습니까?

 

임채욱 선생: 그 해 6월에 경기가 시작되는데 스위스에 가는 것도 힘이 많이 들었지요. 미군 군용기로 일본 도꾜에 갔고 거기서 갈아타고 또 갈아타면서 64시간 만에 도착했을 때는 개막식도 끝났을 때지요. 짐도 풀기 전에 유니폼 갈아입고 항가리와의 첫 시합에 나서서 0대 9로 대패를 합니다. 2차 터키전도 0대 7로 지고, 3차 서독전은 시합도 못하고 돌아오지요. 그 때 항가리는 푸츠카츠라고 불세출의 선수가 있어서 그 해 우승한 서독도 항가리에 3대 8로 졌습니다. 100여개의 항가리 슈팅을 막아낸 한국키퍼 홍덕영에게 상대선수가 다가와서 가슴을 만져봤다고 하지요. 100여개 중 9개가 들어갔으니 대단한 골키퍼로 알려졌습니다. 그때 장내아나운서가 전쟁이 끝난 나라 한국이라고 성원을 부탁하자 스위스 사람들은 식품, 의류, 시계, 돈을 다퉈 가져왔다고 합니다.

정말 눈물겨운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리고는 오랫동안 한국은 월드컵 출전을 못하게 되는군요.

임채욱 선생: 한국팀 패배를 본 유럽 축구인들은 수준이 낮은 아시아, 아프리카 팀을 월드컵대회에 출전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도 냈다고 합니다. 그 때 FIFA회장이던 쥘 리메가 이렇게 반박했다고 합니다. “지금 한국같은 나라가 형편없이 무너졌다 해도 수 십 년 뒤에는 전혀 모를 일이다” 과연 그렇게 되지 않습니까? 그로부터 48년뒤 한국은 월드컵대회를 직접 개최했고 4강을 했습니다.

 

이번 독일전 숭리는 북한주민도 알까요?

 

임채욱 선생: 아마도 알게 되겠지요. 경기장면을 북한주민에게 보여 줄 가능성도 있지요. 2002년 월드컵 이탈리아전 한국 승리 때도 사후에 중계방송을 한 일이 있으니까요.

 

최근 남북한 간에는 축구교류를 하자는 말도 오고 가는 것 아닙니까?

 

임채욱 선생: 아마도 그렇겠지요. 우선 엊그저께 통일농구시합이 평양에서 있었지 않습니까? 축구가 아닌 농구가 선택된 데는 북한통치자가 농구를 좋아해서 그렇게 된 것인지도 모르지요. 전 통치자 김정일은 축구를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는 축구발전에 대한 ‘불멸의 업적’(역사과학 2015. 1호)을 세웠다고도 하는데 사상전, 투지전, 속도전, 기술전을 강조했고 이게 지금 북한 스포츠의 원칙처럼 돼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월드컵축구를 또 한 번 열려고 한다는 보도도 있습니다.

 

임채욱 선생: 아 그건, 한국대통령 제안이라는데, 한국과 북한 그리고 중국과 일본 이 4나라가 2030년쯤 월드컵축구를 공동개최를 하면 동북아시아에 평화와 안정을 가져오지 않겠느냐 하는 뜻이라고 합입니다. 아직은 구상단계이고 실현여부는 불투명하지요.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RFA 기사 원문 

 

서울 강남구 신사동 K옥션 본사에서 관계자들이 김정호 대동여지도 채색본을 펼쳐보이고 있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K옥션 본사에서 관계자들이 김정호 대동여지도 채색본을 펼쳐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한국에서는 올해 도 이름을 지은 지 천년(1000년)이 된다고 큰 행사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통일문화산책 오늘 이 시간에는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천 년의 역사를 가진 행정지명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먼저 우리나라 전체 도 이름은 서기 1018년에 다 지어진 것인가요.

 

임채욱 선생: 아닙니다. 천년이 되는 도는 경기도, 경상도, 전라도 셋뿐입니다. 그러니까 서기 1018년, 지금부터 1000년 전에 이 이름이 지어졌고 다른 도 이름은 그 뒤에 지어 진 것입니다. 그렇지만 전국 어느 도나 다 해당되는 것도 아니고 더욱이 북한지역 도는 해당되는 것이 하나도 없는데요.

 

그렇더라도 우리나라 행정구역 이름이 천년이나 이어졌다니 대단한 것 아닙니까, 그리고 8도 이름도 이 3개 도 이름을 포함해서 정해진 것이니까 그걸 아울러서 한 번 살펴보지요.

 

임채욱 선생: 네, 그렇게 하지요. 사람 사는 곳에 지명이야 당연히 있기 마련이고 그 중에서도 행정구역을 나누면서 생겨나는 행정지명도 고대부터 생겨났지요. 그런데 현재와 같은 도 이름, 그러니까 경기도다 경상도다, 전라도다 하는 것은 1000년 전 1018년에 생겼다는 것이지요. 다른 도 이름은 한 400년이 지난 조선 3대 왕인 태종 13년에 확정됩니다. 이 해가 1413년인데 이 때 오늘날과 같은 도 이름 8개가 정해지지요. 경기도,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황해도, 평안도, 함경도, 강원도라는 이름이 그것입니다.

 

그렇다고 1413년에 도 단위 행정구역이 처음 생겼다는 것은 아니겠지요? 우리나라 도 단위 행정구역이 생겨난 것은 언제인가요?

 

임채욱 선생: 1018년에 경기도다 경상도다 하는 이름이 태어난 것은 도단위 행정구역 이름이 그렇게 지어졌다는 것이지 다른 지역에도 도단위 행정지명은 있었지요. 다만 오늘날 이름과 달리 삭방도(강원지역)다, 양광도(충청도 일부지역)다, 황해도 지역은 서해도다 했던 것이지요. 우리나라에서 행정단위로 도 이름이 처음 정해진 것은 고려 성종 때인 995년인데 이 때 전국을 10개도 128개 주 449현으로 구획합니다. 이것이 1018년 5도 양계로 됐다가 조선 태종 때 오늘날 남아있는 8개도로 정해집니다. 이 8개가 다시 남북도로 나눠지면서 13개도가 되는 것은 1896년입니다.

 

그럼 1018년에 경기도가 생긴 연혁을 좀 살펴볼까요?

 

임채욱 선생: 경기도는 고려의 도읍지인 개경과 그 배후지역이라 할 개풍군(덕수), 장단군(임강), 황해도 금천군(강음, 토산), 파주(적성, 파평) 일부지역을 합해서 경기라고 이름한데서 시작됩니다. 그게 1018년인데 내내 경기란 이름이 계속된 건 아니고 중간에 없어지기도 하고 그 이름이 쓰이지 않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포괄지역이 오늘날 경기도 지역뿐이 아니고 황해도 일부도 포함되는 지역이였습니다.

 

경상도는 어떻게 정해집니까?

 

임채욱 선생: 서기 995년 고려 때(성종 14년) 전국을 10개도로 나눌 때 경상도 지역은 영남도(상주관할지역), 영동도(경주, 김해관할), 산남도(진주관할)로 나눠졌는데 1106년 이 세 지역을 합해서 경상진주도라 한 것이 경상도란 이름의 시작이지요. 그 뒤 경상주도, 진합주도, 상진안동도, 경상진안도 등으로 바뀌다가 1314년 고려 충숙왕 때 경상도란 이름으로 됩니다. 이 뒤부터는 계속 경상도로 불리게 되지요.

 

다음 전라도가 정해진 경위를 설명 부탁합니다.

 

임채욱 선생: 전라도는 고려 성종때인 995년 이 지역은 강남도와 해양도로 불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1018년 전라주도라고 부르게 되는데 이것이 조선시대에 전라도로 확정됩니다. 그 뒤 전남도라고도 고쳤다가 광남도로 고쳐지기도 하고 전광도로 고쳐지기도 했지만 결국 전라도라는 이름으로 남았습니다.

 

북한지역 도 단위 행정지명도 살펴봐야지요.

 

임채욱 선생: 1,000년은 되지 않지만, 오늘날 북한지역 황해도, 평안도, 함경도는 1413년 조선 태종 때 정해집니다. 그전까지는 황해도 지역은 서해도, 평안도 지역은 서계, 함경도 지역은 동계 등으로 불립니다.

 

황해도 연혁을 설명해 주시지요.

 

임채욱 선생: 황주와 해주 이름을 딴 황해도는 995년 관내도라 불리다가 1106년 서해도가 됩니다. 한 때 풍해도가 되기도 했다가 1417년에 황해도가 됩니다. 그 뒤 황연도가 되기도 했지만 1896년 황해도로 확정됩니다.

 

이어서 평안도 연혁을 부탁드립니다.

 

임채욱 선생: 평안도는 고려 현종 때 이전에는 관서도 또는 패서도라 불리다가 1018년 서계(西界)란 행정명칭으로 바뀝니다. 1413년 조선 태종 때 8도제를 정할 때 평양과 안주 이름을 따서 평안도가 됐습니다. 한 때 서북면이라 불리기도 하고 평안동도와 평안서도로 나눠지기도 했지만 1896년 청천강을 경계로 평안남북도로 확정됩니다.

 

끝으로 함경도 연혁입니다.

 

임채욱 선생:  10도 제이던 995년에는 이 지역을 강원도 일부와 함께 삭방도라 불렀습니다. 그 뒤 1018년 동계로 구분되다가 1055년 동북면, 1413년 8개도로 정할 때 영흥과 길주를 따서 영길도라 했습니다. 바로 얼마 뒤 함길도로 됐다가(1416년) 또 영안도(1470년)가 되고 1509년에 함경도가 됩니다. 그 뒤부터는 함경도가 굳어졌고 1896년에 남도와 북도가 분리됩니다. 함길도는 함흥과 길주, 영안도는 영흥과 안변일 것입니다.

 

행정구역 개편이야 행정의 필요성에 따라 새로 생겨나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하는데 광복후 북한은 8도 체제를 무너뜨리고 새로 도 단위 행정구역을 만들었지요?

 

임채욱 선생: 네, 광복당시 13개도였지요. 38선으로 황해도, 평안남북도, 함경남북도가 북쪽지역이 돼서 이북5도가 됐지요. 강원도 일부(21개 군 중 북쪽 9, 남쪽 10, 2개 군은 남북양쪽) 경기도 일부(2개군)도 북한지역이 됩니다만 전체적으로는 5개도였지요. 그런데 북한에서는 바로 다음 해 1946년 강원도 38이북 9개 군과 함경남도 원산시, 안변군, 문천군, 경기도 연천군, 포천군 일부를 통합해서 북한쪽 강원도를 만듭니다. 또 1949년 1월에는 자강도를 신설하는데 평안북도 자성군, 강계군, 후창군, 위원군, 초산군, 희천군과 함경남도의 장진군 일부를 통합한 것입니다. 그리고 6.25전쟁이 끝난 뒤인 1954년 10월에 함경북도 산악지역 10개 군을 통합해서 양강도를 신설하고 황해도를 남도와 북도로 분리합니다. 그래서 9개 도를 만드는데 이건 남쪽의 9개 도와 맞추려 한 것입니다. 남쪽도 제주도를 전라남도에 분리해서 9개 도였지요.

 

오늘은 남북한의 도 단위 행정구역을 명칭 위주로 살펴봤습니다. 다음 기회에 행정구역 개편의 전반적인 모습도 알아보겠습니다.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RFA 기사 원문 

 

촬영자가 준 빵을 먹고 있는 군인과 그 옆에서 음식 찌꺼기를 줍고 있는 어린 꼬제비(거지). 참고로 이 병사는 '영양실조로 귀가를 명령받았다'고 말했다. 2013년 8월 북한의 모 도시.
촬영자가 준 빵을 먹고 있는 군인과 그 옆에서 음식 찌꺼기를 줍고 있는 어린 꼬제비(거지). 참고로 이 병사는 '영양실조로 귀가를 명령받았다'고 말했다. 2013년 8월 북한의 모 도시.
사진제공-아시아프레스

 

북한에서 6살부터 탄광촌에서 탄을 캐, 먹을 것을 해결했다는 탈북고아 은하 양의 이야기를 전하려고 합니다. 북한에서 꿈 많은 어린시절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림에 시달리다 탈북고아가 된 은하 양, 한국으로 오기 전 북한에서는 탄을 캐며 살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2016년에 탈북해 올해 15살로 남한에서 새로운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국에 와 가장 좋은 게 뭐냐고 물으니 ‘먹을 것’이 풍부해 가장 좋으며, 밤에도 낮처럼 환하게 밝아서 너무 좋다’고 자유아시아방송과 회견에서 밝혔습니다. 은하 양은 북한에서 공부를 하려면 좀 잘 살아야 하는데 잘 살지 못하니까 나가서 석탄 캐러 다닐 수 밖에 없었다고 증언했습니다. 탄을 캐기가 쉬웠느냐고 물었더니 굴이 무너지면 사람이 죽는 판인데 어떻게 쉬울리가 있겠느냐고 반문하기도 했습니다.

 

목요대담 오늘은 탈북고아 출신 은하 양의 북한생활 이야기 함께 나눕니다.

 

은하는 몇 년 도에 새 아빠 엄마를 만났어요.

 

은하: 2016년이요.

 

2016년에 만났군요. 은하 지금 몇 살이에요.

 

은하: 열 다섯살이요.

 

북한에서 학교 다니거나 공부한 이야기 들려주세요.

 

은하: 일단은 거기서요. 공부를 많이 못 배웠어요. 북한에서 공부를 배우려면 좀 잘 살아야 하는 데 잘 살지 못하니까 우리가 나가서 돈을 벌어야 해요.

 

그래 무슨 일을 해서 돈을 벌었나요?

 

은하: 탄광에 다녔어요. 탄광에 다니면서요. 우리가 탄을 캐 가지고 다른 사람들에게 팔아서 돈을 벌어 직접 식량을 사는 거에요.

 

탄을 캐는데 쉬어요. 어려워요.

 

은하: 쉬 울리가 없지요. 거기다가 자칫 잘 못해서 굴이 무너져서 사람이 죽는 판인데 어떻게 쉬울리가 있나요.

 

참 북한에서 지금까지 생활해 오면서 너무 고통스러웠던 일들이 많을 것 같은데 어떤 일들이 가장 고통스러웠을까요.

 

은하: 먹고 살기가 힘드니까 배고프잖아요. 여기서는 밥을 많이 먹는데요. 거기(북한)에선 배고파도 밥을 많이 못 먹거든요. 식량이 부족해서요. 그래가지고 그게 제일 고통스러워요.

 

북한에서 잠깐이라도 공부한 기억이 있나요. 친구들 이야기요.

 

은하: 아니요. 거기(북한)에서 친구들 사귈 새가 없어요.

 

지금도 고향은 생각이 나요. 고향 어땠어요. 주위에 산 이라든지 경치들 이야기 들려주세요.

 

은하: 그런 거 경치 감상 할 그럴 겨를이 없어서 하루가 24시간이라면은요. 3시간이나 4시간 밖에 못 자고요. 하루 종일 일만 해야 해요. 그래서 경치 볼 시간이 없어요.

 

자 그러면은 북한에서 나서 몇 살부터 일을 하기 시작했어요.

 

은하: 아 저 학교 다닐 때부터 일을 했어요. 여섯 살 부터요.

 

하루에 생활을 이야기 해 주세요. 탄을 캐서 하루 식량을 구하는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됐어요.

 

은하: 한끼 먹을 정도요. 아무리 열심히 해도 단 한끼 먹을 정도 밖에 못해요.

 

그러면 탄을 캐서 장마당에 가지고 가서 파나요.

 

은하: 아니요. 그런 데가 아니라 그냥 장사하려는 사람들, 비닐하우스 있잖아요. 그런데 탄이 필요하니까요. 그런 장사하는 사람들에게 파는 거에요.

 

그러면은 탄을 팔아서 북한 돈으로 받아요. 다른 나라 돈으로 받아요.

 

은하: 북한 돈으로 받는 게 맞지요.

 

그럼 가령 예를 들어서 탄이 어느 정도면 돈을 얼마를 받는지 그런 것도 이야기 해 주세요.

 

은하: 1 KG에 100원이나 130원 정도 받아요.

 

그러면 100원이나 130원이면 그걸 가지고 어떤 식량을 사나요.

 

은하: 강냉이요. 옥수수요. 거기(북한)에서 쌀은 먹을 수 없어요. 옥수수도 비싸서 못 먹는데…

 

북한에서 먹었던 음식 생각나는 것 있으면 다 이야기 해 주세요. 강냉이를 포함해서 어떤 게 있어요.

 

은하: 옥수수를 부드럽게 갈아요. 거기다가 00(술)을 묻혀 먹어요.

 

지금 은하 양 경우에는 몸무게가 얼마나 나가요.

 

은하: 48킬로그람이에요.

 

북한에 있을 때는 몸무게를 물론 안 달아 봤겠지마는 몸무가 적게 나갔겠지요.

 

은하: 거기(북한)에 있을 때요. 제가 북한 떠날 때 22킬로그람이었어요. 지금은 48킬로그람 나가요.

 

48킬로그람 많이 늘었군요. 저기 (북한)에 있다 탈북해 남한에 오게 됐는데 남한에 와 느낀 점 말해줘요.

 

은하: 일단은 배 고품 같은 게 전혀 없고요. 먹고 싶은 거 다 먹어요. 그리고 일단은 엄마가 생기고 아빠가 생겼고요. 엄마가 너무 잘해 줘서요. 먹고 싶은 것 다 사줬고, 입고 싶은 것 다 해줘요. 그래가지고요. 그게 북한에 있을 때와는 완전 차원이 다른 환경이라서요. 너무 좋아요.

 

은하 양 지금 먹는 것 입는 것 풍부하고 새로운 엄마 아빠 만나 행복한데 지금 공부도 하고 있지요. 공부 이야기 들려주세요.

 

은하: 공부는 잘 못하고요. 북한에서는 학교에서 친구들이 없었거든요. 근데 여기서는 그냥 학교가면 친구들이 다 인사해 줘서요. 그리고 더워도 학교에는 에어컨이 나오고요. 겨울에는 따뜻한 바람이 나오니까 모든 게 풍족하고요. 일단은 모든 게 다 밤에도 캄캄하지 않고 다 밝고요. 학교가면 그냥 친구들도 많고 일단은 공부의 스트레스 같은 게 안 싸여요. 공부를 하겠다라는 그렇게 열성이 좋지 않다 보니까는요. 그래가지고요. 그런 스트레스 같은 것은 없어요.

 

은하 양 앞으로 꿈이 뭐에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세요.

 

은하: 아직은 몰라요. 커가면서 알게 될 거라는 것 밖에…

 

친구들과 만나 생활하면서 즐거움 같은 거 한마디 해 주세요.

 

은하: 학원에도 다니고 있거든요. 공부하는 데가 아니라 태권도를 배워요. 제가 운동을 좋아해서요. 아빠가 보내 주셨고요. 태권도 배우면서 태권도에 관해 말을 잘해요.

 

태권도는 얼마나 배웠어요.

 

은하: 이곳에 왔을 때부터 배웠어요.

 

앞으로 태권도 대표 되고 싶은 마음도 있겠네요. 대표선수로요.

 

은하: 네

 

그래요. 태권도도 열심히 배우고요. 나중에 제가 한국에 가거나 은하 양 미국에 오면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요.

 

목요대담 오늘은 탈북고아 출신 은하 양의 북한생활 이야기 함께 나누었습니다. 지금까지 인터뷰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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