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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한국인

숨은 봉사자 실비아 패튼 씨의 삶과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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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여성회 미주연합회 이사회에 참석한 실비아 패튼(윤영실) 고문.
사진 제공: 실비아 패튼

재미 한인 여성으로 봉사자의 길을 걷고 있는 이가 있다. 바로 실비아 패튼(윤영실) 씨다. 국제결혼여성들의 희망설계사로 불리는 그녀는 1990년 한미여성재단에 가입하며 사회봉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가 봉사한 주요 기관을 보면 버지니아 한인 민주당 회장, 워싱톤 한미여성재단회장, 한미여성회 미주연합회 초대회장, 세계국제결혼여성총연합회 수석부회장, 훼어팩스 카운티 여성부 여성위원회 소수계 대변인, 버지니아 주지사 아시안 자문위원,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워싱턴 협의회 자문위원, 아태계 연합회 부회장 등이다. 그녀가 받은 상은 최근 2014년에 세계국제결혼여성총연합회에서 공로패 등 22개의 공포패와 사회봉사상을 받은 숨은 봉사자로, 2006년에는 재외동포신문에서 그의 활약상을 인정해 ‘올해의 인물’로 선정하기도 했다.

지구촌의 한인들 오늘은 재미동포로 숨은 봉사자인 실비아 패튼 씨의 이야기로 함께한다.

실비아 패튼 씨에게 오늘까지 미국에 살면서 지난날을 회고해 달라고 했다.

실비아 패튼: 저의 고향은 강원도 양구이고요. 1990년 미국 장교를 만나 결혼하고 버지니아로 오게 됩니다. 지난 1993년부터 현재까지 페어 뷰 파크 꽃집을 운영하면서 사회봉사활동으로 노숙자 급식, 양로원 방문, 불우여성돕기, 혼혈이 시민권 자동부여법안 통과 캠페인, 추방 위기에 처한 한인 여성 구명운동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한 것 같습니다. 기억에 남는 봉사로는 버지니아 주지사 아시안 자문위원 활동과 국제결혼한 단체인 ‘World-KIMWA 세계국제결혼여성 총연합회’를 발족시킨 일과 워싱톤 한미여성재단 활동이 가장 기억 속에 담고 있습니다. 미국에 온 지는 25년 되었고요. 가족은 남편과 그리고 지난해 결혼한 아들이 가까운 곳에 살고 있어요. 꽃은 취미로 한국에서부터 배웠는데, 육군이었던 남편이 제대하면서 꽃집을 운영하기 시작해 오늘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어떤 봉사가 가장 기억이 남는지 궁금하다.

실비아 패튼: 1998년에 버지니아 민주당 회장을 하면서 미국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되고, 마크워너 주지사 선거운동을 하게 되며, 워너 주지사가 당선되면서, 버지니아 주 하원의원 마크 김과 함께 버지니아 주지사 자문위원을 맡게 되었습니다. 6년 동안 한인들과 아시안들의 이슈를 주지사에게 전달하고 자문하는 역할이었어요. 임기 기간 중에 추방에 처한 두 명의 한인 여성을 구해냈고, 버지니아의 웅담사건 함정수사의 부당성을 미주류 사회에 알리고, 미국법을 몰라 불이익이 당하는 일이 없도록 수렵국과 함께 세미나를 개최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미국에 사는 한인들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를 통해 전국적으로 한인사회의 권리와 능력을 키워나가기 위하여 2009년 미 전국에 있는 민주당원들이 모여 “미주 한인민주당 총연합회”를 발족하고 초대 공동의장으로 활동하면서 한인사회의 권익 향상과 정치력 신장을 위해 유권자 등록하는 걸 도와주고 적극적으로 투표에 참여하길 호소했습니다.

실비아 패튼 씨는 가정폭력 피해 여성들을 돕는다고 설명한다.

실비아 패튼: 패어팩스 카운티 여성위원회 소수계 대변인으로 가정폭력 피해여성들을 도울 수 있는 일과 정부에서 운영하는 쉘 터 프로그램을 배울 수 있었어요. 갈 곳 없는 그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2년 동안 집을 정부에서 제공해주고, 영어공부도 시켜주고 하더군요. 미국의 프로그램을 잘 활용하면 우리에게도 큰 도움이 되는데 몰라서 혜택을 못 받는 경우도 많았고요. 우리가 미국을 알면 도움되는 일들이 무척 많다는 걸 알았습니다.

실비아 패튼 씨가 미국에 와서 맨 처음 한미여성재단 봉사로 시작됐다고 한다.

실비아 패튼: 미국에 와서 처음으로 가입한 단체가 “한미여성재단”이었어요. 1990년부터 재단에서 하는 봉사활동에 참여하며 한인사회를 접하게 되었고요. 2000년도에 한미여성재단 회장을 하며 가정폭력피해여성들의 임시 쉘터및 상담소(희망의 집)를 개설하고, 그들이 필요한 곳과 연결해주는 역할과 긴급한 상황에서 갈 곳 없는 여성들을 임시로 보호해주며,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밖에 노인들과 다른 봉사활동 이야기도 들어보자!

실비아 패튼: 운전면허증이 없는 노인들을 위한 신분증을 만들어주기 위해 함께 DMV에 모시고 가서 서류 작성하는걸 도와주고 양로원의 외로운 노인들을 방문해 머리 손톱 또는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홀리스들에게 음식을 만들어 나누어주는 일등 보람된 일들이 기억에 생생합니다. 저의 주업인 꽃집 일보다 다양한 봉사활동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낸 것 같아요.

실비아 패튼 씨는 국제결혼여성세계대회 행사를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실비아 패튼: 국제결혼을 한 여성들을 하나로 묶고 인권을 보호하기 위하여 미국의 한미여성회를 하나로 통합하는 “KAWAUSA한미여성회 미주연합회”가 2004년 발족되고, 초대회장을 맡게 되면서 2005년 한국에서 ‘국제결혼여성을 하나로’라는 슬로건(표어)을걸고 “국제결혼여성세계대회”를 개최하게 됩니다. 세계 각국에 흩어져 있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하나로 모으고, 한미 양국을 오가며 억울하게 일본군에 끌려가 고생한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일들, 성매매 피해 여성들을 위한 핫라인 운영, 가족 폭력 희생 여성들을 위한 쉘터운영. 노숙자 등 소외된 사람들의 아픔에 대한 봉사를 지속하는 한편 전 세계여성들을 하나로 만들기 위하여 제가 대회장을 맡았던 2006년 제2회 국제결혼여성세계대회에서 World-KIMWA 국제결혼여성총연합회”를 발족했습니다.

실비아 패튼 씨는 국제결혼 여성들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했던 것이 가장 보람된다고 말한다.

실비아 패튼: 국제결혼에 대한 편견 극복과 다민족 문화가 공존하는 가정의 정체성 회복을 위한 교육과 홍보활동 강화, 한국에선 혼혈인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고, 미국에선 혼혈인 자동 시민권 통과캠페인을 주도하여 2만 명이 넘는 서명을 받아 국회에 전달하기도 했고, 다문화 가정 아동들을 위한 후원 등 한국 이주여성들의 단체와도 협력하며 국제결혼여성들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만들었다고 봅니다. 올해로 창립 9주년을 맞는 World-KIMWA는 전 세계 각 지역에서 민간외교관 역할을 착실히 수행하며 한인들의 위상을 높이고 있습니다.

실비아 패튼 씨가 한인사회에서 펼친 각종 운동에 참여한 이야기도 들어본다.

실비아 패튼: 풀뿌리운동을 성공적으로 이루어 낸 정신대결의안 미 의회 본회의 통과 캠페인에 참여하며, 의원들에 로비와 기금모금에도 동참을 하였으며, 성매매사건과 관련, 핫라인을 제공하여 성매매 피해여성들이 도움을 청할 경우 일자리를 찾아주는 일이며,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했습니다. 911 이후 영주권자가 중범죄가 되면 추방당하게 됩니다. 그들을 구해내기 위해 국회의원에게 청원서를 보내고 서명운동을 하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게 한 일은 정말 보람된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민주당에서 활동하고 버지니아 주지사 자문위원을 하며 정치인들과의 인맥을 다져놓고 그들의 행사에 참석하고 후원을 해주며 우리가 필요로 할 때 우리의 목소리를 대변해줄 수 있는 의원들이 당선되도록 물심양면으로 후원을 했고 사실 그렇게 다져온 인간관계로 인해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앞으로도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소외된 이들을 위해 뜻있는 일을 해보고 싶습니다.

실비아 패튼 씨는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해 몇 개 사진 경연에서 상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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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민주평통 주최 ‘통일여행사진 콘테스트’ 최우수상인 윤영실 씨의 ‘아버님 살아 생전에’ 작품 (제공:실비아 패튼)

실비아 패튼: 사진은 5년 전 취미로 시작하게 되었고, 민주평통주최 통일 여행사진경연에서 ‘아버님 살아생전’에 라는 제목으로 최우수상을 받았으며, 페어팩스 카운티에서 주최한 뷰디플 페어팩스에서 입상, 한국 디지털 사진작가협회 공모전에서도 다수의 입선을 했고, 한국 디지털사진가협회의 작가로 활동 중입니다.

 


민주평통주최 통일여행사진전에 최우수상을 받은 소감이다.

실비아 패튼: ‘아버님 살아생전’에 사진은 아버님(북한 고향)이 임진각에 가셔서 망향 제를 드리며, 정종 한 잔 따르고 절을 하며 갈 수 없는 북쪽의 부모님을 그리워하는 모습이 생각나 담은 사진인데, 최우수상을 받을 줄은 몰랐어요. 언젠가 통일이 되면 아버님의 고향인 황해도 황주에 모시고 가서 사진도 찍고 싶고 사과나무 밭에도 가고 싶습니다.

한국 디지털사진가협회 회원들의 탈북자 돕기 활동에 대한 이야기다.

실비아 패튼: 지난해 민주평통 워싱턴 협의회에서 주최한 ‘탈북자돕기 일일찻집’에서 워싱턴 디지털 사진가협회 회원님들의 사진 후원으로 전시회를 열고, 판매 수익금을 전달했습니다. 탈북자 4명을 구출하는데 조금이나마 우리가 힘을 보탤 수 있어서 기쁩니다. 밤늦게까지 사진을 액자에 끼우고 못을 걸어 전시회 준비를 해준 회원님들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어떤 것일까? 아버지 고향이 북한이어서 평화통일에도 이바지하고 싶다고 말한다.

실비아 패튼: 개인적인 취미인 사진 생활은 계속할 거고요. 한미여성재단, 한미여성회 미주연합회, 세계국제결혼여성총연합회 등 여성들을 위한 봉사활동은 이젠 앞에서 리드하기 보다는 경험을 바탕으로 뒤에서 지속적으로 도우며 여성회의 발전에 노력할 것이며, 미국 속의 한인들의 위상을 높이는 일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한인들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속에서 더욱 성장하는 데도 한몫을 하고 싶고요. 조국의 평화통일을 위해서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하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아주 작은 바람은 나만을 생각하지 않는 서로가 껴안을 수 있는 사회, 그리고 우리 국제결혼 여성들을 친정의 누이처럼 언니처럼 그렇게 똑같이 봐주는 사회 그런 사회가 오길 바랍니다.

지구촌의 한인들 오늘은 재미동포로 숨은 봉사자인 실비아 패튼 씨의 이야기로 함께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