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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문화산책

통일문화산책(남북한의 세종대왕 관)

570돌 한글날인 9일 한글문화연대 '우리말 가꿈이' 대학생들이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에 꽃을 꽂고 있다.
570돌 한글날인 9일 한글문화연대 '우리말 가꿈이' 대학생들이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에 꽃을 꽂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한국에서 광복 후부터 각급 학교 교과서에 나온 위인을 다 찾아보니 109명이었다고 합니다. 이 가운데서 가장 빈도가 높게 나온 인물이 세종대왕이었다고 합니다.

훈민정음 반포 570돌인 지난 9일 전국 각지에서 한글날을 기념하는 다채로운 행사가 열렸습니다. 9일 오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한글, 온 세상을 비추다'라는 주제로 경축 행사와 '우리 글로 하나 된 세계'라는 주제로 공연도 펼쳐졌습니다. 한국 연합뉴스 TV가 보도한 한글날의 표정을 잠시 들어봅니다.

: 570돌 한글날을 맞아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주변에서는 공연도 펼쳐졌습니다. 강예빈, 김수현 / 경기도 부천시 "한글날에 친구랑 한복도 입고 날씨도 너무 좋아서 공연도 봐서 너무 기분이 좋습니다." 서울 반포대로 3만㎡ 아스팔트가 거대한 스케치북으로 변했습니다. 알록달록한 분필을 이용해 아스팔트에 한글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 즐거운 놀이를 통해 한글의 소중함과 세종대왕의 애민 정신을 되새깁니다. 김하영 / 서울 서초구 방배동 "페이스페인팅도 하고 바닥에 곰돌이도 그렸는데 재미있었어요." 김시안 / 서울 서초구 서초동 "한글날에 가족들과 함께 낙서도 하고 대한민국도 그리니까 재미있었어요."

통일문화산첵 지난 시간에 한글창제를 둔 소설을 이야기하면서 그 주역인 세종대왕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언급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남북한에서 ‘세종대왕’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갖고 있는지 알아봅니다.

임채욱 선생: 전에 한 번 말씀 드렸습니다만 한국에서 광복 후부터 각급 학교 교과서에 나온 위인을 다 찾아보니 109명이었다고 합니다. 이 가운데서 가장 빈도가 높게 나온 인물이 세종대왕이었다고 합니다. 그 다음이 이순신, 김정호, 안창호 순이라고 하는데 세종대왕은 단연 1위였지요. 그만큼 우리 역사상에서 존경 받을 위인이라는 거지요. 심지어 우리 역사에서 훌륭한 인물일 뿐 아니라 온 세계 인류의 역사에서도 드물게 볼 수 있는 위인이라고 까지 말합니다. 세종대왕은 천성이 어질고 학문을 좋아하고 재능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부지런하기까지 합니다.

세종대왕이 위인이라고 하는 것은 왕으로서의 자질뿐 아니라 업적이 뛰어나다는 것 아닙니까? 그 업적을 하나하나 나열하자면 한없이 많겠지요. 가장 중요한 것이 지난 시간에 다뤘듯이 글자 모르는 백성의 처지를 딱하게 여겨 반대하는 신하들을 물리치고 기어이 우리나라 글자를 만들어 낸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 밖에 중요한 업적을 몇 가지만 더 소개한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임채욱 선생: 세종대왕 때에 세계적으로도 내세울 만한 과학기술 창조물이 생산됐어요. 천문대를 세우고 천문을 관찰하는 시설물을 제작해서 세웠는데 대표적인 것이 물레바퀴를 동력으로 해서 움직이는 천체관측 기계, 혼천의를 만든 것이지요. 또 몇 가지 종류의 해시계, 물시계도 만들었으며, 측우기를 만들었지요. 무엇보다 이때 산술, 농사, 의술, 천문관계 서적을 많이 편찬했으며 각종 법전을 정리하고 편찬했습니다. 국방에도 힘써서 북방에서 침략을 일삼는 여진족, 남쪽에서 노략질하는 대마도 왜구를 징벌해서 영토를 넓히고 안정시킨 일도 매우 큰 업적이지요. 각종 화포를 생산했고 활자를 만들어내고 도량형 제도를 개선하고 음악분야에서 아악을 정비하고 새로운 악기를 만들었습니다.

참 대단한 업적을 이뤄냈군요. 북한에서도 세종대왕에 대한 평가는 한국에서나 같겠지요?

임채욱 선생: 그렇지요. 북한은 봉건국가 왕들에 대해서는 전반적으로 좋게 평가를 하지 않지요. 그래서 교과서에도 개별 왕들에 대한 글은 싣지 않습니다만 세종대왕에 대해서는 역사교과서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조선조 27명 왕 들 중에서 제일 현명한 임금이라고 평가합니다. 하지만 세종대왕의 잘못도 지적하는데 예컨대 이런 것입니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면서 워낙 책을 열심히 봐서 눈병이 납니다. 안질을 낫게 하는 방안을 찾는 중에 충청도 어느 곳 약수 물이 눈에 좋다고 합니다. 현지에 가서 눈병 치료를 하려고 그 약수가 있는 부근 집들을 철거시킵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의 병이 대왕에게 옮길 수도 있고 또 머물게 되는 곳의 백성들에게도 자기 눈병이 옮기지 않게 하려는 갸륵한 배려였습니다. 하지만 겨울철 엄동에 집을 철거당하는 백성들 입장은 말이 아니지요. 세종대왕은 그러나 이런 고통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백성들이 불평을 하고 불만을 가지리라고 생각지도 못합니다. 말하자면 봉건군주의 한계라고 하겠지요. 북한에서는 이런 부분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옳은 비판일 수 있습니다. 봉건시대 관료들은 임금과 관계되는 일이면 백성들의 고통은 무조건 무시해버렸겠지요.

업적도 그렇거니와 세종대왕은 천성이 어질고 부지런하며 학문을 좋아한다고 했는데, 이와 관련한 이야기를 좀 해 주시죠.

임채욱 선생: 세종대왕에 얽힌 일화들은 많지요. 밤늦은 시간, 집현전에 책을 보다가 잠이 든 신하어깨에 입었던 곤룡포를 벗어 덮어줬다는 이야기, 책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밥을 먹으면서도 책을 읽었다는 버릇, 신하들의 의견을 경청하는 태도, 그 태도의 연장선에서 새로운 세금법으로 세금을 매기면 어떤 반응이 있을까 해서 미리 5개월 동안 17만명 백성에게 의견을 물어보고 시행한 여론조사 등을 보면 세종대왕은 확실히 남다른 왕이었지요.

그런데 세종대왕은 자식을 22명이나 뒀다고 하지요? 오늘날 기준으로 보면 몹시 많은 편인데요?

세종대왕은 왕비 외에 5사람의 후궁을 뒀습니다. 여기에서 18남 4녀를 두게 되는데 왕비인 소헌왕후는 8남 2녀를 두지요. 왜 이렇게 많이 낳았느냐 하는 것인데, 일설에는 부왕인 태종이 왕권확립을 위해 세종의 장인과 처남 되는 심씨 집안사람을 제거하는 것을 보고 왕비가 자녀를 많이 두는 것이 왕비를 안전하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일리가 있지요. 그런데 세종대왕은 오늘날 관점으로 냉철하게 평가하면 잘못한 것도 많다는 견해도 보여서 한 번 소개를 해봅니다. 가령 이런 것들입니다. 세종은 독재자이고 반민주적이었다. 세종은 지배계급인 양반을 지지했고 소수의 착취계급과 다수 피착취계급으로 구성된 불평등한 신분제도를 지지했다. 세종은 첩이 5명이고 육식을 즐겨 해서 비만했으며 눈병을 비롯해서 온갖 질환을 가지고 있었다. 자식교육에 실패해서 아들 중 하나가 왕이 된 손자를 죽였으며 큰형인 양녕대군이 부녀자를 강간해도 처벌하지 않았다. 자 이런대도 세종대왕을 비난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북한에서도 시대적 한계라는 말로 평가하지 비난하지는 않습니다. 지금 기준으로 평가하지 않고 온 세상 어디나 왕이 다스리던 왕정시대의 눈으로 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세종대왕이 업적을 크게 낸 것은 역시 공부하는 군주였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볼 수 있겠지요?

임채욱 선생: 물론입니다. 한글 창제 때 관련 서적을 얼마나 열심히 읽었는지 눈이 상했지요. 왕비와 신하가 말리는데도 책을 계속 봅니다. 세종은 무엇보다 책에서 얻은 지식을 활용해서 요즘 말로 하면 지식경영을 펼쳤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