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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문화산책

세계여성의 날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3월 8일은 세계여성의 날입니다. 남북한에서는 다 이 날을 기념하는데요. 그래서 오늘은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세계여성의 날에 대해 이야기 나눕니다.

임채욱 선생: 서울을 비롯해서 한국 곳곳에서 행사가 있었지요. 평양에서도 기념보고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세계여성의 날이라고 하지 않고 3·8국제부녀절이라고 합니다.

그렇군요. 세계여성의 날은 오래된 기념일이지요? 그 유래를 간단하게 들어볼까요?

임채욱 선생: 1908년 3월 8일 미국 뉴욕에서 1만 5천 명 정도 되는 여성노동자들이 시위를 벌립니다. 한 작업장에서 화재로 많은 여성노동자가 목숨을 잃은 사건을 항의하고 노동환경을 개선하려는 시위였지요. 이날을 기념하자는 제안이 1911년부터 매년 이날을 여성의 날로 정하게 되지요. 이후 유엔이1975년을 ‘여성의 해’로 정하더니 1977년부터는 세계여성의 날로 공식적으로 기념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광복 전에도 여성의 날을 인식하고 있었습니까?

임채욱 선생: 일제시대에 이날이 알려져서 당시 신여성들도 행사를 했지요. 그때 우리가 잘 아는 문인 김일엽, 김명순, 화가 나혜석, 교육자 김활란, 박인덕 등이 행사를 이끌었다고 합니다. 사회주의 계열 여성들인 허정숙, 정칠성도 별도로 모임을 가졌지요. 해방 후 남쪽에서는 이 날이 사회주의 나라에서 주로 기념하는 날이라고 해서 기피했지요.

남북한에서 여성의 날 행사는 어떤 모습으로 열립니까?

임채욱 선생: 한국에서는 여성단체 단위로 기념행사가 있었지만 정부차원 행사는 1985년부터 기념하고 있지요. (유엔이 정한 이후가 되지요.) 1961년부터 행사를 하는 북한에 비해서는 늦지만 다채로운 행사가 많은데, 최근에는 성 평등 민주주의를 가장 큰 문제로 다루고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평양에서 중앙보고대회가 열립니다. 이 보고대회는 인민문화궁전 같은 큰 회관에서 사회주의 여성동맹 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립니다. 보고내용 중에는 “일제식민지에서 인간 이하 학대를 받던 여성들이 오늘 사회주의 낙원에서 여성으로서의 권리와 행복을 마음껏 누린다”고 합니다. 보고대회 외에 체육행사도 열립니다.

여성의 날이란 결국 여성의 노동조건 개선에서 출발했지만 여성의 전반적인 모든 문제, 특히 양성평등 같은 문제가 가장 초점이 되는 것 같군요.

임채욱 선생: 한국여성들이 현재 가장 내세우는 것이 양성평등이지요. 한국 남성들은 이제 한국에서도 여성의 힘이 매우 세져서 남자를 이긴다고 합니다만 아직은 아닌 모양입니다. 작년 10월(2018. 10. 29.) 한국에 있는 여성단체 690개 회원들이 세종문화회관에 모여 가정폭력대책을 국가에 요구하는 큰 대회를 연 것을 보면 아직은 평등이 안 온 것이겠지요. 실제로 여성에 대한 사회적 장벽이 심한지 않은지 알아보는 유리 천장 지수란 것을 보면 한국은 OECD 29개 나라 가운데 꼴찌라고 합니다. 1위인 나라는 스웨덴이라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미 투 캠페인도 활발하니까 여성억압이나 폭력은 발도 못 붙일 것 같지 않나요?

임채욱 선생: 한국에서 작년 1년은 미투운동(#me too, 나도 당했다)이 세차게 벌어진 해였지요. 1년이 되는데, 남성들에 의한 성폭력이 쉬쉬하면서 수면 밑으로 잠겼던 것이 미투운동으로 온 남성의 성폭력 의식 자체를 비판하는 운동으로 번져가고 있는 것이지요. 한국에도 양성평등기본법이 있지만 법제도가 형식적으로 여성의 권리를 보장하는 문제로 끝나지 않고 혁명적인 의식으로 성차별을 개혁하려는 운동으로 되고 있다고 봅니다. 성 평등 문제는 제2의 민주화 운동이라 보기도 하는데 바로 성 평등 민주화죠.

성 평등 민주화란 어떤 것을 말하는지요?

임채욱 선생: 작년 6월 초 서울 강남에서는 10여명의 여성이 웃옷을 벗고 시위를 했습니다. 남성은 꾸미지 않는데 왜 여성은 화장을 하고 코르셋을 입어야 하느냐면서 상체 브래지어를 벗었다는군요. 당연히 구경꾼들이 모여들었겠죠. 경찰이 달려와서 이불로 이들 시위여성들 몸을 가렸다는데 “우리의 몸은 가려야 할 음란물이 아니다”라면서 강하게 반발했다고 합니다. 성 평등 민주화는 이런 모습으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실제 한국에서는 남성들 바뀐 모습이 많잖아요?

임채욱 선생: 한국에는 양성평등주간도 만들어 행사를 하고 실제 요리하는 남성들 정도는 흔히 보는 일이 됐고 집에서 아내 대신에 아이를 키우는 남편도 있습니다. 명절에 며느리만 일하는 모습도 바뀌어 가고 페미니즘 영향인지 여성 예능인이 곳곳에서 판을 치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의식면에서 진정한 양성평등은 아직도 저 멀리 있다는 견해도 만만치 않는 것 같습니다.

북한에서는 혁명의 한쪽을 맡은 여성의 권리와 행복도 담보되고 있다고 합니다. 실제와는 차이가 있을까요?

임채욱 선생: 여성의 권리와 행복이 담보된다는 말은 괴리를 느끼게 합니다. 어쩌면 빛 좋은 개살구일지 모릅니다. 대부분의 북한 남성들은 집안 일은 여자의 몫이란 관념이 강해서 집안 일을 거들지 않는 편입니다. 그래서 여성의 삶이 매우 고달프다고 합니다. 사회주의 생활양식을 강조하지만 실제로 무엇이 사회주의 생활양식인지 우선 살기가 힘들어 장마당에 나가서 장사를 해야 하는 판이지요. 남자들은 월급이 안 나와도 직장에 나가야 하고 또 장사를 기피하는 경향도 있다고 하지요. 그러니 여성들이 장사하려고 나설 수밖에 없습니다. 이럴 때 도와주는 남편도 있지만 많은 남편들은 장마당에 안 나오고 집에 들어 앉아 있으면서 온갖 요구만 하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북한에서 집 지키는 남편을 멍멍이, 아무 쓸모 없는 연탄재 같다고 탄재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북한여성의 양성평등은 어느 정도인가요?

임채욱 선생: 북한에서 여성들은 혁명의 두 바퀴 중 한쪽 바퀴를 밀고 간다고 합니다. 2010년에는 <여성 권리 보장법>이란 것도 제정됐습니다. 하지만 여성들의 사회경제 활동이 자체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권력에 의해서 동원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활동이 비 자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 당국의 통제범위 안에서 행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당의 지시에 따른 활동은 억척같은 생활력을 보이지만 가정으로 들어가서는 남편에게 순종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이러니 양성평등은 아주 멀리 있지요.

그래도 오늘날 여성의 날이 있다는 것 자체가 과거 우리나라 여성들이 질곡 속에 살던 때와는 판이한 모습 아닙니까?

임채욱 선생: 그렇습니다. 그런데 일반적인 여성들의 질곡과는 달리 조선시대 봉건사회에서도 이런 질곡을 벗어나서 자기 개성을 살리려고 애쓴 여성들도 더러 있습니다. 당찬 여성들인데, 몇 사람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시어머니 압박을 이겨내고 공부를 많이 해서 학자가 된 빙허각 이씨(1759~1824), 남편과 성리학 지식을 논쟁하고 남자 지식인의 존경을 받은 사주당 이씨(1739~1821), 200여편의 시를 지은 호방한 여성 김호연재(1681~1722), 조선조 정조왕 때 남자를 고용해서 해양운송을 하고 제주에서 필요한 양곡을 육지에서 구매하고 제주 특산품을 한양에 팔아서 부를 쌓은 다음 흉년이 들었을 때 돈을 내고 곡식을 내서 곡식 떨어진 사람들을 먹여 살렸다는 의협심 강한 제주여성 만덕, 남장을 하고 온 나라를 여행한 당찬 소녀 금원(1817~?) 등 굉장한 여성들이 있습니다. 또 실존여성을 모델로 소설화한 것 중에는 한 남성만을 위해 화장하는 것도, 한 남성만을 섬기며 사는 것을 거부한 여성, 부당한 짓을 하는 고을원님에게 칼을 겨눈 여성, 포악한 부자에게 시집갔다가 소박맞았지만 재혼을 거절하고 물에 빠져 죽은 향랑, 남자로 변장해서 장원급제를 한 하옥주 등도 눈에 띄는 여성들입니다.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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