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통일문화산책

남북한 기차여행

북한 국가관광총국이 운영하는 웹사이트 '조선관광'이 기차관광상품을 소개했다.

연합뉴스

 

 

00:00/00:00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북한신문이나 잡지들에서 기차여행을 서술한 기사는 잘 안보입니다

북한통치자는 최근 두 차례 장거리 기차여행을 했습니다. 나라의 중대사를 협상하려는 여행인데도 한가롭게 보일 정도로 기차로 이동을 했습니다. 어떻든 그 전용열차는 특수한 기차이겠지요. 그래서 통일문화산책 오늘은 ‘남북한 기차여행’제목으로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이야기 나눕니다.

임채욱 선생: 비행기로는 4시간이면 될 거리를 기차를 타고 66시간이 걸려서 갔다고 하니 어떻게 봐야 할지, 아무튼 그 기차여행을 기차외교라고도 말하고 있지요. 그가 탄 열차는 당연히 방탄이 되고 위성과도 연결되는 온갖 통신설비를 갖추고 있어서 움직이는 집무실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런데 열차가 아무리 완벽한 설비를 갖춘 것이라 하더라도 비행기를 이용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고 봐야지요.

그 어려운 게 어떤 것을 말하는 것입니까?

임채욱 선생: 작년 6월 싱가포르를 갈 때는 중국 총리 비행기를 빌려서 갔지요. 혹시 북한 통치자 전용기가 장거리 비행에는 안전상 문제가 있는지도 모르지요. 그렇다고 남의 나라 비행기를 또 빌리는 것도 체통문제가 있지요. 그래서 이번에는 전용열차로 간 거라고 봅니다. 또 선대통치자들처럼 열차를 타고 이동하는 모습이 좋은 전통인양 선전효과도 거둘 수 있다고 본 것도 한 몫 했을 것 같습니다.

그 전용열차는 완벽한 설비뿐 아니라 내부의 탁자나 의자 등 각종 집기도 최고급 제품이겠군요.

임채욱 선생: 객실 내부야 당연히 비밀로 싸여 있지요. 그렇지만 말씀대로 도구라든가 집기들은 최고들로 꾸며졌다고 봐야지요. 오늘날 일반 북한주민들이 타는 열차와는 하늘과 땅 차이 만큼이겠지요.

그래서 일반주민의 기차여행이 더 궁금해집니다. 일반주민들이 타는 기차는 시설이 어떻습니까?

임채욱 선생: 탈북자들이 증언하는 북한의 기차는 시설도, 운행도 너무 낙후돼서 최고통치자가 “교통이 불비해 불편하고 참으로 민망하다”라고 말 할 정도지요.(2018. 4. 판문점) 시설도 시설이거니와 운행은 말도 아니게 낙후돼 있으니 개성에서 평양까지 시속 20km로 달리고 있습니다. 이건 마라톤 선수가 달리는 정도밖에 안되지요. 일제 시대에도 시속 60km로 달렸는데 후퇴를 해도 너무 후퇴를 한 것입니다. 그래도 평양에서 신의주로 가는 기차는 시속 50km는 됩니다. 이 노선은 평의선이라 해서 중국으로 연결되는 국제열차라서 조금 나은 것이지요.

국제선 열차가 시속 50km라니 속도가 너무 늦군요.

임채욱 선생: 그래도 북한사람들은 중국 베이징 기차역에 가면 평양행 국제열차를 타려는 외국인들이 줄을 섰다고 말합니다. 베이징역에서 가장 사람들이 붐비고 제일 줄이 긴 것은 바로 평양행 차표 매표구 앞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하지요. 평양행 개찰이 시작되면 대기실에 있던 외국인들은 ‘와’함성을 울리며 트렁크며 손 짐들을 들고 세찬물결마냥 뒤설레이게 된다고 말합니다. (평양행 차표, 조선문학 2018. 10월호)

국내선 기차여행은 어떤 증언이 있습니까?

임채욱 선생: 북한신문이나 잡지들에서 기차여행을 서술한 기사는 잘 안보입니다. 김정숙 유적지를 찾아가는<회령행 차표>(조선문학 2015. 12.)나 철도원의 헌신적인 근무를 그린 <기차는 정시로 간다>(조선문학 2013. 10.) 같은 글도 있긴 합니다. 북한의 기차여행 이야기는 주로 탈북자들 증언에 의해서인데 열악하기 짝이 없지요. 남쪽 같으면 단 서너 시간에 갈 거리를 며칠을 걸려서 갔다든가,그것도 짐짝처럼 취급되면서 갔다는 것이지요. 여행이 아니라 거저 이동만을 한 것뿐이지요. 가령 백두산 청년선이란 노선에서 백암쳥년역에서 헤산청년역까지 약 70km구간을 9시간 걸렸다니 남쪽 같으면 1시간 거리가 안 될 것이지요.

기차가 느리게 갈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임채욱 선생: 레일 생산과 같은 장치산업도 문제고 전기를 공급하는 에너지 산업도 문제지요.

네, 기차여행은 낭만이 흐르는 것인데 거저 이동만 한 것뿐이군요.

임채욱 선생: 북한주민은 사는 곳에서부터 다른 지방으로 이동하는 자체가 힘든 일이고 설사 이동을 허가 받았다 하더라도 기차표 사는 것도 힘든 일입니다. 기차를 타더라도 열차 승무원만 있는 게 아니라 보안원, 무슨 타격대 요원, 비사회주의 단속그루빠 등 단속요원들에게 계속 시달림을 받기도 합니다. 장사를 하려고 짐을 좀 실으려고 열차승무원에게 부탁을 해도 보안순찰대원이 짐을 뒤지고 비사회주의 단속원들도 달려들어 짐을 뒤지니 이래저래 조마조마하기 짝이 없지요. 다 그렇지 않더라도 장사를 하려고 이동하는 승객들이 많아서 너비가 50, 60cm, 높이는 100cm(1m)짜리 배낭을 몇 개씩 들고 탑니다. 이런 배낭 무게는 보통 50kg이 되지요. 이런 큰 배낭을 놓을 자리를 찾다가 서로 다투고 옥신각신하기도 하지요. 그러다가도 마주 앉아가다 보니 서로 말도 걸고 이야기도 나누는데 기차가 가다 서고 정시에 가는 일이 없으니 가져온 도시락이나 간식도 나눠먹기도 하지요. 주패 놀이라는 체스게임을 하기도 하고요. 어떤 경우 기차가 만 하루를 머무르고 있을 때도 있었다니 승객들은 하는 수 없이 노래도 부르고 이야기를 풀어놓는 사람도 있게 된다고 합니다. 이야기 중에는 먹고 사는 문제도 있지만 자기가 농사를 잘 지어서 표창을 받았다는 자랑도 하고 전쟁 때 있었던 아주 감동적인 전투실화도 소개하고 자기 며느리 출산 이야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돌아가면서 노래를 부르거나 이야기를 풀어놓기도 합니다.

그 기차 안에서는 북한주민의 희로애락도 다 나타나겠군요. 남쪽 기차여행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이겠지요.

임채욱 선생: 남쪽에서도 1960년대, 1970년대까지는 기차 안에서 앞에 앉은 사람과 인사도 나누고 행선지도 물으며 간식도 주고받았는데 이제 그런 모습은 사라졌습니다. 옆 사람과 말을 섞지도 않고 스마트 폰 만 들여다보거나 하다가 목적지에서 내려버리지요. 무엇보다 열차 안에서 떠드는 일이 없습니다. 친구들 몇이서 함께 탔다고 떠들거나 하면 당장 신고가 돼서 승무원들로부터 주의를 듣습니다. 무엇보다 기차 타는 시간이 짧아져서 차안에서 먹는 일이 없어졌지요. 기껏해야 커피나 음료수를 마시는 정도지 무슨 음식을 먹는다거나 하는 일은 없지요. 서울-부산 441km를 2시간 반에 도달하니 음식을 먹을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관광여행만을 위한 대 여섯개 노선이 있습니다. 이런 기차에서는 음식도 먹고 침대서 잠도 자지요.

흔히들 말하지요? “기차 타는 것이 여행이지 비행기 타는 것은 여행이 아니다.” 기차 타고 남북한을 오가는 여행이 이뤄질 때가 통일이 오는 때일 텐데요.

임채욱 선생: 그렇습니다. 비행기는 하나의 이동수단이지 여행하는 것이 아니지요. 관광을 위해서 빠르게 이동하려고 비행기를 탄다고 보면 되겠지요. 남북 분단 후 끊긴 철길은 3군데지요. 서울과 신의주를 오가던 경의선, 서울과 원산을 오가던 경원선, 그리고 양양과 안변을 오가던 동해북부선, 이3철길입니다. 이걸 연결하고 지금 북한과 중국, 러시아를 잇는 4개 대륙철도와 연결되면 서울에서 베를린을 바로 갈 수 있지요. (손기정 선수가 베를린 올림픽경기에 참가하려고 갔던 노선이지요.) 그러려면 북한 레일을 다 걷어내고 수만 km 철길을 새로 깔아야 할 것입니다. 또 전류방식도 통일하고 신호보안장치, 열차무선 장치도 다 통일돼야 할 일이지요. 그렇더라도 사람이 하는 일인데 그거야 무슨 문제겠습니까? 그렇게 할 수 있는 현실적인 당위성이 있어야지요.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통일문화산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국제영화제와 남북한 영화  (0) 2019.09.21
가무왕국, 체육강국  (0) 2019.09.21
성년의 날과 청년절  (0) 2019.09.21
부처님 오신 날, 4월 초파일  (0) 2019.09.21
남북한의 전통 춤  (0) 2019.0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