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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관련소식

탈북자 신학박사 박예영 씨의 꿈과 소망

박예영 씨가 통일코리아협동조합 총회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제공: 통일코리아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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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지난 1997년 ‘고난의 행군’ 시절 중국으로 탈북했다가 강제 북송과 2001년 재탈북해 한국에서 신학대학과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지난 5월 초 워싱턴 D.C. 소재한 웨슬리 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 박사 학위를 받은 박예영 씨 이제는 탈북인들과 함께 새로운 삶을 사는 게 꿈이라고 자유아시아방송과 회견에서 밝혔습니다.

RFA 초대석 오늘은 탈북자 신학박사 박예영 씨로부터 앞으로 살아갈 꿈과 소망의 이야기로 함께합니다.

질문: 굉장히 바쁘게 사신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일들을 하는지 궁금한데요.

박: 그렇지요. 원래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이 바쁘게 살지 않습니까? 저도 뭐 대한민국 국민의 일원으로서 바쁜 삶을 살 수밖에 없는데요. 제가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돌아온 이후에 한국에서 아주대 경영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는 게 있었는데요, 3학기를 마치고 지금은 4학기 마지막 학기 공부하고 있어요. 그러면서 통일코리아 협동조합의 일도 병행하다 보니 바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질문: 많은 일 중에 중요하게 그리고 활발한 활동을 하는 일이 있습니까?

박: 제가 통일코리아협동조합(unitedkoreacoop.com)에서 추진하고 있는 사업은 크게 3가지입니다. 통일문화사업, 통일교육사업, 통일유통사업입니다. 이 사업 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추진하고 있는 것은 북향민(탈북민)사업가들을 돕는 사업입니다. 한국에 사는 북향민(탈북민)출신의 사업가들이 한 2,000명 정도 된다고 3년 전 데이터로 나온 적이 있습니다. 이분들이 하는 사업과 제품을 홍보하고 유통하는 일을 주력해서 하고 있는데요, 이렇게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최근에 한국에서 한성옥 씨 모자(母子) 사건이라고, 엄마하고 아들이 굶어 죽은 사건이 있었어요. 많은 북향민들이 사각지대에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저는 북향민 사업가들을 돕는 일이 사각지대에 있는 북향민들 일자리를 늘려가는 일로도 연결되기 때문에 주력해서 하고 있습니다.

북항민 사업가들의 판매제품을 선 보이고 있다. 사진제공: 통일코리아협동조합

질문: 남한에 정착한 탈북민과 공유하며 함께 하고 있는 것은?

박: 위의 이야기와 연결되는데요, 우리 사람들이 굉장히 어려워하는 두 가지 요인으로 정서적인 외로움하고 취업에 대한 어려움 두 가지가 핵심이에요. 그러다 보니 한성옥 모자 사건을 이야기했지만, 본인은 노력했지만, 사각지대에 있다 보니까 결국 그러한 길을 선택한 것 같아요. 지금 현재 집중하고 있는 일은 한부모 가정을 돕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중국에서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한국에 오신 우리 북향민 여성들 중에 아이를 키우면서 혼자 사는 분들이 굉장히 많으세요. 그래서 이분들이 어떻게 하면 아이를 키우면서도 (한국에서도 아이를 키우는 분들의 일자리가 쉽지는 않는데)소일거리로 돈을 벌 수 있게 할까가 고민입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 북향민들이 더 어렵거든요. 그래서 이분들을 돕는 일을 하기 위해서 저희들 조합에서 현재 여성바지와 나시 1+1 행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팔아 수익금으로 이분들 가정에 실제로 필요한 거를 10월에 지원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실제적인 일이라고 하면 어쩌든 우리 북향 민들이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아야 되는데 이 자리를 잡는 과정 가운데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처음부터 큰 일은 못해도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하면서 이분들을 맨투맨으로 만나서 얘기를 들어보려고 합니다. 듣다 보면 뭐가 어려운지, 실제적인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그리고 정책적인 차원에서 할 수 있는데 못하고 있는 것은 없는지를 살펴봐서 일을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질문: 탈북민들이 어떻게 성장하기를 바라는지?

박: 사실은 제가 감히 우리 사람들이 어떻게 성장하고 말고를 얘기할 수 있는 위치는 아닙니다. 다만 한국에 와서 17년을 살았고, 무엇보다도 여기 오기까지 우리는 굉장히 많은 고비를 넘고 산전수전을 겪은 공감대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걸 극복할 힘이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건처럼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거든요. 그래서 감히 제가 어떻게 성장하기를 바란다 까지는 아니더라도 이 기회를 빌어 조심스럽게 얘기를 좀 한다고 하면 우리 북향민들의 성장은 여기 한국사회의 구성원들과 함께 갈 때, 정말 가능하고 한국사회의 더 많은 관심과 따뜻한 배려가 있을 때 시너지가 날 것 같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선배로서 한마디만 한다면 우리 북향민들은 과거에 겪었던 어려운 일들을 인생의 반면교사 삼아, 내가 죽기 일보 직전까지 갔었던 경우가 있어도 그걸 다 견디고 왔는데 내가 여기서 넘어지면 안된다, 무너지면 안 된다는 각오를 가지고 다시 일어나서 삶에 임하면 어떨까 하는 그런 바람을 전하고 싶습니다.

질문: 통일되면 탈북민들이 할 일은 뭐가 있을까요?

박: 할 일이 상당히 많다고 생각합니다. 일단은 북향민들의 정체성에 대해 가교(加橋)역할을 한다 이런 말은 언론에서도 많이 합니다만, 여기 대한민국의 많은 분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뭐냐면 언어에 대한 부분입니다. 북향민들이 처음 대한민국에 정착하면서 가장 힘들어 하는 것은 한국문화와 언어의 다름에서부터 오는 차이입니다. 그런데 통일이 된 이후가 됐던, 교류가 돼서 북쪽 사람들과 남쪽사람들이 만나는 상황이 펼쳐진다고 가정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남한사람들이 북쪽에 들어가서 북한주민들 만나고 북한주민들이 남한 사람들을 만나게 될 텐데 저희가 한국에 와서 외래어를 못 알아듣고 새로운 언어를 못 알아듣는 것처럼 남한 분들도 저희 고향의 함경도가 됐든 평안도가 됐든 사투리를 못 알아들을 수밖에 없거든요. 서로 못 알아듣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북한도 경험하고 남한에서 외래어도 많이 배움으로 남북의 언어와 문화를 경험한 저희 같은 북향민들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통일된 이후에 정말 중재역할을 할 수 밖에 없고, 또한 이 중재 역할은 굉장히 큰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북향민들은 이런 일을 할 사람들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이제 한국에서 대학공부도 하고 박사 석사 학위를 한 북향민들도 늘어가고 있지만 전문직에서 자기 공을 쌓아가는 숨겨진 우리 북항민들도 많이 있거든요. 이렇게 자기들의 실력을 쌓아 가지고 통일된 이후 고향에 돌아가 자기들의 전문직과 공부한 모든 것들을 펼쳐가면서 리더들로 우뚝 섰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습니다. 또한 통일이후 대한민국에서는 기술과 돈을 가지고 들어간다는 이야기가 있지 않습니까? 근데 기술과 돈은 갖고 들어가도 소통이 안되면 안되기 때문에 우리 탈북민들, 이 분들이 중간에서 중재 역할을 하면 어떤 사업이든지 시너지 효과가 있을 것이고, 모든 영역에서 다리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한마디로 말하면, 가교역할을 통일이 되는 시점에, 또 이후에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여기 한국에 온 탈북민들이 어려운 일들이 많지만, 다 극복하고 일어나서 꼭 그렇게 귀하게 쓰임 받는 분들이 됐으면 좋겠다는 바램이 있어서 할 일이 많다고 생각을 합니다.

질문: 통일 이후 북한에서 이루고 싶은 꿈도 있으시죠.

박: 꿈은 사실 많습니다. 제가 원래 고향을 떠나올 때 제가 살던 고향에 인구가 20만 명이 있었는데요. 그 이후에 얼마 큼 인구 감소가 있었다 하더라도 여기에서 큰 변화는 없을 듯싶습니다. 18만 명, 이 정도 될 것 같은데 어쨌든 저는 고향에 돌아가서 제가 태어났던 도시의 시민들이 잘 사는 도시를 만들고 싶습니다. 북한에 있을 때부터 원래 그런 꿈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제가 태어난 도시의 발전과 시민들이 잘 살 수 있는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런 시스템이라든지 기반 만드는 것 등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데요, 사실 이것은 통일이라는 큰 그림하고 연결이 되기도 하죠. 하여튼 고향에 가서, 제가 살았던 도시를 좀 멋있게 만들고 사람들 잘사는 곳으로 만드는 것이 제 꿈입니다.

RFA 초대석 오늘은 탈북자 신학박사 박예영 씨로부터 앞으로 살아갈 꿈과 소망의 이야기로 함께했습니다. 지금까지 인터뷰에 RFA 이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