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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향민어르신들

실향민들, 남북한에 ‘생사확인’ 촉구

2006-09-15

서울 인근에 살고 있는 실향민들 150여명은 15일 ‘이산가족생사확인 촉구대회’를 갖고 이산가족을 볼모로 한 이산가족상봉에 적극 반대한다면서 남북한은 실향민들의 소원인 생사확인에 적극 나설 것을 촉구했습니다. 그리고 그리운 가족이 보고파 눈물이 난다고 말합니다. 서울에서 이현기 기자가 취재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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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가족 상봉과 생사확인에 적극 나설 것을 정부에게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는 모습 - RFA PHOTO/이현기

한 실향민은 북한의 폐쇄성으로 이산가족들이 만날 수 없게 됨을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실향민: 그걸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가 없지요. 이 지구상에 그렇게 폐쇄된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우리 선배들 기껏 살아야 5-10년입니다. 죽어서 통일이 되면 뭐 합니까? 부모들 생사확인이라도 확인하자고 하는데 문을 안 열어주는 그런 괴뢰도당이 어디 있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오늘 거리로 나갈 수밖에 없는 심정을 알아 주십사하고 또 정부가 너무 미온적이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이 실향민은 북한에서 월남가족은 고향에 살지 않을 것이고 생사확인도 어려울 것이라면서 아무쪼록 가족들이 잘 있기를 바랬습니다.

실향민: 나도 이북에서 온 나이든 사람인데 60년 가까이 월남해 이북에 가족이 있는데 나는 가족상봉 신청을 안했습니다. 왜냐면 10만명이 했는데 매년 100명-200명이 하는데 언제 차례가 돌아오겠어요. 그래서 아예 신청도 안했어요. 지금 이북에는 물론 부모님은 돌아가시고 누이동생이 넷 있는데 아마 70살 가까이 되고 제일 큰 누이동생이 75살인데 한 10여년 내에 만난다 해도 할 말도 많을 텐데 지금은 생사도 알 수 없고 가족 상봉이라는 희망이랄까 점점 멀어져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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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확인은 불가능한 걸로 알고 있고 왜냐하면 월남가족이기 때문에 고향에 살고 있지 않을 테니까! 부모님을 돌아가시고 누이동생만 넷이고 형과 내가 월남을 했기 때문에 고향에 안 살기 때문에 연고가 없을 거예요. 그래도 혹시 월남가족이라는 것이 탈로 안 나고 시집이라도 가서 잘 살면 그것으로 최선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한 여성 실향민은 이산상봉이 될 수 있도록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습니다.

실향민: 이산가족이니까? 이북에 두고 온 가족들 생각하면은 눈물이 나지요. 그래서 참석하게 됐습니다. 빨리 정부에서도 우리이산가족의 가슴 아픔을 헤아려 가지고 상봉을 많이 할 수 있다든가 아니 면은 편지로 소식을 전할 수 있다든가 그러한 방법을 모색해 주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또 다른 여성 실향민은 어르신들 돌아가시기 전에 상봉이 이뤄지기를 바랬습니다.

실향민: 어른 신들 사실 날 얼마 남지 않았지 않아요. 그날을 위해서는 하루속히 상봉이 이뤄져야 할 것 같아요.

9 식구를 북한에 두고 온 한 실향민은 매일 매일 눈물로 지내고 있다고 가족만나고 싶은 마음을 전해 줍니다.

실향민: 눈물이 나서 이야기를 못해요. 이북에 9홉 식구를 두고 나온 사람이에요. 자녀들 노부모 북에 두고 이거 뭡니까? 너무 눈물이 나와서 이렇게 나왔어요. 오늘도 울었어요. 기가 막히지요. 젊었을 때는 그래도 일하고 중간에는 잊혀버리고 살았으니까? 또 바빠서 그랬는데 나이 먹어 가니까? 아침이나 저녁이나 밤이나 생각나요. 부모님이 언제 돌아가셨는지도 모르고 아들들도 다 북한에 있어요. 형제들을 두고 나왔어요. 그 자녀들도 환갑나이예요. 부인도 나보다 두 살 아래인데 지금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몰라요. 기가 막히지요.

서울-이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