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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NEWS

[김철웅의 음악으로 여는 세상] 핏속에 흐르는 흥 ‘판소리’

2009-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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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봄, 전라도 여행을 다녀 왔습니다. 벚꽃은 이미 다 졌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아마 4월 말쯤으로 기억됩니다. 지리산 자락 홍매화 마을부터 구례를 거쳐 섬진강 녘까지 국도를 따라 펼쳐지는 풍경이 따뜻하고 친근했습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남도의 정취’가 뭔지 저도 느낄 수 있었는데요 오늘 ‘음악으로 여는 세상’ 이 시간에 사람의 정이 묻어나는 남도의 정취를 소리를 통해 전해볼까 합니다.

남도의 소리, 판소리는 김일성 주석이 쐑소리라고 헐뜯으면서 북쪽에서는 설 자리를 잃었습니다. 보존은 되지만 장려돼 널리 불리고 있지 않은 상태지요.

그에 비해 남쪽에선 민족 음악 중 판소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꽤 높습니다. 저도 고향에서 판소리를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고 남쪽에 와서야 제대로 판소리를 들어봤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일단 노래 한 곡 듣고 얘기 이어가겠습니다. 춘향가 중 ‘사랑가’ 듣습니다. 소리는 안숙선 명창입니다.

춘향가-사랑가 (안숙선)

판에서 하는 소리라는 뜻의 판소리는 조선 중기 이후 남도 지방 특유의 곡조를 토대로 발달했습니다. 소리꾼 한 사람에 고수 한 사람. 고수가 북으로 장단을 맞추면 소리꾼이 그 장단에 맞춰 노래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형식입니다. 판소리의 내용은 주로 양반 사회에 대한 비판이나 서민들의 애환, 남녀 간의 사랑 얘기를 담고 있습니다.

애초 판소리는 모두 12마당이고 그 중 6마당이 전해졌으나 현재 남쪽에서 부르는 판소리는 모두 다섯 작품입니다. 지금 듣고 계시는 <춘향가>를 포함해 <수궁가>, <심청가>, <적벽가>, <흥부가>입니다.

춘향가는 잘 알고 계실 테고, 수궁가는 뭔가 하실 겁니다. 수궁가는 토별가 또는 토끼 타령이라고 하는 우리도 익히 잘 아는 토끼 설화를 바탕으로 만든 얘기입니다. 병이 든 용왕이 토끼 간이 약이 된다는 말을 듣고 자라를 시켜 토끼를 꾀어 용궁에 데려오게 하는데, 토끼는 꾀를 내어 용왕을 속이고 세상으로 살아 돌아간다는 내용입니다. 풍자와 해학이 넘치는 수궁가 중에서도 '토끼가 세상 밖으로 나오는 대목'은 속고 속이는 요즘 세태를 보는 듯합니다. 수궁가 한 대목 듣습니다. 남해선 명창의 소리입니다.

수궁가- 토끼가 세상 밖으로 나오는 대목 (남해선)

판소리 다섯 마당 중 서민들의 생활을 가장 잘 담은 것은 <흥부가> 입니다.

부자로 살면서도 가난하게 사는 동생을 돌보지 않는 욕심쟁이 형 놀부와 가난하지만 착한 동생, 흥부의 얘기는 굳이 긴 설명이 필요없이 잘 아시는 얘기죠? 흥부가 박 타는 대목 그리고 놀부가 제비를 잡겠다고 벼르는 대목, 놀부가 흥부네 집에서 화초장을 들고 나오는 대목은 들으면 어깨가 절로 들썩들썩합니다.

한때 남쪽에서는 이 흥부가 중에서 한 대목이 광고에 이용돼 화제가 됐는데, 이 광고 속에서 흥부가를 부른 이가 바로 박동진 명창입니다. 박동진 명창은 남쪽 판소리계에서는 스타급 인물인데요, 흥부가 중 ‘제비 몰러 나간다!’ 를 힘차게 부르고 나서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이렇게 외치는 내용이었는데, 박 명창의 말대로 우리 것이 좋긴 좋습니다. 흥부가 한 대목 듣습니다. 화초장 타령, 이명희의 소립니다.

흥부가- 홍보가, 제비 후리러 나가는 대목 (이명희)

<적벽가>는 삼국지를 바탕으로 만든 영웅들의 이야기입니다. 원래 판소리는 남자들이 주로 불렀는데요, 그중에서도 이 적벽가는 남자다운 씩씩함을 가장 잘 드러내는 소리였습니다. 예전엔 소리꾼에게 맨 먼저 적벽가를 할 수 있는가를 묻고 적벽가 안 되면 수궁가, 춘향가 등으로 격을 낮춰 소리를 청했다고 합니다. 특히, 적벽가 중 ‘공명이 동남풍을 비는 대목’ 은 아주 힘찹니다. 박동진 명창 소립니다.

적벽가- 군사 설움 타령 (박동진)

눈먼 아버지를 위해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효녀 심청의 얘기, <심청가>. 판소리 5마당 중 가장 비극성이 강조된 소리지만 뺑덕어미가 등장하면서 웃음을 줍니다. 심청이가 선인들을 따라 바다로 몸을 던지러 가는 대목은 판소리 다섯 마당을 통틀어 가장 어려운 대목으로 꼽히는데, 이 부분에 판소리의 기교적 음악 어법이 압축돼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심청가는 가야금 병창으로 골라봤습니다. 화초 타령, 숙명 가야금 연주단입니다.

심청가- 화초 타령 (숙명 가야금 연주단)

이렇게 해서 판소리 다섯 마당을 조금씩 맛보여 드렸는데요, 어떠셨습니까? 판소리 한 마당을 온전히 다 부르는 완창은 몇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완창보다는 주요 대목을 나눠서 ‘토막 소리’로 부르고 있습니다. 판소리는 쉽게 따라부를 수는 없어서 민요처럼 널리 불리진 않습니다. 그렇지만, 판소리 관한 영화도 나오고 공연도 자주 열리면서 우리 소리인 판소리에 대한 관심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판소리를 하는 소리꾼에 대한 얘기도 재밌는 것이 많은데요, 목을 트이게 하려고 토굴에 들어가 40일 동안 소리를 질렀다는 박동진 명창의 일화도 유명합니다.

목에 피가 나도록 노래를 불어야만 탁성, 김 주석이 쐑소리라고 했던 그 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박동진 명창은 40일 동안 소리를 지르고는 온몸이 부어서 몸져누웠는데 이럴 때 유일한 약은 삭힌 똥물. 이걸 먹고 나았다는 전설 같은 얘기도 있습니다.

김일성 주석은 판소리에 대해 사람을 흥분시키지 못하고 투쟁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고 했는데요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투쟁과 흥분과는 거리가 먼 판소리엔 다른 노래에서 찾아볼 수 없는 ‘흥’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노래의 내용을 모두 알아들 수 없어도 노래 도중 고수가 ‘얼쑤’하고 추임새를 넣으면 어깨가 절로 들썩이는데요, 이런 건 누가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피 속에 흐르는 ‘흥’이 아닐까 싶습니다. 마지막 곡으로 판소리 동요 ‘꽃 새 바람’ 들으면서 ‘음악으로 여는 세상’ 오늘 시간 마칩니다.

판소리 동요- 꽃 새 바람

자유아시아방송의 김철웅의 음악으로 여는 세상
지금까지 진행에 김철웅 구성에 이현주 제작에 서울 지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