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연재:우리역사문화의 요람-이문형

부끄러운 건 부모된 우리 어른이다.<3>- 이문형(워싱턴문인회)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지금 중국인들이 한국인들만큼이나 자신의 역사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 고 있다는데 중국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한국인들에게 역사를 빼앗길 것을 두려워
하기보다는 중국인들의 동아시아 고대사와 한국상고사에 대한 역사와 문명의 강탈이
전세계에 들통나는 그것 무서워하는 것이라고한다
.

즉 중국인들의 문명은 동아시아 최초의 문명도 아니고, 중국이라는 민족국가 성립의 자체가
중국 이전의 마고문화적 한국인들의 통치를 무력으로 뒤업고 세워졌다는 사실이
밝혀질까 두려 워하는 것이라고 결론을 짓고 있다는 말이다
.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본 것을 더 믿는다. 어쩌면 사고의 세계(思界)보다, 체험의 세계,
즉 보고 배우는 세계(眼界)가 더 확신을 줄 것이다.

그래서 코너씨가 한국에서 무엇을 보았고 역사 문화지식을 위해서 누구와 만났을까?

사실은 그의 방한 소식에 일말의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던 것은 지금 한국은 한국의 역사 문화에 있어서 심각한 공방(攻防)을 벌이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었다.


잡지 삼천리34호에 실렸던 내용의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오늘날 일본사람들이 메이지시대의 선각자로 숭배하는 오카쿠라 덴신과 옛 5000엔짜리
지폐에 들어있던 니토베 이나조의 영문책은 서양인들에게 일본 민족의 우수성과 한국인에
대한 편견을 심어주는 데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

그 중 오카쿠라 덴신(1862~1913)<일본의 각성>이라는 책에서 “조선의 시조 단군은 일본의
14대 천황 주아이의 황후, 신공이 정벌군을 파견하여 삼한땅을 정복했던 3세기 이후 8세 기에
이르는
500년 동안 일본의 지배아래 있던 고유의 속주(original province)였다.
일본이 러. 일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조선을 식민지로 지배한다 하여도 그것은 침략이
아니라 역사적 원 상복귀일 뿐이다”
] 이 미술의 대가 오카쿠라의 말은 더 나아가 이렇게
이어진다고 하였다
. “조선의 옛 무덤에서 나오는 출토품들이 일본 옛무덤의 출토품과
쌍둥이처럼 닮아 있는 것만 보아도
, 일본이 태고적부터 이미 조선을 지배하고 있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 아닌가”

이 얼마나 통탄할 역사왜곡이며 민족적 수치인가!


현재 진행형 역사왜곡

그럼에도 현재 한국의 주류 사학계는 일제 식민사학의 구도에서 한발작도 내딛기를
거부하고 있다
.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한고조에게 멸망한 위만조선을 조선사의 시작이라고
해야한다
.

()나라가 고조선(식민사학자들의 주장)을 멸망시키고 한사군의 중심지인 낙랑군이
고조선의 수도였던 평양지역에 있었고 현도와 진번 임둔이 모두 한강 이북 반도땅에 설치하여
다스렸다는 것이다
.

중국은 이를 빌미로 동북공정에 나서면서 만주는 물론 한반도 북부까지 중국의 영토였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는데 이에 맞서기 위해 설치한 기관이 고구려연구재단이었고 지금은
그를 계승한 기관이 동북아 역사재단인데 그들의 행보는 참으로 신기하기만 하다
.
동북아역사재단의 현행 누리집은 ‘올바른 역사’라는 항목에서 [기원전 2~3세기
준왕 대의 고조선과 위만조선은 평양을 도읍으로 하고있었고…
]라고 쓰고 있다.
고조선의 왕성인 평양에 낙랑군을 설치했다는 중국 동북공정의 내용과 일치한다.

전신인 고구려연구재단에서도 한때 낙랑군의 위치를 평양이라고 표시한 역사지도를
올렸다가 네티즌들의 거센 항의를 받고 내린적이 있었다
.

또 국민들의 혈세로 운영되던 ‘한일 역사 공동연구위원회(2002~2005)’라는 곳이 있었다.

동 위원회에서 낸 <한일역사공동연구보고서>를 발간했는데 그 중 1권의 “고구려 정세”
부분을 보면
[고구려는 3세기 후반 서천왕 때에 이르러… 제 13대 서천왕(270~292) 때에야
사실상 건국되었다
] 고 기술하여 실제 추모왕 고주몽의 건국연대(기원앞 37)보다 300
이상을 후퇴 시키고 있으며 백제 정세 편으로 가면 더욱 가관이다
.

[<삼국사기> 백제 본기에 의하면 고이왕 27(260)조에 6좌평 및 16관등제 등의 중앙집
권적 관료제를 완비했다고 나오나
, 이는 후세 백제인들의 고이왕 중시관념에 의하여
조작된 것이다
. 이 시기 백제의 발전 정도는 좀더 낮추어 보아야할 것이다]라는 것이다.

<보고서>는 고이왕 27년조 기사 자체를 조작되었다고 주장하면서 [3세기 후반에 백제의
왕성 인 서울 송파구의 몽촌토성과 풍납토성이 축조되었다
]라고 서술 함으로써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지난
2000년 풍납토성에서 출토된 유물 13점에 대한 탄소연대
측정을 하여 그 중심연대가 빠른 것은 서기전
199년에서 늦은 것은 서기 231년이라고
발표한 것마저 뒤집어 엎는 서기
3세기 후반이라고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소위 현재진행형
역사왜곡의 실상인 것이다
.

마치 쓰다 소우키치(津田左右吉)나 이마니시류(今西龍) 그리고 도쿄대 도리이
류조
(鳥居龍藏) 등이 살아나서 활개를 치고 있는 느낌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식민사학자들의 행태는 과학도, 학문도, 민족의 장래도 무시하면서
자신들의 명예와 밥그릇 지키기에 혈안이 되어있는 실정이다
. 국민의 혈세를 쏟아부으면서도
일본만세
, 중국만세를 부르짖고 있는 것이다.

이러고도 부끄러움을 모르는데, 우리가 어찌 우리 아이들 앞에 당당히 설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