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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문화의 요람(搖籃)  (51)

                                    <참역사문화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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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문 형(워싱턴 문인회)
*** 기원앞 795년 제34세 단군 오루문(奧婁門)왕검 즉위.
*맏아들 사벌을 태자로 세우고 서정년(徐正年)을 태자태부로 황태명(黃太明)을 재상으로, 강자삼(姜子三)을 상장에 임명하였으며 이 해에 풍년이 들어 만백성이 기쁘고 또 편안하 므로 도리가(도里歌:신라의 도솔가의 뿌리이며 가악의 시초임)를 지어 불렀다.
*786년 두 해(兩日)가 함께 뜨고 누런 안개(黃霧)가 사방을 덮었는데 이는 제9세 단군 아술왕검과 제45세 단군 여루왕검 때에도 이와같은 기록이 나온다.

*서양: 814년경 카르타코시 건설. 800년 아테네.스파르타 등 도시국가 성립. 776년 제1회 올림픽 개최, 한편 동양의 인도는 800년에 브라만 세력확립으로 브라만교를 창립.

*** 기원앞 772년 제35세 단군 사벌(沙伐)왕검 즉위.
*765년 4월 일식(日蝕)이 있었으며, 745년에는 위(魏)나라 사람 적인문(狄人問)이 새 천문 학(天文學)을 가지고 입경하였고, 737년에는 송(宋) 사람이 악기를 가지고 입경하였으며 723년 언파불합(彦波弗合)장군을 보내 바다 건너 구주(九州)의 웅습(熊 襲)의 난을 평정함.

*동양: 770년 주나라가 동으로 도읍을 옮겼으며, 춘추시대에 돌입하였다.

*서양: 753년 로마제국이 건국 되었고, 721년에는 이스라엘 왕국이 멸망하였다.

*** 기원앞 704년 제36세 단군 매륵(買勒)왕검 즉위.

*서양: 670년 앗시리아가 오리엔트를 통일.

*667년 협야후 배반명(裵磐命)이 전선 5백척을 거느리고 일본에 건너가 반란을 평정하였고 653년에 연(燕)을 치니 연나라가 화친하기를 청해옴으로 그렇게 하였다.

*** 기원앞 646년 제37세 단군 마물(麻勿)왕검이 즉위하여 토목을 크게 일으켰으며 흉노가 번조선에 사신을 보내어 임금 뵙기를 청하면서 신하국이라며 공물을 바쳤다.
*637년 주나라 공주를 왕비로 삼았으며 632년에는 역대 성제의 송덕비를 동문 밖에 세웠 고, 591년 환웅, 치우, 단군왕검의 상을 널리 공급하여 관청과 집에서 받들도록 하였다.

*서양: 612년 앗시리아 멸망.

34세~47세 단군왕검
*** 기원앞 590년 제38세 단군 다물(多勿)왕검이 즉위.
*573년 문인(文人) 표상술(表相述)을 오성판윤(汚城判尹)에 임명하였으며 559년에는 그림 을 잘 그렸던 오추정(吳秋亭)을 문원상서(文院上書)에 임명하였다.

*동양: 565년 석가가 탄생하였고 551년에는 공자가 탄생하였다.

*** 기원앞 545년 제39세 단군 두홀(杜忽)왕검 즉위.
즉위 원년에 연나라 사절이 입조 하였고 이듬해에는 초나라의 사절이 입조하였으며 536 년에는 송나라의 정상충(鄭尙忠)이 50여명을 거느리고 입국하여 살았다.
*533년 위나라와 제나라의 사절이 그리고 531년에는 진(晉)나라와 조나라 사절이 입조하였고 525년에는 일식이 있었으며 같은해 서양에서는 페르시아가 오리엔트를 통일 하였다.
*516년 각종 학교를 세워 백성을 교육하였는데 외국에서도 유학 오는 자가 많았다.

*** 기원앞 509년 제40세 단군 달음(達音)왕검이 즉위하였으며 이 해 서양에서는 로마 공화 정이 시작되었고, 500~479년까지는 페르시아 전쟁이 일어났다.
*윤복지(尹卜地)가 도덕경(道德經)을 저술하여 바쳤고 505년에는 초나라 사절이 입조하는가 하면 이듬해에는 견융(견戎)이 와서 복종하였다.
*500년에는 진개(秦開)가 치국요람(治國要覽)을 저술하여 바쳤다.

*** 기원앞 491년 제41세 단군 음차(音次)왕검 즉위.
*** 기원앞 471년 제42세 단군 을지우(을지우) 왕검 즉위.

*서양: 469년 소크라테스가 출생하여 399년에 사망

***기원앞 461년 제43세 단군 물리(물리)왕검 즉위 했는데 제나라 대부 전굉(전굉) 이 망명하여 오고 또 조나라의 형필(형필)이 무리를 거느리고 와서 살았으며 북적의 사자가 입조하는 등 임금의 초기에는 선왕들처럼 세상이 우럴어 보는 국가 경영을 하며 다른 한 편으로는 454년 장자학(장자학)이 논리학(논리학)을 저술하여 임금께 바치는 등 학문이 번창하기도 하였으나 임금 말년에 이르러 우화충(于和沖)의 난으로 나라가 쇠하여 장자에게 세습치 못하는(제21세 단군 소태왕검에 이어) 두 번째의 왕이 되었다.

*** 기원앞 425년 제44세 단군 구물(丘勿)왕검은 우화충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즉위하였으며 국호를 고쳐 대부여(大夫餘)라 하였다.
** 사실 여기서부터를 북부여사로 보는 학자들이 있어 필자 역시 크게 혼돈한 적이 있으나 단군조선은 47대사가 맞다고 확신하며 이를 따르기로 한 것이다.

*** 기원앞 396년 제45세 단군 여루(余婁)왕검 즉위. 365년에 연나라가 쳐들어와 물리침.

*서양: 334년 알렉산더대왕의 원정이 시작되었으며 330년에는 페르시아 제국이 멸망함.

*** 기원앞341년 제46세 단군 보을(普乙)왕검 즉위, 이 해에 번조선 왕 해인(解仁) 이 연나 라에서 보낸 자객에게 죽자 오가(汚加)가 다투어 왕위에 오르려 하였다.
*338년 백두산이 밤에 울고 천지의 물이 넘쳤으며, 혼서경(混西經)이 쳐들어 오고 오성계 (吳成桂)가 반역하다 죽고, 임금이 미인계에 빠지는가 하면 황충이 밭곡식을 다 먹어치우는 등 국정이 날로 쇠하여 갔다.

*** 기원앞 295년 제47세 단군 고열가(高列加)왕검 즉위.
*239년 북부여 제1세 해모수(解慕漱)가 옛 도읍 백악산(白岳山)을 습격하고 스스로 임금이라 칭하니 고열가왕검께서는 스스로 덕이 없다 한탄하며 왕위를 버리고 입산 하였으니 단군 조선은 제47세 고열가 58년에 끝이났다. 총 2096 년간의 존속이었다.

*반면 272년 로마는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 하였고 221년에는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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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문화의 요람(搖籃)  (50)

                                    <참역사문화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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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문 형(워싱턴 문인회)
***기원앞 1285년 제22세 단군 색불루(索弗婁)왕검 즉위.
*삼한(三韓)을 삼조선(三朝鮮)으로, 즉 진한을 진조선(眞朝鮮), 마한을 막조선(莫朝鮮), 번한을 번조선(番朝鮮)으로 고침.
*1266년 단군조선의 남국(藍國)이 강해져서 서쪽으로 빈, 기에 이르렀다. 이에 여파달을 보내어 빈.기를 점령하고 그곳 유민들과 함께 나라를 세우고 여(黎)라 하였다.
*1250년 변방의 장수 신독(申督)이 반란을 일으켜 임금이 잠시 영고탑(寧古塔)에 피하였다.
이때부터 많은 사람들이 영고탑에 이주하여 살게되어 동북지방의 큰 도시가 되었다.
*1238년 임금이 세상을 뜨시고 태자 아홀이 제위에 올랐다.
***기원앞 1237년 제23세 단군 아홀(阿忽)왕검 즉위하여 맏아들 연나(延那)를 태자로 세우 고 임금의 아우 고불가(固弗加)에게 낙랑홀(樂浪忽)을 다스리도록 명하였다.
*1236년 은나라 성을 함락, 회대(淮岱) 땅을 평정하였으며 1226년에는 돌궐(突厥)의 사절이 입조 하였고, 1213년에는 송화강가의 여러공장을 보수하였다.
1206년에는 군관학교를 세워 병학(兵學)을 가르쳤으며 1183년에 영고탑을 사찰, 정전법(井田法)을 가르쳤다.
*** 기원앞 1161년 제24세 단군 연나(延那)왕검 즉위하여 아우 솔나를 태제(太弟)로 세우고 1160년 조서를 내려 소도를 증설하고 하늘에 제사하였고 나라의 재앙이 있을 때에는 여기에서 기도하므로서 백성의 뜻을 하나로 통일하였다.
*1154년 월남만(越南蠻)이 입조하였고 1152년에는 조대원(趙對元)이 정치원론 10권을 바쳤다.
***기원앞 1150년 제25세 단군 솔나(率那)왕검 즉위.
* 동양: 1122년 은(殷)이 망하고 주(周)나라를 건국하였으며 3년 후, 기자(箕子) 서여(胥 餘)가 태행산 서북쪽에 피해 산다고 하여 막조선(莫朝鮮)이 살펴주고 군사를 검열하였으나 기자가 서화로 옮겨 살면서는 인사를 사절하였다.
• 1112년 7월 15일 영고탑으로 도읍을 옮겼으며 1105년에는 북막(北漠)이 쳐들어 왔으나 곧 노월소(路月邵)를 보내 토벌하고 평정하였다.

기원앞 1122년 화하족의 은나라가 망하고 주나라가 건국되었다.

*** 기원앞 1062년 제26세 단군 추로(鄒魯)왕검 즉위.
즉위 원년 가을(7월)에 백악산(白岳山) 골짜기에 흰사슴 2백 여마리가 노닐었다.
* 1047년 주나라 4대왕 하(瑕: 昭王)가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고, 1035년에는 달단의 추장이 입조하였고, 1024년에는 의학원(醫學院)을 세워 백성들에게 의학을 가르쳤다.
* 서양: 1004년 히브리왕국 건설. 다윗왕 즉위.
* 동양: 1000년 아리아인이 갠지스강 유역으로 이주 시작.
*** 기원앞 997년 제27세 단군 두밀(豆密)왕검께서 즉위 하셨는데 즉위 원년에 천해(天海)의 물이 넘치는 일이 있었다. 또 수밀이국(須密爾國), 양운국(養雲局),구다천국(句茶川國)이 모두 사신을 보내어 방물(方物)을 바쳤다.
*** 기원앞 971년 제28세 단군 해모(奚牟)왕검 즉위.
*서양: 965년 솔로몬왕 즉위.
*961년 여름 태풍과 폭우로 육지에 물고기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954년 빙해(氷海)의 여러 제후들이 입조하였고 944년에는 가락(駕洛)이 입조하였다.
*** 기원앞 943년 제29세 단군 마휴(麻休)왕검께서 즉위 하였고 아우 나휴(奈休)를 태제 (太弟)로 삼았으며 같은 해에 주나라 사람이 들어와 공물을 바쳤다.
* 936년 여름에 지진이 있었는가 하면 이듬해 가을에는 남해(南海)에서 조수가 석자나 물러났다.
*** 기원앞 909년 제30세 단군 나휴(奈休)왕검 즉위년에 임금께서는 남쪽으로 행차하여 청구(靑 丘)의 정치를 살피고 치우천황(蚩尤天皇)의 공을 돌에 새겼으며 서쪽의 엄독홀(奄瀆忽)에 이르 러 제후들과 병사들을 사열하고 모두함께 하늘에 제사지냈다.
또 주나라와 수호(修好)를 맺었으며 구려후(句麗侯)의 우타가(于타)가 들어와 용가(龍加)가 되었고 900년에는 동돌궐(東突厥)에서 사신이 와 수호조약을 체결하였다.
*** 기원앞 874년 제31세 단군 등올(登올)왕검 즉위.
*865년 한수(漢水)사람 왕문(王文)이 예부터 있어온 우리 글 신전(神篆)이 번거롭다며 이를 근거로 글을 새로 만들어 바치니 임금께서는 이를 삼조선(三朝鮮)이 함께 사용하도록 하였다.
*** 기원앞 849년 제32세 단군 추밀(鄒密)왕검 즉위.
*846년 북적(北狄)이 쳐들어 왔으나 곧 물리쳤고, 844년에는 주나라 망명객 호선(胡先)과 841 년 진(秦)나라의 원회(原檜)와 838년 초(楚)나라의 대부 이문기(李文起) 등이 입정하였으며 이때 즉 841년 주공(周公), 소공(召公)의 공화(共和)가 시작되었다.
*** 기원앞 819년 제33세 단군 감물(甘勿)왕검 즉위.
*816년 황선문(黃先文)이 유황발사통(硫黃發射銃)을 만들어 바쳤다.
*813년 영고탑의 서문밖 감물산 아래에 삼성사를 세우고 친히 제사를 지냈으며 서고문(誓告文) 을 읽어 바치었다.
이듬해에 순길(舜吉)이 약을 만들었는데 장생불노단(長生不老丹)이라 하였다.
*** 기원앞 795년 제34세 단군 오루문(奧婁門)왕검 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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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문화의 요람(搖籃)  (49)

                                    <참역사문화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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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문 형(워싱턴 문인회)

신시 력 5906, 단군조선 력 4342, 서양력 200910 3일 개천일을
맞았다
.

본 중앙일보사의 적극적인 지원과 미력한 필자의 노력으로
<우리 역사문화의 요람>의 연재가 1년이 되는 날이기도 하다.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5회 정도를 거른 셈인데 본 연재는 50
또는
51회에서 마무리를 지을 것이기에 단군조선의 역대임금
연표와 동서양의 주요사건의 기록을 간추려 기술함으로서 우리
상고사의 전체모습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선에서 종결
짓겠으나 우리 참역사문화를 알리면 서 바로 세워 민족정기를
회복해나가는 일을 중단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  

 

*기원앞 1484 년 제 18세 단군 동엄(冬奄)왕검 즉위.

1483년 은나라가 사절을 보내어 사례하였다.

1480년에는 선왕시 정법원론 38편을 써 올린 고수노(高수老)
시켜 국사
18편을 편찬하 게 하였다.

1465년에는 지백특(支伯特: 티베트)사람이 와서 방물을 바쳤다.

1436년 임금께서 세상을 뜨시고 태자 종년(또는 구모소)
제위에 올랐다
.

 

*기원앞 1435년 제19세 단군 종년(縱年)(구모소)왕검 즉위.

***<단군세기>, <규원사화>에는 19세 왕검을 종년이 아닌 구모소라
하였는데 그 둘 중 종년 을 택한 이유는 아우의 이름이
종선
(縱鮮)이기 때문에 종년이 맞을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

맏아들 고흘을 태자로 세우고 아우 종선을 청아왕(淸芽王: 기자조선
또는 번조선의 태조 徐于餘의 증조부
)으로 삼았다.

1433년 나라 안 곳곳에 국문서당(國文書堂:아무나 와서 글을 배울 수
있는 초등교육기관
)을 세웠으며 또 1426년에는 조개엽전(貝葉錢)
만들어 썼고
1420년에는 공창(工廠)을 만들어 닥나무 껍질로 종이를
만들고 칙껍질로 베를 짜서 옷감을 생산하였다
.

***원공패전, 자모전에 이은 단군조선 세번번째 화패이다. 또한
닥나무 껍질로
한지를 만들었 다는 인류 최초의 기록이다.

중국에서는 서기 105년 후한의 채륜(蔡倫)이 처음으로 종이를
만들 었다고 주장하고 있음
.
1412년 남상인(男裳人)이 벼슬을 얻어
조정에 들어왔다
. 남상인은 남장인(男掌人)의 오기로 보며 남장은
지금의 운남성 변두리에 있던 섬라국
(暹羅國)을 말함이며 이로서
단군조선의 강역 은 만주
+중국 대륙+몽고+한반도임이 들어난다
<환단고기>에서-
1410년 조선소(造船所)를 송화강 남쪽에 세웠으며
1391년에는 황운갑(黃雲甲)이 지남거(指 南車)와 목행마(木行馬)
발명하여 임금이 후한 상을 내렸다
.

1385년에 목아득(牧雅得)이 우주원리론(宇宙原理論)을 저술하였고
3년 뒤에는 지이숙(支離 叔)이 주천역(周天歷)과 팔괘상중론
(八卦相重論)을 저술하였다.

 

**1381년 임금께서 세상을 뜨시고 태자 고홀이 보위에 올랐다.

*기원앞 1380년 제20세 단군 고홀(固忽)왕검 즉위.

맏아들 소태를 태자로 세웠다. 1377년 북흉노(北匈奴)가 변방에서
어른 노릇을 하므로 군사를 보내어 물리쳤으며
1345년에는
이궁
(離宮)을 영고탑(寧古塔)에 두었고 1341년에는 공공(共 工),
을홀(乙忽)이 구환(九桓)의 지도를 만들어 바쳤다.

 

**1338년 임금이 세상을 뜨시고 태자 소태가 제위에 올랐다.

*기원앞 1337년 제21세 단군 소태(蘇台)왕검 즉위하였고 이 해에
은나라의
21대 왕 소을 (小乙) 이 사신을 보내어 공물하였다.

 1335년에 공신(功臣) 여심심(黎尋心)을 창해군(滄海君)
임명하였다
.

*1300년 은()나라가 도읍을 옮겼다.

 1291년 은의 22대 왕 무정(武丁)이 귀방(句方)을 점령하고 색도(索度),
영지(令支)등을 침공하였으나 결국 크게 패하고 물러갔다.

1289년 개사원(蓋斯原)의 제후인 고등(高登)이 은밀히 군사를 일으켜
귀방을 습격하여 멸하고 많은 군사들과 손을 잡고 서북쪽 땅을 공략하여 그 세력이 강성하였는데
1286년  임금을 압 박하여 우현왕(右賢王)을 제수받고 마침내 부여의 신궁에서 즉위하였다.
임금께서는 할 수 없 이 그를 두막루(豆莫婁)로 제수하였으며 고동이
죽자 그의 손자 색불루
(索弗婁)가 세습하여 우현왕이 되었는데,
단제께서 종친인 서우여에게 왕위를 물려주려 하는 것을 알고 심히 압박 하니 임금께서는 어쩔 수 없이 옥책국보(玉冊國寶)를 전하고 은퇴하여
아사달에 들어가 살다가 붕어하셨다
. 이 해에 백이(伯夷), 숙제(叔齊)
고죽군
(孤竹君)의 아들들로서 나라를 버리고 수양산에 은둔 하였다.

**색불루를 <마한세가 하>에는 고등의 손자가 아닌 아들로, <단기고사>
에는 소태임금의 태자 로 되어 있으나 여기서는 <단군세기>의 기록을
인용하였다고 한다
.

**기원앞 1285년 제22세 단군 색불루(索弗婁)왕검 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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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문화의 요람(搖籃)  (48)

                                    <참역사문화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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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문 형(워싱턴 문인회)

신시 18대사 및 단군조선 47대사를 옮겨 기술하는 과정에서 중국의
 고대사로부터 전 근대사 소개도 곁들여 보았다
. 그러다보니 갈길은 먼데 남은 것이 많다. 결국 최대한 말을 아끼고 간략화 할 수밖에
다른 방법은 없다
. 중국사를 소개하기 전 단군 13대 흘달
왕검까지를 소개 하였으니
9세에서 13세는 즉위년과 동.서양의
기록만을 옮겨오도록 하겠다
.

*기원앞 1985년 제9세 단군 아술(阿述)왕검 즉위.(국법전서(國法全書)를 다시 편찬함.) . **기원앞 1950년 제10세 단군 노을(魯乙)왕검 즉위.(고시(考試)로 인재등용, 처음 목축을 권장 하였으며 천문대를 쌓고 감성관을 둠, 등에 윷판이 새겨진 신기한 거북이 출현) . *기원앞 1891년 제11세 단군 도해(道奚)왕검 즉위.(열 두 명산에 소도를 세우고 하늘에 제사. 금강율령(金剛律令)선포. 국민개병제 실시, 송화강가에 기계 만드는 작청(作廳) 설치. . *기원앞 1834년 제12세 단군 아한(阿漢) 즉위.(태학관(太學館)을 세워 선비를 양성. . * 서양-1830년 바빌로니아 제1왕조 성립. . 기원앞 1782년 제13세 단군 흘달(屹達)왕검 즉위.(지방 분권제 실시. ()과 함께 하나라 걸()을 침, 빈기(빈岐)를 점령하고 관제(官制) 설치, 천지화랑(天地花郞) 양성. . * 동양- 1766년 하()나라 망하고 은()나라 건국. . * 서양- 1728년 하므라비왕 즉위(바빌로니아), 하므라비법전 편찬.

기원앞 1721년 제14세 단군 고불(古弗)왕검 즉위. . *1697- ()나라 사절 입조. . *1680- 자모전(子母錢)을 만들어 통용. . *1666- 인구조사, 조세율 개정.

기원앞 1661년 제15세 단군 벌음(伐音)왕검 즉위. . *맏아들 위나(尉那)를 태자로 세우고, 단간선(段干仙)을 태자태부, 여인(黎仁)을 창해태수(滄海太守), 팽련(彭連)을 청해태수(靑海太守)에 봉함. . *이 해에 801의 세금을 받는 세금제도 실시. . *1660년 여름 큰 홍수로 백성들의 피해가 크므로 이재민을 창해(滄海) 사수(蛇水) 땅으로 이주 시키고 곡식을 나누어 줌. . *10월에 양운국(養雲國), 수밀이국(須密爾國) 두나라의 사신이 와서 방물(方物)을 바침. . **양운국, 수밀이국 모두 신시 12나라 중 한나라이다. 이 중 수밀이국은 고대 메소포타 미아 문명을 주도한 나라임, . *1622- 임금의 아우 벌심(伐心)을 남선비(南鮮卑) 달단왕(達단王)으로 임명. . *1614- 은나라의 제9대왕 태무(太戊)가 와서 방물을 바침.

단군조선의 역대 왕조

*1611년 임금이 세상을 뜨시고 태자 위나(尉那)가 제위에 올랐다. . **기원앞 1611년 제16세 단군 위나(尉那)왕검 즉위. . * 맏아들 여을(黎乙)을 태자로 세우고 유덕자(有德子)를 태자태부로 삼았으며, 이 해에 국정 을 쇄신하고 군기를 바로 잡음. 외척의 권한을 없애고 인재를 등용. 사치를 금하고 누에치기를 권장. . * 1596- 탐모라(耽牟羅:탐라:제주도) 사람이 와서 말 30필을 바침. . * 1583- 온 나라(구환) 제후들을 영고탑(영고탑)에 모이게 하여 하나님께 제사를 지내고 한인, 환웅, 치우, 단군왕검의 신주도 함께 모셨다. 5일 동안 잔치를 베풀고 밝은 불을 켜서 밤을 밝히 며 경을 외면서 뜰을 밟았다. 둥글게 돌면서 춤을 추며 애환가(愛桓歌: , 즉 무궁화)를 노래함.

*서양: 1570년 이집트 신왕국시대 돌입.

*1553년 임금이 세상을 뜨셨다. 태자 여을이 제위에 올랐다. . ** 기원앞1552년 제17세 단군 여을(余乙)왕검 즉위. . * 맏아들 동엄(冬奄)을 태자로세우고 임금께서 친히 마니산에 행차, 참성단에서 열성조께 제사하였다. 이때 은나라 임금 외임(外壬)이 사신을 보내 제사를 도왔다. . * 1535- 고수노(高수老)가 정법원론(정법원론) 38편을 바치니 18만 언()이다. . * 1533- 은나라가 조공을 바치지 않아 군사를 보내여 북박(北박) 쳤다. 은의 임금 하단갑 (河亶甲)이 곧 사죄하였다. . * 동양: 1500년 인더스문명이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 * 1485년 임금이 세상을 뜨시고 태자 동엄(冬奄)이 보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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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문화의 요람(搖籃)  (47)

                                    <참역사문화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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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문 형(워싱턴 문인회)

 
 

* *기원앞 2182년 제3세 단군 가륵(嘉勒)왕검 즉위.

2181- 을보륵(乙普勒) 박사가 한글의 전신인 국민정음(國民正音) 38자를 만듬

2180 – 고설(高설)에게 배달유기(配達留記)를 쓰게 함.

2177 – 색정(索靖)을 약수(弱水)로 보내어 흉노(匈奴)의 조상이 됨.

2175 – 두지주(頭只州)의 예읍(濊邑)이 반란을 일으키므로 여수기(餘守己)

우두머리 소시모리(素尸毛리)의 목을 베었다. 이로부터 그 땅을

소시모리’라 하였고 지금은 음이 변하여 소머리가 되었으며 그 후손

협야노가 바다로 도망하여 세 섬(三島:일본) 을 점령하고 참람하게도

왕이라 하였다.

2153 – 25년 만에 건청궁(乾淸宮)을 완성함

*배달유기(配達留記): 동양사학의 원조라고 하였으니, 국사 및 동양사의 가장

오래된 기록이라 할 수 있다. <단기고사>의 저자 대야발

(발해시조 대조영의 아우)이 발해문으로 간행한 일이 있다.

*지백특(支伯特): 티베트

*약수(약수): 합려산 근처에서 고비사막으로 흘러드는 강, 또는 흑룡강.

*가림토(加臨土): 가림다문(加臨多文)이라고도 한다. 가림토란 원래 한자가

아니고 순수한 우리말일 것이다. 이것이 세종대왕 때 집대성한

한글의 전신,‘한글의 모양은 옛 전자(篆字)를 모방했다’고 하는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어 있음.

* 2138- 9월에 임금이 세상을 뜨시고 태자 오사구(烏斯丘)가 보위에 올랐다.

**기원앞2137년 제4세 단군 오사구(오사구)왕검 즉위.

*임금의 아우 오사달(烏斯達)을 몽고 왕으로 봉함.

*2133- 원공패전(圓空貝錢:조개껍질에 구멍을 뚫어 만든 돈)을 만듬.

*2131- 살수에 조선소를 세움.

*2119 – ()나라 상왕(相王) 때 반란이 일어나 오사구 왕검께서는

식달(息達)에게 명을 내려 남(),(),() 세나라의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진압하게 하였다.

*2109- 천황은 매년 3월마다 마한의 군사를 사열하고 사냥도 하였으며 이해

1016일 기린굴(麒麟굴)에서 하늘에 제사지내고 조의(검을조衣)

관을 씌워주는 예를 행한 후 노래와 춤을 추는 등 여러 놀이를 행하였다.

*2100 - 6월에 임금이 세상을 뜨시고 태자 구을(丘乙)이 보위에 올랐다.

**기원앞 2099년 제5세 단군 구을(丘乙)왕검 즉위.

*맏아들 달문(達門)을 태자로 세우고, 아우 셋을 봉건제후국 번()왕에

봉하였다.

*태백산에 단을 쌓게 하고 사자를 보내어 하늘에 제사 지냈다.

**동양: 2096- 슈메르 제3왕조 멸망.

*2087- 감성관(監星官) 황보덕(皇甫德)에게 혼천기(渾天機:천문관측기)를 만들게 함.

*2084- 장당경(藏唐京) 고역산(古曆山)에 행차하여 제천단을 쌓고주변에 무궁화(槿花)

를 많이 심음.

*7월에 임금이 남쪽으로 행차하여 풍류강(風流江)을 거쳐 송양(松壤)에 이르러

병을 얻어 세상을 뜨셨고 대박산(大博山)에 장사 지냈다.

** 얼마전 이북에서 단군릉을 대대적으로 개축했는데, 이 능의 소재지가 평양시

강동군(전에는 평남 강동군) 대박산이다. <단기고사>에는 송양을 강동(江東)

이라 하였고,<신단실기>에는 송양은 강동현 이라 했다. 그래서 평양의

이 단군릉이 제5세 단군 구을왕검의 릉이라고 추정한다.

**기원앞 2083년 제6세 달문(達門)왕검 즉위

*2078- 맏아들 한속(翰粟)을 태자로 세웠다.

*을지선(乙支仙)을 재상, 연석천(淵石泉)을 상장(上將),

진무경(陳無競)을 섭사직 (攝司職), 관기을(關機乙)을 숙정사(肅政使)

삼았다.

*2077- ()나라왕 소강(少康)이 사신을 보내와 신년 하례를 하였다.

**서양: 2060년 우르 제3왕조 시작. *슈메르문명 전성기.

*2049-임금께서 열국의 제후들을 상춘(常春)에 모이게 하시고 하늘에

제사지냈는데,

신지(神誌) 발리(發理)에게 서효사(誓效辭)를 짓게 하였다

*2048- 임금이 세상을 뜨고 태자 한속(翰粟)이 보위에 올랐다.

**기원앞 2047년 제7세 단군 한속(翰粟)왕검 즉위

*맏아들 우서한(于西翰)을 태자로 삼았다.

*2022- 큰 흉년이 들어 쌓아두었던 곡식을 풀어 백성을 구제 하였다.

*2000- 백성들의 세금을 반감해 주었다.

**동양: 2000 - 아리안인 서북인도로 이주 시작.

*1994- 임금이 세상을 뜨시니 태자 우서한이 보위에 올랐다.

* *기원앞 1993년 제8세 단군 우서한(于西翰)왕검 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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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문화의 요람(搖籃)  (46)

                                    <참역사문화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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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문 형(워싱턴 문인회)
 

배달나라 신시(神市)의 개천 5906(기원앞 3897), 단기 4342
(기원앞 2333)20099,

103일 개천일을 스므날쯤 앞두고 역대 환웅님들의 역년을 살펴보았는데,
여기서 동양과 서양의 연표를 따로 소개하여 상고시대 인류문명의 발상과
형성의 모습을 엿볼 수 있도록 해보겠다
.


기원앞 3511년 배달나라 신시의 제5세 환웅 태우의(太虞儀)의 치세 중.
복희씨가 팔괘를 만들고 환역(桓易)을 지을즈음인 기원앞 3500년 경
슈메르인이 메소포타미아에 진출하였고 또 이집트 나일 강 유역에
도시국가 분립이 있었다
.

12세 주무신(州武愼)환웅의 재위기간인 기원앞 2850년에는 메네스왕이
상 이집트와 하 이집트를 통일하였고
, 14세 자오지(慈烏支:치우천황)
환웅 재위시 제후국의 소전(小典)의 아들로 태어난 헌원 (軒轅)
동이에서 분리되어 지나
(支那)족의 시조가 되었다. 기원앞 2679
황제로 즉위하였으며 자오지천황 즉 치우천황과의 탁록대전을 치르는
등 끈질긴 악연이 지속되었다
.


[제후국의 아들 헌원이 구리국(神市)에 반기를 들어 독립하려고 하니
치우천자가 이를 징벌하였고 헌원은 먼 척박한 땅 태행산맥 서쪽 장안
북쪽 “황릉”에 쫓겨가 고향으로 돌아오지를 못하고 그곳에 서 죽었으며
그는 지나족의 시조가 되었다
]는 우리의 기록이 아닌 그들의 기록입니다.

[동평을 중심으로 산동성과 요를 중심으로 한 태행산맥 동쪽은 적어도
기원앞
2700년부터 서기 6세기까지 동이의 강역으로서 한번도 상실해
본적이 없는 동이의 강역이자 옥토다
]는 기록도 눈여겨 볼 일이다.


이어 제16세 축다리(祝多利)환웅의 재위시에 동양에서는 인더스 문명
(기원앞 2500~1500)기 에 접어들었으며 서양에서는 기원앞 2500
메소포타미아 아우르 제
1왕조가 성립되었다.

기원앞 2480년에는 이집트 제5왕조 성립되었으며 2350년에는
6왕조가 성립되어가는데 그 사이 지나족은 기원 앞 2357년에
당요
(唐堯)가 즉위 하였다

단군조선의 건국

배달나라 신시(神市)의 제18세 거불단 환웅께서 돌아가시자, 기원앞
23331039(九桓. 九夷)의 백성들의 추대를 받아 송화강
아사달
(현 하얼빈)에서 단군왕검께서 제위에 오르시 며, 나라 이름을
조선
(朝鮮)이라 하였다.

단군시대는 동이 9()을 단일 통치권으로 완전히 통합하고 드넓은
땅에 제후국을 두어 통치 하며
47대 단군 고열가왕검까지 2096년을
지속하였다
.


1세 단군왕검: *기원앞 2333년 구환을 통일하고 신시의 모든 제도를
이어받아
103일 즉위

*2285 - 9년홍수(九年洪水) 발생(노아의 홍수사건과 동시대 발생)

*2283 – 강화도 마니산에 제천단을 쌓음.

*2267 – 순임금이 보낸 우()에게 부루태자를 보내 오행치수법을 전해주어
홍수를 다스리게 함
.

*연대를 알수는 없으나 단군왕검대에 시행됐던 것으로 기록된 풍습들이 있는데 이는
양잠법 시행
,

댕기와 대님 매는법, 연지곤지 등이 있으며 특히 “제1대 단군왕검께서
9환족을 통일한 후 제일 - 먼저 하늘에 천제를 올렸다”에서 보듯
왕검께서는 하늘에 제사지내는 제천단인 소도를 곳곳에
- 세웠다.

*또한 10월 상달에 삼신께 천제를 지냄(-우르의 지구라트, 이집트, 마야,
잉카 피라미드)

*”모든 예술은 제천의식에서 비롯된 것” -아리스토텔레스-

*단군왕검 치세 중인 기원앞 2284년 순()이 요()임금의 뒤를 이어
즉위하였다
.


2세 단군 부루왕검: *기원앞 2240년 즉위.

*9월에 아우 부여(扶餘)를 망구왕(茫球王)으로 부우(扶虞)를 동해왕
(東海王) 으로 삼음.

*그 해 온 나라에 어아노래를 부르게 하고 조천무(朝天舞)라는 춤도
만들어 추게 함

*2238 - 모든 도량형을 관청의 표준에 맞춤

*2231 – 정전법(井田法)을 시행함.

*2229 – 칠회력(칠회력)을 만듬

*2224년 우()가 하(: )나라를 세움.

*2221– 밭에 벼를 심어 경작함.

*2215- 순임금의 아들 상균(상균)이 고국인 조선에 돌아와서
관직이 사도에 이르렀다
.

**2183년 임금께서 세상을 뜨시니 백성들이 몹시 슬퍼하였고,
이날 일식이 있었으며 누런 안개가 사방에 끼어 하늘과
사람과 만물이 함께 슬퍼한다 하였다
.

뒤에 사람들이 집안의 정한 곳을 택하여 단을 만들고 질그릇에
곡식을 담아 그 단 위에 놓고 제사하였는데 이를 부루단지
(扶婁壇地)라 한다.

**2182- 태자 가륵이 제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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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문화의 요람(搖籃)  (45)

                                    <참역사문화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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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문 형(워싱턴 문인회)
 

본류를 떠나 중국인들의 문명은 동아시아 최초의 문명도 아니고,
중국이라는 민족국가 성립의 자체가 우리의 신시, 단군조선의 통치를
뒤엎고 세워졌다는 사실에 접근하여 보았다
.

의외로 그 분량이 많아 곁길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말았으나 결코
시간의 낭비가 아니었으며 따라서 유익한 일이었다고 사료된다
.


당연히 13대 단군 흘달(屹達)왕검부터 다시 이어가겠지만, 그 분량을
감당하기 어려우므로 최대한 간략 하게 요점만을 기술 하되 우리민족의
국가형성기로 볼 수 있는 신시
(神市)로부터 기술하겠다.

즉 지금으로부터 9206년 전(B.C 7,197) 환국(桓國) 1세 환인
안파견
(安巴堅 )으로부터 제7세 환인 지위리(智爲利 )까지의 환국의
기록은 빼고
, 5906년 전(B.C 3,897)의 제1세 환웅 거발환(居發桓)으로 부터
18세 환웅 거불단 (居弗檀)까지의 1565년과 그리고 4342
(B.C 2,333)의 단군왕검으로 부터 47세 단군 고열가 (高列加)까지를
소개하겠는데
, 사사건건을 다 소개할 수는 없겠고 신시(神市)대 와
단군조선 대의 특별한 사건이나 동시대의 동양권과 서양권의 움직임을
함께 기술하여 세계 속의 흐 름과 동향을 살펴볼 수 있도록 해보겠다
.

이는 여러 사료들을 참고하였으나 그 뼈대는 <단기고사><환단고기>
그리고 <규원사화>임을 밝히고 있는 고동영의 <단군조선 47대사>에서
발췌 기술하는 내용이다
.


이에 앞서, 환국(桓國)이니 환단(桓檀)이니 환웅(桓雄)이니 환인(桓因)
말하거나 기술하면서 환이 아닌 한으로 표기해야 한다는 학설도 만만치
않으나 필자가 환을 선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박태종님의
[1982년 일본학자 가지마(鹿烏昇)에 의해 환단고기 일어판이 간행되고
1985년경부터 여러 본의 국내 판이 번역 되면서 한국 지식계는 새로운
바람으로 크게 술렁이기 시작했다
. 그 중 임승국(林承國) 선생 이 번역
주해한
<한단고기>가 지식인 및 일반인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쳤는데
그의 환
()을 한으로 읽어야 한다는 주장은 문자학적 면에서 볼 때
증거와 설득력을 결여하고 있다
.] 전개한 그의 문자학 적 설명이
지극히 합당함은 물론 많은 정황이 이를 뒷바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

우리의 상고사 연표

B.C 3897- 1세 환웅 거발환(居發桓) 즉위

* 신시(神市)에 도읍하고 나라를 배달(神市)이라고 함

* 역법(曆法)을 만들어 365일을 1년으로 함.

B.C 3803 - 2세 환웅 거불리(擧弗理) 즉위.

3717 - 3세 환웅 우야고(右耶古) 즉위.

3618 - 4세 환웅 모사라(慕士羅) 즉위.

3511 - 5세 환웅 태우의(太虞儀) 즉위. 서양: B.C 3500년 경

*복희(伏羲)씨 팔괘를 만들고 환역(桓易)을 지음. * 슈메르인 메소포타미아
진출

* 이집트 나일강 유역에 도시국가 분립

  1. - 6세 환웅 다의발(多儀發) 즉위

3320- 7세 환웅 거련(居連) 즉위.

3239- 8세 환웅 안부련(安夫連) 즉위.

*소전(小典)을 강수(姜水)에 보내어 군사를 감독하게 함.

*소전의 아들 신농(神農)씨가 여와(女와)의 뒤를 이어

왕이 됨.

3166 - 9세 환웅 양운(養雲) 즉위.

3070 - 10세 환웅 갈고(葛古) 즉위.

*신농씨의 나라와 국경을 정함.

2970 - 11세 환웅 거야발(居耶發)즉위.

2878 - 12세 환웅 주무신(州武愼)즉위.

서양: B.C 2850

*메네스왕 상.하 이집트 통일

2773 - 13세 환웅 사와라(斯瓦羅)즉위.

2706 - 14세 환웅 자오지(慈烏支: 치우천황)즉위.

*창과 투구 등 쇠로 만든 병기로 유망(楡罔)과 헌원(軒轅) 동양: 2679

을 이기고 서쪽으로 국토를 넓힘. *황제 헌원(軒轅) 즉위

*자부선생(紫符先生)이 삼황내문(三皇內文)을 헌원에게 줌.

*칠성력(七星曆)이 시작됨

*청구(靑丘)로 도읍을 옮김

2597 – 15세 환웅 치액특(蚩額特) 즉위

2508 – 16세 환웅 축다리(祝多利) 즉위 동양: 2500~1500 서양: 2500

2452 – 17세 환웅 혁다세(赫多世) 즉위 인더스문명 메소포타미아
아우르

2380 – 18세 환웅 거불단(居弗檀) 즉위 제1왕조 성립

*신시(神市, 배달나라)18대 역년 1565년으로 2357: 당요(唐堯) 2480:
이집트 제5왕조

끝남. 즉위 2350: 이집트 제6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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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문화의 요람(搖籃)  (44)

                                    <참역사문화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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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문 형(워싱턴 문인회)
 

일본이 우리의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말살하고 조작하고 왜곡한 목적은
한국을 영원한 자기들의 식민국가로 만들기 위해서였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의 역사문화를 축소시키고 왜곡시켜 부끄 러운 역사문화
,
내세울 것 없는 선조들임을 각인시켜 열등감을 가지게 함으로써
식민지배를 숙명 적으로 받아들이게 한다는 것이었다
.

그래서 단군조선을 신화로, 기자조선과 위만조선에 이어 한무제에 의한
한사군의 통치를 받는 식민국가로 우리의 고대사는 시작된다
.

한사군 반도내 설치설은 중국의 사서 어디에도 그 기록이 없는데 한
예를 들면 중국의
<사기> ‘() 본기 태강지리지’에 “낙랑군 수성현에는
갈석산이 있는데
..” 여기에서 낙랑군이 수성현, 갈석산, 만리장성이
시작되는
, 등의 기술이 나타난다.


그럼에도 오로지 우리 교과서에만 지금도 낙랑은 평안남도와 황해도
북부에 걸쳐 있고 만리장성 또한 황해도 수안을 동쪽의 끝으로 보고있는
것이니 중국의 입장에서 보면 한국의 사서 및 교과 서가 얼마나 고마우랴
,
낙랑군이 설치된 지 2천년 후에 조선총독부에 의해 낙랑군이 평안남도와
황해도 북부에 결쳐 있었고 그 치소는 대동강변의 토성동이라고 만들어진
것인데 오늘날의 중국은 이 논리에 따라 한강 이북을 중국사의
강역이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한국의 동북아역사재단의 누리집은
“위만조선의 도읍 부근에 설치된 낙랑군 조선현의 치소가 지금의 대동강
남안의 토성동 토성”이라고 이들의 논리에 동조하고 있는 것이다
.


사이토 총독의 교육시책

여기서 1925년 사이토 총독이 전국에 시달한 교육시책의 내용을 살펴보자.

**먼저 조선사람들이 자신의 일, 역사, 전통을 알지 못하게 만듦으로써
민족혼
, 민족문화를 상실하게 하고

** 그들의 조상과 선인들의 무위 무능과 악행을 들추어내 그것을 과장하여
조선인의 후손들에게 가르침으로서 그 부조
(父祖)들을 경시하고
멸시하는 감정을 일으키게 하여 하나의 기풍으로 만들고

** 그 결과 조선의 청소년들이 자국의 모든 인물과 사적(史蹟)에 관하여
부정적인 지식을 얻어 반드시 실망감에 빠지게 될 것이니

** 그때에 일본 사적, 일본인물, 일본문화를 소개하면 그 동화(同化)
지대할 것이다
. 이것이 제국 일본이 조선인을 반()일본인으로 만드는
방법이다
.

** 그 결과 무려 50여종의 20만권을 압수하여 불태우고 그 중 중요사료는
일본으로 가져가 황실도서관 맟 동경대 지하 비밀서고에 보관하고 있다
.


역사 왜곡 및 조작의 구체적인 내용은

상고사 말살 및 조작: 고조선 이전의 역사 말살, 즉 단군은 신화일 뿐 이를
역사로 교육하는 것은 오히려 역사왜곡 행위라고 주장하면서
중국의 속박에서 벗어난 적이 없는 피식민지배국가 였다는 것을
강조하였고

고대국가 강역 축소:서기 200~300년에 이르러서야 겨우 국가형태를 갖추고
한반도를 중심으로

살아온 민족으로 한반도를 벗어난 적이 없는 민족이라며 강역을
축소하였으며

민족비하: 항상 침략만 받아온 약소민족이며 갈등하고, 분열하며, 시기가
많은 민족성을 가진 민족 으로 교육 시켰다
.


우리들은 오늘도 실역사인 단군앞 신시는 있지도 않았으며 단군조선을
신화로 믿는다
. 또한 위만조 선을 멸망시킨 한나라가 한반도내에 설치한
한사군에 의해 식민지배를 받았다고 조작된 사실을 그 대로 믿고있음은
물론
1925년 사이토 총독의 교육시책에 의한 우리의 조상과 역사적
인물과 역사 문화의 전통에 부정적이며 스스로 약소민족이라고
, 분열과
갈등과 시기심 많은 민족이라고 민족비 하에 혈안이 되어 살아간다
. .

[191338세의 일제 사학자 이시니마루(今西龍)가 갈석산으로 달려가
‘점제현 신사비’를 정으로 쪼아 떼내어 배에 싣고 평남 온천군으로
날라왔고 이 신사비를 앞세워 한반도내 평양 인근에 낙랑 군이 설치된
것으로 조작하였으며
, 그 내용조차도 이에 맞는 내용으로 왜곡하였다]
사실도 밎지 않으 며
, 그러면서 그때 만들어진 조선사 37권의 조작된
내용이 옳다고 여긴다
.

1925~1937년까지 12년간 100억원(현재 가치, 원화)을 투입하여 말살하고
조작하고 왜곡한 우리 역사 문화를 사실로 믿고있는 한
, 우리들의 조상은
없다
. 우리 천손민족이 유일신으로 떠 받들던 하늘 임금님(하나님, 하느님)
도 천손민족도 모두 거짓이 된다.

고구려, 발해마저 중국의 변방국가가 되며 한강 이북은 중국의 옛 영토가
되고
, 우리는 그저 반도 안에서 늘 중국과 일본에 끼어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는 민족이 되고 만다
.


그동안 신시와 단군조선 역대 왕조를 역사적 사료들을 바탕으로 기술해
오다가 중국의 역사문화를 소개하여 중국의 것이 더 깊고 오래라는
고정관념을 뛰어넘어보려고 하였다
.

그러다보니 우리역사의 소멸과정과 왜곡의 실체까지를 소개하게 되었으니
이제 본류인 단군조선사 에 돌아가겠는데 최대한 요약하여
50회 전 후로
마무리를 지을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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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문화의 요람(搖籃)  (43)

                                    <참역사문화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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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문 형(워싱턴 문인회)


진나라의 분서갱유, 춘추필법과 사필원칙, 우리민족이 하늘에 제사지내던 제단 소도(蘇塗)
비롯한 수많은 왕릉 등의 유적들을 말소시키는 과정과 우리 역사 말살의
10대 수난사를
겪어냈음에도 그들의 역사서에는 그들과 대치된 동이민족
, 단군조선(조선)의 얘기가 자주
등장한다
.

가령 그들의 조상이라는 황제 헌원의 탁월한 인물됨을 과시하기 위해서는 치우천황
(신시의 14대 자오지 천황)을 대치시켜야 했던 것처럼 비록 왜곡되고 비하는 됐을지언정,
그들이 그들의 우수성 을 강조하기 위해서라도 우리의 상고사를 완전하게 소멸시킬수는
없었을 것이다
.

 

그럼에도 우리의 영토는 여전히 반도를 벗어난적이 없고, 고조선은 기자조선,
위만조선으로부터 시작되었으며 위만조선은 한()나라에게 패망하여 반도내에 낙랑,
현도, 임둔, 진번 4군을 두어 식민 통치를 받았다는 등식을 만들어 우리 민족의 조상은
애초부터 중국의 식민지배를 받아온 보잘 것 없는 무능한 존재로 날조해 놓았다
.

그것은 중국이 밑돌을 깐 곳에 일제가 못을 박았고 일본이 밑돌 깐 곳에는 중국이 못박은
형상인 데
, 이에 더해 오랜 세월 사대주의와 식민사관에 찌들고 이기적 방관의식마저
고착되어 민족혼의 기상이 사라져 가고 있는 실정이어서 우리의 왜곡
, 소멸된 역사문화를
바로 세우는 일이 어려운 지경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

 

우리 역사 말살의 10대 수난사

미처 소개하지 못한 빼놓을 수 없는 우리 역사말살의 수난사를 살펴보자. (이를 10
수난사로 표현하기도 한다
)

 

1차 고구려 동천왕 18(244) 위나라 관구검이 고구려 수도 환도성을 공략하여 많은
사서 소각
, 이때 고구려 <유기> 100권이 사라짐.

2차 백제 의자왕 20(660)년 나당연합군에 의해 사자성이 함락되면서 사고(史庫)
불타 없어짐
(燒盡)

3차 고구려 보장왕 27(608) 당나라 이적이 평양성을 공격하여 전적을 모두 탈취함.

4차 신라 경순왕 원년(972) 견훤이 경애왕을 치고 신라의 책을 전주로 옮겼다가
왕건에게 토벌 당할
  때 방화 소각됨.

5차 고려 인종 4 (1129) 금나라에서 주체서적을 몰수해감.

6차 고려 인종 20(1133) 몽고의 침입으로 소각. 3한 고기(三韓古記)>,
<해동고기(海東古記)> 가 이때 없어짐.

7차 조선 태종 11(1411) 5부학당을 송제(宋制)에 의하여 설치하면서 유교를 장려하고
비유교서적 일체를 소각함
.

8차 선조 25(1592) 임진애란으로 무수한 전적이 방화 소실됨, 조선의 4대사고 중 전주
사고 만 남고 모두 소각
, 훗날 마리산 사고로 옮겼으나 고종 3(1866) 병인양요 때
프랑스 함대의 강하도 공격으로 방화됨
.

9차 병자호란으로 인한 소실 및 손실.

10차 일본강점(1910)이후 식민지 교육정책으로 사서 20여만권, 탈취, 소각, 개조됨.

 

*** 동방의 한국은 가장 오래되고 경이로운 역사를 간직해온 나라이면서 전대미문의
과거단절도

경험한 나라인데 그것은 모두 외세의 침탈과 인위적인 역사말살의 비정상적인 단절의
악순환 이었다
.

일제 식민사관과 중화(中華) 패권주의 사관은 한세기 정도의 시차를 두고 있으나 두 사관의
 한국사 공격이 우리 고조선이라는 동일한 대상이었다는 점에서 우리의 입장 더더욱
곤혹스러워질 수밖에

없고, 더욱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의 고조선사(상고사)는 결코 옛날옛적의 지나간 얘기가 아니며 오늘, 그리고 내일도
지속될 근대사이고 현대사일 수밖에 없는 것은 그들의 역사왜곡이 오늘도 멈추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

 

일제는 조선총독부 정무총감 시타오카(下岡忠治) 위원장과 편찬의 실무책임자 경성제국대학
사학
과교수 이마니시류(今西龍) 이병도, 위원인 이능화, 어윤직, 최남선 등과 고문 이완용,
박영효, 권중현 등이 관계된 조선사편수회를 통해서 우리의 상고사 말살과 고조선 신화화,
고대국가 강역 축소(한반도), 민족비하 등을 국가차원에서 단행하였으며, 중국은 중국공산당
정치국원이자 중국 사회과학원 원장인 이철영
(李鐵映)과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이자
재정부장인 한회성
(項懷誠)이 고문 으로 있는
동북공정 영도협조기구 가 동북공정을 지도하며
국가기구 차원에서 한국사를 공격하고 있다는 것은 두나라가 우리 한국사 공격에 얼마나
깊숙이 개입하고 있는가를 증명하고도 남는다
.

 

이제 일제 강점이후 식민지 교육정책으로 50여종 20만권의 사서 탈취 소각, 개조의  내용을
다음 칼럼에서 살펴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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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문화의 요람(搖籃)  (42)

                                    <참역사문화 운동>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문 형(워싱턴 문인회)

 

앞 칼럼에서 진시황은 한족(漢族) 언어를 쓰는 나라들을 통일한 후에도
대대로 신봉해온 동이족의 역사와 문화의 흔적들을 말살하지 않고서는
(화하, 화산족)의 천자국 단군조선 숭배사상을 지워버릴 수 없다고 보고
내륙에 존재하는 수많은 동이계열의 언어와 문화를 가진 이들을 숙청하고
,
서적을 불태우고, 조작된 사서들을 다시쓰고, 수만명의 유학자들을 생매장
하였으며 그러고도 단군조선의 공략에 대비하기 위하여 만리장성
축조사업정책을 펼쳤다고 했다
,

그러나 그것으로 과연 동이족의 흔적을 다 지웠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게 하고도 남는 것이 있다. 그것은 무엇일까?

당연히 처치 곤란한 유물과 유적이 남을 것이다. 그것도 헤아릴 수
없을만큼 엄청난 수량의 왕릉 과 비석과 탑들이다
. 그것은 부셔 흩
뿌리거나 바다로 운반하여 수장시키거나 땅 속에 묻어 감출 수 도 없는
골치거리였음에 틀림이 없었을 것이다
. 일반 무덤도 아니고 고구려총의
모습과 같으면서 규모가 훨씬 더 큰 신시
18대와 단군조선 47, 65기의
왕릉이다
. 제후국들의 왕릉까지를 포함 시키지 않아도 이미 도저히
말살시킬 수 없는 거대한 피라미드 형식의 계단식 왕릉들이다
. 금속이나
철제같은 유물이라면 녹여 진시황의 아방궁 건축물에 사용하였 듯
,
그것들을 얼마든지 변형시켜 흔적을 없앨 수도 있겠지만 그 많은 무덤들
(고인돌 포함)과 돌기둥과 탑들과 비석들은 어떻게 처리할지 그 방법이
묘연하다
. 이에 대해 많은 학자들이 추정하는 바(비록 기록이나 유적
으로서 실증할 수는 없으나 확고한 심증을 두고있는
) 그 내용을 제시
한다
.

만리장성의 축대 속에는 장문의 비문이 새겨진 비석(송덕비 포함)등의
유적류
, 신시 및 단군조선 역대 왕릉의 축대에 사용된 다듬어진 돌들은
장성의 성벽을 쌓는데 사용함으로서 유적이 될만한 것 들을 모두 감추고
성벽을 쌓는데 필요한 다듬어진 돌들을 충당 하였을 것이다
.

또한 그것이 만리장성을 축조한 진시황의 진정한 숨은 뜻이었을
것이라고 추정추정하고 있다
.

그도 그럴 것이 불과 30여년을 지속하다가 사라진 진나라가 들과 산에서
자연석을 캐고
, 나르고, 깍고, 다듬어 그 만리장성을 쌓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을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


이쯤에서 본류에 복귀해야겠다. 본 연재는 재미 있게 엮어내는
얘기책이나 역사소설이 아니다
.

아무리 어렵고, 딱딱하고, 재미가 없어도 조작되고 왜곡된 역사의
틀을 깨고 우리 참역사의 현장 을 찾아나서는 사실의 역사 기록이라는
본질을 탈피할 수는 없다
.


그러면 진나라의 시황제 진시황이 소위 그들이 말하는 천하를 통일하고
나서 몽염을 시켜 쌓았다 는 만리장성은 어디에서 어디까지일까
?

이때 진나라의 영토는 동으로 바다를 연하여 조선에 미쳤고, 서쪽으로는
임조
, 강중, 남쪽으로는 북호까지 뻗쳤다. 그리고 북쪽은 황하를 기점으로
하여 음산산맥을 따라 요동
(현 요동이 아님)에 이르렀는데 만여
()이다

좀더 알기 쉽게 표현한 수경주(水經注)의 기록을 보면 진시황이 태자
부소와 몽염에게 명하여 장성을 쌓게 하였는데 장성은 임조
(서쪽 끝)에서
시작하여 갈석산
(동쪽 끝)에 이르렀다는 것, 갈석산은 창려현에 있으며
산해관 바로 아래에 위치하고 있는 고대의 요동지역이다
.

장성의 안쪽에 위치하는 창려현(현 하북성 창려)과 장성 밖에 위치하는
산해관
(옛 낙랑군 수성현) 의 중간을 가로지르며 뻗어가 서쪽의 임조에
이르렀다는 것이고
, 이를 진시황의 중국 통일 이후 서한(西漢) 시대까지도
우리의 조선과 중국의 국경은 그 동쪽이 지금의 난하
(옛 요수)와 갈석산
지역
(현 요하의 서쪽)으로 옛날에 요동이라 부르던 지역이었던 것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

우리 역사 말살의 10대 수난사

그럼에도 우리의 영토는 반도이고 고조선은 기자조선, 위만조선으로부터
시작되었며 위만조선은 한 나라에게 패망하여 반도내에 낙랑
, 현도, 임둔,
진번 4군을 두어 다스렸다는 등식을 만들어 우리 민족의 조상은 애초부터
중국의 식민지배를 받아온 무위 무능한 존재로 날조해 놓았다
.

그것은 중국이 밑돌을 깔고 일제가 못박은 형상인데 그에 대한 기사의
정리는 뒤로 미루고 우선

우리 역사말살의 빼놓을 수 없는 수난사를 살펴보자. (이를 10대 수난사로
표현하기도 한다
)


1차 고구려 동천왕 18(244) 위나라 관구검이 고구려 수도 환도성을
공략하여 많은 사서 소각
, 이때 고구려 <유기> 100권이 사라짐.

2차 백제 의자왕 20(660)년 나당연합군에 의해 사자성이 함락되면서
사고
(史庫)가 불타 없어짐(燒盡)

3차 고구려 보장왕 27(608) 당나라 이적이 평양성을 공격하여 전적을
모두 탈취함
.

4차 신라 경순왕 원년(972) 견훤이 경애왕을 치고 신라의 책을 전주로
옮겼다가 왕건에게 토벌 당할 때 방화 소각됨
.

5차 고려 인종 4(1129) 금나라에서 주체서적을 몰수해감.

6차 고려 인종 20(1133) 몽고의 침입으로 소각. 3한 고기(三韓古記)>,
<
해동고기(海東古記)> 가 이때 없어짐.

7차 조선 태종 11(1411) 5부학당을 송제(宋制)에 의하여 설치하면서
유교를 장려하고 비유교서적 일체를 소각함

8차 선조 25(1592) 임진애란으로 무수한 전적이 방화 소실됨, 조선의
4대 사고 중 전주 사고만 남고 모두 소각, 훗날 마리산 사고로
옮겼으나 고종
3(1866) 병인양요 때 프랑스 함대의 강하도
공격으로 방화됨
.

9차 병자호란으로 인한 소실 및 손실.

10차 일본강점(1910)이후 식민지 교육정책으로 사서 20여만권, 탈취,
소각,개조됨.

*** 동방의 한국은 가장 오래되고 경이로운 역사를 간직해온 나라이면서
전대미문의 과거단절도

경험한 나라인데 그것은 모두 외세의 침탈과 인위적인 역사말살의
비정상적인 단절의 악순환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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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s KORUS House English class is an article about Chuseok, one of Korea's biggest traditional.....

전찬윤 씨의 댓글

아래는 2016년 1월 전찬윤 씨가 댓글로 올려 주신 내용입니다. 전찬윤 2016-01-29 04:00 우리나라 동포(교포) 3세가 2052년에 미국의 대통령이 될 것이다 ​ 님의 블로그에서 유익한 내용, 마음에 와 닿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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