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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한국인

[세계의 한국인] 원산 버섯농장 원응식 박사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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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18

RFA PHOTO/이현기

지난 2002년 버섯을 주제로 한 논문으로 퍼시픽 웨스턴 대학에서 농학박사 학위를 받은 원응식 씨.

원응식씨 1938년생으로 그의 나이 45살이던 해에 미국에서 표고버섯과 느타리버섯을 개척한 미국의
한인 문익점으로 불린다. 미국의 한 잡지는 그를 ‘버섯이 부인보다 먼저인 사람, 버섯과 대화까지
나눌 경지에 달한 전문가’라고 평했다.

원씨는 지난 2002년 퍼시픽 웨스턴 대학에서 농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버섯을 주제로 한 논문이
통과됐기 때문이다. 지금도 미국 농무부에선 아직 그에게 ‘곰팡이류’의 연구를 더 계속해 달라고
연락이 온단다. 원씨는 처음 버지니아 주 아보니아소재 일렉스 버섯농장을 운영할 때 108명의
직원을 두고 버섯 생산할 때 그때가 가장 좋았다고 회고하기도 한다.

원응식: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가 편하고 좋았던 같아요. 108명을 데리고 일하는데
자신감이 생기고 자존심이 생기더라고요.

원응식씨는 미국 버지니아 주 매나사스 인근에 원산 버섯농장에서 버섯재배와 리치먼드 인근에
150만 평 규모의 설희태라 불리는 한국산 토종 속 푸른 콩도 생산하고 있다. 무려 한국생산량의
4배에 이른다고 한다.

자유아시아방송의 세계의 한국인 오늘은 원응식씨가 버섯 박사학위를 받기까지 투혼의 노력과
지금도 끊임없는 곰팡이 연구에 돌입하는 그의 버섯 세계를 찾아간다.

칠순이 넘은 점잖은 한국인 원응식씨는 기자가 농장을 찾았을 때도 작업복 차림의 부지런히 낙엽을
모으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원응식에게 표고버섯의 생산공정을 물어봤다. 표고버섯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원 모체가 참나무이고 미국에는 버섯에 적합한 참나무가 한 9가지가 된다고 설명한다.

원응식: 미국에는 참나무가 많아요. 미국 토질이 좋아서 그런지 참나무의 품질도
좋더라고요. 그래서 버섯의 영양가도 높아요. 일단 어떤 분이든지 표고버섯을 만들고 싶다
하면 일단 참나무를 잘라야죠. 길이는 4피트 정도 짜르는데 이것이 자르는 시기를 알아야
되는데 어떤 분은 여름에 와서 잘라 놓고 와서 참나무를 짤라 놯으니까 접종해야 되니까
종자를 달라고 하시는데 이건 잘 못된 거예요. 언제 잘라야 하면 11월부터 1월까지 잘라야
됩니다. 11월부터 1월까지 잘르게 되면 그땐 전부 다 물이 올라가는 게 동결되어서 나무가
전부 단풍화 됩니다. 잎이 다 떨어지지요. 그건 겨울을 나기 위해서 잎이 떨어진 거예요.
그리고 겨울을 나기 위해서 수분이 올라가는 것을 막은 겁니다. 그러면 겨울을 나기
위해서 영양을 많이 축적하고 있어요. 그러면 11월부터 1월까지 잘라서 한 달 동안 쉰
다음에 2월 지나서 3월이 되면 드릴로 구명을 뚫기 시작해요. 구멍을 뚫어서 종자를
집어넣기 시작하지요. 집어넣어 가지고 그때부터 버지니아 기후 같으면 한 5개월 정도면
버섯이 돋기 시작합니다. 한국 같으면 한 10개월 걸립니다. 여기와 차이가 나더라고요.
원목에 관계가 있고 기후에 관계가 있어서 시기가 달라 지더라고요.

원응식씨는 예순을 훌쩍 넘긴 나이게 박사학위를 준비하게 된다. 어떻게 박사 과정에 도전하게
됐을까?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원응식: 그게 처음에는 무모한 짓이라고 생각했지요. 세상에 그것이 제일 힘든 일인 것
같아요. 우선 기초적으로 내가 아는 상식 내가 경험한 것, 생산하면서 느낀 것 이걸 전부
다 기록을 만들었지요. 만든 다음에 공부하기 시작한 거예요. 어디 가서 지도받을 때가
없어요. 아는 사람이 없으니까. 참 어려운 게 많더라고요. 여기까지 왔는데 이것 그냥
주저 않을 수는 없어요. 그러면 사람이 죽으면 이름을 남겨야 된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
선조가 와서 이런 것 이런 것 했구나. 선배들이 와서 고생을 하고 이렇게 했구나. 뭔가
남겨야 되겠다 이겁니다. 이건 사명감입니다. 해야 될 의무입니다.

원응식 씨의 박사과정은 쉽게 이뤄졌을까? 그는 두 번 퇴짜 맞았다고 한다.

원응식: 두 번 퇴짜 맞았는데 세 번째는 포기할까 하다가 약이 올라 찾아갔습니다. 담당
교수 3명을 만나 따졌습니다. 왜 퇴짜 시켰느냐. 그 이유를 알면 포기하겠다. 그리고
당신들이 타당성 있는 이유라고 생각하면 나한테 선생이 되니까. 나를 가르쳐 줘야 되겠다.
그리고 나는 기록으로 남겨야되겠다고 따졌더니 총장이 손을 덥석 잡더라고요. 첫 번은
우리가 의례적으로 퇴짜 했고 두 번째는 솔직히 말해서 몰라서 퇴짜 시겼다. 그래서
눈물이 확 나오더라고요. 세 번째는 너의 진심을 알았다. 그리고 우리가 충분히 평가했다.
이젠 됐다고 이래서 좀 제가 찾아간 것이 좋은 기회가 되지 않았나 생각을 했어요.

원응식씨는 논문 때문에 하루 4시간 정도 자면서 공부했다고 회고해 준다.

원응식: 4시간 자면 많이 잔 것이지요. 보통 3시간 정도 잤다면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고속도로에서 운전하고 가다가 경찰들에게 몇 번 도움을 받았어요. 왜냐면 운전하고
가다가 잠이 쏟아지고 어지럽고 해서 고속도로변에 차를 세워놓고서 운전대에 머리를
박고 인사불성이 되는 거예요. 경찰이 와서 깨워서 왜 그러냐고 어지러워서 그래요.
그래 왜 그래 박사학위 과정 때문에 잠을 못잣기 때문에 그럼 어디까지 가느냐고
어디까지 간다고 경찰차를 타고 갈래 우리가 호위해줄까 사실 박사과정 때문에
렇다고 하니까 도와주겠다고 한 3번 정도 도움을 받았지요.

미국의 한 잡지는 버섯이 부인보다 먼저인 사람 버섯과 대화를 나누는 경지까지 간 전문가라 고
했다. 버섯과 40여 년 함께한 그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원응식: 일화가 많아요. 집사람에게 매번 고마운 것을 느끼고 우리 집사람 손가락을
보면 꼬부라졌어요. 버섯을 너무 많이 따서, 버섯을 얼마나 따기에 손가락이
꼬부라집니까. 나중에 그걸 보고 통곡을 했어요. 솔직히 말씀드려서 지금도 그 생각하면
눈물이 나오려고 한다고요. 나중에 그 꼬부라진 손가락에다가 여자들이 좋아하는
다이아몬드를 하나 끼워 주겠다. 그걸 해 줬어요. 해 주고서 눈물을 흘린 적이 있었지요.

원응식씨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한 두 가지의 일에 몰두해야 전문가의 경지에 도달한다고 자신의
경험을 뒤돌아 이야기한다. 그리고 지금도 버섯의 건강식품으로서의 우수성을 주제로 연구한다고
말한다.

원응식: 후배들이나 주위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일을 하지 말고 한가지나 두 가지나 거기에 전문가가 되라 그걸로 넉넉하고 전문가가 됐을
적에 거기서 진리가 나온다. 진리가 나온다는 말은 버섯을 하다 보니까. 버섯을 하면서
버섯에 대한 것을 100% 알아야 될 것 아녀요. 분석하고 연구를 해야 할 것 아녀요.
이러다 보니까 그것에 대한 부가가치가 높더라고요. 무슨 소리냐면 건강과 직결이
되는 게 엄청나게 많더라고요. 워싱턴 지역에 있는 한 신문에 1년 넘게 칼럼을 계속
썼지만 전부 버섯과 관계되는 내용입니다. 이제부터 또 나가는 또 다른 칼럼은 일반
식물에 없는 비타민 1부터 비타민 12까지 형성되어 있는 것이 표고버섯 밖에는 없습니다.

원응식씨는 표고버섯은 근친상간하면 돌연변이로 기형화된다고 설명해 준다.



원응식: 표고버섯에 근친상간하면 균사체가 안된다고 되어 있어요. 어떻게 되느냐.
한송이 버섯에서 연구한 것입니다. 버섯 한송이에서 나올 수 있는 포자 (균사체)
균사체는 버섯의 씨입니다. 이씨가 한 버섯에서 한 5만 개 정도 씨가 나옵니다.
그런데 5만 개 씨가 자기들끼리는 결합이 안됩니다. 결합이 혹시나 되어 돌연변이가
나오더라도 기형이 되어 버립니다. 절대로 근친상간이 되지 않습니다. 딴 버섯에서
나온거야만이 균사체가 결합이 됩니다. 이게 어떻게 만들어 놯는지 하나님이 참
조화롭게 만들었단 말입니다. 이래서 제가 버섯을 더 사랑하게 되고 더 좋아하게
됐던 것 같아요.

원산농장 이름은 어떻게 지었을까? 북한 함경도의 원산이냐고 물었다.

원응식: 함경도에 있는 원산과는 관계가 없고 제 고향은 강원도 원주인데 제가
원씨입니다. 원주 원씨 그리고 여기가 보시다시피 산입니다. 원산 원씨 내의 산
‘원산’ 그랬는데 미국 친구들 발음이 잘 안됩니다. 그래서 WON SHAN 이라고
부르게 됐습니다.

북한에도 표고버섯이 나오는지를 물었다. 만약 북한에 표고버섯이 생산된다면 많은 경제적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원응식: 제가 한 10년 가까이 된 것 같아요. 북한에 관련이 있는 어떤 분하고
이야기를 했는데 10년 전인데도 북한에 쌀이 부족하고 기아에 허덕인다. 이런
말이 많이 나왔는데 그때 당시 제가 제시한 것이 있습니다. 저는 북한에 가보지는
않았지만, 자원이 있고 경작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기술은 대 주겠다는 생각했습니다.
버섯 하나만 가지고도 잘하면은 예를 들어 일 년에 쌀 20-30만 톤 되는 양의 달러를
벌어들일수 있다는 프로젝트를 제시한 적이 있는데 흥미가 있으면 연락하라 했는데
아직 연락이 없습니다.

미국에서 오랫동안 버섯과 인생을 함께하면서 한인의 우수성을 미국에 심고 있는 원박사가
세계에 사는 우리 한인들에게 주고 싶다는 얘기를 들어보자.

원응식: 우리가 국제화 시대에 살고 있어요. 한국만 내 고향이 아닙니다. 물론 태어난
것은 내 고향이지요. 그런 감상적인 고향이기 전에 미국과 캐나다에서 살고 있다.
영국 독일에서 살고 있다. 어디에서 사시든 간에 사시는 곳 그곳이 고향입니다.
그곳에서 충실하고 그 나라에 맞는 훌륭한 시민으로 성장하는 게 좋은 거지. 난
언제 가는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희귀성 있는 동물이 되어서는 안 되겠고 거기서
열심히 자기가 개척했으면 개척한 것 또 현재하는 사업이면 사업에 만족해 열심히
살면 그것이 우리의 본분이고 우리가 열심히 살았을 때는 그 훌륭한 씨가 뿌려집니다.
후세들이 그것을 본받아서 훌륭하게 성장하게 될 수가 있어요. 그래서 그런 토양이
되어 주시기 바랍니다.

원응식씨는 미국에서 한인이 산에서 딴 버섯 먹고 사망할 수가 있었다며 안타까워했다.
야생 버섯은 독을 가질 수 있어 조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원응식: 현재 미국 산야에는 독을 가진 버섯, 먹을 수 있는 버섯 소위 야생화 된
버섯이 지금 현재 조사한 것은 2만 2000개 정도 돼요. 거기서 식품화 할 수 있는
것은 240개 정도밖에 안 돼요. 거기서도 또 추려서 지금 미국 시장이나 한국 시장에
올라와 있는 버섯의 종류가 약 40가지 내외입니다. 그러면 제가 봤을 때 그래요.
산에 가면 독버섯일수록 예쁩니다. 독버섯일수록 형형색색 입니다. 그것에 현혹되어
먹으면 죽지 않으면 미칩니다. 미치지 않으면 병신이 됩니다. 교포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알지 못하는 짓을 하는 것처럼 바보는 없다. 똑바로 알고 해도 바보가
되는 세상인데 산에 가서 들에 가서 예쁜 버섯이다. 곱다 해서 그걸 채취하고 뭐하고
한번은 교포 집에 초대받아 갔는데 깜짝 놀랐어요. 산에 갈 적마다 예뻐서 따 가지고
온답니다. 채취해서 집에서 말려서 테크레이션을 했더라고요. 이게 뭐 하는 짓이요.
했더니 얼마나 예쁘냐고 이름이 뭔지 아느냐고 했더니 모른다는 겁니다. 예뻐서
그렇다는 거예요. 그러냐고 아주머니에게 물으니까 아주머니도 모른다는 거예요.
아이들이 몇 명이요 하니까 갑자기 버섯 이야기하다 아이들 이야기냐고 물는데로
이야기하라고 했더니 여태 있다가 집이 싫다고 나갔다는 거예요. 왜 싫다고 나갔습니까
했더니 어떻게 된 아이가 병치레를 계속해 그거가 바로 이겁니다. 그 버섯이 마르는
과정에서 포자가 증발하게 되어 있어요. 포자가 나오도록 되어있어요. 그래 호흡기를
통해 들어가지요. 어린아이들은 아토피 같은 게 생겨요. 어른들 노인들은 폐가 망가져요.
그래서 좋지 않습니다. 가서 보는 것은 괜찮은데 채취해서 집에다 놓고 채취해서 어떤
사람은 보약이라고 먹어서 병이 났다고 하는데 절대 그러면 안되지요.

원응식씨는 버섯재배 이외에도 콩을 생산하고 있다.

원응식: 여기는 작습니다. 여기는 한 20 에이커 정도 밖에 안 되고 버섯이 정착되고
나니까 표고버섯과 느타리버섯이 제가 전문 아녀요. 이곳에서 표고버섯과 느타리버섯을
함께 하다 보니까 포자끼리 엉켜요. 그러다 보니까 자꾸 돌연변이가 자꾸 생겨요.
그래서 표고버섯 농장을 필라델피아로 옮겼습니다. 여기는 느타리만 생산해요.
필라델피아에서 생산해서 내려오지요. 지금도 아침 5시면 일어나서 괜히 아따 갔다
합니다. 무엇인가 움직여야지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이에요. 시간이 조금만 있으면
일을 내지요. 그래서 콩을 생산해야겠다 해서 한국에서 씨를 들여다가 재배했는데
풍토병 때문에 고생 많이 했어요. 지금은 그걸 고쳐서 아주 잘해요.

도전하는 한국인 원응식씨 어떤 계획을 하고 있을 까? 함께 들어보자.

원응식: 큰 계획이 없고요. 제가 아는 것 연구한 것 이걸 전부 다 교포들이나 우리
동포들에게 알리고 아직 풀지 못한 숙제가 있습니다. 그것까지 해결하고 나면 언제가
될는지 모르겠지만 좀 그게 저의 조그만 소망이라면 소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은 지금 나이가 72살인데 72살인데 무슨 글을 씁니까? 다들 깜짝 놀라요. 제가
지금도 아침 2-3시까지는 글을 써요. 그 자체가 우리는 아직도 더 고생하고 더 정진하고
나아가야겠다. 해서 농담 비슷한 이야기이지만 주말 되면 나가서 골프 등을 하는데 아직도
이민 1세들 그럴 시간 없어요. 앞으로 좀 더 뛰어 줘야 합니다.

자유아시아방송의 세계의 한국인 오늘은 원응식씨가 버섯 박사학위를 받기까지 투혼의 노력과
지금도 끊임없는 곰팡이 연구에 돌입하는 그의 버섯 세계를 찾아봤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의
세계의 한국인 기획과 진행에 이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