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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한국인

[세계의 한국인] 버지니아 주 하원 의원 도전 마크 김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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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09

RFA PHOTO/이현기

미국 버지니아 주 역사상 첫 아시아인으로 주 하원의원에 도전하는 마크 김 씨.

지구촌에서 한인은 날로 성장해 가고 있습니다. 지구촌의 한인들은 대략 680여만
명으로 이스라엘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인구가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세계
곳곳에 정착해 살면서 백의민족의 끈끈한 의지와 맥을 지구촌 곳곳에 심어 가고
있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이 세계 속의 자랑스러운 한국인을 소개하는 ‘세계의 한국인’
오늘은 미국 버지니아 주 역사상 첫 아시아인으로 주 하원의원에 도전하는
마크 김 씨의 어린 시절과 미국 정치계로 발돋움하는 내용의 제1부 순섭니다.

재미교포 2세로서 20여 년전 정치에 입문 한 끝에 드디어 오는 11월 3일 미국
버지니아 주 하원 의원에 도전한 마크 김 씨. 그는 지난 6월 버지니아 주 하원
35지구 선거에서 55%의 지지율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고 본격 선거전에
돌입했다. 김 씨가 버지니아 주 의회에 들어가면 버지니아 400년 역사상 첫
아시아인 주 하원의원이 된다. 한국인으로서 자랑스러운 일이다. 마크 김 씨의
어린 시절은 평탄치는 않았다. 그가 태어난 이야기를 들어보자.

마크 김 씨는 1966년 서울에서 태어나 4년 동안 한국에서 자랐지만 1970년
가족을 따라 월남으로 간다. 아버지가 1960년부터 육군 군목으로 계시면서
월남과 관계가 있었고 그 이후 월남에 교회를 세우면서 이민길에 나선다.

마크 김: 월남에서 1975년까지 살다가 9살이 되기 전 4월 말 월남이 망하면서
피난을 갔지요. 어머니와 형, 누나와 저는 피난을 나와 한국에 돌아왔는데
아버지는 안타깝게도 못 나오시고 월맹에 1년 넘게 억류되셨다가 풀려나셨습니다.
1976년에는 다시 한번 한국을 떠나서 두 번째 이민을 호주로 가서 5년 동안
살았습니다. 호주에서 개척교회를 하셔서 한인 이민자를 위한 목회를 하다가
1980년 말에 14살 될 때 미국에 왔습니다.

마크 김 씨는 한인 2세 이민자로서 4개 나라에서 자라면서 어려움도 많았다고
회고한다.

마크 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10군데 학교를 옮겨 다녔고 4개 나라에서
성장했습니다. 나라 내에서도 도시를 몇 번 바꾸는 많은 변화 속에서 자랐는데
성장해서 뒤돌아보면 좋은 경험이었다고 보지만 어린 시절은 참 힘들었지요.

마크 김 씨는 어린 시절 ‘주어진 환경에서 온 힘을 다하라’는 부모님의 교훈으로
성장했다고 한다.

마크 김: 주어진 몫에서 어디서 일하든 간에 열심히 일을 하고 좋은 일을 하고
좋은 사람이 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교훈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사회봉사를
하고 정치도 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제가 보기에는 이 땅에서 할 수 있는 사회봉사는
아무래도 정부의 정책이 나오는 그런 쪽에서 일을 하는 게 모든 사람들을 도와주는
분야가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을 하고 주 하원의원에 출마했습니다.

마크 김 씨는 1984년 캘리포니아 어바인 대학에서 정치학 공부를 시작한다.
그는 학교공부에 치중하기보다는 여러방면에서 인생을 배우는 게 중요하다고
느끼고 대학시절 폭넓은 사회봉사 활동을 시작하게된다.

마크 김: 제가 항상 대학에서 느낀 것은 열심히 공부하고 좋은 성적으로 사회에
진출해서 성공해야겠다 야망보다는 대학을 다니면서 대학과정의 공부와 더불어
폭넓은 지식을 얻는 여러 방면에서 인생을 배우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는 자라면서 중고등학교에서 교회나 지역사회 활동을 하면서 사회적인 활동과
운동을 많이 했기 때문에 대학에서 공부는 열심히 하지 못했습니다. 학교교실의
성적보다는 대외적인 폭넓은 활동에서 배운 게 많았습니다. 그때 좋은 친구들 많이
만났습니다.

마크 김 씨는 어떻게 정치와 인연을 맺었는지. 그의 이야기를 들어 본다. 88년
미국 대통령선거가 시작되고 민주당에서 인턴십을 받으면서 본격적인 정치계를
입문하게 된다.

마크 김: 민주당에서 인턴으로 처음 워싱턴에 발을 딛으면서 미국의 유명하고
성공적인 정치인들 밑에서 6개월 동안 일했는데 그 경험이 4년 동안 대학에서
공부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교육의 경험을 얻었습니다.

마크 김 씨는 대학시절 이민자로서 정치에 성공한 한인들이 없음을 안타깝게
생각한다.그리고 자신이 직접 정치인으로 성장해 한인 2세 3세 4세를 이끌어
주기를 소망하며 정치하기를 결심한다.

마크 김: 그동안 20여 년동안 쌓은 경험을 쌓으면서 제가 항상 노력한 것은 ‘저
같은 사람을 더 키우기 위해서는 남들이 해서 찾는 것보다 내가 나가서 먼저 해야
되지 않겠나’ 하는 개척정신을 가지고 아무도 내가 따라갈 사람이 없으니까 일단
내가 한번 해보면 제 뒤가 누가 따라오지 않겠나 하는 자부심을 느끼고 선거에
임하고 있습니다.

마크 김 씨에게 미국 정계에서 성공적으로 활동하는 데 있어서 어떤 현실적인
장벽이 있는지를 물어봤다. 그러나 그의 대답은 노골적인 인종차별은 없다고
답한다.

마크 김: 미국은 솔직히 아직은 노골적인 인종차별은 드물어요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어떤 당이든 간에 특별히 당신은 소수민족이니까, 우리는 이렇게 당신을 취급해
주겠더란 그런 것은 없지만, 소수민족의 정치인구가 적기 때문에 인물이 없어서
힘든 면이 있겠지요. 저는 이번 8개월 동안 선거운동을 했는데 특별히 저한테 제가
소수민족이고 동양인이기 때문에 거부반응은 없었지만, 얼굴이 미국 정치인과 다르게
생겼고 하는 행위가 다르고 제가 생각하는 것이 특이하여서 유권자들의 문을
두드리곤 하면 좀 놀라는 분들은 많은 것 같습니다.

마크 김 씨는 한인 2세로서 정치인이 되기 위해 어떻게 했을까?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마크 김: 저 같은 경우는 20년 동안 민주당 당내에서 일을 해왔고 인턴부터 시작해
최고위직까지 했고 최근의 6년 동안 미국 연방상원의장의 변호사로서 최고
법률보좌관으로 일을 해왔기 때문에 민주당 주류사회에서는 잘 알려졌거든요.
그래서 동양인인 것도 있지만 경험이나 경력으로 봐서는 누구보다도 훌륭한
후보라는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동양인이지만 다른 사람보다 우수하다
그래서 받아주고 싶다는 분위기를 만들었죠.

마크 김 씨는 한인 2세들이 이제는 정치 참여를 해야하고 정치 참여를 위해서는
밑바닥부터 배워 나가야 된다고 설명한다.

마크 김: 정치에 성공하려면 처음 밑바닥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처음 밑바닥부터
시작하는 게 훨씬 더 좋지 나중에 돈 벌고 성공한 다음에나 할 게 없으니까 정치한
번 해 보겠다해서 갑자기 나타나는 것은 아주 안 좋은 상황이라고 봅니다.

마크 김 씨는 오바마 대통령을 좋아하고 그외에도 케네디 전 대통령과 케네디가의
정치인을 좋아한다고 말합니다.

마크 김: 오바마 대통령이 성공을 했기 때문에 저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많은 교훈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민주당이기 때문에 케네디
대통령, 로버트 케네디, 이번에 돌아가신 테드 케네디를 몇 년 동안 섬겼는데 그분
가족들의 경험이 참 우리가 배울 게 많다는 걸 느꼈죠.

자유아시아방송이 세계 속의 자랑스런 한국인을 찾아가는 ‘세계의 한국인’ 다음
시간은 마크 김 씨가 미국 의회에서의 활동과 버지니아 주하원 35지구 민주당
경선에서 4명의 후보자 중에서 55%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원동력은 무엇인지에
관한 제2부 순서를 방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