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계의 한국인

[세계의 한국인] DC 흑인들의 다정한 친구 최상진 목사②


2009-11-27

오디오
오디오 (다운받기)
이메일
뉴스레터
프린트
기사 공유하기

사진-평화나눔공동체 제공

워싱턴 DC의 노숙자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고 있는 한인 봉사자들.

미국에서는 23일부터 27일까지 이어지는 추수감사절 연휴를 맞이하여 고향을 찾는
여행객으로 초만원을 이루었다. 비행기, 기차, 버스, 개인 승용차로 고향을 떠나는
사람들에겐 기쁨이 넘쳐나지만, 고향이 있어도 갈 수 없는 노숙자들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 외롭고 쓸쓸한 명절이다.

이러한 쓸쓸한 명절을 맞는 노숙자에게 기쁨과 소망을 주는 단체가 있다.

바로 워싱턴 DC에 있는 평화나눔공동체, 이 단체를 이끄는 한인 최상진 목사는 이번
추수감사절에도 음식과 과일, 컵라면 등을 나누어 주는 행사를 펼치고 있다.

바로 워싱턴 DC 맥펄슨 공원, 로건써클 공원 등에서 수천 명의 노숙자들에게 나눔의
장을 열기 수 십여 년 그 해가 갈수록 노숙자들에겐 친근한 친구로 다가가고 있다.

자유아시아방송의 세계의 한국인 오늘은 워싱턴 DC에서 도시의 빈민 자를 섬기는
평화나눔공동체의 운영자인 최상진 목사가 펼치는 노숙자의 천국 그 현장을 찾아가본다.

노숙자들에게 평안한 안식처인 평화나눔공동체는 언제 시작됐을까? 1995년 최상진 씨가
워싱턴에서 박사과정을 공부할 때 한인과 흑인 간의 분쟁을 해결하려는 비전을 갖는다.
그리고 다음 해인 1996년에 최상진 씨의 하숙집에서 7명이 기도 모임을 한다. 이 기도모임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가정의 갈등, 사회의 갈등, 인종 간의 갈등, 가난과 국제적인
전쟁의 아픔을 위한 것이었다. 바로 이 모임이 평화나눔공동체의 탄생이라고 최상진
씨는 설명한다.

: 1997년에 버지니아에 있는 워싱턴 한인교회에서 처음으로 이사회를 구성했습니다. 그래서
평화나눔공동체가 탄생했는데 영어 이름이 ACTION FOR PEACE THROUGH PRAYER AND
AID=APPA, 기도와 구제를 통해서 평화를 심자는 의미인데요. 앞 자가 APPA 입니다. 그래서
'아파'라는 말입니다. 이 의미는 아파하는 사람을 돕자는 것입니다. 아파하는 사람들을 사랑으로
돕자는 의미로 영어 이름을 아파 라고 했는데요. 1997년에 세워졌지만, 이 빈민가가 무서워서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현장에 들어가지 못했다가 1998년 10월 31일 드디어
평화의 집이라는 이름으로 '평화나눔공동체'가 탄생 됐습니다.

billy_200
18년 동안 노숙생활을 하다가 노숙자 교회 피아노 반주자로 거듭난 빌리 씨.
최상진 씨는 슬럼가는 갱 영화에서 보듯 거의 절반에 가까운 집에 유리창이 깨져 있고 지붕에
불이 난 자국, 사람들이 별로 살지 않는 무시무시한 곳이었다며 1998년 당시를 회고한다.

: 저희 센터가 있는 집과 센터 앞집이 둘 다 불이나 이 층 지붕이 탄 집입니다. 저희가 있는 곳은
워싱턴 DC 319 R ST. NW입니다. 이 지역은 애덤스 모겐 지역이라고 하는데 흑인들의 문화
가난한 빈민의 문화가 여기서 탄생되고 있는 곳입니다. 불행하게도 이 지역이 가난한
지역이지만 국회의사당에서 차로 5-6분 걸립니다. 그리고 백악관에서 여기까지 차로
6-7분이면 도달합니다. 그래서 저는 상징적으로 수도인 백악관의 뒷골목이라고도 말을
합니다. 그렇게 가까운 지역에 슬럼가, 할렘가가 있습니다. 그래서 살인 사건이 매일
일어나는 그러한 현장이기도 합니다.

평화나눔공동체는 처음 어떤 활동을 시작했을까? 최상진 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 처음 현장에 들어와서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활동들은 너무나 많은 가난한 노숙자들이
방황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심지어는 화장실을 찾지 못해서 거리에서 대변
소변을 보는 정도였습니다. 저희가 조그만 공간을 만들어서 우리로 말하면 커피하우스,
다방 같은 카페를 하나 만들어서 노숙자들을 대접했습니다. 무료로 물도 주고 커피도
주고 빵도 주고 화장실도 사용할 수 있게 하고 그런 공간을 만들었더니 하루에 100명에서
200명이 들어 왔어요.

평화나눔공동체의 봉사 영역이 확대되면서 최상진 씨는 박사 과정을 중단한다. 그리고
노숙자들의 다정한 친구로 다가간다.

: 그때 제가 박사 과정을 공부하던 중이었는데 너무 혼자 감당을 못해서 학교를 멈추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 같은 명절에 정말 굶주려 있는
저 영혼들에 따뜻한 음식을 대접해 주면서 저들을 위로해주고 추운 겨울이 오면 옷들을
모아다가 저들을 입혀주고 그다음에 어린아이들을 우리가 교육도 시켜주고 방과 후
야외활동도 해주고 이런 기본적인 활동들 동내에 화단이라든가 건물의 문고리
고장 난 것을 고쳐주는 활동도 했고 그다음 부활절마다 300-400명이 모여서 이 가난한
지역에 거리 청소를 해주고 꽃도 심어주는 등 빈민가를 변화시키는 활동을 처음에는
했었습니다.

평화나눔공동체는 노숙자들의 굳어진 마음 문을 여는 예배를 시작으로 선교기관으로서의
자리 매김을 하게 된다.

: 일단 저희가 현장에 나가서 직접 노숙자와 대화를 하고 아픔을 들어주고 저들의 필요한
것들을 채워줄 때 저들의 마음속에 우리 한인들에 대한 큰 사랑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특히 아픈 상처를 대화로 풀면서 같이 영적으로 기도해주고 변화시키는 과정 속에서
저들이 소중한 친구 믿음의 친구들을 얻게 됩니다. 주일날 노숙자들이 예배드리고 식사도
하고 또 우리가 거리에 나가서 상담도 해주는 전문 프로그램도 생겼고 이제는 미국에 있는
변호사들 백인이나 흑인변호사들 전문 변호사들과 협의해 한 달에 한 번씩 무료로 법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고 또 의사들과 협의해서 의료선교도 해주게 되고 다양한 전문성을 가진
프로그램이 계속 개발되고 있습니다. 또 미국이나 한국에서 수백 명의 젊은이들이 이곳에
와 일주일 동안 먹고 자면서 지역에 나가 가난한 사람 도와주고 지역사회를 개발해주고
또 복음도 전하는 그런 전문적인 훈련만이 아니라 실천하는 전문기관으로 선교기관으로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최상진 씨는 평화나눔공동체가 한인들의 봉사로 참 기쁨이 넘쳐난다면서 한인들의 봉사를
소개해 준다.

: 현재 우리 센터에 봉사하는 한인들은 거의 1년에 2만여 명에 가깝습니다. 봉사자들은 워싱턴
일원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까지 다 합친 것을 말합니다. 특별히 DC 센터에서는 여름에 300명
이상의 젊은이들이 미 전역에서 오고요. 또 겨울에 대학생들 100여 명이 방문하게 됩니다.
그리고 주말에 교회 젊은이들이 음식이나 지역사회 봉사를 하기 위해서 100여 명이 오고
또한 저희 농장이 있습니다. 농장에 가서 우리 노숙자들이 채소도 가꾸고 거기서 자연
치유도 받는 그런 농장 쉼터도 있는데 그곳에서 봉사하는 친구들이 1년에 1000여 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주로 한인 단체들이 와서 배식을 해주고 주일날 노숙자
예배를 같이 드리고 또 법률이라든가 기타 상담 미용 봉사하는 사람들 해서 많은 우리 한인들이
이 지역사회 인종화합이나 빈민 구제에 저희 단체를 통해서 많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최상진 씨는 미국사회에서 한인들도 점차 봉사자로서의 자부심을 느낀다며 미국 주류사회에서
더욱더 많은 활동을 위한 한인들의 역량도 강조했다.

: 우리 한인 이민자들도 나만 행복하게 살 것이 아니라 가난한 이웃들을 돕자고 하는 범위들을
넓혀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직접 와서 봉사하는 개인이나 교회 사회단체도 많이 생겼습니다.
저에게 그런 것이 큰 보람이라고 생각됩니다. 지금은 우리 한인들이 많은 활동을 통해서 이제는
지역사회에 주역이 돼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은 어느 때는 아직도 부족함이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오늘 같은 추수감사절을 보면 아직도 굶주리고 소외된 영혼들을 돌봐야 될 손길이
많은데 아직도 부족한 것 많이 있고 또 이 지역사회 속에서도 더 많은 한인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속에서 리더들이 나와서 주류사회에 더 들어오려면 우리 한인들이 우리 이웃을 돌보는
일에 앞장서야 될 거라고 생각됩니다.

추수감사절 주간인데 아침부터 어떤 봉사를 하고 있는지 물어봤다. 한인들의 값진 봉사가
노숙자들을 기쁘게 한다고 말한다.

: 미국에서 추수감사절은 큰 명절 중의 하나 입니다. 정말 모든 가족이 다 고향에 돌아가고
친척들 이웃들을 만나는 그러한 시간인데 우리 노숙자들이 집에서 쫓겨나고 갈 곳이 없고
친척이 없어 그래서 아침식사도 못하는 그런 노숙자들이 이 공원에 많이 깔렸습니다.
만 5천여 명이 DC에 있어 이 불쌍한 사람들을 이 명절에 도와야 되는데 손길이 부족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아침 점심 저녁을 위해 한인봉사자들과 터키 음식을 만들고 또 따끈한
수프를 만들고 또 추운 겨울이 오니까. 양말 모자 장갑 등의 기증 물품을 받아서 나눠주는
행사들이 있습니다. 얼마나 흐뭇하고 좋은 지 모릅니다.

최상진 씨가 평화나눔공동체를 운영하면서 얻는 보람은 지금부터라고 말한다. 평화나눔공동체에
참여해 변화되어 함께 일하는 노숙자들 때문에 이 봉사가 더욱 아름답고 값지다고 전한다.

: 점점 시간이 흘러가면서 저들이 자신이 누구인지 저 목사만큼은 우리가 신뢰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저들이 서서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마약을 파는 사람들도 제가
거리를 지나가면 마약을 팔다 숨겼습니다. 밤에도 그랬고요. 이 마약 지역에 마약을 판매하는데
방해하면 총으로 쏴서 죽이거든요. 저도 그런 위험성이 많았지만, 저들이 나를 보고 존경할 줄
안다고 하는 변화 과정에서 너무 감사했고요. 그러다 보니까 노숙자들이 점점 변해서 정말
18년 동안 마약과 노숙자 술 중독자로서 자기의 인생을 버렸던 형제가 우리 평화나눔공동체센터에
와서 대화하고 같이 예배를 드리면서 변화를 받아서 완전히 새 사람이 된 그런 이야기도 있었고,
그다음에 또 마약 팔다가 감옥에 9년째 있다가 나와서 처음 우리 평화나눔공동체에 참여해
변화를 받아 완전히 새 사람이 돼서 저와 함께 이 가난한 사람 돕는 일을 5년 동안 했던 파커
선교사님 이야기도 있고요. 너무나 많은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래서 책으로 써도 넘칠 정도로
많은 이야기가 여기에 있는데, 그러한 보람들을 생각할 때 저는 힘들었던 세월을 다 잊을 수
있게 됩니다.

평화나눔공동체의 장기적인 계획은 무엇일까? 최상진 씨로부터 들어보자.

: 저희 평화나눔공동체는 현재 워싱턴 본부를 포함해서 여기서 50분 거리의 볼티모어 지부가
있고요. 2시간 올라가면 버지니아 리치먼드라는 곳에 지부가 있습니다. 그다음에 애틀란타
조지아에 많은 흑인이 있는데 거기에도 지부가 있습니다. 윌링턴 델라웨러에 지부를
독립시켰습니다. 내년에는 뉴욕 맨해튼에 지부가 생깁니다. 뉴욕에는 유엔 빌딩본부
맞은편에다가 사무실을 얻게 됩니다. 이렇듯 많은 도시에서 우리가 필요합니다. 자체적으로
우리에게 훈련받고 봉사를 하는 다른 지역도 많습니다. 테네시 매사추세츠 등 많은 지역에서
특히 한인 2세들과 저희가 많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뉴욕에 세우는 계획은 여기 와서
봉사하는 젊은이들을 유엔과도 연계시켜서 진정한 평화를 심고 그 평화를 지역사회에 다인종
다문화가 있는 그러한 곳에 인종화합을 심는 선교를 봉사활동을 계속해서 넓혀가는 것이
저희의 앞으로의 계획입니다.

최상진 씨는 슬럼가 피아니스트 빌리 책을 펴냈다. 어떤 내용을 담았을까 함께 들어보자!

: 18년 동안 노숙생활을 하다가 새 사람이 됐다고 하는 사람이 바로 빌리입니다. 젊었을 때
워싱턴에서 잘 나가는 재즈 피아니스트였습니다. 그래서 그 형제가 재즈로 직장 생활을 했던
카페도 우리에게 구경시키고 했는데, 이 책은 그간 13년 동안 준비하고 사역하면서 겪었던
특히 변화 받았던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얼마나 눈물 어린 이야기인지 모릅니다. 저희가
사역하면서 저희 노숙자 교인 중에 20명이 총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수가 병으로
죽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변화됐던 사람들 또 노숙자 생활을 하면서 새 사람이 되어서 아름다운
봉사활동을 하는 사람 또 노숙자들 결혼 주례를 서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 에이즈나 아픔으로
말미암아 마지막까지 저와 함께 사랑을 나누다 세상을 떠난 사람, 앨리스라고 하는 딸이 임신한 채
크리스마스 이브에 남자 친구에게 총에 맞아 죽고 자기는 또 청소년 시기에 성폭행을 당해서
정신적으로 인생을 다 포기해야 했던 자매 이야기, 그러나 저희 센터를 통해서 변화를 받아서
지금은 새 사람이 되어서 행복하게 믿음생활 잘 하는 모습들, 너무나 아름다운 믿음 안에서의
감동적인 이야기들을 많이 담고 있습니다.

최상진 씨는 북한에 있는 동포들에게도 관심이 있다며 북한에 있는 동포들을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 돕고 있다고 말한다.

: 제가 속해있는 메노 나이트, 아미쉬 교단에는 거기 목사 중에 하나인데요. 이쪽 펜실베니아에
많이 농사짓는 사람들이 수만 톤의 농산물을 북한동포에게 보내고 있고, 제가 아는 많은 사람이
북한 중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진정으로 우리들의 동포이기 때문에 저는 늘
그런 마음을 갖습니다. 그러나 이 방송을 듣는 북한동포들은 이러한 자부심을 느껴야 합니다.
비록 남과 북이 나눠어 있지만은 우리 한민족들이 저 가난한 빈민가 불쌍한 빈민가 전쟁지역에
가서 평화를 심고 사랑을 심고 저들에게 기쁨을 주고 있다는 게 곧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북녘에
계신 여러분이나 저희와 한 핏줄이기 때문에 같이 기뻐하고 위로받아야 될 것 같습니다. 비록
우리의 삶이 힘들다 할지라도 여기에 있는 노숙자처럼 정말 가난하고 굶주리고 힘든다 할지라고
한번 희망을 품고 한번 꿈을 갖고 인내하면은 노숙자가 변해서 사회에 기여하 듯 우리에게 큰
아름다운 축복의 날이 올 것입니다. 이번 추수감사절 미국의 명절이지만 우리 한국의 북녘땅에
동포들도 함께 마음을 모아서 서로 기도해 주고 위로하는 시간 됐으면 합니다.

최상진 씨는 세계의 흩어져 사는 한민족들이 각자 살고 있는 곳에서 희망을 일궈 나가자고
말합니다.

: 저는 세미나나 강연회 가서 이런 이야기를 가끔 합니다. 우리 한민족이 얼마나 중요한가.
특히 디아스포라라고 하지 않습니까. 어쩌면 하나님께서 우리 한민족을 세상에 퍼트리신 이유는
무엇일까. 저는 비근한 예로 미국의 우리 한인들을 이곳에 정착하게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
이 하나만으로도 고민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이곳에 해외에 나가
있다라고 하는 것은 바로 해외에 나가 있는 타인종들을 섬기고 그들과 함께 하나가 되어서
동아리가 되어서 그 지역사회 국제사회를 함께 이어나가라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한국사람들이 해외에 나가서 한국사람들만 사랑한다면은 그것은 바람직한 민족성이
아니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전 세계의흐터져 있는 한민족들이 우리의 본연의 자세가 무엇인가.
그것은 나만 잘 살아서 주류사회로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든 우리와 같이 연약한 타인종들과 함께
동아리를 이뤄서 공동체를 통해서 이 사회를 발전시켜 나가는 기수의 역할이라고 저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이제는 한인들의 영역을 초월해서 내 집 밖에 있는 내 사회 밖에 있는 이웃들에게 정말
사랑과 평화를 심을 수 있는 그러한 마음들이 어쩌면 21세기 모든 세계가 한민족들에게 기대하는
그런 꿈들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자유아시아방송의 세계의 한국인 오늘은 워싱턴 DC에서 도시 빈민 자를 섬기는 평화나눔공동체의
최상진 목사를 찾아봤습니다. 지금까지RFA 자유아시아방송 이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