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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한국인]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김윤희 양 "세계적 연주자가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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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13

‘앞으로 얼마나 더 발전할 것인지 가늠하기가 어렵다.’ ‘자만하지 않고 정진한다면 제2의 정경화, 사라 장 같은 세계적인 연주가로 성장할 수 있다고 본다.’ ‘연주에 능한 음악가는 많지만, 관중을 이처럼 사로잡는 카리스마가 있는 연주가는 흔치 않다.’ 지난 2009년 7월,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에 재학 중인 김윤희 양이 20대 이하 솔리스트로는 최초로 한국의 KBS 교향악단 정기연주회에서 협연 후 음악인들이 이구동성으로 신예 연주가를 극찬했다는 내용이다. 지금 세계 언론이 김윤희 양을 ‘신동 바이올리니스트’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로 소개하고 있어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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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희 양(왼쪽)과 어머니 유소방 씨.
자유아시아방송의 세계의 한국인 오늘은 오스트리아 교포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김윤희 양의 음악 세계를 찾아가 본다.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김윤희 양, 그녀는 제주도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3살까지 자랐다. 아름다운 자연의 소리를 마음에 담고 음악의 천재에 길에 들어서게 된 것은 바로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3살까지 각종 음악회를 다니면서 음악을 듣는 귀가 열리면서 3살짜리 개구쟁이는 엄마에게 바이올린을 사 달라고 떼를 쓰게 된다. 그리고 3살 되는 생일날 바이올린을 선물로 받았다. 김윤희 양의 이야기다.

김윤희: 제주도에서는 클래식 연주회를 접하기가 쉽지 않잖아요. 그런데 항상 엄마가 어떻게 해서든 클래식 음악을 들려주기 위해서 연주회에 데려다 주셨는데 거기서 한번은 오케스트라 연주회 때 바이올린이 제 눈에 띄더라고요. 그 후부터 제가 엄마한테 바이올린을 사 달라고 졸랐어요. 제가 3살 되는 생일날 바이올린을 선물로 사주셔서 그때부터 바이올린과 인연이 시작되었어요.

바이올린을 시작한 김윤희 양의 성장이야기를 들어보자! 김 양이 바이올린 사랑은 지극했나 보다. 비엔나를 여행 중에 심지어 공항에서 기다리는 시간, 아기들의 기저귀를 갈아주는 방을 찾아 연습했다고 한다. 윤희양은 어린 나이지만, 성숙한 연주에 감복한 이모가 비엔나의 유명한 교수의 오디션을 받도록 주선해 주었다. 그리고 4살인 김윤희의 연주를 들은 폴라첵 교수는 비엔나 국립음대의 입학을 권유했고, 바로 최연소 국립음대 학생으로 입학시험을 치르고 비엔나에서의 유학생활을 시작한다.

김윤희: 바이올린을 3살 때 시작했고, 4살 때 오스트리아에서 성악가로 활동하고 있는 이모를 여름휴가에 방문했어요. 그때 당시 바이올린을 배운지 1년밖에 안 됐거든요. 그런데 제가 어렸을 때부터 자신감은 넘쳤던 것 같아요. 지금도 그렇고, 이모에게 1년동안 배운 바이올린 실력을 보여줬는데, 이모가 보고 여기 계시는 유명한 비엔나 국립음대 폴라첵(Polatsched) 교수에게 오디션을 봐라! 그래서 이모가 오디션을 주선해 줬어요. 저는 그때 당시에 제가 왜 연주를 해야 되고 누구 앞에서 연주하는 것 조차를 몰랐어요. 그냥 엄마가 하는데로만 하면 된다고 하셔서 연주가 끝나니까? 독일어로 뭐라고 해 주셨는데 엄마는 얼굴이 굳은 거예요. 나와서 엄마 왜 그래 하니까! 어쩌면 우리가 비엔나에 있어야 할 지 모른다고 그러시는 거예요. 그때부터 저희 유학생활이 시작된 거지요.

엄마인 유소방 씨에게 최연소 기록경신의 이야기를 여쭤보았다. 유 씨는 어디를 가나 최연소의 명칭이 따라 다닌다고 했다. 그리고 최연소 KBS 교향악단과의 협연의 이야기는 정말 아름답다.

유소방: 윤희가 3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시작하고 4살 때 우연히 휴가차 비엔나를 오게 됐거든요. 그래서 윤희가 4살에 최연소로 비엔나 국립 음대를 입학하게 되었고요. 어딜 가든지 그때부터 최연소라는 명칭이 항상 붙어 다녔어요. 음악을 시작하면서 벨기에 왕립 오케스트라상임 지휘자 추천으로 많은 연주 무대에 서게 되었는데요. 그래서 13세에 노르웨이 트론하임 왕립 오케스트라 정기 공연에 최연소로 협연을 했고요, 14세에 스페인 국립 방송 오케스트라 최연소 협연, 15세에 독일 스튜트가르트 필하모니 최연소 협연, 16세에 몬테카를로 필하모니 최연소 협연을 했고, 17세에 KBS 교향악단과 정기공연을 최연소로 협연했어요. 이렇듯 정기 공연은 세계적인 솔리스트 외에는 서기가 어려운 무대거든요. 그런데 윤희가 13살 때부터 이런 무대를 서기 시작하면서 항상 최연소의 나이에 세계적인 솔리스트들이 초청되는 무대에서 연주할 귀한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김윤희 양은 바이올린을 시작한 이후 하루도 빠짐없이 연습하고 있단다. 하루 10시간 이상 할 때도 있지만 여행 중에는 공항 화장실도 연습장이었다. 한번은 프랑크푸르트 공항 Baby room에서 연습하는데 경찰이 왔다. 연주회가 있어 준비해야 된다고 했더니. 그냥 웃으면서 간 적도 있으며, 뮌헨 공항에서는 베이비 룸에서 연습하고 있는데 공항 관계자가 모든 사람이 들을 수 있도록 로비에서 연습해 줄 수 없느냐고 묻기도 했단다. 음악의 나라 유럽이니까 가능한 일이겠죠! 라고 당시를 설명해 준다.

김윤희: 연습이 정해진 시간이 없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한 곡을 준비하기 위해서 시간제한이 없어요. 연습을 해보면 벌써 밤이에요. 저는 어디 여행을 가든 비행기로 공연을 가도 그럴 경우 어릴 때부터 공항에 있는 Baby room 있잖아요. 어렸을 때는 엄마랑 둘이서 그곳에 들어가서 연습을 했는데 그때 당시는 제가 너무 창피했었어요. 그곳(Baby room)에서 연습 할 때마다 가끔은 경찰이 들어올 때도 있었고, 사람들이 궁금해하니까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좋은 추억이었던 것 같아요. 한번은 제가 연습을 하는데 유럽의 저보다 나이가 많은 언니 오빠 두분이 들어와서 혹시 우리 같이 연주해보지 않겠느냐고 물어보기까지 했어요. 그때 저는 당황해서 말이 안 나오더라고요.

김윤희 양은 시벨리우스의 작품을 유독 좋아한다. 윤희 양은 시벨리우스를 연주할 때 부드럽고 잔잔한 바다를 표현하기도 하고 성난 파도를 열정적으로 표현하기도 한단다. 시벨리우스는 핀란드의 대표적인 작곡가로서 서정 시인이기도 하지만 핀란드는 바다가 있고 그 느낌이 윤희 양이 자란 제주의 어린 시절을 생각하게 되어 고향의 느낌으로 시벨리우스 음악에 깊게 빠져들곤 한다.

김윤희: 시벨리우스는 저한테 이제 영화를 보면 주제 음악이 있잖아요. 시벨리우스는 저에게 기쁜 일이나 슬픈 일이 있을 때 항상 떠올려요. 그래서 제 인생의 OST(주제음악) 그런 곡이예요. 시벨리우스를 들으면 거대한 파도소리 곡이 너무나 열정적이에요.

김윤희 양의 어머니 유소방 씨는 윤희가 천재 바이올리니스트의 애칭과 함께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어 기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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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희 양이 한 오케스트라 협연를 하고 있다.
유소방: 그동안 윤희 이름 앞에는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라는 애칭과 항상 최연소라는 타이틀이 연주 때마다 붙어 다녔습니다. 특히 제가 기억하는 평론 중의 하나는 몬테카를로 필하모니와 16살 때 협연을 했을 때, 바로 정기공연 연주였거든요. 무대가 사람들로 꽉 차고 티겟이 매진되는 연주였는데, 연주가 끝나고 다음날, 호텔 로비에서 몬테카를로의 가장 큰 신문인 Niece Martin 신문이 있는데 그 신문을 잡는 순간 어디서 많이 본듯한 얼굴이 1면에 있는 거예요. 김윤희라고 해 가지고, 센세이션(큰 화제) 한 연주라고 1면에 기사로 실리면서 그 기사내용이 아시아인들이 기계적인 음악을 하는데 그런 기계적인 음악을 한다는 아시아인들의 음악관을 바꿔버린, 선입견을 바꿔버린 음악가, 센세이션 하고, 내일의 Heroin 그런 대단한 비평들이 쏟아져 나왔어요. 그리고 그때 당시에 프랑스의 최고 디자이너 이브셍로랑이 별세한 날로 사실이 1면 기사로 나왔어야 하는데, 윤희 기사가 Top 1면 기사로 나오면서 바꿨는데 그때 정말 저한테는 엄마로서 굉장히 자랑스러운 순간이었고, 그때 그 연주로 인해서 프랑스 TV(TV France 2)는 윤희의 8세 때에 출연한 CNN 방송을 인용하면서 현재 윤희의 연주하는 모습과 함께 윤희가 하는 연주는 세계 30대 불가사의로 선정되는 그런 영광을 안게 되었습니다. 더는 자랑하면 고슴도치 엄마가 되겠지요.

김윤희 양은 19세가 되는 해에 비엔나 국립음대를 졸업하게 된다. 또한, 최연소자 졸업생이다. 그리고 나서 석사, 박사를 하면서 세계적인 연주인이 됨과 동시에 많은 것을 배우는 음악가, 현명한 음악가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나 김윤희 양의 가장 큰 꿈은 후배 양성이다.

김윤희: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가 되는게 저의 목표고 꿈이에요. 그것도 중요하긴 하지만 저는 인간적인 음악가가 되고 싶어요. 당연히 이제 제 꿈을 이루고 언제가 저도 나이가 들면 훌륭한 교수가 되어서 제가 가지고 있는 재능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고 싶어요.

폴라첵 교수는 윤희 양의 잠재적인 재능을 발견하고 오늘의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의 징검다리를 만들어 주었고, 로만 코프만이라는 세계적인 우크라이나 지휘자는 윤희와 연주 하고 나서"You are my daughter." 라고 했단다. 그만큼 러시아 음악의 깊은 감동을 줬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래서 그분은 윤희에게는 두 번째 엄마라고 할 정도로 많은 영감을 주신 분이란다. 그러나 윤희 양은 자신의 음악 세계에서 가장 큰 영감을 준 사람은 엄마라고 말한다.

김윤희: 저에게 영감을 제일 많이 준 사람은 우리 엄마인 것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항상 엄마는 항상 제 곁에 있어서 저랑 연습하면서 뭐가 틀리고 뭐가 좋은 건가를 지적해 주셨어요. 그러면서 당연히 엄마와도 많이 다투고 그랬는데 그게 저의 음악에 많은 영향을 줬어요. 엄마랑 지금까지 보낸 시간이 음악에다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을 엄마가 저에게 주셨어요. 그래서 제 생각에는 지금까지도 저의 ROLE 모델인 것 같아요.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로 성장하기까지 윤희 양에게 롤 모델, 즉 본보기가 되는 엄마는 그의 음악세계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물어봤다. 윤희의 레슨에 빠져 본 적이 없다고 회고한다.

유소방: 한국 엄마들의 성원은 대단하지요. 저뿐만이 아니고요. 요즘 세계 음악 무대를 가면은 우리나라의 음악 하는 학생이나 성인들까지 정말 정상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윤희가 바이올린은 3살에 시작하면서부터 16세가 될 때까지 윤희의 레슨 시간, 연습 시간에 제가 빠져 본 적이 없어요. 윤희가 10시간을 연습하면 저도 10시간을 연습하는 게 되었죠. 그래서 윤희 교수님이 항상 농담처럼 저한테 너는 정말 거의 음악 교수급이라고 농담을 던지곤 하세요. 그리고 저는 윤희한테 항상 최고의 귀를 만들기 위해서 항상 최고의 연주를 듣도록 노력을 했고요. 그리고 음악의 도시 비엔나에 윤희가 4살 때 오면서 최고의 음악을 들려줄 수 있는 무대를 접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장점 중의 하나였던 것 같아요. 윤희는 연습할 때 항상 제가 있었기 때문에 제가 고정된 관객이 있었던 거지요. 관객이 보고 있다는 게 연습을 10시간 한다는 것보다 사람들에게 들려준다는 게 중요하거든요. 그런 구실을 성실히 하려고 노력했던 같습니다.

김윤희 양의 학창시절 이야기를 엄마에게서 들어보자! 시험 때 밤을 세며 공부할 때 참으로 안타까웠다고 유소방 씨는 말한다.

유소방: 윤희가 어려서부터 연주여행이 굉장히 많았고요. 하루에 7시간 10시간 하는 연습으로 인해서 학교생활을 충실히 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었어요. 하지만, 성격적으로 모든 일에 열심히 최선을 다하고자 노력을 했고, 특히 시험 때 밤을 세우며 공부를 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밤을 세며 공부하는 것 좋은 성적을 내는 것 좋았지만, 저는 모든 것을 다 잘하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음악 하나 하는 것만도 어렵지 않아요. 밤을 세우며 공부하고 있는 윤희한테 그렇게까지 안해도 된다고 윤희와 다퉜어요. 그런데 윤희는 학교에서 하는 것은 최고이고 싶다고 해서 그런 데서 의견 충돌이 생기곤 했지만 그렇게 열심히 하려는 윤희의 마음을 이해 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걸 다 열심히 하려고 하려는 것에서 자신이 겪어야 하는 어린 세계를 즐기지 못하는 것에 대해 가슴이 아팠던 것 같아요. 그런데 굉장히 열심히 했고, 최고가 되기를 원했고, 그래서 그런 길로 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엄마 유소방 씨에게 제주도 고향 이야기를 물어봤다. 제주도 여인의 강인함이 윤희를 무장 시킨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유소방: 고향이 제주도이거든요. 제주도에 살면서 자연이 아름답고 우리가 조금만 걸어나가면 바다를 접할 수 있는 그런 자연환경이었거든요. 그런데 살면서 윤희가 음악의 영감이랄까 그런 것을 많이 얻은 것 같아요. 그래서 윤희가 바다가 있는 제주도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항상 생선 매운탕 아니면 뭐 토속적인 음식을 굉장히 좋아해요. 우리가 어디를 가나 비엔나에서 14년을 살고 있지만, 제주에서 태어났고 거기서 자랐던 생활을 잊지 못하고 굉장히 강한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잘 알다시피 제주에는 여자가 많고, 여자들이 강하지 않아요. (너무 세서 매력은 없지만---)하지만 제주 여인의 강함으로써 윤희가 무장했기에 유럽 무대에서도 꿋꿋하게 열정적인 연주를 하면서,유럽인들에게 기죽지 않고 그 사람들의 음악인 클래식을 연주하면서 아주 자랑스럽게 활동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유소방 씨가 세계 한국인에게 들려주는 음악교육의 교훈이다.

유소방: 저는 저의 딸이 세계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기를 원해요. 하지만, 마음으로 바라지만, 애들에게 있어서 음악적인 스트레스를 준다거나 아니면은 너무 억지로 한다면은 좋은 음악이 나오지 않을 것 같아요. 자녀가 음악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요. 음악회를 갈 수 있도록 해 준다든지 엄마가 현명하게 음악회를 간다든지 아니면 음악에 필요한 서적을 사 준다든지 그런 것을 자꾸 접하면서 마음속으로 음악이 나올 수 있도록 유도를 해 주는 게 음악을 하는 우리 음악도들에게 하고 싶을 말이에요. 물론 음악에 맞지 않은 자녀에게 음악교육을 한다고 해서 음악인이 될 수 없거든요. 우리 엄마들이 그것 배우는 것이 음악을 잘하는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현명한 방안 인 것 같습니다.

김윤희 양은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이 대단하다.

저는 정말 한국인이라는 자체가 너무 좋아요.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태어난 것도 좋고요.

김윤희 양은 이제 8월 중순에 스페인 페스티발(축제)에서 연주회를 갖게 되고, 10월에는 슬로바키아 필 하모니와 협연도 준비하고 있다. 김윤희 양은 같은 곡을 여러 차례 연주할 때마다 새로운 스토리(이야기)로 생각해 연주에 몰입한다고 들려준다. 자랑스러운 한인의 딸로서 세계 무대에서 더 큰 꿈이 이뤄지기를 바란다.

자유아시아방송의 세계의 한국인 오늘은 오스트리아 교포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김윤희 양의 음악세계를 찾아가 봤다. 지금까지 세계의 한국인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