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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한국인

[세계의 한국인] 워싱턴 가야금 보급회 정소연 대표

2010-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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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정소연 씨

2009년 11월 미국 워싱턴 DC 케네디센터 테레스 극장에서 열린 워싱턴 한국무용단의 창단 23주년 기념 공연에서 정소연 씨가 가야금을 연주하고 있다.

가야금은 한국의 전통 현악기이다. 삼국사기 기록에 보면, 가야금은 가야 가실왕의 명령을 받아 우륵이 만들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가야가 망한 후 우륵은 신라로 망명하여 가야금을 전파했다고 한다. 우리 전통 가야금은 정악 가야금과 산조가야금이라는 12 현이지만, 최근 들어 개량 가야금도 쓰이고 있다. 모든 줄이 안쪽에 얹혀 있어 음의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다. 가야금의 울림통은 오동나무이고 12개의 현은 명주실로 만든다.

가야금의 연주법은 정좌하여 오른편 무릎 위에 악기의 상단을 올려놓고 오른손의 집게 엄지 가운뎃손가락 등으로 밀고 뜯고 퉁기며 소리를 내고, 왼손은 안쪽 아랫부분의 줄을 누르거나 흔들어준다. 정말 가야금의 소리를 듣노라면 우리 선조의 지혜로움을 찾아보게 된다.

자유아시아방송의 세계의 한국인 오늘은 워싱톤 일원 동포들에게 가야금을 보급하는 ‘워싱턴 가야금 보급회’ 정소연 대표를 만나본다.

정소연 씨는 한국 대학에서 가야금을 전공한 30대 후반의 젊은 주부이다. 그녀가 가야금을 처음 대한 것은 고등학교 시절이라고 한다. 그것도 특별활동 시간에 배우기 시작한 가야금이 인연이 되어 결국 단국대학교에서 국악을 전공하게 된다. 본격적으로 가야금과 함께하게 된 것은 서울 중앙여자고등학교 때 박정희 선생님의 권유로 시작됐다고 한다. 가야금을 배우게 된 동기를 들어보자!

정소연
: 제가 가야금을 처음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인 17살부터 시작했거든요. 우리 학교에 특활시간에 음악 활동으로 전 학생에게 가야금을 가르치는 수업이 있었어요. 그래서 수업을 받게 됐는데 그때 처음으로 가야금을 배웠거든요. 그전에는 가야금을 전혀 몰랐거든요. 시작하는데 재미있고 좋아했었어요. 제가 잘 했나 봐요. 선생님께서 저를 불러서 전공하라고 권해주셨죠. 그때까지는 가야금을 전공하는지도 몰랐거든요. 어머니와 상의해서 가야금을 전공하게 됐는데 어머님은 저를 이해하시고 도와주셨는데, 아빠가 반대를 많이 하셨어요. 가야금을 전공한다는 걸 이해를 못 하셨어요. 처음에는 아빠한테 숨기고 선생님에게 지도를 받고, 전공한다는 생각에 연습도 했어요. 그게 대학을 가는 목적으로 하는 거였는데 아빠를 끝까지 속일 수가 없었잖아요. 나중에는 솔직하게 이야기했어요. 그래 가야금을 전공해서 대학을 가고 싶다고 처음에는 아빠의 반대가 심했는데 다행히 오래가지 않아 이해하셨어요. 나중에는 아빠가 더 많이 도와주셨어요. 지금은 국악에 관심도 많이 두시고 많이 도와주시지요.

정소연 씨가 가야금을 전공한 단국대학시절 많은 경연대회에 나갔지만 실패한 때가 많아 회의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대기만성이라고 대학 4학년 때 전국 가야금 대회에서 대상을 탔단다. 그녀는 그때는 정말 하늘을 날아갈 듯 기뻤다고 한다.

정소연
: 처음에는 진짜 뭣 모르고 시작했던 가야금인데 조금 시간이 지나 가야금에 대해 알고 나서부터는 무척 좋아했어요, 가야금 자체를, 국악 자체를, 그리고 음악 듣는 것도 좋아할 뿐더러 연주하는 것도 좋아했어요. 제가 대학교 때 가야금을 전공할 때는 이거 아닌 이상은 다른 것은 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가야금을 좋아했었어요. 그리고 대학 다닐 때에 경연대회의 기회가 많았어요. 우리 음악을 전공하는 학생들 대부분이 대회에 나가서 상을 받고 인정을 받는 것을 원해요. 그래서 저도 경험을 쌓으려고 많이 노력했는데 실패할 때가 많았어요. 실패할 때마다 가끔 회의도 오곤 했었어요. 마지막 대학 4년 때에 전국 가야금대회에 나갔는데 거기서 대상을 탄 거예요. 진짜 그때는 모든 것을 얻은 것 같고, 아 내가 가야금을 전공하는 것에 무엇인가 이뤘다는 생각을 하고 기분이 좋았지요. 그때가 가장 기분이 좋았던 것 같아요.

정소연 씨의 가야금 사랑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가야금을 연주하면 마음이 편하단다. 가야금을 연습하노라면 모든 잡념도 잊을 수 있단다.

정소연: 가야금을 잘 모르시는 분들에게 설명하기가 어려운데 들어보시면 대개 마음으로 받아들이시는 분이 많거든요. 가야금뿐 아니라 국악 자체가 들어서 마음이 편해지고, 저는 더군다나 국악을 전공하고 가야금을 전공했으니까? 가야금을 연주할 때 연습할 때 그런 때가 마음이 편해져요. 지금보다 옛날에 제가 학교 다니고 어렸을 때 가야금을 막 접하고 시작했을 때 그 열정은 지금보다는 더 많았지요. 가야금에 열중할 때에는 모든 잡념을 잊어버릴 수 있어 좋아요.

정소연 씨는 6년 전에 미국에 왔단다. 미국 온 이후는 가야금과 가까이하기가 퍽 어려웠다고 한다. 그러나 하늘이 도왔던가 가야금을 연주도 하고 제자 양성도 할 기회가 왔단다. 그녀는 워싱턴 무용학원의 김은수 단장의 덕분이라고 말한다.

정소연: 미국에 제가 6년 전에 결혼하면서 왔어요. 처음에 미국에 와서는 연주나 가야금에 관한 거는 안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살았는데 제가 살아오면서 계속해 왔던 건데 마음처럼 포기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가끔 인터넷을 보면서 다른 친구들의 연주를 접하게 될 때 속상하고 나도 여기서 연주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그러나 저에게 기회가 없었어요. 여기에는 아는 분들이 없었으니까? 그러다가 지금 제가 연주하고 강습할 기회를 주신 워싱턴 한국무용단의 김은수 단장님을 만나게 됐어요. 그 이후 저에게 연주할 기회를 주시고 다시 가야금을 할 기회를 주셨지요.

정소연 씨는 미국에서 꿈에만 상상하던 케네디 센테에서의 연주의 기회를 얻어 행복했단다.

정소연: 제가 가야금을 연주한다는 소문이 전해지면서 연주문의가 가끔 들어 왔었어요. 처음에는 한인회행사에서 연주도 하곤 했지만 제가 원하는 것은 진짜 무대에서 공연이었어요. 처음에는 많지 않았어요. 그런데 재작년에 워싱턴 무용학원의 발표회를 하는데 케네디센터에서 연주했었어요. 미국에 와 살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연주였거든요. 케네디센터에서 연주하는 것 자체가 저에게는 영광스러웠거든요. 연주자로서 그 무대에 선다는 것 자체가 힘든데 그 기회가 있어서 참 좋았어요.

정소연 씨는 미국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가야금을 연주하고 싶은 때는 인터넷 매체를 통해 친구들의 공연소식으로 위안을 삼았지만, 직접 연주도 하고 교민들에게 가야금을 가르치리라고 상상도 못했단다. 그녀가 꿈꾸던 가야금을 가르칠 수 있는 학생들이 생겨 매우 기쁘단다. 정소연: 미국에 와서 가야금을 교민들에게 가르칠 거라는 것을 상상을 못했어요. 지금 이렇게 가야금을 지도를 시작하고 발전이 되니까 욕심이 생기는 거예요. 워싱턴 버지니아 지역에 가야금 단체가 없거든요. 우리가 연주를 보려면은 한국에서 선생님들이나 단체를 초청하지 않은 한 연주를 들을수 있는 기회가 없거든요. 제 욕심에서는 조금 더 많이 학생과 주부들을 가르쳐서 어느 단계까지 올라서 가야금 연주단을 만들고 싶은 것이 현재의 목표입니다.

정소연 씨가 가야금을 지도하면서 70이 넘으신 할머니가 열정으로 배우시는 게 감사하다고 이야기한다.

정소연: 강습생들의 연령층이 다양한데 가장 나이가 많은 분은 70이 넘으셨어요. 70이 넘은 할머니이신데 가야금을 오래전에 배우셨데요. 저를 알고 배우시려고 메릴랜드에서 일부러 오시는 분이 계세요. 그리고 젊은 학생이 많아요. 그래서 희망을 거는 게 젊은 학생들은 대개 빨리 받아들이고 지금 젊은 학생들이 가야금을 좋아한다는 자체로서 기대를 많이 하고 있어요. 주부들도 배우러 오세요. 그런데 연세가 가장 높으신 분이 가장 열심히 하세요.

국악에서 말하는 현악기는 가야금인데 가야금의 아름다운 소리를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고 말한다. 직접 들어보는 것만이 그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고 설명해준다.

정소연: 가야금은 줄을 뜯고 띵겨서 내는 소리가 아름답거든요. 말로 표현할 수가 없을 것 같아요. 연주를 직접 들어보시고 소리를 직접 들어보지 않고서는 정말 아름답지요.

정소연 씨의 목표는 앞으로 제자들이 잘 배워 발표회를 갖는 게 가장 큰 목표다. 다양한 가야금 곡을 연주할 날을 기약하고 있다.

정소연: 제가 가르치는 분들을 위주로 해서 가야금 3중주, 2중주를 만들어서 가야금으로 연주할 수 있는 곡들이 많거든요. 그래서 앞으로 발표회를 갖는 게 저의 목표예요. 가장 큰 꿈은 케네디센터에서 연주하는 것인데 아주 힘들 것 같고 처음에는 저는 욕심은 내고 싶지 않아요. 저에게 연주할 수 있는 장소를 준다면 교회도 좋고 무대만 마련해 준다면 그렇게 작게 시작해서 여건이 형성되면 언제든지 연주하고 싶지요.

자유아시아방송의 세계의 한국인 오늘은 워싱턴 일원 동포들에게 가야금을 보급하는 ‘워싱턴 가야금 보급회’ 정소연 대표를 만나봤다. 지금까지 세계의 한국인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