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이현기 leeh@rf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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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05
한국 무용은 한국의 전통문화를 바탕으로 하여 만들어진 모든 종류의 무용이다. 한국무용은 크게 궁중무용, 민속무용,•가면무용•의식 무용•창작무용 등으로 나눌 수 있다. 한국무용의 원초적 형태는 국가적 의식 끝에 있는 잔치의 흥이 어깨에서 구체화하여, 율동적이게 온몸으로 퍼져 멋으로 승화한 것으로 집약할 수 있다. 이러한 한국 고유의 전통 무용에 세계인들도 큰 관심을 두고 있다. 그래서 한인들의 잔치나 각종 공연에서 펼쳐지는 무용에 힘찬 박수를 보내는 것이다.
자유아시아방송의 세계의 한국인 오늘은 미국 워싱턴 DC 일원에서 한국 전통의 무용과 악기 등을 보급하는 PEACE MISSION DANCE GROUP의 박정숙 단장의 삶의 현장을 찾아가본다. 박 단장은 한국 숙명여대 체육교육학과에서 전통 무용을 전공한 무용인으로 미국에서 한국의 전통문화를 보급하는 파수꾼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어 주위의 칭송을 받고 있다. 박정숙 씨가 무용을 시작한 것은 어린 시절부터라고 한다. 초등학교 시절 무용공연에 참가한 것이 바로 오늘의 미국 속에 한국무용을 전수하는 전수자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할 것이다.
박정숙: 제가 어떻게 시작했나 기억해보니까? 초등학교 때부터 학교나 교회에서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무용 공연에 참여했습니다. 제가 스스로 하고 싶은 것도 있었지만, 선생님들이 많이 세워 주셨던 것 같습니다.
박정숙 씨의 무용 세계가 있기까지는 부모님의 도움이 컸다고 한다. 그리고 무용을 참 즐겼다고 들려준다.
박정숙: 무용공연에 많은 관심을 두고 많이 보아왔고, 청소년이 되면서 내 진로를 생각할 때에, 무엇을 할까 했을 때에 참 무용을 잘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부모님의 도우심으로 무용을 전공할 수 있게 되었고, 또 대학교에서 한국무용, 재즈, 외국무용을 많이 접하면서 현대 무용에도 깊은 관심을 나름대로 두고 있었고, 현대 무용으로 좋은 무용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많았지만, 그 당시에 설무리라는 단체를 만들어 한국 창작무용을 시작하면서 한국무용 쪽으로 더 많이 기울어지게 됐습니다.
박정숙 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무용교사로 있으면서 지도 상을 받는가 하면 각종 그룹전과 개인 무용발표회도 했다.
박정숙: 대학을 졸업하면서 10년간 중, 고등학교에서 무용 교사로 활동하고 특히 무용부를 지도 잘해서 서울특별시 상도 받고, 학교에서는 우수교사상도 받았습니다. 그리고 설무리 단체로는 크게 대한민국 무용제, 서울무용제전 설무리 발표회 등 다수 참여하고 그러던 중 2001년에는 개인 무용발표인 박정숙의 춤을 국립국악원에서 하게 되었어요.
박정숙 씨는 1990년에 남편을 따라 미국에 오게 되면서 모든 활동을 중단했다. 7년 후에 다시 한국에 돌아가 한국선교무용단을 창단해 공연활동을 하게 된다.
박정숙: 7년 후, 남편이 한국에 다시 돌아가게 되었을 때, 다시 무용할 기회가 있었고, 선후배와 한국 선교 무용단을 창단하여 여러 가지 공연과 선교 활동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무용을 예술적으로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참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그것을 이제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기쁨이 되어보고, 나의 삶의 보람이 되고 이 사회 공동체에 어떤 유익이 되는 것이 무엇일까? 더 깊이 생각해서 제가 잘할 수 있는 춤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올리고 사회의 유익이 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한 20년 전부터는 선교무용가로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선후배들과 한국선교무용단을 창단해 세계 곳곳의 많은 선교 무용하러 다녔습니다.
박정숙 씨는 2001년에 다시 미국에 오게 되자 자신이 가진 예술적인 감각을 이웃과 함께할 것을 다짐하게 된다. 그리고 그 누구도 가기 싫어하는 워싱턴 DC의 빈민 지역에서 흑인 어린이들에게 한국전통의 부채춤과 장구를 가르치고 아리랑 노래를 함께 부르며 기쁨을 나눴는가 하면 마약중독자들에게도 같이 장구를 치며 희망을 심어준 이야기는 예사롭지가 않다. 참 장한 한인의 여인이다.
박정숙: DC에서 빈민구제사역을 하는 평화나눔공동체를 아는 목사님께서 소개해 주셔서 그곳에서 빈민 흑인 아이들을 가르쳐 달라는 요청을 받게 되어서 화요 무용교실을 만들어서 매주 화요일마다 (2007년까지) 활동했습니다. 흑인 아이들에게 부채춤, 소고 그리고 장구 등을 가르치고 아리랑 노래를 함께 부르며 기쁨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주말에는 흑인 형제님들 술 마약 중독자이지만 저와 같이 장구를 치며 많이 웃고 즐거워하고 기도도 같이해서 아주 유익한 시간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박정숙 씨의 사회봉사는 끝도 없다. 그녀는 한인입양아들에게 우리 장단 가르치기 평화선교무용단을 만들어 초 중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한국 전통문화를 전수하는가 하면 미국 속의 아시아문화를 소개하는 책임자로 활동하는 등 참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다. 박정숙 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박정숙: 미국 입양 가족들에게 북, 장구를 가르치고 입양한 한국 아이들에게 우리의 장단을 한국말로 가르치고 아직도 그룹으로 해마다 2번 정도 발표회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개인적으로 평화선교 무용단 (PEACE MISSION DANCE GROUP) 을 만들어 초중, 고등학생들로 구성되어 무용과 국악 악기를 가르쳐 많은 행사를 하게 됐습니다. 주로 아태행사, 울프트랩행사, 또 정부기관에서 원하는 행사에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미국교회, 성당, 한국교회 예배에 참여하여 아이들과 같이 공연을 많이 했습니다. 제가 하는 일 중의 하나가 루아(RUAH)라는 단체에 아시아문화감독이 되어서 그곳에서는 (AMERICAN, HISPANIC, KOREAN 등) 미국, 중남미, 한국 등 세 감독이 모여서 각자의 무용 그룹들에게 한국 것과 교환해서 가르치며 같이 발표회를 하고 MULTICULTURAL 즉 복합문화활동을 하는 단체입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도 그곳에 많이 참여해서 1년에 두 차례 정도 공연하고 있습니다. 청소년 국악단을 만들어서 워싱턴 성 앤드류 킴 한국성당에서 청소년들을 ‘한노리’라는 단체를 만들어 북과 장구로 가르쳐 많은 행사에 초청되어 많은 박수갈채를 받았습니다.
박정숙 씨는 5월 아태문화의 달에는 워싱턴 DC 시장이 주최하는 행사에 무용단으로 공연에 참가하고 미국에서 올해로 40년째 계속되고 있는데 WOLFTRAP 행사에 3년째 참여하고 있다. 박 씨는 미국에 사는 한인들은 우리의 전통을 잃고 싶지 않은 강한 민족의식을 가진 사람들이기에 신이 나서 이런 활동을 한다고 들려준다.
박정숙: WOLFTRAP 행사는 ‘세계어린이축제’라고해서 세계 각국문화를 이틀 동안 40여 개 공연을 하게 됩니다. 거기에 해마다 출연해서 한국의 전통문화인 부채춤과 북과 화관무와 어린이들의 춤을 보여주는 좋은 기회도 얻었습니다.
박정숙 씨가 꿈은 한이 없다. 앞으로 섬머캠프, 여름 야영을 통한 한국문화 보급의 기회를 넓히고 싶다고 한다. 박정숙: 제가 바라는 것 중의 하나는 2009년에 제1회 섬머캠프를 가졌습니다. 이 행사에서는 단소와 붓글씨, 무용, 북, 장구 태권도 종이접기 또 동양화 그리기 여러 가지 문화 프로그램으로했습니다. 앞으로 여름마다 해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여러 형태로 배워서 우리 문화를 후손들에게 이어 줄 수 있는 통로가 됐으면 좋겠고요.
박정숙 씨에게 우리 전통문화를 가르치면서 어떤 보람이 있느냐고 물었다. 동심의 어린 마음에 우리 전통악기로 기쁨을 줄 수 있어 기쁘다고 말한다.
박정숙: 주로 제가 가르치는 악기는 북과 장구인데요. 이 악기들은 타악기이기 때문에 치는 사람들로 하여금 기쁨을 느끼게 해줘요. 어떤 악기들은 슬픈 마음을 주는데 오히려 타악기들은 스트레스를 풀어주고 즐겁게 하고 기쁘게 하고 웃으면서 연주할 수 있는 악기들이에요. 그래서 외국사람들에게 장구를 치면서 우리 아이들이 같이 치면서 입양가족이나 흑인 아이들도 함께 우리 전통악기를 치면서 악기로 인해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아니라 악기로 인해서 연주하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기쁘고 즐거움을 나눌 수 있는 그런 장점이 있습니다.
박정숙 씨는 많은 청소년을 지도하면서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청소년들의 변화를 보면서 자긍심을 가진다고 이야기한다.
박정숙: 순간마다 그 느낌은 어떻게 설명할 수가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어떤 아이들은 부모님 강요로 배우는 아이들도 있어요. 그런 아이들이 억지로 공연에 나왔다가는 참 눈물도 많이 흘리고 특히 사춘기이고 남학생들이 저에게 말하기를 ‘선생님 이번에 너무 잘못해서 미안합니다. 제가 다음에는 정말 잘할 거예요. 정말 잘 배울 거라고 말하면서 감동하는 모습과 많은 외국인이 박수를 보내줄 때 우리 아이들의 얼굴에서의 그 기쁨은 돈으로도 살 수 없고 어떤 것으로도 살 수 없는 우리 아이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주는 바로 현장이지요. 바로 그런 데서 보람을 느낍니다.
박정숙 씨는 청소년들과 함께해 젊어지는 것 같아 아주 좋단다. 그리고 우리 전통으로 학생들에게 인성교육의 장을 만드는 것은 더없는 기쁨이 아닐 수 없다고 말한다.
박정숙: 사람들이 젊어 보인다고 그래요. 생각도 젊어지고 공부도 더 많이 해야 하고 아이들과 같은 눈높이로 살아야 하니까? 아주 감사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부모의 강요나 왜 배우는지를 몰라서 오는 아이들도 있는데 그 아이들과 끝없이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이 아이들에게 한국말로 한국 선생님만이 해줄 수 있는 격려와 존중해주고 사랑해주는 걸로 인해서 이 아이들이 참 많이 변하게 되고 제자가 되어요. 그냥 학생이 아니라 제자가 되는 깊은 관계로 옮겨가게 됩니다.
박정숙 씨는 우리 한인 청소년들에게 한인의 자긍심을 키워주자고 당부한다.
박정숙: 우리 자녀들에게 한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우리의 자긍심과 자존심을 잃지 않고 또한 자랑스러운 마음을 잃지 않고 떳떳하게 한 사람으로서 훌륭한 사회인으로 클 수 있는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시고, 그러기 위해서 우리의 말과 글을 열심히 가르치는 가운데 우리의 문화와 얼과 혼이 담겨 있는 노래와 춤을 통해서 우리 아이들에게 우리 오랜 전통의 정신을 이어주는 것을 끊임없이 끝내지 말고 끝까지 잘해 봅시다.
자유아시아방송의 세계의 한국인 오늘은 미국 워싱턴 DC 일원에서 한국 전통의 무용과 악기 등을 보급하는 PEACE MISSION DANCE GROUP의 박정숙 단장의 삶의 현장을 찾아가봤다. 지금까지 세계의 한국인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자유아시아방송의 세계의 한국인 오늘은 미국 워싱턴 DC 일원에서 한국 전통의 무용과 악기 등을 보급하는 PEACE MISSION DANCE GROUP의 박정숙 단장의 삶의 현장을 찾아가본다. 박 단장은 한국 숙명여대 체육교육학과에서 전통 무용을 전공한 무용인으로 미국에서 한국의 전통문화를 보급하는 파수꾼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어 주위의 칭송을 받고 있다. 박정숙 씨가 무용을 시작한 것은 어린 시절부터라고 한다. 초등학교 시절 무용공연에 참가한 것이 바로 오늘의 미국 속에 한국무용을 전수하는 전수자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할 것이다.
박정숙: 제가 어떻게 시작했나 기억해보니까? 초등학교 때부터 학교나 교회에서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무용 공연에 참여했습니다. 제가 스스로 하고 싶은 것도 있었지만, 선생님들이 많이 세워 주셨던 것 같습니다.
박정숙 씨의 무용 세계가 있기까지는 부모님의 도움이 컸다고 한다. 그리고 무용을 참 즐겼다고 들려준다.
박정숙: 무용공연에 많은 관심을 두고 많이 보아왔고, 청소년이 되면서 내 진로를 생각할 때에, 무엇을 할까 했을 때에 참 무용을 잘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부모님의 도우심으로 무용을 전공할 수 있게 되었고, 또 대학교에서 한국무용, 재즈, 외국무용을 많이 접하면서 현대 무용에도 깊은 관심을 나름대로 두고 있었고, 현대 무용으로 좋은 무용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많았지만, 그 당시에 설무리라는 단체를 만들어 한국 창작무용을 시작하면서 한국무용 쪽으로 더 많이 기울어지게 됐습니다.
박정숙 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무용교사로 있으면서 지도 상을 받는가 하면 각종 그룹전과 개인 무용발표회도 했다.
박정숙: 대학을 졸업하면서 10년간 중, 고등학교에서 무용 교사로 활동하고 특히 무용부를 지도 잘해서 서울특별시 상도 받고, 학교에서는 우수교사상도 받았습니다. 그리고 설무리 단체로는 크게 대한민국 무용제, 서울무용제전 설무리 발표회 등 다수 참여하고 그러던 중 2001년에는 개인 무용발표인 박정숙의 춤을 국립국악원에서 하게 되었어요.
박정숙 씨는 1990년에 남편을 따라 미국에 오게 되면서 모든 활동을 중단했다. 7년 후에 다시 한국에 돌아가 한국선교무용단을 창단해 공연활동을 하게 된다.
박정숙: 7년 후, 남편이 한국에 다시 돌아가게 되었을 때, 다시 무용할 기회가 있었고, 선후배와 한국 선교 무용단을 창단하여 여러 가지 공연과 선교 활동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무용을 예술적으로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참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그것을 이제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기쁨이 되어보고, 나의 삶의 보람이 되고 이 사회 공동체에 어떤 유익이 되는 것이 무엇일까? 더 깊이 생각해서 제가 잘할 수 있는 춤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올리고 사회의 유익이 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한 20년 전부터는 선교무용가로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선후배들과 한국선교무용단을 창단해 세계 곳곳의 많은 선교 무용하러 다녔습니다.
박정숙 씨는 2001년에 다시 미국에 오게 되자 자신이 가진 예술적인 감각을 이웃과 함께할 것을 다짐하게 된다. 그리고 그 누구도 가기 싫어하는 워싱턴 DC의 빈민 지역에서 흑인 어린이들에게 한국전통의 부채춤과 장구를 가르치고 아리랑 노래를 함께 부르며 기쁨을 나눴는가 하면 마약중독자들에게도 같이 장구를 치며 희망을 심어준 이야기는 예사롭지가 않다. 참 장한 한인의 여인이다.
박정숙: DC에서 빈민구제사역을 하는 평화나눔공동체를 아는 목사님께서 소개해 주셔서 그곳에서 빈민 흑인 아이들을 가르쳐 달라는 요청을 받게 되어서 화요 무용교실을 만들어서 매주 화요일마다 (2007년까지) 활동했습니다. 흑인 아이들에게 부채춤, 소고 그리고 장구 등을 가르치고 아리랑 노래를 함께 부르며 기쁨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주말에는 흑인 형제님들 술 마약 중독자이지만 저와 같이 장구를 치며 많이 웃고 즐거워하고 기도도 같이해서 아주 유익한 시간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박정숙 씨의 사회봉사는 끝도 없다. 그녀는 한인입양아들에게 우리 장단 가르치기 평화선교무용단을 만들어 초 중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한국 전통문화를 전수하는가 하면 미국 속의 아시아문화를 소개하는 책임자로 활동하는 등 참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다. 박정숙 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박정숙: 미국 입양 가족들에게 북, 장구를 가르치고 입양한 한국 아이들에게 우리의 장단을 한국말로 가르치고 아직도 그룹으로 해마다 2번 정도 발표회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개인적으로 평화선교 무용단 (PEACE MISSION DANCE GROUP) 을 만들어 초중, 고등학생들로 구성되어 무용과 국악 악기를 가르쳐 많은 행사를 하게 됐습니다. 주로 아태행사, 울프트랩행사, 또 정부기관에서 원하는 행사에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미국교회, 성당, 한국교회 예배에 참여하여 아이들과 같이 공연을 많이 했습니다. 제가 하는 일 중의 하나가 루아(RUAH)라는 단체에 아시아문화감독이 되어서 그곳에서는 (AMERICAN, HISPANIC, KOREAN 등) 미국, 중남미, 한국 등 세 감독이 모여서 각자의 무용 그룹들에게 한국 것과 교환해서 가르치며 같이 발표회를 하고 MULTICULTURAL 즉 복합문화활동을 하는 단체입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도 그곳에 많이 참여해서 1년에 두 차례 정도 공연하고 있습니다. 청소년 국악단을 만들어서 워싱턴 성 앤드류 킴 한국성당에서 청소년들을 ‘한노리’라는 단체를 만들어 북과 장구로 가르쳐 많은 행사에 초청되어 많은 박수갈채를 받았습니다.
박정숙 씨는 5월 아태문화의 달에는 워싱턴 DC 시장이 주최하는 행사에 무용단으로 공연에 참가하고 미국에서 올해로 40년째 계속되고 있는데 WOLFTRAP 행사에 3년째 참여하고 있다. 박 씨는 미국에 사는 한인들은 우리의 전통을 잃고 싶지 않은 강한 민족의식을 가진 사람들이기에 신이 나서 이런 활동을 한다고 들려준다.
박정숙: WOLFTRAP 행사는 ‘세계어린이축제’라고해서 세계 각국문화를 이틀 동안 40여 개 공연을 하게 됩니다. 거기에 해마다 출연해서 한국의 전통문화인 부채춤과 북과 화관무와 어린이들의 춤을 보여주는 좋은 기회도 얻었습니다.
박정숙 씨가 꿈은 한이 없다. 앞으로 섬머캠프, 여름 야영을 통한 한국문화 보급의 기회를 넓히고 싶다고 한다. 박정숙: 제가 바라는 것 중의 하나는 2009년에 제1회 섬머캠프를 가졌습니다. 이 행사에서는 단소와 붓글씨, 무용, 북, 장구 태권도 종이접기 또 동양화 그리기 여러 가지 문화 프로그램으로했습니다. 앞으로 여름마다 해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여러 형태로 배워서 우리 문화를 후손들에게 이어 줄 수 있는 통로가 됐으면 좋겠고요.
박정숙 씨에게 우리 전통문화를 가르치면서 어떤 보람이 있느냐고 물었다. 동심의 어린 마음에 우리 전통악기로 기쁨을 줄 수 있어 기쁘다고 말한다.
박정숙: 주로 제가 가르치는 악기는 북과 장구인데요. 이 악기들은 타악기이기 때문에 치는 사람들로 하여금 기쁨을 느끼게 해줘요. 어떤 악기들은 슬픈 마음을 주는데 오히려 타악기들은 스트레스를 풀어주고 즐겁게 하고 기쁘게 하고 웃으면서 연주할 수 있는 악기들이에요. 그래서 외국사람들에게 장구를 치면서 우리 아이들이 같이 치면서 입양가족이나 흑인 아이들도 함께 우리 전통악기를 치면서 악기로 인해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아니라 악기로 인해서 연주하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기쁘고 즐거움을 나눌 수 있는 그런 장점이 있습니다.
박정숙 씨는 많은 청소년을 지도하면서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청소년들의 변화를 보면서 자긍심을 가진다고 이야기한다.
박정숙: 순간마다 그 느낌은 어떻게 설명할 수가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어떤 아이들은 부모님 강요로 배우는 아이들도 있어요. 그런 아이들이 억지로 공연에 나왔다가는 참 눈물도 많이 흘리고 특히 사춘기이고 남학생들이 저에게 말하기를 ‘선생님 이번에 너무 잘못해서 미안합니다. 제가 다음에는 정말 잘할 거예요. 정말 잘 배울 거라고 말하면서 감동하는 모습과 많은 외국인이 박수를 보내줄 때 우리 아이들의 얼굴에서의 그 기쁨은 돈으로도 살 수 없고 어떤 것으로도 살 수 없는 우리 아이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주는 바로 현장이지요. 바로 그런 데서 보람을 느낍니다.
박정숙 씨는 청소년들과 함께해 젊어지는 것 같아 아주 좋단다. 그리고 우리 전통으로 학생들에게 인성교육의 장을 만드는 것은 더없는 기쁨이 아닐 수 없다고 말한다.
박정숙: 사람들이 젊어 보인다고 그래요. 생각도 젊어지고 공부도 더 많이 해야 하고 아이들과 같은 눈높이로 살아야 하니까? 아주 감사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부모의 강요나 왜 배우는지를 몰라서 오는 아이들도 있는데 그 아이들과 끝없이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이 아이들에게 한국말로 한국 선생님만이 해줄 수 있는 격려와 존중해주고 사랑해주는 걸로 인해서 이 아이들이 참 많이 변하게 되고 제자가 되어요. 그냥 학생이 아니라 제자가 되는 깊은 관계로 옮겨가게 됩니다.
박정숙 씨는 우리 한인 청소년들에게 한인의 자긍심을 키워주자고 당부한다.
박정숙: 우리 자녀들에게 한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우리의 자긍심과 자존심을 잃지 않고 또한 자랑스러운 마음을 잃지 않고 떳떳하게 한 사람으로서 훌륭한 사회인으로 클 수 있는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시고, 그러기 위해서 우리의 말과 글을 열심히 가르치는 가운데 우리의 문화와 얼과 혼이 담겨 있는 노래와 춤을 통해서 우리 아이들에게 우리 오랜 전통의 정신을 이어주는 것을 끊임없이 끝내지 말고 끝까지 잘해 봅시다.
자유아시아방송의 세계의 한국인 오늘은 미국 워싱턴 DC 일원에서 한국 전통의 무용과 악기 등을 보급하는 PEACE MISSION DANCE GROUP의 박정숙 단장의 삶의 현장을 찾아가봤다. 지금까지 세계의 한국인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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