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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한국인

[세계의 한국인 새해특집] '미국에 사는 탈북자들 자유를 찾았대요'

2012-01-13

사진-연합뉴스 제공

지난해 3월 탈북자선교회와 재향군인회 미 동부지회 등의 단체 회원 40여명이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와 유엔주재 북한대표부 앞에서 천안함 폭침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북한땅을 죽음 직전에 ‘지옥’이라고 말하는 탈북자들! 죽음을 각오하고 북한을 탈출한 사람들, 그들은 드디어 자유를 쟁취했다. 탈북자 2만 4천 명 시대를 맞아 지금은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에 삶의 뿌리를 내리고 자유인의 한 사람으로 정정당당하게 일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전 세계 탈북자들은 자신들이 겪은 참혹한 북한생활을 전 세계인에게 알리는 파수꾼 역할도 하고 있다. 그래서 자유의 봇물이 북한에 뿌려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자유아시아방송 세계의 한국인 새해특집 오늘은 미국에 사는 탈북자들 그들이 찾은 자유의 소리를 전한다.

미국 서부에서 웅지를 트고 마음껏 자유를 누리며 사는 탈북 여성 이 모 씨, 북한에서 살 때는 말할 자유가 없었다고 증언한다.

이 모: 저는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요. 자유라는 게 일단은 제가 미국에 와서 생각하는 건데 제가 일하고 싶으면 일할 수 있고 공부하고 싶으면 공부할 수 있고, 내가 하고 싶은 말 북한에서 대개 눈치 보며 하고 싶은 말 못하고 살았지만 여기서는 할 수 있잖아요.

탈북 여성 이 모 씨는 그렇듯 지옥 땅에서 이미 죽었지만, 김정일을 욕하지 못했지만, 자유의 나라에서는 독재자를 타도할 수 있다고 소리친다.

이 모: 김정일에 대해서 북한에서는 정말 욕을 하고 싶어도 북한에서는 못하고 살았잖아요, 그렇지만 여기 와서는 내가 김정일이를 타도할 수 있으면 타도할 수 있고 내 마음대로잖아요. 그러니까 여기서는 내가 하고 싶은 것 다 할 수 있는 거잖아요. 내가 열심히 살고 나의 목표를 일단 정해 하겠다 하면 누구 말리는 사람 없잖아요. 그게 저에게는 자유지요.

이 모 씨가 통일돼서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북한에서 배우지 못한 어린이들을 가르치고 싶단다.

이 모: 지금은 특별히 하는 게 없지만, 앞으로 조금 더 살면서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공부하고 저에게는 대단한 것인지 모르지만 그렇게 노력하려고 해요. 많이 배우고 제가 북한에서 못 배운 것 미국에서 더 많이 배우고 해서 북한에 가면 제가 어렸을 때처럼 배우지 못한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고 내가 되는 능력만큼 돕고 싶어요.

통일이 눈앞에 다가왔다는 이 모 씨 북한 주민이여 조금만 참아달라고 한다.

이 모: 그날이 언제 될지는 몰라도 저희는 빨리 오리라고 믿고 있어요. 그러니까? 북한사람들 정말 지겨운 곳에서 힘들게 살고 있지만, 정말 희망을 품고 통일되는 그날까지! 다시 우리가 합하는 그날까지! 잘 견디고 악착같이 살아줬으면 하는 게 저희의 소원이지요.

이 모 씨에게 미국에서의 생활을 물어봤다.

이 모: 당연히 보람 있지요. 내가 앞을 내다보고 내 삶을 위해서 일하고 있는데 보람이 있지요.

이 모 씨는 사랑하는 고향 친구와 함께 미국에 오지 못함을 아쉬워한다.

이 모: 사실 제가 미국에 올 적에 같이 오려던 친구도 있었어요. 뜻밖에 일이 생겨서 같이 못 왔는데요. 같이 올 걸 하고 생각하는데, 바로 내가 행복하게 사니까? 그 친구가 몇 명 그립고 지금도 자면서 꿈에서도 친구들을 자주 보는데요. 그 친구들을 데리고 오고 싶은 마음 내가 왜 데리고 오지 못하고 혼자 나만 왔던가를 생각하고 있어요. 제가 함께 데리고 왔으면 함께 자유를 누릴 수 있고 같이 잘 살 수 있을 걸 하며 많이 후회하고 있어요. 그래서 친구한테 정말 나를 용서해다오 라고 말하고 싶어요.

일요일은 교회에 나가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을 위해 기도한단다. 그리고 항상 감사하며 생활하고 있다고 들려준다.

이 모: 내가 일할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요. 제가 너무 행복하고 일하면서 바쁘지만, 한편에서는 감사하고 행복하고……

미국 서부에 정착하고 있는 성 모 씨는 북한의 지옥의 땅에서 탈북해 가나안 땅인 미국에 정착했다고 들려준다.

성 모: 매우 좋지요. 여기서 지금은 첫걸음이고 이곳의 문화를 다는 모르고 해서 모든 일을 완벽하게는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북한에서보다는 정말 매우 좋은 땅이고 성경에도 나오듯이 광야에서 우리가 가나안 땅으로 온 거나 마찬가지죠.

갖은 고난을 헤치고 탈북에 성공한 성 씨 는 한마디로 그 고통의 상처는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자유라는 것, 그 자유는 쟁취하는 것 그 자체라고 표현한다.

성 모
: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일이고 와 보니까! 저는 정말 자유라는 게, 자유, 그 자유를 찾아서, 처음에는 자유라는 걸 몰랐어요. 그러니까 지금 생각하니까? 이게 자유네요. 웃음…..

성 씨 는 북한 동포들도 젖과 꿀이 흐르는 자유의 나라에서 함께 살고 싶다고 호소한다. 성 모: 제가 여기서 사는 것처럼 북한 동포들도 다 같이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고, 이 좋은 땅에서 좋은 것만 보며 이렇게 풍족한 나라에서처럼 북한 동포들도 정말 풍족하고 먹을 것이 흘러넘치는 나라에서 함께 살고 싶은 게 저의 간절한 열망이고 소망이고 그날이 오기를 위해서 그들이 당하고 있는 어려움을 참고 견디어 냈으면 좋겠어요.

미국 중남부 지역에 정착한 탈북인 김 모 씨, 그는 김정일 사망 이후 북한 내부에서도 무언가 변화가 있을 것 같다고 말한다. 북한인 모두의 소망은 바로 자유를 찾는 것이란다.

김 모: 저 자신뿐만 아니라 전 북한인들이 바라는 소망이 있다면 바로 ‘자유’지요. 하루빨리 북한의 체제가 자유민주주의로 변해서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자기 소망을 실현할 수 있고, 희망을 품고 살 수 있는 그런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김 씨가 미국에서 맞은 자유는 이런 거란다.

김 모
: 자유라는 것은 어떤 구속이 없이 자기의 생각, 자기의 희망을 실현할 수 있는 그런 시초라고 볼 수 있지요. 참 우리는 북한에서 살았기 때문에 자유라는 것을 모르고 살았어요. 자유라는 것이 무언지도 몰랐고, 그런데 미국에 와서 보니까 정말 누구나 자기의 능력껏 누구나 자기의 목적과 희망하는 바대로 실현할 그러한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것, 정말 자유라는 게 바로 이거구나 생각하는데, 북한에서는 당에서 지적해 준 대로 모든 말과 행동이나 직업을 갖지만, 미국이나 자유 국가에서 사는 사람들은 누구나 부지런해서 열심히 일하면 잘 살 수 있고 또 자기 희망을 실현할 그러한 기회가 주어지는 것에 대해서 정말 자유라는 것이 사람들을 한 단계 발전시키고 또 자기의 그런 의지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 제일 좋았습니다.

북한 억압에서 자유인으로 뿌리를 내린 김 씨가 북한동포에게 들려주는 시대적인 흐름의 이야기다.

김 모: 제 생각에는 그래요. 이 시대적 흐름, 강물은 흘러 바다에 모이듯이 아무리 견고한 댐을 막아도 물은 얕은 곳으로 흘러서 바다로 모이거든요. 언제든지 북한도 이 시대적 흐름을 따라올 수밖에 없는 그 시대적 흐름을 막을려야 막을 수 없는 거라고 봐요. 그래서 북한 사람들도 하루빨리 조만간 그러한 자유의 날, 자유민주주의 국가처럼 희망을 실현할 수 있는 날을 주리라고 확신합니다.

미국의 수도 워싱턴 인근에 정착해 사는 조 모 씨는 미국에 오기까지 4번이나 중국에서 강제 북송 되는 과정을 겪었단다. 그러나 지금도 고향 땅에서 배고픔과 추위에 떠는 동포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단다.

조 모
: 저희는 자유를 찾았고 너무도 배운 것 없이 미국 땅에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새해를 맞으면서 이 추운 겨울에 북한에 있는 우리 고향 사람들, 많은 어린아이 또 중국에서 헤매는 탈북자들, 정말 이런 분들을 생각하며. 지난날 저희도 중국을 통해서 미국까지 오게 되는 그 과정 기간에 4번이나 북송 당하면서 정말 구사일생으로 살아서 미국까지 와서 자유를 찾았는데 먹은 것이 없어서 근심과 걱정하면서 고통당하는 그들이 언제쯤 자유롭게 해방될까? 이 겨울 날씨에 따끈한 국물이라도 한 그릇 얻어먹었으면 좋겠다는 안타까운 심정으로 가슴 아프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조 모 씨는 새해가 되면 다른 지역에 사는 탈북인 들과도 교류한다고 들려준다.

조 모: 오늘 미국에 와 있는 다른 탈북자와 통화했는데요. 김정일이 사망한 북한에 절반은 통일된 것 같다는 표현을 했어요. 그러면서 절반이 통일되면 제일 보고 싶은 게 아버지래요. 고향에 가서 한 번만 아버지를 만나봤으면 좋겠다는 그런 소망이 있데요.

조 씨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슬픔 그 자체다. 남편 죽음의 이야기를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가 있을까?

조 모: 저는 고향에 부모가 없고 자식도 없으며 친척도 없습니다. 왜냐면 1998년 제일 어려울 때 다 굶어서 죽고, 저희 남편은 자식들이 굶어서 쓰러져 있는 그 순간에 자식들을 살려야겠다는 오직 한가지 생각과 희망을 품고 중국에 있는 친척 집에 가서 쌀 한 배낭을 메고 온 것이 죄가 돼서 보위부에 잡혀서 가진 매를 맞고 고통당하다가 나중에 저희는 보지 못했지만, 초급당 위원회에서 남편 당증하고 사망 통지서가 왔다는 소식만 들었습니다.

조 씨가 자신의 가족보다는 북한동포들을 생각하는 마음은 참 평화의 상징이다.

조 모: 북한에서 고통당하고 있는 이들의 한 가닥 희망은 이제 북한땅에도 정말 새로운 봄이 오려나 하고 간절히 기다리는 마음이겠는데요. 정말 이 추운 날씨에도 새해를 맞는 심정이 얼마나 슬프겠는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렇지만 저희가 지난 기간에 정말 살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던 것처럼 지금 고향에 남아 있는 모든 사람이 정말 최선을 다해 살아남기 위해서 배고픔도 참아서 자유를 찾은 저희와 같이 행복을 누리는 날을 기약하고 또 희망의 새해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자유아시아방송 세계의 한국인 새해특집 오늘은 미국에 사는 탈북자들 그들이 찾은 자유의 소리를 전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