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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한국인

[세계의 한국인] 세계북한인총연맹 안찬일 총재의 삶의 역정 ② '젊음으로 박사 학위를 따냈다'

2012-02-10

전 세계에 사는 탈북인의 수는 얼마나 될까? 대략 22만 7천여 명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한국에 정착한 탈북인의 수는 대략 2만 4,000여 명 그 외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탈북자는 중국에 20여만 명, 유럽•미주•오세아니아 등에 3,000여 명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현재까지 전 세계 탈북인들이 사는 나라 수만도 20여 개에 이른다. 세계에 탈북 인들이 퍼져 나가면서 한국에서 최초의 탈북인 박사가 된 안찬일 씨는 주야로 북한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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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RFA PHOTO
자유아시아방송 세계의 한국인, 오늘은 세계북한인총연맹 안찬일 총재의 삶의 역정 2부 ‘젊음으로 박사 학위를 따냈다.’를 함께한다.

안찬일 씨는 남한에 와서 첫발을 남한 대학에 들여 놓았다. 고려대학교의 추천은 당시 현대건설 사장이었던 지금의 이명박 대통령이라고 설명해준다.

안찬일: 북한에서 공부하기 싫어서 사회에 나가면 다시 대학을 다녀야 하기에 끔찍스러워서 사실 군에 있으려다 희망이 실현되지 않아서 인생이 바꿨는데 남한에 와서 제가 다시 대학을 다니게 됐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만, 그때도 정부에서는 북에서 온 사람들에게 대학공부를 할 수 있는 배려를 해줘서 저는 대학을 들어가게 됐는데 고려대학교에 가게 됐습니다. 고려대학교는 뭐 북한에서도 4.19 영화라든지 이런 걸 통해서 널리 알려져서 고려대학을 가고 싶다는 이런 희망이 실현되었고 근데 그 당시 좀 희한한 것이 당시 정부에서 현대건설에 직장을 배려해 줘서 현대건설에 들어갔습니다. 직장 배치받은 첫날에 현대건설에 가서 사장님에게 인사를 하고 직장생활을 하는데 그때 사장님이 바로 지금의 이명박 대통령이었습니다. 그때 사장님이 저 보고 잘 왔다. 그러면서 앞으로 어떤 계획이 있느냐고 물으셔서 대학을 가서 공부하려고 한다고 하니 어느 대학을 가려고 하느냐 해서 저는 성균관대학을 가려고 한다. 그랬더니 사장님이 내가 나온 대학이 고려대학인데 좋은 대학이다. 거기 가서 공부하는 게 어떻겠냐! 그래서 제가 거기서 학교를 바꾸고 고려대학을 다니게 됐습니다.

안 박사는 노력 끝에 성공이라고, 자신이 배우던 바로 그 강의실에서 교수가 되어 학술회의 발표자로 나섰던 감회도 들여준다.

안찬일: 몇 년 전 한국정치학회가 개최하는 세미나에 발표자로 갔었는데 물론 그전에도 고려대학교는 인천 기념관이나 아시아 연구소 등 좋은 아카데미 시설이 있어서 학술 발표를 하고 토론도 했습니다만 이번 세미나는 특별히 1학년 때부터 4학년 때까지 공부한 정경관 건물에서 바로 늘 제가 않아서 교수님의 수업을 듣던 강의실에서 세미나를 했는데 많은 박사가 참가 한 가운데 북한체제 전환에 대해서 발표하면서 지금으로부터 26년여 전에 고려대학을 다니던 옛날이 됐습니다만 회고하면서 감회가 깊었습니다.

안찬일 씨는 대학을 다닐 때 벌써 자녀를 둘 뒀다고 한다. 그의 대학 생활 이야기도 들어보자!

안찬일: 이미 저는 대학에 입학 할 때 갓 결혼을 한 상태였고, 신혼 시절에 대학을 다녔습니다. 대학생 친구들도 저보다는 한 7-8년 이상 어린 친구들과 다녀서 우리 한국의 대학생들은 그룹을 만들어서 공부하는데 저를 공부 잘하도록 이끌어 줬던 친구들이 지금 다 뭐 언론사에 중견 부장이나 차장이 됐고 또 의사도 된 친구들이 많은데 특히 저는 그때 어린아이를 둘 낳고 대학을 다녔습니다. 아주 어린애였습니다. 한두 살 어린아이였는데 지금은 다 커서 대학을 졸업하고 큰 아이는 박사 과정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지금 회고하면 남한생활의 첫 출발이 대학이었지만 지금도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고 그래서 참 대학생활과 공부, 북한에서 공부하기 싫어서 왔는데 남한에 와서 이제 14년 동안 다녀서 박사 학위를 받고 박사 학위를 받은 이후에도 계속 강단에 서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니까? 인생의 대학과 저의 학문과 저의 모든 것이 깊이 연관되어 있는 데 대해서 늘 감사를 느끼고 기쁨을 느끼고 있습니다.

안찬일 씨가 어떤 자세로 남한에서 생활했는지가 궁금하다. 안 씨에게 생활신조가 있으면 들려달라고 했다.

안찬일: 저는 항상 생활에서 채찍질하고 또 뭔가 미래를 위해서 통일을 위해서 일해야 되겠다, 그런 생각을 마음속에 가지고는 있습니다. 실천은 못 하고 있습니다만 저의 생활신조에는 항상 부모 형제가 나 때문에 희생을 당했다. 또 지금 뭐 탈 북해 오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북한의 비참한 생활상 이런 걸 볼 때 그게 다 제 가족이고 제 형제들인데 저 때문에 당한 그들의 원한을 풀어 주는데 나의 성공으로서 그들을 위로 할 수 있지 않은가! 이런 생각을 항상 저의 신조로 삼고 일해 왔기 때문에 아마 큰 실패는 하지 않았고 또 한국생활에서 잘 적응한다는 주위의 평가를 받고 있는데 앞으로도 이런 생각에는 변함이 없고 남북통일이나 이런 걸 위해서 저의 적은 힘이나마 바쳐야 하겠다는 신조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선임 탈 북 인으로서 신참 탈 북 인에게 주는 교훈은 ‘북한에 새로운 민주주의를 건설하는 선구자가 되라’는 것이다.

안찬일: 제가 항상 말해주는 것은 우리 한국사회에서 젊은 사람들에게는 공부할 것을 권하고 그래서 제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대학에 들어갔고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는 반드시 북한에 돌아가서 잘못된 체제를 바꾸고 통일되면 북한의 새로운 민주주의를 건설하는데 우리는 하나의 일꾼이 되어야 한다. 그런 마음 자세를 가지고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면은 이 사회에서 성공하고 적응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런 걸 늘 강조해 주고 있는데 실제로 제 주변에 있는 분들을 보면 그런 데서 저와 같은 신조를 지니고 살아가다 보니까? 실패하거나 이런 사람들을 많이 보지 못했습니다.

탈북자로서 최초로 박사 학위를 딴 소감이 남다르다고 생각된다. 얼마나 걸려서 박사 학위를 받았을까? 그의 이야기다.

안찬일: 항상 최초라는 것에 신드롬을 느끼고 최초 1호 박사 이런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데 제가 최초라는 것을 몇 개 가지고는 있습니다만 사실 처음에는 박사가 되리라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고려대학교 입학할 때만 하드래도 직장에 가보니까 대학을 나온 엘리트들이라 최소한 나도 대학은 졸업해야 저 사람들하고 같이 일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런 욕심이 생겨서 공부를 시작했는데 대학 4년을 딱 마치고 나니까? 또 대학원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왕 시작한 것 석사도 한 번 해보자! 석사 학위를 하게 됐는데 석사 학위 2년 반을 마치고 나니까? 또 박사 학위 시험 볼 그런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저는 사실 아까 말씀 드린 데로 대학 졸업장만 받고 그저 남처럼 직장을 잘 다녀야 하겠다. 이런 생각을 했었지 박사 학위를 받아서 학자가 되겠다. 이런 야망은 전혀 가지지 못했습니다. 워낙 어려운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그랬습니다. 그래 박사과정에 딱 들어가고 보니까? 그 다음부터 저는 눈을 뜨기 시작해서 나는 앞으로 남북통일과 북한의 민주주의를 실현하는데 저의 온몸을 던져서 연구하는 학자가 되어야겠다는 욕심을 가지고 노력하다 보니까? 대학 공부 시작한 지 14년 만에 대학교 4년 석사 2년 반 박사 7년 이렇게 해서 박사를 97년 8월에 받게 되었습니다.

탈북자 최초 박사 학위 받을 때 굉장했을 것 같은데 소감도 물어봤다.

안찬일: 그날 뭐 박사 학위 받는데 최초라고 해서 전 언론사가 오고 기자들이 부글부글 끓고 우리 가족 친척들 주위의 아는 친구들이 몰려와서 제가 오히려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환영해 주었고 그날 저녁에 모든 언론사 TV 9시 뉴스에 나오면서 내가 정말 박사가 되었는가! 어리 벙벙해 질 정도로 흥분된 상태였습니다.

안 박사에게 박사 학위 연구 주제에 대해 물어봤다.

안찬일: 저는 정치학 박사 학위였습니다. 정치학 박사로서 박사 학위 논문제목은 ‘북한의 통치 이념에 관한 연구’ 주제가 되어 있고 부재로서 ‘전통사상의 수령을 중심으로’ 이런 부재가 달려 있습니다. 북한의 주체사상 통치이념에서 전통사상의 수용이라는 것을 학문적으로 분석해 낸 것도 그 당시는 아마 최초의 논문이 아닌가 그렇게 보아 집니다.

안찬일 박사는 대학에서 북한학을 가르친단다.

안찬일: 저는 박사 학위를 받고 바로 1년 동안 미국 컬럼비아 대학에 교환교수로 있다가 돌아와서는 건국대학 강단에 서게 됐습니다. 건국대학에서 북한학, 북한 정치론 이 두 과목을 가르쳤는데 학생들이 그 제 과목에 대해서 흥미가 많고 저는 수업시간에 내가 북한 출신이라고 말한 적이 없지만, 소문을 통해서 듣고 제가 북한 출신으로서 북한 학을 강의한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강의 풍토가 무슨 어학에서도 네이티브(모국어) 사용자로 영어를 가르친다는 논리로, 북한 출신이 북한 학을 가르친다는 것은 네이티브(모국어) 사용자가 가르치는 거나 마찬가지다. 이렇게 합리화합니다만 제 강의의 학생들이 최고 기록을 세워서 수강생 수가 많았고 또 학생들이 강의 평가를 통해서 교수를 평가합니다. 강의 준비 반응 리포트 등 모든 것을 평가하는데 항상 학생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아서 대학 방송에도 나가고 대학신문에도 나가고 어떤 때는 상금, 보너스도 받고 이렇게 그 학교에서 제가 가르치는 것에 대한 학생들로부터의 반응이 좋아서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 세계의 한국인, 오늘은 세계북한인총연맹 안찬일 총재의 삶의 역정 2부 젊음으로 박사 학위를 따냈다.’를 함께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