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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문화의 요람(搖籃) (10)-이문형시인 우리 역사문화의 요람(搖籃) (10) 이 문 형(워싱턴 문인회) 앞서 를 위서로 보는 이유 중 그 첫째가 “는 종교적 색채가 강한 책이다”였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대종교에서는 등 단군이나 고대사와 관련된 책들을 많이 펴냈다, 이 역시 그 중의 하나가 아닐까? 라는 의혹을 품는다는 것이다. 종교적이라거나 대종교와 관련돼 있을 것이라는 추측만으로 신뢰할 수 없는 책, 간단히 위서라고 단정해 버린다면 를 쓰면서 참고로 하였다는 등 4종의 사서마저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닌가! 종교적인 필요에 의해서 고대의 역사를 전승시켰을 경우라 해도 윤색, 첨삭 가능성 이상의 진위 논란은 바람직 한 태도는 아닐 것이다. ‘는 위서다’고 주장하는 두번째의 근거로서 연개소문의 아들 연남생의 묘지 내용을 든다. “남생의 묘에서.. 더보기
5.16 군사 쿠테타 회고(15)-김웅수장군회고록 5.16 군사 쿠테타 회고: 나의 제 2 인생을 걷게한 5.16 7. 재개된 혁명 재판 라) 10년 형을 선고 받다 나의 재판은 정강 장군과 같이 심리되었다. 나의 죄과중 미 대사 공한 예하부대 하달 죄목은 국제성을 피하기 위해 삭제된다고 하였다. 나는 왜 정강 장군과 같이 재판을 받아야 하는지 처음에는 이해되지 아니하였다. 재판이 진행되면서 정장군 이 부대 동원을 한 것이 나의 비상령 때문이라는 사실을 정장군으로부터 듯고서야 이해가 되었다. 나는 그것으로 문제가 된다면 군단장의 책임이라고 인정하게 되었다. 결과는 내가 징역 10년을 그리고 나의 명으로 사단의 비상이 걸린 정강 8사단장은 징역 12년을 선고 받았다. 내가 명령권자로 인정된다면 정강 사단장은 당연 무죄가 돠어야 했다. 그러나 명령권자보다 .. 더보기
5.16 군사 쿠테타 회고(14)-김웅수장군회고록 5.16 군사 쿠테타 회고: 나의 제 2 인생을 걷게한 5.16 7. 재개된 혁명 재판 가) 워싱턴 포스트 외신 보도와 서대문 형무소 재 입감 12 월 말경이었다. 박정희 장군이 미국 방문을 마치고 도라온 후 나의 재판이 재개된다는 소문이 있은 후 워싱턴 포스트 지에 실린 나의 재판에 대한 미국 정부의 곤혹의 뜻이 국내 신문을 통해 보도되었다. 혁검 부장인 박창암 대령이 미국의 약소 민족에 대한 전형적 간섭이라며 나로하여금 부당 성명을 발표하도록 매부인 강영훈 중장을 통해 압력을 가하여 왔다. 아버지와 장인 어른은 불리하더라도 혁검의 요구를 드러 주어서는 아니된다는 조언을 주셨다. 강중장의 이야기론 어떤 형식으로던지 신문에 발표함이 가하다는 의견이었다. 나는 구테타 기간 동안 나의 문제로 미국 정부의 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