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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17

북한이 6.25 전쟁 중 남한인을 계획적으로 납북한 것을 실증적 자료를 통해 분석 연구한 강릉대학교 김명호 교수는 ‘남한정부는 과거사 청산의 일환으로 납북자 문제도 해결해야 된다’고 자유아시아방송과 회견에서 밝혔습니다. 김 교수는 또 ‘납북자들에 대한 인권회복과 인도적 차원의 즉각 송환, 생사확인 등도 모색되어야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6.25전쟁 납북자 실태의 실증적 분석에 관한 연구를 하시게 된 동기가 있으셨습니까?

김명호 교수: 2002년 2월 모 TV 방송에서 6.25전쟁 납북인사가족협의회가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발견한 대한민국정부가 발행한 6.25사변 피납치자 명부를 ‘정부측에 데이터 베이스화 작업을 요청했으나 정부의 미온적인 반응이다’라는 그런 뉴스를 접하고 자원봉사를 하게 됐습니다. 그때부터 관련된 자료들을 정리하고 분석하게 됐습니다.

이번 연구에서는 5가지의 실증적 자료를 통해 ‘6.25 전쟁중 납치된 것으로 확인된 9만 6천 13명을 대상으로 ’6.25전쟁 납북자 실태에 실증적 분석에 관한 연구‘를 하셨는데 이 연구결과에서 어떤 주요한 내용들이 밝혀졌는지 설명해 주시지요?

김명호 교수: 1946년 김일성은 담화 내용에서 ‘부족한 인텔리 문제를 해결하자면 북조선에 있는 인텔리들을 다 찾아내는 한편 남조선에 있는 인텔리를 데려와야 합니다’라고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여 1950년 6.25전쟁 발발과 동시에 7,8,9월에 걸쳐서 9만 6000여명의 대한민국 국민들을 대규모로 납치했습니다.

그리고 북한군들이 납북자들의 개인별 인적사항을 사전에 알고 찾아와서 납치한 경우가 80.3% 나 됩니다. 이로서 납북자들은 북한의 의도적인 납치에 의하여 강제로 납북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연구에 사용된 자료의 객관성에 대한 궁금증이 큰데 신뢰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명호 교수: 지금까지 발견된 6.25전쟁 납북자 관련 문서는 5가지입니다. 해공 신익희 선생 유품에서 발견된 6.25사변 피납인사명부를 제외하고는 모두 정부기관에서 작성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통일부 관계자들도 자료의 신뢰성을 인정하였습니다.

북한에 납북된 납북자들의 직업유형을 살펴보면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김명호 교수: 직업별 분포를 살펴보면 여러 직업들이 골고루 분포되어 있습니다. 그러데 눈에 띄는 것은 국회의원이 63명, 판검사 90명, 변호사 100명, 경찰 1613명, 행정공무원 2919명, 군인 및 군속 879명, 교수 및 교원 863명, 의사 및 약사 526명 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소위 대한민국의 인텔리들을 강제적으로 납치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연구하신 결과 전쟁 중 납북시기와 납치 방법 등의 공통점이 있었다면서요?

김명호 교수: 납북자들의 납북시기가 1950년 7월, 8월, 9월 3개월에 걸쳐서 납북자들의 88.2%가 집중적으로 납북되었고 서울 경기 충청도에서 대규모로 납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납치방법으로 북한군들이 납북자들의 자택이나 집 근처에서 납치한 경우가 전체 납북자들 가운데 약 80%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로서 납북자들은 북한의 의도적인 납치에 의해서 강제로 납북됐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납북자들의 연령층 분포는 어떻게 나타났고, 왜 이렇게 구분을 해서 납치계획을 세운 것으로 보십니까?

김명호 교수: 당시 나이가 10대인 경우가 21.6%, 20대가 53.6%, 30대가 15.3%입니다. 그래서 10대와 20대의 납치가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338명의 10살 이하의 어린이도 납북된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60대 이상의 고령자도 746명이 납북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소위 북한으로 끌고 가서 이용가치가 있는 연령층들이 주류를 이르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현 정부의 과거사 청산과 관련해 이번에 밝혀진 북한의 계획적 납치문제를 남한정부는 어떻게 저리해아 된다고 보십니까?

김명호 교수: 정부는 과거사 청산의 일환으로 납북자 문제도 해결해야 된다고 봅니다. 따라서 첫째 납북자들에 대한 인권회복, 인도주의 차원의 즉각적인 송환 촉구, 납북자들의 생사확인 그리고 통일을 위한 과거의 역사적인 단면의 해결 등 이러한 기본 방향에 의해서 모색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국회와 각 정당도 납북자 문제의 보다 많은 관심을 가지고 정부가 올바른 대응을 할 수 있도록 건전한 비판과 협조를 아끼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납북자문제와 관련해 앞으로 어떤 계획이 있으십니까?

김명호 교수: 저는 이러한 연구를 보다 심도 있게 분석을 해서 이 납북자 문제가 공론화 될 수 있는 그런 근거를 계속적으로 마련 하고자 합니다.

납북자 가족들에게 들여 주고 싶은 말은?

김명호 교수: 저도 납북자문제를 2002년에 접근하기 전에는 이분들이 그동안 어떤 고통을 받았는지 전혀 알지를 못했습니다. 그 분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우리 역사의 아픈 단면이 있었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지금까지는 많은 고생을 하셨지만 앞으로 좋은 결과가 납북된 유가족들에게는 있으리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 이러한 결과를 위해서 노력을 해야 될 것입니다.

서울-이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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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04

북한에 납북되어 현재 북한에 살고 있는 납북고교생 부모들이 4일 한자리에 모여 죽기 전에 가족상봉이 이루어 질 수 있도록 정부가 힘써 줄 것을 강력히 요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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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 고교생 최승민씨의 아버지 최준화씨 이민교씨의 어머니 김태옥씨 - RFA PHOTO/이현기

최승민 씨의 아버지 최준화 씨는 남한정부의 납북자관련 정책에 머리통이 흔들린다고 호소했습니다.

최준화: 내 심정은 한마디로 해서 답답해요. 남한정부는 북한에서 하자는 데로 끌려 다니는 것 아주 머리를 절린 사람이에요. 00장관시절 그 장관이 우리 집에 왔을 때에 답답해 머리 터져 죽을 것 같다고 이럴 수가 있느냐고.

남한은 비료다 쌀이다 돈이다 다 보내면서 여기서는 이산가족만 이야기를 하고 장기수 저기에서 보내라고 해서 보내고서는 여기서는 이산가족만 가지고 따지니 세상에 이럴 수가 있느냐고 말이야? 아주 머리 터져 죽을 지경이라고 하면서---장관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이야기하니까? 우에서 하니까 할 수 없습니다. 이런 말을 하니 뭐라고 합니까? 답답한 것은 납북자가족의 머리통만 터지는 일을 뿐이지! 이런 실정이요. 땅을 치고 통곡을 해도 신찬을 처지예요.

이민교 씨의 어머니 김태옥 씨는 이번 장관급회담을 통해 가족 상봉의 길이 트이기를 바랬습니다.

김태옥: 김영남이가 그렇게 말한 것은 우리가 예측을 했던 것입니다. 그 사람이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어요. 자기가 살려면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정부에서나 국민들이 믿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니까는 정부에서는 어떻게든지 우리 남은 가족들 부모들은 연로해서 얼마 살지 못하니까? 정부에서 어떻게든지 장관급회담할 때 납북자문제를 거론해서 상봉할 수 있게 해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살았을 때 최성민 아버지나 저나 80이 얼마 안 남았는데 살았을 때 얼굴을 한 번 봤으면 좋겠어요.(눈물) 그것만이 바램입니다.

납북자가족모임의 최성용 대표는 북한의 확인불가 통보를 받은 분은 남한에 오게 했다고 강조합니다.

최성용: 이제는 정부가 다 털고 학생부터 시작을 해서 생사확인을 해야 하고 만일 회담장에서 납북자문제를 북한에 거론해서 북한의 반응이 없을 때 거꾸로 남한당국이 회담장을 박차고 나왔으면 좋겠어요. 정말로 북한에 강력히 납북자문제를 거론해 주길 바라는 것입니다. 북한의 납북자 학생들 ‘확인불가’ 같은 것은 정부가 절대 용서하면 안 됩니다. 세상에 자기 내가 잡아 가놓고 확인불가라고 통보해주는데 지금의 이산가족 상봉을 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거예요. 작년에 확인불가능 통보를 받은 고명섭씨를 남한에 오게 했지 않습니까?

지난 1968년에 동해안에서 납북된 김인철 씨의 누나는 납북될 당시를 이렇게 회고합니다.

김인철 씨 누나: 그 당시에 건강하고 착실하고 학교에서 모범생 이였어요. 부모와 식구들이 반대를 하는데도 한번만 갔다 오겠다는 게 그 날이 마지막 날이었으니까? 인철아! 누나인데 많이 보고 싶다. 건강하게 잘 있다니 고맙고 어서 만나 보자. (눈물)

서울-이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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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03

현재까지 북한에 납치된 5명의 고등학교 학생 이외에도 지난 68년에 동해안에서 납북된 고교생 1명이 생존해 있으며 고등학교 학생 납북자는 모두 6명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납북자가족모임의 최성용 대표는 3일 자유아시아방송과 회견에서 ‘68년 동해안에서 납북된 어부 김인철씨는 실제로는 당시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었다’면서 ‘현재 북한에 생존해 있다’고 밝혔습니다.

최성용: 오징어 배를 타고 항해 중 납치된 고등학생입니다.

최성용 대표는 ‘당시 선원 31명 가운데 25명은 귀환했고 김인철군과 나머지 선원들 6명은 북한이 억류 시겼다’면서 당시 김인철군은 학생신분 이였기 때문에 이용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최성용: 학생이기 때문에 북한에서 달리 이용을 한 것 같습니다.

최 대표는 또 이번 김영남 씨 가족상봉과 관련해 ‘어머니와 누나 영자씨만 상봉하고 두 형과 또 다른 누나 1명은 상봉이 이루어지지 못했다’면서 ‘앞으로 김영남씨가 평양에 가족을 초청할 시 전 가족이 상봉하기’를 소망했습니다.

최성용: 다 요구를 했거든요. 그러나 북쪽에서 선뜻 응하지 않았는데.

최성용 대표는 또한 김영남 씨가 남한 고향방문을 원할 시는 납북자가족모임 주관으로 초청해 남한 고향에서 ‘가족상봉이 이루어지도록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최성용: 김영남군을 단체 대표 입장에서 고향방문이 성사 되게끔 촉구 하겠습니다.

한편 최성용 대표는 이제 ‘납북자 문제는 이산가족 상봉 행사 때 구색 맞추기 식으로 끼워 넣을 것이 아니라 별도 상봉을 추진해야 한다’면서 ‘즉각적인 송환이 어렵다면 상봉만이라도 시급히 추진되기’를 바랬습니다.

서울-이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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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03

지난 1977년부터 78년 사이 납북돼 북한에 생존해 있는 것으로 알려진 5명의 고교생 외에도 1968년 동해안에서 고등학교학생 한명이 납북되어 현재 북한에 살고 있다고 납북자가족모임의 최성용대표가 자유아시아방송과 회견에서 밝혔습니다.

지난 1968년에 수산고등학교 학생이 납북되어 지금도 북한에 생존해 있다고 하는데 어떻게 납북이 됐습니까?

최성용: 정부에서 발표한 납북자가 489명인데 김인철씨가 명단에 포함이 돼 있습니다. 김인철씨는 어민이 아니고 강원도 주문진수산고등학교 3학년 재학 중 여름방학 때 어촌봉사의 일원으로 바다에 나가 일을 돕기 위해 오징어 배를 타고 항해 중 납치된 고등학생입니다.

당시 북한에 납북된 뒤 송환되지 않은 사람은 몇 명이나 됐습니까?

최성용: 배가 끌려가서 선원 31명 가운데 25명은 귀환했고 김인철군하고 나머지 선원들 6명 북한에서 억류를 시켰지요. 당시 김인철씨는 학생이기 때문에 북한에서 달리 이용을 한 것 같습니다.

김인철씨는 북한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습니까?

최성용: 제가 전해들은 그대로 전하기는 곤란하고 정확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고... 북한에서 현재 생활에 열심히 살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북한 소식통이 온다고 해서 전부 정확한 것은 아니거든요.

지금까지 알려진 납북고교생들은 다 살아 있습니까?

최성용: 한 사람만 불투명한데 다 살아 있는 걸로 들었습니다.

납북 고교생들을 포함해서 납북자들을 정부차원에서는 어떻게 해결하기를 원합니까?

최성용: 이산가족 상봉에 포함시켜서 80여 가족이 확인을 했는데 확인 불가능이 51명입니다. 나머지는 사망이 있고 이번에 김영남씨처럼 13가족이 살아있다고 북한에서 알려왔기 때문에 (이런 식 보다는) 별도로 하자 납북자만 따로 하자! 또 남한에는 현재 납북자처럼 아픈 추억을 가진 국군포로가 있습니다.

이 사람들 하고는 같이 해도 좋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산가족 상봉으로 하지 말고 (그렇게 함으로서 확인 불가능이 나오고 그러지 않아요)따로 좀 하자 북한도 이제는 생사확인도 해주고 죽은 사람을 죽은 사람대로 정리를 하고 했으면 하는 게 저의 소망이지요.

김영남씨 가족들은 재상봉과 관련해서는 어떤 반응입니까?

최성용: 영남군이 8월중 가족들을 초대한 것 같습니다. 가족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가족들은 만나보고 싶어 하고 이번에 처음으로 이뤄진 것 같아서 가족을 대변하는 입장에서 그 가족은 그렇게 원하고. 간다하더라도 평양축제에 참여하는 것에는 반대를 했어요.

영남이가 불러서 자기 사는 것 보여주고 하는 것들은 좋지만 축제에 참여해 시켜 가지고 정치적인 행사하는 것은 금지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또 남한 고향에 와서 고향이 어떻게 변했는지 보고 북한에서 고위직에 있으니까? 잘 알겠지요. 고향방문도 하고 납북자문제가 더 알려지면서 이런 아픔도 있구나. 어차피 다 알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식으로 풀었으면 하는 게 제 바램 인데 가족들이 원하면 정부 측에 요구를 해보겠고 북한측에는 제가 요구해봐야 되지는 않지만 그렇게 해서 만나면 풀어지고 또 만난사람들도 소식도 듣게끔 북한도 해 줘야지요.

서울-이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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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14

6.25 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회원들은 14일 6.25전쟁 납북자 실태의 실증적 분석에 관한 연구에서 ‘북한이 사전 계획에 따라 남한인을 납치한 것으로 밝혀지자 분노를 금치못한다’면서 ‘6.25 전쟁 중 납북자들에 대한 생사확인을 남한정부에 강력히 요구’했습니다.

한 납북자 가족은 남한정부는 이제라도 6.25전쟁 중에 납북된 분들의 명예회복과 생사확인에 나서라고 주장했습니다.

납북자 가족: 가족의 입장으로서는 정부의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1952년에 전시 중에서도 이러한 실태조사라고 할까요. 납북자 상황을 조사를 하고 통계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상황에서 그보다 훨씬 더 좋아진 상황에서 그러한 일에 주저한다는 것에 저희는 많은 의심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만시지탄이지만 지금이라도 전시 납북자에 대한 실태조사라든지 그러한 정확한 상황을 다시 한번 파악하는 그러한 계기로 해서 납북자 되신 분들의 명예회복과 생존에 대한 정부의 의지를 저희들한테 보여 줬으면 좋겠습니다.

이 납북자가족은 북한을 대하는 남한정부의 태도와 방법에 실망스럽다고 말합니다.

납북자 가족: 6.25 전쟁 자체가 잊혀진 전쟁처럼 되어버린 것이 우선 매우 유감스런 일인데 납북자문제를 정부가 확고한 기준 없이 우왕좌왕 처리하는 느낌을 받아서 유감이 많습니다. 남북적십자회담이나 남북장관급회담에서 나타난 것처럼 명칭 자체도 납북자라고 하지 않고 ‘전쟁시기에 생사를 알 수 없게 된자’ 이런 식으로 얼버무려서. 물론 이해는 하지요. 북한 자극하지 않겠다는 뜻은 알겠지 만은 세상이 다 아는 납북문제를 그런 식으로 얼버무리고 넘어가는데 있어서 불만이 많죠.

이 납북자가족은 어머니 돌아가시기 전에 아버지의 행적에 대해 알고 싶다고 호소합니다.

납북자 가족: 납북자의 문제에 대해서 조금도 성의를 보여주지 않았어요. 지금까지 우리는 담담한 마음으로 기다릴테니까 이제라고 정부에서 북한과 어떻게 해서 ‘협상을 하든지, 어떻게 하든지’ 정부의 능력으로 납북되신 분들이 어떻게 살았으며 어떻게 돌아가셨으며 이런 것을 해 줬으면 좋겠어요. 그 이상은 바라지 않습니다.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오지 않겠나 생각을 하는데 납북자 자식들이 저도 젊은 층에 들어갑니다.

제가 1942년생인데.. 그 당시를 기억하는 사람 중에 저는 젊은 층입니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저희 어머니도 살아 계시니까? 그러나 거의 가 다 돌아가셨더라구요. 저희 어머니는 86살이십니다. 건강이 좋지 않습니다. 저희 어머니가 30살에 혼자 되셨습니다. 정부가 이제 납북자 가족들을 위해서 뭔가 밝혀 주시고 또 도움을 주겠다면 좋지만 그것까지 바라겠습니까? 저희 아버지 같은 경우 38살에 납치되셨는데 혹시 결혼을 하셨으면 자식들이라도 있는 가 등을 알 수 있도록 해줬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6.25전쟁 납북자가족협의회 이미일 회장은 남한정부가 전쟁 중 납북피해문제해결에 적극적으로 대처해 주기를 바랬습니다.

이미일 회장: 정부에 요구하고 싶은 것은 저희들은 특별법을 전후 납북자만 입법 예고를 했는데 저희의 경우도 곧 해준다고 통일부에서 약속을 했는데 실태조사를 조속히 시행해 달래는 것. 실태조사의 방안을 이미 했는데 그것을 실효성이 없다. 남남 갈등이 생긴다. 이러면서 미루고 주저하고 있는 것 같은데 여기 자료로 분명하게 명백하게 나온 이상 정부는 이 문제를 더 이상 덮어버리고 안하려고 그런 미온적인 태도를 버리고 보다 더 적극적으로 전쟁납북피해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실태조사와 더불어 특별법 제정에 적극적으로 임해주기를 강력히 요구합니다.

서울-이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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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14

북한이 6.25 전쟁과정에서 남한의 젊은 지식인과 기술자, 공무원들을 사전 계획에 따라 조직적으로 납치했음이 ‘6.25전쟁 납북자 실태의 실증적 분석에 관한 연구’결과 밝혀졌습니다.

이 같은 사실은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산하 한국전쟁납북사건자료원과 강릉대학교 김명호 교수가 6.25 전쟁중 납치된 것으로 확인된 9만 6천 1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6.25전쟁 납북자 실태의 실증적 분석에 관한 연구’결과에서 밝혀졌습니다.

이 실증적 자료로는 1950년 12월 대한민국 공보처 통계국이 발행한 ‘서울특별시 피해자 명부’, 1952년 대한민국 정부가 발행한 ’6.25사변 피납치자명부‘, 1954년 내무부 치안국의 ’6.25동란으로 인한 피납치자명부‘, 1956년 대한적십자사가 납치자 가족으로부터 신고 받아 작성한 ’실향사민등록자명단‘ 그리고 1951년 6.25사변 피납치인사 가족회 작성한 ’6.25사변 피납치인사명부‘ 등 5가지 문서가 종합 분석됐습니다.

강릉대학교 김명호 교수는 6.25전쟁 납북자 실태의 실증적 분석에 관한 연구 결과 ‘1950년 7월부터 9월사이 약 3개월간 동안에 납치자들의 88.2%인 8만 4천 600여명이 집중적으로 납북된 것으로 밝혀졌다’고 전했습니다.

김명호 교수: 이것은 북한군이 남한을 침공한 다음달부터 김일성의 지시에 따라서 전국적으로 계획적인 납치작전이 수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김명호 교수는 납치장소를 살펴보면 북한군들이 납치자들의 개인적인 인적사항을 사전에 알고 직접 찾아와서 납치한 경우가 대부분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습니다.

김명호 교수: 즉 다시 말을 바꾸어본다면 납치장소가 납북자들의 자택 또는 자택 근처에서 납치된 경우가 전체 납북자들의 80.3%나 됩니다. 이것은 북한의 의도적인 납치에 의해서 강제로 납북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명호 교수는 ‘납북자들의 직업별 분류를 살펴보면 여러 직업들이 분포되어 있다’면서 ‘이 가운데는 국회의원 63명, 판검사 90명, 변호사 100명, 경찰 1613명, 행정공무원 2919명, 군인과 군속 879명, 교수와 교원 863명, 의사, 약사 526명으로 분포되어 있고 여기에 농업에 종사하는 분이 약 61%인 5만 8천 373명로 구분됐다고 전했습니다.

김명호 교수: 농업에 종사하는 분 가운데 대부분이 그 지역의 이장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지도자급들을 북한이 의도적으로 납치한 것으로 결과는 분석되고 있습니다.

김 교수는 납북당시의 연령층을 살펴보면 10대가 21.6% 20대가 53.6% 30대가 15.3%등 10대에서 20대사이의 연령층이 집중적으로 납치된 것으로 알 수 가 있고 10살 이하의 영아와 어린이들도 338명이 납치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분석했습니다.

김명호 교수: 영아들은 어머니 등에 업혀서 엄마와 함께 납북된 것으로 판단되고 60살 이상의 고령자도 746명이 납치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김 교수는 이러한 북한의 납치행위는 이제 ‘현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과거사 청산작업의 일환으로 그 진실을 밝히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히고 ‘그동안 실추된 납북자들의 명예를 복원하고 유가족들의 바램인 납북자들의 생사확인을 정부가 나서서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한편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이미일 회장은 북한에 의한 계획적 납북으로 밝혀진 만큼 정부는 전쟁납북피해문제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줄 것을 강력히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서울-이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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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06

북한이 최근 6.25 전쟁 당시 납북자실태 자료와 관련해 날조라고 주장한 것에 대해 관련단체와 통계자료를 냈던 김명호교수등은 자료를 통한 사견이 없는 분석 결과로서 북한의 날조 주장은 오히려 자신들의 행위자체를 숨기려는 의도라고 비난 했습니다.



6.25전쟁 납북인사가족협의 이미일 회장은 북한이 납치해 갈 때 가족들이 직접 목격을 했기 때문에 북한의 날조라는 주장은 말도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미일 회장: 저희들은 가족이고 목격자였기 때문에 그 사실(북한이 납치해간)이 저희들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사실에 입각해서 6.25전쟁당시 납북자 실태조사를 저희들이 발표한 것이구요. 그것은 통계자료로 저희들이 작성해서 만든 것이기 때문에 날조라는 것은 말도 안 되고 북한이 과연 우리를 동포로 생각을 한다면 과거 56-57전에 있었던 사건도 지금 사실이 아니라는 사실이 아니라는 식으로 반박하는 것이 상당히 동족의 입장에서 하는 것인지 의심스럽고.

이미일 회장은 북한은 과거나 지금이나 납북자가 없다는 허무맹랑한 선전활동을 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납북자 가족들은 무조건 합해져야 되고 소식을 알아야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미일 회장: 과거의 우리 6.25전쟁 때 잡혀 가신 분들, 납치해 가신 분들이 유명인사들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분들을 자기네들이 강제로 끌고 가서 대남방송 대남선전 용으로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라는 이상한 단체를 만들어서 강제로 그 사람들로 하여금 방송이나 선전에 활용을 많이 했습니다. 지금의 북한이 하는 것이 그것과 똑같은 그러한 반복되는 유사한 방법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저희들 입장에서는 북한이 정말로 그분들이 입북이건 납북이건 간에 그분들을 가족 품으로 돌려보내야 합니다. 지금 납북과 입북, 월북, 의거입북 등 이런 것을 가지고 논할 일이 아니고 고상문씨 경우만 해도 그 가족들이 상당히 불행했습니다. 그 부인은 제가 알기로는 스스로 세상을 뜬 걸로 알고 있구요. 그 가족을 완전히 말살하고 인권을 유린한 그런 상황이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을 떠나서 가족은 합해져야하고 소식을 알아야 되고 이런 것이 저희들의 생각입니다.

최근에 6.25전쟁에 납북자 실태의 실증적 분석에 관한 연구 결과를 발표한 강릉대 김명호 교수는 개인적인 사견이 아닌 현재 나타나 있는 자료를 가지고 분석한 자료로서 ‘북한의 날조’ 주장은 오히려 이상한 생각을 갖게 한다고 말했습니다.

김명호 교수: 저는 그 현재 나타나 있는 자료를 가지고 분석을 했을 따름이지 개인적인 사견이 들어간 부분이 전혀 아니기 때문에 그 결과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라고 그 누구도 말할 수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오히려 북한 측에서 그런 이야기를 한다는 자체가 더 이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납북어부로서 북한에 강제 납북됐다 귀환한 이재근씨는 북한당국이 납북자 한 사람도 없다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데 내가 북한에 강제 납북됐다 남한에 온 장 본인이라고 증언해 줬습니다.

이재근씨: 우리는 중앙당 정치학교까지 졸업했잖아요. 졸업했는데 우리가 사회에 나올 때 납북돼 왔다고 그렇게 말하면 누가 물어갈 줄 모르니깐 당신들 알아서 하라고 그래서 우리가 나올 때 도장까지 지장까지 찍고 나왔지 않아요. 납북돼 안 왔다(오지 않았다)고 이야기한다고 그렇게 하기로 하고. 그러니까 북한에는 우리가 말하는 이 정도 가지고는 안 되요. 이 세상 사람들이 상상을 초월한 그런 제도기 때문에 우리가 말 한마디 몇 마디 해서는 북한사회를 이해하기 힘들어요. 우리가 거기서 나올 때도 그렇게 이야기가 되었고 나와서 말 한마디 잘못 말하면 보위부에 끌려가서 욕먹고 했는데...

그 무슨 그놈아들 봐요. 완전하게 한 600여명 있는데도 한명도 없다고 계속 개소리 치는데 우리가 와서 우리 끌려간 것 과정을 다 이야기 해줘도 결국은 한국 사람도 믿지 않고 다른 사람도 믿지 않는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재간이 없지 않아요.

서울-이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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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01

남한정부와 여당이 8월 31일 국회에서 당정 협의를 갖고 정기국회 내에 ‘전후 납북피해자 지원법’ 통과를 위해 적극 협력키로 했는데 특히 당정은 6.25전쟁 기간 납북자의 경우 전후 납북자와 발생 배경이 다르고 납북과 입북을 구별하는 것도 쉽지 않다는 이유를 들어 이법 법률안에는 제외키로 의견을 모았다는 소식입니다. 이와 관련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이미일 회장은 ‘전쟁시 납북이나 월부이냐는 정부 편찬 자료가 있기 때문에 흑과 백이 명확한 사안’이라고 자유아시아방송과 회견에서 밝혔습니다. 회견에는 서울에서 RFA 이현기기자입니다.

납북피해자 지원법과 관련 31일 당정협의가 있었는데 이법 법률안에는 제외키로 했는데 직접 당사자인 협의회에서는 어떻게 평가하고 계십니까?

이미일 회장: 먼저 그런 기술적인 문제를 이야기하기에 앞서 대한민국정부는 대한민국 국민을 보호해야할 의무가 있고 그분들이 잘못 되었을 때에는 잘못된 것을 회복할 수 있는 그런 역할을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발생 배경은 전시는 전쟁중이고 전후는 평화시라는 걸 이야기하는 데 정부는 1948년에 세워 졌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전시와 전후로 나누어서 할 것이 아니라 똑같이 전시도 정부가 다뤄야 된다고 저희들은 강력히 주장을 하구요. 입북의 경위는 저희들은 당시의 월북과 납북은 흑과 백의 차이였기 때문에 저희들은 분명히 납북된 사람은 우리 측에 적극 동조한 사람이고, 월북한 사람들은 적과 동조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때 이미 명부가 혼란스런 와중에서도 얼마나 그 문제가 급박했으면 명단이 작성이 됐습니다. 그것이 확실한 월북과 납북의 근거자료가 되구요. 그 다음 우리 가족들이 경찰서에도 신고를 했고 동에도 신고를 했습니다. 신고서가 또 중요한 가름이 될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전시 납북자에 대한 정부 차원의 실태조사’에 대한 협의회차원의 건의가 있다면 해 주시지요?

이미일 회장: 저희들이 이미 제안을 했는데요. 정부가 읍면동사무소의 행정기관을 이용을 해서 신고를 받아주기를 원합니다. 단 신고를 받기 전에 전시납북자 특별법 마련과 또한 대북협상에서의 생사와 소재파악을 위해서 필요한 자료로 데이터 베이스를 만들기 위해서 신고를 받는다는 그런 홍보를 한 후에 신고를 받아주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전시 납북자가족들은 어떤 바램을 갖고 있는지 이야기 해 주시지요?

이미일 회장: 저희들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대북협상에서 저희 가족들의 안부(생사와 소재 파악)입니다. 그것이 벌써 2002년 9월 남북 적십자 간에 합의를 하고 후에도 수차례 합의를 했지만 아직까지도 단 한건도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말로만 한다고 했고 첫째가 가장 중요한 게 저희들은 56년이 지나지 않았습니까? 더 이상 살아남아 있기가 힘든 마지막 최후에 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저희들이 이 세상을 뜨고 나면 더 이상 이런 일을 할 사람이 없을 거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속히 부친의 생사확인과 사망일자 그 분이 어떻게 사셨으며 가족들은 있는지 어디에 묻혀 있었는지 이런 것들을 가장 알고 싶고, 그 다음에 저희 가족회에서 바라는 것은 명예회복입니다. 저희들은 나라에 헌신하시고 나라를 위해서 많은 기반을 닦으신 분들로 아직 대한민국 역사에서 기억조차 해주지 않는 것에 대해서 상당히 안타깝게 생각을 합니다.

이 나라의 기반을 바르게 세우고 그분들을 한국 근대사에 모셔오는 그런 일을 하기 위해서 특별법이 마련되기를 원합니다. 저희들은 명예회복과 지원에 관한 법률안이 주로 될 것인데요. 저희들은 또 연좌제를 많이 겪었습니다. (80년대 까지는 이런 문제!) 크게 말해서 대북협상에서 생사소제 파악 등의 결과를 알려 주는 것과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을 마련하는 것 등 두 가지를 계속 요구하고 있습니다.

서울-이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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