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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제비 출신 탈북 청년을 만나다

워싱턴-이현기 leeh@rfa.org
2017-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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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현학교 학생들과 브니엘고등학교 학생들이 파주시 도라전망대에서 개성시를 바라보고 있다.
장대현학교 학생들과 브니엘고등학교 학생들이 파주시 도라전망대에서 개성시를 바라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꽃제비 출신 심 모 군, 올해18살로 남한에서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입니다. 심 군은 탈북한 어머니를 찾으러 2015년에 중국으로 탈북해 2016년에 한국으로 왔고 한국에서 어머니를 찾았으며, 인터넷 등을 접하며 미국이란 나라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어 잠시 방문하게 됐다고 자유아시아방송과 회견에서 밝혔습니다. 심 군은 열심히 공부해 외교관이 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습니다.

목요대담 오늘은 꽃제비 출신 탈북자 심 모 군은 만나봅니다.

이렇게 미국에서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북한에서 몇 살까지 살았나요.

: 16살까지 살았어요.

북한에서 16살까지 살았다고 했는데 북한에서 살 때 이야기해줘요.

: 저는 북한에서 살 때 아빠가 돌아가시고, 엄마는 제가 어릴 때 탈북하셨고, 할머니랑 둘이서 살았는데 대개 어렵게 지냈어요.

어렵게 살았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

: 경제적으로 매우 곤란했고, 학교에서 내라는 것도 제대로 못 냈고, 먹고 싶은 것도 못 먹고 또 내가 하고 싶은 것도 못하고, 정말 여러 가지 경제적으로나 내가 하고 싶은, 자유라고 말하면 좋은지 모르지만 억압을 받으며 살아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북한 어느 지역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되는데요. 그 지역에서 태어나서 엄마 아빠와 살다가 다른 지역에 가 본 적이 있나요?

: 다른 지역에 가 본 적이 없습니다. 북한에서 다른 곳에 가려면 증명서가 있어야 되기 때문에 증명서 발급부터 여러 가지 절차가 많아서 다른 곳에 가려면 힘들거든요. 그래서 다른 곳에 가본 적이 없습니다.

북한에서 어렵다 어렵다 말했는데 먹는 것에 관해 이야기 해줘요.

: 먹는 것은 홀로 계시던 할머니가 어렵게 어렵게 번 돈으로 생활하며 살았어요. 지금도 그때의 할머니 모습이 가슴 아픈 모습으로 남는 것 같습니다.

할머니가 어렵게 일했다고 했는데 어떤 일을 하셨나요.

: 그러니까 단묵, 먹는 음식을 만들어서 시장에 나가 팔아 돈을 벌었는데 번 돈이 너무 적어서, 할머니 혼자 하시는 거니까? 수입이 대개 적고 나이가 많으시니까? 힘들어하셨습니다.

북한에서 친구들과 함께했던 이야기 해줘요.

: 친구들은 너무 친절하고 좋았지요. 또 때로는 제가 밥을 못 먹고 다닐 때가 있으면 친구가 자기 집으로 가서 먹자! 라고 말 하기도 하고, 친구들 대개 좋았어요. 좋은 친구들이었어요.

남한에 와 북한의 친구들 보고 싶고 안부도 전하고 싶을 텐데 한마디 해 줄래요.

: 친구들아! 내가 남한에 왔는데, 내가 북한에서 생각하던 남한이 아니고 너무 경쟁이 치열하고 힘든데 남한은 내가 잘하면 잘하는 것만큼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나라고, 너무나 가능성이 있어서 좋은 것 같아. 친구들아 사랑해! 보고 싶어.

남한에 와 느낀 이야기가 있다면

: 제가 온 지는 한 8개월 정도밖에 안 됐고요. 제가 와서 느낀 점은 북한에서 내가 생각했던 그런 천국 같은 한국이 아니다 그런 걸 느꼈어요. 경쟁이 치열하고 어딜 가나 내가 열심히 하고 무언가 하려면, 하려고 하면 살 수 있는 곳이다. 내가 남보다 우월하면 성공할 수 있다. 그런 가능성이 있는 나라라고 느꼈습니다.

지금은 고등학교 학생인데 앞으로 남한에서 잘 성장하기 위해 어떤 다짐이 있는지

: 한국에서 잘 살려면 일단은 공부를 잘해야 되고, 공부를 잘하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공부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합니다.

혹시 북한에 계신 할머니 지금도 살아 계실 텐데.

: 할머니는 제가 없어졌을 당시에는 저를 많이 찾고 괴로워하셨겠죠. 아이를 잃어버렸다고 그런데 저는 한국에 와서 열심히 생활하고 있어요.

남한에 와 공부하기 힘드나요.

: 공부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요. 북한에서 배웠던 공부랑 한국에서 배우는 것이 달라서요.

북한에서는 어떤 과목을 공부했고 남한에서는 어떤 과목을 공부 하나요. 공부의 차이점 이야기해 주세요.

: 북한에서 공부하는 것은 남한서 공부하는 것은 비슷한데 영어 과목이 다르고요. 그리고 국어가 아주 달라요. 그래서 북한에서는 영국식 영어를 가르쳐주고. 한국에서는 미국식 영어를 가르쳐 주니까 많이 차이점이 나거든요. 그래서 영어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국어가 다르니까 제가 이해를 못 하는 것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것 같습니다.

미국에 이렇게 오게 됐는데 미국에서 느낀 점이 있다면

: 미국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강대국이구나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북한에서 미국이란 나라를 어떻게 배웠나요.

: 북한에서는 미국이라는 나라를 미 제국주의라고 하면서 한 하늘에 이고 살 수 없는 철천지원수라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실지 미국에 와서 보니까 어때요.

: 자유가 한국보다 더 많은 것 같고요. 대신 또 자유가 많은 것에 비해서 개인이 책임져야 할 부분들이 많고 한국보다 더 법이 엄한 법치국가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 고등학교 졸업하고 더 큰 꿈을 키워나가기 위해 어떤 과목 전공을 하고 싶은지

: 대학에 간다면 국가와 국가 사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외교관이나 아니면 범죄자들을 잡아내고 재판을 하는 검사나 판사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북한에 있을 때 엄마와 헤어져 사는 동안 참 외로웠겠는데 엄마 보고 싶었던 이야기도 해 주세요.

: 제가 북한에 있을 때 어렵고 힘들 때면 엄마 생각이 나고 또 엄마가 보고 싶어서 눈물도 많이 흘렸어요. 탈북하고 엄마를 만나니까 너무너무 기뻤고요. 어릴 때 누리지 못한 엄마 사랑을 받고 있어서 행복한 것 같아요.

북한에 지금도 어려움에 처한 친구나 이웃들에게 한마디 할래요.

: 북한에 있는 나와 같은 친구들은 착하고 똑똑하고 큰일을 할 수 있는 인재들입니다. 그러니까 한반도 조선에서 통일을 기다리고, 아직 통일은 안 됐지만, 통일될 날을 기다리며 열심히 살고 더 공부를 열심히 해서 통일된 한국에서 쓸모 있는 미래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목요대담 오늘은 꽃제비 출신 탈북자 심 모 군을 만나 봤습니다. 지금까지 인터뷰에 RFA 이현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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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의 훈련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남한에 정착한 한 탈북 원로가 자유아시아방송에 자신이 나서 자라온 북한의 부조리한 모습을 글로 담아 보내 왔습니다. 방화라는 예명으로 글 제목은 ‘로봇인’입니다. 그는 글의 소제목으로 그 첫째가 ‘배급의 아이콘’ 참담한 인간의 제1인권이 식권의 유린을 그렸으며,그 둘째는 ‘언론의 아이콘’에서는 증폭된 독재자의 나발과 개 짓는 소리뿐으로 비유했습니다. 원로 탈북인은 계속해서 조직의 아이콘, 통행증 아이콘, 인질의 아이콘 등으로 이어갔습니다.

특집방송 오늘은 한 탈북 원로가 글로 증언한 북한의 실상 ‘로봇인’ 2부 함께 합니다.

Music

‘로봇인’ 저자 -방화-

20세기의 전자 공학이
사람 같은 인간 로봇을 만들었다면
20세기의 북한 정치는
로봇 같은 로봇인 들을 육성하였나니
전자가 인간 지혜의 걸작이라면
후자는 인간악과 폭력의 걸작

중세의 노예주들은
하나의 쇠사슬로 사람들을 예속, 허나
그것은 인간에 의한 인간의 예속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뿐만 아니라
그 야만성 또한 감출 수 없으니
오늘과 같은 문명세기에는 당연히 쓸 수가 없어
그래서 발명한 새로운 예속 방법은
눈에 보이지 않는 각종 아이콘들
그 아이콘대로 동작한 로봇 인이
바로 보이지 않는 굴레나 사슬을 걸친
북한의 현대판 노예들

Music

<그 다섯째가 조직의 아이콘>

물고기가 구물 속에
들어가고파 들어가나, 모르고 들어가지
마찬가지로 조직에 들어가
끄는 대로 질질 끌려 다니는 사람들
꼭 구물 속의 물고기 신세
처음에는 자유를 잃고 물속에서 헤매다가
나중에는 뭍으로 끌려나와
호읍이 끊긴 물고기의 운명 그대로
북한인들은 여러 가지 조직에서
죽는 날까지
졸병처럼 끌려 다니며 구령대로 동작하는
제대 없는 연원한 하졸
그들은 지령대로 움직이노라 하는 데도
주마다 잘못을 자기 비판하라고 닦달질
잘못이 없다고 반성하지 않으면 더욱 큰일
할 수 없어 거짓 자백을 창작 발표하는 형편
이것이 북한인들의 영원한 스트레스인 생활총화제도
이 정신적 고문의 창안자가 누구일까?
지금은 이미 지옥에서 천벌을 받을 사람이니
여기서 뒤늦은 고발을 할 필요는 없겠지.
염라대왕이 늦게나마 그를 잡아간 것은 다행한 일
불쌍한 졸병들에게 하늘인들 무심하랴
하지만 마음 놓은 수는 없는 일
대를 이은 독사의 새끼도 독사니까
보라! 측근마저 가차 없이 죽이는 총살 정치를
이것이 조직의 사슬

Music

<그 여섯째가 통행증 아이콘>


지은 죄는 없는데
모조리 지역 연금
누구나 여행을 하려면
통행증 사슬을 차야하니
사람마다 다리가 제 것이 아닌 듯
조롱속의 새처럼 자유가 없어
조롱속의 새는 그래도
배는 곯지 않고 편히 지내면서
노래라도 부르지
허나 조롱속의 북한인들은
아득바득 하지만 아사지경
당국자들의 채찍질에
꼭 들볶이는 가마 속의 콩알 신세
이리 뛰고 저리 뚸어도 타죽을 팔자
이것이 통행증 사슬

Music

<그 일곱째가 인질의 아이콘>

혈육의 정을 따라가며 칼질하는 연좌제는
지난 세기의 역사적 쓰레기
허나 그 가혹성이 마음에 들어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남 몰래 훔처 쓰는 북한 정권
이 때문에 모든 북한인들은
가족 친척이 구릅들로 묶이어
그중 한사람이 자칫 연좌의 늪에 빠지면
함께 묶인 가족 친척도 다 같이 그 늪에 빠져
서로가 원수라도 되는 듯 서로를 원망하며
연좌의 작두날에 줄줄이 목이 잘리든가
아니면 지옥 같은 수용소행
또는 되살아난 옛날의 유배 살이, 추방
탈북으로 다른 모든 예속의 굴레에서
해방 된 탈북자들도
북한에 가족이 있는 한
자유세계인 한국에서도 인질의 사슬만은 벗지 못해
자기가 찾은 자유로 인하여
가족을 연좌의 늪에 밀어 넣게 된 자책감
그 무자비한 작두날에
가족들의 안녕과 희망, 생명이
차례로 잘려나가는 악몽
자신만 누리는 배부른 식사와 거침없는 자유를
나누지 못하는 미안함으로
항상 마음 아픈 타향살이,
가족에게 미칠 악 영향이 두려워
마치 죄지은 수배자인양 개명하고
이산가족 상봉이라는 말조차 못 꺼내는
상봉의 희망조차 잃은 탈북 이산가족
이것이 한국까지 따라와 끈질기게
탈북자들을 괴롭히는 인질의 사슬

모든 아이콘은 하나 같이
사람들이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못하게 하는 제동장치
허니 무엇이 이루어지랴
다시 말하면 옛날의 노예들과 같이
하나의 사슬에 육체적으로만 묶인 것이 아니라
7개의 보이지 않는 사슬에
정신적으로도 꽁꽁 묶인 사람들
무엇을 할 수 있으랴
가난할 수밖에
빌어먹을 수밖에
굶어 죽을 수밖에
목숨 걸고 도망칠 수밖에
최후에는 나라가 망하는 것
북쪽 사람들은 다 아는 이 사실
남쪽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게 더 큰 탈
그래서 남남갈등에
나아가 종북파들이 생기는 것 아닌가?

세계에서 전쟁의 위험이 가장 큰 나라에서
병력은 줄이고 군비지출은 겨우 GDP대비
이스라엘의 5.6%의 절반인 2.8% 인데
그마저 방산비리로 줄줄이 새고
이래도 되는가? 먹혀도 괜찮다는 건가?
비대칭무기에서는 한국이 열세인데도
허술한 대책, 아니면 말로 하는 걱정안보
강한 사람은 강도질 당하지 않아도
약한 사람은 아무리 빌붙어도 소용이 없다.
우리의 군사적 우세가
한국의 안보와 평화의 필요조건이라면
우리가 안보비용 혹은 평화비용을
적어도 이스라엘 수준인 5.6%까지는 올려야
국민들이 발편잠을 잘 수 있지 않겠는가?
뭐? 그렇게 전쟁 준비만 하다간
전쟁이 터지면 너도 나도 다 죽은다고?
그래서 전쟁 억제력을 키우자는 것 아닌가?
한반도에서
평화의 금자탑은 무기로 쌓아야 할 것이다.
정작 군비경쟁을 하면
경제력이 20배인 한국에
북한은 부득불 손을 들것이다.
과거 소련이 미국에 백기를 든 것처럼
그렇지 않았다가 만일에 만일
장사정포에 서울이 쑥대밭 되고
해킹으로 국가 기간시설이 파괴되며
핵무기에 나라가 초토화 되어
결국 북한군이 분계선을 넘어오는 것을 막지 못하면
북한의 보이지 않는 7개의 사슬도 함께 건너와
모든 한국인들을 꽁꽁 묶어 놓을 것이다.
그러니까 자유로운 한국인들이여
평화롭고 자유로운 때 정신을 차리시라!
미래의 권력인 표만 보고
미래의 자유인 국방은 본체만체하며
사욕과 당쟁 때문에 국사를 망치고 모래알처럼 흩어진다면
너도나도 다 같이 대를 이어 북한인들처럼
김일성일가의 현대판 노예가 되고 말지 누가 알리?

Music

특집방송 오늘은 한 탈북 원로가 글로 증언한 북한의 실상 ‘로봇인’ 두 번째 시간 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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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민군 창건 84주년인 지난 4월 25일 김일성, 김정일 동상에 꽃바구니를 놓은 북한 군인들.
사진-연합뉴스 제공

남한에 정착한 한 탈북 원로가 자유아시아방송에 자신이 나서 자라온 북한의 부조리한 모습을 글로 담아 보내왔습니다. 방화라는 예명으로 글 제목은 ‘로봇인’입니다. 그는 글의 소제목으로 그 첫째가 ‘배급의 아이콘’ 참담한 인간의 제1인권인 식권의 유린을 그렸으며, 그 둘째는 ‘언론의 아이콘’에서는 증폭된 독재자의 나발과 개 짖는 소리뿐으로 비유했습니다. 원로 탈북인은 계속해서 사상의 아이콘, 감각의 아이콘 등으로 북한의 실상을 글로 정리했습니다. 아이콘의 의미는 특정한 사상이나 생활방식의 상징입니다.

특집방송 오늘은 한 탈북 원로가 글로 증언한 북한의 실상 ‘로봇인’을 두자례 나눠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로봇인’ 저자 -방화-

20세기의 전자 공학이
사람 같은 인간 로봇을 만들었다면
20세기의 북한 정치는
로봇 같은 로봇인 들을 육성하였나니
전자가 인간 지혜의 걸작이라면
후자는 인간악과 폭력의 걸작

중세의 노예주들은
하나의 쇠사슬로 사람들을 예속, 허나
그것은 인간에 의한 인간의 예속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뿐만 아니라
그 야만성 또한 감출 수 없으니
오늘과 같은 문명세기에는 당연히 쓸 수가 없어
그래서 발명한 새로운 예속 방법은
눈에 보이지 않는 각종 아이콘들
그 아이콘대로 동작한 로봇 인이
바로 보이지 않는 굴레나 사슬을 걸친
북한의 현대판 노예들

<그 첫째가 배급의 아이콘>

먹이로 동물도 길들이는데
사람이라고 아니 될 까
그래서 야비하게 착안한
일하면 먹이고 안하면 굶기는
식권이 권력에 종속된 북한식 배급제
그것은 사람들이 자기들의
식욕과 뱃집에 따라 먹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주는 대로 주는 만큼만 먹어야 하는
인간의 제1인권, 식권에 대한 유린이며 또한
그들에게 1호 양식이라는 배급 문건은 하나의 족쇄
그것 때문에 직업이나 거주의 자유도 없어
따라서 배급제도는 먹어야 사는 민중에게는
밥줄에 목매인 폭압제도

그런데 주인 없는 협동동장은 해마다 흉작
여름에는 풀 한 포기 뽑지 않는 건달정부
가을이면 주인 인양 곳식은 몽땅 걷어가니
농민은 결코 농촌의 주인이 아니더라
버려진 고아 같은 논밭의 작물들
해마다 흉작으로 집단격리를 질타
때문에 현명한 중국은 개혁개방으로
은근슬쩍 자본주의를 밀수해 호의호식하는데
시대착오적인 북한은
21세기 지구촌에서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사회주의의 꼬리만 잡고 발버둥 치나니
대책 없는 강산에서 배급의 굴레
아사의 올가미로 돌변해
불쌍한 서민들만 잡고 또 잡는다.
아사자 300만도 적다고 보는 건지?
이것이 있어도 없어도 우환거리인
북한의 제1사슬 배급의 굴레

<그 둘째가 언론의 아이콘>

이것은 말의 반도체
찬양하는 말은 통과
불만의 목소리는 차단
그래서 사람들은 굶으면서도
만세만 불러대니 정치하기 참 쉽더라.
죽이 되나 밥이 되나 시비가 없어
떠드는 건
증폭된 독재자의 나발과 개 짖는 소리뿐
헌데 사람들은 입술에 침 발린 소리
아니면 속내를 알 수 없는 침묵
이는 보위부도 풀지 못하는 침묵 방정식의 X
아부하기 싫어서 혹은 목숨은 건지려고
폭발하기 싫어서도 아니고
때를 기다리는 화산의 침묵
하지만 아직은
사회의 광명인 언론은 서산에 지고
어둠 속에서 독재자는 슬그머니
나라의 모든 권력을 제 손 안에
나라의 모든 재부도 제 주머니에 넣은데
웃물이 흐리면 아랫물도 흐린다고
그 아래, 졸개 간부들도 똑 같이 비리를 밥 먹듯 하는데
이 모든 부정부패를 덮어 감추는 불핵홀이있나니
그것이 바로 언론의 굴레

<그 셋째가 사상의 아이콘>

마음대로 사색하고 선택하는 머리들을
독재자에게 저당 잡힌 사람들
깡통 같은 머리는 달고만 다닐 뿐
쓸모가 없더라.
주체사상대로
수령이 모든 것의 주인이니
인민이 주인이 될 것은 아무것도 없어
심지어 자기 생명의 주인도 아니더라.
그것은 누구나
수령을 위하여 살고, 수령을 위하여 죽어야 하나니
만인 누군가 살기 싫다고, 자살하면
그를 반역자로 개죽음으로 몰고
가족은 반역자 가족이 된다.
수령이 모든 것을 결정하니
민중이 결정할 것은 아무것도 없어
복종만 할 뿐이니
유명무실한 머리는
극상 해야 유일사상체계의 녹음장치
이를 위하여 직장인들은
학습총화 준비로 퇴근도 못하고
유일 사상체계 학습에 정신이 나갈 지경
그날 과제를 암기 못하면
집에 가서 아이들 밥을 해야 할 아줌마들 까지도
10시까지 잡아두고 나머지 공부
집에서 엄마를 기다리다 지친 애들은
허기진 배를 안고 잠들고
(혹시 종북 세력들은
배고프면 간식 먹고 자면 되지
라고 변호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북한 애들은 장군님 생일 이외에는
연중 간식이라는 거 모른다. 고)
이렇게 아이들까지 배 골리며 공부하면 뭐해
인간의 본성인 하드웨어가 거절 하는데
그래서 그들의 머리는 차라리
머리칼 농사짓는 텃밭
아니면 모자 걸개가 될 지언정
녹음기 같은 거는 싫다는 거지
모른다는 구실로서
건망증이라는 구실로서
이것이 사상의 굴레

<그 넷째가 감각의 아이콘>

보라는 것만 보이고
들으라는 말만 듣도록
시각과 청각에 굴레를 쓴 사람들
북한 우물 속의 개구리 사촌들
세상을 몰라도 너무나 몰라
듣는 것은 독재가 칭송
보는 것은 우물 밖의 네모난 하늘뿐이니
그들이 어찌 알랴? 세상의 진실을
모를 수밖에 없는 것이
자유로이 보고 자유로이 듣는 자유
자유로이 보고 들을 수 있는 권리를 잃었기 때문
짐승들도 자유로이 보고 듣거늘
하물며 사람은 왜 안 되는 건가?
사람은 시비를 가리기 때문에
원천 봉쇄차원에서
보든 비리를 보지 못하게, 듣지도 못하게 하려는 것
진실의 진리, 정의의 진리
모든 진리를 차단하는 감각의 굴레
모든 사람들을 바보로 만드는 감각의 굴레

특집방송 오늘은 한 탈북 원로가 글로 증언한 북한의 실상 ‘로봇인’ 첫 번째 시간 이었습니다.

다음주에는 두번째 시간으로 조직의 아이콘, 통행의 아이콘 등을 소개해 드립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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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돕기 일일찻집 행사에 참가한 평화봉사단 단원들과 한인들.
RFA PHOTO/김진국

민주평통 워싱턴지회가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탈북자들에게 희망을 전하기 위해 2014년 이어 지난 3월 제2회 탈북자 돕기 일일찻집 행사를 펼쳐 한인 동포들로부터 칭송을 받았습니다. 황원균 회장은 이번 일일찻집 행사에는 350여 명의 한인들과 한인단체들, 미국인들 그리고 전 평화봉사단 단원들도 적극 동참해 7명의 탈북자가 나우 단체를 통해 구출하게 돼 기쁘다고 자유아시아방송과 회견에서 밝혔습니다.

목요대담 오늘은 민주평통 워싱턴지회 황원균 회장으로부터 탈북자 돕기 행사 소식을 알아봅니다.

먼저 지난 3월 26일 가진 행사 많은 한인들로 성황을 이뤘다고 들었습니다.

: 탈북자를 돕기 위한 행사로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워싱턴 협의회에서 워싱턴 동포사회를 통해 기금을 마련하는 그런 일일 찻집 행사였습니다. 이번에 탈북자 돕기 일일 찻집 행사의 특이 사항은 한 동포가 이 행사 개요를 이해하고는 2000달러를 기부해 주셨고요. 그래 작년 일일 찻집 행사보다는 더 많이 모금이 됐지요.

이번 일일 찻집 행사에 동포들뿐 아니라 미국인들도 많이 참여했다고요.

: 한 350여 명이 오셨는데요. 동포사회에 여러 계층의 분들이 오셨습니다. 한인 단체들과 옛날에 한국에서 평화봉사단으로 봉사하신 분들이 참가해 주셨어요. 또한 미국분들도 참여해 주셨어요. 미국인들이 탈북자들의 어려운 상황을 듣고서는 앞으로 도울 방법들도 생각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번 행사에는 한인단체장들과 한인 정치인들이 많이 참여해 주셨다면서요.

: 이번 행사 중에 더 특이한 것은 이 지역에 있는 정치인들, 메릴랜드 주 정부에 지미 리 장관도 오셨고, 메릴랜드 주 하원 마크 장 의원도 오셨으며 평화봉사단 단원들이 만든 Friend of Korea에 랜시 켈리 회장도 다녀가셨고, 주미 한국대사관의 참사관, 또 버지니아나 메릴랜드에 계시는 한국과 관계됐거나 한국계 정치인들도 참석해서 탈북자의 어려운 점들을 같이 나누었고 그분들도 도네이션도 해 주셨어요. 그래 큰 행사로 치러져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탈북자 돕기 행사에 옛날 한국에서 음악 활동하던 분도 참여했다면서요.

: 70-80 대 한국에서 활동하던 구공탄과 연탄집게들 이란 그룹에서 활동했던 한 분이 워싱턴 인근에 사시기에 부탁을 했지요. 옛날 추억도 살림 겸 해서요. 그런데 그분도 탈북자에 대해 관심이 많아서요. 그래 참여를 부탁했는데 기꺼이 무상으로 참여해 주신 겁니다.

한국에서 60-70년도에 평화봉사단으로 봉사하던 미국인들도 동참해 주셨다고요.

: 이런 시간을 통해서 옛날 60-70년대 한국이 어려울 때 봉사하던 기억도 떠올리고 지금은 한국의 통일에도 관심이 많으세요. 거기에 특히 탈북자들이 탈북한 후에 어렵게 살고 생사를 넘나든다는 이야기에 감격에 복 바쳐 하시고 도움도 많이 주셨어요.

한국의 북한 인권단체 나우(NAUH)를 통해 탈북자를 구출하게 된다고요.

: 실은 지난 번 행사 때 나우에 관계자였던 대학생들이 WEST 프로그램을 통해 영어를 배우러 왔다가 행사에 연관돼서 나우에 대해 설명해주고, 저희가 나우라는 단체를 믿을 수 있어서 같이 인연이 되어서 한 번 행사를 하고 나니까 또 나우 대표자인 지성호 씨 탈북 과정이나 어렵게 생사를 드나들던 증언을 듣고 난 다음에 바로 이분들을 통해 도움을 드리면, 도움이 필요한, 도움을 필요로 하는 탈북자들에게 도움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에서 이렇게 나우를 통해 도움을 줬는데 지난 행사로 얻은 수입금으로 4명의 탈북자를 구출한 이야기를 듣고, 올해 두 번째 행사를 기획했는데 이번에도 더 많은 탈북자가 구출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모금이 두번에 걸쳐 된 것인데 작년에 8. 15행사의 일원으로 수익 사업이 있었고, 그 수익이 나면 탈북자를 위해 돕겠다고 해 마련된 기금 2000달러와 이번에 일일 찻집을 통해서 생긴 모금액 1만 천여 달러가 모아졌어요. 그래 저희 협의회에서 조금 더 보태서 1만 2천달러를 만들어 총 1만 4천여 달러가 전달되어 7명의 탈북자가 구출될 것이라 생각하여요.

민주평통 워싱턴의 다른 행사들도 소개해 주시지요.

: 탈북자 돕기 위한 일일 찻집, 골프대회, 불우이웃돕기, 통일을 기원하는 문화행사가 있고요. 이곳 버지니아주 밀퍼드 카운티에 삼팔선과 위도가 같은 곳이 있어요. 바로 캐럴라인 중학교입니다.

이곳에 삼팔선에 관한 것과 625에 관한 기념물이 있어요. 그래 이번에 캐럴라인 학생들하고 저희 평통하고 행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통일로 가는 길에 우리 평통만이 아니라 동포사회 플러스 현지인들, 젊은 학생들이나 과거에 한국과 연관되어 있던 분들이 함께해 통일을 준비하는 거지요. 이번에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현지인들이나 초중고 대학 대학원생 그리고 직장인이 참가하는 통일 안보 비젼이라는 제목으로 행사를 하는데요. 프리젠테이션을 하거나 토크 쇼를 하거나 마술이나 연극 음악의 장르에서 재능있는 젊은 학생들, 일반 직장인들이 미국인이나 한국분도 참가가 가능한데 영어로 해도되고 한국어로 해도되는데요. 오는 6월에 예선을 거쳐 7월에 본선을 할 겁니다. 이런 행사를 통해 통일의 길에 가깝게 하려는 거고요. 또 하나는 4월에는 정례회의를 통해서 수잔 솔티 씨가 초청돼 북한인권에 관한 세미나와 강연회도 개최합니다. 그래 물론 저희는 해외 동포이지만, 대한민국의 통일에 보다 관심을 가지고 미국 주류사회 분들하고 함께 미국에서는 이웃이고, 동맹인 한국에 통일을 위해서 조금씩이나마 기여해 주고 싶어하고 도와주고 싶어해서 또한 참여도 해 주고 싶어해서 이런 프로그램들을 하고 있습니다.

탈북자 초청 토론회도 추진할 계획을 갖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 탈북 대학생으로서 해외 경험이 없는 학생들을 중에서 미국을 보고 공부하고 갈 수 있고 또 미국에 사는 재미동포 청년들 비슷한 나이끼리 서로 통일이라는 주제로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는 그런 장르를 만들려고 이번 사업 계획에 들어가 있습니다. 기금이 마련되면 탈북대학생들을 미국에 초대해 갖는 사업이 될 것입니다.

이번 행사를 통해 한인들이 탈북자들 어려운 사정을 많이 알게 됐다고요.

: 이번에 행사를 치르면서 느낀 게 우리가 외국에 살다보니까 미처 모르고 있었던 부분에도 알게 됐는데 미국에 사는 동포분들도 통일에 대한 관심과 탈북자들이 과거에 어렵게 살아왔고 탈북과정에서 어려운 점, 현재 정착하는 과정에서 어렵지만 잘 되어 가는 것을 보면서 동포들 마음속에 가능하면 탈북하시는 분들이 어려운 사경에 있거나 어려움에 처한 상황을 도와줘야겠다고 해서 이번 행사는 행사 수입금은 얼마 안 되었는데 도네이션들을 많이 했어요. 작게는 100달러, 많게는 2000달러, 540달러, 240달러 등 도네이션 해 주신 분들이 많았어요. 이런 분들이 많아서 좋은 결과가 나왔고요. 이런 시간을 통해서 탈북자들을 이해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됐으니까 평통이 새로이 임기를 맞을때마다 이런 행사가 치뤄져서 어려움을 겪는 탈북자에게 보다 더 많은 도움을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목요대담 오늘은 민주평통 워싱턴지회 황원균 회장으로부터 탈북자 돕기 행사 소식을 알아봤습니다. 지금까지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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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인 강 모 씨는 최근 탈북민들이 한국과 중국에서 손 전화기와 서신을 통해 북한 가족들과 연락을 취하면서 북한 내부의 소식을 잘 알고 있으며, 특히 한국 정착 탈북자들이 열심히 돈을 벌어 가족들에게 보내 북한에 지하자금이 형성되고 있다고 자유아시아방송과 회견에서 밝혔습니다. 강 씨는 지하 자금이 형성되면서부터 북한도 이제는 먹고 사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 사상이 밥 먹여 주지 않는다는 것과 우리가 살길은 우리 스스로 찾아야 된다면서 돈에 대한 집착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목요대담 오늘은 탈북인 강 모 씨로부터 북한 내부 소식을 전해 듣습니다.

 

많은 탈북인들이 북한의 가족과 전화나 서신으로 연락망을 형성하고 있다고 들려줍니다.

 : 요즈음 북한도 김일성 김정일 시대처럼 모든 정보가 차단 시대가 아닙니다. 어쩌면 많은 탈북민들이 한국에 오고 많은 탈북민들이 중국에 와 있으면서 여러 가지 통신 수단 손 전화기나 서신을 통해서 북한 가족들과 연락을 하고 있습니다.

 

북한 내부 소식으로 김정은 체제에 들어서 잔인한 공개처형과 가혹한 탄압으로 북한사람들을 통제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 근간에 북한 소식을 제일 많이 듣는 것이 북한의 현실적인 내부 사정인데요. 김정은 체제에 들어서면서 김정은은 아버지나 할아버지처럼 혁명적 업적을 내놀 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북한의 일반 주민들이 김정은에 대해서 김일성이나 김정일처럼 존경하는 인물은 아닙니다. 그래 어린 나이에 정권을 잡다 보니까 백성들에게 강한 이미지를 주려다 보니까 아버지 할아버지보다 더 잔인한 공개처형이라든지 가혹하게 탄압하는 그런 행동을 하면서 북한사람들을 통제하려는 것이지요.

 

한류문화가 북한 깊숙이 파고들어 점점 북한주민들 의식이 깨어나고 있다고 말합니다.

 

: 북한 형제들과 계속적으로 통화를 하고 중국에 가서 탈북해 나온 분들 만나다 보니까 그분들이 한 이야기입니다. 김정은 체제는 오래갈 수가 없다 하는 것은 북한 사람들 스스로 이야기 하고 있는 겁니다. 그것은 지금 한국에 오고 중국에 있는 탈북자들이나 한국에 많은 선교단체를 통해서 한국의 소식이 북한에 많이 들어가고 있다는 겁니다. 흔히 우리가 말하는 한류문화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 한류문화가 북한으로 많이 들어가면서 북한사람들이 의식이 깨어나고 있다는 것을 북한사람들을 통해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김정은 체제와 김일성 김정일 체제와 비교도 해 줍니다.

 

: 그리고 들어보면 김일성 김정일 시대에는 북한사람들을 속이면서 정치를 할 수 있는 여러 여건들이 좋았습니다. 쉽게 말하면 중국이 아주 문이 닫혀 있었고, 탈북자들이 많지 않은 시대이니까 그때에는 한국의 소식들도 북한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길들이 많이 막혀 있었지요. 그러나 김정은 체제 들어서면서 많은 탈북자가 한국에 오면서, 그리고 온 탈북자를 통해 소식들이 북한에 들어가면서 김정은 체제가 지금 아주 불안을 느끼는 것이지요. 김정은 도 자기 측근들을 모여 놓고 60만의 한국 군대가 무서운 것이 아니라 북한에 위협되는 것은 28000명의 탈북자다. 그래 탈북자 통제를 잘하고, 한국에 가있는 탈북자들을 회유해서라도 다시 북한으로 올 수 있도록 그렇게 공작을 하라고 지시가 내려졌다고 합니다.

 

요즈음 북한 정권이 외부 소식이 들어 옴으로 해서 두려워하고 있다고 전합니다.

 

: 이런 이야기를 북한으로부터 직접 많이 들으면서 우리가 생각해 보는 것은 김정은 체제 들어서면서 외부 소식 때문에 자기들의 정권에 대한 이런 두려움을 많이 가지고 있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우리가 북한동포들하고 얘기를 나누면서 정말로 놀라운 것이 한국에 온 탈북자들이나 중국에 온 탈북자들이 가족을 돕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탈북민들에 의해 북한에 지하자금이 형성되어 새로운 시장 경제의 틀이 생기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들이 열심히 돈을 벌어서 가족들에게 돈을 보내는 것이지요. 그런 돈들이 북한으로 흘러들어 가면서 그런 돈을 통해서 북한에 지하자금을 형성하는 것이지요. 지하자금이 형성되면서부터 북한은 이제 더 위험을 느끼는 것이지요. 공산주의 체제라고 하지만 북한도 이제는 먹고 사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 깨달음을 가지면서부터 사람들이 옛날에는 사상이 밥 먹여준다던 사람들이 이제는 사상이 밥을 먹여 주지 않는다. 우리가 살길은 우리 스스로가 찾아야 된다면서 돈에 대해서 집착을 하고 돈을 벌겠다고 하는 그런 집념들이 강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북한의 정치 일꾼들이지요. 김일성 김정일을 위해 일했던 사람들이 사상이 무너지는 것이지요. 돈들이 들어가면서요. 그 돈이 들어가서 사상이 무너지는 그런 현상들을 많이 보게되는 것입니다.

 

탈북민들과 북한 내 주민들이 함께 앞으로 통일시대의 큰 요소를 만들어야 한다고 들려줍니다.

 

: 한국에 나와 있는 탈북자들이 앞으로 통일시대를 맞으면서 통일의 여러 가지 요소들을 만들어 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우리 대한민국은 평화 통일 평화 통일하면서 이야기 하잖아요. 저는 그 평화라는 것은 그냥 오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평화를 위해서는 누군가가 희생해야 되고 그리고 평화를 위해서는 무언가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한국에 와서 보니 한국 국민들 평화통일을 그렇게 좋아하는데 저는 그 평화통일을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사람들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정말 이 시대에 한국에 온 탈북민들을 잘 세워서 이 탈북민들을 통해서 많은 군중들을 깨우고 군중들을 통해서 북한체제가 바꿔질 수 있는 그런 요소들을 만들어야 되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해 봅니다.

 

한국에 기독교인들이 왜 공산국가는 기독교를 핍박하는가를 알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 우리 한국 교회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공산주의와 기독교가 악연이 되어서 기독교인들이 공산주의를 맹목적으로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저는 북한 체제에서 태어나서 북한에서 살 다 온 사람으로서 북한의 공산주의를 보면서 공산주의가 왜 기독교를 핍박했는가 하는 것을 잘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한국의 많은 기독교인들이 북한 공산주의를 비롯해서 지금까지의 공산국가들이 왜 기독교를 핍박했는가! 이 사실을 너무 모르더라고요. 우리가 공산주의 하게 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람들이 스탈린 모택동 김일성 아닙니까? 스탈린 모택동 김일성이 공통적으로 부르짖었던 것이 혁명입니다. 공산주의를 부르짖었던 스탈린도 공산주의 혁명을 해야 한다면서 제일 먼저 한것이 교회 문을 닫아 버리는 것, 그리고 기독교인들을 잡아 처형하고 감옥에 가두는 거였습니다. 그때 솔제니친이라는 분이 노벨상을 받은 분 아닙니까? 그때를 목격하고 이렇게 정의를 내렸습니다. 인간이 교회 문을 닫아 버리니, 하나님이 하늘 문을 닫아 버렸다. 솔제니친이라는 분이 책에서 그렇게 정의를 내리지 않았습니까? 저는 오늘날 우리 한국 교인과 전 세계 기독교인들이 이말 에 귀를 기울여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공산주의와 기독교가 악연인 것이 아니라 공산주의자들이 기독교를 어떻게 핍박했는가 하는 것을 우리 한국 교인들이 기억해야 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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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빗 호크씨와 강철환, 정광일(왼쪽) 씨가 정치범 수용소 위성사진을 확인 하고 있다. RFA PHOTO/ 이진서

 

한국에서 ‘북한 정치범 수용소 피해자 가족협회’를 이끌고 있는 청진 출신 탈북자 정광일 씨는 중국에서 무역하는 과정에 한국사람 만났다는 이유로 지난 1999년 보위 부에 체포됐으며, 이후 당국의 모진 고문에 못 이겨 한국의 간첩임을 자백한 뒤 2000년 4월부터 3년 동안 요덕수용소에 수감됐었다고 자유아시아 방송과 회견에서 밝혔습니다. 정 씨는 수용소에서 하루 16시간씩 강제노동에 시달리는 등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았으며, 한국에 온지 12년이 됐지만 아직도 겨울에 눈이 오면 수용소에서 나무를 찍고, 찍어낸 나무를 끄는 악몽을 꾸는데 나무에 크게 다쳐 죽어가는 사람들의 신음소리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증언했습니다. 정 씨는 북한이 수용소의 존재를 부인하면서 유엔북한인권조사위원회 보고서와 유엔북한인권결의안을 무효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대해, 자신을 비롯한 일단의 정치범수용소피해자협회 회원들은 유엔 인권위원회에 앞에서 북한측의 검증을 받을 용의가 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목요대담 오늘은 탈북자 정광일 씨의 요덕 정치범 수용소 증언으로 함께합니다.

 

보위 부에 체포된 경위를 설명합니다.

 

: 제가 체포된 동기는 무역을 하면서 중국에 와서 한국 사람들과 접촉했습니다. 사실, 외국에 나올 때 한국사람들하고 접촉하도록 되어 있지 않습니다. 북한 법으로는 반역 행위로 취급합니다. 그런데 무역을 하는 과정에서 중국 사람들에게 너무 손해를 많이 봐서, 제가 어쩔 수 없이, 그래도 그 어떤 이득을 봐야만이 나라(북한)에 바치거든요. 바쳐야 되는데 그 저의 할당량을 바치지 못하니까? 저도 어쩔 수 없이 남한사람을 접촉을 했고, 그러다 어느 날 신고가 되어서 국가안전보위 부에 간첩혐의로 체포되어서 제가 10개월간 별의별 고문을 다 받았습니다. 북한당국도 어느 정도는 인정합니다. 우리민족끼리라는 북한 사이트에 4월 10일자로 저를 쓰레기라고 까지 표현하면서 지금 국제사회에 나와서 이렇게 북한을 비난한다고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이런 기사까지 나와 있더라고요.

 

고문 받은 이야기 입니다.

 

: 그래서 제가 10개월간 고문을 받으면서 정말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다 보니까? 고문이라는 고문을 별별 고문을 다 받았는데 제일 힘들었던 고문이 비둘기 고문이었는데 앉지도 서지도 못한 상태에서 약 3일에서 4일씩 메달아 놓고 방치한 체 간수들이 나갑니다. 그러다 보니까 앉아 있어야 잠을 잘 수 있는데, 앉지도 서지도 못한 상태에서 완전 탈진하다 보니까? 제가 체포될 당시 체중이 75킬로 였는데, 10개월 지난 다음 제 체중이 36킬로가 됐습니다. 육체적으로 너무 힘드니까? 제가 간첩이 맞는다고 거짓 자백을 했습니다. 거짓 자백을 하니까 바로 끌고 가더라고요. 끌려 간 곳이(그것도 재판을 받고 간 것도 아닙니다.) 끌고 가니까 끌려가서 보니까 그곳이 바로 요덕에 있는 제15호 정치범 수용소였습니다.

 

정치범 수용소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

 

: 수용소에 가 보니까? 정말 수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는데 제가 있던 구역이 400에서 600백명 정도가 죽고 나거나 어디 끌려가거나 이런 사람들로 교체가 되면서 그 정도 유지가 됐는데요. 그 사람들 죄명을 보면 말도 안 되는 죄 입니다. 종교를 가졌다고 해서 잡혀온 사람, 특히나 고난의 행군 시기 말을 잘 못했다 잡혀온 사람, 그 다음 북한에서 가장 큰 사건이라고 하는 심화조 사건에 연유돼서 잡혀온 사람, 심지어 부인이 자기 남편을 신고해서 잡혀온 사람이 다 있더라고요. 신문지에 있는 김정일의 초상화를 찢어 담배를 말아 피웠다고 해서 잡혀온 사람이 다 있었고요.

 

정치범 수용소의 수감자 생활은

 

: 수감자들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짐승보다 못한 취급을 받았고요. 하루에 16시간 강제 노역을 했습니다. 새벽 4시에 기상을 시켜서 여름에는 옥수수 농사를 위주로 했는데 저녁 8시까지 작업을 시키고 그 다음 저녁 8시에 끝나면 바로 재우는 것도 아닙니다. 9시부터 밤 11시까지 사상교육을 합니다. 당의 유일사상체계확립의 10대 원칙이라는 것을 달달 외워야 되거든요.

 

수용소에서 주는 음식은

 

: 식사라고는 일명 콩 밥이라고 하는데 두부 콩과 옥수수를 섞어서 밥도 아니고 죽도 아닌 것을 한 재기씩 줍니다. 솔직히 고된 노동에 시달리다 보니까 먹고 나면 정말 배고팠어요. 그리고 대부분의 수감자들이 저처럼 오랫동안 고문을 받고 허약 병을 얻은 사람들이 그런 콩밥을 먹고 영양섭취가 제대로 안되 가지고 영양 실조로 대부분이 많은 죽었습니다.

 

수용소에서 인간 이하의 취급 받은 증언입니다.

 

: 특히나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았을 때는 정말 그 모멸감이라는 것은 지금도 생각하면 치가 떨립니다. 어떤 일이 있었느냐 하면은요. 여름에는 옥수수 농사를 하는데 옥수수 씨앗을 나눠주는데 너무 배가 고프니까? 수감자들이 날것을 먹는다고 인분을 버물려서 나눠줬어요. 그런데 굶주린 수감자들은 너무 배가 고프니까? 인분 뭇은 옥수수도 도랑물에 씻어 먹습니다. 그걸 먹은 사람은 한 명도 살아난 사람이 없이 다 죽었습니다. 또한 옥수수가 어느 정도 자라면 인분믈을 풀어 주는데요. 한마디로 옥수수 빨리 자라게 영양제처럼 인분물 뿌려 주는데 큰 나무통으로 부어주다 보니까 고르지 못한 양을 준다고 하면서 보위 원들이 우리가 먹는 밥그릇으로 주라고 했습니다. 아침에는 플라스틱 그릇에다 밥을 받아 먹고, 밖에 들고 나가서 인분물을 퍼서 옥수수에 주고 점심에는 도랑물에 씻어 다시 그 그릇에 점심을 받아 먹었습니다. 아마 지구상에 그 어떤 짐승도 그렇게 변을 담았던 그릇에다가 먹지 않을 겁니다. 그런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았고요.

 

벌목하면서 죽어간 사람들 이야기입니다.

 

:특히나 또 겨울 같은 경우에는 벌목을 했는데 벌목을 하면서 수많은 수감자들이 죽었습니다. 왜냐하면 해발이 1500이 넘는 산에 올라가서 순수 도끼 하나 가자고 하루에 직경이 40이고 길이가 4미터 되는 나무를 7대씩 찍어야 돼요. 나무라는 게 도끼질을 하다 보면 한쪽 방향으로 찍어 넘기는데 바람만 불면 잘못해서 자기 쪽으로 넘어 올 때가 있게 되면 거기에 맞으면 팔 다리가 부러집니다. 수용소 특징이 뭐냐하면 일을 못하면 밥은 안 줍니다. 그래 부상당한 사람은 일을 못 하다 보니까 밥을 못 먹지요. 그러면 굶어 죽게 되지요.

 

벌목하다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고 증언합니다.

 

: 그리고 또한 지금도 생각하면 눈물이 나는 것은요. 굶주린 사람들한테 먹을 것이 제일 귀중하거든요. 나무를 그렇게 베어 논 다음 나무를 2킬로 되는 거리에 끌어 놓는데, 그 2킬로되는 곳에다가 옥수수 떡을 1킬로 정도 갔다 놓습니다. 그래 놓고 수감자들에게 경쟁을 시킵니다. 많이 나르는 사람에게 상으로 준다고요. 그러다 보니까 수감자들이 그걸 먹겠다고 앞에 자기 동료가 있든 없든 자기 나무만 내려 보냅니다. 45도 이상 된 경사에서 나무가 내려오면 쏜살같이 내려옵니다. 거기에 맞으면 사람이 여지없이 허리가 뚝뚝 부러지고 머리가 날아가고요. 그런데 그렇게 죽은 사람을 겨울에 묻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북한은 땅이 보통 1.5미터 이상 업니다. 그러면 그 땅을 파려면 대 여섯 명이 달라 붙어 땅을 파야 하는데 그 동안 나무를 못 자른다고 해서 죽은 사람을 절대 묻지 못하게 합니다. 질질 끌어다가 창고가 있는데 창고에 넣어 놓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아직 목숨이 끊이지 않은 사람들 이거든요. 신음소리를 냅니다. 영하 30도 되는 그 겨울 밤에 거기서 얼어 죽고 있어요. 얼어 죽고 있는데 그 신음소리가 화장실 갈 때면 들립니다.

 

지금도 정 씨는 악몽에 시달린다고 이야기 합니다.

 

: 정말 지금도 저는요. 대한민국에 온지도 10년이 넘었습니다. 정확히 12년이 됐거든요. 그런데 아직도 겨울 같은 경우에 서울에 살면서 눈이 오게 되면 그때 그 악몽이 아직도 꿔 지거든요. 수용소에서 나무를 끄는구나! 막 끌다가 악몽에서 깨어나면, 아니로구나! 식은 땀이 흐르지요. 지금도 생각하면 치가 떨립니다.

정치범 수용소의 수감자들에게 주는 이야기 입니다.

: 제가 수용소에서 살다 나오면서 부러운 눈길로 저를 바라보던 수감자들 얼굴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 납니다. 그분들에게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사람이 희망이 없으면 죽습니다. 그 누군가 당신들을 구하기 위해서 활동을 하고 있고, 이렇게 호소를 하고 있으니까 신심을 가지고 정치범 수용소가 해체되는 그날까지 살아 주시기를 그러면 정말 감사하겠다고 신심을 가지고 북한에 있는 모든 정치범 수용소 수감자들은 그 희망을 가지고 수용소가 해체되는 날까지 살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한국 국민들에게 당부하는 이야기 입니다.

 

: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어떤 때는 부끄러울 때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미국에도 북한인권법이 있고, 일본에도 북한인권법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현재 당사국인 대한민국이 북한인권법이 없습니다. 미 국민들이 북한인권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주고 우리를 지지해 주는 걸 보면 감사하기 짝이 없지요. 저 사람들은 우리와 피부색도 틀리고 자라온 땅도 틀리고 환경도 틀리지만, 그래도 그 북한 사람들을 위해 지원해 주는 걸 보게 되면 참 고맙지요. 그런데 아직도 남한에서는 북한인권이라고 하면 정치라고 생각을 하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하루빨리 이런 생각을 가지신 분들도 생각을 바꿔서 북한인권을 개선하는 데 많은 동참을 해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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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한국 ICNK 회원단체 주최로 열린 요덕 서림천 구역 180수감자 명단 제출을 위한 기자회견에서 2000년부터 2003년까지 요덕수용소에 갇혀 있었던 정광일 노체인 대표가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제공

 

남한의 북한 인권단체 노체인 즉 북한정치범 수용소 피해자 가족협회 대표이며, 북한의 정치범수용소 출신 탈북자 정광일씨가 지난 6월 26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한국 ICNK(북한 반인도범죄 철폐 국제연대) 주최로 열린 기자회견에서 동료 수감자 180명의 이름과 나이, 수감 이유 등을 담은 보고서를 공개했습니다. ICNK 측은 이날 공개한 보고서를 지난 23일 개소한 유엔 인권 서울사무소에 제출한 바 있습니다. '요덕수용소의 내 동료 수감자들: 서림천과 함께 사라진 180인'이란 제목의 이 보고서는 2000~2003년까지 요덕수용소에 강제로 수감된 정광일씨가 자신의 기억을 토대로 작성한 것입니다. 한편 국제 인권단체들은 북한에는 정치범수용소에 8만∼12만 명이 수감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나, 북한은 정치범수용소는 존재하지 않으며 죄지은 사람들을 교양하는 교화소만 존재할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 목요대담 오늘은 북한 인권단체인 노체인(No Chain)의 대표를 맡고 있는 정광일 대표와 함께합니다.

 

정광일 대표는 북한정치범 수용소 피해자 가족협회 즉 노체인은 어떤 단체를 소개합니다.

 

:저는 원래 북한정치범수용소해체운동본부(NK GULAG)에서 사무국장으로 활동을 했는데요. 활동하면서 새롭게 발견한 것이 직접적으로 정치범 수용소에서 피해를 받았던 피해자보다도 남한에 엄청난 많은 정치범 수용소 피해자 가족들이 많은 겁니다. COI(유엔북한인권조사위)조직되어서 조사 사업을 하면서 강제구금에 관한 청원서를 쓰다 보니까? 그 청원서에 강제 구금된 가족들의 피해 상황에 대한 조사 중에 많은 피해 가족이 있다는 것이 확인이 돼서 북한정치범수용소피해자가족협회를 만들게 되었고, 남한 수도권에만 사는 가족들이 1,000명 가량 됩니다. 이분들을 위주로 해서 실제적으로 수용소에서 직접 피해를 받은 수용자 출신 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피해자 가족이거든요. 그래서 유엔청원서라든가, 그리고 북한이 정치범 수용소 존재 자체를 부인하니까? 우리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정치범 수용소 해체를 위해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노채인이 설립돼서 활동한 이야기입니다.

 

: 우리 단체가 설립돼서 기본적으로 활동한 것이 COI(유엔북한인권조사위) 보고서가 나오게 된 동기라고 보시면 됩니다. 왜냐하면 유엔에 공식적으로 강제 구금에 관한 청원서를,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연좌제 또는 남한으로 오려고 했다가 잡혔거나 또는 중국에서 기독교를 접했다고 잡혀서 현재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된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COI(유엔북한인권조사위)보고서에도 나왔지만, 우리 가족들 증언으로 해서COI(유엔북한인권조사위)보고서가 만들어 졌다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정 대표는 노체인 활동 중에 주요 성과에 대해서도 설명 합니다.

 

: 성과라고 보면COI(유엔북한인권조사위)보고서에도 많이 나왔지만, 현재 수정하고 있는데. 정확한 북한 정치범 소용소 수감자 수는 알 수가 없습니다. 북한당국에서만 알 수 있는 것이지만, 약 20만 명이 수감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그중에 한 60%-70%가 애매하게 그것도 이념이 틀리고 종교를 가졌다고 해서 또한 먹고 살기 위해서 남한으로 탈출하려다가 잡혀간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정 대표는 정치범 수용자들 가족에 관한 이야기도 들려줍니다.

 

: 북한 같은 경우에는 말 그대로 지금 정치범 수용소 존재 자체가 북한 주민들에게는 공포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가족에서 그 누군가 정치범이 되어서 수용소에 끌려갔다고 하면 그 가족의 친척부터 시작해서 직접적인 가족인 당사자나 형제들이 사회활동을 하기가 힘듭니다. 심지어 결혼하기도 힘들어집니다. 왜냐면, 정치범 하고는 절대로 결혼을 안 시키려 하거든요. 제가 북한사회에 살면서 그런 경우를 많이 목격을 했고, 가장 가깝게는 제 딸의 경우인데요. 제가 무역을 하다 보니까? 그래도 잘 나가는 계층에 속했는데 하루아침에 저의 딸도 정치범의 딸이 되어서 학교에서 왕따 당하고 정말 억울한 생활을 했더라고요. 남한에 와서 들어보니까요. 저도 실제적으로 남한에 와서 10년이 넘다보니까? 결혼해서 아이까지 있습니다. 그래도 옛날 이야기하면 아직도 눈물이 긍설해 하고 있습니다.

 

정 대표는 자유세계를 다니며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를 증언하는데 북한 정치범 수용소와 다른 나라의 수용소나, 인권에 대해서는 전혀 비교할 수가 없다고 강조합니다.

 

: 인권이 열악한 나라들이 지구상에 있습니다. 없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중국도요. 정말 인권이 보장되지 않는 나라거든요. 그런데 탈북자들이 중국에 와서 뭐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이렇게 자유스러운 나라가 없다고요. 솔직히 자유스런 나라가 아니거든요. 중국도요. 그러면 중국이 자유스런 나라면 북한은 뭐라고 합니까? 감옥이지요. 전 세계 저런 나라가 없습니다. 제가 COI(유엔북한인권조사위) 보고서를 보면서요. 북한은 첫째로 이동의 자유도 없고 여행의 자유도 없습니다. 마음대로 여행할 수도 없고요. 그런 나라는 지구상에 없습니다. 아무리 인권유린 국가라 해도 공산국가였던 쿠바도 그렇게 여행의 자유를 박탈하는 나라는 아니거든요. 어느정도는 다닐수 도 있고 지금 전 세계적으로 TV 채널이 하나인 나라는 북한밖에 없습니다. 라디오도 고정시켜놓고 다른 방송을 절대로 못듣게 하는 한마디로 자기 국민을 바보로 만드는 나라 그런 나라는 정말 지구상에 북한 밖에 없습니다.

 

북한정치범수용소피해자 가족협회의 중요 활동도 들려줍니다.

 

: 제일 먼저 저희가 할일은 우선 첫째로 김정은을 ICC (International Criminal Court) 국제형사재판소에 제소하는 겁니다. 제가 2008년도부터 네델란드에 있는 국제형사재판소에 다녀왔고 그때는 김정일를 ICC(국제형사재판소)에 제소하려고 시작했는데 이제는 세대가 바꿔서 김정은 체제가 됐죠. 그래 어떻게 하나 지금 뭐 사실 불가능합니다. 불가능하나 어떻게 하나 ICC 까지 끌고 가는 것이 최종 목적이고, 두번째는 ICC(국제형사재판소)에 김정은을 끌어다 놓은 다음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를 해체하는 데 최종 목표를 둘 것입니다. 왜냐하면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가 해체되면 민주화가 어느정도 실현될 수 있습니다. 북한주민들에게 제일 공포의 대상이고, 폭압정치의 산물이거든요. 정치범 수용소가요. 그래서 저희 목표가 우선 첫째로 김정은을 ICC(국제형사재판소)에 제소한다. 두번째는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를 해체를 촉구하기 위해서 여러가지의 캠페인이라든가 활동을 할 것입니다.

 

회원들의 활동가운데 동정도 들려줍니다.

 

: 북한은 정치범 수용소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회원들이 다행히도, 탈북자들이 국제사회에 나와서 증언을 하는데 정말 북한이 탈북자 한 명을 놓고도 인신공격을 하고 가족 친척을 끌어다 앉혀놓고 그런 행동을 하다보니 탈북자들 겁에 질려 있습니다. 그런데 협회에 있는 분들은 당당하게 국제사회에 나가서 북한이 검증을 하겠다면 검증을 받겠다. 그렇게 하니까? 정말 우리로서는 저뿐이 아니고 현재 청원을 받고 있습니다. 국제사회에 당당하게 북한당국이 검증하겠다면 검증을 받겠다는 분들이 10명 가령 나섰습니다.

 

정광일 대표가 세계 한인동포와 북한동포들에게 당부하는 이야기 입니다.

 

: 물론 북한의 인권에 대해서 어렵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해외동포들 중에서요. 그리고 북한인권이라고하면 그 어떤 정치로 생각을 하는데 절대로 인권이 정치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많은 분들이 실제로 자기 동포가 같은 핏줄을 타고난 동포들이 자기 형제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형제들이 그런 고통을 당하고 있다. 이런 참 마음을 가지고 북한인권개선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특히나 또 북한에 계시는 우리 북한 주민들은 하루빨리 구속에서 해방하기 위해서는 정말 자유는 공짜가 아닙니다. 공짜로 될 수 없습니다. 그 어떤 대가가 있어야 합니다.

 

자유아시아방송 목요대담, 오늘은 북한 인권단체인 노체인(No Chain)의 대표를 맡고 있는 정광일 대표와 함께 했습니다.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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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5

탈북자들과 함께 북한의 실상을 파헤쳐보는 '인사이드 엔케이(Inside NK)'는 매주 일요일 저녁 8시에 '아프리카TV'로 생방송됩니다. 신동혁, 박성업 두 MC와 함께한 첫 번째 주인공은 북한 인권 단체 NAUH 를 이끌고 있는 지성호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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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께서 두부를 못 얻어오신 어느날 밤

회령으로 가는 화물열차를 타고 석탄을 훔쳐서 가족의 생계를 돕던 16살 성호 씨. 지금도 잊지 못하는 그 날은 어머니가 그를 위해 두부 한 모를 얻으러 나갔다가 그냥 돌아오신 날이었다.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열차에 오른 성호 씨,

“지금도 떠올리기는 싫어요. 새벽 두 시에 화물열차를 탔죠. 근데 빈혈이라고 하나요.. 달리는 열차에서 정신을 잃고 그만 떨어지고 만 거에요. “

열차는 그의 몸 위로 지나가고 … 절규 소리는 회령시 전체에 퍼지는데..

“전 그때 사람의 비명 소리가 그렇게 크게 들리는 줄 몰랐어요. 마을 넘어서 중국에까지 들리는 것 같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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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은 석탄을 담느라 바쁘고 성호에게 달려와 지혈을 해 주거나 도움을 주는 사람은 없었다. 다행히 철도관계자의 도움을 받아 병원에 갔다. 마취제가 없어 부분 마취만 하고 그 아픔을 고스란히 느끼면서 성호는 상처입은 손과 다리를 절단해야만 했다. 대야에 핏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시커먼 얼굴에 하얀 눈만 드러난 성호 씨는 의사한테 매달렸다.

“선생님 제발 저를 살려주세요.. 저희 가족들이 굶어 죽어요.”

개보다 나은 자유의 삶을 찾아서

몸이 회복될 무렵 주변에서 중국을 다녀온 사람들이 많아지고 성호도 바깥 세상에 대한 소식을 자주 듣게 된 성호 씨.

“한번은 자주 국경을 넘던 친구를 따라가 중국의 촌마을에 갔었는데 그곳에서 개가 고깃국에 쌀밥을 먹는 걸 보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어요.”

성호 씨도 탈북을 결심하게 되는데.. 멀쩡한 두 다리로 건너도 버거운 두만강의 물살을 목발을 짚고 건넌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거센 물살 속에서 중심을 잃을 때마다 남동생이 도와줘 힘겹게 두만강을 건넜다. 하지만 한국에 가기 위해선 라오스와 태국을 거쳐야 했다. 라오스 국경을 넘을 당시,

“너무 힘들었어요. 건강한 몸도 아니고. 12시간을 목발 짚고. 대오에서 떨어지면 죽으니까.. 한번은 산에서 굴러 떨어졌는데 만약 목발이 깨졌으면 못 따라가고 죽었을 거에요.”

태국이 가까워지면서 드는 걱정(?)

라오스를 지나 태국, 즉 타이에 다다를 무렵 성호 씨는 새로운 걱정거리가 생겼다.

"남조선 사람들은 자본주의 나라이기 때문에 ‘영양가’만 따지고 사람을 오로지 돈으로만 평가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북에서 들은 얘기가 맞다면 저 같은 장애인은 태국에서 쫓아내버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

태국주재 한국대사관에 도착한 성호 씨. 통상 3개월 정도의 대기 시간이 지나면 한국을 갈 수 있었다. 어느 날 대사관 직원이 성호 씨를 따로 불렀다. 직원은 성호 씨에게 지금까지 고생이 많으셨다며 15일 후면 한국에 갈 거라고 얘기했다. 성호 씨가 묻자 대한민국은 장애인, 노약자를 우선으로 대우하기 때문이라고..

“그 때 뭐라고 표현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대로 왔구나”

그제서야 성호 씨는 북한에서 자신이 배운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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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고 지쳤던 기나긴 탈북 여정, 성호 씨가 대한민국 인천 국제공항에 도착했을 때 몸이 불편한 그를 위해 정부에서 마련한 선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 Inside NK 1편 보기

2012-06-25

탈북자들과 함께 북한의 실상을 파헤쳐보는 '인사이드 엔케이(Inside NK)'는 매주 일요일 저녁 8시에 '아프리카TV'로 생방송됩니다. 신동혁, 박성업 두 MC와 함께한 첫 번째 주인공은 북한 인권 단체 NAUH 를 이끌고 있는 지성호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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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께서 두부를 못 얻어오신 어느날 밤

회령으로 가는 화물열차를 타고 석탄을 훔쳐서 가족의 생계를 돕던 16살 성호 씨. 지금도 잊지 못하는 그 날은 어머니가 그를 위해 두부 한 모를 얻으러 나갔다가 그냥 돌아오신 날이었다.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열차에 오른 성호 씨,

“지금도 떠올리기는 싫어요. 새벽 두 시에 화물열차를 탔죠. 근데 빈혈이라고 하나요.. 달리는 열차에서 정신을 잃고 그만 떨어지고 만 거에요. “

열차는 그의 몸 위로 지나가고 … 절규 소리는 회령시 전체에 퍼지는데..

“전 그때 사람의 비명 소리가 그렇게 크게 들리는 줄 몰랐어요. 마을 넘어서 중국에까지 들리는 것 같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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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은 석탄을 담느라 바쁘고 성호에게 달려와 지혈을 해 주거나 도움을 주는 사람은 없었다. 다행히 철도관계자의 도움을 받아 병원에 갔다. 마취제가 없어 부분 마취만 하고 그 아픔을 고스란히 느끼면서 성호는 상처입은 손과 다리를 절단해야만 했다. 대야에 핏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시커먼 얼굴에 하얀 눈만 드러난 성호 씨는 의사한테 매달렸다.

“선생님 제발 저를 살려주세요.. 저희 가족들이 굶어 죽어요.”

개보다 나은 자유의 삶을 찾아서

몸이 회복될 무렵 주변에서 중국을 다녀온 사람들이 많아지고 성호도 바깥 세상에 대한 소식을 자주 듣게 된 성호 씨.

“한번은 자주 국경을 넘던 친구를 따라가 중국의 촌마을에 갔었는데 그곳에서 개가 고깃국에 쌀밥을 먹는 걸 보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어요.”

성호 씨도 탈북을 결심하게 되는데.. 멀쩡한 두 다리로 건너도 버거운 두만강의 물살을 목발을 짚고 건넌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거센 물살 속에서 중심을 잃을 때마다 남동생이 도와줘 힘겹게 두만강을 건넜다. 하지만 한국에 가기 위해선 라오스와 태국을 거쳐야 했다. 라오스 국경을 넘을 당시,

“너무 힘들었어요. 건강한 몸도 아니고. 12시간을 목발 짚고. 대오에서 떨어지면 죽으니까.. 한번은 산에서 굴러 떨어졌는데 만약 목발이 깨졌으면 못 따라가고 죽었을 거에요.”

태국이 가까워지면서 드는 걱정(?)

라오스를 지나 태국, 즉 타이에 다다를 무렵 성호 씨는 새로운 걱정거리가 생겼다.

"남조선 사람들은 자본주의 나라이기 때문에 ‘영양가’만 따지고 사람을 오로지 돈으로만 평가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북에서 들은 얘기가 맞다면 저 같은 장애인은 태국에서 쫓아내버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

태국주재 한국대사관에 도착한 성호 씨. 통상 3개월 정도의 대기 시간이 지나면 한국을 갈 수 있었다. 어느 날 대사관 직원이 성호 씨를 따로 불렀다. 직원은 성호 씨에게 지금까지 고생이 많으셨다며 15일 후면 한국에 갈 거라고 얘기했다. 성호 씨가 묻자 대한민국은 장애인, 노약자를 우선으로 대우하기 때문이라고..

“그 때 뭐라고 표현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대로 왔구나”

그제서야 성호 씨는 북한에서 자신이 배운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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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고 지쳤던 기나긴 탈북 여정, 성호 씨가 대한민국 인천 국제공항에 도착했을 때 몸이 불편한 그를 위해 정부에서 마련한 선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 Inside NK 1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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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체제 선전 작가로 활동하던 송벽 씨가 북한을 탈출한 10 만에 미국 워싱턴 시내 14 선상의 전시공간 듄스(The Dunes, 1402 Meridian PL NW)에서 4 9일부터 4 30일까지 개인 전시회를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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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쪽 눈을 뜬 군인은 자유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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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군도 가느다란 실눈을 뜨고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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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 목거리가 풀려 있네요. 한국에 자유를 찾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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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로서 중국과 남한에서 기독교를 전도 받고 또 한국에서 신학교를 나와 목사가 된 탈북 목회자가 늘고 있습니다. 탈북 목회자들은 우선은 남한 정착 탈북자들에게 기독교를 전파하고 통일 후에는 북한 내의 교회 재건과 함께 평양 대 부흥의 전성기를 만든다는 큰 목표로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오늘은 탈북인 목회자 김요셉 목사와 이사야 전도사를 만나봅니다.

탈북민 목회자 연합회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김요셉 목사: 탈북민 교회 연합회은 탈북민 출신 목회자와 북한 선교 비젼을 가진 남한 출신 목회자들로 만들어진 교회들의 연합입니다. 지금 현재 17개 교회들이 있는데요. 처음에 한두 개 교회로 시작됐다가 작년에 여러 교회가 참여했습니다.

탈북민 교회 연합회는 어떤 목적으로 조직 됐습니까?

김요셉: 탈북민 교회들의 목적은 단 한가지로 말할 수 있습니다. 북한 선교입니다. 북한의 회복이고요.  그런 목적으로 탈북민 교회들이 만들어졌고, 그것을 위해서 한국에 들어온 탈북 민들을 하나님의 때에 북한에 들어가서 북한의 교회들을 재건하고 또 그 땅을 하나님의 나라로 회복하는 그런 일들을 감당할 수 있는 그런 탈북민 사역자들로 준비 시키는 그런 사명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지요.

언어를 배울 때 원어민이 좋다고 하듯이 탈북인들 선교에 탈북인 목회자가 좋을 것으로 보여지는 데 이에 대해서도 이야기 해 주시지요?

김요셉: 남북한이 오랫동안 갈라져 있으면서 북한의 어떤 문화적인 차이가 굉장히 크기 때문에 이 남한에 와서 탈북 인들이 받는 충격이 큽니다. 그리고 또 남한 사회가 아직 정서적으로 사회적으로 탈북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나 받아 들일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오랫동안 기다려 주거나 이 사람들을 이해해주는 그리고 한국민으로 받아 들이는 그런 준비가 안 되었어요. 때문에 탈북인들이 교회에 가서도 어찌 보면 소외 당하고 탈북민 사역을 하고 있는 교회들 조차도 아직 그런 부분에서 잘 준비 되지 않아서 많은 시행 착오를 겪는데요. 물론 잘하고 있는 교회도 있습니다만, 그런 것 때문에 탈북 인들이 좀 소외 당하고 또 방황하는 거지요. 그런 탈북민들을 위해서 탈북민 목회자들이 어떤 같은 아픔을 겪고 같은 상황가운데서 이렇게 살아 왔기 때문에 그들을 잘 이해하고 품고 한 목적을 향해 가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서 탈북민 교회들, 탈북민 목회자들이 더 탈북 민들을 향한 목회가 바람직하지 않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북한에서 사신 분이 아니면 잘 알 수 없을 것 같은데, 북한에 사신 경험으로 북한 기독교인에 대해 아는 게 있으면 들려주시지요?

이사야 전도사: 북한에는 실질적으로 해방 전부터 예수를 믿던 분들과 해방 후나 이렇게 교회가 완전히 해체 되기 전에 교회에 나가시던 분들, 그런 분들이 교회가 해체되고 나서 추방된 지역이나 이수된 지역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들이 우리가 이야기하는 지하교인의 모체라고 볼 수 있는데요. 지금 현재는 그런 분들만이 아니고 그 이후에 중국으로 탈북해 나온 사람들도 예수를 믿고 북한으로 들어간 사람들도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혹 북한에서 성경책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이사야 전도사: 저 같은 경우 다행이 성경책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본 성경책은 세로줄로 된 성경책 이었는데 한자가 80% 가 한자로 되어 있고, 거기에 토나 간단한 단어 몇 개가 한글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여 주신 분은 이미 한자에 완전 정통해 있었습니다.

결국은 북한에도 이렇게 성경책 가지고 있으면서 숨어서 신앙생활을 하고 계신 분도 있다는 것 증명하는 것 같은데요.

이사야 전도사: 그렇지요. 지금도 신앙이라는 것은 그들에게서 빼앗을 수 없는 영원한 것이기 때문에 사멸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북한에 계실 때를 생각하며, 지금도 북한에 산다면 어떤 내용의 방송을 들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까?

이사야 전도사: 지금 상황에서 북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신앙이라는 그 말 자체가 이해가 잘 안될 것입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저 같은 경우 기독인 들과 만나보고 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눴음에도 불구하고 신앙을 받아 드리기가 어려웠어요. 그러나 이렇게 자꾸 신앙적인 문제 등 인본주의 그 자체로서 해결할 수 없는 그런 문제들을 계속해서 알려준다면 그 사회가 분명 사람이 살만한 사회로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질적으로 북에서 살던 사람들의 신앙간증이기 때문에 그 사람들 가슴에 와 닿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세계 기독교 인들이 북한 지하교인들을 위해서 할 일은 무엇입니까?

이사야 전도사: 북한에 있는 지하교인들을 위해서 우리가 직접적으로 북한 내부에 들어가서 할 수 있는 일은 전혀 거의 희박하다고 생각하고요. 그러나 언제까지나 손 놓고 앉아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요. 특히 한국교회나 미주한인교회들이 연합해서 북한 지하교회들의 실체를 알아가고 찾아가고 그들을 적극 협력할 수 있는 방법들을 적극 찾아야 된다고 생각하고요. 그리고 그들의 신변문제가 가장 중요한데요. 북한 정부로서는 그 사람들을 탄압의 첫 번째 대상으로 보기 때문에 그런 것을 국제사회가(그 어느 독재국가에서도 신앙의 자유는 있어요. 북한만은 허락이 안되고 있는데 그런 것을 국제사회가 협력을 해서 그 사람들의 신변에 닥치는 문제들을 가지고) 여론화하고 이슈화해서 그 사회에서 신앙을 가지는 것이 결코 그 사회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에서 공부하고 배웠던 것을 생각하면서 중국이나 한국에서 종교를 어떻게 받아 드렸습니까?

김요셉 목사: 북한에서의 어떤 교육의 체제가 하나의 거대한 종교가 아닙니까? 사람들은 그것이 종교인 것을 모르고 종교 생활을 하지요. 북한 위정자들을 우상화하고 거기에 세뇌되는 그런 삶을 살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많은 사람들은 마음에 부담과 두려움이 있고 그리고 또 자유라는 것에 대해서 자유라는 것 조차도 알 수가 없는 상황이었잖아요. 저 같은 경우는 중국에 나와서 어떤 자유의 맛을 보고 또 더욱이 하나님을 만나고 성경에서 어떤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계획들을 바라보면서 이것이 북한에서 우리를 교육하고 세뇌시키던 주체사상이라든가, 김일성 주의 같은 것을 굉장히 근사하다고 생각했지만, 깊이 있게 살펴보면 굉장히 차이가 난다는 것을 느끼게 됐습니다. 왜냐하면 북한에서 저희는 수십 년 동안 교육을 받았지만 그것에 대한 신뢰가 없었어요. 그리고 또 어떤 상황이 닥치면 그러한 것들이 금방 무너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중국에서 짧은 기간에 선교사님을 통해서 전도를 받고 성경을 읽고 그렇게 신앙생활을 했을 때 이상하게도 수십 년 동안 우리가 매일과 같이 교육 받고 방송 듣고 신문에서 배워왔던 것과 다르게 이것은 마음에서부터 어떤 감동이 있고 생명력이 있는 것을 느끼게 되었어요. 그래서 그 당시에는 그것에 대해서 잘 알 수는 없었지만 후에 말씀을 더 깊이보고 또 이 신앙 생활하는 과정에 아 하나님은 살아 계신 분이시니까? 어떤 그런 생명의 역사가 있구나 그러나 북한의 우상은 살아 있는 것 같지만 그것이 생명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이구나 하는 차이를 느끼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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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s KORUS House English class is an article about Chuseok, one of Korea's biggest traditio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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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벌이를 위해 러시아 연해주로 몰려든 북한 건설노동자들이 블라디보스토크 중심 레닌 거리의 한 상가 건물 보수 공사장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00:00/00:00 동남아 일원에서 근로자로 일하다 몇 해 전 남..

2015년 시애틀 탈북자 통일 선교 대회 특집 1부:나는 보았네
뉴저지 정성호 원로목사의 신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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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평화를 위한 중대한 제언-뉴욕 서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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