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하 생활을 고민하는 참모총장 / 위산과다증으로 입학한 육군 참모학교(육군대학) / 준장 승진과 함께 제 2군단 참모장으로
전쟁 당시 민간 차량의 운영은 군으로부터 류용되는 군용차의 부속품과 휘발유 없이는 운영이 불가능 하였다. 심지어 탄피 없이는 불고기 판도 사용 못할 지경 이었다. 점잔케 이야기하면 당시 전쟁을 목적으로 원조된 군원이 민사원조로 전환 되는 결과가 되었으며 이도 제도를 통한 공개적 전환 대신 개인적이고 부정한 과정 을 밟게 되었으며 이 사정을 군에서는 후생 사업이라 이야기했지만 말하자면 국가 재정과 군수품의 부정 유출 결과가 되었다. 청렴하다 평 받은 총장이 이에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었다. 한번은 수석 고문단장과 총장간의 상의를 위한 좌석에 동참한 일이 있었다. 총장은 부하들의 복지를 위해 고문단장은 군원의 올바른 사용을 위해 군 보유 차량을 얼마나 사적 복지용으로 사용을 허가하느냐로 토의가 되었다. 정부 에 대한 건의는 자기들의 힘 밖이라는 결론을 얻었으나 군 장교들의 복지를 위한 차량의 필요량을 결정짓기 어려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상 을 벗어난 일이었으나 당시는 대단히 중요한 일이었다. 경제적으로 풍부해 진 오늘 에도 경제적 비행이 근절 되지 못함을 보며 또한 일반 사병들의 처우가 문제되고 있음을 보면서 옛 일이 생각난다.
위산과다증으로 입학한 육군 참모학교(육군대학)
나는 전쟁중 위산 과다증이 심해저 비서실장 시절 공복 때는 책상에 엎들어야 했다. 나의 건강 회복을 위해 전시중에 대구 달성 군민학교 에서 시작된 육군 참모 학교 1 기생을 지원하게 되었다. 육군 참모학교는 당시에는 육군의 제일 상급학교로 육군 대학이라 불리웠다. 기한은 6개 월간으로 미국 참모지휘대학 Associate class 교재를 이용해 미국 중령 교관들에 의해 강의되었다. 차량을 반납하고 매일 30분 이상의 왕복 거리를 것다보니 3개월만에 위산 과다증이 없어젔다. 나는 이 학교에서 배운 지식으로 후일 일선 근무는 물론 부족한 영어로 미국 참모지휘 대학에서 공부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 뿐이 아니라 나는 이 학교 에서 졸업할 때 대통령 상인 시계 와 같이 육군 참모학교 졸업장 으로는 일호를 기록하게 되었다. 졸업식에는 이승만 대통령과 Vanfleet 8군 사령관이 참석하였다. 이 대통령의 졸업 축사는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대통령의 축사는 UN군 사령관을 앞에둔 정치연설이라고 느껴젔다. 당시 일선부대가 요구받던 일이 후퇴할 때 무장을 포기하지 말라는 일이 었는데 이 대통령은 한국 병사 혹은 젊은이들이 용감하고 애국심이 많아 무기만 주면 용감히 싸운다는 이야기로 측근에서 대통령에게 정직한 말을 전하지 못하고 있던지 8군 사령관이 들어보라는 정치 연설로 들렸다.
준장 승진과 함께 제 2군단 참모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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