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재판에 고민하는 장성들 / 자기 제한을 시도한 업무 전결 한계 규정 / 생활비를 못 따라가는 장교들의 보수체계
그 외에도 이 총장은 거창사건과 거창사건 조사단 방해 사건 서민호씨 재판사건 부산 정치 파동 사건들 군사적이며 정치와 연관된 사건들을 처리해야 했다. 이 사건 들은 정치적으로 이승만 대통령의 직접적 관심사가 되어 재판을 담당하는 군의 고위 장성들에게 고민거리를 주었고 심지어는 재판장 중에는 이박사의 질책을 두려워 몸 을 피하거나 보직과 승진에 제한을 받는 일도 있었다. 나는 비교적 자기를 제한시키 는 성격으로 이런 사건들에 대해 직접적인 관심을 두지 아니한 관계로 그의 시시 비비를 지금에 와서 논의할 입장은 되지 못한다. 그 중 부산 정치파동 사건은 이승만 대통령이 국회를 통한 대통령 선출이 어렵게 되자 대통령 국민 직선제 헌법 수정에 반대한 야당의원들을 부산지구 계엄 사령관 원용덕 장군을 시켜 헌병을 동원 야당 의원을 버스로 연행 구금한 사건이며 4.19학생 형명후 원 장군은 이 일로 법의 심판 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비서실장의 자리를 떠나 육군대학에서 공부할때 우연히 참모총장실을 방문한 자리에서 이 총장과 당시 신태영 국방장관 과의 전화를 엿들은 적이 있었다. 전화 내용은 이 총창이 참모총장인 자기의 허가 없이 부산지구 계엄 사령관이 당시의 국방장관의 묵시하 군 병력을 동원하지 아니했나 추측을 하게 하였다. “각하 그렇게도 벼슬이 좋으십니까” 하고 고성을 지르며 수화기를 나려놓는 이 총장을 보았다. 당시의 국방장관은 부산에 위치 했으며 신 장관은 이 총장의 일본 육사 선배이었다. 이런 사유로 이 총장이 유신 국회의원을 지냈음에도 불구하고 100 명의 한국 민주화 운동 명단에 군 출신 대표의 한 사람으로 지명되 있는 듯하다.
자기 제한을 시도한 업무 전결 한계 규정
나는 나 자신을 제한적이라 했다. 내가 비서실장으로 부임해 업무를 살펴본 결과 비서실장이 결재자의 한 사람으로 마음 먹기에 따라 총장 명의로 인사나 재정 지출 을 전결할 수 있었다. 나는 나 자신을 결제자가 아니라 참모들의 협조를 확인하는 조정자의 자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여 참모 총장의 승인을 얻어 참모회의를 거처 엄무 한계에 대한 규정을 제정해 비서실장을 조정자로 그리고 사건의 경중에 따라 일반 참모나 차장의 전결이 되도록 하였다. 내가 비서실장으로 재직하고 있던 기간 은 불과 5개월이었으나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다. 그중에 아직도 인상에 남 아 있는 일이 있다. 하루는 총장이 나에게 비서실장 대신 부산에 나려가 일선 전투병의 간식 용 건빵을 만들어 보라고 요청했으나 나는 경제 문제 에 취미도 없고 또한 그 길에 문외한이라고 사절한 일이 있었다. 그리고 준장 승진과 함께 친구가 맡고 있던 군수 국장 자리를 요청받고 사절해야 했다. 군수문제의 중요성을 짐작케 하는 내용이나 반면 나 자신이 까다로운 사람으로서 인식됬는 지도 모른다.
생활비를 못 따라가는 장교들의 보수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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