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진 명령을 받은 제 8사단 / 중공군 시체로부터의 악취와 하사관 교육 / 육군 차모총장의 비서실장 시절
지리산 토벌 약 두달 후 사단은 전군의 북진 추격작전에 합류하게 되었 다. 제천을 거처 정선 평창 대화 현리 골차기를 통해 인제 원통리를 경유 하진부리로 진격할 때 이종찬 참모 총장의 비서실장으로 부름을 받았다. 북진중의 사단에서 기억나는 일들 이 있다. 사단 사령부가 한국의 약초 산지로 유명한 대화에 잠시 머물때 느낀 일이다. 사단이 주둔되면서 시골 처녀들의 옷색갈이 환해지며 파마 머리가 늘어감을 보았다. 군이 도시문명을 산간벽지에 보급하고 있음을 느꼈다. 대화에서 고지를 점령 한 한 병사가 촌락의 고부를 강간하는 사건이 발생 하였다. 군기를 잡기 위해 법무관에게 사형을 강요한 일이 있었으나 피의자들의 진정으로 사형은 면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강간에 사형은 무리한 요구이었으나 군의 규율을 위한 혈기에서 나온 것이었다.
중공군 시체로부터의 악취와 하사관 교육
또한 원통리에서의 경험이다. 중공군을 물리친 미 해병대가 도로를 확장 하면서 도로 공사의 밑에 깔린 중공군 시체의 썩는 냄새에 식사함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전지에서 참혹히 내버려지는 시체를 통해 전투에 임한 용사들의 목숨이 부질 없음 을 느끼게 되었다. 사단이 원통 고개를 넘어 진격할 때 우리의 공격 속도가 제지되 었다. 일선 부대로부터 적의 장성이 간호사와 같이 퇴각함을 눈 앞에 보면서도 진격 중지 명령으로 그를 생포하는 좋은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불평을 들어야 했다. 나는 부하들의 목숨을 살리는 길이 하사관들의 전투지휘 능력에 있다 생각해 야전에서 시간을 내어 2회에 걸처 사단 선임 하사관의 전투훈련을 실시 하였다. 실탄을 사용 한 바람에 지시를 어겨 철모를 쓰지 아니했던 한명 의 고귀한 희생을 감수 하여야 했다. 사단이 미 해병사단과 교대시 해병 사단 일개 전선 중대를 방문하면서 선진 미군의 초급부대 실력을 부러워해 보기도 했다. 우리는 원통에서 하진부리 공격 명령을 받았으나 나는 바로 대구에 위치한 육군 본부로 부임 명령을 받고 사단을 떠나 야 했다.
육군 차모총장의 비서실장 시절
블로그담당자나 김웅수장군님의 허락없이 무단복재해 상업용으로 사용 할 수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문의 john_lee_rfa@hotmail.com
'김웅수장군회고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의 긴 인생을 되돌아 보며-김웅수장군회고록 (0) | 2008.07.25 |
---|---|
8) 정치 재판에 고민하는 장성들-김웅수장군회고록 (0) | 2008.07.23 |
6) 평양방문-김웅수장군회고록 (0) | 2008.07.21 |
5) 김홍일 장군과 동래 육군 종합학교로-김웅수장군회고록 (0) | 2008.07.19 |
4) 맥아더 장군의 일선 시찰과 중공군 소속 북한 의용군-김웅수장군회고록 (0) | 2008.07.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