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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관련소식/북한관련

탈북자가 바라본 북한 7차 당 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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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자유아시아방송을 방문한 대북풍선단의 이민복 단장.
RFA PHOTO/이현기

36년 만에 가진 북한 당 대회를 지켜보면서 탈북민들은 이번 당 대회에서 시장 개방 언론의 자유 등으로 북한 주민들 삶에 새로운 윤활유가 되었으면 했는데, 결과적으로 인민들 삶에는 아무런 변화와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 아쉽다고 했습니다.

목요대담 오늘은 대북풍선단장 이민복 씨와 탈북자가 바라본 북한 7차 당 대회에 대한 이야기로 함께 합니다.

북한에서 살 때 당 대회를 겪은 적이 있으신가요..

: 저는 두 번 겪었습니다. 1970년 중학교 때인데요. 그때 5차 당대회를 겪었고요. 그리고 1980년대 남포대학 다닐 때6차 당 대회를 겪었습니다.

두 차례 당대회를 겪었다고 하셨는데 이번 7차 당 대회와 비교해 주시지요.

: 그래도 5차 당대회와 6차 당 대회는 그래도 뭐 거짓말이 되긴 했지만, 그래도 뭔가 의미를 담고 어떤 희망과 용기를 가지고 뭔가 했는데, 그동안 5차 6차 당 대회 이후에 너무 상황이 나쁘니까 목표했던 게 하나도 안되고, 거짓말의 원조인 김일성도, 김정일도 맛을 못 내고 있었는데 지금 김정은이가 36년 만에 당 대회를 치렀는데 참 그게 좀 뭐라 할 까 어불성설이랄까? 그렇습니다.

이번 7차 당 대회에서 북한 김정은 제1 비서가 당 사업 총화 보고에서 병진 노선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어떻게 보셨습니까?

: 5차 당 대회 때는 정치적으로 문화혁명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온 사회에 혁명화 노동계급화라는 구호가 뚜렷해서 결국은 김부자 유일 체계로 확립했고요. 그다음 6차 당 대회 때는 유일 체계하에서 경제 10대 원칙, 사회주의 10대 경제 전망이라고 해 1인당 평균 경제수준이 일본을 능가한다고 그랬댔거든요. 1980년대부터 한 10년 어간에 1990년에는 그렇게 일본을 능가한다고 그랬는데 결국은 수백만이 굶어 죽는 단계를 보여 줬기 때문에 도무지 당 대회를 열 수가 없었지요. 그런데 이번에 보면 인민생활은 사람 굶겨 죽일 정도로 경제상황인데, 이 7차 당 대회에 내세우는 겻이 핵과 미사일이거든요. 이번 행사에는 외국 인사도 초청하지 않고 외국 기자들도 당대회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이상한 7차 당 대회를 했어요. 이상한 거지요. 뭐라고 할까 이 세상에 그런 나라가 어디 있어요.

북한이 7차 당 대회에서 경제와 핵 병진 노선으로 나아가는 것과 관련해 북한 국제 전문가들은 이익보다는 손실이 클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습니다.

: 손해 보는 정도가 아니라 멸망의 목을 꽉 죄었지요. 그거는 이렇게 저렇게 해도 러시아와 중국은 북한 편을 들어주는 입장에 있었는데 그러나 핵 때문에 러시아와 중국도 도와줄래야 도와줄 수 없는 처지가 되어 버렸지요. 이런 상황에서 자기 목을 꽉 죄는 걸로 되어 있지만, 그보다 더 큰 목을 죄는 것이 내부 문제입니다. 북한인민들에게 일본을 앞선다는 것은 고사하고 배급도 주지 못하는 단계로서 그동안 이밥에 고깃국 준다고 이야기해봤자 다 거짓말 아니에요. 할 말이 없다고요. 그 할 말이 없는 중에서 핵과 미사일 밖에 명분 내세울게 없지요. 그래 사실 발등의 불이라고 북한 내부에 목을 죄는 것이 주민들의 동요가 더 무서운 거에요. 그 국제적인 그런 목죄어 오는 것 모르는 것 아니지요. 김양건 대남사업부장이 갑자기 죽었는데요. 그때 김부장은 우리가 핵실험을 하게 되면은 이 이상 더 하면은요. 진짜 중국과 러시아도 돌아섭니다라고 이야기한 것으로 알려지는데요. 그것보다 더 급한 것이 북한주민들의 동요, 그런 의미에서 명분을 세우자니까 북한에선 악령의 기라고 하는데 핵과 미사일이지요.

7차 당 대회 이후 북한주민들의 삶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까요.

: 이미 어려움은 고난의 행군이라고 하는 수백만이 굶어 죽을 때 그 어려움은 어디서 왔냐면 사실은 그 수령이, 국가가 우리한테 배급을 주겠지, 우리를 책임저 주겠지 그런 믿었던 데에서 엄청난 비극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래 수백만이 굶어 죽고, 고난 받는 속에서 깨달음이, 아! 수령과 국가가 아니라 우리가 산다라는 것을 깨달은 이후에는 대량 아사 사태가 없지요. 이런 상황에서 사실은 1994년 김일성 사망 때부터 지금 20여 년이 넘어갔는데 이런 동안에 국가가 배급 준 게 아니라 저절로 북한주민이 산 겁니다. 시장 경제로요. 농촌에서는 때기 밭, 도시에는 장사로 이제 껐 살았는데 그 단련된 고난 속에서 단련된 자기가 사는 자생 능력이 이미 있기 때문에 큰 타격을 없을 거고요. 오히려 김부자 정권이 오히려 심각한 탁격이 있을 거고요. 물론 주민들에게도 외부 공세가 있으니까 취약 계층들의 영향력은 좀 있겠지만, 옛날처럼 크게 놀란 정도로 타격 입을 것 같진 않아요.

풍선 사역을 하시는데 최근에는 어떤 내용으로 북한 주민들을 개몽하고 계시는지요.

: 뭐 풍선 사역은 남한의 대북전략에 있어서 지금과 같이 최고조에 이른 적은 없다고 봅니다. 대표적으로 중국과 러시아도 도와 줄려고해도 도와 줄 수 없는, 그래서 유엔의 가장 최고의 봉쇄, 이 이상의 봉쇄가 없을 거라고 보는데요. 국제적 봉쇄, 중국과 러시아도 봉쇄에 동참할 정도이니까 완벽한 건데 이 이상 바라지 않을 정도로 봉쇄가 됐는데 공산권 특징, 특히 북한 폐쇄 사회는 봉쇄만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북한 내부에서 봉쇄를, 국제사회는 그들을 봉쇄했지만, 그들은 외부에 대해서 봉쇄한다는 것 즉 정보를 폐쇄해 놨거든요. 라디오 인터넷 없는 유일한 나라 아니에요. 이 속에 우리가 외부정보를 넣어줘서 북한 내부가 폭발하게끔 해야 북한이 저런 세상을 끝내는 건데, 새 세상을 만드는 건데, 그런 의미에서 풍선의 의미는 굉장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 풍선은 삐라라고 하는 개념이 잘못된 것인데요. 우리가 대북방송 자유아시아방송에서 열심히 하고 있는데 라디오가 일반적으로 없거든요. 그래서 풍선으로 라디오를 보내서 자유아시아방송을 비롯해서 VOA 탈북자들이 하는 방송과 남한의 방송도 듣게끔 하는 면에서 풍선의 효과가 있고요. 그 다음에 전단이라는 것은 아무 기기 없이도 볼 수 있고요. 그 영향에 좀 제한이 있는데 요즈음은 USB나 CD나 DVD까지 보내면 엄청난 정보량을 보낼 수 있거든요. 이걸 디지털 삐라라고 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대북 풍선은 북한이 라디오와 인터넷을 개방하기 전까지는 가장 유력한 외부 정보를 보낼 수 있는 수단으로 저는 확신하고 있고 또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목요대담 오늘은 대북풍선단장 이민복 씨와 탈북자가 바라본 북한 7차 당 대회에 대한 이야기로 함께 했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