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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문화산책

통일문화산책(대동여지도에 대한 남북한의 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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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대동여지도가 만들어진 것이 1861년 조선조 철종시대인데 현대의 경도와 위도를 이용한 지도와 비교해도 손색이 전혀 없다는 것이지요.

서울 소식통에 따르면 지난 5월 KBS 방송에 김정호가 제작한 <대동여지도> 채색본이 등장해서 많은 국민이 놀랬다고 하는데, 이런 채색본 지도는 세계에서 단 3점만 있다고 하는군요. 이 귀한 지도가 6월 말 경매로 시장에 나왔는데 유찰됐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아무도 입찰에 성공하지 못한 거지요. 가격이 어마어마했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한국의 강우석 영화감독의 신작 '고산자, 대동여지도'가 오는 9월 개봉을 할 예정이라는 반가운 소식입니다. '고산자, 대동여지도'는 미천한 신분으로 시대와 권력에 맞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 대동여지도를 탄생시킨 지도꾼 '고산자(古山子) 김정호'의 감춰진 이야기를 그린 영화하고 합니다. 공개된 포스터는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 대한민국 사계절의 아름다운 절경 가운데 김정호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한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 대동여지도를 완성하기까지, 나라가 독점한 지도를 백성에게 돌려주고자 했던 고산자 김정호의 숨겨진 이야기가 올 추석을 즈음해 개봉 9월 관객을 어떻게 사로잡을지 기대가 된다고 한국언론들은 전하고 있습니다.

통일문화산책 오늘도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대동여지도와 이를 만든 김정호를 보는 남북한의 시선을 확인해볼까 합니다.

먼저 <대동여지도>에 대해 설명을 좀 부탁합니다.

임채욱 선생: 네. 우리나라 사람으로 <대동여지도>를 모르는 분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남북한 다 같이 <대동여지도>에 대해서는 아주 자랑스럽게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왜 자랑스럽냐고요? 우리나라 전통적인 지도제작방법대로 했으면서도 현재의 우리나라 지도와 거의 근사할 정도로 정확한 데 있습니다. <대동여지도>가 만들어진 것이 1861년 조선조 철종시대인데 현대의 경도와 위도를 이용한 지도와 비교해도 손색이 전혀 없다는 것이지요.

현재의 지도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정확하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을 말합니까?

임채욱 선생: 현재 서양식 경도와 위도를 사용한 지도와 비교해도 서해안이나 남해안 지역은 거의 같습니다. 다만, 압록강 상류지대 중강진 지역부분이 북쪽으로 약간 치우쳤고 울진부근이나 울릉도가 남쪽으로 좀 내려온 것이 다를 뿐입니다. 남북을 재는 위도상 위치보다 동서를 재는 경도상 위치가 좀 틀린다고 하지요. 아마도 남북으로 발달된 산맥 때문에 동서로 이어지는 거리를 측정 하는 게 어려웠지 않나 보고 있습니다.

그럼 규모라든가, 담긴 내용은 어떤 것입니까?

임채욱 선생: <대동여지도>에 담긴 지명 전부를 다 합하면 1만 2000여 개가 된다고 합니다. 산과 산맥, 하천, 바다, 섬, 마을 외에도 도로, 성채, 군인주둔지, 역참, 곡식창고, 묘자리, 가축 키우는 곳 등등이 자세하게 기입돼 있지요. 이런 내용을 다 담아서 그 크기는 22첩으로 접혀진 것을 모두 펼치면 대략 가로 3.8m(3미터 80)에 세로 6.7m(6미터 70)가 됩니다.

<대동여지도>가 특별히 잘 됐다든가 하는 특징은 무엇입니까?
임채욱 선생: 네. 잘 됐다는 것은 물론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그전 지도와 비교해서 잘됐다는 것이지 현대지도보다 낫다는 것은 아니지요. 이 지도는 그 전에 만들어진 우리나라 지도들이 산맥을 표시하는데도 산을 연달아 그려놓으면서 산맥이라 했는데 <대동여지도>에는 산맥을 선과 면으로 표시해서 뚜렷하게 드러나게 했지요. 이런 게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또 다른 그 전 지도들에서는 지도안에 온갖 지리자료들 말하자면 지지내용을 기록해 넣었으나 <대동여지도>에서는 이런 것들을 없애고 필요한 내용은 간단하게 도식화해서 기호로 나타낸 것입니다.

<대동여지도>에 대해서 한국이나 북한에서 다른 관점으로 보는 부분도 있습니까?

임채욱 선생: 가치관이랄까, 사고에 관련된 것이 아니라서 <대동여지도>를 보는 관점에서는 차이가 있을 수 없지요. 하지만 수치와 관련된 객관적 부분이 아니고 그것을 제작한 김정호 생애나 제작의도, 그리고 그것을 보는 당국의 관점은 한국과 달리 보는 부분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북한에서도 <대동여지도>의 규모라든가, 내용, 묘사수법 등이 세계적으로 자랑할 만한 하다고 보고는 있지만 조선시대라는 시대적 제약성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유교적인 관점을 반영했다던가, 이 지도가 너무 상세하기 때문에 국가기밀이 누설된다고 보고 감옥에서 죽었다고 말하는데,  한국에선 이것이 일본제국주의자들이 조선조정의 무능을 비하하기 위해서 조작한 견해라고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지요. 그러나 북한에서는 당시 부패하고 무능한 봉건정부가 김정호의 애국적 행위를 억압했다는 식으로 말하지요.

그럼 김정호는 어떤 인물입니까? 그 생애가 잘 안 밝혀졌다고도 하는데 김정호를 보는 관점도 남북한이 다른가요?

임채욱 선생: 우리가 일제로부터 광복된 이후 한국에서 발간된 각급학교 교과서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인물이 네사람이라고 합니다. 세종대왕, 이순신, 김정호, 안창호 이 네 사람인데, 말하자면 가장 존경스럽고 본받을 인물이라고 보겠습니다. 이데올로기 관점으로 보면 북한에선 세종대왕이나 안창호에 대해선 그다지 크게 평가하지 않겠지만 이순신, 김정호에 대해선 한국에서나 마찬가지겠죠. 그런데 북한에서는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만든 죄로 감옥에 갇혀서 옥중에서 희생됐다고 사망연도를 1864년으로 밝히고 있습니다만 한국에서는 그 연도를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정확하게 드러난 것이 아니란 것이지요. 또 북한에서는 서울에서 자라났다고 하는데 한국에서는 황해도 출생으로 어릴 때 서울에 와서 성장했다고 하죠. 가족에 대한 자세한 것도 밝혀진 것이 없어서 딸 하나가 지도제작을 하는 아버지를 도왔다가 아버지와 함께 감옥에 갇히는 등 곤욕을 치렀다고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지요. 아마도 사대부 양반집안 출신이 아니라서 그런지 모르지요. 한국에서는 지도제작 때문에 김정호가 백두산을 17번을 올랐다는 기록도 있다는데 북한에선 2번을 올랐다라고 말합니다. 아마도 당시 형편으로서는 17번 올랐다는 것은 잘 못 전해진 것으로 생각되기도 합니다.

당시 조선조 조정에서 군사 지리상의 기밀을 누설한다고 <대동여지도>를 불태웠다는데 오늘날 이 지도는 얼마나 남아 있으며 당시 지도제작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음미해본다면 무엇이라고 하겠습니까?

임채욱 선생: 먼저 조정에서 기밀누설죄로 김정호를 옥에 가두고 <대동여지도> 판각을 불태웠다는 것은 잘못 전해진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도의 목판본도 전해지고 있고 인쇄된 지도도 전해지고 있지요. 다만 앞에서 말한 채색된 지도는 3점만이 알려지고 있지요. 목판본으로 간행된 지도는 서울 국립중앙도서관에 있으며 필사본은 여러 곳에 있지요. 요즈음은 영인본도 많이 나와서 쉽게 접할 수 있지요. 우리나라는 세종임금 시대부터 지도제작을 본격적으로 하게 되는데 김정호의 <대동여지도>까지 조선시대 지도 전부가 경도와 위도가 그려진 경위도 지도가 아니었지요. 하지만 좌표에 의거해서 일정한 간격으로 표시를 한 제작방법을 썼지만 그 정확성은 크게 평가해야 할 것입니다. 그 정확성 때문에 백두산에 열 몇 번을 오르고 전국을 몇 차례나 돌았으며, 자신뿐 아니라 지도제작을 돕던 딸도 곤욕을 치렀다는 이야기가 만들어 진 게 아닐까 합니다. 어떻든 <대동여지도>를 만들기 위한 전 단계로 <청구도>라는 지도를 먼저 만들고 <대동지지(大東地志)>라는 지지관계 책도 편찬한 것으로도 우리나라 지도제작에 기여한 공은 크게 평가될 것입니다.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