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통일문화산책

통일문화산책(북에서 부르는 남한 노래)

오디오 오디오 (다운받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7천만 민족을 하나로 묶는 통일가요로, 하나 된 강토에서 한민족으로 살아 갈 의지를 담은 대중가요였다”며 “김일성과 김정일 시기에도 통하던 이 노래가 김정은이 집권하면서 금지됐다”고 언급. / 김정은이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아니라 군사 강국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통일문화산책 오늘은 북한에서 못 부르게 한 통일의 노래 ‘우리의 소원’에 대해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 노래는 따져보면 남쪽에서 부르던 노래로 지금까지 남북한이 공유했던 것인데 김정은은 이를 금지곡으로 지정했다고 하지요.

임채욱 선생: 네. 저도 RFA 보도를 통해 알았습니다만 김정은이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아니라 군사 강국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7월 중순부터 이 노래를 못 부르게 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한 30년 전 한국 방송국 추석특집 하나가 떠오르는군요. 한 여자가 복덕방에 들어서면서 함경도 말로 방을 구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복덕방 아바이는 대답을 하지 않습니다. 몇 번이나 말해도 대답을 않습니다. 옆자리 경상도 대서사 아저씨가 손님에게 대답을 왜 안하느냐고 지적합니다. 그때서야 이 아바이는 평안도 말로 함경도사람에게 집 소개 안하겠노라고 말합니다. 자기는 이북에 있을 때 함경도 빨갱이들에게 너무 당해서 이가 갈린다고 말합니다. 이 말에 함경도 아지마시가 말합니다. “그럼 빨갱이 대장은 뉘긴데... 빨갱이 대장은 평안도 사람이 아이가”합니다. 이렇게 옥신각신하던 도중에 평안도 복덕방 아바이 딸이 들어서다가 아버지께 한 마디하고는 함경도 아지마시를 자기 집으로 데려갑니다. 그 뒤 함경도 아지마시 아들과 평안도 아바이 딸은 가까워지고 그리고는 그 해 추석날 밤 밝은 달을 쳐다보면서 두 집 가족 모두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애절하게 부릅니다. 추석이면 북녘땅을 떠나온 이산가족들은 고향과 부모 형제들이 얼마나 그립겠어요. 지금 한국에는 이산가족 등록을 한 70세 이상 6만 3670명이 북녘 부모형제와의 상봉을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6만 7180명은 상봉을 신청하고도 저세상으로 떠났습니다.

이 노래가 북한에서 불리기 시작한 것은 임수경이 북한 방문 때 부른 노래였다고 알려지지요.

임채욱 선생: 그렇지요. 1989년에 평양에서 세계청년 학생축전이 열렸을 때 여기에 참가한 남쪽 여자대학생 임수경이 이 노래를 불렀지요. 그 뒤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에 갔을 때도 김정일 위원장과 함께 불렀다고 하지요. 그래서 북한에서도 공식행사가 아닌 어지간한 자리에서는 자연스럽게 불렸지요.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이 정성 다해서 통일 통일을 이루자

이 겨레 살리는 통일 내 나라 찾는 내 통일

통일이여 어서 오라 통일이여 오라

가사 자체가 ‘통일이 소원’이라는 의미뿐이죠. 가령 외국인이 이 가사를 보노라면 통일의 간절한 소망을 이루려는 의지가 살아 있을 뿐 특별한 이데올로기적 색채는 없다고 볼 것입니다. 그런데 북한에선 이 노래 가사를 바꿔서 <우리의 소원은 평양>이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우리의 소원은 평양, 꿈에도 소원은 평양,

이 정성 다해서 평양, 평양으로 가자

인민을 살리는 평양, 이 나라 살리는 평양,

평양으로 어서가자, 평양으로 가자”

아마도 평양에 살고 싶다는 마음을 우회적으로 밝힌 것 이겠지요.

그래서인데 이 노래뿐이 아니라 다른 남쪽 노래도 불리는 것이 많다고 하지요?

임채욱 선생: 대중가요 중에는 많지요. 현재 남쪽 방송이 잡히는 곳이 많아서 한국 대중가요를 접하기 쉬워 무심결에 멜로디를 흥얼거리는 일쯤이야 흔하지만 2000년대까지는 북한 주민들은 남쪽노래를 흥얼거리면서도 중국의 조선족들이 부른 노래로 알았다고 하지요. 그래서 연변가요라고 불렸지요. 당국이 막으니 공식적으로 불린다고 보기는 어렵지요. 트롯트 풍의 노래를 선호한다고 알려집니다. 그 간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사랑의 미로>, <아리랑 맘보>, <키타부기>등등이 은밀히 불렸다고 하네요. 그런데 광복 전의 대중가요, 이를테면 유행가라고 하는 노래들이 북한에서도 새로 평가되면서 불리는데 이를 두고 남쪽에서는 남쪽노래를 부른다고 말하는데 그건 아니죠. 광복 전의 가요는 남쪽만의 노래가 아니라 남북한이 공유할 수 있는 조상이 물려준 공통의 유산으로 봐야할 것입니다.

가곡 <그리운 금강산>도 북한에서 불리지 않나요? 이 노래가 북한 학생들 발성법 교과서 역할을 했다는 설도 있던데요?

임채욱 선생: 글쎄요? 곡만 따지면 발성법에 쓰일 수도 있겠지만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누구의 주재런가 맑고 고운 산 그리운 만이천봉

말은 없어도 이제야 자유만민 옷깃 여미며

그 이름 다시 부른 우리 금강산

수수만년 아름다운 산 못 가본 지(더럽힌 지) 몇 해

오늘에야 찾을 날 왔다 금강산은 부른다

비로봉 그 봉우리 예대로인가(짓밟힌 자리)

흰구름 솔바람도 무심히 가나

발 아래 산해만리 보이지 마라

우리 다 맺힌 슬픔(원한) 풀릴 때까지

수수만년 아름다운 산 못가본지(더럽힌지) 몇 해

오늘에야 찾을 날 왔다 금강산은 부른다

기괴한 만물상과 묘한 총석정

풀마다 바위마다 변함없는가

구룡폭 안개비와 명경대물도

장안사자리 고향도 예대로인가(짓밟힌 자리)

수수만년 아름다운 산 못가본지(더럽힌지) 몇 해

오늘에야 찾을 날 왔다 금강산은 부른다

<그리운 금강산>은 좋은 노래지요. 1961년 KBS에서 소련 · 중공 · 북한 동포들을 대상으로 한 국제방송에 쓸 조국강산을 주제로 한 가곡의 필요성 때문에 생겨났는데 작곡은 최영섭, 작사는 한상억으로 노랫말이 먼저 있었고 여기에 곡을 부쳤지요. 제목만으로는 북한에서 환영할 것 같은데, 본래의 가사는 북한이 싫어할 내용이었지요.

구체적으로 가사의 어떤 부분 때문입니까?

임채욱 선생: ‘예대로인가’는 ‘짓밟힌 자리’가 바꿔진 것이고, ‘슬픔’은 ‘원한’이 바꿔진 것이고, ‘못가본지’는 ‘더럽힌지’가 본래 가사였지요. ‘비로봉 그 봉우리 짓밟힌 자리’, 우리 다 맺힌 원한 풀릴 때까지‘같은 가사는 한 번입니다만 ‘수수만년 아름다운 산 더렵힌지 몇 해’라는 부분은 세 번이나 반복되지요. 그래서 작사자 한상억은 1985년 남북예술단 교환공연을 할 때 가사를 부분적으로 바꿨지요. ‘짓밟힌 자리’는 ‘예대로인가’인가로 ‘원한’은 ‘슬픔’으로 바꾸고 ‘더럽힌지’는 ‘못가본지’로 바꿨지요. 그때 평양에서 그 노래를 부른 이규도는 ‘더럽힌지’부분만 ‘못가본지’로 바꿔부르고 나머지는 고치기 전 가사대로 불렀지요. 본래 가사를 아는 이상 이 가곡이 북한에서 널리 불리기는 어려울 테지요. 그래서 가끔 남북관계 행사에서 남쪽사람들이 부르기도 했지만 북한에서 좋아는 하지 않았지요. 가령 2005년 11월 금강산 관광7주년 축하연 행사가 금강산 옥류관에서 열렸을 때 남쪽 뮤지컬 배우 이경애가 <그리운 금강산>을 불렀다고 하지요. 그 배우는 이 노래를 불러도 되나 하면서 불렀다는데 그 남편 되는 남쪽 국회의원이 북쪽 이종혁이란 간부에게 불러도 되겠느냐고 물으니 대답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 노래는 그 때 이미 금지곡이었지요. 2000년 어느 날 이 곡 작곡가 최영섭씨도 금강산에서 이 노래를 부르려니까 북측에서 못 부르게 만류했다고 하지요. 금강산 관광을 하던 시절 남쪽의 많은 사람들이 이런 사실들을 모르는 체 금강산을 오르면서 <그리운 금강산>을 흥얼거렸겠지요.

그럼 여기에서 남쪽에서 불리는 북한노래도 있을 것 아닙니까?

임채욱 선생: 남쪽 사람들이 북한에 가서 많이 들은 노래가 <반갑습니다> 아닐까요? 이 노래는 남쪽 사람들이 흥얼대도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것 같습니다. 또 북쪽 노래로써는 <휘파람> 같은 것이 많이 알려져 있지요. 북한에서 혁명성을 강조하는 무게 있는 가요는 ‘정책가요’라고 하고 일상생활 속의 감정을 다룬 노래는 ‘생활가요’라고 하는데 <휘파람>은 생활가요이다 보니 남쪽에서도 받아들일 수 있지요.

북한에서 <우리의 소원>을 금지한 것은 결국 어떤 것을 겨냥한 것이라고 봅니까?

임채욱 선생: 남북한에서 상대방 가요를 부르는 것은 그만큼 공통성의 영역을 넓히는 일인데 안타깝게도 <우리의 소원>같은 노래까지 금지곡이 됐다고 하니 유감이지요. 민족 동질성 회복을 위해서라면 하나라도 공통성을 더 찾아가야 할 터인데 같이 부르던 노래도 못 부르게 하는 것은 정세가 유리해질 때까지 달팽이처럼 웅크려서라도 자기 영역을 지키겠다는 의도로 보이네요.

북한에서 최근 남북이 함께 부르는 유일한 통일가요를 북한이 금지곡으로 선포한데 대해 주민들이 의아해하고 있다고 현지 소식통을 인용 지난 8월 4일 북한 내부소식 김지은 기자가 보도한 바 있습니다. 함께 들으시겠습니다.

김지은: 함경북도의 한 소식통은 2일 “중앙에서 얼마 전 주민들에게 노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금지곡으로 선포했다”면서 “지금껏 통일을 강조하면서 남북이 함께 부르던 노래여서 주민들의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고 자유아시아방송에 밝혔습니다. 소식통은 “김일성시대부터 ‘우리의 소원은 통일’은 7천만 민족을 하나로 묶는 통일가요로, 하나 된 강토에서 한민족으로 살아갈 의지를 담은 대중가요였다”며 “김일성과 김정일 시기에도 통하던 이 노래가 김정은이 집권하면서 금지됐다”고 언급했습니다. 소식통은 그러면서 “1989년 남조선(남한)정부의 허락을 받지 않고 제3국을 통해 평양에서 개최된 제13차 세계청년 학생축전에 참가한 남조선 전대협대표자 임수경 학생을 시작으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조선의 통일가요로 대중화됐다”고 설명했습니다. 통일노래가 금지곡으로 추가된 이유에 대해 소식통은 “금지곡 선정과 함께 전달된 김정은의 지시내용에 ‘더 이상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아니다’라고 명시돼 있으며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아니라 군사강국이 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고 말했습니다.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