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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문화산책

통일문화산책(남북한의 언어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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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김일성에 대한 표현을 할 때는 ‘최대의 존경표현과 정중한 말법’을 쓰라는 것인데, 몇 가지를 보면 첫째 김일성 이름 앞에는 수령이 와야 하고 이름 뒤에는 동지가 와야 한다.

광복을 찾은 지 올해로 71년인데, 이 햇수는 남북이 분단된 71년이기도 합니다. 남북한 분단은 처음에 군사적 분단조치로 3.8선이 생기는 지리분단으로부터 시작해서 동족 간에 전쟁을 하고는 정치적 분단으로 인한 이념분단이 깊어지더니 이제는 문화적, 심리적 분단까지 돼서 같은 민족인지, 다른 민족인지 할 정도로 심층적으로까지 이질화돼가고 있습니다.

통일문화산책 오늘 이 시간에는 분단으로 달라진 남북한의 많은 현상 가운데서 언어예절에서 달라진 모습을 살펴볼까 합니다. 먼저 광복 71년을 회고해 주시지요.

임채욱 선생: 네. 이 긴 분단의 세월을 눈여겨 들여다보면 말하고 생활하고 사고하는 데서 이질화돼 가는 것뿐 아니라 남쪽에서는 북쪽의 산천을 그리워하는 노래를 부르는데 북쪽에서는 남쪽의 산천이나 사람을 그리워하는 노래를 못 부르게 하는 감정의 상호주의까지 달라져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떻든 동질화의 끈을 찾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언어예절이란 어떤 면을 말합니까?

임채욱 선생: 예절은 말이나 표정이나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지요. 말, 표정, 행동, 이 세 가지 가운데 말로써 나타내는 언어예절이 제일 중요하다고 봅니다. 웃는 표정이나 정겨운 행동도 좋지만 모든 예절행위는 언어예절로부터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언어예절은 인사라든가, 대화라든가, 상대방을 부르는 호칭이나 지칭 같은 것에서 나타나는 것이지요.

남북한의 언어예절에서 특이한 면이나 중점을 두는 부분을 소개한다면?

임채욱 선생: 한마디로 말해서 한국에서는 언어예절에 대한 규제가 없지만 북한에서는 언어예절에 대한 공적인 규제가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말하는 대중, 이를 언중이라고 합니다만 이 말하는 언중이 늘 쓰던 방식대로 말하도록 그냥 두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언어사용을 자연적 추세에 맡기는 것이지요. 물론 언어를 통한 예절에서 그렇다는 것이지 쓰기나 말하기를 규정한 문법이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말도 규범적으로 사용하도록 규제하는 대상이 됩니다. 북한 언어예절은 말 차림과 존칭이란 두 가지 범주로 살펴볼 수 있는데, 말 차림은 사람 사이 서로 말을 주고받는 데서 지키는 예절이고 존칭은 이야기에 오른 사람 즉 대상이 되는 사람에게 하는 예절입니다.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주시죠.

임채욱 선생: 말 차림은 상대방에게 높임말을 쓰느냐, 동격인 말을 쓰느냐, 낮춤말을 쓰느냐 하는 아니면 중립적인 표현을 하느냐 등 네 가지 범주가 있지요. 높임말을 쓸 때는 “네, 그건 이렇습니다”, “ 이 애가 그 분 따님이시랍니다”, “광철이가 지배인 아들이십니까”하듯이 ‘습니다’, ‘답니다’, ‘랍니다’, ‘습니까’라는 토를 부치게 됩니다. 동격인 경우에는 “내 여편네요”, “우리 처가 아이들을 데리고 떠났다오” 같이 ‘오’, ‘시오’, ‘다오’같은 맺음 토씨가 붙습니다.

낮춤에는 ‘란다’, ‘구나’, ‘더냐’, ‘거라’같은 것이 붙습니다. 중립에는 ‘하노라’, ,그러리라‘, ’그것이어라‘ 같은 것이 있지요.

이 말 차림을 한국에서는 경어법이라고 해서 다섯 가지 범주로 나누고 있지요. 한국 경어법에는 아주높임, 예사높임, 예사낮춤, 아주낮춤, 반말이 있는데, 이 범주에 맞는 말을 함으로서 존경, 공손, 겸양 등을 나타내려고 하지요.

존칭에 대해서도 설명해주시죠.

임채욱 선생: 존칭이 이야기에 오른 사람에 대한 예절이라 했는데 주로 호칭이나 지칭에서 나타나지요. 호칭은 상대방을 직접 부를 때를 말하고 지칭은 상대방을 간접적으로 가리킬 때를 말하지요. 예를 들어 설명해보면 자기 아버지 동생을 호칭으로 부를 때는 숙부님이 되고 지칭으로 가리킬 때는 우리 삼촌이라 표현하는 것이지요. 북한에서는 언어예절에서 이 존칭이 아주 중요하지요. 그 누구보다 김일성 부자나 지금의 통치자를 부르는 호칭이나 지칭은 극상의 호칭이나 지칭으로 표현해야 하지요. 북한에서 1983년 (3월)에 제정된 <조선말 예절법> 제3장은 아예 ‘김일성을 섬기는 언어예절’이 한 장을 차지하고 있지요.

예절법이 다 있군요. 몇 가지만 소개해주시죠.

임채욱 선생: 네. 한마디로 김일성에 대한 표현을 할 때는 ‘최대의 존경표현과 정중한 말법’을 쓰라는 것인데, 몇 가지를 보면 첫째 김일성 이름 앞에는 수령이 와야 하고 이름 뒤에는 동지가 와야 한다. 둘째 김일성 동지 뒤에는 토씨를 반드시 ‘께’나 ‘께서’를 붙이고 셋째 수령 뒤에는 반드시 ‘님’을 붙여 ‘수령님’이라 하지만 다른 사람의 호칭이나 직책에는 님 자를 붙이지 못한다. 그러니까 당 지도원님, 군당 비서님, 중좌님, 중대장님이라 부르지 못하지요. ‘님’이 붙는 것은 ‘수령님’이나 ‘장군님’이 있을 뿐이고 유일하게 허용돼 는 것이 선생님이지요. 또 넷째 어휘를 골라 쓰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말하는 것도 청원형이나 의문형으로 써야하는 것이죠. “어버이 수령님, 좀 더 안정하시고 휴식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일과를 지켜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수령님, 이제 그만 돌아가 보셔야 하시지 않겠습니까?” 다섯째 김일성이 주어가 되는 말이 아니라도 김일성 이름을 제일 앞에 놓지요.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 여러 나라 지도자들이 축전을 드리었다.” 같은 표현이 그것이지요. 이 정도로 끝내지요.

북한에선 <조선말 예절법>도 있는데 한국에서는 그런 것이 없군요.

임채욱 선생: 규범적으로 있는 것과 실제 실천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지요. 한국에서도 한 때 ‘표준화법’을 만들려고 했을 때가 있습니다만 그게 만들어졌다면 많이 나아졌을까요? 공산주의가 한창 팽창하던 시절 ‘시장은 부르조아지가 민족주의를 배우게 되는 학교’라는 말이 있었는데 오늘날 ‘한국의 전철은 무례, 다시 말해서 예의 없음을 배우고 실천하게 하는 학교’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예의가 없는데, 가장 심각한 것이 언어예절이지요. 한국사회에서 특히 SNS, 소셜네트 워크서비스 상에 오르내리는 언어를 보면 언어예절이 완전히 실종된 상태죠. 이름 있는 학자도 SNS상에서 말한 번 잘못해서 온갖 욕설을 듣고는 절필을 선언해야 했지요. 한국에서 언어사용이 험악하다 보니 ‘전쟁을 닮아가는 언어’처럼 돼버렸다는 지적도 하고 있지요. “국내침대시장에 전운이 짙어지고 있다”, “구조조정실탄, 한국은행이 10조, 정부가 2조 댄다”처럼 전쟁용어를 쓴 신문기사도 자주 보지요.

북한은 <조선말 예절법>도 있는데 대남관계 표현은 어찌 그리 욕설에 가까운 표현 들 뿐일까 싶군요.

임채욱 선생: 김정일이 썼다는 <영화예술론>이란 책에는 “말은 곧 사람이다. 사람의 사상감정과 기호와 취미는 모두 말을 통하여 표현되며 그의 직업과 지식정도, 문화도덕 수준도 말에서 그대로 나타난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말이야 얼마나 옳은 말입니까?

하지만 그들이 계급적 원쑤라든가 대남관계 성명이나 기사에서 쏟아내는 말들을 보세요. 섬뜩하지요? 남북한 다 좋은 표정, 친절한 인사, 정확한 언어예절을 가르쳐서 훗날 통일 될 때 가시돋힌 말이 아니라 향기를 느끼게 하는 언사로써 서로 위로하고 감사하게 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