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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문화산책

애국선비 황현의 책 ‘매천야록’

독립운동가 매천(梅泉) 황현(1855∼1910)이 남긴 '매천 황현 매천야록'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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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TEASER: 황현은 전라남도 광양출신으로 과거시험에 합격했으나 당시 수구파 정권의 부패한 관리들에 환멸을 느끼고 귀향해서 전라남도 구례에서 작은 서재를 마련하고 책 3000여권을 쌓아두고 공부를 했습니다

애국선비 황현이 지은 책이 한국에서 문화재가 된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요.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황현과 그가 지은 책을 둔 남북한의 관점을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과 함께 알아 보겠습니다.

임채욱 선생: 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아직은 아닙니다. 문화재로 지정하려고 그가 지은 책 <매천야록>과 시문집, 그리고 관련 자료들을 등록한다고 예고한 것입니다.

어떤 책이고 어떤 자료들인지 구체적으로 밝히겠지만 먼저 애국선비 황현은 어떤 인물인지부터 알아볼까요?

임채욱 선생: 지난 4월 초 이 시간에 소개한 애국사상가 신채호보다 25년 먼저 태어났습니다. 둘 다 55년 정도의 생애를 살았지만 그들이 남긴 항일정신의 울림은 매우 컸습니다. 황현은 전라남도 광양출신으로 과거시험에 합격했으나 당시 수구파 정권의 부패한 관리들에 환멸을 느끼고 귀향해서 전라남도 구례에서 작은 서재를 마련하고 책 3000여권을 쌓아두고 공부를 했습니다. 그 공부는 역사와 경세에 관한 것이 주로 되었고 가끔은 시문도 지으면서 나라 걱정을 했습니다. 1894년에 동학운동이 일어나고 우리나라 땅에서 청나라 군대와 일본군대가 전쟁을 치르게 되자 나라의 위기를 한층 더 뼈아프게 느끼면서 <매천야록>이란 책을 씁니다만 1910년 8월 나라가 일제에게 빼앗기자 분을 참지 못하고 아편을 먹고 자결합니다. 죽음에 앞서 절명시를 남깁니다. 이 시가 우리의 심금을 때립니다.

이 절명시를 먼저 소개해 주시지요?

임채욱 선생: 7언절구로 된 한문시 4수입니다만 그 중 한 수만 우리글로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새와 짐승도 슬피 울고 산천도 찡그리며 무궁화 이 세상이 침몰해 버렸도다.

가을 등불에 책을 덮고 지난 날 돌아보니 세상에서 지식인 노릇하기도 어렵구나

이번에 문화재로 등록예고 된 <매천야록>은 어떤 책인지 소개해 주시죠.

임채욱 선생:책이름에 나오는 매천은 황현의 호입니다. 책은 1864년, 그러니까 조선시대 고종왕이 시작된 해로부터 시작해서 1910년 나라가 일본에 빼앗기던 해까지 47년간의 사건들과 사실들을 연대순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말 조정을 비롯해서 관리들의 비리, 비행이라든가 일본의 악랄한 짓들이라든가 이에 저항하는 우리 민족의 끈질김을 기록한 말하자면 역사책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그런데 책 내용 중에는 본인이 직접 보고 들은 것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실도 있어서 이런 부분에서는 잘못된 것도 발견된다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다른 데서 찾아볼 수 없는 중요한 비밀내용도 있어서 근대역사를 쓰려고 할 때는 꼭 찾아 읽어야 하는 책으로 평가됩니다.

알고 보니 황현은 한말의 꼿꼿한 애국선비이고 그의 책 <매천야록>도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군요. 북한에서도 황현을 보는 관점이라든가 <매천야록>에 대한 평가가 한국과 같은지요?

임채욱 선생: 네, 사실에서는 같은데 평가에서는 약간 차이가 있습니다. 황현을 이조말의 양심적인 학자, 문필가로 규정한 것이나 자결하기 전 1905년 을사조약으로 대한제국 국권이 빼앗기자 분해서 중국으로 망명을 하려했으나 뜻을 못 이룬 사실이나 지리산에서 30년 동안 그 곳 학자들과 글짓기에 전념했다든가, 우국지사로서 나라의 장래운명을 한탄하다가 자결했다는 부분도 틀리지 않습니다. 다만 그를 학자, 문필가로 보면서도 봉건유생이라서 그의 애국정신은 사회주의, 공산주의와는 인연이 없다고 봅니다. 따라서 한국에서는 1962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수여됐지만 북한에선 그런 것이 없습니다.

<매천야록>에 대해서는 관점이 어떻습니까?

임채욱 선생: <매천야록>에 대해서도 전체적인 맥락은 한국의 관점과 같은데 저자 황현이 봉건유생이기 때문에 사상적 제약성이 있고 시대적 제약성이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학운동에 가담한 농민들에 대해 ‘난민’이라고 표현하고 반일의병들을 ‘동비’라고 표현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래서 이 책은 우리나라 근대역사 연구에 참고할 만한 자료가 있는 책이지만 봉건임금을 섬기는 충군정신이 있고 봉건국가에 대한 애국사상이 보이는 한계가 있다고 평가합니다. 결국 사실에서는 왜곡이 없지만 평가에서는 한국에서의 그것보다는 약하게 합니다.

이번에 한국에서 문화재로 되는 책은 <매천야록> 외에는 없습니까? 황현의 책은 문집도 있을 것 아닙니까?

임채욱 선생: 매천이 지은 책은 <매천야록> 외에도 <매천집>, <매천시집>, <동비기략> 등의 책이 있습니다. 이들 책들과 함께 <매천야록>의 초고로 보이는 <오하기문>, 매천의 유묵, 자료첩 등이 포함됩니다. 또한 황현이 장원급제했던 시험지와 친구들과의 교환한 편지도 포함됩니다.

앞에서 중국에 망명하려 했다는데 구체적인 계획은 있었습니까?

임채욱 선생: 젊은 시절 과거를 보려고 서울에 왔을 때 이름 있던 학자들 가령 이건창이나 김택영 등과 잘 사귑니다. 그래서 서로 편지로 내왕하다가 1905년 11월 일본제국주의자들이 을사조약을 강제로 맺게 하자 국권회복운동을 하려고 결심하고 중국에 가있던 김택영을 만나기도 합니다만 뜻대로 되지를 못합니다.

남북한이 한 인물에 대해 평가를 달리합니다만 황현의 애국정신은 오늘에도 귀감이 되는 부분이 있겠지요?

임채욱 선생: 북한에서는 황현의 애국정신이 향하는 대상이 왕조시대 왕이라서, 물론 이때는 대한제국시대 고종황제가 됩니다만 봉건제 시대 황제라서 의미가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봉건왕조를 유지하고 봉건정치를 바로잡으려고 했다고 무의미하다고 봅니다만 황현의 애국심은 황제로 대표되는 우리나라에 대한 것이지 결코 봉건체제 자체를 옹호하는 것은 아닐 것 같습니다. 그의 애국심은 오늘 우리도 충분히 감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만해 한용운은 황현의 순국에 감동해서 1914년에 조시(弔詩)를 짓습니다.

그 조시를 소개해 주시지요?

임채욱 선생: 이것도 한자로 된 한시입니다. 우리말로 바꾸면 이렇습니다.

의리로써 조용히 나라의 은혜를 영원히 갚으시니

 

한 번 죽음은 역사의 영원한 꽃으로 피어나시네

 

이승의 끝나지 않은 한 저승에는 남기지 마소서

 

괴로웠던 충성 크게 위로하는 사람 절로 있으리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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