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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모음

겸손과 감사의 계절 12월-채수희 워싱턴 여류수필가협회

강물이 흘러가고 세월이 가듯이 이 해도 마지막 달력이 덩그러니 남아 한 해가 다갔음을 실감한다.
누구나 한번쯤 이때쯤은 자신의 부족한 점을 생각하게 하는 시점이어서 계절의 추이(推移)와 시간의 여울목이 감사하게 느껴진다.
종말은 시작의 첫머리이기도 하다. 마지막 한 달이 다가오는 새해를 더욱 값지게 보낼 수 있도록 다짐하게 하고 옷깃을 여미게 하는 것도 그 때문일까. 그래서 세모는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겸손해지는 계절이기도 하다.
어쩌면 올해도 나는 무의미한 시간의 흐름에 끌려 살아오지 않았는가 생각해 본다. 그래도 세월은 영원의 모습을 보여주고 인생의 심연으로 인도해 주었다. 세모는 지나온 길과 남은 길을 바라보고 생각하게 한다.
과연 인간은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 것일까? 겨울하늘 아래 서있는 인동(忍冬)의 나무를 바라본다. 그토록 무성했던 나뭇잎은 소리 없이 순교자의 모습으로 흙에 묻히고 벗어버린 잎으로 뿌리를 덮고 다음해를 기약하는 겸허한 모습을 보여준다.
채움이 있었으니 비움도 준비되어서 비워야만 새로운 것을 담을 수 있다는 것을 자연에게서 배운다.
우리가 살아가는 척박한 이민의 삶이지만 인생의 가시는 꽃과 나무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행복해 보이는 사람에게도 보이지 않는 가시가 있다. 때로는 그 가시 때문에 오히려 인간존재를 올리는 힘이 되기도 한다. 새들은 하늘에 검은 먹구름이 드리울수록 더욱 세차게 날개짓하며 비상한다. 인간은 왜 역경 속에서도 인생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고 살아야하는가. 우리 삶의 고비 고비마다 얼마나 많은 눈물이 있고 고단한 삶인가.
오늘이 아무리 힘들고 버거워도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는 법, 바다도 폭풍우 속에서 깨끗해진다고 한다. 힘겨운 세상일수록 희생적인 사랑의 삶만이 행복한 삶이 되는 것 같다.
세모는 어려운 이웃에게 사랑을 베푸는 나눔의 계절이다. 내일을 향해 끝나지 않는 희망의 노래가 울리는 12월. 나 혼자만 행복해지기보다는 이웃과 함께 기쁨과 슬픔도 나누자. 가진 것이 아무리 작을지라도 이웃사랑으로 눈 돌릴 때다. 나무 한그루에서 삶의 지혜를 찾는다. 또한 견딜 수 있는 만큼의 어려움을 주셔도 몇 배로 갚아주시는 하나님 은혜에 감사기도를 드린다. 그래서 이웃을 향해 항상 따스한 마음이 식지 않도록 마음의 군불을 피우며 세모를 맞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