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귐과 섬김의 공동체 시리즈 (2) 나는 거짓말쟁이인가?”(Am I a Liar?)-와싱톤한인교회 김영봉목사

                                                  
                                                  (김 영봉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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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귐과 섬김의 공동체 시리즈 2>
“나는 거짓말쟁이인가?”(Am I a Liar?)
--요한일서 4:19-21

1.

종교마다 그 종교의 핵심을 나타내는 상징이 있습니다. 불교는 만(卍)자 형태를 상징으로 사용합니다. 이 형태는 원래 산스크리트어에서 왔고 나중에 한자에 유입되었다고 합니다. 만자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학설이 분분한데, 보통은 시작도 끝도 없음을 상징한 것이며, 온갖 좋고 덕스러운 것이 결집된 모양이라고 이해합니다. 원불교에서는 동그라미 형태를 상징으로 사용합니다. 이 상징은 ‘일원상’(image of one origin)이라고 불리는데, 모든 진리가 하나의 원리에서 시작되었고 또한 하나의 진리로 귀결된다는 상징이라고 합니다.

유대교는 여섯 뿔이 달린 별을 상징으로 사용합니다. 전승(tradition)에 의하면, 다윗이 이 별을 자신의 왕국의 상징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다윗의 별은 유대인들이 완전수라고 생각하는 일곱 수를 상징합니다. 별의 여섯 뿔과 가운데 공간이 합하여 일곱이 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다윗의 별은 완전한 왕국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슬람교는 초승달을 상징으로 사용합니다. 이것은 모하메드가 알라로부터 계시를 받을 때가 초승달과 샛별이 떠 있던 밤이라는 전승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초승달은 깜깜한 밤이 지나고 달이 점점 커지는 시기에 처음 뜨는 달이기 때문에 ‘진리의 시작’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슬람교가 참된 진리의 시작이라는 뜻이겠지요.

기독교의 상징은 당연히 십자가입니다. 상징 치고는 좀 자극적입니다. 십자가는 당시로서는 가장 잔인한 형틀이었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어느 종교에서 교수대를 자신들의 상징으로 삼았다고 칩시다. 보통 일이 아닙니다. 십자가 상징은 그런 것입니다. 예수라는 유대 청년이 실제로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하지 않고는 이런 흉칙한 물건을 상징으로 삼을 수는 없는 법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사람들은 이 십자가에서 또 하나의 의미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십자가는 세로대와 가로대, 두 개의 막대기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사람들은 하늘과 땅을 잇는 세로대에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보았고, 옆으로 뻗어 있는 가로대에서는 이웃과의 관계를 보았습니다. 십자가는 이 두 가지의 관계가 교차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는 기독교의 진리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두 개의 나무 중 하나가 없으면 십자가가 만들어질 수 없듯, 두 가지의 관계 중 하나가 없으면 기독교 신앙이 완성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또한 십자가가 세워지려면 먼저 세로대가 세워져야 하듯, 우리의 신앙에 있어서도 하나님과의 수직적인(vertical) 관계가 우선입니다.

2.

오늘 읽은 요한일서의 말씀은 기독교 신앙이 왜 십자가 형태(cruciform)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오늘의 말씀은 분명히 말합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19절)라고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 인간을, 아니 나를 사랑하셨습니다. 내가 아직 죄인으로 있을 때, 나를 사랑하셔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그 사랑을 체험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내리 사랑’에 대해 우리가 ‘오르 사랑’으로 응답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위 아래로 사랑이 오고 갑니다. 그것이 하나님과의 사귐입니다. 그렇게 하여 십자가의 세로대가 세워집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나 사이에 사랑이 오르락 내리락 하다 보면, 나의 눈에 이웃이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그 사랑이 내 마음 속에서 활동하기 시작하면, 전에 보던 이웃들이 새롭게 보입니다. 안 보이던 이웃이 눈에 들어옵니다. 사랑할 수 없던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낯선 사람에게 접근할 담력도 생기고, 나를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손을 뻗쳐 사랑할 수도 있게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속성입니다. 만일 이런 일이 나에게서 일어나지 않는다면,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아직 받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은 이렇게 말합니다.

누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 형제자매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보이는 자기 형제자매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형제자매도 사랑해야 합니다.(20-21절)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다른 사랑과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이성적인 사랑의 속성은 독점하려 합니다. 다른 사랑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지난 주, 웃지 못할 뉴스를 접했습니다. 뉴욕 주에 사는 한 의사가 두 개의 신장이 모두 작동하지 않는 아내에게 신장 하나를 주어 살려냈습니다. 남편의 장기가 아내의 신체에 match되는 일은 매우 드문데, 그같은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살려 주었는데, 그 아내가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지면서?이런 것에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이 말도 안 됩니다만?이혼을 요구했습니다. 그러자 이 남편이 자기가 준 신장을 돌려 달라고 소송을 냈습니다. 신장을 주지 않으려면 백오십만 달러를 달라고 요구했다고 합니다. 죽고 못 살겠다고 몸부림치던 이성간의 사랑이 이렇게 될 수도 있습니다.

가장 수준 높은 부모와 자식 사이의 사랑도 때로 이기적인 모습으로 표현됩니다.효심은 지극한데 자기 부모밖에 모르는 사람들이 많고, 자식 사랑은 뜨거운데 제 자식밖에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친구 사이의 우정도 때때로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모습을 드러냅니다. 인간적인 사랑은 대개 이렇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만 바라보도록 만들지 않고, 이웃을 돌아보게 만듭니다. 하나님을 진실하게 사귀면 하나님 앞에 내가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존재이며 그 보잘 것 없는 존재를 하나님께서 얼마나 귀하게 여기시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동시에, 나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도 그렇게 귀하게 여기신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 한 사람의 영원한 가치에 눈을 뜨게 됩니다. 사회에서는 한 사람의 자본 가치에 따라 그 사람에게 등급을 매깁니다. 하지만 하나님과 사귀는 사람은 모든 사람을 있는 그대로 영원한 가치를 가진 존재로써 귀하게 여깁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진실한 사귐은 이웃과의 사귐을 가능하게 하며,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면 그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3.

이 지점에서 이렇게 묻고 싶은 분이 계실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은 십계명에서 그 어떤 우상도 만들지 말라고 명령하시면서 뭐라고 말씀하습니까? 나, 주 너희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다(출 20:5)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랑도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사랑이 아닙니까? 하나님도 자기만 사랑해 달라고 위협하신 것 아닙니까?”

여기에 대해서는 두 가지로 답할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이 여기서 경계하시는 것은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신으로 섬기는 행동, 즉 우상숭배를 경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신으로 섬기는 순간, 우리는 그 우상의 노예가 되기 때문입니다. 둘째, “질투하는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경쟁심과 시기심이 많은 하나님’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구약학자 월터 브루그만(Walter Bruggemann)에 따르면, 이 말은 ‘정열을 가진 하나님’(God with passion)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옳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뜨거운 가슴을 가진 분이라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바 아버지라고 부른 하나님은 뜨거운 가슴을 가지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를 우상에게 노예로 내어 주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인간을 뜨겁게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사랑 안에서 살아가기를 바라십니다. 그 사랑 안에서 살면 우리는 비로소 참된 사랑을 알고 그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거짓말쟁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그 사람의 말이 거짓이라는 겁니다. 그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착각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아닌 우상을 사랑하는 것이거나, 스스로는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자아 도취 속에 빠진 것이거나, 둘 중 하나라는 말입니다. 본인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 사람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셈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으로 우리를 잠깐 비추어 보십시다. 이 시간, 우리가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고 있고 말씀을 듣고 있으니,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적어도 하나님을 믿으려는 마음의 소원은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가장 가까운 이웃, 우리 가족에 대한 사랑부터 점검해 보십시다. 나는 과연 내 배우자를 사랑하고 있습니까? 나는 내 자녀들을, 내 부모와 형제 자매들을 진실하게 사랑하고 있습니까? 그들과의 사귐이 얼마나 있습니까? 내 가족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줄 마음과 시간과 정성이 있습니까? 내 가정에서의 가장 중요한 가치를 어디에 두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진실로 믿는다면 혹은 믿기 원한다면, 그 믿음이 당연히 이 영역에 영향을 미쳐야 합니다.

얼마 전, 서울대 정운찬 교수께서 뉴저지에 있는 어느 교회에서 강연을 했다는 기사를 어느 교우께서 저에게 보내 주셨습니다. 그 강연 내용을 보니, 재미 있는 대목이 있습니다. 그분은 서울에서 자주 전철을 타고 다니는데, 그러다 보면 아줌마들의 수다를 귀너머로 듣게 된다고 합니다. 그 수다를 들으며 관찰을 해 보니, 한국의 주부들은 ‘평등’을 가장 큰 가치로 두고 산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평등을 최고 가치로 두고 산다? 한국의 주부들이 수준이 대단히 높지 않습니까? 그런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닙니다. 한국 주부들은 ‘평’자와 ‘등’자를 좋아하는데, ‘평’자는 아파트 평수의 평자고, ‘등’자는 아이들 학교 등수의 등자라는 겁니다. 한국 가정의 가치가 큰 집을 사는 것과 아이들 공부시키는 것에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가정은 어떻습니까? 우리가 만일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우리 가정의 최고 가치가 사랑 깊은 사귐을 나누는 일에 있지 않다면, 우리는 어느 정도 거짓말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만일 부부 사이에 진정한 인격적 사귐은 없고 일방 통행만 있다면, 그러면서도 하나님을 진실하게 믿고 있다고 말하면, 우리는 거짓말을 하는 셈입니다. 가정에서 폭행이 오고 간다면, 그건 더 말할 것이 없습니다. 만일 아이들과의 사이에 사랑 깊은 사귐은 없고 잔소리와 닥달만 있다면, 그러면서 하나님을 믿고 있다고 말하면, 우리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진실하게 하나님을 사귀고 그 사랑 안에서 뿌리를 내리고 자리를 잡고 살아간다면, 우리는 배우자나 자녀나 부모 형제와 진실한 사귐을 나누며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4.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교회가 하나님을 깊이 사귀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면, 우리 중에는 진정한 사귐과 나눔이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진실한 관심이 있어야 합니다. 서로를 돌아 보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오랫 동안 함께 신앙 생활을 한 사람과도 그래야 할뿐 아니라,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그럴 수 있어야 합니다. 인간적인 관심사 때문이 아니라, 혹은 사업적인 목적을 숨기고 사람에게 접근하는 그런 것 말고, 아무 조건도, 숨겨진 목적도 없이,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두고 다가가며 귀 기우리고 사귀려는, 타인에 대한 순수한 관심과 배려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 변화가 없다면, 오늘 말씀에 의하면, 우리는 거짓말하는 사람이 되어 버립니다.

어느 교회에 분란이 발생했는데 서로 타협이 되지 않아서 한 무리는 위층에서, 다른 한 무리는 아래층에서 예배를 드린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이런 교회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분들의 사정을 자세히 모르고 이런 말씀을 드려서 죄송합니다만, 예수님의 말씀에 따르면, 그 예배는 무효이며, 그들이 만일 “우리도 하나님을 믿느다”고 말한다면 그 말은 거짓말입니다. 하나님을 진실로 예배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진실로 경험한 사람들이라면 그렇게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여러분도 동의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도 때때로 거짓말하고 있음을 아시는지요? 혹시나 우리 교회에 낯선 사람이 왔다가는 아무도 친구가 되어 주는 사람이 없어 서성대다가 그냥 돌아갔다면, 우리가 혹시 거짓말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어제 연합감리교회 알링턴 지방 Leadership Training Day에 기조 강연자로 왔던 신학자 다이애나 버틀러 배스(Diana Butler Bass)가 그의 책 <Christianity for the Rest of Us>에서 그런 말을 합니다. 낯선 사람을 환대하여 한 가족이 된 듯이 느끼도록 만드는 것은 교회 성장 전략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덕목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는 우리 교회 안에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있습니까? 내 기도 속에 어려움을 당한 교우의 이름이 기억되고 있습니까? 교인 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 서로 연결되는 것인데, 나로부터 눈을 돌려 다른 지체의 아픔을 돌아보고 있습니까? 어떤 사람이 갑작스럽게 어려움을 당하여 도움을 청할 사람을 찾을 때 내 이름을 생각할 사람이 있을까요? 반대로, 내게 갑작스러운 어려움이 생겼을 때 교인 가운데 연락하여 부탁할만한 사람이 있습니까? 몇 가지 예를 든 것뿐입니다만, 만일 이 모든 질문에 대해 대부분 아니라는 대답이 된다면, 우리가 진실로 하나님과 사귀고 있으며, 그 사귐의 능력이 내 안에서 역사하고 있는지,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점검해 볼 일입니다.

우리가 “사귐과 섬김의 공동체를 향하여!”라는 표어를 내걸고 ‘영성 목회’를 지향한다고 말하는데, 만일 교우들 사이에 깊고도 밀도 있는 사귐이 자리잡지 못하면, 우리는 거짓말을 하는 셈이 됩니다. 저는 거짓말하는 목회를 하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가 거짓말 하는 교회가 되기를 원치 않습니다. 여러분도 그것을 원치 않으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더욱 하나님과의 사귐에 힘쓰고 그 사귐의 능력으로 교우들을 사귀고 섬기는 일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다른 누가 그렇게 할 것을 기대할 것이 아니라, 나부터 그렇게 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많아져 우리 교회가 진실로 따뜻한 영성 공동체로 성숙해 가야 하겠습니다.

5.

이 지점에서 여러분 마음에 “아, 나는 아직 멀었구나. 가정에서도 그렇고, 직장에서도 그렇고, 교회에서도 그렇고, 나는 아직 멀었구나”라는 작각이 든다면 참 다행입니다. 저도 그같이 부족함을 느끼는 마음으로 이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과 깊은 사귐을 나눈다 해도 완전해질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하나님과의 사귐이 깊어도 가족들에 대한 나의 사랑에는 결함이 있을 수밖에 없고, 이웃에 대한 사랑에도 한계가 있으며, 교우들을 향한 사랑에도 제한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그같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것을 인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상습적인 거짓말쟁이일 가능성이 큽니다.

우리가 사랑에 있어서 부족한 것으로 판명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다만, 하나님과의 사귐의 능력이 나를 변화시켜가고 있느냐가 문제일뿐입니다. 만일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진정한 사귐이 없고 따라서 사귐의 능력이 내게서 활동하고 있지 않다면, 그러면서도 스스로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말하고 다닌다면, 그 사람은 오늘 본문의 표현을 사용한다면 상습적인 거짓말쟁이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부족함을 항상 인식하고 하나님과 더 깊은 사귐에 힘쓰고 그 사귐의 능력으로 점점 더 사랑의 능력이 커가고 있다면, 그 사람은 때때로 ‘의도하지 않은 거짓말’을 범하기는 하지만, 상습적인 거짓말쟁이는 아닙니다.

상습적인 거짓말쟁이에게는 희망이 없습니다. 이미 마음이 썩어서 변화될 여지가 별로 없습니다. 자신의 잘못과 한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과의 사귐에 힘쓰며 그 사귐의 능력으로 가정에서, 교회에서 그리고 사회에서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힘쓰는 사람들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인간적인 한계 때문에 때때로 넘어지기는 하지만, 그래서 때때로 거짓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더 큰 은혜를 구하며 날마다 성장해 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결론은 다시금 하나님과의 사귐으로 귀결됩니다. 배우자에 대한 사랑에 있어서 상습적인 거짓말쟁이가 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자녀들에 대한 사랑에 있어서 혹은 부모 형제에 대한 사랑에 있어서 습관적인 거짓말쟁이가 되고 싶은 사람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 모두는 진실한 사랑을 원합니다. 진실하게 사랑하기를 원합니다. 그렇다면 방법은 오직 하나, 더욱 더 하나님을 사귀는 데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고 그분과 사귀는 데 해결책이 있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 안에 뿌리를 박고 터를 잡아 무럭 무럭 자라가는 데 해결책이 있습니다.

우리는 예외 없이 직장에서 혹은 사회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사랑으로 대하기를 원합니다. 교회에서 참된 사귐을 나누는 형제 자매를 얻기 원하고, 나 또한 그렇게 다른 사람의 진실한 친구가 되어주고 싶습니다. 우리 교회가 누구나 와서 feel at home할 수 있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차분하지만 따뜻하고, 깊이 알아갈수록 더욱 진하고 강한 사귐이 나누어지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방법은 우리 모두 더 깊이 하나님을 사귀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과 내가 나누는 종적인 사랑이 커지고 커져서 마침내 옆으로 확산될 때까지 삼위의 하나님을 더욱 사귀고 또 사귈 일입니다.

6.

지난 해 11월에 남성들만의 영성 수양회를 다녀 왔습니다. 지난 주, 그곳에 참여했던 분 중 한 분을 만나, 수양회 이후 약 3개월 동안 지내 온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수양회 둘째 날 아침 강의가 끝난 다음, 제게 찾아와 “이제야 길을 찾았다!”고 말씀하시며 눈물을 흘리셨던 분입니다. 수 십년을 믿어왔지만 제대로 믿고 살아가는 길을 찾지 못했는데, 이제는 그 길을 알 것 같다면서 감격스러워 하셨습니다. 수양회를 마친 후, 저는 그분이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지난 주에 만나 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분은 집에 돌아와 수양회에서 배운 대로 아침 첫 시간을 떼내어 기도하며 말씀 묵상을 하고 침묵과 명상을 하면서 하나님과 사귐을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잘 되지 않았습니다만, 인내심을 가지고 매일 경건 생활에 힘썼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서서히 하나님과의 사귐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되었고, 그렇게 하면서 사귐의 능력을 경험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매일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때는 달콤하고 황홀하며, 또 어떤 때는 무덤덤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살 길이라고 여겨 지속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경험한 것만으로도 참으로 기가 막히다고 하셨습니다.

그분의 말씀 중에 제게 특별히 인상 깊은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깊은 사귐에 힘쓰다 보니, 때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귀하게 보이고 사랑스러워 보이는 변화가 자신의 마음 속에 일어난다고 합니다. 물론, 항상 그렇다는 말이 아닙니다. 아침에 하나님과 깊고도 달콤한 사귐을 나누고 난 날이면 대개 그렇다는 말입니다. 그 시각을 잃고 다른 때와 다름 없이 사람들을 무덤덤하게 대할 날도 있지만, 하나님과의 사귐이 깊었던 날은 분명히 그런 변화가 일어난다고 합니다.

그분은 치과 의사로 일하시는데, 하나님과의 사귐이 깊었던 날은 환자들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고 합니다. 그들이 사랑스럽게 느껴지고, 그들의 고통에 대해 진실한 안타까움(compassion)이 마음에 들어찹니다.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된다고 합니다. 그 병원에는 한국 환자들이 많이 오는데, 그분들 중에는 진료비를 깎으려 하고, 어떻게든 진료비를 내지 않으려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고 합니다. 전에는 그런 사람들 때문에 스트레쓰도 많이 받고 때로 미운 감정에 괴로움도 당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그분들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고 합니다. 요즈음에는 이렇게 대답한다고 합니다.

“예, 저는 진료비에는 관심이 없으니, 알아서 하십시오. 저는 선생님의 고통을 치료해 드렸으니 그것으로 됐습니다. 제가 진료한 값이 얼마라고 생각되든, 그만큼만 내시면 됩니다. 사무원이 드린 청구서는 그냥 기준일뿐입니다. 저는 선생님이 잘 치료되고 행복하시면 그만입니다.”

가식이나 위선으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진실로 그렇게 느껴져서 그렇게 말하고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아직 하나님과의 사귐이 깊지 못하여 늘 그러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성령으로 충만한 날은 그렇게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더라는 겁니다. 자신이 스스로 생각해 보아도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다는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분이 지난 몇 개월의 영적 생활로 인해서 성인(saint)이 되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분 자신도 인정했듯이,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멉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보여주신 증거로만도 과연 하나님과의 사귐에 진정한 해결책이 있음을 확인했다고 합니다.

7.

그렇습니다. 길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사귐에 힘쓰는 것, 바로 그것에 우리가 마음에 품고 있는 모든 거룩한 열망을 이루는 길입니다. 구원의 확신을 얻는 일도, 참된 진리를 발견하는 일도,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는 일도, 나에게 주어진 소명을 발견하는 일도, 모두 하나님과의 사귐에서 일어납니다. 나의 영적 시야가 밝아지는 일도, 내 박약한 의지가 새로와지는 것도, 내 부족한 사랑이 온전해지는 일도, 모두 하나님과의 사귐에서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결국 내 가정의 문제도, 내 직장의 문제도 그리고 우리 교회의 문제도 모두 하나님과의 참된 사귐에 그 해결책이 있다는 결론입니다.

이 일이 앞으로 우리 모두의 최고의 관심사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각 가정에서 진실한 사귐이 일어나기를, 교회에서 그리고 속회에서 사랑 깊은 사귐이 일어나기를, 그리고 그 사귐의 능력으로 우리가 일하는 일터에서 참된 친구를 찾는 사람들에게 친구가 되어 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우리는 상습적인 거짓말쟁이가 되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서 참 말을 하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그것이 살아있는 믿음이며, 그 믿음이야말로 우리를 구원하는 능력입니다. 그 때에만 우리의 십자가는 온전해질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통해 십자가 형태의 신앙을 온전히 이루어 나가시는 주님의 은총이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십자가에서 참된 사랑을 드러내신 주님,
저희의 사랑도 십자가 형태의 사랑이 되게 하소서.
주님과 더욱 깊이 사귀게 하시고
그 사귐의 능력이 우리 속에서 역사하여
걸어잠근 마음의 문을 열게 하시고
팔짱 낀 팔을 펴게 하시며
움켜 쥔 손을 펴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