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문화의 요람(搖籃) (13)
<역사의 뿌리를 찾아서>
이 문 형(워싱턴 문인회)
지난호의 연장 선에서 우리의 정사라는 <삼국사기>의 맹점 몇 가지만을 간추려 옮겨본다.
삼국사기는 고려 인종(仁宗 1123~1146) 때 독실한 유학자 김부식에 의해 쓰여진 책이다.
<한(漢)나라 역사책에 얽매이고, 유학에 빠져 중국 공자가 우리를 오랑캐라 말함을 스스로 달게 여기고, 기자 (箕子)가 귀화 했다는 것도 무조건 믿으며, 한무제가 토벌 했다는 것도 믿는 황국사 관에 의해 쓰여진 김부식 이 이 책을 엮으면서 변명하기를 “해동삼국은 역년이 장하구나 옛날에 는 기록할 문자가 거칠고 옹 졸 해서 사적이 다 빠지고 없어져 지나간 일이 희미하다”고 했는데, 이는 부질없는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조대기(朝代記), 고조선비기(古朝鮮秘記), 지공기(誌公記), 삼성비기(三聖秘記) 등을 300 년 후인 조선 제7대 세조가 구하려 영을 내린 기록이 있고, 1911년 계연수께서 환단고기를 쓰면서 삼성기,단군 세기, 북부여기, 태백일사’ 등 4종의 사서를 하나로 엮어 만든 책이라 했으며, 또 규원사화는 1675 년 북애 께서 40여 권 의 사서를 참고로 하여 썼다고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바탕이 된 진역유기 는 공민왕 때의 학자인 이명(李茗) 이 쓴 책으로 그는 또 조대기(朝代記)를 보고 썼다고 했으니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하 겠는가,
이어서 독실한 불교 승려인 일연의 삼국유사의 억측과 억설에 관한 기사 몇구절을 제시해 본다.
삼성밀기(三聖密記)나 조대기(朝代記)에는 웅족(熊族), 호족(虎族), 또는 양가(兩家)라고 되어 있는 것 을 삼국유 사에서는 족(族)자와 가(家)자를 빼버리고 곰(熊), 호랑이(범:虎)이라고 했고, ‘함께 이웃에 살았다’ (同隣而居)를 ‘함께 굴에서 살았다’(同穴而居)로 하였으며 ‘한얼님의 계율을 잘 지킬 수 있는 착한 백성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願化爲天戒之珉)를 ‘원컨데 사람으로 되게 하여 주옵소서’ (願化爲 人)로 ‘다시 참 사람이 되어 큰 일을 할 수 있는 대인이 될 것이다’(更得踐形之大人 者)를 ‘다시 사람 의 모양을 얻을 것이다’(更得人形)로 ‘건전하고 씩씩한 아릿다운 여인을 얻었다’(得健資之容)를 ‘곰은 여자의 몸을 얻었다’(熊得餘身)로 ‘마침내 하늘 사업에 참여 할 수 없게 되었다’(終不得 與之贊天業) 는 ‘사람의 몸을 얻지 못했다’(而不得人身)라고 고쳤으니 이보 다 더한 변위는 없을 것이다.
정사(正史)가 완전한 신화(神話)로 변위(變僞)되어 전락하는 데 커다란 기여(?)를 한 것 이다.
대인의 나라 동이를 부러워 하고 거기에 가서 죽고싶다고 했던 공자가 그럼에도 춘추를 쓸 때는 어떠했는지를 보자. 규원사화 각주풀이의 내용을 인용한다.
[공자는 춘추(春秋)를 쓸 때 중국이 다른 민족으로부터 정복 당하고, 패배당한 사실을 삭제하고 오 로지 爲中國諱恥(위중국휘치)라는 필법으로 역사를 기록하였다. 이는 중국의 수치스러운 역사는 기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마천(司馬遷)이 쓴 사기(史記) 역시 우리 겨레의 중원지배를 빼려고 사력을 다했다]
공자로부터 시작 된 이 악습이 20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유명한 학자인 양계초(梁啓超)선생 같은 분은 “전국시대와 진(秦) 한(漢) 시대에 위서 (僞書)가 가장 많이 나왔다”며 개탄해마지 않았다.
동양사는 그 근본부터 다시 써야한다는 주장이 학자들에게 크게 설득력을 지니는 이유는 세월이 많이 흘렀다는 이유 말고도 진실문제가 역사의 토대가 된다는 것을 믿기 때문일 것이다.
史記에 대한 해설은 간략하다, [史記는 중국 한(漢)나라의 사마천(司馬遷)이 황제(皇帝) 헌원으로부터 무제(武帝)의 일을 130권에 기록한 사서로서 문학적인 가치로도 인정받는다.
그러나 사마천은 황제가 치우천황에게 곤욕을 치르는 등 우리 민족 때문에 받아던 치욕의 역사는 쓰기를 꺼려했다. 중국이 글로서 우리를 깍아 내리기 시작한 것은 공자와 사마천부터라고 해도 좋 을 것이다.
그렇게 하였음에도 史記에는 우리의 강성했던 기록들을 엿볼 수 있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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