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3-24
북한에서 17년 동안 청소년기를 보내고 지난 2001년 북한을 탈출해 현재 남한에서 대학생활을 하고 있는 강원철 씨가 ‘인권부재로 죽어 가는 북한인민’들을 ‘남한사람들이 살려내야’한다고 자유아시아방송과 회견에서 밝혔습니다. 강원철 씨와 회견 1부로 오늘은 남북한 사회의 비교와 17살 나이에 공개총살형에 동원됐던 경험 등을 들려드립니다. 회견에는 서울에서 이현기 기자입니다.
강원철 씨는 17살인 어린 나이에 북한을 탈출했고 남한에 정착해 대학을 다니고 있으며 젊은이로서 남한과 북한의 사회를 다 경험을 했는데 바로 어떤 점이 다른지 비교해 주시지요?
강원철: 저는 어릴 적에 나왔지만 지금 와서 비교해 보는데 일단 북한에서 가지지 못했던 자유가 가장 좋았구요. 북한에서는 그런 것이 없잖아요. 종교의 자유, 사상의 자유, 이동의 자유, 언론의 자유 또한 없는 등 모든 자유가 주어지지 않지만 한국에 와서는 대통령도 탄핵을 하는 것을 보고 저희 대학생 같은 경우 등록금 같은 것을 동결하라고 학장실 점거와 단식농성 등을 봤을 때 바로 자기표현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게 참 좋은 것 같습니다.
북한사회 같은 경우 모든 것이 당과 수령께 어긋나는 행동 등은 허락이 안 되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거예요. 내가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그 말로 인해서 우리 온 가족이 정치범 수용소나 영영 나오지 못하는 그런 곳으로 끌려가는 불안감 때문에 항상 조심을 해야 되고 속은 그렇지 않는데 입으로 나오는 건 반대되는 이야기가 나올 때가 많지요. 그런 것에 대해서 대개 답답했어요. 여기 와서는 참 무엇이나 말할 수 있고 자신이 느끼고 생각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참 제일 좋은 것 같습니다.
탈북한 젊은이로서 국제사회 속에서의 북한체제의 잘못된 점을 지적한다면 어떤 것입니까?
강: 모든 것이 다 그런 것 같습니다. 제가 일단은 어린 나이(17살)에 나왔으니까 교육의 문제점이 참 많다고 생각을 합니다. 또 어린 나이(17살)에 군에 내보는 것, 자유가 없는 것은 말할 나위가 없고, 북한사회는 계급이지 않아요? 모든 것이 신분의 위주로 취업에 있어서도 딱지가 따라 다닙니다. 그런 것도 한국사회랑 다른데요 - 한국은 실력위주고 모든 게 경쟁인데 - 북한은 그게 아니잖아요. 신분 계급을 따져 가지고 그 사람의 출생 즉 머리와 실력과는 무관하게 그 사람들은 무한정 클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북한인데 한국은 그렇지 않아요.
한국은 자기가 노력한 만큼 얻고 사회가 인정을 해주는 사회이니까 그런 것을 봤을 때 많은 차이가 나지요. 북한에서는 한국처럼 경쟁사회가 아니다 보니까 사람들이 모든 것이 협동적으로 같이 일하고 같이 나눠먹는 형식이니까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지 않는 거예요. 아무리 내가 열심히 일해도 모든 사람이 똑같이 분배를 받으니까, 많이 일한 사람도 그 만큼 갖고 적게 일한 사람도 똑 같이 받으니까, 일에 대한 욕심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그리고 교육에 있어서 어린아이들에게 인권유린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일년에 3개월은 나가서 농장일을 도와야 돼요. 또한 저희는 공개처형 같은 경우 수업을 중단하고 보여주는데 이것은 바로 체제유지를 위한 도구로 북한사회는 사용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것이 한국사회에서는 생각지 못하는 일인데요. 그런 것을 봤을 때 북한은 좋 &# xC9C0; 않은 곳이라는 것을 요즈음 하고 있습니다.
북한에서 공개처형에 학생들도 동원되는 것을 이야기했는데 몇 살 때에 공개처형 현장을 가봤습니까?
강: 처음 목격한 것은 15살 이였고, 사형수는 소를 잡아먹었고, 북한에서는 사람과 소를 1:1로 보는데 소를 잡아먹었다는 이유로 - 그때가 97년도쯤 됐어요 - 사람들이 식량이 없으니까, 배고프니까, 잡아먹은 거예요. 잘 못 걸려서 공개 처형을 당한 경우입니다. 그 당시 오전 수업을 마치고 전교생이 오늘 어디에서 공개 처형이 있다, 무조건 봐야 되겠다해 가지고 수업을 중단하고 봤습니다.
참 그 어린 나이에도 이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내가 열여섯 살 한국에서 말하면 그 철부지이잖아요. 그 나이에도 &# xC8C4;를 짓지 말아야 되겠다. 나도 죄를 지으면 저 사람처럼 이 수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공개처형을 당할 수 있겠다. 죽어도 죄를 짓지 말아야 되겠다는 생각을 몇 십 번을 했어요. 저 같은 느낌을 모든 사람들이 다 했을 것입니다.
북한에 있을 때 외부 소식은 어떻게 전해 들었습니까?
강: 전혀 들을 수가 없어요. 외국에 대해서 저희 집이 국경근 &# xCC98;에 있으니까 중국에 있는 이야기는 조금씩 들어도 뉴스 같은 경우 조선중앙방송이 하나니까 접할 수 있는 게 하나인데 - 그게 김정일이와 그 국가를 선전하는 선전 도구예요 - 모든 것이 어느 곳에서 대형사고가 일어났다고 해도 그런 것들은 다 &# xBD09;쇄하고 언론에 나가지 못하게 되어있고 그리고 다 좋은 이야기만 하는 거예요.
그리고 외국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을 하지 않아 모르는데 중국에 와서야 한국이라는 나라가 잘 살고 우리가 가면 자유가 주어지는 것을 알았지요. 우리는 북한에 있을 때 어릴 적부터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남조선 사람들만 만나면 그 사람들은 안기부 사람들이다. 그리고 우리를 납치해가서 죽인다라는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남조선 사람들에 대한 무서움과 두려움 같은 걸을 갖게 됐는데 어린 시절부터 그런 교육을 받다보면 그런 두려움이 쌓여요.
그리고 남한사회에 대한 이미지가 별로 좋지 않아요.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도 안하고 그런 것을 봤을 때 그래서 외국 언론과 접할 기회가 전혀 없지요. 아마 그런 걸 알았다면 북한사람들 중에서도 체제에 반항하는 사람들이 나타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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