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을 위한 특별 연속 설교
말씀과 문학의 만남
신경숙 소설 "엄마를 부탁해"를 통해 보는 삶의 길
5월 3일 무엇을 위해 살것인가?
5월 10일 사랑은 만족하지 못한다
5월 17일 마음은 누구나 같다
5월 24일 죽음, 이별 그리고 용서
5월 31일 가족이 되어 산다는 것
소설 <다빈치코드>(2006년)와 영화<밀양>(2007년)에 이어 와싱톤한인교회 김영봉 목사가 시도하는 또 하나의 문화 영성 프로젝트를 통해 말씀과 문학의 신선한 조우를 경험하시고 자신의 삶에 대해 돌아보는 계기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 이 설교만은 노치지 마십요.***
사귐과 섬김의 공동체 와싱톤 한인교회
1219 Swinks Mill Road, McLean, Virginia 22102 Tel: (703)448-1131 Fax: (703)448-5384 contact@kumcgw.org
Archive | Home | 한국어 영어 고속 저속 |
2009.5.10 (김 영봉 목사) <엄마를 부탁해> 연속설교 2 |
(김 영봉 목사)
1.
Happy Mother’s Day! 모든 어머니들에게 주님의 은혜와 축복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어머니’라는 말 하나만으로도 가슴이 찡해지는 분들이 많으십니다. 오늘 하루, 어머니 생각에 특별한 행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어머니를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편찮은 분들도 계신 줄 압니다. 주님의 성령이 그분들의 마음에 임하여 용서와 화해의 은총을 허락하시기를 빕니다. 어머니를 보고 싶어도 보지 못하고, 불러 보아도 대답이 없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위로부터 임하는 은총이 그 허전한 마음에 채워지기를 기도합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어머니들은 대개 무한에 가까운 사랑의 능력을 가지고 계셨던 것처럼 보입니다. 소설 <엄마를 부탁해>에 나오는 주인공 박소녀씨가 그렇습니다. 엄마로서의 그의 사랑과 희생은 한도 끝도 없어 보입니다. 그 사실은 박소녀씨의 둘째 딸의 말에서 잘 드러납니다. 둘째 딸은 약사인데, 세 아이를 데리고 얼마나 야무지게 사는지, 다들 요즘 엄마 같지 않다고 입을 모읍니다. 그 둘째 딸이 로마로 여행가는 언니에게 편지를 써 주는데, 이 편지에서 둘째 딸은 엄마의 사랑과 희생에 대해 이렇게 술회합니다.
"엄마의 힘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나는 그걸 모르겠어. 생각해봐. 엄마는 상식적으로 한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살아온 인생이 아니야. 엄마는 엄마가 할 수 없는 일까지도 다 해내며 살았던 것 같아. 그러느라 엄마는 텅텅 비어갔던 거야. 종래엔 자식들의 집 하나도 찾을 수 없는 그런 사람이 된 거야. …… 언니는 나보고 요즘 젊은 엄마 같지 않게 특이하다고 했지만, 내게 조금은 그런 면이 없지 않지만, 언니, 아무리 그래도 나는 엄마처럼 할 수 없어. 엄마를 잃어버리고 자주 생각했어. 나는 엄마에게 좋은 딸이었나? 나는 내 아이들에게 엄마가 내게 해 준 것처럼 할 수 있나. 한 가지는 알아. 나는 엄마같이 못해. 할 수도 없어. 나는 내 아이들 밥 먹이면서도 자주자주 귀찮아. 아이들이 내 발목을 붙잡고 있는 거같이 느껴져서 부담스러울 때도 있어. 내 아이들을 사랑하고 이 아이들을 진짜 내가 낳았나? 싶어 감격하지만 나는 엄마처럼 인생을 통째로 아이들에게 내맡길 순 없어. 나는 상황에 따라 내 눈이라도 빼줄 수 있을 것처럼 굴지만 그렇다고 엄마처럼은 아니야."(260-61쪽)
엄마의 사랑을 이같이 느낀 것은 둘째 딸만이 아닙니다. 네 자식 모두가 그렇게 느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연약한 여인에게서 그토록 진한 사랑이 마르지 않고 흘러나올 수 있을까? 그것이 엄마의 입장이 된 작은 딸의 질문이었고, 다른 자식들의 질문이었습니다. 그것은 오늘 어머니를 생각하며 그리워하는 많은 자녀들의 마음에 있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2.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렇게 한 없이 사랑을 쏟아 부으시면 서도 어머니들이 하는 말은 "이것밖에 못해 줘서 미안하다"는 것입니다. 큰 아들과의 일화에서 이 사실은 잘 드러납니다.
큰 아들 형철은 어릴 적에 아버지에게 외면당하고 사시는 어머니를 행복하게 해 드리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하여 검사가 되겠다고 약속합니다. 하지만 ‘시골 천재’ 형철은 대학 입시에 낙방을 합니다. 그는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돈을 모아 법대에 진학하고 고시에 합격하여 검사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서울로 올라옵니다. 그런데 그 꿈을 향해 도전도 해 보기 전에 엄마는 큰 딸을 서울로 데리고 와서 아들에게 맡깁니다. 어머니는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간신히 떼어 형철에게 말합니다. "야는 여자애니까……학교를 더 다녀야 써. 어짜든 여기서 야가 학교에 다닐 길을 니가 맨들어봐라. 난 야를 나처럼 살게 할 순 없어야."(109쪽)
큰 딸을 아들에게 맡기고 돌아가는 길에 들른 서울역 근처 어느 식당. 박소녀씨는 아무 말 없이 자신의 국밥에 있는 고기를 아들의 그릇에 옮겨놓습니다. 그러다가는 힘없이 말씀하십니다. "근디 너는……너는 어쩐다냐?" 딸 때문에 아들의 꿈이 꺾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엄마는 국밥이 묻은 숟가락을 내려놓으면서 아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엄마가 죄가 많다. 너에게 미안하다, 형철아."(110쪽)
그 때부터 엄마는 큰 아들에게 큰 죄를 지은 사람처럼 늘 "미안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삽니다. 따지고 보면, 미안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박소녀씨는 큰 아들 형철에게 당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박소녀씨는 자신이 해 준 것은 생각도 하지 않고, 더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줄 것이 이것 밖에 없어서 미안하다고, 나 같은 엄마에게 태어나게 된 것이 미안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아들에게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박소녀씨는 자기가 알던 사람들 모두에게 인간의 한계를 넘어 사랑하고 희생하고 봉사했음에도 불구하고 할 말은 "미안하다"는 것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 같은 사랑과 헌신을 알아주고 감사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가장 가까운 가족조차도 당연하게 취급하거나 하찮게 생각합니다. 그 사랑이 사라지고 나서야 가족들은 자기 삶에 생겨난 커다란 공백을 발견하고는 그 사랑이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깨닫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어머니들은 가족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하여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그것이 그 어머니 자신에게는 뼈를 깎는 것 같은 아픔이요 고통이었지만, 무한의 인내력으로 그것을 참아내며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시인 심순덕씨가 어머니를 생각하며 쓴 시가 있습니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라는 제목의 시인데, 읽는 사람들의 마음을 심하게 흔들어 놓는 시입니다. 어머니의 끝없는 사랑과 그 사랑을 당연시하는 자식의 모습을 너무도 잘 그려 놓았기 때문입니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 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뒤꿈치 다 헤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 썩여도 전혀 끄떡없는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 줄만……
한밤중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엄마를 본 후론
아!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3.
여기서 우리는 유사품 사랑과 진품 사랑의 차이를 봅니다. 유사품 사랑은 한계를 정해놓고 시작합니다. 어느 지점에 이르러서는 사랑하기를 포기합니다. 더 주어야 할 사랑에 대해서는 생각도 하지 않고, 이미 준 사랑을 계산합니다.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런 말들을 자주 합니다. "얼마나 더 해야 되는데?" "나보고 더 무엇을 어쩌라고?" "차라리 나보고 죽으라고 해라." 이런 마음이기 때문에 "미안하다"는 말을 할 줄 모릅니다. 충분히 사랑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많은 어머니들이 보여 주신 진품 사랑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포기가 없습니다. 진품 사랑은 "이만하면 충분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일에 자신의 것을 다 쓰기 전까지는 결코 만족하지 않습니다. 진품 사랑은 모든 것을 다 주고 나서도 더 주지 못한 것에 대해 미안해합니다. 알아주지 않는다고 야속해 하지 않습니다. 이미 쏟아 부은 사랑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고, 더 주어야 할 사랑에 대해서만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 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합니다. "내가 죄인이다"라고 말합니다. 진실로 그렇게 느끼고, 그렇게 말하고, 그렇게 행동합니다.
저는 지난 설교에서 우리 중에 실재하는 박소녀씨들이 많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더 이상 우리 중에 박소녀씨가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렇습니다. 더 이상 본인 의지와는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희생과 복종을 강요당하는 일이 우리 가정에서 혹은 우리 사회에서 생겨나지 말아야 합니다. 하지만 박소녀씨가 보여준 그리고 많은 어머니들께서 보여 주신 진품 사랑만큼은 잃어서는 안 될 보화입니다.
참으로 아쉬운 것은 이 진품 사랑이 우리 시대에 보기 드문 일이 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이 진품 사랑이라는 데 있습니다. 우리가 목마른 것은 물이 없어서가 아니라 진품 사랑이 없어서입니다. 산해진미로 배를 가득 채워도 여전히 허기가 지는 것은 이 같은 진품 사랑이 부족해서입니다. 유사품 사랑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깊은 구멍이 우리 내면에 있습니다.
4.
지난 금요일 CBS News의 시사 프로그램인 <20/20>에서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보도했습니다. 저는 이 프로그램을 인터넷으로 보았는데, 믿어지지 않을 만큼 충격적인 이야기입니다.
2003년 12월 10일, 텍사스 주의 슈거랜드(Sugar Land)에서 일가족 네 명이 총격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 사고로 인해 엄마와 둘째 아들이 죽고, 아버지 Kent Whitaker와 아들 Bart는 부상을 당했습니다. 큰 아들 Bart의 대학 졸업 축하 파티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집에 숨어있던 괴한들에게 총격을 당한 것입니다.
경찰은 2년이 넘는 추적과 조사 끝에, 그 모든 일이 큰 아들 Bart가 꾸민 것임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스스로 가족을 살해할 계획을 짜고 동네 친구들을 매수하여 그 계획을 실행하게 했습니다. 그 전에도 두 번이나 가족을 살해할 계획을 꾸몄었다고 합니다. 그는 치밀하게 완전 범죄를 도모했지만, 결국 전모가 모두 밝혀졌습니다.
이 사건의 결말을 보면서 사람들마다 가지는 의문은 이것입니다. "도대체 무엇이 Bart로 하여금 이런 끔찍한 범행을 모사하고 결행하게 만들었을까?" 그 가족은 전형적인 미국 중산층 가정입니다. 물질적으로도 부족한 것이 없었습니다. 주일마다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주중에도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경건한 부모였습니다. 이같이 풍요롭고 행복한 환경에서 자란 이 청년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 같은 범행을 저질렀을까요?
<20/20> 프로그램의 프로듀서가 사형수인 Bart에게 묻습니다. "왜, 무엇 때문에 부모와 형제를 살해할 생각을 했습니까?" 그 청년은 섬뜩할 정도로 무표정한 모습으로 답합니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해 만족할 수 없었고, 그 이유가 가족들에게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복수하고 싶었습니다." 프로듀서가 다시 묻습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증거로 볼 때, 당신의 부모님은 당신을 사랑했고, 할 수 있는 한 모든 것을 주고 싶어 했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청년은 대답합니다. "물질적인 측면에서는 그렇다고 할 수 있겠죠." 프로듀서가 다시 말합니다. "당신의 어머니가 당신과 당신의 동생을 위해 살지 않았습니까? 그것을 모르지 않았을 텐데요." 그러자 그 청년은 대답합니다. "저는 그 정도로 깊은 유대(connection)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Bart Whitaker, 그는 물질적으로 유복한 환경 속에서 살았으나, 자신이 그 가족의 일부이며, 누군가에게 끔찍이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그 같은 정서적 고립이 그로 하여금 ‘반사회적 성격장애’(socio-path)를 앓게 했고, 속으로 증오심을 쌓아 가도록 만들었습니다. Bart의 증상을 모두 부모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부당한 일입니다만,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웠지만 정서적으로는 사랑을 느끼지 못했다’는 그의 말은 우리 모두가 주의 깊게 들어야 할 말입니다. 그는 진품 사랑을 경험해 본 일이 없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5.
이와는 정반대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지난 4월에 LA에서 열렸던 한인연합감리교회 총회에 참석했을 때 어느 목사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입니다. 뉴욕에서 가장 큰 교회 중 하나를 담임하시는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간접적으로 들은 이야기이므로 그 목사님의 실명은 말씀 드리지 않겠습니다.
이 목사님은 교회를 일구느라고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살펴 줄 시간을 만들지 못했습니다. 그 때문이었는지, 아들 하나가 계속 사고를 치고 다닙니다. 그것이 늘 마음에 짐이 되었는데, 어느 날 그 아들이 그만 대형 사고를 쳤습니다. 그 사고로 인해 그 아들은 몇 년 동안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한 교회를 대형 교회로 일구고 능력 있는 말씀으로 존경받는 목사로서 참으로 견디기 힘든 시련을 만난 것입니다.
그 목사님은 자신이 가장 먼저 목회해야 할 가족들에게는 목회를 소홀히 했던 것에 대해 회개했습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아들에게 대한 목회를 시작해야 하겠다고 결심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매 주일, 예배가 끝나면 편도만도 2시간이 넘는 길을 달려 감옥에 있는 아들을 찾아가 만났습니다. 큰 교회의 담임목사로서 이 같은 일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 목사님은 거의 한 주일도 빼놓지 않고 아들을 찾아가 면회를 하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기도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2년이 지난 어느 날, 면회를 끝내고 돌아서는 아버지에게 아들이 말하더랍니다. "아버지, 아버지가 저를 진실로 사랑하는 줄 이제야 알겠습니다." 아들의 방황과 방탕은 진품 사랑을 경험하지 못한 탓에 생긴 공허감 때문에 생긴 것이었습니다. 아버지에게는 그 진품 사랑이 있었지만, 아들이 그 사랑을 경험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 때로부터 아들이 아버지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했고, 둘 사이의 관계는 급격히 회복되었습니다. 그 아들은 복역을 다 마치고 나와서, 아버지가 섬기는 교회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청소년들을 선도하는 일을 맡아 섬기고 있습니다. 그 자신이 문제아였기 때문에 문제아들의 심리를 잘 알고 그들을 인도하는데 좋은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얼마 전, 그 아들이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결혼을 하기 전, 아버지와 아들은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두고 많은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었고, 서로에게 용서를 빌며 부둥켜안고 울었다고 합니다.
진품 사랑은 어머니들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어머니들 가운데 그 같은 사랑에 무능한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 어머니들을 탓하지 맙시다. 우리에게는 그럴 자격이 없지 않습니까? 오히려 그분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반면, 아버지들 가운데도 이렇게 진품 사랑을 행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누구를 통해서든 진품 사랑이 전해지면, 그 사랑은 놀라운 변화의 능력을 나타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마음을 변화시키는 일입니다. 그 일을 해 낼 수 있는 것은 사랑밖에 없습니다. 유사품으로는 안 됩니다. 진품이어야만 합니다. 한계를 모르는 사랑, 다 쏟아 붓고도 할 말은 "미안하다"는 말 밖에는 찾을 수 없는 사랑, 그 사랑만이 굳게 닫힌 철문보다도 더 열기 어려운 마음을 열 수 있습니다. 그 사랑만이 그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내면의 깊은 구멍을 채울 수 있습니다. 진정한 만족과 행복은 이 진품 사랑에서만 찾을 수 있습니다.
6.
어머니를 통해, 혹은 아버지를 통해, 혹은 아내나 남편을 통해, 혹은 자녀를 통해, 혹은 친구나 교우를 통해 이 같은 진품 사랑을 어느 정도 맛보신 분이라면, 스스로를 특별한 축복을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진품 사랑을 어느 누구를 통해서도 맛본 적이 없는 분이라 해도 크게 낙심할 것은 없습니다. 진품 사랑을 경험할 수 있는 다른 길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의 사랑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완전한 사랑이 우리를 위해 마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십자가에서 드러내신 그 사랑, 미켈란젤로가 피에타 상을 통해 보여주려고 했던 그 진한 사랑, 그 사랑이 우리에게 준비되어 있습니다.
신구약성서 66권에서 끊임없이 울려나는 메시지는 바로 ‘하나님이 우리 모두를, 우리 하나 하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결코 만족함이 없는 사랑, 결코 다함이 없는 사랑, 결코 공치사를 할 줄 모르는 사랑, 마지막 한 방울까지 다 퍼 주고도 "더 해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사랑, 그 사랑을 받는 사람이 당연시하고 무시하고 외면하고 배반해도 포기하지 않는 사랑?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속성입니다. 하나님은 그 완전한 사랑으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많은 어머니들이 보여 준 진품 사랑은 하나님 사랑의 모조품인 셈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든 곳에 다 계실 수 없어서 어머니를 창조했다"는 속담이 유대인들 사이에서 만들어졌을 것입니다.
이 같은 하나님의 사랑의 속성을 가장 드라마틱하게 표현한 것이 구약성서의 호세아서입니다. 하나님은 예언자 호세아에게 차마 순종하기 어려운 명령을 주십니다. 결혼을 하되 소문이 좋지 않은 여인, 성 매매를 하는 여인, 혹은 섹스 중독에 빠진 여인 중에서 한 사람을 택하여 결혼을 하라는 겁니다. 구약 시대의 예언자라면 오늘날로 하면 목회자쯤 됩니다. 세상에 어느 목사가 결혼 상대를 생각하면서 이런 여자를 생각하겠습니까? 호세아가 이 명령을 듣고 얼마나 황당했겠습니까? 하지만 호세아는 그 명령에 순종하여 성매매를 하던 여인 고멜을 데려다가 결혼을 합니다. 그리고는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낳습니다. 그 여인은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삶에 익숙해지는 듯했습니다. 호세아는 죄의 소굴에 빠져 살던 한 사람을 구원했다는 사실 때문에 마음이 뿌듯했을 겁니다.
그런데 어느 날, 과거의 습성이 도지는 바람에 그 여인은 가출해 버립니다. 다시금 홍등가로 찾아 들었고 그곳에서 마음 가는대로 쾌락에 빠져 삽니다. 호세아는 실의에 빠집니다. ‘하나님, 이젠 어쩔 수 없지 않나요?’라고 말씀 드렸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한 술 더 뜨십니다. 홍등가에 가서 그 여인을 다시 찾아오라는 겁니다. 사랑과 은혜를 배반한 여인을 다시 찾아다가 사랑해 주라는 겁니다.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해 보이는 이 명령에 호세아는 순종합니다. 적지 않은 몸값을 지불하고 부정한 아내를 다시 데려옵니다.
하나님께서 왜 당신의 종 호세아에게 이렇게 어려운 명령을 거듭 내리십니까? 아무리 말해도 깨닫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제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써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라는 뜻이었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어떻게 사랑했는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사랑을 얼마나 자주 당연시하고 무시하고 배반했는지, 그리고 하나님은 그 철없는 백성을 사랑하시기에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으셨는지를, 호세아의 결혼 생활을 통해 보여 주시려 한 것입니다.
오늘 읽은 호세아서 11장에 하나님의 심정이 잘 그려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직접 낳으시고 젖을 먹이시고 보살펴 길렀는데, 그 백성은 거듭 거듭 그 사랑을 무시하고 배반했습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그들을 깨우치기 위해 징벌도 하셨지만, 끝내 사랑을 포기할 수 없다는 사랑의 고백이 여기 기록되어 있습니다.
"에브라임아,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이스라엘아, 내가 어찌 너를 원수의 손에 넘기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소돔, 고모라와 함께 파괴된 도시]처럼 버리며, 내가 어찌 너를 스보임[소돔, 고모라와 함께 파괴된 도시]처럼 만들겠느냐? 너를 버리려고 하여도, 나의 마음이 허락하지 않는구나! 너를 불쌍히 여기는 애정이 나의 속에서 불길처럼 강하게 치솟아 오르는구나. 아무리 화가 나도, 화나는 대로 할 수 없구나. 내가 다시는 에브라임을 멸망시키지 않겠다. 나는 하나님이요, 사람이 아니다. 나는 너희 가운데 있는 거룩한 하나님이다. 나는 너희를 위협하러 온 것이 아니다."(8-9절)
7.
호세아는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 달콤한 결혼 생활의 꿈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호세아의 결혼은 ‘구약의 십자가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행복한 결혼을 포기함으로써 하나님의 진품 사랑을 드러내 보여주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이 무한대의 사랑을 십자가 위에서 드러내 보여 주셨습니다. 히브리어로 ‘호세아’와 ‘예슈아’는 같은 어근을 가지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모두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삶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호세아는 비극적인 결혼을 받아들임으로써,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의 희생을 통해서 그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오늘, 어머니 날, 우리는 어머니들의 보여 주신 사랑을 기억하면서 호세아의 결혼을 통해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어머니의 진품 사랑을 받아가면서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고" 살았던 우리의 불효를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외면하거나 망각하거나 배반하고 살았던 우리 자신을 돌아봅니다. 우리가 이스라엘 백성들과 별로 다르지 않았음을 인정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어머니의 사랑은 어떠했습니까? 그 사랑을 생각만 해도 눈물이 솟아오를 정도로 진하고 뜨거운 사랑이었습니까? 이제 더 이상 그 사랑을 받을 수 없음에 안타까워하십니까? 그렇다면, 십자가를 바라보십시다. 십자가 위에서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다 주신, 모든 것을 다 주고자 하시는, 그리고 모든 것을 다 주기로 약속하신 하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이미 만나신 분들은 하나님을 더 깊이 만나시고 그 사랑을 더 깊이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혹시, 어머니를 생각하면 마음이 괴롭습니까? 불행하게도 어머니로부터 진품 사랑을 받아 본 일이 없어, 사랑에 목말라 하며 살아 오셨습니까? 그 정도는 아니지만, 어머니에 대해 특별한 감정 없이 살아 오셨습니까? 그렇다면 더욱 더 십자가를 바라보십시다. 십자가 위에서 바로 나를 위해 물과 피를 다 쏟으신 하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평생 경험해 보지 못한 참된 사랑, 영원한 사랑, 순도 100%의 사랑을 그곳에서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 사랑을 발견하면, 자라면서 사랑받지 못해 생긴 내면의 결핍이 한 순간에 채워지고도 남을 것입니다.
이렇게 십자가 위에서 진품 중에서도 진품 사랑을 경험하고 나면, 우리도 그 같은 사랑을 꿈 꿀 수 있습니다. 우리 시대는 ‘권리’를 찾느라 ‘희생’을 잊어버렸습니다. ‘평등’을 구현하느라 ‘섬김’의 도를 잊었습니다. ‘자아실현’이라는 목표를 추구하느라 ‘자기희생’의 덕을 잃어 버렸습니다. ‘자유’를 추구하느라 ‘사랑의 구속’을 망각했습니다. 모두 다 십자가를 내려놓고 면류관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로 진품 사랑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우리 시대의 가장 큰 질병이요, 우리가 앓고 있는 모든 질환의 원인입니다.
이 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이 사랑을 회복하는 길은 다시금 옛날 가정 제도를 회복시키고 그 제도 안에서 한 두 사람을 일방적으로 희생시키는 데 있지 않습니다. 우리 각자가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을 경험하고, 그 사랑을 받아, 그 사랑 안에서 회복되고 치유되어, 마침내 그 사랑을 행할 수 있기까지 자라가야 합니다. 값비싼 대가를 치루고 얻은 ‘권리’, ‘평등’, ‘자아실현’, ‘자유’와 같은 고귀한 가치를 그대로 유지한 채 진품 사랑을 회복하는 길은 바로 십자가, 그 영원한 사랑에만 있습니다.
이 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길입니다. 그 사랑을 갈망하고 그 사랑을 얻기까지 십자가를 붙든다면, 누구에게나 이 사랑이 주어질 것입니다. 이 사랑이 복음입니다. 이 사랑이 구원입니다. 이 사랑이 능력입니다. 이 사랑이 영생입니다. 이 뜻 깊은 어머니 날, 하나님의 진품 사랑의 은총과 축복이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기원합니다.
사랑의 원천이신 주님,
제 곁에 있는 사람들을 통해
제게 베풀어 주신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그 사랑을 제가 갚을 길이 없으니,
저를 사랑해 주신 모든 이들에게 주님께서 복과 은총을 주소서.
저로 하여금 십자가를 붙들게 하시고
거기서 저에게 주신 주님의 완전한 사랑을 발견하게 하소서.
그 사랑으로 저의 빈 마음이 채워지게 하시고
그 사랑으로 가족과 이웃을 사랑하게 하소서.
진품 사랑이 증발된 이 시대에
저희를 통해 그 사랑을 회복시키소서.
아멘.
'감명깊은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엄마를 부탁해> 연속 설교 4-와싱톤 한인교회 김영봉목사 (0) | 2009.05.25 |
---|---|
<엄마를 부탁해> 연속 설교 3-와싱톤 한인교회 김영봉목사 (0) | 2009.05.22 |
<엄마를 부탁해> 연속 설교 1-와싱톤 한인교회 김영봉목사 (0) | 2009.05.09 |
진짜 같은 가짜, 가짜 같은 진짜-와싱톤한인교회 김영봉목사 (0) | 2009.04.14 |
"내 기도엔 아무도 없다"-와싱톤한인교회 김영봉목사 (0) | 2009.03.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