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계의 한국인

[세계의 한국인] 뉴욕 예술가곡 연구회 서병선 회장 (2)

오디오
오디오 (다운받기)

2010-09-10

사진제공-뉴욕예술가곡연구회

테너 서병선 씨가 오는 10월 3일 '제 22회 탈북난민돕기 음악회' 공연을 앞두고 만든 포스터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국 경기도의 벽촌 농가에서 태어나 서울음대와 줄리아드 음대를 거쳐 이태리 로저리 예술 대학원을 수료한 테너 서병선 씨, 그는 세계적인 ‘가곡 보급의 전도사’로 활약하고 있다. 그리면서 서 씨는 1986년에 뉴욕 예술가곡 연구회를 만들었다. 첫째는 뉴욕동포사회에 가곡을 널리 보급하고 둘째는 노래를 배우고자 하는 분들에게 성악을 가르치는 ‘가곡교실’을 열고 셋째는 미국에 유학 중인 유능한 음악도들을 한데 묶어 서로 돕고 동포사회를 위하여 봉사하자는 취지였다고 한다. 그리고 뉴욕 예술가곡 연구회는 1989년부터 뉴욕성악가들이 힘을 모아 매년 두 차례씩 봄 가을에 ‘불우 이웃돕기 가곡의 밤’을 가져오다 지난 2000년도부터는 지구 상에서 가장 불우한 탈북자들을 도우려고 ‘탈북자 돕기 가곡의 밤’을 열어 뉴욕 한인 동포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자유아시아방송의 세계의 한국인 오늘은 줄리아드 음대에서 공부하면서 어려웠던 일들, 세계에 가곡을 보급하는 일과 북한의 가곡 이야기로 엮는 테너 서병선의 꿈과 야망의 세계 2부를 함께한다.

서병선 씨의 미국 유학의 길은 동생의 고마운 도움이 있었기에 이뤄졌다. 그가 미국에 처음 도착한 곳은 시카고, 1969년 1월이었다. 서씨가 음악공부를 위해 시작한 일은 접시닦이였다. 뉴욕에서의 식당 웨이터 생활은 한편의 인간 드라마였다. 서씨의 회고를 들어보자!

서병선: 제가 처음 시카고로 왔을 때 접시닦이 일을 했는데 접시 닦기를 손으로 하는 줄 알았는데 기계로 닦는 걸 처음 봤습니다. 거기에 우연히 8명의 접시 닦기를 책임지는 책임자로 취직된 거예요. 그런데 이 사람들이 말을 들어줘야지요. 영어도 서투른 매니저가 됐으니까, 그래서 일 할 사람이 오지 않으면 제가 일을 곱으로 해야 하니까 그렇게 하다 보니 집에 돌아가면 침이 안 넘어가는 거예요. 너무 일이 어려우니까 목이 따금 따금 아프고, 아 그 고난을 생각해도 기가 막히지요. 그렇지만 꿈이 줄리아드 학교이니까 거기서 열심히 번 돈으로 줄리아드에 와서 그때도 링컨센터 바로 건너편에 식당이 있는데 거기서 웨이터로 취직했습니다. 그때에 자전거를 타고 낮에는 학교에 가서 풀 타임 학생이 돼서 공부하고 그다음에 식당으로 가서 웨이터로 일했지요. 하루는 일이 새벽 한 시에 끝났어요.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가는 도중 너무 피곤해서 자전거 페달을 헛드뎠어요. 그때 맞은 편에서 오던 자동차가 좌회전하다가 나를 치었습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비명을 크게 질렀습니다. 그런데 운전사가 술에 취해서 자신도 모르고 저를 약 5분 동안 계속 끌고 가는 거예요. 그때 제 다리를 들어보니 완전히 절단되어서 심줄만 남아 덜렁덜렁 매달려 있었어요. 그러면서 온몸이 몹시 추워 오더니 정신을 잃고 쓰러졌습니다. 깨어보니까 병원인데 15일 동안을 병원에 머물러 있어야 된다고 했어요. 제가 하루하루를 벌어서 공부해야 되고 부모님 생활비 일부를 보내 드려야 하는데 기가 막히더라고요. 하는 수없이 부모님께 거짓말을 했어요. 제가 좀 어려운 일이 생겼는데 생활비 보내드리는 일이 좀 어려워졌으니 조금만 참아 주세요.

서병선 씨 생의 가장 큰 꿈은 어머니 사랑 다음으로 가곡사랑일 것이다. 그는 UN 사무총장, 각국 대통령 각국 언론기관 155곳으로 오페라 해독론을 발송했단다.

서병선: 줄리아드 음악학교에 오니까 현실적으로 오페라 관문을 통해야 세계무대에 성공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이것이 진정 아름다운 예술은 아니라, 아름다운 시와 아름다운 선율이 조화를 이루는 슈베르트나 브람스 등의 가곡이 모든 성악 예술의 정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지요. 한국 성악가들 거의 모두가 체구에도 맞지 않는 오페라에 열정을 쏟고 있어 엄청난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이 마음 아파 1986년도에 전 세계 155곳으로 오페라의 해악을 발송했습니다. 그해 뉴욕 타임스에 오페라 애스 가찔라(OPERA AS GODZILLA)란 헤드라인으로 나서 "오페라는 외형적으로 가장 화려한 종합 예술이지만 인간 정서, 사랑, 영혼을 고갈시키는 가장 사악하고, 가장 잔인한 음악이다." 이런 문구가 실려 세상이 깜짝 놀랐습니다. 이것도 다 오페라 때문에 가곡이 시들어 가는 줄기를 막기 위해서 하는 거라 그런데 한국의 성악가들은 너도나도 오페라를 하니까 그때 참 슬픔이 많았습니다. 교회 지휘는 다 음악인들이 잡고 있는데 헌금송 하나 안 시켜주는 거예요. 제가 오페라 폐지 운동을 펴니까! 아! 아! 아! 그러나 굽히지 않고 의지를 계속해서 어려운 탈북난민 음악회를 하기 시작해서 지금은 성악가들이 모두 저희 음악회에 출연하고 싶어하고 가곡의 중요성을 깨닫고 있습니다.

뉴욕예술가곡연구회의 최근의 가장 큰 목적은 고난에 처한 탈북자를 돕는 일이다. 뉴욕 교포들에게는 가곡을 들려주고 탈북인들에게는 동포사랑의 참뜻을 전하고 있다.

서병선: 저희가 1986년 뉴욕예술가곡연구회를 창설, 창립 연주 이후 지금까지 가곡 보급을 위해 계속활동해오고 있습니다. 한때는 링컨센터에서 세계적인 성악가들과 함께 연주도 하고 세계 무대를 꿈꾼적도 있지요. 그러나 교포사회에도 어려운 기관과 개인이 많은데 가곡보급만 주장하는 것은 현실에 맞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어려운 이웃을 돕기로 하고 가곡보급을 해오고 있습니다. 그때부터 맹인성악도 돕기 음악회, 국제결혼에 파경 당한 무지개집 돕기 음악회, 심장병어린이돕기음악회 등을 계속해 왔지요. 2000년부터는 굶주림의 고통을 견디지 못해 먹을 것을 찾아 북한땅을 탈출한 탈북자돕기 음악회를 계속해오고 있습니다. 2000년 3월 25일 제1회 음악회 성금 8,500달러를 가슴에 차고 탈북자 현장인 중국접경지역인 도문, 훈춘, 길림, 흑룡강성 등을 방문했어요. 시골 골짝마다 우리의 혈육인 탈북여성들이 성의 노예가 되어 비참하게 살아가고 있는 실상을 보고 마음이 아파서 너무나 괴로워했지요. 그래서 2000년부터 지금까지 봄과 가을 년 2회 탈북자돕기음악회를 계속해오고 있습니다. 지난 2010년 5월 2일 제21회 음악회에서는 12,000달러의 성금이 모여 목숨을 바쳐가며 900명 이상의 탈북자들을 한국으로 구출시켰고 수십 명을 미국으로 망명시킨 천기원 선교사님의 사역을 돕는 두리 하나 USA(이사장 조영진 목사)로 전했습니다. 뉴욕 뉴저지 교포들의 감동적인 동포애에 늘 깊은 감명을 받습니다.

서병선 씨는 가곡사랑은 곧 나라 사랑이요. 나라를 살리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가곡을 통해 미국 사회를 구출해야 한다고 대통령과 부통령 문교부 장관, 50개 주지사, 각 언론기관 등에 호소했습니다.

서병선: 한국이 경제적으로 발전했지만, 정신문화가 피폐한 상태란 생각이 듭니다. 가장 큰 원인이 어디에 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인간정신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은 노래이지요. 자극적 쾌락과 유흥심을 조장해 줄 뿐 인간 진실을 휘손 시키는 반문화적인 유행가가 한국땅 방방곡곡에 가득 차 있습니다. 이러한 퇴폐적이고 자극적이며 비도덕적인 음악을 먹고 사니 가치관과 도덕관이 무너지고 한국사람들의 이혼율과 자살률이 세계 제1위로 치솟은 결과를 빚어낸 것입니다. 그래 저는 굽힘없이 저희 음악회에서는 전혀 오페라도 아리아도 못 부르고 가곡만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워싱턴 케네디 센터도 갔었고, 버지니아, 보스턴 등 여러 미주지역에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 행정부에 사랑의 노래인 가곡을 중 고등학교에 설립해서 인류정신을 보급하고, 그릇된 노래 문화로 시달림받는 미국 사회를 구출해야 한다고 편지를 보내서 대통령 부통령 문교부장관, 등 많은 수신자가 답장을 보내와서 눈물을 흘리는 감동을 했습니다. 문교부 장관은 일부는 시행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연주를 통해서 뿐만 아니라 이렇게 행정적인 건의와 여러모로 할 수 있는 총력을 다해서 오페라 해독론 제2탄을 전 세계에 보낼 각오를 하고 있습니다만, 시간도 부족하고, 힘도 부족하고, 정열은 많은데 끝까지 계속하려고 마음의 다짐을 하고 있습니다.

북한에는 가곡이 잘 불리고 있을까? 서 씨는 북한에는 외부 선전용의 가곡뿐이라고 설명해 준다.

서병선
: 북한에 1992년 범민족 통일 음악회라고 해서 뉴욕 대표로 갔었죠. 그런데 북한에서는 가곡이 거의 연주가 안 돼요. 연주가 없어요. 유행가뿐이라고요. 뉴욕팀이 연주했던 곳은 외국 귀빈들만 모시는 만수대 극장이었는데 거 뭐 카펫을 잔뜩 깔아놓아서 북한에서는 어디를 가나 연주를 마이크를 대고 하는 거라고요. 제가 참 이 문화를 통해서 통일의 뜻을 가까이해야겠다는 의욕으로 북한을 갔지마는 거기에는 솔직히 클래식 음악이 형상만 있지 존재한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외부 선전용으로만 사용하고 있지 실제로는 거의 연주가 안 되고 있습니다.

서 씨의 뉴욕 사람들의 예술사랑 이야기 들어보자!

서병선: 뉴욕에는 뭐 예술을 하고 음악하고 무용하는 많은 사람이 오지요. 지난 2월에는 탈북난민돕기 음악회 하는 내용이 뉴욕타임스에 크게 나오니까 제가 사는 마을의 미국 사람들이 사진을 가계에 부쳐놓고 우리 웹 사이트를 열어 주겠다. 우리 음악회를 열심히 돕겠다는 지원자가 여기저기서 생기는 거예요. 그래서 이 뉴욕이라 데는 문화사랑 예술사랑의 정신이 살아 있는 도시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이곳에서 사는 것이 얼마나 보람되고 감사한지 모릅니다.

서 씨는 뉴욕 한인들과 공연을 함께 감상하는 프로그램이 있다고 설명해준다.

서병선: 여기 링컨센터의 경우는 참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링컨 센터 종합광장을 들어서면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지난번에 6월에는 백조의 호수를 264명을 인도해서 갔습니다. 만원을 이룬 가운데 그 아름다운 차이콥스키의 음악과 무용수들의 환상적인 공연을 보면서 크게 감동을 했고, 제가 하는 일 중에 단체 예술 감상이 있습니다. 일 년에 두 번씩 합니다. 그래서 제가 그런걸, 열심히 하니까 신문에 광고하면 200-300명씩 동원이 돼서 함께 예술을 감상하는 예술감상의 물결을 자꾸 번지게 해서 한국 본국에까지 순수한 예술사랑의 물결이 미치는 그런 날을 기대하고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서 씨는 세계한인들에 문화사랑으로 생활화하자고 강조한다.

서병선: 사람이 사는 근본 목적, 왜 인간이 살아야 하며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야 하느냐! 이러한 근본 목적 틀에서 굉장히 벗어난 것 같아요. 우리 민족이 너무 물질에 오염되고 이와 같은 것을 극복하고 정신세계의 중요성을 깨닫고 문화사랑의 생활화를 이끌어 내지 않으면 아무리 말로만 해도 될 일이 아닙니다. 이거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유아시아방송의 세계의 한국인 오늘은 줄리아드 음대에서 공부하면서 어려웠던 일들, 세계에 가곡을 보급하는 일과 북한의 가곡 이야기로 엮는 뉴욕에 사는 테너 서병선의 꿈과 야망의 세계 2부를 함께했습니다. 지금까지 세계의 한국인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