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이현기 leeh@rf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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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15
맹인 소년 가장으로 온갖 어려움 속에서 신앙의 굳은 의지와 도전으로 미국 피츠버그 대학에 유학하여 한국 최초의 시각 장애인 박사가 된 강영우 씨, 그는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 차관보를 지냈으며, 유엔 세계장애위원회 부의장과 루스벨트 재단 고문으로서 6억 5천만 세계 장애인의 복지 향상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
강영우 박사에게는 자랑스러운 두 아들이 있다. 시각 장애인 아버지를 위해 안과 의사 된, 큰아들 강진석 박사와 백악관 특별보좌관인 강진영 박사는 차세대 미국 젊은 지도자로서 한인 젊은이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이들은 아버지로 인해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고 도전하며, 편견과 차별이 없는 사회 건설에 기여할 의욕을 갖게 되었고, 누구나 우리의 스승이 될 수 있다는 삶의 태도를 갖게 됐다’라며 부모를 존경한다.
자유아시아방송의 세계의 한국인 오늘은 강영우 박사의 삶의 이야기 3부 ‘도전으로 행복한 가정을 이뤘다.’를 함께 한다.
강영우 박사에게 있어 석은옥 여사는 천사였다. 맹학교 시절부터 자원봉사자를 시작으로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결혼까지 했으니 은인이자 행복을 가져다준 천사였음이 틀림없다. 강 박사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강영우: 저는 지금부터 정확히 50년 전에 눈먼 고아였습니다. 그때 지금의 아내를 선안 사마리아인과 강도 만난 사람, 이런 관계로 처음 만났습니다. 제가 5년 지각생으로 서울맹학교 중등부 1학년을 시작했고, 지금 저의 아내는 서울 사대부고를 나와서 숙명여자대학교 영문과 1학년에 재학생이었는데 그때 제가 학비를 낼 수 없는 상황이라 제 아내가 속해있는 걸스카우트 지도자 훈련을 하는 권순기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용돈을 아껴서 강영우 학생을 도와주는데 동참하라고 해서 500원씩을 거둬서 저의 학비를 내 준 적이 있습니다. 이것이 인연이 돼서 7년 동안을 자원봉사자로 누나 동생으로 도와주다가 7년 후에 저의 아내가 미국에 가서 시각 장애인 교육으로 유학하고 돌아오고 저는 연세대학교에 입학해서 우등으로 공부하고 있을 때에 다시 만나게 됐습니다.
강영우 박사는 ‘석은옥’이란 부인의 이름을 자신이 직접 지어줬단다. 이 이름은 그때 장기 비전(꿈)이 담겼단다.
강영우: 제가 프러포즈를 할 때 지금 보통 사용하고 있는 석은옥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이름입니다. 그러니까 석은옥은 석에 시대 10년, 은에 시대 10년, 옥에 시대 10년 이렇게 해서 각각 10년 동안 성취해야 할 비전과 목적을 담아서 내가 지금 가진 것은 없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없지만, 이러한 비전과 목적이 있다. 그러니까 여기에 이 비전과 목적을 공유할 수 있으면 저에게 시집오라고 단도직입적으로 프러포즈해서 그게 받아들여졌고 또 졸업까지 3년 동안을 기다려 준 거지요. 그렇게 해서 1972년 2월 21일 연세대학교를 우등으로 졸업하고 5일 후인 1972년 2월 26일 기독교회관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행복한 가정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신혼부부로 그해에 미국에 유학해서 제가 석사학위를 하고 박사학위를 하는 동안에 두 아들이 태어났지요. 그래서 두 아들을 또 잘 길러서 두 아들이 벌써 세월이 흘러서 성인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워싱턴에서 눈먼 고아로 50년 전에 출발했는데 3대가 워싱턴 지역에서 행복하게 살고 미국 주류사회 사람들까지도 부러워하는 그런 명문가를 만들었습니다.
강영우 박사는 어려운 유학시절에도 행복했다고 말한다. 강 박사는 자신이 믿는 신이 인도하는 데로 삶의 계획표에 따라 살아갔다고 설명해준다.
강영우: 우리가 없을 때도, 고생을 할 때도, 제가 유학생으로 있는 동안,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가지 못할 그런 상황에 있었을때도 행복했습니다. 제가 박사학위를 받고 한국에 돌아가서 강단에 서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에 고국으로 돌아가는 문이 열리지 않아서 미국에 정착해야 하는데 학생비자는 만료됐고, 졸업해서 박사는 받았으니까? 유학기간에 나오던 장학금도 졸업했으니까? 끝났고, 그때 둘째 아들이 태어나서 식구는 하나 더 늘었고, 4식구가 오도 가도 못하는 그런 상황에서 제가 이제 76년 4월에 박사학위를 받고 9월에 다시 Post Doctor(박사학위 후) 프로그램으로 학교에 들어갔고 저의 아내가 3살짜리하고 생후 2달밖에 안 된 둘째 아이를 데리고 있어서 제가 ‘여보 걱정하지 말라고, 하나님이 여기까지 인도하실 때에는 계획이 있으셔서 인도하신 거니까?
강영우 박사는 미국의 수도 워싱턴 근교에서 3세대가 함께 살고 있다. 두 아들과 며느리도 이곳에서 좋은 직장을 갖고 함께 살게 됐다고 자랑한다.
강영우: 정말 하나님께서 인도하셔서 저의 작은아들이 제일 먼저 워싱턴에 왔어요. 2001년 초에 딕더빈 연방상원의 보좌관으로 취직해서 왔고, 그해 10월에 제가 부시 대통령의 임명을 받고 상원인준을 받은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차관보가 됐죠. 그래서 저의 둘째 아들이 저의 상원 인준을 지켜보고 그 결과를 알려주는 그 참 행복했던 그런 순간이지요. 그런데 2006년에 큰아들이 여기 조지 타운대학교 안과 조교수로 오게 되어서 3세대가 모이게 됐는데 그 며느리들도 전문직에 있는데 큰 며느리는 워싱턴에서 우수 산부인과 의사인데 남편이 오게 되니까는 이곳에 취직이 되고 작은 며느리도 하버드 로 스쿨 출신의 변호사인데 여기 조지 워싱턴 로 스쿨에 교수로 있습니다. 이렇게 저뿐만 아니라 아들과 며느리들까지도 다 정착하게 되어서 그래서 저희는 매달 3세대가 한 번씩 만납니다.
강영우 박사는 3대가 함께 사는 것은 복중의 복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씩 만나는 가족 모임에 상을 주는 제도를 만들었단다.
강영우: 케네디 가문을 만든 조셉 케네디가 성공의 척도는 돈이 아니다, 성공의 척도는 가문을 어떻게 세우느냐! 하는 거라고 하고, 가문을 세우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을 최대로 개발해서 그 분야에서 성공하고 또 그걸로 성공만 하는 게 아니라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사회발전에 기여하는 거다라는 두 가지 분명한 기준을 제시한 것, 그것을 제가 그대로 받아들여서 우리 아들들 며느리 손자들에게 성공하는 것 돈 버는 것 아니다. 성공하는 것은 이렇게 두 가지 기준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게 하는데 이바지하는 거다 이것을 가르치는 걸로 제가 매달 아들 며느리 손자들 중 한 명씩을 뽑아서 상을 줍니다. 그리고 답사를 듣습니다. 답사를 들을 때 무엇보다도 며느리들 답사를 듣는 게 제일 흐뭇하고 행복합니다. 며느리들이 강씨 가문에 시집와서 영광이다 또 연예를 할 때 큰 며느리 경우 서양 며느리입니다. 처음 방문했을 때 친절하게 대해주고 그래서 그게 영원히 좋은 기억으로 남는다는 그런 표현을 할 때 참으로 행복합니다.
강영우 박사는 아들과 며느리의 자랑도 들려준다.
강영우: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아들들, 지금은 며느리들도 많이 우리 쪽으로 가치관이 돌아왔습니다. 작은 며느리가 그런 거예요. 나도 돈을 따라 가는 게 아니라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꿈을 가지고 그걸 따라 가는 게 옳았다는 것을 알았다. 이래서 이번에 제가 그 가족 모임 때 작은 며느리가 상을 받아요.
강영우 박사와 석은옥 여사는 어린 시절 자녀에게 성경 ‘잠언’을 읽어주고, 차를 탈 때면 복음방송을 들려주며, 자녀 재능에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강영우: 우리가 교육을 3대 영역으로 나눕니다. 지력, 심력, 체력이 세 분야가 다 중요하지요. 그런데 우리가 성경에서 믿음 소망 사랑 셋 다 중요하지요. 그런데 제일은 사랑이듯이 교육의 3대 영역 지력 심력 체력 다 중요한데 그중에 제일은 심력입니다. 심력은 감성과 의지를 길러주는 AFFECTIVCE DOMAIN 그러니까 감성교육 그다음에 의지의 교육이지요. 이 감성적인 요인을 우리가 태도와 가치관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긍정적인 태도, 아까도 얘기했듯이 조그마한 것 하나를 이렇게 불평하고 원망하기보다는 여러 가지 가진 것을 헤아려서 감사하는 그런 마음을 길러주는 것이지요. 불평과 원망하기보다는 자기가 가진것 해아려서 감사하는 것, 저의 경우도 실명을 재앙으로 저주로도 생각했는데 이 실명을 통해서 또 실명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을 감사하는 그런 마음을 갖도록 교육을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저의 온 가족들도 제가 보지 못하고 사는 것 거기서 오는 축복, 그런 것을 감사하는 것 그게 다 정의적인 교육 일부입니다. 그래서 긍정적인 태도 그리고 또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주면은 그러면 많은 공부를 안 해도 집중력을 개발할 수 있고 우선순위를 알기 때문에 이제 공부도 잘하고 세상에서도 성공하고 또 가정에서 행복한 가정을 만들게 됩니다.
강영우 박사가 북한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다. 북한사람에게 필요한 건 자유라고 말한다.
강영우: 통일되면 할 일이 더 많겠지요. 그런데 지금도 통일이 되기 전에도 우리 그 보편적인 가치 중에 또 도구적 가치, 목적으로의 가치 그것이 모두 성서에서 비롯됐습니다. 그러니까 보편적인 가치에서 자유라는 가치 또 CONFESSION 이것이 성서에서 나와서 지금은 다민족 다문화가 다 인정하는 그런 유니버설 밸류(가치)가 돼 있는데 지금 북한만은 자유라는 보편적인 가치가 존재하지 않고 또 인권이라는 그런 것이 너무나 열악한 국가이지요. 그래서 저는 지금 북한에 가서 선교한다는 차원에서 달리 ‘글로벌 시대’의 ‘글로벌 밸류(가치)’ 그런 쪽에서 자유, 루스벨트 대통령의 4대 자유 부시 대통령의 자유와 책임 그리고 CONFESSION의 각도에서 보다 폭넓게 북한과 관계된 그런 일을 나름대로 하고 있는데 통일이 된다든지 이렇게 되면 정말 구체적으로 할 일이 생기겠지요.
강영우 박사에게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헤쳐나가는 비법을 물어봤다. 낙심이나 자포자기하지 말라고 권한다.
강영우: 저의 지혜라기보다는 미국을 이끌어가는, 서양 문명을 이끌어가는 그런 기초가 되는 성경 말씀이 로마서 8장 28절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아느니라.’ 로널드 레이건의 어머니가 그 아들에게 ‘오늘 나쁜 일이 생겼기 때문에 미래에 더 좋은 일이 발생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나쁜 일을 통해서도 선한 역사를 하시는 좋으신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좋은 일이 생기면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뻐하기 쉽죠. 그런데 나쁜 일이 생기면 실망하고 낙심하고 자포자기하는 것이 보통인데 오늘 나쁜 일이 생겼기 때문에 그걸 통해서 그것 때문에 미래의 더 좋은 일이 발생한다. 이렇게 생각하고 그것을 믿으면 미래에 대한 희망이 생기고 현재의 어려움을 축복으로 바꾸는 용기도 생기고,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축복의 통로로 삼으시는 거지요. 그러니까 저도 실명을 한 것은 그것은 나쁜 일이지요. 그런데 그 실명 때문에 저는 이렇게 세계적인 인물도 됐고, 실명 때문에 큰아들은 세계적인 안과 의사가 되고, 제 실명때문에 저의 작은아들은 지금 백악관에 일하고 이것은 실명이라는 나쁜 일이 생겼기 때문에 그 나쁜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선한 역사를 하신 것이지요. 그러니까? 나쁜 일이 생겼을 때 경제적으로도 여러 가지 어려움에 처해 있는 분들이 많지요. 이랬을 때 대부분의 사람은 길이 없다고 생각을 하는데 이 생각을 바꿔서 잠시 숨을 고르고 이 NO WHERE에다가 스페이스 하나 하면 NOW HERE가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나쁜 일이 생겼을 때, 고난이 생겼을 때에 ‘이제는 끝이다.’라고 생각하면 끝이에요. 그런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더 좋은 미래를 보장하기 위한 그런 기회다. 그렇게되면 NOW HERE 로 전환되고 인생이 바뀝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의 생각을 어떻게 변화 시키느냐가 여러분의 인생을 결정합니다.
자유아시아방송의 세계의 한국인 오늘은 고아로 시각 장애를 딛고 전 백악관 국가 장애 위원회 정책 차관보를 지낸 강영우 박사의 도전 삶의 이야기 3부 ‘도전으로 행복한 가정을 이뤘다.’를 함께 했다. 세계의 한국인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강영우 박사에게는 자랑스러운 두 아들이 있다. 시각 장애인 아버지를 위해 안과 의사 된, 큰아들 강진석 박사와 백악관 특별보좌관인 강진영 박사는 차세대 미국 젊은 지도자로서 한인 젊은이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이들은 아버지로 인해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고 도전하며, 편견과 차별이 없는 사회 건설에 기여할 의욕을 갖게 되었고, 누구나 우리의 스승이 될 수 있다는 삶의 태도를 갖게 됐다’라며 부모를 존경한다.
자유아시아방송의 세계의 한국인 오늘은 강영우 박사의 삶의 이야기 3부 ‘도전으로 행복한 가정을 이뤘다.’를 함께 한다.
강영우 박사에게 있어 석은옥 여사는 천사였다. 맹학교 시절부터 자원봉사자를 시작으로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결혼까지 했으니 은인이자 행복을 가져다준 천사였음이 틀림없다. 강 박사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강영우: 저는 지금부터 정확히 50년 전에 눈먼 고아였습니다. 그때 지금의 아내를 선안 사마리아인과 강도 만난 사람, 이런 관계로 처음 만났습니다. 제가 5년 지각생으로 서울맹학교 중등부 1학년을 시작했고, 지금 저의 아내는 서울 사대부고를 나와서 숙명여자대학교 영문과 1학년에 재학생이었는데 그때 제가 학비를 낼 수 없는 상황이라 제 아내가 속해있는 걸스카우트 지도자 훈련을 하는 권순기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용돈을 아껴서 강영우 학생을 도와주는데 동참하라고 해서 500원씩을 거둬서 저의 학비를 내 준 적이 있습니다. 이것이 인연이 돼서 7년 동안을 자원봉사자로 누나 동생으로 도와주다가 7년 후에 저의 아내가 미국에 가서 시각 장애인 교육으로 유학하고 돌아오고 저는 연세대학교에 입학해서 우등으로 공부하고 있을 때에 다시 만나게 됐습니다.
강영우 박사는 ‘석은옥’이란 부인의 이름을 자신이 직접 지어줬단다. 이 이름은 그때 장기 비전(꿈)이 담겼단다.
강영우: 제가 프러포즈를 할 때 지금 보통 사용하고 있는 석은옥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이름입니다. 그러니까 석은옥은 석에 시대 10년, 은에 시대 10년, 옥에 시대 10년 이렇게 해서 각각 10년 동안 성취해야 할 비전과 목적을 담아서 내가 지금 가진 것은 없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없지만, 이러한 비전과 목적이 있다. 그러니까 여기에 이 비전과 목적을 공유할 수 있으면 저에게 시집오라고 단도직입적으로 프러포즈해서 그게 받아들여졌고 또 졸업까지 3년 동안을 기다려 준 거지요. 그렇게 해서 1972년 2월 21일 연세대학교를 우등으로 졸업하고 5일 후인 1972년 2월 26일 기독교회관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행복한 가정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신혼부부로 그해에 미국에 유학해서 제가 석사학위를 하고 박사학위를 하는 동안에 두 아들이 태어났지요. 그래서 두 아들을 또 잘 길러서 두 아들이 벌써 세월이 흘러서 성인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워싱턴에서 눈먼 고아로 50년 전에 출발했는데 3대가 워싱턴 지역에서 행복하게 살고 미국 주류사회 사람들까지도 부러워하는 그런 명문가를 만들었습니다.
강영우 박사는 어려운 유학시절에도 행복했다고 말한다. 강 박사는 자신이 믿는 신이 인도하는 데로 삶의 계획표에 따라 살아갔다고 설명해준다.
강영우: 우리가 없을 때도, 고생을 할 때도, 제가 유학생으로 있는 동안,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가지 못할 그런 상황에 있었을때도 행복했습니다. 제가 박사학위를 받고 한국에 돌아가서 강단에 서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에 고국으로 돌아가는 문이 열리지 않아서 미국에 정착해야 하는데 학생비자는 만료됐고, 졸업해서 박사는 받았으니까? 유학기간에 나오던 장학금도 졸업했으니까? 끝났고, 그때 둘째 아들이 태어나서 식구는 하나 더 늘었고, 4식구가 오도 가도 못하는 그런 상황에서 제가 이제 76년 4월에 박사학위를 받고 9월에 다시 Post Doctor(박사학위 후) 프로그램으로 학교에 들어갔고 저의 아내가 3살짜리하고 생후 2달밖에 안 된 둘째 아이를 데리고 있어서 제가 ‘여보 걱정하지 말라고, 하나님이 여기까지 인도하실 때에는 계획이 있으셔서 인도하신 거니까?
강영우 박사는 미국의 수도 워싱턴 근교에서 3세대가 함께 살고 있다. 두 아들과 며느리도 이곳에서 좋은 직장을 갖고 함께 살게 됐다고 자랑한다.
강영우: 정말 하나님께서 인도하셔서 저의 작은아들이 제일 먼저 워싱턴에 왔어요. 2001년 초에 딕더빈 연방상원의 보좌관으로 취직해서 왔고, 그해 10월에 제가 부시 대통령의 임명을 받고 상원인준을 받은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차관보가 됐죠. 그래서 저의 둘째 아들이 저의 상원 인준을 지켜보고 그 결과를 알려주는 그 참 행복했던 그런 순간이지요. 그런데 2006년에 큰아들이 여기 조지 타운대학교 안과 조교수로 오게 되어서 3세대가 모이게 됐는데 그 며느리들도 전문직에 있는데 큰 며느리는 워싱턴에서 우수 산부인과 의사인데 남편이 오게 되니까는 이곳에 취직이 되고 작은 며느리도 하버드 로 스쿨 출신의 변호사인데 여기 조지 워싱턴 로 스쿨에 교수로 있습니다. 이렇게 저뿐만 아니라 아들과 며느리들까지도 다 정착하게 되어서 그래서 저희는 매달 3세대가 한 번씩 만납니다.
강영우 박사는 3대가 함께 사는 것은 복중의 복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씩 만나는 가족 모임에 상을 주는 제도를 만들었단다.
강영우: 케네디 가문을 만든 조셉 케네디가 성공의 척도는 돈이 아니다, 성공의 척도는 가문을 어떻게 세우느냐! 하는 거라고 하고, 가문을 세우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을 최대로 개발해서 그 분야에서 성공하고 또 그걸로 성공만 하는 게 아니라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사회발전에 기여하는 거다라는 두 가지 분명한 기준을 제시한 것, 그것을 제가 그대로 받아들여서 우리 아들들 며느리 손자들에게 성공하는 것 돈 버는 것 아니다. 성공하는 것은 이렇게 두 가지 기준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게 하는데 이바지하는 거다 이것을 가르치는 걸로 제가 매달 아들 며느리 손자들 중 한 명씩을 뽑아서 상을 줍니다. 그리고 답사를 듣습니다. 답사를 들을 때 무엇보다도 며느리들 답사를 듣는 게 제일 흐뭇하고 행복합니다. 며느리들이 강씨 가문에 시집와서 영광이다 또 연예를 할 때 큰 며느리 경우 서양 며느리입니다. 처음 방문했을 때 친절하게 대해주고 그래서 그게 영원히 좋은 기억으로 남는다는 그런 표현을 할 때 참으로 행복합니다.
강영우 박사는 아들과 며느리의 자랑도 들려준다.
강영우: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아들들, 지금은 며느리들도 많이 우리 쪽으로 가치관이 돌아왔습니다. 작은 며느리가 그런 거예요. 나도 돈을 따라 가는 게 아니라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꿈을 가지고 그걸 따라 가는 게 옳았다는 것을 알았다. 이래서 이번에 제가 그 가족 모임 때 작은 며느리가 상을 받아요.
강영우 박사와 석은옥 여사는 어린 시절 자녀에게 성경 ‘잠언’을 읽어주고, 차를 탈 때면 복음방송을 들려주며, 자녀 재능에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강영우: 우리가 교육을 3대 영역으로 나눕니다. 지력, 심력, 체력이 세 분야가 다 중요하지요. 그런데 우리가 성경에서 믿음 소망 사랑 셋 다 중요하지요. 그런데 제일은 사랑이듯이 교육의 3대 영역 지력 심력 체력 다 중요한데 그중에 제일은 심력입니다. 심력은 감성과 의지를 길러주는 AFFECTIVCE DOMAIN 그러니까 감성교육 그다음에 의지의 교육이지요. 이 감성적인 요인을 우리가 태도와 가치관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긍정적인 태도, 아까도 얘기했듯이 조그마한 것 하나를 이렇게 불평하고 원망하기보다는 여러 가지 가진 것을 헤아려서 감사하는 그런 마음을 길러주는 것이지요. 불평과 원망하기보다는 자기가 가진것 해아려서 감사하는 것, 저의 경우도 실명을 재앙으로 저주로도 생각했는데 이 실명을 통해서 또 실명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을 감사하는 그런 마음을 갖도록 교육을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저의 온 가족들도 제가 보지 못하고 사는 것 거기서 오는 축복, 그런 것을 감사하는 것 그게 다 정의적인 교육 일부입니다. 그래서 긍정적인 태도 그리고 또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주면은 그러면 많은 공부를 안 해도 집중력을 개발할 수 있고 우선순위를 알기 때문에 이제 공부도 잘하고 세상에서도 성공하고 또 가정에서 행복한 가정을 만들게 됩니다.
강영우 박사가 북한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다. 북한사람에게 필요한 건 자유라고 말한다.
강영우: 통일되면 할 일이 더 많겠지요. 그런데 지금도 통일이 되기 전에도 우리 그 보편적인 가치 중에 또 도구적 가치, 목적으로의 가치 그것이 모두 성서에서 비롯됐습니다. 그러니까 보편적인 가치에서 자유라는 가치 또 CONFESSION 이것이 성서에서 나와서 지금은 다민족 다문화가 다 인정하는 그런 유니버설 밸류(가치)가 돼 있는데 지금 북한만은 자유라는 보편적인 가치가 존재하지 않고 또 인권이라는 그런 것이 너무나 열악한 국가이지요. 그래서 저는 지금 북한에 가서 선교한다는 차원에서 달리 ‘글로벌 시대’의 ‘글로벌 밸류(가치)’ 그런 쪽에서 자유, 루스벨트 대통령의 4대 자유 부시 대통령의 자유와 책임 그리고 CONFESSION의 각도에서 보다 폭넓게 북한과 관계된 그런 일을 나름대로 하고 있는데 통일이 된다든지 이렇게 되면 정말 구체적으로 할 일이 생기겠지요.
강영우 박사에게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헤쳐나가는 비법을 물어봤다. 낙심이나 자포자기하지 말라고 권한다.
강영우: 저의 지혜라기보다는 미국을 이끌어가는, 서양 문명을 이끌어가는 그런 기초가 되는 성경 말씀이 로마서 8장 28절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아느니라.’ 로널드 레이건의 어머니가 그 아들에게 ‘오늘 나쁜 일이 생겼기 때문에 미래에 더 좋은 일이 발생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나쁜 일을 통해서도 선한 역사를 하시는 좋으신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좋은 일이 생기면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뻐하기 쉽죠. 그런데 나쁜 일이 생기면 실망하고 낙심하고 자포자기하는 것이 보통인데 오늘 나쁜 일이 생겼기 때문에 그걸 통해서 그것 때문에 미래의 더 좋은 일이 발생한다. 이렇게 생각하고 그것을 믿으면 미래에 대한 희망이 생기고 현재의 어려움을 축복으로 바꾸는 용기도 생기고,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축복의 통로로 삼으시는 거지요. 그러니까 저도 실명을 한 것은 그것은 나쁜 일이지요. 그런데 그 실명 때문에 저는 이렇게 세계적인 인물도 됐고, 실명 때문에 큰아들은 세계적인 안과 의사가 되고, 제 실명때문에 저의 작은아들은 지금 백악관에 일하고 이것은 실명이라는 나쁜 일이 생겼기 때문에 그 나쁜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선한 역사를 하신 것이지요. 그러니까? 나쁜 일이 생겼을 때 경제적으로도 여러 가지 어려움에 처해 있는 분들이 많지요. 이랬을 때 대부분의 사람은 길이 없다고 생각을 하는데 이 생각을 바꿔서 잠시 숨을 고르고 이 NO WHERE에다가 스페이스 하나 하면 NOW HERE가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나쁜 일이 생겼을 때, 고난이 생겼을 때에 ‘이제는 끝이다.’라고 생각하면 끝이에요. 그런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더 좋은 미래를 보장하기 위한 그런 기회다. 그렇게되면 NOW HERE 로 전환되고 인생이 바뀝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의 생각을 어떻게 변화 시키느냐가 여러분의 인생을 결정합니다.
자유아시아방송의 세계의 한국인 오늘은 고아로 시각 장애를 딛고 전 백악관 국가 장애 위원회 정책 차관보를 지낸 강영우 박사의 도전 삶의 이야기 3부 ‘도전으로 행복한 가정을 이뤘다.’를 함께 했다. 세계의 한국인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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