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이현기 leeh@rfa.org
오디오
오디오 (다운받기)
2011-04-22
미국 동남부의 애틀랜타는 세계적인 명작, 마거릿 미첼의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의 배경이 되는 곳이다. 미국 동남부의 경제, 문화, 산업, 교통의 핵심도시로서 뉴욕과 휴스턴에 이어 미국에서 3번째로 많은 수의 대기업들의 본사가 애틀랜타에 있다. 이곳에는 대략 10만여 명의 한인들이 살면서 이민자의 꿈을 이뤄나가고 있다.
자유아시아방송의 세계의 한국인 오늘은 애틀랜타 한인회 은종국 회장으로부터 한인회의 활동을 알아본다.
애틀랜타 한인회의 역사는 얼마나 됐을까? 은종국 회장은 대략 40여 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고 말한다. 지난 60년대부터 시작이지만 2000년 이후에 폭발적인 한인사회가 발전하게 됐다고 설명한다.
은종국: 1965년도 존슨 대통령 때 새 이민법이 제정되면서 미주에 한인 이민이 본격화됐는데요. 애틀랜타도 초기 이민 시절, 이민사회가 정립되던 시기, 또 하나의 발전시기 등 세 단계로 나뉜다고 봅니다. 구분하자면 60년대, 70년대, 80년대 초반까지 이민 오신 분들이 많고, 그다음에 정립기라고 할까요. 96년도에 애틀랜타 올림픽이 개최되면서 애틀랜타가 전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고 한인사회도 많이 알려지게 됐습니다. 2000년 접어들어서 많은 한인께서 미주 내 다른 도시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사업이나 유학, 이민 등으로 2000년 이후에 폭발적으로 한인사회가 발전됐습니다.
은종국 회장은 최초에 한인으로 애틀랜타에 정착하신 분은 애국가를 작사하신 윤치호 선생이라고 자랑한다.
은종국: 윤치호 선생님이 1891년부터 1893년까지 애틀랜타에 있는 명문대학이지요. 에모리 대학(Emory University)에서 공부하신 걸로 알려졌습니다.
은종국 회장은 애틀랜타에는 대략 한인 인구가 10만여 명으로 이민자로서 열심히 살고 있다고 말한다.
은종국: 인구를 정확하게 파악한다는 게 상당히 힘듭니다. 작년에 인구조사에서 한인 통계는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습니다. 반면에 저의 한인회에서 2008년에 나름대로 조사한 숫자는 메트로, 대도시인 애틀랜타에 사는 한인 인구수를 파악해 본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의 우리 인구를 약 8만 3천 408명으로 집계를 했고 누락되신 분들, 유동인구를 포함해서 통상 애틀랜타에는 10만 한인들이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은종국 회장은 이민 초기 우리 한인 선배들의 끈질긴 노력으로 오늘의 애틀랜타 한인사회로 발전했다고 들려준다.
은종국: 저는 개인적으로는 79년도에 한국에서 애틀랜타로 가족들과 이민을 왔습니다. 그래서 사실 그 이전에 애틀랜타 한인회 발전사에 대해서는 제가 직접 체험하지 못했지만, 애틀랜타 한인 이민사 책을 참고 해서 말씀드리자면, 초기 이민의 어려웠던 이야기가 많이 있습니다. 특별히 60년, 70년대 정착 하신 분들의 어떤 노력과 희생 이런 것으로 인해서 오늘날 우리가 애틀랜타에서 코리안 아메리칸의 정체성을 가지고 미국 주류사회 속에서 당당하게 살고 있다고 느껴집니다. 특별히 애틀랜타로 유학 오신 분들, 의사분들이 주축이 되어서 애틀랜타 한인회는 1968년에 조직되어서 한 40년 가까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은종국 회장으로부터 애틀랜타 한인회의 주요행사 이야기를 들어보자!
은종국: 어느 지역이나 마찬가지지 않나 생각됩니다만. 지역 한인회가 지역 한인 동포사회의 대표성을 가지고 활동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그런 맥락에서 우리 한인 사회에서 이뤄지고 있는 주요한 공식적인 행사들, 예를 들면 연초에 신년하례식이라든지, 3.1절, 815 기념식 등 한인회가 주도해야 할 행사들을 하고 특별히 애틀랜타 한인 역사가 40년이 넘어갑니다만 올해로 저희가 제3회 코리안 페스티발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한인들뿐만이 아니고 미국 주류사회에 한인들의 문화와 전통 여러 가지를 소개할 수 있는 행사를 준비하고 있고, 또 우리 한인회의 기능 중에서 늘 강조하는 것이 우리 한인 동포사회가 여러 가지 면에서 발전되고 있지마는 아직도 이민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 주변의 이웃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저의 애틀랜타 한인회에서는 2년 전에 FAMILY CARE CENTER(가족을 돌보는 기관 ) 에서 어려운 분들을 돕고 교육하고 구제하며 봉사하는 이런 기능을 총괄하는 센터를 만들어 자원봉사하신 분들이 한인사회에서 꼭 필요한 교육 프로그램인 봉사, 구제 프로그램 등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은종국 회장은 애틀랜타 한인회는 3세대가 함께 공유하며 연결의 고리 역할을 강조한다. 애틀랜타에도 1.5세 박 변호사가 주 하원으로 의정 활동하고 있다고 자랑한다.
은종국: 이민 역사가 깊어짐에 따라서 우리 2세들이 많이 장성해서 벌써 여기서 태어난 분도 40살이 넘었지요. 어릴 때 미국에 와서 1.5세로 활약하는 분들도 많은데 역시 한인회가 주창하는 브리지(다리) 역할, 주류사회와 우리 한인사회뿐만 아니라 2새와 1.5세, 또 1세들 간의 연결을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려고 애를 많이 쓰고 있습니다. 반면에 아무래도 우리 2세들은 정서적으로 저희와 차이가 있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는 있습니다만, 자랑하고 싶은 것은 작년에 우리 조지아주에서 사상 처음으로 1.5세 BJ 박이라는 변호사가 주 하원의원으로 당선되어서 당당히 주 의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은종국 회장으로부터 애틀랜타 자랑을 듣는다. 그는 인심 좋은 애틀랜타를 찾아 달라고 당부한다.
은종국: 애틀랜타는 여러분 아시는 데로 미국 동남부에 중심 도시입니다. 그래서 이 애틀랜타를 기점으로 해서 미국의 동남부를 커버하는데 비행기로 2시간 거리면 미국 인구의 70%를 커버할 수 있을 만큼, 애틀랜타가 교통의 요지로 되어 있고, 또 교육이나 문화 정치 등 모든 면에서 동남부의 중심이 되고 있습니다. 특별히 남부는 사람들의 인심이 좋습니다. 그래서 SOUTHERN HOSPITALITY(인심 좋은 남부)이라는 말이 있지요. 그래서 저희 한인들도 아름답고 인심 좋은 애틀랜타에 정착하면서 저희도 아주 좋은 인심을 가지고 특히 타주에서 오신 분들께 애틀랜타에 잘 정착하실 수 있도록 애를 많이 쓰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여러분께서도 기회가 되시면 애틀랜타를 방문해 주시면 아마 느끼시게 될 걸로 생각합니다.
은 회장은 이곳에서 상당수의 한인은 개인 사업을 한다고 전한다.
은종국: 도시 자체가 생산시설보다는 서비스업 교통 중심의 도시이다 보니 우리 한인 많은 분이 자영업을 하는데, 한인회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거의 6,000여 개 업소 SMALL BUSNESS들을 한인들이 운영하고 있고,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1,000개의 세탁소 그리고 그로 서리 컨비니언 상점 즉 생활필수품만을 파는 상점들, 가스 스테이션, 주유소 등 해서 800개 다양한 식당업 1,000개 미용재료상 600여 개가 운영되고 있는데 이 4가지 업종이 중요한 업종인 것 같습니다. 그 외 다른 전문직도 상당수 갖고 있습니다.
애틀랜타에서 뿌리를 내린 한인들과 또 새로 오는 이민자들을 위해 애틀랜타 한인 이민사를 발간했다고 은 회장은 들려준다.
은종국: 역사라는 것은 아무래도 뭔가 문자화되어서 당대보다는 후대에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저희도 2003년도에 미주 한인 이민 100주년 행사를 했습니다. 우리 애틀랜타에서도 몇몇 뜻있는 분들이 모여서 우리 애틀랜타 이민사를 편찬해보자 해서 3년에 걸친 준비과정을 마치고 2003년도에 이 책이 발행됐습니다. 특별히 당시에 서울대학교 사회과 대학의 교수로 계시던 이전 교수님이 애틀랜타에 교환교수로 와 계시는 기회로 해서 한인사가 발간됐습니다만, 우리 초기 애틀랜타 역사가 상당히 상세하면서도 객관적인 자료를 근거로 해서 약 460페이지에 달하는 책이 만들어졌고, 이 책이 앞으로 우리 한인 이민 역사에 보존이 잘 되어서 앞으로 50년 100년 200년 후에도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이고, 기회가 된다면 이민사를 영문으로 번역해 발간하려고 준비는 하고 있습니다.
은종국 회장은 애틀랜타는 한인들이 살기에 좋은 도시라고 자랑한다.
은종국: 우리 애틀랜타 하면은 여러 가지 자랑이 있습니다만 최근의 한국의 대 기업체들이 애틀랜타에 많이 진출하고 있지요. 2년 전에 기아자동차가 조지아주 남쪽에 있는 웨스트포인트라는 지역에서 12억 달러를 투자해서 공장이 완공되었고, 2500명의 미국인을 고용하게 됐습니다. 이 기아자동차로 인해서 적지 않은 다른 업체들이 조지아에 많이 와 있고, 그러므로 인해서 조지아에서는 우리 한국인에 대한 평가가 상당히 높아져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 애틀랜타는 10만여 명의 한인들은 생활하는데 전혀 불편이 없을 만큼 3개 일간지와 라디오방송 TV 방송해서 전혀 불편이 없고 많은 한인이 운영하는 슈퍼마켓을 통해서 의식주 문제가 해결됩니다. 특별히 애틀랜타는 상대적으로 동부나 서부보다는 일반적인 생활비나 주택 가격이 상당히 저렴하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위치상 동남부의 중심 도시이면서 교육의 다양한 기회들 좋은 대학교 고등학교 중학교가 많아 한인들이 정착해서 아메리칸 꿈을 이뤄 나가는데 다른 어떤 도시보다도 유리하지 않나 싶습니다. 아울러서 우리끼리만의 이민의 삶도 중요하지만 이제 미국 주류사회에서 코리안 아메리칸의 정체성을 가지고 그분들과 밀접한 교류를 통해서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이민 1세대들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맥락에서 우리 지역한인회가 담당해야 할 부분들이 참 중요하다 이렇게 생각됩니다.
은 회장은 앞으로 애틀랜타는 성장할 가능성이 큰 도시라고 들려준다.
은종국: 우리 애틀랜타는 미국 동남부에 중심도시로서 또 전통적으로 바이블 벨트(성경지역)라고 하지요. 마틴 루터킹 주니어 목사님의 고향이고, 코카콜라 홈디포 UPS 방송 CNN 등 포천 500의 약 12개 회사의 본부가 애틀랜타에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도 우리 애틀랜타의 앞으로 장래성이 밝고 특별히 21세기를 맞아서 애틀랜타가 앞으로 미국의 어떤 대도시보다도 더 성장할 가능성이 많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많습니다.
은 회장은 한인회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고 말한다.
은종국: 저의 애틀랜타 한인회가 40년 역사를 자랑하면서 많은 단체와 함께하고 협조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www. Atlantaka.com 우리 한인회 공식 웹 사이트입니다. 이 사이트에 들어오시면 저희 나름대로 정성을 다해서 웹 사이트를 만들어 놨습니다. 참고 하셔서 도움이 되기를 바라고 질문사항도 웹사이트를 통해 질문하시면 가능한 한 빠른 시간내에 답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의 세계의 한국인 오늘은 애틀랜타 한인회 은종국 회장으로부터 한인회 활동의 이모저모를 알아봤다. 세계의 한국인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자유아시아방송의 세계의 한국인 오늘은 애틀랜타 한인회 은종국 회장으로부터 한인회의 활동을 알아본다.
애틀랜타 한인회의 역사는 얼마나 됐을까? 은종국 회장은 대략 40여 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고 말한다. 지난 60년대부터 시작이지만 2000년 이후에 폭발적인 한인사회가 발전하게 됐다고 설명한다.
은종국: 1965년도 존슨 대통령 때 새 이민법이 제정되면서 미주에 한인 이민이 본격화됐는데요. 애틀랜타도 초기 이민 시절, 이민사회가 정립되던 시기, 또 하나의 발전시기 등 세 단계로 나뉜다고 봅니다. 구분하자면 60년대, 70년대, 80년대 초반까지 이민 오신 분들이 많고, 그다음에 정립기라고 할까요. 96년도에 애틀랜타 올림픽이 개최되면서 애틀랜타가 전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고 한인사회도 많이 알려지게 됐습니다. 2000년 접어들어서 많은 한인께서 미주 내 다른 도시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사업이나 유학, 이민 등으로 2000년 이후에 폭발적으로 한인사회가 발전됐습니다.
은종국 회장은 최초에 한인으로 애틀랜타에 정착하신 분은 애국가를 작사하신 윤치호 선생이라고 자랑한다.
은종국: 윤치호 선생님이 1891년부터 1893년까지 애틀랜타에 있는 명문대학이지요. 에모리 대학(Emory University)에서 공부하신 걸로 알려졌습니다.
은종국 회장은 애틀랜타에는 대략 한인 인구가 10만여 명으로 이민자로서 열심히 살고 있다고 말한다.
은종국: 인구를 정확하게 파악한다는 게 상당히 힘듭니다. 작년에 인구조사에서 한인 통계는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습니다. 반면에 저의 한인회에서 2008년에 나름대로 조사한 숫자는 메트로, 대도시인 애틀랜타에 사는 한인 인구수를 파악해 본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의 우리 인구를 약 8만 3천 408명으로 집계를 했고 누락되신 분들, 유동인구를 포함해서 통상 애틀랜타에는 10만 한인들이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은종국 회장은 이민 초기 우리 한인 선배들의 끈질긴 노력으로 오늘의 애틀랜타 한인사회로 발전했다고 들려준다.
은종국: 저는 개인적으로는 79년도에 한국에서 애틀랜타로 가족들과 이민을 왔습니다. 그래서 사실 그 이전에 애틀랜타 한인회 발전사에 대해서는 제가 직접 체험하지 못했지만, 애틀랜타 한인 이민사 책을 참고 해서 말씀드리자면, 초기 이민의 어려웠던 이야기가 많이 있습니다. 특별히 60년, 70년대 정착 하신 분들의 어떤 노력과 희생 이런 것으로 인해서 오늘날 우리가 애틀랜타에서 코리안 아메리칸의 정체성을 가지고 미국 주류사회 속에서 당당하게 살고 있다고 느껴집니다. 특별히 애틀랜타로 유학 오신 분들, 의사분들이 주축이 되어서 애틀랜타 한인회는 1968년에 조직되어서 한 40년 가까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은종국 회장으로부터 애틀랜타 한인회의 주요행사 이야기를 들어보자!
은종국: 어느 지역이나 마찬가지지 않나 생각됩니다만. 지역 한인회가 지역 한인 동포사회의 대표성을 가지고 활동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그런 맥락에서 우리 한인 사회에서 이뤄지고 있는 주요한 공식적인 행사들, 예를 들면 연초에 신년하례식이라든지, 3.1절, 815 기념식 등 한인회가 주도해야 할 행사들을 하고 특별히 애틀랜타 한인 역사가 40년이 넘어갑니다만 올해로 저희가 제3회 코리안 페스티발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한인들뿐만이 아니고 미국 주류사회에 한인들의 문화와 전통 여러 가지를 소개할 수 있는 행사를 준비하고 있고, 또 우리 한인회의 기능 중에서 늘 강조하는 것이 우리 한인 동포사회가 여러 가지 면에서 발전되고 있지마는 아직도 이민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 주변의 이웃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저의 애틀랜타 한인회에서는 2년 전에 FAMILY CARE CENTER(가족을 돌보는 기관 ) 에서 어려운 분들을 돕고 교육하고 구제하며 봉사하는 이런 기능을 총괄하는 센터를 만들어 자원봉사하신 분들이 한인사회에서 꼭 필요한 교육 프로그램인 봉사, 구제 프로그램 등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은종국 회장은 애틀랜타 한인회는 3세대가 함께 공유하며 연결의 고리 역할을 강조한다. 애틀랜타에도 1.5세 박 변호사가 주 하원으로 의정 활동하고 있다고 자랑한다.
은종국: 이민 역사가 깊어짐에 따라서 우리 2세들이 많이 장성해서 벌써 여기서 태어난 분도 40살이 넘었지요. 어릴 때 미국에 와서 1.5세로 활약하는 분들도 많은데 역시 한인회가 주창하는 브리지(다리) 역할, 주류사회와 우리 한인사회뿐만 아니라 2새와 1.5세, 또 1세들 간의 연결을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려고 애를 많이 쓰고 있습니다. 반면에 아무래도 우리 2세들은 정서적으로 저희와 차이가 있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는 있습니다만, 자랑하고 싶은 것은 작년에 우리 조지아주에서 사상 처음으로 1.5세 BJ 박이라는 변호사가 주 하원의원으로 당선되어서 당당히 주 의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은종국 회장으로부터 애틀랜타 자랑을 듣는다. 그는 인심 좋은 애틀랜타를 찾아 달라고 당부한다.
은종국: 애틀랜타는 여러분 아시는 데로 미국 동남부에 중심 도시입니다. 그래서 이 애틀랜타를 기점으로 해서 미국의 동남부를 커버하는데 비행기로 2시간 거리면 미국 인구의 70%를 커버할 수 있을 만큼, 애틀랜타가 교통의 요지로 되어 있고, 또 교육이나 문화 정치 등 모든 면에서 동남부의 중심이 되고 있습니다. 특별히 남부는 사람들의 인심이 좋습니다. 그래서 SOUTHERN HOSPITALITY(인심 좋은 남부)이라는 말이 있지요. 그래서 저희 한인들도 아름답고 인심 좋은 애틀랜타에 정착하면서 저희도 아주 좋은 인심을 가지고 특히 타주에서 오신 분들께 애틀랜타에 잘 정착하실 수 있도록 애를 많이 쓰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여러분께서도 기회가 되시면 애틀랜타를 방문해 주시면 아마 느끼시게 될 걸로 생각합니다.
은 회장은 이곳에서 상당수의 한인은 개인 사업을 한다고 전한다.
은종국: 도시 자체가 생산시설보다는 서비스업 교통 중심의 도시이다 보니 우리 한인 많은 분이 자영업을 하는데, 한인회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거의 6,000여 개 업소 SMALL BUSNESS들을 한인들이 운영하고 있고,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1,000개의 세탁소 그리고 그로 서리 컨비니언 상점 즉 생활필수품만을 파는 상점들, 가스 스테이션, 주유소 등 해서 800개 다양한 식당업 1,000개 미용재료상 600여 개가 운영되고 있는데 이 4가지 업종이 중요한 업종인 것 같습니다. 그 외 다른 전문직도 상당수 갖고 있습니다.
애틀랜타에서 뿌리를 내린 한인들과 또 새로 오는 이민자들을 위해 애틀랜타 한인 이민사를 발간했다고 은 회장은 들려준다.
은종국: 역사라는 것은 아무래도 뭔가 문자화되어서 당대보다는 후대에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저희도 2003년도에 미주 한인 이민 100주년 행사를 했습니다. 우리 애틀랜타에서도 몇몇 뜻있는 분들이 모여서 우리 애틀랜타 이민사를 편찬해보자 해서 3년에 걸친 준비과정을 마치고 2003년도에 이 책이 발행됐습니다. 특별히 당시에 서울대학교 사회과 대학의 교수로 계시던 이전 교수님이 애틀랜타에 교환교수로 와 계시는 기회로 해서 한인사가 발간됐습니다만, 우리 초기 애틀랜타 역사가 상당히 상세하면서도 객관적인 자료를 근거로 해서 약 460페이지에 달하는 책이 만들어졌고, 이 책이 앞으로 우리 한인 이민 역사에 보존이 잘 되어서 앞으로 50년 100년 200년 후에도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이고, 기회가 된다면 이민사를 영문으로 번역해 발간하려고 준비는 하고 있습니다.
은종국 회장은 애틀랜타는 한인들이 살기에 좋은 도시라고 자랑한다.
은종국: 우리 애틀랜타 하면은 여러 가지 자랑이 있습니다만 최근의 한국의 대 기업체들이 애틀랜타에 많이 진출하고 있지요. 2년 전에 기아자동차가 조지아주 남쪽에 있는 웨스트포인트라는 지역에서 12억 달러를 투자해서 공장이 완공되었고, 2500명의 미국인을 고용하게 됐습니다. 이 기아자동차로 인해서 적지 않은 다른 업체들이 조지아에 많이 와 있고, 그러므로 인해서 조지아에서는 우리 한국인에 대한 평가가 상당히 높아져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 애틀랜타는 10만여 명의 한인들은 생활하는데 전혀 불편이 없을 만큼 3개 일간지와 라디오방송 TV 방송해서 전혀 불편이 없고 많은 한인이 운영하는 슈퍼마켓을 통해서 의식주 문제가 해결됩니다. 특별히 애틀랜타는 상대적으로 동부나 서부보다는 일반적인 생활비나 주택 가격이 상당히 저렴하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위치상 동남부의 중심 도시이면서 교육의 다양한 기회들 좋은 대학교 고등학교 중학교가 많아 한인들이 정착해서 아메리칸 꿈을 이뤄 나가는데 다른 어떤 도시보다도 유리하지 않나 싶습니다. 아울러서 우리끼리만의 이민의 삶도 중요하지만 이제 미국 주류사회에서 코리안 아메리칸의 정체성을 가지고 그분들과 밀접한 교류를 통해서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이민 1세대들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맥락에서 우리 지역한인회가 담당해야 할 부분들이 참 중요하다 이렇게 생각됩니다.
은 회장은 앞으로 애틀랜타는 성장할 가능성이 큰 도시라고 들려준다.
은종국: 우리 애틀랜타는 미국 동남부에 중심도시로서 또 전통적으로 바이블 벨트(성경지역)라고 하지요. 마틴 루터킹 주니어 목사님의 고향이고, 코카콜라 홈디포 UPS 방송 CNN 등 포천 500의 약 12개 회사의 본부가 애틀랜타에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도 우리 애틀랜타의 앞으로 장래성이 밝고 특별히 21세기를 맞아서 애틀랜타가 앞으로 미국의 어떤 대도시보다도 더 성장할 가능성이 많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많습니다.
은 회장은 한인회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고 말한다.
은종국: 저의 애틀랜타 한인회가 40년 역사를 자랑하면서 많은 단체와 함께하고 협조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www. Atlantaka.com 우리 한인회 공식 웹 사이트입니다. 이 사이트에 들어오시면 저희 나름대로 정성을 다해서 웹 사이트를 만들어 놨습니다. 참고 하셔서 도움이 되기를 바라고 질문사항도 웹사이트를 통해 질문하시면 가능한 한 빠른 시간내에 답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의 세계의 한국인 오늘은 애틀랜타 한인회 은종국 회장으로부터 한인회 활동의 이모저모를 알아봤다. 세계의 한국인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세계의 한국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계의 한국인] 재미동포 요리가 장재옥① '한국음식 전도사 40년, 미국 속에 한국 음식을 알린다' (0) | 2011.05.07 |
---|---|
[세계의 한국인] 미주 밀알 선교단 정택정 총단장 "장애인은 우리 형제와 자매" (0) | 2011.05.01 |
[세계의 한국인] 전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 차관보 강영우 박사의 도전 삶③ "도전으로 행복한 가정을 이루다" (0) | 2011.04.16 |
[세계의 한국인] 전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 차관보 강영우 박사의 도전 삶② "도전은 희망으로 꽃핀다" (0) | 2011.04.09 |
[세계의 한국인] 전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 차관보 강영우 박사의 도전 삶① "성공하기까지 가장 큰 힘은 신앙" (0) | 2011.04.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