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이현기 leeh@rf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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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23
우리 가족은 여덟 식구에서 3명이 살아서 탈북했고, 미국에 정착해 살고 있다. 저의 아버지는 6형제를 키우기 위해서 굶어 죽어가는 우리 모습을 지켜보다가 목숨 걸고 중국에 가 식량을 가져온 것이 죄가 되어 감옥에서 돌아가셨다. 할머니와 저의 두 남동생이 제 옆에서 굶어 죽었다. 저의 언니도 아버지 대신 저의 형제들 살리기 위해서 식량을 구하려 떠났다가 행방불명이 되어서 지금까지도 돌아오지 않고 있다. 이것이 탈북자 조진혜 씨 가족의 슬픈 이야기다.
조진혜 씨는 이렇게 들려준다. ‘남자 교관이 들어와서 여자의 몸수색을 한다. 그 사람들 한국말을 배워 한다는 말이 ‘나 장가갔어.’ 그러니까 ‘괜찮아.’라고 말을 하고 몸 검색을 한단다.’ ‘참 그럴 때 정말 수치스러워요. 탈북 여성들 옷 못 벗겠다고 항의하면 곤봉으로 사정없이 때려요’. 이것이 중국 감옥에서의 비극적인 현실이다.
자유아시아방송 세계의 한국인 오늘은 재미 탈북인 조진혜 씨의 증언 ‘중국 감옥에서 남자 간수 탈북 여성 몸 검사 치욕이에요.’를 함께한다.
조지혜 씨는 중국에 탈북한 후 산속에 숨어 살다 우연히 시골 교회를 발견했고 이 세상 태어나서 처음으로 기독교를 접하게 된다. 그녀는 교회당에 들어가 처음으로 듣는 피아노 찬양소리에 눈물을 쏟아 냈다고 한다.
조진혜: 제가 하나님을 믿게 된 것은 어느 날인가 혼자서 산에서 내려와 어떤 집을 지나가다가 작은 시골 교회 하나를 발견했어요. 그 앞을 지나가려는 데 노랫소리가 울려 나오는 데 피아노 반주 소리가 너무 가슴을 울렸어요. 그래서 앉아서 그 소리를 듣고 있다가 어떤 할머니가 나오셔서 같이 들어가자고 해서, 할머니 저는 무서워서 못 들어가겠습니다 하니까 할머니가 하시는 이야기가 여기는 버림받고 세상에서 상처받고 그런 분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에 무서워 안 해도 된다. 같이 들어가자 해서 할머니 따라 들어갔고 한 시간 동안을 계속 울었어요. 그냥 그 피아노 소리에 그렇게 하나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을 영접하기까지 한 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는데요.
조진혜 씨는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성경을 읽는 기쁨도 맛보았다.
조진혜: 그 후 교회 집사님이 저희를 불쌍히 여겼는지 아는 전도사님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그 전도사님은 탈북자 어린이들을 키워서 복음으로 무장시켜서 북한에 가서 전도할 수 있게끔 보내고, 또한, 중국에서 믿음 생활 잘할 수 있게 도와주시는 그런 사명을 갖고 사역하시는 분이었어요. 그래 그 집에 가서 동생하고 같이 생활하게 됐는데 어느 날인가 성경을 10장을 읽고 그 내용을 저녁에 알려 달라는 거예요.
조지혜 씨가 한참 학창시절을 보내야 할 나이지만 한글도 제대로 못 배웠다고 회고한다.
조진혜: 그때 당시 나이도 많았지만 제가 한글을 잘 몰랐기 때문에 성경 구절 모르는 글에다 동그라미를 해 놨거든요. 그런데 저녁에 전도사 사모가 오셔서 하나님 말씀에다 낙서했다고 엄청 혼났어요. 그 후에 사모님이 제가 한글을 몰라서 그런 줄 아시고 세계 지도 뒤편에다 하나님, 예수님, 성경이란 식으로 글을 쓰면서 한글을 배워 주셨어요. 그래 동생과 같이 성경을 보면서 한글을 배웠고요. 그렇게 이곳에서 성경을 암송하고 읽고 쓰고를 1년 6개월 동안 했어요.
조진혜 씨가 4번의 강제북송을 이겨낸 것은 신앙의 힘이라고 말한다.
조진혜: 이곳도 안전하지 못해서 경찰에 들키게 되곤 하니까? 여기보다는 큰 규모인 지하 신학교로 갔는데 탈북자보다는 중국 조선족들을 믿음으로 양성하는 비밀리에 가르쳤어요. 이곳에서도 공부하면서 살다가 언젠가 강제 북송을 당했어요. 아마 강제 북송을 4번 당하면서 살아올 수 있는 요소가 하나님을 정확히 알았고 성경을 자주 보고 쓰면서 그 성경 안에 하나님이 역사 하시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제가 기도를 할 수 있었고 또 그 기도 때문에 저희가 살아서 4번씩이나 다시 재탈북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조진혜 씨가 중국에서 산나물 캐면서도 중국 공안에 잡히지 않으려고 중국어를 공부한 이야기는 한인 여성의 억척같은 삶의 한 부분인 것 같다.
조진혜: 저희가 집에 있으면서 항상 산에 가서 산나물을 뜯고 염소도 기를 때 어머니가 항상 저희에게 다그쳤어요. 중국어 공부를 하라고, 왜냐면 잡히지 않으려면 거리에 나가서라도 한국말보다 중국말을 해야 저들은 탈북자가 아니구나! 이렇게 중국 공안 생각할 수 있게. 중국말을 배우라고 해서 살자니까 중국말을 배웠어요. 항상 저는 천자문을 가방에 넣어 가지고 다니면서 산에서나 어디서나 10자씩 계속 암송하고 읽고 쓰기를 했고, 텔레비전을 봐도 한국말 텔레비전은 못 봤어요. 중국어 배운다고 중국말 영화나 중국말 텔레비전만 봤어요. 그렇게 중국말을 배우면서 성경을 가르치시던 전도사님이 국민학교 1학년부터 6학년까지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를 얻어다 놓으시고 가르쳐 주셨어요. 그러다 보니까 중국말을 잘하게 됐고요. 정말 한국말을 안 하면 조선 사람인 줄 모를 정도로 습득했어요. 지금은 많이 서툴어 졌지만.
조진혜 씨는 중국에서 통역까지 했다는 이야기는 자랑스럽기만 하다.
조진혜: 사회에 나와서 우연하게 한국 분들을 봤는데 시장에서 중국인 한족하고 싸우고 있는데 한국 분은 중국어를 못하니까? 그냥 미안하지만, 돈을 돌려 달라고 하고 중국 사람은 할 말 안 할 말 다하면서 욕을 하는 거예요. 그것을 듣다가 제가 가서 도와 드렸지요. 그게 계기가 되어서 그분을 알게 돼서 그분을 계속 통역해 드렸고 그 후에도 많은 분이 제가 중국말 안다는 것을 알고 탈북자인 줄 모르고 저를 통역원으로 써 주셨어요. 그리고 또 가짜 신분증 같은 게 있었기 때문에 그 신분증을 보여주고 통역원으로 일했지요. 통역원 자격증이 없으니까? 다른 정식 통역원보다는 돈이 적었지만 먹고 사는데 문제없이 돈을 벌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식당에서도 힘들게 일을 하다가도 탈북자라는 게 들통이 나면 월급을 받지도 못하고 잡힐까 봐 달아도 나고 이렇게 살았지만, 중국어를 배울 수 있어서 노력하니까 통역을 하면서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그런 일도 있었어요.
조진혜 씨는 중국말을 배우기 잘했다고 생각한 것은 중국 감옥에 갇힌 후에 일이라고 말한다.
조진혜: 중국에서 2005년도에 윤요한 목사님 저희 가족 30명의 탈북자와 같이 체포돼서 중국 감옥에서 1년 3개월 형을 받고서 있었어요. 그때 중국 경찰들이 탈북자들을 학대하는 그때에 말을 몰라서 그냥 좋게 말했는데 인상을 썼다고 해서 자기를 욕하는 줄 알고 들어와서 때리고, 아니면 규정을 이렇게 지켜서 앉으라고 이야기하는데 탈북자들이 못 알아들었다고 해서 들어와서 때리고, 그럴 때마다 그 사람들을 대변해서 억울하니까 그런 것을 통역할 그런 기회가 있었어요. 그러면서 아는 것이 힘이구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중국말 배운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는데 지금 역시 미국에 와서도 중국말 때문에 회사에 취직하고 일하고 있어요.
조진혜 씨는 영어 잘하기를 소망하고 있단다.
조진혜: 제가 바라고 기도하기는 중국에서처럼 중국말 배웠듯이 영어도 빨리 습득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조진혜 씨가 중국 감옥생활을 증언한다. 탈북 여성의 몸 검사를 남자 교관이 할 때 치욕을 느꼈으며 생리대도 없어 모포를 짤라 사용하지만 걸리면 몽둥이질 당하는 참혹한 인권유린의 현장이라고 말한다.
조진혜: 처음에 들어가면 탈북자들 몸 검사를 합니다. 그래서 중국어를 알면 항의라도 할 수 있는데 중국어를 모르면 남자 교관이 들어와서 여자들의 몸수색을 합니다. 그 사람들이 한국말을 배워 한다는 말이 ‘나 장가갔어.’ 그러니까 ‘괜찮아.’라고 말을 하고 몸 검색을 하거든요. 참 그럴 때 정말 수치스러워요. 그리고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수치심을 가지고, 우리 한국 여자들은 그런 말 들으면 못 벗겠다고 항의를 하곤 하거든요. 그러면 곤봉 가지고 들어와서 사정없이 때려요. 그러면 한참 맞고 방법이 없어서 옷을 벗어야 해요. 그렇게 인권유린을 당하면서 결국은 겉에 내복 하나만 입고 감방으로 들어가요. 감방 안에 들어가면 담요 하나씩 주는데 제일 거기서 당황하는 게, 제가 지금 말을 옮기기는 참 창피하지만, 그래도 탈북자 여자들이 어떻게 인권유린을 당하는지를 이야기 해야 하니까? 얘기를 드리지만, 생리대 같은 것을 전혀 제공해 주지 않아요. 그래서 참다못해 방법이 없으면 옷을 찢었으면 좋겠는데 찢을 옷도 없이 여 별도 없이 들여 보냅니다. 결국, 방법이 없어서 그 더러운 거기 몇 년 동안 몇천 명이 들락 달락 하면서 쓰는 그 담요를 찢어서 여자들이 사용합니다. 그러면 간수가 들어와서 몸수색하면서 방 검사를 하다가 담요가 찢겨 있는 것을 발견했거나 담요 조각을 발견하면 사정없이 때립니다. 온몸이 퍼렇게 멍들고 얼굴이 띵띵 부어서 밥도 먹지 못할 정도로 맞아야 합니다.
조진혜 씨는 중국 감옥에서 북한 여성들이 겪는 수치는 말로 형용할 수 없다면서 단식 투쟁도 했다고 들려준다.
조진혜: 처음에는 들어가서 저도 무서워서 계속 가만히 있었지만 3-4개월 있는 다음부터 너무 화가 나는 거예요. 그래서 거기서 탈북자 7명 하고 죽기를 각오하고 단식투쟁을 했습니다. 일주일씩 단식 투쟁을 하면서 그 사람들한테 막 싸웠어요. 당신은 엄마 배에서 나온 사람이 아니고 당신의 누나도 당신 집에는 여자라는 사람이 없느냐! 생리적으로 여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도 너희는 모르느냐! 그렇게 싸우면서 이런 것은 제공해달라! 라고 싸우면 너의 북한에서는 해결해 주니! 너의 감옥에서도 해결해 주지 않을 그때는 왜 단식투쟁을 못하면서 여기서 하니! 그러고 또 때려요. 그러면 또 맞고, 밥 안 먹고 그냥 단식투쟁 또 하고 결국 그렇게 돼서 산포를 얻어 가지면 찢어 나누어 가지고 그렇게 북한여자들이 중국 감옥에서 있으면서 당하는 수치스러운 그런 생활을 보냅니다.
조진혜 씨가 들려주는 중국 감옥에서의 음식 이야기다.
조진혜: 가을이 되면 가을 쌀을 탈곡하고 좋은 쌀을 거두어 간 후 그 묵지, 흙이 썩이고 돌이 섞이고 쥐 짐승 똥이 섞인 그런 쌀 묵지를 물에다 대충 버무려서 쪄서 줍니다. 그러면 나무 꼬챙이 돌이랑 썩여 들어오는 밥을 앉아서 알알이 골라 먹어야 합니다. 그리고 70-80명이 되는 탈북자들이 갇혀 있는데 거기다가 큰 솥에다 물을 가득 붓고 그 물도 본인들이 손 씻던 그런 물탱크의 더러운 물을 그냥 퍼서 소금 쏟아 넣고 배추 한 포기 밭에서 뽑아서 씻지도 않고 썰어서 넣습니다. 그러면 그 국이 들어오면은 무언가 떠 있고 거품이 떠있는 그런 국물을 줍니다. 처음에 들어와서는 한 3일씩 굶습니다. 먹지를 못해서요. 그러다가 한 3일 되면 하도 굶어서 배고프니까? 방법 없이 밥알을 세더라도 먹고 그러다가 며칠 걸러서 두 주씩 되면 허약들이 와서 힘이 없어 일어나지를 못합니다.
조진혜 씨가 들려주는 중국 감방 생활의 이야기는 슬프고 비참하다.
조진혜: 규정대로 온종일 앉아 있어야 하는데 보위부와 똑같이 올방자를 틀고 앉아서 움직이지 못하게 합니다. 한 번은 임신부 한 분하고 할머니 한 분이 앉아 있다가 너무 힘들어서 벽에 기대앉았습니다. 기대앉았다고 해서 군인들 20명 데리고 와서 고무 곤봉으로 사정없이 다 때렸습니다. 그렇게 또 맞고, 억울해서 울고 또 첫째도 둘째도 제일 보기가 딱하고 가슴 아픈 게 아이 어머니입니다. 아이는 중국 아이라고 아이를 않고 들어오면 아버지를 불러서 강제로 아이를 뺏어 내 갑니다. 그때 그 어머니가 아이를 젖 한 번만 더 먹이고 데려가게 해 달라고 사정을 하고 군대는 안 된다면서 아이를 빼앗아 가고 그러면서 엄마가 울고 나면 전 감방에 30-40 탈북자가 다 같이 앉아 흘쩍흘쩍 웁니다. 왜 우리는 여자로 태어났느냐! 그것보다도 제가 말하고 싶은 더 정확한 말은 왜 북한 여자로 태어났느냐! 그게 가슴 아팠습니다. 그렇게 아이가 나가고 나면 젖이 불어서 그걸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또 염증이 와서 그렇게 아파 병원에 가게 해 달라고 해도 벙원도 안 보냅니다.
중국에서 북한 여성들의 고통은 이중 삼중고로 죽음에서 살아남아 자유를 찾는다고 말한다.
조진혜: 정말 여자들이 겪는 고통은 말로 할 수 없습니다. 중국에서 살아 보겠다고 중국에 왔는데 여기저기 돈벌이처럼 인신매매로 팔려 다니다가, 결국 잡혀 들어오면 그렇게 모욕을 당하고 수치를 당하고 고문당하다가 북송되면 나라를 배반했다는 죄로 중국 가서 더럽게 팔려 다녔다는 이유로 개 취급을 당합니다. 그러다가 감옥에 가고 그러다가 허약이 걸리고 설사만 나면 그만 굶어서 허약으로 죽습니다. 그게 탈북자들이 겪고 있는 사실입니다.
자유아시아방송 세계의 한국인 오늘은 재미 탈북인 조진혜 씨의 증언 ‘중국 감옥에서 남자 간수 탈북 여성 몸 검사 치욕이에요.’를 함께했다.
조진혜 씨는 이렇게 들려준다. ‘남자 교관이 들어와서 여자의 몸수색을 한다. 그 사람들 한국말을 배워 한다는 말이 ‘나 장가갔어.’ 그러니까 ‘괜찮아.’라고 말을 하고 몸 검색을 한단다.’ ‘참 그럴 때 정말 수치스러워요. 탈북 여성들 옷 못 벗겠다고 항의하면 곤봉으로 사정없이 때려요’. 이것이 중국 감옥에서의 비극적인 현실이다.
자유아시아방송 세계의 한국인 오늘은 재미 탈북인 조진혜 씨의 증언 ‘중국 감옥에서 남자 간수 탈북 여성 몸 검사 치욕이에요.’를 함께한다.
조지혜 씨는 중국에 탈북한 후 산속에 숨어 살다 우연히 시골 교회를 발견했고 이 세상 태어나서 처음으로 기독교를 접하게 된다. 그녀는 교회당에 들어가 처음으로 듣는 피아노 찬양소리에 눈물을 쏟아 냈다고 한다.
조진혜: 제가 하나님을 믿게 된 것은 어느 날인가 혼자서 산에서 내려와 어떤 집을 지나가다가 작은 시골 교회 하나를 발견했어요. 그 앞을 지나가려는 데 노랫소리가 울려 나오는 데 피아노 반주 소리가 너무 가슴을 울렸어요. 그래서 앉아서 그 소리를 듣고 있다가 어떤 할머니가 나오셔서 같이 들어가자고 해서, 할머니 저는 무서워서 못 들어가겠습니다 하니까 할머니가 하시는 이야기가 여기는 버림받고 세상에서 상처받고 그런 분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에 무서워 안 해도 된다. 같이 들어가자 해서 할머니 따라 들어갔고 한 시간 동안을 계속 울었어요. 그냥 그 피아노 소리에 그렇게 하나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을 영접하기까지 한 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는데요.
조진혜 씨는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성경을 읽는 기쁨도 맛보았다.
조진혜: 그 후 교회 집사님이 저희를 불쌍히 여겼는지 아는 전도사님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그 전도사님은 탈북자 어린이들을 키워서 복음으로 무장시켜서 북한에 가서 전도할 수 있게끔 보내고, 또한, 중국에서 믿음 생활 잘할 수 있게 도와주시는 그런 사명을 갖고 사역하시는 분이었어요. 그래 그 집에 가서 동생하고 같이 생활하게 됐는데 어느 날인가 성경을 10장을 읽고 그 내용을 저녁에 알려 달라는 거예요.
조지혜 씨가 한참 학창시절을 보내야 할 나이지만 한글도 제대로 못 배웠다고 회고한다.
조진혜: 그때 당시 나이도 많았지만 제가 한글을 잘 몰랐기 때문에 성경 구절 모르는 글에다 동그라미를 해 놨거든요. 그런데 저녁에 전도사 사모가 오셔서 하나님 말씀에다 낙서했다고 엄청 혼났어요. 그 후에 사모님이 제가 한글을 몰라서 그런 줄 아시고 세계 지도 뒤편에다 하나님, 예수님, 성경이란 식으로 글을 쓰면서 한글을 배워 주셨어요. 그래 동생과 같이 성경을 보면서 한글을 배웠고요. 그렇게 이곳에서 성경을 암송하고 읽고 쓰고를 1년 6개월 동안 했어요.
조진혜 씨가 4번의 강제북송을 이겨낸 것은 신앙의 힘이라고 말한다.
조진혜: 이곳도 안전하지 못해서 경찰에 들키게 되곤 하니까? 여기보다는 큰 규모인 지하 신학교로 갔는데 탈북자보다는 중국 조선족들을 믿음으로 양성하는 비밀리에 가르쳤어요. 이곳에서도 공부하면서 살다가 언젠가 강제 북송을 당했어요. 아마 강제 북송을 4번 당하면서 살아올 수 있는 요소가 하나님을 정확히 알았고 성경을 자주 보고 쓰면서 그 성경 안에 하나님이 역사 하시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제가 기도를 할 수 있었고 또 그 기도 때문에 저희가 살아서 4번씩이나 다시 재탈북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조진혜 씨가 중국에서 산나물 캐면서도 중국 공안에 잡히지 않으려고 중국어를 공부한 이야기는 한인 여성의 억척같은 삶의 한 부분인 것 같다.
조진혜: 저희가 집에 있으면서 항상 산에 가서 산나물을 뜯고 염소도 기를 때 어머니가 항상 저희에게 다그쳤어요. 중국어 공부를 하라고, 왜냐면 잡히지 않으려면 거리에 나가서라도 한국말보다 중국말을 해야 저들은 탈북자가 아니구나! 이렇게 중국 공안 생각할 수 있게. 중국말을 배우라고 해서 살자니까 중국말을 배웠어요. 항상 저는 천자문을 가방에 넣어 가지고 다니면서 산에서나 어디서나 10자씩 계속 암송하고 읽고 쓰기를 했고, 텔레비전을 봐도 한국말 텔레비전은 못 봤어요. 중국어 배운다고 중국말 영화나 중국말 텔레비전만 봤어요. 그렇게 중국말을 배우면서 성경을 가르치시던 전도사님이 국민학교 1학년부터 6학년까지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를 얻어다 놓으시고 가르쳐 주셨어요. 그러다 보니까 중국말을 잘하게 됐고요. 정말 한국말을 안 하면 조선 사람인 줄 모를 정도로 습득했어요. 지금은 많이 서툴어 졌지만.
조진혜 씨는 중국에서 통역까지 했다는 이야기는 자랑스럽기만 하다.
조진혜: 사회에 나와서 우연하게 한국 분들을 봤는데 시장에서 중국인 한족하고 싸우고 있는데 한국 분은 중국어를 못하니까? 그냥 미안하지만, 돈을 돌려 달라고 하고 중국 사람은 할 말 안 할 말 다하면서 욕을 하는 거예요. 그것을 듣다가 제가 가서 도와 드렸지요. 그게 계기가 되어서 그분을 알게 돼서 그분을 계속 통역해 드렸고 그 후에도 많은 분이 제가 중국말 안다는 것을 알고 탈북자인 줄 모르고 저를 통역원으로 써 주셨어요. 그리고 또 가짜 신분증 같은 게 있었기 때문에 그 신분증을 보여주고 통역원으로 일했지요. 통역원 자격증이 없으니까? 다른 정식 통역원보다는 돈이 적었지만 먹고 사는데 문제없이 돈을 벌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식당에서도 힘들게 일을 하다가도 탈북자라는 게 들통이 나면 월급을 받지도 못하고 잡힐까 봐 달아도 나고 이렇게 살았지만, 중국어를 배울 수 있어서 노력하니까 통역을 하면서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그런 일도 있었어요.
조진혜 씨는 중국말을 배우기 잘했다고 생각한 것은 중국 감옥에 갇힌 후에 일이라고 말한다.
조진혜: 중국에서 2005년도에 윤요한 목사님 저희 가족 30명의 탈북자와 같이 체포돼서 중국 감옥에서 1년 3개월 형을 받고서 있었어요. 그때 중국 경찰들이 탈북자들을 학대하는 그때에 말을 몰라서 그냥 좋게 말했는데 인상을 썼다고 해서 자기를 욕하는 줄 알고 들어와서 때리고, 아니면 규정을 이렇게 지켜서 앉으라고 이야기하는데 탈북자들이 못 알아들었다고 해서 들어와서 때리고, 그럴 때마다 그 사람들을 대변해서 억울하니까 그런 것을 통역할 그런 기회가 있었어요. 그러면서 아는 것이 힘이구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중국말 배운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는데 지금 역시 미국에 와서도 중국말 때문에 회사에 취직하고 일하고 있어요.
조진혜 씨는 영어 잘하기를 소망하고 있단다.
조진혜: 제가 바라고 기도하기는 중국에서처럼 중국말 배웠듯이 영어도 빨리 습득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조진혜 씨가 중국 감옥생활을 증언한다. 탈북 여성의 몸 검사를 남자 교관이 할 때 치욕을 느꼈으며 생리대도 없어 모포를 짤라 사용하지만 걸리면 몽둥이질 당하는 참혹한 인권유린의 현장이라고 말한다.
조진혜: 처음에 들어가면 탈북자들 몸 검사를 합니다. 그래서 중국어를 알면 항의라도 할 수 있는데 중국어를 모르면 남자 교관이 들어와서 여자들의 몸수색을 합니다. 그 사람들이 한국말을 배워 한다는 말이 ‘나 장가갔어.’ 그러니까 ‘괜찮아.’라고 말을 하고 몸 검색을 하거든요. 참 그럴 때 정말 수치스러워요. 그리고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수치심을 가지고, 우리 한국 여자들은 그런 말 들으면 못 벗겠다고 항의를 하곤 하거든요. 그러면 곤봉 가지고 들어와서 사정없이 때려요. 그러면 한참 맞고 방법이 없어서 옷을 벗어야 해요. 그렇게 인권유린을 당하면서 결국은 겉에 내복 하나만 입고 감방으로 들어가요. 감방 안에 들어가면 담요 하나씩 주는데 제일 거기서 당황하는 게, 제가 지금 말을 옮기기는 참 창피하지만, 그래도 탈북자 여자들이 어떻게 인권유린을 당하는지를 이야기 해야 하니까? 얘기를 드리지만, 생리대 같은 것을 전혀 제공해 주지 않아요. 그래서 참다못해 방법이 없으면 옷을 찢었으면 좋겠는데 찢을 옷도 없이 여 별도 없이 들여 보냅니다. 결국, 방법이 없어서 그 더러운 거기 몇 년 동안 몇천 명이 들락 달락 하면서 쓰는 그 담요를 찢어서 여자들이 사용합니다. 그러면 간수가 들어와서 몸수색하면서 방 검사를 하다가 담요가 찢겨 있는 것을 발견했거나 담요 조각을 발견하면 사정없이 때립니다. 온몸이 퍼렇게 멍들고 얼굴이 띵띵 부어서 밥도 먹지 못할 정도로 맞아야 합니다.
조진혜 씨는 중국 감옥에서 북한 여성들이 겪는 수치는 말로 형용할 수 없다면서 단식 투쟁도 했다고 들려준다.
조진혜: 처음에는 들어가서 저도 무서워서 계속 가만히 있었지만 3-4개월 있는 다음부터 너무 화가 나는 거예요. 그래서 거기서 탈북자 7명 하고 죽기를 각오하고 단식투쟁을 했습니다. 일주일씩 단식 투쟁을 하면서 그 사람들한테 막 싸웠어요. 당신은 엄마 배에서 나온 사람이 아니고 당신의 누나도 당신 집에는 여자라는 사람이 없느냐! 생리적으로 여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도 너희는 모르느냐! 그렇게 싸우면서 이런 것은 제공해달라! 라고 싸우면 너의 북한에서는 해결해 주니! 너의 감옥에서도 해결해 주지 않을 그때는 왜 단식투쟁을 못하면서 여기서 하니! 그러고 또 때려요. 그러면 또 맞고, 밥 안 먹고 그냥 단식투쟁 또 하고 결국 그렇게 돼서 산포를 얻어 가지면 찢어 나누어 가지고 그렇게 북한여자들이 중국 감옥에서 있으면서 당하는 수치스러운 그런 생활을 보냅니다.
조진혜 씨가 들려주는 중국 감옥에서의 음식 이야기다.
조진혜: 가을이 되면 가을 쌀을 탈곡하고 좋은 쌀을 거두어 간 후 그 묵지, 흙이 썩이고 돌이 섞이고 쥐 짐승 똥이 섞인 그런 쌀 묵지를 물에다 대충 버무려서 쪄서 줍니다. 그러면 나무 꼬챙이 돌이랑 썩여 들어오는 밥을 앉아서 알알이 골라 먹어야 합니다. 그리고 70-80명이 되는 탈북자들이 갇혀 있는데 거기다가 큰 솥에다 물을 가득 붓고 그 물도 본인들이 손 씻던 그런 물탱크의 더러운 물을 그냥 퍼서 소금 쏟아 넣고 배추 한 포기 밭에서 뽑아서 씻지도 않고 썰어서 넣습니다. 그러면 그 국이 들어오면은 무언가 떠 있고 거품이 떠있는 그런 국물을 줍니다. 처음에 들어와서는 한 3일씩 굶습니다. 먹지를 못해서요. 그러다가 한 3일 되면 하도 굶어서 배고프니까? 방법 없이 밥알을 세더라도 먹고 그러다가 며칠 걸러서 두 주씩 되면 허약들이 와서 힘이 없어 일어나지를 못합니다.
조진혜 씨가 들려주는 중국 감방 생활의 이야기는 슬프고 비참하다.
조진혜: 규정대로 온종일 앉아 있어야 하는데 보위부와 똑같이 올방자를 틀고 앉아서 움직이지 못하게 합니다. 한 번은 임신부 한 분하고 할머니 한 분이 앉아 있다가 너무 힘들어서 벽에 기대앉았습니다. 기대앉았다고 해서 군인들 20명 데리고 와서 고무 곤봉으로 사정없이 다 때렸습니다. 그렇게 또 맞고, 억울해서 울고 또 첫째도 둘째도 제일 보기가 딱하고 가슴 아픈 게 아이 어머니입니다. 아이는 중국 아이라고 아이를 않고 들어오면 아버지를 불러서 강제로 아이를 뺏어 내 갑니다. 그때 그 어머니가 아이를 젖 한 번만 더 먹이고 데려가게 해 달라고 사정을 하고 군대는 안 된다면서 아이를 빼앗아 가고 그러면서 엄마가 울고 나면 전 감방에 30-40 탈북자가 다 같이 앉아 흘쩍흘쩍 웁니다. 왜 우리는 여자로 태어났느냐! 그것보다도 제가 말하고 싶은 더 정확한 말은 왜 북한 여자로 태어났느냐! 그게 가슴 아팠습니다. 그렇게 아이가 나가고 나면 젖이 불어서 그걸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또 염증이 와서 그렇게 아파 병원에 가게 해 달라고 해도 벙원도 안 보냅니다.
중국에서 북한 여성들의 고통은 이중 삼중고로 죽음에서 살아남아 자유를 찾는다고 말한다.
조진혜: 정말 여자들이 겪는 고통은 말로 할 수 없습니다. 중국에서 살아 보겠다고 중국에 왔는데 여기저기 돈벌이처럼 인신매매로 팔려 다니다가, 결국 잡혀 들어오면 그렇게 모욕을 당하고 수치를 당하고 고문당하다가 북송되면 나라를 배반했다는 죄로 중국 가서 더럽게 팔려 다녔다는 이유로 개 취급을 당합니다. 그러다가 감옥에 가고 그러다가 허약이 걸리고 설사만 나면 그만 굶어서 허약으로 죽습니다. 그게 탈북자들이 겪고 있는 사실입니다.
자유아시아방송 세계의 한국인 오늘은 재미 탈북인 조진혜 씨의 증언 ‘중국 감옥에서 남자 간수 탈북 여성 몸 검사 치욕이에요.’를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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