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풍 :: 2016/11 글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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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통일 맘 연합회’ 회원 3명이 지난 23일 미국 방문 중에 한인들이 많이 사는 버지니아에서 한인들과 간담회를 갖고 ‘중국에서 인신매매 당하고 있는 탈북 여성들의 끔찍하고 처참한 상황’을 알렸습니다. 통일 맘 연합 대표단의 이번 미국 방문한 주제는 '내아이 안고 싶어요'였습니다.

25일에는 자유아시아방송을 방문해 ‘통일 맘 연합회’ 설립 취지와 앞으로 활동 방향을 소개했으며, ‘탈북 여성들이 처음에는 중국으로 갔다가 한국행을 택하고 있는데 이 중 많은 탈북 여성들이 강제 북송이 두려워 자식과 생이별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이 단체 김정아 통일 맘 연합회 대표는 다음 달 4일까지 미 국무부와 의회 그리고 샤만다 파워 유엔주재 미국대사를 만나며, 하버드와 예일, 조지타운 대 등 미국의 5개 대학에서 ‘제3국의 북한 여성들이 겪는 열악한 인권 상황을 증언할’ 것이며 또한 이번 미국 방문 기간 동안 국제사회가 ‘북한 여성들의 인권향상에 앞장서 주길 당부하고 있다’고 자유아시아방송과 회견에서 밝혔습니다.

 

목요대담 오늘은 통일 맘 연합회 김정아 대표로부터 통일 맘 단체의 이모저모 활동과 미국에서의 활동 이야기로 함께합니다.

 

한국서 탈북 여성 권익옹호단체로 열심히 활동하는 ‘통일 맘 연합회’가 발족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습니까?

 

: 통일 맘은 2015년도 발족했습니다. 2015년에 통일 맘 기자단으로 시작했고요. 우리 통일 맘의 로고가 한복을 입은 여성이 아이를 안고 있는 한반도의 모형을 그린 것이 저희의 로고입니다. 그만큼 우리는 통일을 원하고 그 통일의 가장 핵심 역할을 할 수 있는 탈북 여성들의 인권 문제 향상을 위해서 노력하자는 것인데, 제3국에서 잃은 자녀 찾기 운동, 탈북 여성들이 제3국에서 낳은 그 자녀들을 찾아주는 그런 운동을 내걸고 있는데 한국 사회가 아직 그 문제를 받아주기에는 너무 냉담합니다. 그래서 그 문제에 많은 애로사항을 겪었고.

 

한국정부나 한국 언론들은 제3국에서 탈북 여성이 낳은 아이들과 생이별한 상황이나 또는 통일 맘 연합회 발족에 대한 반응은 어떻습니까?

 

: 통일 맘 연합을 구성해서 다시 올해 4월에 기자회견도 했지만, 기자 회견을 할 당시에는 모든 언론사 많은 기사들이 한80-100건 정도 가사가 나갔지만, 그 기사가 나갈 때 뿐입니다. 그 이후에 어느 곳에서나 우리 통일 맘을 도와주겠다고 요청 들어온 것도 없고 후원조차도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그런 문제를 보면서 한국 사회에서의 탈북 여성들이 제3국에서 잃어버린 아이를 찾는 문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체험하고 또 한국정부 자체가 중국 정부와 외교적인 문제가 갖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통과된 북한인권법에 탈북자들을 지원하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탈북 여성들이 탈북 과정에서 중국인과 사이에 낳은 아이 문제는 큰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데 해결하는 방법 등은 없는지요.

 

: 특히 이번에 대한민국에서 통과된 북한인권법 자체도 보게 되면 북한 안에 살고 있는 북한 주민들과 대한민국에 와 있는 탈북자들에 한해서 북한인권법이 지원이 가능하다고 되어 있지 제3국에 있는 탈북자는 거기서 다 빠져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그것은 우리가 대한민국 안에서의 제3국에 있는 자녀를 찾는 문제는 한계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중국 당국 자체도 한국 정부에서 요구하는 것과 미국이나 유엔, 국제사회에서 요구하는 그 압박이 분명히 다르다는 것이지요.

 

특별히 미국까지 와서 통일 맘 활동하시게 된 이야기 들려 주시죠.

 

: 한국정부가 탈북 여성들의 아이들 문제 해결해달라! 요청하면 외교적인 문제가 많이 발생하고 그러나 미국 당국이나 유엔에서 직접적으로 중국에 있는 탈북 여성들의 인권상황 문제라든가 탈북 여성들의 문제를 직접 요구한다거나 법안을 발의하면 그것은 분명히 효과가 다르다는 겁니다. 그것을 저희는 원하기 때문에 한국에서의 활동의 제한성을 보고 국제사회에 나와서 이런 문제들을 알리려고 미국행을 선택한 것입니다.

 

통일 맘 회원 3명이 미국에서 어떤 활동을 하게 되는지 설명해 주세요.

 

: 버지니아대학, 조지타운대학, 예일대학, 웨슬리대학, 하버드대학 등 대학가들을 다니면서 인권 증언하고 있고요. 정부 기관으로는 미 국무부, 국회, 유엔 그리고 샤만다 파워 유엔주재 미국대사 단독 면담, 미 국회의원 보좌관들에게 브리핑을 잡았는데요. 모든 것은 우리 단체의 대외적인 행정 절차와 법안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통일 맘 연합회는 국제 사회를 향해 호소문을 작성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내용을 담았는지 소개해 주세요.

 

: 한국과 중국 정부, UN과 국제사회에 협조를 바랍니다. 첫째, 중국 내의 탈북 여성들에게 중국인과 결혼하여 아이를 낳으면 엄마와 아이의 인권을 위하여 정당한 호적을 올려줄 것을 촉구한다. 둘째, 현재 한국 국적을 가진 탈북 여성들은 중국에 있는 자녀에 대한 부모로서의 정당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인도주의적 조치를 하여 줄 것을 촉구한다. 셋째, 현재 중국에서 살고 있는 탈북 여성들 자녀에게 부모 중 누구와 살겠는지 의사를 물어보고 아이들이 어머니를 선택할 경우 아이들의 의사에 따라 양육권을 가질 수 있도록 법적, 제도적으로 보장해 줄 것을 촉구한다.

 

국제 인권 단체 등에서 큰 도움을 줄 것을 바라고 계실 텐데 어떤 기대를 하고 계십니까?

 

: 이 호소문의 효과가 분명 상당이 크리라고 봅니다. 이 호소문에 내용들은 솔직히 전 세계 어디에나 부부가 이혼하게 되면 이혼한 부부에게 당연하게 차려진 권리들입니다. 그 당연한 권리를 우리 탈북 여성들만은 엄마로서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는 것이 가장 비극적인 문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탈북자 사회에서 또 하나의 큰 사회문제로 탈북 여성들이 해외에서 낳은 아이들 통계가 나와 있습니까?

:  지금 현재 중국이 통계한 숫자는 제3국에 떠도는 탈북자는 30만 명 정도 추정하는 걸로 알고요. 탈북 여성들이 낳은 아이들만은 5-10만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올해 미국까지 와서 국제적인 활동을 하고 계시는데 내년에 통일 맘 연합회가 할 주요한 행사가 있으면 전해 주세요.

 

: 내년에 통일 맘 연합에서 추진하려는 ‘내 아이 안고 싶어요.’라는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100명의 탈북 여성들 위주로 중국 현지에서 자녀를 잃어버린 상황, 중국에서 현재 자녀를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 또 그 자녀를 만나기 위해서 본인이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등 이런 문제를 저희가 찾아내고 발굴해서 그 자료들을 하나로 묶어서 북한인권기록소에 그 자료를 제출하고 유엔에도 그 자료를 제출함으로써 우리가 국제사회에 이 문제의 심각성을 제대로 알리고 그 문제의 알리는 것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저희에 대한 많은 도움을 받고 법안도 발의해서 중국 정부가 아무리 반대 하드래도 중국에 있는 양심 있는 인사들과 인권운동가들, 그리고 중국의 네티즌들을 움직여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으로 끌고 나가고 있습니다.

 

국제인권 단체에 꼭 전하고 싶은 말은?

 

: 국제 인권 단체나 유엔을 비롯한 모든 분들에게 꼭 한 말씀만 드린다면 엄마와 아이는 천륜입니다. 그 천륜을 끊을 수는 없습니다. 아이들만 생각해 주십요. 아이들이 꼭 엄마의 사랑을 받으면서 살수 있게 우리가 부끄러운 엄마가 아니라 나쁜 엄마가 아니라 정말 당당한 엄마로서 엄마 구실을 할 수 있게끔 도와 주십요.

 

목요대담 오늘은 통일 맘 연합회 김정아 대표로부터 통일 맘 단체의 이모저모 활동과 미국에서의 활동 이야기로 함께했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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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학 대표가 버지니아 한인들 모임에 참석 한미자유연맹 강필원 총제와 함께하고 있다.
박상학 대표가 버지니아 한인들 모임에 참석 한미자유연맹 강필원 총제와 함께하고 있다.
사진: 헨리 송 제공

매년 오슬로 프리덤포럼을 개최해온 미국 인권재단이 올해 창립 10주년 기념행사를 지난 9월 29일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했습니다. 다른 탈북인 4명과 함께 이 행사에 참가한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는 특별히 샌프란시스코 뉴욕 뉴저지 필라델피아 그리고 워싱턴 디시와 버지니아를 방문해 동포들과의 대화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박상학 대표는 이번 미국 방문에서 풍선 사역 10여 년 만에 처음으로 동포들에게 풍선 사역에 대해 설명할 기회를 가졌다면서 미주 동포들의 성원에 깊이 감사를 드린다고 자유아시아방송과 회견에서 밝혔습니다.

목요대담 오늘은 자유북한운동연합 박상학 대표를 만나 봅니다.

지난 9월 말부터 10월 초까지 미국에서 풍선 사역에 대해 재미동포들 만남을 가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미국 어디 어디 방문하셨습니까?

: 미국 인권재단(HUMAN RIGHTS FOUNDATION) 초청으로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했습니다. 한 3일 있다가 대학과 한인교회에서 간증했고요. 뉴욕, 뉴저지, 필라델피아 지역에서도 교회와 한인사회에서 대북전단에 대해 관심을 가져 주십사. 또 대북전단 보낼 때 1달러짜리 지폐 넣어서 보내지 않습니까? 북한주민들을 경제적으로 돕기 위해서요. 동포들에게 호소하기 위해서요. 우리에게는 1달러짜리가 크지 않겠지만, 북한인민에게는 엄청나게 중요하고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는 거다. 그래 쭉 호소하면서 1달러 전단에 넣을 1달러 모으기 운동을 펼치면서 워싱턴까지 왔습니다.

이번 미국 방문에서 얻은 성과가 있다면 소개해 주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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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학 대표가 버지니아에서 열린 송벽 작가 전시회장을 찾았다. 사진: 헨리 송 제공 Photo: RFA

 

: 제가 지난 10여 년 동안 대북 전단 보내면서 미주교포들에게 처음으로 직접 다가서서 대북전단에 대한 성원과 후원을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상상외로 한국에서 보다도 미주교포분들이 더 애국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 너무 놀랬고요. 적극적으로 대북전단 보내는 박상학이 와서 무슨 소리 하나 들으러 왔다가 다 지갑을 열고 도와주셨습니다. 너무 감사드리고요. 이미 썩 전에 1년에 한 번씩이라도 미주 교포사회를 다니면서 호소했으면 좋았을 걸! 제가 처음 했거든요. 너무 감사하고요. 정말 대한민국 국민들 미주 교포 분들에게 창피한 줄 알아야겠습니다. 북한은 5차 핵실험에 이어 미사일 실험을 계속하는데 김정은은 핵과 미사일을 자기 어린 시절 장난감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대한민국과 국제사회를 위협하고 있는데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안보 위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들 일부는 안보 불감증에 걸려서요. 정말 정신 바짝 차려야 하거든요. 이런 반인륜적인 범죄자 핵과 미사일로 8,000만 민족의 머리 위에 핵폭탄 터뜨리려는 (박근혜 대통령의 말처럼 김정은의 정신 상태는 통제 불능이라고 했습니다.) 이건 어떻게 말릴 사람도 없습니다. 안보위기인데 이럴 때일수록 북한인민들에게 호소해야 합니다. 핵과 미사일로 국제사회를 위협하는 김정은이는 정말 반인륜 범죄자다. 심지어 국제형사재판소에 회부되어 있다. 자비로운 인민의 지도자가 아니고 이미 모든 것을 빼앗은 도둑이다. 야만인이다. 이런 걸 북한인민에게 알려야 할 사명과 의무가 있기 때문에 여기까지 와서 대북 전단 후원 활동을 하고 가려고 합니다.

풍선 날리기로 북한주민들에게 많은 정보 보내셨는데 어떤 성과가 있었는지요.

:  10년 이상 대북전단을 보내고 있는데요. 서울에 탈북민들이 3만 명이 살고 있습니다. 북한 인민들이 아시면 깜짝 놀랄 것입니다. 3만 명이지만은 실제 우리가 보낸 대북전단을 봤다. 주웠다는 하신 분들이 700여 명이 지난 기간 저를 찾아오거나 전화로 격려했습니다. 계속 보내야된다고요. 자기도 보고 엄청 놀랐는데 거기서 특히 탈북자들의 전위대 자유북한운동연합이나 인민해방전선이라고 쓴 게 너무나 가슴을 찌르더라, 마음에 와 닿더라! 불과 20일 전에 양강도 자강도 지역에서 엄청난 홍수 피해가 났지 않습니까? 고향 이야기 들으니까요? 7만 채 집이 떠내려가고요. 3천 명 이상의 북한주민들이 홍수로 인해 죽었습니다. 그 시각에 김정은은 뭘 했느냐면은 5차 핵실험 하고 파티를 열었습니다. 박수 치고 있고요. 그게 북한의 민 낮입니다. 우리 자유북한운동연합은 뭐 김정은이 핵실험 하든, 미사일로 위협을 할수록 더 북한주민들에게 사실과 진실을 알리는 전단을 보내야합니다.

특별히 대북전단을 북한에 보내야 할 이유도 설명해 주세요.

이런 대북전단, USB, DVD, SD카드 휴대용 라디오 등 북한에 정보가 될만한 모든 것을 끊임없이 들여보내야 하거든요. 거짓과 위선에 눈과 귀가 먼 북한주민들에게 외부 소식을 전하는 게 그분들에게 빛을 주는 그 수령 독재를 무너뜨릴 수 있는 실제적 능력은 북한주민들에게 있으니까? 그분들을 불러서 그분들이 일어나야 북한이 수령독재가 붕괴되거든요. 그런 차원에서 우리 탈북자들은 누기 뭐라고 해도 전단 보내는 것은 우리 탈북자들의 최소한 양심이고, 사명과 의무이기 때문에 누가 뭐라 건 북한인민 수혜자에게 계속 보내야 되겠지요.

최근에는 어떤 내용의 삐라 보내시는지!

: 이승만 박정희 박근혜 대통령하고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사진을 양쪽에 실은 대북 전단이 있습니다. 왜냐면 북한은 수령이 가장 위대하고 신격화되어 있고 절대화되어 있고 우상화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그걸 통해서 진정으로 우리 민족을 위해서 국민을 위해서 희생하고 노력하고 헌신한 사람이 누구냐! 하는 걸 북한주민에게 바로 알려주기 위해서 그 전단을 계속 보내고 있는 겁니다. 판단은 북한주민들이 할 거거든요. 왜 이 전단을 보내느냐 면은 그 모든 악의 범죄의 근원, 북한인민들에게 모든 그 반인륜적인 인권행위를 가한 건 가해자는 바로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이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탈북자들은, 김정은을 비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그 전단을 바로 김정은을 비판하는 전단을 가장 많이 보내고 있습니다.

북한주민이 직접 삐라 주웠다는 분의 이야기도 전해 주세요.

: 작년, 재작년에 탈북한 평안북도 향산군에서 오신 분이 있습니다. 향산이라면 김일성 김정일이 외국의 수반으로부터 엄청난 선물을 받았다. 그래 국제친선전람관이 있는 유명한 곳입니다. 그러니까 평안북도 향산군에서 까지 그리고 묘향산까지 떨어졌고요. 동쪽 지역에서는 함흥 홍원을 지나서 김책서 오신 분이 금년에 저를 찾아왔습니다. 김책시에도 떨어졌다. 옛날에 말하면 함경북도 성진 시지요. 금년 3-4월에 북한에서 전단을 많이 보냈는데 그건 대남 전단이라고 합니다. 그쪽에서 보낸 것이 대구에도 떨어졌고요. 아마 비슷하게 가는 것 같습니다.

목요대담 오늘은 한국에서 북한에 풍선 사역을 하는 자유북한운동연합 박상학 대표를 만나 봤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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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의회 전시에서 송벽 작가가 로버트 킹 북한인권특사와 함께하고 있다.
미국 의회 전시에서 송벽 작가가 로버트 킹 북한인권특사와 함께하고 있다.
사진 제공- 헨리 송

탈북화가 송벽 씨는 지난 10월 6일부터 7일까지 미국 의회와 버지니아 한인타운 일원에서 자신의 작품을 통해 북한 인권상황을 알렸으며, 특히 국회 전시에서 미 국무부 로버트 킹 북한인권특사가 북한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점, 북한 주민의 아픔과 서러움 등이 송벽 작가의 작품을 통해 더 많이 알려지기를 바라는 축사에 더욱 감동 받았다고 자유아시아방송과 회견에서 밝혔습니다. 송벽 씨는 3대 세습에서 몸부림치며 절망 속에서 사는 북한 주민의 아픔이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 작품 활동을 계속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목요대담 오늘은 탈북화가 송벽 씨의 미국서 그림 전시회 소식으로 함께합니다.

이번에 워싱톤에서 한인들과 특히 젊은이들도 많이 만났는데 워싱톤서 활동한 이야기 들려주시지요.

: 저도 많이 놀랐습니다. 미국 국회까지 가서 전시회를 할 줄 몰랐거든요. 미국 국무부 로버트 킹 북한인권특사와 연락이 되어서, 킹 특사가 이왕이면 미국 국회에서 전시를 해야 되지 않느냐! 하시면서 전시 장소를 마련해 주셨어요. 그래 제 작품들을 미 국회에서 전시하면서 느낀 것은요. 얼마나 국회의원들 많습니까? 그분들이 지나다가 보고 아! 북한주민의 삶이 이렇다고 생각할 거고요. 로버트 킹 대사님이 축사에서도 현실적으로 북한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점, 북한주민들의 아픔, 서러움 등을 송벽 작가의 작품을 통해 많이 알아가기를 바란다고 말씀하실 때 저는 감동을 많이 받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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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벽 작가의 지난 10월 7일 버지니아 전시회에 외국인 젊은이들도 참가했다. RFA PHOTO/이현기

 

송벽 작가는 미국 전시회에서 관객들에게 어떤 마음을 전하셨는지 궁금합니다.

: 그래 호소 하고 싶은 것은 지금 북한주민들의 절박함, 고난의 행군 시기다 해서 300만 명이 먹지 못해, 배고픔에 지쳐서 생을 마감했는데 그 영혼들이 그 하늘에서 얼마나 비참해하고 원통해하겠습니까? 그것을 내가 지금 북한주민들의 아픔 마음을 대신해 김정은 독재 정권을 빨리 끝장내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싶다고 말씀을 전했어요.

탈북 화가로서 자신이 할 일이 있다면 설명해 주세요.

: 현재까지 3대 세습이 이뤄지면서 그 폭압에서 얼마나 몸부림치고 얼마나 절망 속에서 살고 있는지 나는 미 국회에서 호소했고, 송벽 전시회가 문제가 아니라 송벽을 통해서 북한 주민의 아픔을 전하고 싶은 거지요. 그것이 저는 저의 생을 다할 때까지 할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 전시회에서 송벽 작가 동포들 만남이 있었는데 특히 2세 3세들도 만났다고요.

: 저도 많이 놀란 것은 내가 해외전시회를 진행하고 한국 들어갈 때마다 조금 안타까웠어요. 내가 한국에 왜 들어가나! 같은 동포 같은 민족이지만, 남한의 국민들은 북한에 대해 너무 관심을 안 가지고, 소홀히 하고 이것이 왜 그럴까? 이런 생각도 많이 들었거든요. 제가 해외 전시 독일도 가고 체코 프랑스 등 많은 곳을 다니면서 느낀 것은 특히 미국서 느낀 것은 미국의 한인 2세분들, 남북한의 문제점에 대해서 너무나도 알고 싶어하고, 거기에 대해 대단히 관심이 높아요. 왜 관심이 높은가 하고 생각해 봤더니 자기 부모들 세대의 북한에서의 625동란과 북한에 조상의 뼈가 있고, 북한에 친척이 있다는 아픔, 그것이 미국에 살고 있는 현지 2세 3세 분들이 같이 공감하고 같이 안타까워하고 뭔가 같이 이루려고 하고 이것이 너무나도 저는 가슴에 와 닿고…

내년에도 미국서 전시회를 갖는지요.

: 내년에는 미국 동부 서부에서 전시회를 열려는 계획도 잡고 있고, 같이 합심해서 북한의 김정은 정권이 무너질 때까지 같이 2세 3세 젊은 분들과 힘써 나가려고 생각합니다. 이분들을 통해서 통일의 관문이 한 걸음 한 걸음 닦아온다고 생각됩니다.

미국 전시를 하면서 북한동포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 너무 좋지요. 음악회도 열고 내 작품도 감상하면서 느낀 것은 통일은 얼마 남지 않았구나! 북한주민은 외롭지 않다. 현재 그 암흑 속에서 살지만, 그래도 이런 분들이 있기 때문에 2500만 북한주민은 외롭지 않다. 그것이 내 마음에 와 닿는 거에요. 북한주민들이 앞으로 절망 속에 살고 있지만, 그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하고 그 사람들을 위해서 투쟁하고 그 사람들을 위해서 세계에 더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통일된 후 북한 작가들께 전하고 싶은 것은?

: 그렇게 되면 아마 많이 바쁘겠지요. 이제 평양 들어가서 예술의 중요성 예술이 가지고 있는 힘, 메시지, 북한에선 예술의 자유가 없거든요. 모든 포커스는 그 독재자 중심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내 자유대로, 자기만의 메시지를 전하지 못하거든요. 항상 그 독재체제에서 그 슬픔을 표출하지 못하고, 그 세상의 부름 없이, 인민이 낙원 속에서 사는 모습만 작품화하거든요. 그래서 통일 되면 김정일의 마릴린 먼로 작품과 김정은의 패러디의 작품 이런 것들 전시회를 할 때 얼마나 황당해 할까? 그것을 보여주면서 봐라! 이것이 예술의 자유다. 그런 것을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미국 전시회에 선보인 작품들 중에서 특별히 소개하고 싶은 작품은요.

: 70억명이 살고 있는 이 지구상에서 왜 북한 인민들만 3대 세습 속에서 자기의 존엄성, 자기의 인권 자체를 모르고 살아야 되는지에 대해서 뉴욕 시민들과 함께 소통하는 자리를 위해 전시회를 했고요. 이번에 15작품 전시했습니다. 주로 김정은이 코카콜라를 들고 좋아하는 모습, 이번에 주 제작 이거거든요. 그런데 그 사람만 왜 외국에 대해서 좋아하고 자기만 즐기고 기타 나머지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 거에요. 간부들도 잠깐 잘못하면 기관총으로 싸 갈기고 공포 정치를 실시하고 있거든요. 나는 이번 김정은이를 패러디의 그림으로서 정신 좀 차려라! 제발 정신 좀 차려서 민생을 돌봐라! 그것을 저는 북한정부에다 보내는 하나의 메시지입니다. 그래 마릴린 먼로 작품에 그전에는 김정일을 넣었지만, 지금은 김정은을 넣어서 작년 10월 독일 통합 25주년 맞으면서 독일에서 첫 선을 보였습니다.

송벽 작가가 북한에서 겪은 증언이 있다면서요.

: 제가 북한에서 30년 가까이 살았기 때문에 그 고통은 누구보다 잘 알거든요. 자유, 자기의 존엄성, 이 자체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는데 저도 수용소 생활을 겪고 감옥생활도 수없이 겪으면서 놓치지 않는 것이 희망의 끈이거든요. 그 희망의 끈을 놓치지 마시고 끈질기게 악착스럽게 붙잡고 김정은 독재 정권이 무너지는 그날까지 희망을 잃지 마시고 굳건하게 버텨주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목요대담 오늘은 탈북화가 송벽 씨의 미국서 북한 인권상황 증언과 그림 전시회 소식으로 함께했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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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벽 작가가 지난 10월 7일 버지니아 한 식당에서 동포들이 참가하는 전시회를 가졌다.
송벽 작가가 지난 10월 7일 버지니아 한 식당에서 동포들이 참가하는 전시회를 가졌다.
RFA PHOTO/이현기

탈북화가 송벽 씨는 제71차 유엔총회가 열리는 기간에 미 국무부가 주관해 미국과 한국, 일본 뉴질랜드 4개국 외교부가 공동으로 마련한 ‘외부 정보 유입의 영향력’이란 주제의 북한인권관련 행사 참석차 뉴욕을 방문했다고 자유아시아방송과 회견에서 밝혔습니다. 송 씨는 이번 뉴욕 행사에서 자신 가정의 이야기를 소개해 북한인권의 한 단면을 증언했으며 ‘북한 사람들의 안타까운 현실, 처참한 삶, 자유가 무언지도 모르고 사는 북한인민들을 하루 빨리 구원해달라’고 호소했다고 전했습니다.

목요대담 오늘은 탈북화가 송벽 씨의 미국 방문 이야기로 함께합니다.

제71차 유엔총회 기간 북한인권관련 행사에 참가하셨는데 미국 한국 일본 뉴질랜드 외교관들이 참가했다고 들었습니다.

: 뉴욕에 온 것은 유엔에 행사 참석차 왔습니다. 이 행사는 미 국무부가 주관한 행사인데요. 미 국무부의 토니 블링큰 부장관님이 참석하고요. 톰 말리노스키 민주주의 인권 노동 담당 차관보님도 오셨어요. 그날 북한 자유에 대해 이야기 하고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제 작품 하나 하나 설명해 드렸는데요. 이 자리를 빌려 말씀 드리고 싶은 게 있다고 말했습니다. 바로 ‘북한 사람들의 안타까운 현실, 그 처절한 삶, 자유가 무언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그들을 하루빨리 구원해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그리고 또 그 행사가 끝나고 다른 장소로 이동해서 9월 26일부터 29일까지 전시회를 가졌습니다.

이번 뉴욕 행사에 왜 초대됐다고 생각하십니까?

: 네 미 국무부에서 초대했고, 그리고 이번 기회를 통해서 세계에다 북한인권상황을 작품으로서 알려지기를 바라는 바램에 저를 초대한 것 같습니다.

어떤 분들이 참석했습니까? 그리고 어떤 내용을 증언하셨는지요.

: 일본 인권 담당자들도 왔고 미 국부부 부장관님도 오셨고요. 사실 증언 내용은 저희 가족사를 이야기 했어요. 이 세상에서 제일 서러운 것은 배고픔의 서러움인데 북한 사회는 아직 배부림을 못 누리고 사는 사회다. 그 진짜 한 끼 한 끼를 위해서 처절하게 살고 있는 북한사람들에 대해서 그걸 이야기 하고 싶었어요. 그래 저희 가족이야기하고 제가 이제 북한을 탈출하다 아버지를 여의고 수용소 생활을 겪은 걸 잠시 이야기해 드렸고, 우리 가정뿐만 아니라 그 얼마나 수많은 사람들이 사연이 많겠어요. 거의 300만 명이 굶어 죽고 그 가족이 굶주림에 쓰려져 지날 갈 때 그 모습을 지켜보는 형제 부모는 오죽해했겠습니까? 그분들이 중국으로 탈출하고 두만강에 빠져 죽고, 저의 가족의 실례를 들어가면서 증언을 했거든요. 다시는 이런 일을 벌어지게 하지 말아 달라고요.

이번 행사 참석하고 느낀 점이 있으면 해 주시지요.

: 좋았어요. 다시 한 번 더 같은 인간으로서 신이 인간을 창조했는데 같이 창조된 인간으로서 너무나도 안 된 거지요.

뉴욕 행사에서 송벽 작가의 그림 전시회도 가졌지요.

: 열 다섯 점을 한국에서 가져 왔어요. 그 작품들 주제가 갈망, 북한사람들의 삶, 이번에 또 주제는 포인트가 김정은이가 코카콜라를 좋아하는 모습, 왜 북한인민들은 노예와 같은 삶을 살아야 하며 왜 김정은이는 자기 혼자서 자유를 느끼고 자기 맘대로 먹을 수 있고, 마음대로 사람 죽일 수 있는 그 폭압 정치를 실시하고 있잖아요. 그래 저는 코카콜라 들고 있는 모습을 그림으로써 이 작품이 북한 정부에 특히나 김정은에게 보내는 저의 메시지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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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전시된 송벽 작가의 작품들 맨 오른쪽 사진은 김정은이 코카콜라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 제공: 헨리 송) 사진 제공: 헨리 송

 

뉴욕 전시에서 또 다른 작품들도 소개해 주세요.

: 특히 작품들, 노동 계급이 북한의 주요 신문지인 노동신문을 들고 있는 장면인데 거기에 구호가 있는데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 아니 배고파 죽고 힘들어 죽겠는데 어떻게 웃으면서 가겠습니까? 그러니까 구호 자체가 현재까지 북한에서 통용되거든요. 그렇게 북한주민들을 우롱하고 희롱하거든요. 그리고 우리는 세계적으로 누구도 모시지 못한 3대 장군을 모시고 있다.

즉 그 사람들은 누구인가! 수령복 장군복 대장복 이거든요. 그 구호가 북한 곳곳에 걸려 있어요. 수령 김일성, 장군이라는 김정일, 대장복이라는 게 현재 김정은 이거든요. 그것을 통해서 저는 그 3대 세습, 김씨의 그 3대 세습 때문에 2500만 인민들이 자기의 존엄성, 자기의 인권, 인권이라는 그 자체를 생소하게 만들어 낳거든요. 저는 이것이 너무나 안타깝고 저는 저의 작품을 통해서 세계인들에게 그것을 보여주고 호소하고 싶거든요. 그래서 뉴욕에서 전시회 하면서 세계 여러나라 다니면서도 작품으로서 그걸 호소하고 있습니다.

송벽작가는 그동안 미국을 비롯해서 해외에서 여러차례 전시회를 가졌는데 전시회 가질 때 어떤 마음 자세로 전시회를 갖습니까?

: 해외 전시를 할때마다 저는 꼭 가정의 소중함을 이야기 합니다. 가정이 행복해야 나라가 행복하거든요. 가족이 화목하고 진짜 잘 살아야 그게 강성 대국이에요. 근데 그 가족이 파탄되고 가족이 죽음으로 몰아가고 그것이 현재 북한에서 진행되고 있는 현실이거든요. 그래서 항상 전시회 할 때마다 가족의 소중함, 부모에 대한 소중함을 가슴속 깊이 이번 전시회를 통해서 담아 가길 바란다는 이야기를 항상 합니다.

송벽 작가는 그림으로 북한 인권 상황을 전하는 데 북한동포들에게 주는 이야기 있으면 해 주시지요.

: 저는 이제 지금 자연이 주는 사계절을 우린 만끽하면서 살지 않습니까?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런데 지금 가을 절기 거든요. 자연이 인간에게 풍요로운 낱알을 주거든요. 그런데 세계 여러나라 사람들은 그 풍요로움을 느끼고 자연을 느끼면서 살아 가거든요. 그런데 북한 인민들은 그 풍요로움 조차 자연의 아름다움 조차 누리지 못하고 살고 있습니다. 그래 제가 제일 안타까운 것은 북한인민들도 하루빨리 세계인들과 같이 김정은 이가 신이 아니라 진짜 태양을 바라보고 태양이 주는 그 자연을 만끽하면서 앞으로 꿈을 가지고 그날이 반드시 오리라는 꿈을 가지고 희망을 가지고 살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목요대담 오늘은 탈북화가 송벽 씨의 미국 방문 이야기로 함께 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뉴욕방문에 이어 워싱턴에서의 활동과 전시회 소식으로 함께 합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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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출신 김규민 영화감독이 캐나다 동포들과  자신의 작품 ‘겨울나비’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있다.
탈북자 출신 김규민 영화감독이 캐나다 동포들과 자신의 작품 ‘겨울나비’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있다.
사진 제공: Henry S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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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오타와에서 지난 23일 개최된 제4회 북한인권의 날과 워싱톤 디시 일원에서 지난달 19일부터 28일까지 열린 북한인권영화 ‘빛축제’에 발제자로 참가한 탈북영화감독 김규민 씨는 자신이 만든 겨울 이야기에 관해 캐나다와 미국 관객과의 대화에서 앞으로 북한인권상황을 더 자세히 알 수 있도록 영화를 만들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면서 앞으로 겨울나비 시리즈 5부작을 만들 것이라고 자유아시아방송과 회견에서 밝혔습니다. 김 감독은 자신도 북한에서 라디오를 통해 자유의 소식을 들었고 요즘 탈북한 사람들과 영화제작에 필요한 대담시 역시 라디오를 듣고 외부소식과 자유를 찾게 됐다는 증언도 들었다고 밝혔습니다.

목요대담 오늘은 탈북자 출신 김규민 영화감독과 함께합니다.

이번에 워싱톤에 오게 된 이야기 들려주세요.

: 미국 워싱톤 DC에서 진행되고 있는 북한 인권에 관한, 북한인권과 통일을 주제로 진행되고 있는 빛 축제에 참가하기 위해 왔습니다.

북한인권단체 노체인이 주관한 북한인권영화 빛축제에는 12편의 영화가 상영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일단 지금까지 본 작품만 말씀드리면 일본인 메구미 납치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가 상영이 됐고,  48 M 라든가 북한 인권과 관련된, 북한의 상황을 다루는 단편 영화들이 상영이 됐고요. 대부분 북한인권과 관련된 영화들이 상영되고 있습니다.

영화감독으로서 빛 축제에 참가하셨는데 이렇듯 미국에서 북한인권 영화가 상영되는데 큰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 영화가 갖는 특성이 있거든요. 그 영화를 통해서 사실을 접하게 되면 그것이 좀 더 자세한 기억으로 남고 좀 더 감정적으로 다가오고, 바로 그런 면에서 사람을 통한 증언도 중요하지만, 많은 사람에게 또 오랜 시간에 걸쳐서 여러 사람에게 효과를 미칠 수 있는 것이 영화의 장점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이번 빛 축제를 통해서 워싱톤 디시에 있는 많은 미국인들이 북한 인권 상황에 대해서 좀 더 알게 되지 않을 까 생각합니다.

여러 행사장을 돌면서 패널 발표자로 참여하고 계시는 데 미국인들이나 젊은 층에 북한에 대해 어떤 것을 전해주고 싶었는지요.

: 저는 개인적으로 전달코저 하는 것은 북한 사람도 같은 사람이다. 똑같은 사람인데 단지 북한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전 세계 사람들이 다 누리고 있는 단 한 가지 자유라는 것, 저 아프리카 나라에서도 자기 발로 가고 싶은 곳은 가거든요. 그런데 북한은 안 되지 않습니까? 어쩌면 저는 자유라는 인권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 하고 싶었습니다.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 하고 싶었고, 실제적으로 이야기 했고요. 내 다리 가지고 내가 가고 싶은 곳, 내가 마음껏 갈 수 있는 그런곳 만큼이라도 가야 되지 않겠는가! 이런 것에 대해서 말씀드렸고요. 토론에서 많은 분들이 질문하는게 북한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남북통일이 언제쯤 될까? 통일의 어떤 방향이라든가 등에 관해 토론했습니다.

캐나다도 최근에 다녀 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캐나다에서도 북한인권법이 통과 되도록 활동하셨는데 캐나다 서 활동한 이야기도 들려주세요.

: 캐나다 북한인권협의회에서 초청해서 캐나다 방문했고요. 방문 목적은 지난 9월 28일 캐나다 북한인권의 날 입니다. 그날에 즈음해 제 영화 겨울나비 상영회를 포함해서 캐나다 국회의원들 만나뵙고 캐나다 내에서의 북한인권법 통과라든가,  캐나다에서 북한인권을 위한 활동들을 적극적으로 펼치도록 하는 것, 더불어서 중국 대사관 앞에 가서 현재 중국에 있는 탈북자들에 대한 처우 개선과 강제북송 막기 위한 침묵 시위 등을 하기 위해서 캐나다를 방문했습니다.

캐나다나 미국서 동포들 만나 보시니까? 김규민 감독에게 바라시는 게 있을 것 같습니다. 가령 영화 제작과 관련한 것이라든가요.

: 이번 캐나다 행사 때 겨울나비 영화를 보고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 주셨는데요. 말로 100번 듣는 것 보다 너무 감동적이고 내 마음속에 와 다가 왔다. 지금까지 그렇게 북한인권에 대해서 신경 쓰지 않았던 분들이 갑자기 다음날부터 행사장에 나오시고 그러더라고요. 그리고 이런 영화들을 더 만들어서 많은 사람들이 북한인권에 대해서 알았으면 좋겠다는 말씀들을 하셨습니다.

김규민 감독의 앞으로 활동 방향이랄까? 어떤 영화에 전념하실 계획인지?

: 개인적으로는 겨울나비 시리즈, 제가 북한에서 봤던, 실제로 목격했던 사건들을 위주로 해서 겨울나비 시리즈 5부작 정도를 만들고 싶고요. 그동안 헌신해 주신 분들께 너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고요.

외국에 나와서 보고 느끼 점, 북한 사람들을 생각하며 가슴앓이 하신 일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북한사람이 어떻게 살았으면 또한 어떤 자유가 주어졌으면 하고 바라시는지요.

: 저는 북한이라는 곳에서 북한당국이 다른 것은 빼고라도 마음데로 다닐 수만 있으면 좋겠어요. 그냥 알아서 마음껏 국내나 해외 마음대로 다니며 일해 벌어먹어라고 만 해도 저는 북한주민들 대다수는 먹고 살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떤 이동의 자유, 그것 만큼은 어느 나라를 가든, 가장 느끼는 것이지만, 내가 가고 싶은 곳 마음대로 갈 수 있는 그것 만큼이라도 북한에서 허락 된다면 하는 바람입니다.

최근 탈북자들과 인터뷰에서 겨울나비를 북한에서도 봤다고요. 자신이 만든 영화를 북한에서 봤다는 이야기 들었을 때 소감은?

: 탈북자가 말 하는게 저를 안답니다. 어떻게 아느냐 하니까? 한국에 와서 제 이름을 처 봤답니다. 저를 안다고요. 왜 처봤느냐 헸더니 북한에 있을 때 겨울나비를 봤답니다. 그래 처음에는 거짓말인 줄 알고 그걸 어떻게 보냐! 하니까 진짜로 봤다고해요. 그래 자세히 물어보니까? 실제로 보지 않고는 힘든 장면들을 알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참 뿌듯했습니다.

탈북자들과 인터뷰에서 자유아시아방송을 들었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까?

: 지금 수많은 라디오가 많은데 그 중에 자유아시아방송이라든가 대북방송을 통해서도 많은 정보들을 입수하고 있고 특히 그쪽에서도 저라든가 많은 탈북자분들이 인터뷰 하는 소식을 듣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요즘 들어오는 친구들은 많이 말하더라고요. 저뿐만 아니고 TV에 나오는 친구들도 라디오를 들은 친구들이 많다고 하더라고요. 자유아시아방송인지는 정확히 모르겠고요. 황해도 인근에서 온 사람인데 그 사람 같은 경우는 자유아시아 방송이라고 했나 아무튼 라디오를 많인 들었다고 들었습니다.

김 감독의 탈북 동기는 어디서 시작됐습니까?

: 열 세살 때부터인가 라디오를 들었어요. 왜 들었느냐면 그때 당시 들을 이유는 없었는데 당국에서 라디오 채널을 고정하라는 명령이 내려왔어요. 라디오와 TV 채널을 별다른 것은 아니고 납땜을 해서 돌리지 못하게 한 거였거든요. 그때가 한참 열 세 살 때니까 반항심이 솔솔 돋아오를 때이니까? 다른 방송을 듣어보고 싶더라고요. 뜯고서 듣다 보니까? 한국 라디오를 듣게 됐어요. 그때 들은게 KBS 사회 교육방송을 들었고, 사실은 내용이 좋아서 들은 것보다는 여자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심장을 떨리게 하는 감미로워서였는데 듣다 보니까, 자꾸 시간이 가면서 저도 성장하고 라디오에서 들은 정보도 있고, 그러면서 제가 북한사회를 다른 눈으로 보게 되는 그런 계기가 됐습니다. 어쩌면은 그때 당시 자유아시아방송이 (97년 98년)있었는지 모르겠는데 제가 들었던 것은 KBS 사회교육방송이랑 또 뭔지는 모르겠는데 다이얼을 돌리게 되면 ZZZ… 하면서 KBS 사회교육방송은 굉장히 깨끗이 들렸는데 그렇지 않은 방송 같은 경우는 똑같은 한국말인데 잡음이 많은 게 있었어요. 그런 방송에서는 좀 더 자극적인 것들이 많이 나오더라고요. 탈북자들의 탈출 이야기도 나오고 해서 여러 가지 소식을 들은 바 있습니다.

목요대담 오늘은 탈북자 출신 김규민 영화감독과 함께 했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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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의회 앞 천리길 행진을 마친 하현기 씨와 이경복 씨를 오타와 동포들이 환영하고 있다.
캐나다 의회 앞 천리길 행진을 마친 하현기 씨와 이경복 씨를 오타와 동포들이 환영하고 있다.
사진-캐나다 북한인권협의회 제공

캐나다 정부에 북한인권법의 조속한 제정을 촉구하기 위한 ‘천리길 도보 행진’를 캐나다 거주 70대 한인 2명이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도보 행진은 장장 22일간으로 천리길을 행진한 것입니다. 한국 정부에 대해서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로의 남북통일을 더 적극적으로 추진해 달라는 청원서를 한국정부에 전달했습니다. 그리고 북한김정은 정권의 인권유린과 핵, 미사일 도발 등 북한문제 해결을 캐나다 정부가 나서주길 바라는 청원도 한 것입니다. 캐나다 북한인권협의회 이경복 회장은 천리길도 한걸음부터라고 생각하고 캐나다에서 북한인권법이 꼭 제정될 것이라 믿고 캐나다 동포들과 함께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했습니다.

목요대담 오늘은 캐나다 북한인권협의회 이경복 회장으로부터 캐나다 정부에 북한인권법 제정을 청원한 주요 내용을 알아봅니다.

현 국제사회 정세상으로 봤을 때 캐나다에서 북한인권법이 꼭 필요한 이유가 있다면 설명해 주시지요.

: 캐나다 정부도 지금까지 국제사회에서 북한인권과 관련해서 거론 할적에 당연히 참여하고 관심을 갖은 건 사실이지요. 그런데 왜 법이 필요하냐면 법이라는 것은 법이 없어도 계속해서 집행만 하면 문제가 없는데, 법이 왜 필요하냐면 법은 집행해야 될 강제성이 있다는 것이지요. 북한인권법이 없어도 북한인권과 관련한 캐나다 정부가 할 수 있어요. 그러나 법이 없으면 안할 수도 있거든요. 그래 북한인권법이라는 것을 캐나다 정부가 해야 할 의무를 지워줄 역할을 하는 거에요. 그래서 법이 필요하고요. 특히 최근의 북한에 핵 미사일 인권 관련해서 국제사회가 압박을 가하고 있는데 캐나다가 북한인권법을 만들면 그 의도는 북한주민의 인권 회복이지만은, 북한에 대한 압박의 수단도 되는 겁니다.

어떤 취지로 이번에 트뤼도 총리에게 청원하시게 됐는지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요.

: 캐나다가 북한인권법을 만드는데 중요하냐면, 아시다시피 북한인권법은 미국 일본 한국이 제정한 상태인데 이 세 나라는 북한이 볼 적에는 적대 나라거든요. 그런데 캐나다는 아시다시피 북한에 대해서는 적대국은 아니거든요. 국제사회에서 굉장히 중립적이고 독립적인 그런 입장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중립적인 캐나다가 특히 인권과 관련해서는 선진국인데 캐나다가 북한인권과 관련해서 법을 제정했다는 것은 그만큼 파장이 크지요. 북한주민, 북한정권 그리고 세계 여러 다른 나라까지도 파장이 미칠 거라고 봅니다. 그래서 캐나다가 북한인권법을 만들면 같은 입장을 가지고 있는 예컨데 호주, 영국, 뉴질랜드 등 다른 나라들도 북한인권법을 따라 하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하고 있지요. 캐나다는 작년에 정권이 바꿨거든요. 그래서 새로운 총리이니까 이분은 일반적인 북한 인권에 관해서는 브리핑도 받곤 하시겠지만, 직접적으로 북한인권에 대해서 깊이 있게 알지 못한다고 볼 수 있거든요. 그러니까 새 총리이니까 알려야 될 필요가 있고, 더군다나 청원의 내용이 같은 당 소속이었던 그리고 전 법무장관이었던 분이 북한인권법에 관련해서 동의안을 발의하는 안이기 때문에 특히 이 총리에게 청원을 하는 것이 굉장히 효과적이고 새 행정부에 인식을 새롭게 할 좋은 수단이 되는 거지요.

법안에는 어떤 내용이 담기게 되는 건가요? 자세하게 설명해 주시지요.

: 첫째는 북한인권 특사를 인명하라! 그래 그 특사로 하여금 북한인권과 관련되 사항을 모니터 하고, 보고 하고, 또 건의 하고, 국제사회 다른 파트너들과 서로 협조하는 그런 역할을 하는 특사를 임명해달라! 그 다음은 북한주민의 인권을 증진하고 인도적 지원을 해주는 그런 비정부기구들과 특히 중국에서 북송위기에 처한 탈북자들을 돕는 비정부기구 단체들을 돕도록 한다. 셋째는 지금은 어떻게 될 줄 모르지만, 예컨대 북한정권이 붕괴되고 그러면 탈북자들이 많이 밀려 올텐데 지금 한국이 다 수용하는데 한계가 있을테니까 다른 나라들도 도와줘야 되는데, 특히 캐나다는 난민, 이민과 관련해서 관대한 나라이기 때문에 당연히 탈북자들을 난민으로 수용할 수 있도록 법적인 조치를 해라는 세가지 내용입니다.

북한인권법 제정 위해 그동안 많은 활동을 해 오셨는데 상정되면 채택될 가능성 그리고 캐나다 의회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 아시다시피 의안은 두 가지로 대별할 수 있지요. 하나는 의원들이 제안하는 법이 있고 하나는 정부가 제안하는 법이 있는데 의원의 발의 법안은 통과되기가 상당이 힘들고 시간이 걸리거든요. 그러나 정부가 발의하는 법안은 캐나다는 특히 내각제이기 때문에 다수당 리더가 총리가 되는 시스템이에요. 그래서 정부가 발의 하는 법안은 의회가 발의하는 법안과 같기 때문에 다시 말하면 정부가 발의하는 법안은 통과 안 될 이유가 없어요. 지금 우리가 추진하는 것이 정부법안으로 해 달라고 총리에게 청원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부 법안으로 되기만 하면 통과되는 것은 문제없어요.

앞으로 통일염원천리길 행진은 계속하시게 되는지요.

: 연례행사로 하려고 합니다. 첫째는 행사를 마치고 보니까 캐나다 정계나 캐나다 사람들에게 북한인권에 관해 널리 알리는 수단으로서 상당히 효과적인 수단 인 것 같아요. 이번에도 캐나다 국영방송(CBC)에서 인터뷰를 해 여러 격려를 받아서 좋았고, 또 이번에 하나 느낀 것은 여기 토론토에서 오타와로 가는 중간에 우리 한인 커뮤니티가 큰 도시에 몇 군데 있는데 그분들이 나와서 동참하게 됐거든요. 그래서 커뮤니티 간의 유대 증진을 위해서도 좋은 행사구나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해마다 하려고 작정하고 있지요.

한반도 통일에 대한 전망은요.

: 이번에 천리길을 걸으면서 우리가 제안한 내용이 북한 민주화를 통해서, 북한이 민주화를 하게 되면, 그때 민주화를 이미 이룬 남한과 합해서 통일을 이루자 그래서 민주화 통일인데, 민주화 통일을 해야 된다고 우리가 주장을 하는데, 속담에 그런 게 있지요. 천리길도 한 걸을 부터라는 속담 있잖습니까? 당연히 해야될 일이기 때문에 되건 안되건 나서야 되고 또 그렇게 되다 보면 국제정세가 정해진 게 아니기 때문에, 유동적이기 때문에, 우리의 의도가 단단하면 국제사회도 우리 뜻을 받들어 주지 않겠는가! 통일이 이뤄지지 않겠는가! 저는 그렇게 보는 거지요.

목요대담 오늘은 캐나다 북한인권협의회 이경복 회장으로부터 캐나다 정부에 캐나다 북한인권법 제정을 청원한 주요 내용을 알아봤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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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서 통일염원 천리길 행진한 이경복 씨가 캐나다 공영방송과 인터뷰 하고 있다.
캐나다 서 통일염원 천리길 행진한 이경복 씨가 캐나다 공영방송과 인터뷰 하고 있다.
사진제공-캐나다 북한인권협의회

한국이 아닌 캐나다에서 통일 염원 천리길 대장정에 나선 하현기 씨와 이경복 씨가 무사히 행진을 마쳤다는 반가운 소식입니다. 통일행진은 지난 8월 15일 광복절에 토론토에서 출발해서 지난 9월 5일 오타와 국회 의사당에 도착해 많은 한인들의 환영 속에 함께 통일을 염원했습니다. 이들의 통일 염원 천리길 대장정은 한반도 통일을 위해서고 통일을 위해서는 북한 인권개선이 먼저라고 생각해 캐나다 정부에 북한인권법 제정 촉구와 박근혜 대통령에게 통일의 염원을 전하는 게 통일 염원 천리길 대장정의 뜻이 담겼다고 이경복 씨가 자유아시아방송과 회견에서 밝혔습니다. 하 씨와 이 씨는 지루하고 외로운 행군 중에도 조국의 통일을 생각하며 기운을 냈고, 또 지나가는 차들이 경적을 울리며 응원해 준 덕분에 힘을 낼 수 있었다고 전했습니다.

목요대담 오늘은 캐나다 에서 통일 염원 천리길 행진에 참가한 이경복 씨를 만나봅니다.

먼저 U(nification) Walk 즉 통일염원 천리길 행진을 성공리에 잘 마치셨다고 들었는데 언제부터 언제까지 였습니까?

: 저희들이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을 토론토 한인회관에서 매년 해 왔는데 이번 기념식이 끝난 다음에 참석한 여러분들의 환송을 받으면서 걷기를 시작해서 9월 5일 오타와 의사당 앞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니까 한 3주 걸린 거지요.

이번 토론토에서 오타와까지 걸으면서 여기쯤이면 대구, 대전이었겠다는 등 여러 도시들을 마음속으로 생각하셨다고요.

: 토론토에서 오타와까지의 거리가 약 400킬로거든요. 400킬로면 우리말로 천리길인데 우리나라 지형과 비교하면 부산에서 판문점 가는 거리에요. 그래서 마음속으로는 부산에서 내가 판문점까지 간다, 그런 마음을 갖고 여기쯤 왔으면 대구쯤 왔지, 여기면 대전쯤 왔지 하는 생각을 하며 걸었습니다.

이번 행진에 나이 드신 어른신 들 두 분이었다고 들었습니다.

: 걷는 데는두 사람이 주로 걸었는데요. 하현기씨라는 분이 78세이고 제가 70인데 그래 일단은 70대 노인들이 천리길을 걷는다. 그래서 화제가 된 거지요.

장장 22일 여를 걸으셨는데 많은 일화가 있었겠습니다.

: 많이 있어요. 옛날 친구도 만나고 친지도 만나고요. 또 그분들이 소식을 듣고 그럼 내일 걸을 적에 자기도 걷겠다고 해 같이 동참도 했는데 한 10분 정도가 중간 중간에 하루씩 또는 이틀씩 같이 걸은 기억이 납니다.

긴 장정 속에 가장 기억에 남는 구간도 있었습니까?

: 저로서는 기억에 남는 것이 한 구간은 좀 길게 걸었어요. 40킬로를 걸었는데 하루에요. 40킬로면 100리거든요. 11시간이 걸렸어요. 중간에 쉬면서요. 그런데 그 구간은 이상하게 먹을 데도 없고 아주 그 말 하자면 광야에요. 하이웨이 7분이라고 하는데 이 길은 통행이 많지 않아서 가게 하나가 없어요. 그래 한 중간쯤에 식당이 있을 까 싶어서 중간에 식사도 하고 커피도 마시면서 갈 계산하고 갔는데 물병 두개만 가지고 갔거든요. 그런데 가도 가도 없더라고요. 그래서 결국은 11시간이 걸려서 갔는데 40킬로라는 것도 의미가 뭐냐면 서울서 휴전선까지 거리거든요. 그래 내가 서울서 휴전선까지 걸어서 가는구나 그런 생각을 하면 걸었어요. 그래서 여러가지 착찹한 이런저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걸어서 하루를 걷는 것도 그렇고 또 차로가면 금방이고, 지금은 뭐 북한에서 미사일 위협하곤 하는데 몇 분이면 날라 오잖아요. 그래 이런 저런 생각하며 걸었어요.

통일 전에 어떻게 보면 해외에서는 드물게 부산에서 판문점까지 거리를 걸으신 건데요. 막상 이렇게 오타와 국회의사당 앞에 도착하셔서 어떤 느낌이 들으셨습니까?

: 우선 도착 전에 오타와 동포들이 그 전날에도 와서 저희들과 같이 걸었고, 마침 전날이 주일이었거든요. 그래 주일 예배드리고 단체로 오셔서 저희들과 같이 오타와 강변을 같이 걸었고 또 도착 당일 구간을 짧게 남겨 뒀는데요. 그날 아침에 동포들이 많이 나와서 같이 걸어 갔어요. 오타와 강변이 아주 멋있습니다. 특히 저녁노을이 환상이고요. 그래서 도착해서 또 환영식도 했는데 어쩠거나 계획대로 완주했다는 것에 대한 기쁨도 있고 여러 동포들도 그렇고 캐나다 인들에게도 CBC (캐나다 공영방송) 뉴스를 통해 알려지는 바람에 많은 분들이 격려의 인사가 오기도 했습니다. 그래 감개무량 했어요.

정말 오타와 국회의사당에 도착하시면서 아 이제 속 깊은 마음으로는 통일이 간절한 바람이셨을 것 같은데 , 일단은 이번 행사 준비하신 계기가 북한 인권과 관계가 있겠지요.

: 당연하지요. 최근 정세는 더 말할 필요가 없고 (지금 그 국제적으로는 북한이라는 것이 독립된 나라로 되 있지만) 대한민국 헌법상으로는 대한민국의 북녘일 뿐이거든요. 그리고 북녘에 있는 주민들도 대한민국 국민이고, 우리 헌법상으로 보면은요. 그런데 그 일부분이 북쪽이 진짜 암흑 속에서 갇혀 있는 꼴이란 말이에요. 그래서 통일이니 평화니 이런 문제가 결국 북한 주민들의 인권을 회복하는 것에서 해결되는 문제거든요. 그런 데다 지난 2014년에 북한인권과 관련해서 유엔 COI(Commission of Inquiry on North Korea),유엔북한인권조사위가 만들어지고 또 결과적으로 유엔이 북한에게 인권압박을 가하게 됐고, 최근에는 핵미사일 도발로 인해서 대한민국은 물론이고 동북아, 세계 평화를 깨치는 행동을 북한이 하고 있는데 그래서 통일을 해야겠고 통일을 하되 북한 민주화를 통한 평화적인 통일을 해야 되고…

이번 캐나다서 통일 염원 천리길 행진은 통일을 앞두고 북한 주민들에게 자유를 찾아 주는데 목적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따라서 북한민주화를 하기 위해서는 북한 인권이 회복되어서 북한 주민들이 자기들의 인권과 자유를 찾게끔 만드는 일이 순서란 말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지금 서 있는 캐나다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결국은 캐나다가 북한인권을 개선하는데 기여할 수 있는 것은 북한인권법을 캐나다 정부가 만들어서 북한 주민들의 인권을 회복시키고 또 지금 그 정권에게는 압박을 가하고 그런 길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 이거든요. 그래서 캐나다 트루도 총리에게 북한인권법을 빨리 제정해 달라는 그런 청원을 들고 간 거지요. 또 하나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통일 관련 청원도 있었지만 캐나다에서 북한인권법이 제정되기를 바라는 청원으로 많은 사람들에게도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목요대담, 오늘은 캐나다 서 통일염원 천리기 행진에 참가한 이경복 씨를 만났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캐나다 정부에 북한인권법을 촉구하는 중요 내용을 방송 합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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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워싱턴 한 교회에서 탈북자들이 증언했다.
지난 6월 워싱턴 한 교회에서 탈북자들이 증언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북한 보위 사령부 해외 요원으로 지난 1998년 중국에서 근무하다 남한 정보 요원 납치의 임무 수행 중 탈북한 이가 있습니다. 바로 현재 남한에서 목사가 된 이빌립 목사입니다. 이빌립 목사는 2009년에는 통일소망선교회를 설립하여 북-중 국경을 중심으로 해외선교사를 파송해 북한동포들에게 복음전파와 구출사업 그리고 북한 지하교회 성도들을 돕고 있으며 950여 명의 북한 주민들을 구출했다고 증언했습니다.

목요대담 오늘도 탈북자 출신 이빌립 목사가 지난 6월 워싱턴 동포들에게 증언한 내용 중 탈북자 구출과 복음 전파한 이야기를 방송합니다.

이빌립 목사는 2004년 교회를 개척한 이후 많은 탈북자들과 함께 했다고 말했습니다.

: 대한민국에 들어와서 제가 통일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 된 것에 대해서 참 감사합니다. 대한민국에 들어와서 가난한 사람들,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학대 당하는 사람들 위해서 2004년도에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아마 대한민국에 탈북민 출신으로서 북한동포들 위한 교회로서 유일합니다. 그래서 저는 참 하나님께 감사하고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교회를 통해서 정말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을 도왔습니다. 예수님이 복음만 전한 것이 아니라 약한자들을 위해서 사셨습니다. 저도 여러가지 부족한 부분들이 많았지만, 약한 사람들을 위해서 지금까지 정말 하나님이 주신 꿈,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 약자들을 위해서 살아간다는 마음을 가지고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 왔습니다. 아마 최소한은 수천 명을 어떤 방법으로 도왔던지 도우면서 살아왔습니다.

2009년 통일소망선교회를 창립해 북한동포 950여 명을 구출했다고 밝혔습니다.

: 통일소망선교회라는 선교단체를 2009년에 창립해서, 이 선교단체를 통해서 많은 분들과 함께 아울러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일은 혼자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함께 하는 것입니다. 이 통일소망선교회가 지금까지 약 950명 정도 되는 북한동포들에게 자유를 주었습니다. 그들을 중국에서 미국 로스앤젤레스나 산호세, 애틀란타나. 시카고 이 지역에 저희가 데려온 탈북 동포들이 있습니다. 대부분 여성들인데요. 그리고 한국에 많은 사람들이 들어 왔습니다. 저희가 돈 1만 원 한 장 안 받았습니다.

탈북자 구출에 한국과 미국 등 해외동포들도 도왔다고 설명합니다.

: 정말 북한 동포들을 사랑하고 그리고 북한땅을 사랑하는, 북한 땅에 자유가 있기를 갈망하는 그런 마음을 가진 기독교인들을 중심으로 한 아니 대다수가 기독교인들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천원 만원 혹은 10만원 모아서, 100만 원 헌금한 분도 있고 천만 원 헌금한 분도 있고, 그 돈으로 한국으로 데려왔습니다. 물론 시카고에는 한인들의 골프 동호회가 있더군요. 거기 보니까 제가 아는 집사님이 한 다섯 명 구출할 수 있는 헌금 만 불 이상을 보내왔는데 그 동호회는 기독교인 아닌 분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이 애국하는 마음, 이 가난하고 고통당하는 사람들, 버림받는 것을 차마 볼 수가 없는 그런 애국적인 마음을 가진 분들이 돈을 모아서 보내줘 데려오는 일도 있었습니다.

탈북자들은 탈북 과정의 고통 때문에 꼭 복음을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 자유를 얻은 우리 탈북민들에게 복음과 예수님의 사랑을 전해서 데려옵니다. 예수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온 사람들 저희가 초기에는 요. 950여 명 가운데는 거의 반 수 가까이 복음을 못 전하고 한국으로 데려왔습니다. 그랬더니 그들 가운데 중국에서 윤리와 인성이 파괴된 많은 여성들이 또 남성도 있었습니다. 복음을 전해 데려온 사람 가운데는 알콜 중독자도 있었고 마약 중독자도 있었습니다. 여성들이, 그러나 탈북여성들 다 그렇게 보시면 안 됩니다. 그 가운데 극소수가 윤락업소에 가서 마약과 알콘에 중독돼요. 왜요 이 마음이 가난하고 마음이 고통스러우니까요. 그것으로 잊어버리려고요. 그런데요. 그들이 똑같은 상황에 있던 사람들인데요. 그 사람들한테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 성경 말씀을 전해서 그들을 사랑으로 품어 줘서 한 3계 월, 6계 월, 1년 그들 마음을 치유하는 걸 도와줘서 데려왔더니 그들이 윤락업소에 안 가더랍니다.

기독교를 접한 탈북자들이 한국에서 잘 정착해가는 이야기입니다.

: 예수님의 사랑은 조건이 없는 거지 않습니까? 예수님의 사랑은 사람의 마음을 치료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데려왔더니 그들 윤락업소에 안 가는 겁니다. 그들이 건강한 가정을 갖고 살아가려고 힘쓰는 겁니다. 그리고 그들이 고려대학교에 들어가고요. 연세대학교에도 들어가고요. 그리고 이화여대 등 여러 대학에 들어가 공부하는 탈북대학생 수가 늘어나고요. 예수님 만나니까 꿈이 생기는 거에요. 아 나도 나를 도왔던 선교사님들처럼 살아야겠다. 선교사는 못 되어도 내가 그 사람들처럼 어려운 사람을 돕는 사람으로 살아야겠다. 그래 한국에 들어와서 사회복지사 공부를 하고 상담사 공부를 하고요. 이렇게 인생이 바뀌더라는 거에요.

지금 중국에서 어린 소녀들이 팔려 가고 있다며 이들 구출에 미국 동포들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우리의 손자나 딸 같은 아이들이 중국에 넘어와서 인신매매로 팔려가고 있습니다. 우리 선교사님들이 그런 아이들에게 가서 구출해 옵니다. 팔려간 지역에서 정말 목숨을 걸고 잡히면 맞아 죽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서 그들을 데려다가 다시 마음을 치유하고 그들 돕는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이 자유를 얻어주는 일들이 이뤄질 수 있도록 여러분 도와 주시고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빌립 목사가 설립한 남북사랑네트워크의 대안학교 소식입니다.

: 2011년도에는 남북사랑네트워크 통일부 산하 비정부기구를 창설했습니다. 이 남북사랑네트워크는 아버지 학교, 어머니 학교 등을 열어서 건강한 가정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또 한국사회에 와서 사업하다 실패해 거주할 곳이 없는 사람들, 또 해외 나갔다가 실패하고 들어온 분들 등 이런 분들을 위해서 저희가 쉼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쉼터를 통해 그분들을 다시 건강한 사회인으로 살 수 있도록 돕는 일들을 하고 있고요. 그리고 남북사랑학교라고 대안학교를 열었습니다. 그래서 북에서 10대 20대 때 공부를 못했어요. 왜냐면 북에서 식량 기근으로 인해서,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해서, 탈북하다 보니까 공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 입국한 10명 중에 2명은 고등학교, 중학교, 초등하교 졸업장이 없습니다. 그래 이들을 공부시켜야 합니다. 저희 남북사랑네트워크가 대안학교를 올해 열었습니다.

이빌립 목사는 앞으로도 더 열심히 공부해 통일의 일꾼으로 성장할 것도 다짐합니다.

: 저는 지금까지 뿐 아니라 앞으로 더 열심히 한국사회 국민으로서 살아가려고 지금 또 공부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우리 북한동포들 가운데 공부하는 사람들 많습니다. 그래서 워싱턴에 계시는 애국 동포들이 공부하는 우리 북한동포들 관심을 가져 주시고 그들에게 박수도 보내주시고 또 여러분들이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목요대담 지금까지 북한 보위사령부 요원으로 활동하다 한국에서 목사가 된 이빌립 목사의 증언 함께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취재와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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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애국총연합회 주관 탈북자들 증언의 애국시민학교가 열리고 있다 .
한미애국총연합회 주관 탈북자들 증언의 애국시민학교가 열리고 있다 .
RFA PHOTO/이현기

북한 보위 사령부 해외 요원으로 지난 1998년 중국에서 근무하다 남한 정보 요원 납치의 임무 수행 중 탈북한 이가 있습니다. 바로 현재 남한에서 목사가 된 이빌립 목사입니다. 이빌립 목사는 현재 서울에서 열방샘교회를 섬기고 있으며 2009년에는 통일소망선교회를 설립하여 북-중 국경을 중심으로 해외선교사를 파송해 북한동포들에게 복음전파와 구출사업 그리고 북한 지하교회 성도들을 돕고 있습니다.

목요대담 오늘은 북한보위사령부 요원으로 활동하다 한국에서 목사가 된 이빌립 목사가 지난 6월 워싱턴 동포들에게 증언한 내용을 전해드립니다.

이빌립 씨는 한국에 처음 와 본 것이 십자가 였다고 증언합니다.

: 제가 신앙의 자유를 위해서 대한민국에 왔는데, 제가 대한민국에 도착한 날이 2002년 7월 24일입니다. 그날 밤에 처음 들어간 지금은 국정원에서 조사하지만, 당시에는 국정원이 아니고 대성공사라는 합동 조사 기관에서 조사해서 제가 4층인지 5층인지 개인 독방을 받았는데, 방에 들어가서 커튼을 젖히고 서울의 첫 하늘의 밤을 바라봤습니다. 근데 제 눈에 비친 것이 뭐냐면 화려한 네온사인 간판들보다 십자가가 들어왔습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려니까 마음에 찬양이 울려 나왔습니다. 무슨 찬양이냐! 오늘 부른 애국가입니다. 동해 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애국가를 부르는데 눈물이 펑펑 쏱아졌습니다. 왜 눈물이 쏟아졌느냐면 저는 대한민국에 와 있지만, 저와 중국에서 선교사님 통해서 성경공부를 하고 자유가 무엇인지 배웠던 그 친구들, 많은 사람들이 북한으로 들어갔습니다. 북으로 들어간 그 친구들을 생각하니까? 제 마음이 울컥했습니다. 그래 그때 고백을 했지요. 하나님. 이 땅에 와서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게 하시고 그리고 북한의 복음화를 위해서 또 통일을 위해서 잘 준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해 주십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북한 신문에 난 김일성의 사진을 모르고 엉덩이에 깔고 앉아도 정치범 수용소에 끌려간다고 말합니다.

: 제가 왜 또 자유를 선택했느냐! 생각해 봤더니 사상과 말과 그리고 행동의 자유, 그리고 시위와 집회의 자유를 위해서 대한민국에 오게 된 것 같습니다. 북한에는 자유가 없습니다. 오직 김일성 김정일 제가 있을 때는 김정일까지 밖에 없었습니다. 김일성 김정일만 찬양해야 되고, 위대하다고 해야 하고, 또 김일성 김정일의 말에 모든 사람이 복종해야 하고 김일성이 사진이 실린 신문을 모르고 엉덩이에 깔고 앉았다. 그리고 사진이 있는 걸 모르고 그 뒷면만 보고 이렇게 담배를 말아서 피웠다. 그러면 그 사람은 반동이 되는 겁니다. 그 사람은요. 정치범 수용소에 끌려가게 되는 겁니다.

북한에는 그 어떻한 자유도 없다고 했습니다.

: 북한에는 여러분 말과 언론과 시위와 집회의 자유가 없습니다. 저는 이 자유를 위해서 대한민국에 오게 된 것에 대해서 너무 감사합니다.

한국에 와 생활한 이야기

: 저는 지금 한국에 와서 아직은 은행에서 대출해서 살고 있는 집이지만 그래도 내 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사유재산이 인정된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내가 수고하고 노력한 만큼 얻을 수 있습니다.

북한에선 무역 일꾼들 언젠가는 돈 때문에 결국 숙청당하게 된다고 들려줍니다.

: 그런 자유가 북한에서는 없습니다. 벌어서 내가 먹고살 수 있는 자유가 있는 것 같지만, 특별하게 돈을 갖고 있다. 그다음부터 이 사람은 감시 대상인데요. 이 사람은 특별히 북에서 무역하는 사람들 있지 않습니까? 외화벌이하는 사람들, 저는 외화벌이 하는 사람들 가운데 정말 뛰어나고 특별한 사람들 많이 봤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나중에는 십중팔구가 한국의 안기부와 연결되었다. 그리고 또 일본하고 연결되었다 해서 그 사람들 그냥 숙청시키는 걸 봤습니다. 잡아다가 온 가족까지 다, 본인은 처형시키고 온 가족은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가고 그리고 그 재산은 다 빼앗고 이런 것들을 저는 북한에서 봤습니다. 일본에서 북으로 들어온 귀국자들 가운데도 저는 그렇게 어려움 당하는 사람들을 봤습니다.

재미동포들에게 북한 구원운동에 협력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 저는 북에서 재산을 가져보지 못했기 때문에 잘 모릅니다. 하지만, 한국에 와서 자유가 있다. 이거 좋은 것 아닙니까? 자유를 위해서 북한 안에서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에게 자유가 주어질 수 있도록 미국에 사는 우리 교포들이 힘써 주시기 바랍니다. 자꾸 언론을 통해 말해 주시고 또 이렇게 모임을 가져주시고, 함께 기도도 해 주시고, 또 학교도 열어 그 학교를 통해 북한 실상을 자꾸 알려 왜 우리 통일이 필요한지, 북한동포들에게 자유를 주기 위해서 통일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려주시고요. 그리고 자유를 위해서 일하시는 분들 위해서 여러분들 후원도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빌립 목사는 자신이 오늘에 있기까지의 삶을 증언합니다.

: 그리고 나는 왜 대한민국을 선택했느냐! 제가 또 생각해 봤더니 미래와 꿈을 위해서 선택했습니다. 저는 99년 3월 15일 날 중국의 작은 조선족 교회에서 선교사님 통해서가 아니라 이 교회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됐습니다. 성경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 만나고 성경을 읽으면서 아!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되겠다는 꿈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그 꿈은 하나님이 주신 꿈입니다. 제가 보니까요. 예수 믿기 이전에 제 삶을 봤더니 나를 위한 삶이었더라고요. 내 성공을 위해서요. 그런데 내가 하나님을 만나고 성경을 읽고 제가 거듭나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제가 봤더니 나 중심적인 삶이 아니라 바로 예수님처럼 십자가에서 나를 희생해서, 다른 사람을 위해서 그리고 나라를 위해서, 통일을 위해서 살아야겠다. 특별히 가난하고 버림 당한 사람들 위해서 제가 일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작은 예배당에서 손을 모으고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 조선에는 교회가 없습니다. 저 조선에는 사랑이 없습니다. 조선에 교회를 세울 수 있는 일꾼이 되게 해 주십요. 제가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목요대담 지금까지 북한보위사령부 요원으로 활동하다 한국에서 목사가 된 이빌립 목사의 증언을 함께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취재와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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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빌립 목사가 워싱턴 동포들에게 증언하고 있다.
이빌립 목사가 워싱턴 동포들에게 증언하고 있다.
RFA PHOTO/이현기

북한 보위 사령부 해외 요원으로 지난 1998년 중국에서 근무하다 남한 정보 요원 납치의 임무 수행 중 탈북한 이가 있습니다. 바로 현재 남한에서 목사가 된 이빌립 목사입니다. 이 목사는 지난 2002년 탈북해 남한에서 목회자로의 새로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 씨는 중국에 파견되어 임무를 수행하던 중 북한 체제 모순을 느껴 탈북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워싱턴 동포들에게 자신의 탈북과정을 설명했습니다. 이빌립 목사는 현재 통일소망선교회를 통해 950여 명의 북한 주민들의 탈출을 도왔다고 증언했습니다.

목요대담 오늘은 북한보위사령부 요원으로 활동하다 한국에서 목사가 이빌립 목사가 지난 6월 워싱턴 동포들에게 증언한 내용을 전해드립니다.

탈북자 출신 이빌립 목사는 ‘나는 왜 대한민국을 선택했는가’ 제목으로 증언했습니다.

: 저는 북에서 1973년에 태어났습니다. 아마 한국에서는 새마을 운동을 한창 열심히 할 때 태어난 것 같습니다. 오늘 제가 맡은 특강의 주제를 보니까 ‘나는 왜 대한민국을 선택했는가!’였습니다. 생각해 봤습니다. 대한민국에 들어온 지 이제 14년 되었는데 내가 대한민국을 왜 선택하게 됐는지 그리고 대한민국에 들어와서 그 선택한 꿈대로 내가 살아가고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해서 좀 생각을 해 봤습니다. 저는 자유를 위해서 대한민국을 선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저 북한땅에서 나오게 하셔서 중국에서 하나님을 만나서 대한민국에 들어올 수 있도록 인도하셨습니다.

이 목사는 북한 보위부 소속으로 1998년 당시 중국에서 남한 정보 요원을 납치하기 위한 활동을 했다고 설명합니다.

: 제가 원한 바가 아니라 원하지 않는 인생의 경로 가운데 북한의 보위사령부라는 기관에 흡수되어서 1998년 2월에 중국으로 나오게 됐습니다. 제가 주로 맡았던 공작 임무는 북한에서 유출되는 당, 군 그리고 여러 북한의 내부기밀들, 국가기밀들이 유출되는 것을 막는 일을 위해서 중국에 파견 나왔다가 국군기무사 라인을 못 만나고 당시 안전기획부 전 김대중 대통령 정부가 99년도 들어서기 전 이니까 안전기회부 대북 라인에 제가 침투되었습니다. 한 1년 가까이 북한에서 보낸데로 여러 활동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받았던 임무가 북에서 1992년에 탈북하여서 홍콩을 경유해 한국 국적을 취득하고 대북 첩보활동을 벌였던 안전기획부 요원, 북한 출신, 북한특수부대 장교와 함께 또 한국 안전기획부에서 중국으로 드나들던 이사장이라는 저는 차장급 인물로 알았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차장급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그 두 사람을 납치할때에 대한 임무를 받았습니다. 제가 직접 납치해서 북으로 보내는 건 아니고 당시 중국 연변족 자치주에 백산호텔이라고 있었습니다. 백산호텔까지 그 사람들을 유인해 내면 거기서 납치조가 납치해서……

중국에서 북한 보위부 요원으로 활동 중 이빌립 씨는 북한체제가 잘 못됨을 알고서 탈북하게 됐다고 말합니다.

: 제가 납치 임무를 받고 포기했습니다. 포기한 이유는 제가 중국에 와서 한 1년 가까이 살면서 보니까 북한체제가 잘 못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또 중국의 개혁 개방된 같은 공산권이라고 하지만, 중국은 개혁개방돼서 완전히 자본화가 된 중국의 모습을 보면서, 아 북한체제와 북한의 경제구조가 잘 못 됐구나! 그래서 제가 갈등을 겪고 있다가 결국은 탈북을 단행하게 됐습니다.

북한보위사령부 요원이 중국에서 기독교를 영접한 이후 북한 탈출을 결심했다고 말합니다.

: 탈북해서 저는 중국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선교사들을 만났습니다. 제가 왜 자유를 선택했냐고 하면 북한에는 신앙의 자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신앙의 자유를 위해서… 제가 2001년도 9월에 북한에 북송되었다가 2002년 2월에 다시 북한에서 나왔는데 그때 신앙의 자유를 위해서 대한민국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2001년 당시만 해도 북한에는 전국에 컴퓨터 망이 설치 되지 않아 신원조회에 걸리지 않았다고 설명합니다.

: 북한 보위사령부 출신이라는데 어떻게 북한에 잡혀들어갔다가 살아 나올 수 있겠느냐! 이런 의문을 가지신 분들이 있을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도우셔서 살아 났습니다. 그리고 북한 시스템 자체가 한국이나 미국은 길가에서 운전하다가도 교통경찰에 걸리게 되면 전사시스템으로 인해 신원파악을 할 수 있지만 북한은 제가 잡혀갔을 당시 전부 컴퓨터 망이 안 되었습니다. 컴퓨터를 통해서 어떤 신상정보를 넣으면 개인의 정보가 나오는 컴퓨터 망이 안 되었고 잡혀가는 탈북자가 워낙 많기 때문에 신원조회를 한 일주일 혹은 직접 상대가 여기 평안북도라고 하면 함경도 보위부에서 한 보름이나 한달 정도 있다가 데리러 오는데 그 전에는 신원조회하기가 어렵습니다. 직접적으로요. 또 그 사람이 왔다고 해도 내가 직접 그 사람과 같이 함경북도(고향인데) 도 보위부에 가서 다시 심층 조사하기 전에는 신원조회 하기가 어렵습니다. 지금은 아마 다를 거라고 생각합니다. 일반 주민들은 쓸수 없지만 인터넷도 깔려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빌립 목사는 앞으로 탈북자들과 함께 북한 동포 구원의 길을 같이 걸을 것을 다짐했습니다.

: 저같은 이 작은 한 사람이 삶의 방향이 바뀌게 되면 선배들인 여러분처럼 애국하는 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저를 포함한 11명의 우리 북한동포들이 왔습니다. 저분들이 이제 변화되어서 또 성공해서 크게 되면 이 자리에 계시는 우리 애국자들 선배님과 똑같이 애국하는 그런 휼륭한 일을 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목요대담 지금까지 북한보위사령부 요원으로 활동하다 한국에서 목사가 된 이빌립 목사의 증언을 함께 들었습니다. 다음 주에도 이빌립 목사의 증언 계속됩니다. 지금까지 취재와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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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s KORUS House English class is an article about Chuseok, one of Korea's biggest traditional.....

전찬윤 씨의 댓글

아래는 2016년 1월 전찬윤 씨가 댓글로 올려 주신 내용입니다. 전찬윤 2016-01-29 04:00 우리나라 동포(교포) 3세가 2052년에 미국의 대통령이 될 것이다 ​ 님의 블로그에서 유익한 내용, 마음에 와 닿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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