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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문화산책

통일문화산책: 죽을 권리도 유보된 평양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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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앙TV가 방영한 북한식 인사법. 어른들에게 45도로 인사를 하고 악수를 하면 안된다고 소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통일문화산책 진행에 이현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누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봅니다.

북한에서 젊은이는 걸음걸이라든가 옷 입는 맵시까지 가르치고, 전화예절, 상점과 백화점에서의 행동요령, 이발소와 미용원에서의 인사예절도 가르칩니다. 심지어는 사투리 사용도 억제하며 문화성을 높이면서 북한주민은 평양문화를 만들기 전에는 죽을 권리도 유보한 체 살아가야 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탈북남성: 김정일이 있을 때도 그렇고 지금 김정은 때도 평양에서는 모든 시장에서라든가, 상점에 간판을 달거나, 그 어떤 사람이 이름을 짓는 다든가 할 때는 조선의 고유어를 써라 / 탈북여성: 햄버거 같은 경우는 영어가 아닙니까? 햄버거라고 하지 않고 고기 겹 빵, 빵하고 고기가 겹쳐 있다고 해서.

우리 조상의 전통 상 예법도 모르고 보도하는 남 북한 언론에 대한 북한문화평론가 임채욱 선생의 지적입니다.

임채욱 선생: 작년 12월 17일은 김정일이 죽은 지 만 3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북한에서는 3년상이라면서 의미를 부여하려고 했지요. 이 날을 앞두고 한국 언론에서도 이 3년상을 지나 탈상을 하게 되면 북한 김정은 체제가 잘 굴러갈까를 분석하는 보도들이 많이들 나왔지요. 그런데 여기서 3년상이란 것을 한 번 생각해 보도록 하지요. 3년 상이란 표현은 전래 우리 풍속대로라면 사람이 죽은 지 만 2년이 될 때를 말합니다. 사람이 죽었을 때가 초상, 죽은 뒤 만 1년이 되었을 때가 소상, 그리고 만 2년이 되면 대상이라 합니다. 옛날에는 대상 때 탈상을 하지요. 이를 모르고 3년상이라면 만 3년을 말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 전통 상례를 모르는 것이 됩니다. 남에도 북에도 이제 전통을 잘 모르는 사람이 많아져서인가요? 작년 12월 17일은 김정일 3년 탈상이 아니라 3주기라고 해야 옳은 것입니다. 북한의 언론매체가 3주기를 맞았다고 보도에 열을 올리는 것이야 어쩌면 당연하다 하겠지요. 한데 한국 언론에서도 3주기가 아니라 3년 탈상이니 하면서 이제부터는 김정은이 본격적으로 자기 방식의 활동을 할 것이라는 식의 평가를 하는 보도태도는 좀 웃기지 않나요?

임채욱 선생의 전통을 무시한 것에 대한 채찍입니다.

임채욱 선생: 북한에서야 전통을 무시하고 자기들 식대로 하는 것이 예사였으니까요. 김일성이 사망했을 때도 그랬으니까요. 아시다시피 김일성은 1994년 7월에 세상을 떠났으니까 전통방식대로라면 1996년 7월에 탈상을 해야 하는데, 북한당국은 만 3년이 되는 1997년 7월에 탈상을 선언했지요. 이때도 정치적 의도가 작용한 것인지 전통예법에 무지하여서인지 둘 중의 하나이겠는데 뒤에 만 3년 만에 탈상을 하게 된 변명을 하는 것을 보면 전통예법을 알고도 정치적 의도 때문에 그렇게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변명은 이렇습니다. 김정일이 3년간 상복을 벗을 수 없다면서 조상전래의 관습에 공산주의자의 도덕의리를 창조했고 또 북한 인민들도 “수령에 대한 숭고한 도덕적 의리를 갖고 만 세 해 동안 마음의 상복을 벗지 않은 결과”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는 말을 합니다. 이 말이 사후 변명이라 하더라도 북한당국이 전통을 무시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요.

임채욱 선생은 평양문화에서 전통을 대하는 모습과 창조 돼서 통일문화에도 도움이 될 만한 것 즉 옥류금 같은 국악기 개량 등은 북한 문화의 특징적인 것일 수도 있다고 설명해 줍니다.

임채욱 선생: 북한에서 주민들은 하루 8시간 학습을 한다고 했는데, 비록 학습내용이 주로 정치사상 학습이고 ‘온나라의 예술화’가 구호처럼 실현되지는 못해도 어떻든 북한주민도 문화수준이 높아 왔겠지요. 또한 문화예술 부분에서 한국에 못지않거나 앞서 가는 내용도 있겠지요. 앞으로 통일문화를 형성할 때 유용 할 수도 있을 특이한 몇 가지만이라도 말해 볼까요? 북한 전역의 식물은 6천 7백종이고 민물고기는 180종, 조류는 200종이라고 발표하여 분류학 수준을 인정시키고 있고 고또분지로라는 일본 학자가 1901년에 이름을 붙인 한반도의 산맥이름을 새로 뜯어고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가하면 서울문화에서 외래어로 범벅이 된 모습을 본다면 평양문화에서는 말다듬기 사업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든가, 우리 말 이름을 장려하는 현상들은 아주 좋은 일이지요. 또 옥류금을 개량하듯이 우리 국악기를 개량하는 일에도 힘을 쏟아 일정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가 하면 나름대로 대형 혁명가극을 창작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선전과 관련되기 때문이지만 탑이나 동상, 조각 등 대형 기념물을 제작하는 능력은 서울문화보다 앞서고 있지요. 또한 민간요법을 체계화하는 사업도 권장하여 좋은 성과를 거두었지요.

임채욱 선생은 북한 인민의 실제 삶은 ‘수령의 명령을 관철하기 전까지는 죽을 권리도 없다’고 지적합니다.

임채욱 선생: 북한은 젊은이의 걸음걸이라든가 옷 입는 맵시까지 가르치려 드는 곳입니다. 걸음걸이나 옷 입는 것뿐입니까? 전화예절, 상점과 백화점에서의 행동요령, 이발소와 미용원에서의 인사예절도 가르칩니다. 심지어는 사투리 사용도 억제하면서 문화성을 높이려고 하고 있지요.

문제는 북한주민이 이러한 평양문화를 만들기 전에는 죽을 권리도 유보한 체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수령의 명령을 관철하기 전에는 죽을 권리도 없다”는 구호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이런 평양문화 요소들이 통일문화를 형성할 때 어느 정도나 유용할까 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요.

한 탈북인은 군 안에서도 평양의 말투를 써라는 명령이 있었다고 들려줍니다.

탈북남성: 군 안에서도 지방 사람들 말투를 고칠 것에 대해서 강하게 요구를 했었는데 그 말투가 1년 동안에는 그렇게 쉽게 고쳐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방에서 올라온 군인들이 애를 먹었던 기억도 있고 평양에 김정일이 있을 때도 그렇고 지금 김정은 때도 평양에서는 모든 시장에서라든가, 상점에 간판을 달거나, 그 어떤 사람이 이름을 짓는 다든가 할 때는 조선의 고유어를 써라 하면서 그 고유어가 결론은 평양의 말투를 써라 이 뜻입니다.

한국에서 인기리에 방영되는 채널 A 텔레비전 방송의 이만갑, 이제 만나러갑니다, 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한 한 탈북여성의 이야기에서도 북한 문화어에 대해 들을 수 있습니다.

탈북여성: 오랫동안 문화어라고 해서 말 다듬기 사업을 해오다 보니까 북한에는 남한에 비해서 고유어가 대개 많아요. 햄버거 같은 경우는 영어가 아닙니까? 햄버거라고 하지 않고 고기 겹 빵, 빵하고 고기가 겹쳐 있다고 해서 고기 겹빵이라고 합니다.

남북이 분단된 지 어언 70년 남북은 그동안 이념과 체제를 달리하며 각기 다른 길을 걸어왔습니다. 남한은 서양으로부터 다양한 물질문화를 받아들여 식생활에도 큰 변화가 있었으나, 북한은 서양 문화에 인색했던 관계로 아직도 민족 고유 음식과 전통 음식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탈북 여성들이 전해줍니다.

오늘은 북한에서 오랜 전통으로 자랑하는 감찰떡을 소개해 드립니다.

준비물은 찹쌀 1킬로 그람, 감 500그람, 흰팥 100그람, 소금 3그람입니다.

이제 만들어 볼까요.

감은 물렁한 것으로 준비하여 껍질을 벗기고 거즈에 넣고 쪄서 즙을 만듭니다. 흰팥은 물을 충분히 붓고 밥을 짓듯이 해 뜸을 들인 다음 방망이로 으깨어 고물을 만듭니다. 참쌀은 물에 불렸다가 시루에 안쳐 찐 다음 뜸을 들일 때에 감즙을 넣습니다. 참쌀이 잘 익으면 소금을 넣고 풀기나게 쳐서 감빛이 나도록 떡을 만든 다음 적당한 크기로 썰어 흰팥고물을 묻혀 냅니다.

통일문화산책 함께 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기획과 진행에 RFA 이현기입니다.